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라
- 감독
- 김정근
- 제작년도
- 2012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담은 < 그림자들의 섬 >에는 오랜 시간을 버텨온, 자신의 신념, 이상, 혹은 의리, 관계 등의 이유로 ‘뭔가’를 놓지 않고 버텨온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신념’이나 ‘믿음’보다는 먹고 사는 것의 문제, 실리가 더 중요해진 요즘, 사는 것에 지칠 때마다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냥 놓아버리면 안 되는지. 그들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서 눈물이 난다. 그들이 버티어냈을 시간들, 견뎌냈을 아픔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들이 온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섬세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희망버스’와 ‘김진숙 지도위원’ 외에는 한진중공업에 별다른 정보가 없던 사람들에게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역사, 투쟁의 역사, 그리고 노동자들이 싸워온 시간들의 기록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교과서 같은 영화이다. 김정근 감독의 전작인 < 버스를 타라 >가 희망버스 자체를 집중적으로 기록했다면, < 그림자들의 섬 >의 8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버스를 타라>의 프리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조그마한 사진관의 무대 위로 불러 모은다. 80년대 입사한 이제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부터 2000년대 입사한 젊은 노동자들까지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기억과 꿈, 아픔과 상처, 일상과 기적의 순간들을 끄집어낸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의 용접공이 된다는 꿈에 부풀어있었던 입사 시절부터, 대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너무나 열악했던 노동 조건, 옆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후회되고 아팠던 순간들, 민주노조의 설립과정과 투쟁이 확산되었던 승리의 경험 등. 이 영화는 오랜 기간 민주노조를 만드는데 함께 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위해 같은 곳을 지켜온 평범하지만 단단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영화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퍼즐처럼 맞춰지는 30년 한진중공업의 역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평범하지만 다양한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줬던 ‘희망버스’와 300일이 넘어서야 고공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회사와의 합의로 이 영화가,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가 마무리되면 좋았겠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그림자들의 섬 >이 < 버스를 타라 >의 프리퀄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영화의 러닝타임으로 보자면, 이 부분은 영화의 거의 후반부에 해당하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는 ‘현재’는 굉장히 무겁고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 싶은 현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 정권에 들어서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회사는 복수노조를 설립한다. 설 자리를 잃은 민주노조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끈을 놓지 않는다. “원망하는 건, 지원하는 건 쉬워요. 미워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기다리는 게 힘들지.”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 한 마디는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2009년 1월 19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용산참사’는 올해 1월 7주기를 맞았다. 2009년 5월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맞서 이루어졌던 노동자들의 투쟁과 복직투쟁은 지금도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비극에 대한 진상규명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는 게 바빠서, 기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현재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와 잘못된 환경 속에 있고, 어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바쁜 이유 역시, 그 불안정한 삶의 모서리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을 알 수 없는 그 삶의 모서리를 지키느라 남의 일에는 도통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의 투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201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2016년 8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꽤 지나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시간의 경과를 느끼기는 어렵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만은 아닐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동참해주면 좋겠다.
어떤 영화들은 그 스스로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자체의 힘으로 시작과 끝을 맺으며, 감독은 이 영화가 이렇게 끝맺어 짐을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영화들 말이다. 희망버스 투쟁기를 다룬 < 버스를 타라 >도 그런 생명력을 지닌 영화다. 영화 안의 다양한 주인공들(희망, 사람, 연대)이 저마다의 생명력으로 모여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극적 반전이 아닌 것에 안도하며, 세상에 대한 희망을 안고 객석을 떠날 수 있는 영화. <버스를 타라>는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는 평범한 부산 도심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자동차, 그리고 한 기업 건물(한진 중공업). 그렇지만 화면에 입혀진 오디오와 투쟁 승리를 알리는 플래카드는 결코 이 거리가 평범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들리는 오디오는 바로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의 목소리로 그들이 이곳에서 어떤 희망들을 이야기 했는지 영화는 말해준다.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이 더 이상 충격으로 다가 오지 않는 세상, 한 여성이 크레인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고공 농성을 벌인다. 한진 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해 크레인에 몸을 실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액션’을 취하게 만들었다. 크레인 농성 150여일째, SNS로 모여진 익명의 사람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내려온다. 이들은 영화 안에서 이야기 했듯이 어떠한 소속도, 어떠한 배후도 없다. 또한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난장을 한진중공업 안마당에서 신나게 벌인다. 한진 중공업 사태가 해결되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내려온 희망버스는 영화 소제목 그대로 1. 넘어서다 -기존 집회와 참여자들의 틀을 넘어서면서 2. 몸으로 알다 -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최루액을 맞아가며 세상의 모순을 몸으로 알게 되고, 3. 축제- 인식과 이해의 과정을 넘어 하나의 축제로 귀결된다. 세상을 단절시키는 인터넷이 역으로 익명의 사람들을 한자리로 묶어 내고 희망버스가 움직일수록 참여자들과 노동자들 가슴에 희망의 싹이 점점 커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김진숙 지도위원이 1연녀 만에 크레인에서 지상으로 첫 받을 힘차게 내딛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전하며 영화는 끝난다. 희망버스가 어떠한 배후와 세력 없이 스스로가 지닌 생명력으로 진화하듯 이에 맞춰 영화도 희망을 이야기 하며 끝을 맺고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보며 개인적으로 많이 실망하고 우울했다. 투표 결과가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보편적이지 않음을 확인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 버스를 타라 >라는 영화 안에서도 김진숙 지도위원을 빨갱이로 몰거나 지역주의와 가족주의로 포장되며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들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 거대 플래카드에 쓰인 ‘사람이 꽃이다’라는 선언처럼 “김진숙을 살려야 겠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여진 익명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힘은 보편적이진 않아도 타당한 가치임을 또다시 사람에게 희망을 걸게 만든다. 이는 2012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세상에 대한 무력함이 다시 희망으로 바뀌는 과정을 우직하고 성실하게 기록한 영화라는 심사평과 함께 < 버스를 타라 >를 올해의 다큐멘터리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에필로그 장면, 남겨진 94명의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관계자 두 명에게 구속 영장이 발부됐음을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타이틀 <버스를 타라>는 세상 밖 다양한 현장에서 다시금 희망버스에 탈 때가 왔음을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