몬테크리스트 백작부인
- 제작년도
- 1957
- 출연
- 테노트 알바드, 쫀 톨드
※ 이 글은 2022년 10월 11일(화)부터 19일(수)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되는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미완의 사가: 아오야마 신지(1964-2022) 추모전’과 연계한 기획입니다. 기획전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428 아직 건강했던 즈음의 모습이나 목소리의 억양 등을 부족하나마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생각에 고인 화장을 한 채로 말도 없이 누워 있는 아오야마 신지--그건 터무니없이 아름다운 표정이었다고 후에 들었다--의 마지막 모습을 접하는 등의 일은 이 서글픈 늙은이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에, 그 마음을 배우자인 도요타 마호에게 전화로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다부지게 대응하는 마호의 씩씩함에는 그저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오야마 신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스스로 금할 수밖에 없었던 노령의 나는 그 시각, 식이 행해지고 있을 공간을 생각하면서 어느 일간지 덕분에 영화작가로서의 그의 특이한 매력과 생각지도 못한 훌륭함을 이것저것 쓰고 있었지만, 쌓이는 생각과 그것을 전하려는 말이 신문 특유의 행수와 글자수의 제한에 막혀 마냥 공전할 수밖에 없었고, 생각처럼 글이 잘 진행될 리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도 끝날 무렵에는 역시 피곤한 나머지 축 늘어진 채 일하던 책상에서 벗어나 소파로 도망쳐, 담배를 물어야 할지 아니면 TV 수상기를 향해 리모컨 버튼을 눌러야 할지 잠시 고민한 끝에, 결국 아마도 태생적인 나태함 때문일 거라고 생각되지만, 이렇다 할 확실한 이유도 없이 심야 흡연과 심야 TV 화면 점등을 거의 동시에 시작하고 말았다. 그러자 작은 화면에는 뭔가 돌계단 같은 경사진 공간에 서 있다가 앉아 있다가 하는 남녀가 비쳤는데, 아무래도 연속극의 마지막회스러운 그 화면 구도가 하나하나 완벽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심야의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치고는 극히 드문 일이지만 이것은 숏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의 작품이구나 싶어 묘한 흥분을 느끼면서, 이야기의 줄거리도 작중 인물들의 관계도 전혀 모른 채 뜻하지 않게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 화면의 연쇄에는 어딘지 모르게 아오야마 신지적인 부분도 있어, 도대체 누가 이런 드라마를 찍었는지 궁금증이 커졌고, 마지막에 흐르는 캐스트와 스태프 이름의 연쇄를 눈여겨보다 보니, <시쥬카라>(シジュウカラ)라고 하는 제목인 것 같은 그 드라마의 연출가 이름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大九明子’(오오쿠 아키코)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름은 그날 오후 집에 도착한 단행본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필름아트사, 2022)의 목차에서도 봤던 이름이어서 그 사실에 새삼 놀랐고, 발행사의 편집자인 다나카 류스케 씨에게 메일로 문의했더니, 그 사람은 영화 < 제멋대로 떨고 있어 >(2017) 등을 통해 관객을 매료시킨 여성감독이라고 알려줘서, 나 자신의 무지--그것을 나이 탓이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를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바로 그다음 날 아침부터 오오쿠 아키코 감독과 메일 교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이메일 교환을 통해 감동을 받고, 더불어 알게 된 것은 <시쥬카라>의 연출가가 영화미학교 1기 수료생으로 아오야마 신지를 스승으로 추앙했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오야마 신지의 장례식 날 심야에 완전한 우연으로, 아오야마 세미나 출신자가 연출한 ‘양질’이라고 하는 말에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극상’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마음이 깊이 움직여 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아오야마 자신이 그 명함--그런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지만--을 곁들여, 이 여성 감독을 나에게 소개해준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 DVD를 그 자리에서 즉시 구입한 것은 물론이다. 앞서 언급한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에는 아오야마 신지 또한 마치야마 히로미(町山広美)와의 대담 「영화의 틀은 이미 사라졌다」(映画の箍はすでに外れている)를 실었기 때문에, 오오쿠 아키코 감독은 자신이 쓴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특별 강의」가 스승 아오야마 신지에게 읽히게 될지도 몰라 멋쩍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스승인 아오야마 신지의 서거로 인해 그 기회는 영원히 상실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거의 불합리하게 우리들의 곁을 떠난 아오야마 신지는, 말로 하지는 않았으나 오오쿠 아키코가 만든 탁월한 숏의 연쇄를 마치 의도하지 않은 유언처럼 나에게 알려준 것이 되었으므로, ‘아오야마 신지, 고맙다’라고 심야에 고독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는 이 후기 고령자에게는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선물이었다. 아오야마 신지는 릿쿄대학 시절의 나의 제자라고 되어 있다. 