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권장 버스정류장? 흡연권장 버스정류장!
- 제작년도
- 2010
사진: <0시(영시)>(이만희, 1972) 중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영화를 볼 때, 첫 3분에서 5분 가량의 도입부는 그 영화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대의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면, 그 공간을 이미 경험해 본 관객에겐 “아 바로 저기!”라는 친근감과 그에 따르는 몰입감을 단박에 이끌어내는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앞선 칼럼들 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 속 배경이 배우에 버금가는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나아가 지금과 같이 영상 기록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20세기, 특히 1960~70년대의 우리나라의 도시 공간이라면 구도나 촬영 기법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하기에 앞서서 당대의 도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1차 사료로서 더욱 크나큰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선에서, 도입부 에 담긴 도시 공간의 시퀀스가 특히 인상적인 영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격변의 현장, 서울을 담다 먼저 살펴볼 영화는 1961년 작, < 서울의 지붕밑 >(이형표 감독)이다. 6.25 전쟁이 끝난 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시기, 그것도 5.16 쿠데타 직후 혼란스러웠던 시절의 서울의 전경을, 초반 2분 동안의 도입부에 멋지게 담아낸 영화다. 50초 경부터 1분까지, 카메라는 8층 높이로 당대의 ‘고층 멋쟁이 빌딩’이라 불렸던 개풍빌딩, 광화문우체국, 종로소방서, 덕수궁 북쪽의 옛 화신백화점 연쇄점 창고를 훑는다. 개풍빌딩, 광화문우체국, 종로소방서가 한 컷에 담긴 타이틀 씬 1961년의 시선에서는 하나같이 ‘도회지스러움’을 발산하는 으리으리한 건축물들이었지만, 채 30년도 지나기 전에 이 건축물들은 모두 헐려 없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서울이 얼마나 급격한 변화를 거쳤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이윽고 카메라는 1분 42초 경에, 제법 정성들여 꾸며진 서울시 1기 휘장(1947년 제정, 1996년 교체)의 팔각 모양 화단을 비춘다. (좌) 1947년~1996년까지 사용된 서울시 휘장 (우) 시민회관에서 내려다 본 서울시 휘장 모양의 화단 구도 상 아마도 시민회관의 옥상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서울의 지붕밑”이라는 영화의 타이틀 답게, “서울”의 상징을 일부러 담고자, 분명히 감각적으로 의도된 씬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마침 1분 58초 당시 5.16 쿠데타 세력으로 구성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청사(옛 문공부 청사, 現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파사드 또한 잠시 모습을 비추는데, 당대의 시대상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컷이기도 하다. 영화가 촬영되던 바로 그 시점에 5.16 쿠데타 주도 세력이 입주해 있던 옛 문공부 청사(現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도입부의 서울 전경 시퀀스는 2분 20초 경, 지금의 통인동 일대를 비추며 끝이 나는데, 도시형 한옥이 빼곡히 늘어선 모습은 1978년 자하문로가 개통되면서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이다. 통인동의 도시형 한옥 밀집 지역. 자하문로가 개통되면서 오른편 상단의 자교교회 종탑 이외에는 이 시기의 흔적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단 2분 만에, <서울의 지붕밑>은 ‘서울 도시경관 아카이브’로서 훌륭히 기능을 해 낸 셈이다. 서울의 하늘이 높아졌다 <서울의 지붕밑>으로부터 약 10년이 흐른 1972년에 제작된 < 0시(영시) >(이만희 감독) 또한 도입부에서 인상적인 시퀀스를 보여준다. 서울역 앞, 남대문 경찰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만큼, 초반 3분 동안 서울역과 고가도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도큐호텔(現 단암빌딩), 남대문 너머 서소문 일대의(당대 기준으로는) 고층 오피스 빌딩군을 세련되게 잡아낸다. 1970년에 개통된 서울역 고가도로 사이로 담아낸 서울역의 모습 남대문 주변의 일제강점기 당시의 근대건축물과 서소문로의 고층 오피스 빌딩이 대비를 이루는 모습 1970년대 영화답게 총천연색으로 담긴 남대문 주변의 풍경은 의외로 50년이 흐른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에서는 10층 내외의 ‘고층 오피스 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날로 높아져가는 서울의 하늘은 1971년, 바로 이 영화가 촬영되던 시점에 절정기를 맞는다. 1971년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두 채의 꺽다리 빌딩(31층의 삼일빌딩,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한 25층의 단암빌딩)이 등장하면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남대문 바로 옆의 25층짜리 빌딩을 역시 필름에 담지 않고는 못 배겼던 것일까, 카메라는 단암빌딩을 틸트 쇼트로 멋드러지게 잡아낸다. 한국 건축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김중업의 작품이, 영화 속에 최초로, 그것도 우아하게 등장한 순간이 아닐까. 