그것은 확실히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형뻘인 구로사와 기요시나 만다 구니토시 등의 세대처럼 그들이 만든 8㎜ 필름 작품을 수업 중에 상영하거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해서 영화 얘기를 하고, 그 후에도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격의 없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것은 그때 나 자신이 릿쿄대학의 교사직을 이미 그만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비상근강사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는 제도적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오야마 신지라는 이름은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을 인식한 것은 훨씬 뒤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아테네 프랑세에서 열린 다니엘 슈미트 작품 상영회 때, 그의 조감독이었던 아오야마 신지로부터 조용히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이 풍성한 장발을 어깨에 휘날리고 있던 그의 얼굴을 인식한 첫 번째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름을 특별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문학부 1학년이었을 때 쓴 학기말 리포트가 무척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영화에 대한 소론이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영화의 “눈”은 오즈 야스지로의 그것이었다’라고 쓰기 시작해, ‘그 따뜻함이 두렵고, 그 다정함이 공포를 증폭시키는 것이다’라고 끝맺었듯이, 그 ‘따뜻함’과 ‘두려움’, 그리고 ‘다정함’과 ‘공포’와의 변증법적 기술(記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을, 대학 1학년 후기의 리포트이기 때문에 갓 스무 살이 된 젊은이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는 것에, 교사로서의 여유를 넘어선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대부분의 리포트는 거의 처분해 버렸는데, 〈a〉보다도 훨씬 뛰어난 〈A〉라는 평가가 기록되어 있는 그 짧은 글이 아직도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은, 이 ‘아오야마 신지’라고 하는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뛰어난 글쟁이이기도 했다. 그것은 걸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유레카>(2000)의 소설판을 통해, 누군가가 쓴 『백작부인』 같은 것보다도 15년 정도 전에 이미 미시마유키오상을 수상한 것에서 엿볼 수 있음에 틀림없다. 또 그것과는 별개로, 예를 들면 근저인 『다카라가이케의 가라앉지 않는 거북--한 영화 작가의 일기 2016-2020』(boid, 2022)의 어디라도 좋은 단 한 페이지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오야마의 글재주는 누가 봐도 확실한 것이다. 또한 그는 뛰어난 비평가였으며 그 비평적 눈의 선명함과 강렬함은 이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영화작가 아오야마 신지의 죽음,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아오야마 신지의 죽음은 현대 일본의 가장 뛰어난 영화평론가의 죽음 그 자체도 의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비평가로서의 측면은 구로사와 기요시와 나와의 공저 『영화장화』(리틀모어, 2011)에서의 긴 시간에 걸친 토론을 통해서 매번 느끼고 있던 것에 다름이 아니며, 그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은 이미 『아오야마 신지와 아베 가즈시게와 나카하라 마사야의 시네콘!』(리틀모어, 2004) 등을 통해서도 충분할 정도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단순히 영화를 잘 찍는 감독에 그치지 않고, 뛰어난 언어로 영화를 말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비평가였던 것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의 마치야마 히로미와의 대담에서, 마치야마 히로미가 언급한 칼 드레이어의 <게르투르드>(1964)를 놓고 “현대영화의 기선을 잡은 <게르투르드>는 누구에게나 넘어야 할 ‘영봉’임에는 틀림없다”면서도 보다 현대성이 강한 <아네트> 같은 영화는 “<게르투르드>의 엄격한 가치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그 경지에서의 머뭇거림을 그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서, 이 같은 정확하기 짝이 없는 가치판단을 내세울 수 있는 비평가가 지금 몇 명 있는지, 적이 염려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오야마 신지와는 2월 하순까지 이메일로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신경 써서 보내준, 걸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 구름 위에 살다 >(2020)를 아내와 나란히 보면서 소파에 몸을 맡기는 다베 미카코의 몸놀림이 터무니없이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아내의 반응을 전하자 아오야마 신지는 순순히 기뻐해줬다.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 추모글을 쓰게 되면서 아오야마 신지가 찍은 몇 편의 작품을 DVD로 다시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극히 일부를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때문에, 전부 도중에 보는 것을 그만뒀다. 예를 들면, < 헬프리스 >(1996)에 몇 번인가 삽입된 기타큐슈의 어떤 공장의 무인 숏.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또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 숏의 적확한 삽입이 눈물을 자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 피사체를 향해야 할 몇 개의 앵글 중에서, 이것 하나밖에 없다고 하는 적확하기 짝이 없는 카메라의 위치를 아오야마 신지가 선택하고 있다고 하는 그 절대적인 올바름이, 눈물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러한 점으로부터, 내가 아오야마 신지의 ‘눈’을 깊게 신뢰하게 된 계기인 < 셀레브레이트 시네마 101 >(1996)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VHS 테이프로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두려워하는 그 예스러운 장치에 낡은 테이프를 삽입했더니 갑자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기묘한 소리가 기계로부터 흘러나오며 어느 버튼을 눌러도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테이프를 꺼내려 해도 금속제 뚜껑이 닫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때까지는 간신히 기능하고 있었던—사실 『존 포드론』의 집필 때문에 그의 TV 작품을 보기 위해서 몇 번이나 사용하고 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 기재는, 아오야마 신지 때문에 기능 부전에 빠져 버렸으니, 부디 책임을 져달라고 말하고 싶은 바다. 다행히도 지금은 VHS로 봐야 할 작품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오야마 신지 이 사람아’라고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자네는 우리 집의 낡은 VHS 재생장치를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다네. 얼마나 밉살스러운 남자인가. 하기야 『다카라가이케의 가라앉지 않는 거북』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아오야마 신지의 비평적 선명함과 강렬함이 다소 무뎌지는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수시로 그렇게 지명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나 자신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순간이다. 2018년 월드컵 때 그와 메일을 교환하다가 모드리치를 남군 장교에 비유한 것은 틀림없이 바로 나였다. 실제로 아오야마 신지는 그 비유를 보고 이렇게 썼다. ‘잠이 부족한 나날에 대해 보답받았다고 할까, 내가 보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가르쳐 주셔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렇다. 나는 모드리치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남북전쟁을 그리는 포드와 페킨파의 서부극을 월드컵에 겹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매우 납득이 가는 해설’(p.189)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맹세코 말하지만, 그렇게 쓴 나의 의도를 이해해 주는 것은 이 좁지 않은 세계에서도 아오야마 신지 한 명밖에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에 대한 은밀한 연애편지 같은 것이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그 일을 자랑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그를 울려 버린 적도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낮에 도착한 《문학계》에 실린 「존 포드론 제1장-II. 수목」을 단숨에 읽었다. 첫 페이지부터 눈물샘이 느슨해지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 말 없는 사나이 >를 거쳐 <일곱 여인> 부분에 접어들었을 때, 사정을 모른 채 옆에 있던 여배우가 “웬 오열?”이라며 놀라워했다. 이것은 나 자신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시게오미 군과 관련된 일이 깊게 관계하고 있는 것 같다. 외아들을 잃은 분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p.422)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오열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써주는 사람은 아오야마 신지밖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확신하고, 나 또한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미우라 하루마를 <말 없는 사나이>의 모린 오하라처럼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터무니없이 감동적인 < 도쿄공원 >(2011)을 찍고 난 직후였다고 생각되는데, 시게오미가 스즈키 다쿠지 감독의 <나는 고양이 스토커>(2009)나 스가누마 에이지 감독의 <속삭임>(2009)의 음악 작업을 끝낸 이후 몸이 약간 좋지 않아 처음으로 입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문병을 가서 그 병실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안에서 쾌활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들어가기를 망설이다가 되돌아가려고 했을 때, 그 목소리의 주인이 아오야마 신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당분간 젊은이들끼리 대화를 즐기도록 놔두자고 생각하고 대기실로 돌아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신진 작곡가인 시게오미와, 그의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를 아내로 둔 영화작가 사이에는, 도요타 마호를 둘러싼 무수한 화제가 있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분이 지나도, 반 시간이 지나도, 결국은 1시간이 지나도, 아득한 병실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1시간 반 정도 후에야 야구 모자를 쓴 아오야마 신지가 복도를 지나며 ‘아아, 와 계셨습니까’라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라고 애매하게 대답하자, ‘아아, 시게오미 군, 아주 건강해 보였습니다’라고 수줍게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 병실에서 나를 맞아준 시게오미는 시게오미대로, 몸이 나아지면 함께 영화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진심 어린 미소를 지은 채, 아오야마 신지로부터 차기작의 음악 작업을 의뢰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오지 않았고, 아오야마 신지의 수줍은 표정도, 그 통통 튀는 웃음소리도, 그와의 긴 대화를 진심으로 즐기던 시게오미의 자랑스러운 미소도, 이제는 영원히 상실되고 말았다. 