낯익은 그곳, 회현사거리 마지막으로 서울의 인구가 500만을 넘어서 700만 명을 바라보던 1975년에 제작된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감독)의 시퀀스를 들여다보자. 영화가 시작되고 9분 경부터 약 1분 동안 진행되는 장발 대학생 두 사람과 장발 단속 경찰의 추격씬은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두 명의 장발 대학생들은 명동 신세계 백화점과 제일은행 앞, 회현사거리를 누비다가 신촌로터리 앞 육교에서 결국 경찰에 잡히고 만다.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제일은행을 배경으로 호쾌하게 연출된 도보 추격씬 신촌로터리의 육교에서 담아낸 신촌로의 모습. 거꾸로 매달린 등장인물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 씬이다. 시가지 한복판에서 촬영된 시퀀스이니만큼, 버스 정류장에서, 인도에서, 육교 주변에서 촬영 현장을 구경하는 인파가 오롯이 담겨있으나, 마치 실제로 일어난 해프닝인 것 마냥, 인파들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오히려 의도된 엑스트라로 보일 정도이다. 두 사람이 힘껏 질주하는 회현사거리-남대문로의 풍경은, 실은 1960~70년대 한국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1961년 작 < 오발탄 >(유현목 감독)에서 주인공 철호가 미도파 백화점(現 롯데 영플라자) 앞을 거니는 씬, 1966년 작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한형모 감독)에서는 시골뜨기인 두 주인공이 대도회지 서울에 적응을 못하는 해학적인 시퀀스에서 회현사거리 일대는 약방의 감초처럼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이상으로 세 편의 영화에 드러난 1960~70년대 서울의 도시경관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보았다. 불과 5~10년 간격을 두고서, 서울의 하늘이 급격히 높아지고, 기록 매체 또한 흑백에서 총천연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가 서울에 있어서 얼마나 격변의 시기였는지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칼럼에서는 보다 최근, 1980~90년대의 서울의 도시경관을 영화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 해당 칼럼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바트로스라는 바닷새가 있다. 3미터가 넘는 거대한 날개를 가진 알바트로스는 날 수 있는 조류 중 제일 큰 새로 꼽힌다. 알바트로스는 날개짓을 하기 보단 상승과 하강기류를 활용해 바람을 타며 이동하기 때문에 하루에 천 킬로미터도 거뜬히 난다고 한다. 그러나 유려한 비상과 활강을 가능하게 하는 큰 날개는 땅에서는 균형감을 잃고 걷기 힘들게 한다. 이 때문에 땅 위에서 날개를 꾸깃꾸깃 우겨넣고 뒤뚱뒤뚱 걷거나 엎어지며 슬랩스틱을 보여주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은 < 딱따구리(The Woody Woodpecker Show) >(1957) 같은 고전 애니메이션에서 희화화되기도 했다. < 번지점프를 하다 >(김대승, 2001)의 주인공들은 알바트로스와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죽음을 불사한 사랑은 가능하지만 땅에 발을 붙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상은 심각하게 거추장스럽거나 불가능한 것이 된다. 심지어 그들의 살아있음은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모욕과 혐오로 점철되고 죽음은 필연이 된다. 사랑은 죽음을 통해 증명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이고 오프닝과 엔딩을 통해 수미상관을 이루는, 카메라가 활강하는 씬은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과 불가능한 세속적인 삶을 은유한다. 오프닝 장면은 구불구불한 협곡을 따라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카메라의 시점을 보여준다. 특정 인물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등장하진 않지만 꽤 긴 시간 동안 지속되고 협곡을 따르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그것이 단순히 멋진 자연풍경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관찰자적 시점이 아닌 실제로 공중에서 활강하고 있는 누군가의 신체적 움직임이자 주관적 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가(그들이) 누구인지의 궁금증은 엔딩에 가서야 해소된다. 영화는 촬영기법을 통해 주인공들의 운명을 오프닝에 예정하면서도 엔딩에서야 명확한 답을 주며 관객을 몰입시키는 완성도 높은 장르영화를 구현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이하 <번지>)는 2001년 개봉한 영화로, 당시 한국영화는 < 접속 >(장윤현, 1997), < 미술관 옆 동물원 >(이정향, 1998), < 정사 >(이재용, 1998) 등 격정적 감정에 호소하는 ‘신파’를 덜어내고 세련된 영상미와 독특한 관계성을 가진 로맨스 영화들이 부상하던 때였다. <번지> 역시 그러한 영화 중 하나로 평가 받았다. <번지>는 앞에서 기술한 오프닝과 엔딩의 유려한 헬기 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적재적소의 음악사용, 해변의 저녁노을을 이용한 그림자 연출 뿐 아니라 운명적인 필멸의 사랑을 설득해 내기 위해 환생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두 파트로 서사를 나눠 미스터리적 구조를 취하며 관객들이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했다. 