그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머지않아 86세가 되어 가는 이 후기 고령자는, 이를 위한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아오야마 신지를 함부로 추모하지 않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신초」2022년 6월호) 필자 - 하스미 시게히코: 일본의 문학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 영화 분야 저서로는 『영상의 시학』(1979), 『감독 오즈 야스지로』(1992), 『영화의 신화학』(1996), 『고다르 혁명』(2005), 『보기 레슨: 영화사 특별 강의』(2020), 『쇼트란 무엇인가』(2022), 『존포드론』(2022) 등이 있다. 번역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박진희 ※ 이 글의 무료 게재를 허락해주신 「신초」 편집부와 하스미 시게히코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この文の無料掲載をお許しいただいた「新潮」の編集部と蓮實重彦様にお礼を申し上げます。) ※ 이 글의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note.com/monthly_shincho/n/n442dd74c8048 )
※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2021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선정작입니다. 신분을 초월한 세 사람의 우정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면 처음에는 눈에 안 들어왔던 것들이 보인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는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관계만 집중하느라 알아채지 못했던 소피와 엘로이즈 마리안느 이 셋의 관계가 그랬다. 백작 부인이 없는 동안 그 세 사람은 신분을 초월한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생리나 임신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서로 돕는다.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우린 똑같은 위치에 있어요”라고 하는 대사가 있다. 나는 이 대사가 세 여자들의 관계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이 셋은 예술가와 뮤즈, 귀족과 하녀가 아닌 친구로 지낸다. 나는 그것을 셋이서 함께 있는 장면에서 많이 느꼈다. 소피가 십자수를 하는 동안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모습이나 셋이 함께 약초를 캐는 장면,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 등 여러 번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처음에는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분위기가 편안하고 즐거워 보이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촬영 기법 때문이었다. 세 사람을 똑같은 위치에서 하나의 쇼트에 넣는다든지 단독 쇼트에서도 카메라 앵글의 크기를 같게 함으로써 마리안느, 소피, 엘로이즈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카메라의 의도가 돋보인다. 계급사회가 배경인 영화들을 많이 봐왔는데 귀족과 하녀가 가까이 지내는 것은 봤어도 이렇게까지 평등한 위치해 있는 것은 못 본 것 같아 새로웠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인터뷰 중에 이에 대해 ‘평등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계급을 넘어선 하인 소피와의 우정, 욕망과 열망을 지닌 백작부인과의 대화 같은 것들. 인물들 간의 연대와 정직함을 원했다.’고 말했다. 완전한 여성 서사 이 영화 속의 페미니즘과 여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 러닝 타임인 120분에서 남성이 나오는 장면은 58초가 끝이다. 소피 아이의 아빠나 엘로이즈가 결혼할 남자, 엘로이즈의 아버지 등 남자들의 서사는 물론 얼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새로움과 신선함을 느꼈던 이유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오롯이 여성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여성 서사 영화가 많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대화 중에서 여성 화가로서 활동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마리안느는 ‘여성 화가의 활동은 제한되어 있고, 중요한 주제들도 전부 여성을 비껴간다’며 직접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한다. 찾아보니 마리안느가 미술을 가르치는 학생들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 18세기에는 여성 화가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여성 예술가들의 권리가 조금씩 신장되던 시기였지만 여성 화가의 작품은 전시에 출품할 수 없었다. 마리안느가 전시에 작품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낸 것처럼, 여성 작가들 또한 글을 남성의 이름으로 냈다고 한다. 대를 잇는 정략결혼과 억압의 역사 정략결혼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 당시에 여성이 억압받던 시대상을 잘 드러냈다. 엘로이즈의 언니가 원치 않는 결혼 대신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에 엘로이즈가 대신 결혼하게 된 것도 상징적인 부분인 것 같다. 엘로이즈가 언니의 대체품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엘로이즈의 어머니도 그랬듯이 언니와 엘로이즈도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 대를 이어 전해지는 여성 억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이 원해요?’ 임신 중단이라는 소재가 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소재를 담담하게 그려낸 것도 인상 깊다. 위에서 언급했건 것처럼 소피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언급하지도 않고 괴로워하는 여성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소피가 낙태 시술을 받는 장면에서 소피의 옆에 아기를 둔 연출도 기억에 남는다. 소피가 아기에게 위로를 받지만 임신 중절을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은 가지지 않고 그저 소피의 선택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 당시에 하녀는 출산을 당연하게 해야 하는 존재였을 수도 있는데, 마리안느가 소피에게 아이를 원하냐고 질문한 것이, 또 원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대답에 소피를 도운 것이 출산에서의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장면인 것 같다. 소피와 아기를 함께 둔 것이 잔인하다는 사람의 글을 보았는데, 임신 중절을 단순히 살인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술 모습을 그리려는 장면도 기억에 남았다. 마리안느는 보기 힘들었는지 고개를 돌리지만 엘로이즈는 그 모습을 보라고 한다. 여성에게 금기된 행위를 부정적으로 여겨 지우려고 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확실히 다른 영화에서 다루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보는 여성 간의 사랑 셀린 시아마 감독은 여성 성소수자로서 여성들 간의 사랑을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다뤘는데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그게 보였다. 타오르는 영화의 초상 gv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질문 중에 하나가 ‘둘은 언제 사랑에 빠졌나’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캐롤> 에서 나오는 것처럼 첫눈에 반한다거나 하는 말 그대로 ‘영화적인’ 설정이 없다. 관객들은 언제부터 둘의 사랑이 시작되었는지, 엘로이즈가 처음으로 마리안느에게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둘이 점점 더 사랑에 빠지고 있다는 것은 눈에 잘 보인다. 처음의 엘로이즈는 분노가 늘 이긴다며 잘 웃지 않았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어머니에게 그녀가 좀처럼 웃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웃음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 포즈를 취할 때 마리안느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을 보며 둘은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굉장히 현실적으로 여성 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싸우는 장면이다. 영화를 볼 때는 이 장면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만약에 남성과 여성인 상황이었으면 이 장면이 의아하지 않고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글이었다. 연인이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 싸우는 장면은 사실 아주 많이 봐온 모습인데 둘 다 여성인 연인의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느꼈던 이질감인 것이다. 이것을 알고 나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들처럼 여성에 대한 대상화도 없고 보기 편안한 여성 서사 영화를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재회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정말 엘로이즈가 마리안느를 못봤을지’였다. 마지막에 본 엘로이즈의 모습이 사실 마리안느의 환영이라는 의견도 보았다. 계속 시선이 평등하게 오고 가는 편집에서 갑자기 극적인 줌인이 어색했고, 마리안느가 이전에 보았던 엘로이즈의 환영이 복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또 엘로이즈가 혼자 올 리가 없는데 혼자였다는 것도 근거가 되었다. 이 의견도 정말 재미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혼자 있으면 자유롭다고 해주었는데, 마리안느는 사계 여름 3악장의 뒷부분을 듣기 위해, 마리안느를 생각하며 자유를 느끼기 위해 혼자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영화를 봤는데 이렇게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는 곳은 항상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엘로이즈가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고 끝나는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이야기의 끝을 매듭짓는 느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원래의 결말이 관객들에게 생각할 만한 여지를 주고 오랫동안 줌 인을 하는 것도 긴 시간이었는데 지루하다거나 그런 느낌 없이 내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이 영화는 혼자 생각하고 상상할 부분이 많았고, 나는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소피는 두 사람 관계를 눈치챘을지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마지막 장면에서 엘로이즈는 정말 마리안느를 보지 못했는지, 둘은 어떤 방식으로 평생 동안 그 5일간의 기억을 추억할지 같은 오래 생각할만한 부분까지 궁금한 점도 많았기에 여러 번 보며 곱씹고 싶은 영화 중에 하나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계몽주의 시대의 풍자 코미디다. 