영화는 1983년의 1부와 2000년의 2부로 나눠진다. 82학번 국문과인 인우( 이병헌 )는 같은 학번 조소학과인 태희( 이은주 )를 ‘우연히’ 마주치고 첫 눈에 반한다. 비오는 날, 우산이 없는 태희가 인우의 우산 아래로 뛰어들어 버스 정류장까지 바라다 달라고 하고 인우는 태희를 사랑하게 된다. 이 장면은 이후 다른 정보들이 추가되며 재해석된다. 관객들은 태희와 같은 과 친구의 대화에서 비오는 날 태희가 먼저 인우에게 호감을 갖고 우산이 없는 척하며 다가갔다는 진실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한 사건을 두고도 여러 각본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한다. 1부가 인우의 입영일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태희가 죽으면서 급작스럽게 끝나고, 2부는 17년이 지난 2000년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국어교사가 된 인우는 고2 담임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신의 학생 중 하나인 현빈( 여현수 )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18세 남자 아이임에도 현빈은 태희를 연상시킨다. 무언가를 들 때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버릇, “젓가락은 시옷 받침인데 왜 숟가락은 디귿 받침이냐”는 질문,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을 좋아하는 것, 심지어 태희가 인우에게 선물로 줬던 라이터를 갖고 있는 것까지 태희와 같다. 영화는 1부의 태희와 2부의 현빈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작은 실마리들을 흩뿌려 놓으며 관객들이 인우와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도록 유도한다. 인우의 현빈을 향한 감정은 모두가 알아차릴 정도로 커져가고 결국 인우는 동성애자라 비난받으며 학교에서 쫓겨난다. 이후 전생이라 할 수 있는 태희의 기억을 떠올린 현빈이 인우를 찾고 둘은 1983년 약속했던 번지점프를 하러 뉴질랜드로 떠난다. 그리고 줄 없이 뛰어내린다. 인우와 태희, 현빈과 인우 로맨스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들 간의 사랑을 방해하는 대상이다. 사적 사랑을 억압하고 방해하는 것들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사랑은 더 강해지고 진정성을 얻으며 영원한 운명이 된다. 그렇기에 방해하는 대상은 대부분 개인의 힘으로 바꾸거나 해결할 수 없는, 매우 견고한 것이 된다. 1부가 그러한 방해물을 죽음으로 두었다면, 2부는 동성애와 학생-교사 간 로맨스를 배치한다. 죽음은 유한한 인간인 이상 극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로맨스 영화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방해 대상이다. 매우 규범적인, 반대할 여지가 없는 대학생 간의 이성애 연애가 방해를 받을 정도가 되려면 죽음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편 2부의 동성애와 학생-교사 간 로맨스는 사회적 변화에 따른 선택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성소수자들이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에 가시화되었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은 시민권 운동의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배우 하리수 가 2001년 도도 화장품 CF 모델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트랜스젠더임을 밝혔고, 배우 홍석천 은 2000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했다. 성소수자의 가시화는 대중적 인지를 가져오고 그에 따른 혐오와 차별도 두드러졌다. 특히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 다큐멘터리 <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 >(이영, 2007) 같은 영화들은 학교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그려내며 당대의 변화를 포착했다. <번지>는 이러한 변화들 속에서 2부에서 동성애를 사랑의 방해물로 그린다. 학생과 교사, 미성년과 성년이라는 강력한 방해대상이 있지만 이보다 더 크게 부각되는 금기는 단연 동성애다. 로맨스에선 개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대상 그 자체만큼이나 개인들이 그 억압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번지>의 주인공들은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아닌, 동성애 자체를 부정적 방해물이자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인우와 현빈 모두 자신이 실제로는 동성애자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려 애쓴다. 영화는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반복한다. 인우는 정신병원에서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검사를 받고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의사의 (의문스러운) 진단을 받을 뿐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아내와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려 한다. 현빈은 인우를 만나기 전만 해도 또래 여학생을 좋아하고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평범한 이성애자 십대 남자 아이라는 것이 강조된다. 현빈은 호감을 갖고 있던 혜주( 홍수현 )에게 의도적으로 속옷이나 누드화를 선물하며 성희롱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 즉 인우와 현빈 모두 성적 정체성에 있어 ‘문제없는’ 이들이었음이 강조된다. 혜주와 현빈 이 에피소드들은 두 가지 면에서 문제적인데 하나는 이성애자임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이 대부분 성적 폭력에 기반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사랑보다 동성애 부인에 무게 중심이 간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계속 강조하는 건 인우가 현빈을 태희로 느끼고 운명적 사랑을 재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우와 태희는 어떤 성별로 태어나도 서로를 알아볼 것이며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대화를 나눈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서사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따라서 인우와 현빈이 어떤 성적 정체성을 갖든 어떤 성별로 전환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1부의 태도와 달리 2부는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즉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넘어선 사랑보다 이성애자라는 정체성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분명 둘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즉 태희가 환생해서까지 재회하고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이것은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죽음도 뛰어 넘은 둘은, 동성애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둘은 뉴질랜드로 가서 줄 없이 번지점프를 한다. 그리고 땅에 떨어지는 장면 없이 주변 사람들의 비명 소리 이후 오프닝의 활강 씬이 반복된다. 인우는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을 읊조린다.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내레이션에 따르면 그들은 사회가 용인하고 당사자들이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는 규범적인 이성애 커플로 당첨될 때까지 땅에 발을 딛지 못한 채 계속 죽고 환생해야 한다. 확률 게임처럼 말이다. 엔딩 카메라의 “끝이 없는 활강(반복된 죽음과 환생)”은 착륙지로 내정된 이성애 사랑을 위해 죽어야 하는 동성애자들의 운명이 된다. 이 카메라의 활강은 그 자체로 당대 퀴어 스크린의 일면이 된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강릉 시네필을 위한 명소: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홈플러스, 중앙시장, 월화거리 등이 있는 강릉의 시내 한 가운데 쌍둥이 빌딩인 ‘신영 빌딩’의 우측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다. 구도심이긴 하지만 강릉 시내 어디에 있건 10분이면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 도착할 수 있다. 위치는 이곳의 이름이 신영극장이었을 때와 동일한데, 1990년 신영극장이 폭설로 무너져서 이듬해 다시 건물을 지을 때 같은 위치에 지었다. 신영극장 시절부터 강릉 사람들은 ‘신영극장 앞에서 보자’라는 약속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극장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 이름이 오랫동안 ‘신영극장’이라서 극장에 한 번도 오지 않은 강릉 사람이 있다고 해도 버스 정류장 이름은 모두 알 정도이다. 강릉역 KTX가 개통되어 강릉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나면서 특히 서울에서 온, 영화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신영극장을 찾는 경우도 많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6)에서 김민희 가 혼자 영화를 보는 극장이 바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인데, 사람들은 강릉 바다를 보러 가거나 커피를 마시러 가기 전에 순례 코스처럼 이곳에 들르곤 한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로비 전경 건물 내부를 살펴보자면, 4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올라갈 수 있어서 장애인 접근성이 좋은 편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라운지가 나오는데, 정면에 필름 영사기가 크게 보인다. 영사기 너머로 테이블과 소파 의자 등이 놓여 있다. 라운지 안에는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대기 공간과 매표소가 있다. 기다리는 동안 자료를 둘러보고 차와 커피, 음료는 물론 팝콘을 구매할 수 있다. 한쪽 벽에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홍보물들은 물론 이전 상영작들의 포스터들이 붙어 있어서 작은 영화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또, 대여할 수 있는 블루레이와 DVD도 진열되어 있고 음료는 물론 팝콘도 구매할 수 있다. 한쪽 벽에 흰 타일로 재개관 당시 극장의 보증금을 후원한 사람들과 기관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전 신영극장일 때의 좌석 배치도와 관람자 준수사항이 적힌 오래된 액자도 걸려 있다. 우여곡절의 역사 신영극장은 강릉의 네 번째 극장으로 1965년 11월 1일, 극장주 최종승 씨에 의해 문을 열었다. 