코미디인데, 보는 내내 약간 긴장을 느끼는 것은 당대 귀족의 권위를 대단히 같잖게 보고 있어서다. 곧 지배층이 여기선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하인 커플(피가로와 수잔나)과 주인 커플(백작과 백작 부인)의 역할의 역전에서 빚어지는 소동이 이 코미디의 백미다. 주인은 소인배 같고, 하인이 관용을 베풀어서다. 그런 소동을 가능하게 만든 장치가 바로 ‘변복(變服)’이다. 백작은 부인이 하녀 수잔나의 옷을 입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걸다, 상대가 아내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용서를 빈다. <피가로의 결혼>이 은근히 ‘위험한’ 것은 용서를 비는 장면을 객석에서 보면, 화려한 의상의 귀족 남자가 수수한 복장의 하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어서다. 귀족은 무릎을 꿇고, 하녀, 곧 시민은 관용을 베푸는 이 장면에서 프랑스혁명의 전조를 읽기도 한다(슬라보예 지젝, 믈라덴 돌라르 지음,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 이병일 감독의 < 시집가는 날 >의 주요한 모티브도 변복이다. 졸부로 보이는 맹 진사( 김승호 )는 김 판서 댁의 아들 미언(최현)과 혼사를 성사시켜 결혼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소문에 그 아들은 ‘절름발이’라는 것이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사회적 신분이 필요하지만, 장애인에게 딸 갑분( 김유희 )을 시집보낼 수 없다는 맹 진사는 딸 대신 딸의 몸종인 입분( 조미령 )을 딸처럼 꾸며 결혼식장에 내세운다. 입분은 어쩔 수 없이 주인의 명령대로 갑분처럼 변복하여 신랑 앞에 선다. 그런데 장애인인 줄 알았던 신랑은 훤칠한 청년이고, 멋진 옷을 입은 입분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신부로 비치는 것이다. 맹 진사와 딸은 자신들의 경솔함을 뉘우치지만, 이미 신랑은 입분의 비밀까지 모두 이해하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뒤다. 신랑은 ‘참된 마음’을 가진 신부를 원했고, 그래서 일부러 나쁜 소문을 냈는데, 마침내 천생배필을 찾았다며 입분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말하자면 <피가로의 결혼>과 < 시집가는 날 > 두 작품 모두 사회적 제도와 통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피가로의 결혼>은 신분제도라는 것 자체를 무시하며, <시집가는 날>은 부(富)와 관용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분과 부를 표시하는 것은 사람의 내면이 아니라 복장인데, 따라서 누구나 다른 복장을 하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뭇 공격적인 풍자를 담고 있다. 그만큼 물려받은 신분인 귀족, 인품이 따르지 못한 부자는 인정할 수 없으며, 금방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과 하녀 수잔나는 서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는데, 백작은 그들이 입은 옷에 따라 부인을 하녀로 하녀를 부인으로 오인한다. <시집가는 날>에서 하녀 입분은 주인의 딸 갑분의 옷을 입었는데, 여성스럽고 조심스런 태도를 가진 입분은 누가 봐도 더 품위 있어 보인다(전통적인 미모를 가진 조미령 의 스타성이 한몫했을 테다). 백작부인과 하녀, 갑분과 입분은 항상 대체 가능한데, 옷만 갈아입으면 된다는 냉소인 것이다. < 시집가는 날 >이 발표될 때는 한국영화가 비로소 전화(戰火)의 상처에서 벗어날 때다. 영화사가 이영일에 따르면 해방과 전쟁의 질곡을 넘어 한국영화가 중흥의 발판을 마련할 때다(「한국영화전사」). 아마 당대의 경제적 변화에 올라탄 졸부도 많았을 것 같다. <시집가는 날>은 사회적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당시의 신흥계급에 대한 통렬한 냉소를 시대극의 형식을 빌려 그리고 있다(영화의 배경은 졸부들이 족보를 사던 구한말이다). 맹 진사는 며칠 머물기를 원하는 어느 선비의 부탁도 냉정하게 거절하는 구두쇠로 표현돼 있다. 자기 이익에만 눈이 먼 부자인 맹 진사, 사람에 대한 이해는 하녀보다 훨씬 얕은 주인집 딸, 이들처럼 사회적 역할을 외면하는 기득권층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뜻일 테다. < 시집가는 날 >이 유난히 강조하는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룬 옛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 빼어난 동양화 같은 마을 풍경은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향수(과거) 또는 염원(미래)으로 보인다(촬영감독은 임병호 ). 과거의 상징은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양반인 판서 아들 미언, 그리고 미래의 상징은 맑은 마음을 가진 하녀 입분으로 표현돼 있다. 인정의 대상에서 현재의 기득권자인 맹 진사댁 사람들은 배제돼 있는 데서도 <시집가는 날>의 세태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런 냉소는 지금도 대단한 효력을 가질 것 같다. 미래를 지향하며, 현재의 권위를 부정하는 태도가 강조돼 있어서다. 아마 이런 반제도적인 풍자가 <시집가는 날>을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주목하게 하는 이유일 테다(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애인에 대한 이 영화의 성찰 없는 태도다. 보기에 따라서는 잔인할 정도인데, 사실 우리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공격성을 갖고 있었다. 과거를 읽는 하나의 중요한 테마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