당시 810개의 좌석을 가진 극장으로 강릉의 다른 극장보다 규모가 꽤 커서 학교 학예발표회나 지역의 공무원 교육장으로도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1990년 강릉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을 때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하고 지붕이 무너졌는데 다음 해인 1991년 9월 6일 최종승 씨는 무너진 신영극장 자리에 새로 쌍둥이 건물을 올린 뒤 신영 1, 2관을 오픈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2005년 최종승 씨 사망 이후 직원들이 극장 경영을 유지하다 2007년부터 아들인 최상순 대표가 인수해 운영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강릉 지역의 영화관람 가능 인구와 관람객이 감소한데다 멀티플렉스의 위세에 밀려 2007년 7월 2관을 폐관하고, 2009년 2월 4일 마지막 상영을 하며 1관마저 폐관하게 되었다. 상영관 내부 이후, 강릉의 시민모임이자 영화 단체인 ‘강릉씨네마떼끄’가 기금 모금과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 선정으로 구 신영극장의 2관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을 다시 열게 되면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재탄생했다. 강릉씨네마떼끄는 극장 좌석마다 시민들의 후원금을 받아 이름을 새겨주는 ‘나는 주인이다’ 프로젝트로 보증금을 마련해 지역 최초 민간 비영리 극장으로 2012년 5월 18일 문을 열었다. 신영극장 2관에서 ‘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개관한 이후 현재까지 강릉의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이자 단관 극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운영은 강릉 지역 유일의 영화단체 ‘강릉씨네마떼끄’가 지속하고 있다. 강릉씨네마떼끄는 1996년에 창립된 영화단체로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운영과 함께 매년 8월에 열리는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후 재정적인 이유로 2016년 3월 1일부터 1년여 간 임시휴관을 한 뒤 강릉시의 안정적인 지원 약속을 바탕으로 다음 해인 2017년 3월 24일 재개관했다. 당시 강릉시는 “독립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을 확보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라며 5천만 원 지원을 결정했다. 이는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전국 최초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 직접 지원한 사례이다. 재개관과 동시에 내부를 리뉴얼을 했는데, 기존 200석에서 111석으로 좌석을 변경했다. 이후 2022년 2월 10일에는 전 좌석을 가죽 시트로 변경하고 4K 레이저 영사기를 도입했다. 그러나 2023년 다시 폐관 위기에 놓이는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지원하는 강릉시와 강원도의 보조금이 2023년 들어 전액 삭감되면서 심각한 운영난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이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극장을 이어가기 위해 2월부터 3월까지 2개월간 후원 캠페인을 벌여 4천만 원의 후원금을 달성하였고 지자체로부터도 추가경정예산을 약속받았다. 로비의 DVD, 블루레이 컬렉션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현재 국내외 다양한 작품을 하루에 5편씩 매일 상영하고 있다. 강릉씨네마떼끄 회원 회비는 월 1만 원 이상으로 회원들에게는 기념 스탬프 발행과 할인 혜택을 주고 있고,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보유하고 있는 DVD, 블루레이도 무료로 대여 가능하다. 비회원은 DVD 2000원, 블루레이 3000원을 내고 대여한다. 지역민들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점이 현재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가장 큰 특성이다. 신영은 버스정류장 이름으로 유적처럼 강릉 주민들에게 남기보다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문화예술공간이자 극장으로 살아남기 위해 꾸준한 행보와 더불어 치열한 고민과 모색을 하는 기로에 있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강원 강릉시 경강로 2100 4층 2. 설립일 : 최초 신영극장은 1965년 11월 1일에 개관 2012년 5월 8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 3. 대표자 : 강릉씨네마떼끄 (비영리 민간극장) 4. 규모 : 상영관 크기 (W*D*H) 11.2 * 18.4 * 5, 62.5평, 주차장 없음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 1개관 111석 (일반좌석 107석, 휠체어 4석) 6. 운영시간 : 평일 12시 오픈, 주말/휴일 10시30분 오픈 (하루 작품 5~6편 상영),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정기휴무일 7. 입장료 : 일반 8,000원, 회원(강릉씨네마떼끄/나는주인이다/시네필) 7,000원, 청소년 7,000원, 초등학생 5,000원, 노인/장애인/미취학아동 4,000원, 조조 6,000원 8. 조직 구성 (5인) 대표(권정삼), 사무처장(프로그래머 겸임, 송은지), 사무국장(운영팀, 김슬기), 홍보팀(자원활동가 2인) 9. 공간 구성 상영관 1관, 매점 1개(매표소와 같은 공간), 휴게실 1개(매표소와 같은 공간으로 의자 20석 비치되어 있음) 필자 : 김문경 사진촬영 : 허 성 취재 및 인터뷰 일자 : 2023년 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