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 감독
- 이영아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최은아, 안승혁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란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 < 휴가 >(2020)의 주인공은 집단정리해고 무효소송을 진행하며 5년째 천막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노조원 재복(이봉하)이다. 해고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갈등이 극적으로 폭발하는 투쟁 현장이나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의 지난한 시간에 집중해 온 것과 달리, <휴가>는 5년을 끌며 진행된 재판에서 결국 패소하고 난 이후의 시간을 담는다. 재복과 함께 노조를 만들고 농성장을 지켜왔던 영석(서광택) 그리고 만용(황정용)은 허망, 좌절, 분노, 원망, 야속, 피로, 무력을 겪는다. 이미 고공투쟁까지 하며 극한의 상황까지 가봤던 이들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법적 절차가 끝난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황망해 한다. 그래서 천막에 모여 앉아 밥을 먹던 그들은 서로를 탓하기 시작한다. 이란희 감독은 무력한 분란의 대화 속에서 오히려 복직투쟁의 노동을 일일이 드러낸다. 노조를 만들고, 전단지를 뿌리고, 연대투쟁을 하고, 여러 결정을 내리기 위해 무수한 회의를 하고, 문서작업을 하고, 고공투쟁을 하고, 재판을 준비하고, 천막을 지키고, 밥을 하는 등 투쟁에는 무수한 노동이 있다. 특히 재복은 앞에 나서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알뜰살뜰한 성격에 맞게 매일 식사를 준비하고 동료들의 건강을 챙기는 등 농성장의 살림을 맡아왔다. 투쟁현장에서의 재복의 돌봄노동은 반복적으로 묘사되던 중년 남성 해고노동자의 전형성을 깨트리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다툰 후에도 여전히 무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셋은 투쟁 5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갖기로 한다. 그들은 ‘휴가의 시간’을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들이 했던 투쟁이 고된 노동이었음을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가 맡아온 고유의 역할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휴가의 시간은 이후의 시간도 이전의 시간도 아니다. 어쨌든 패소로 한 단락이 만들어진 ‘선인가구’ 투쟁의 역사에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옛 것은 죽는데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위기의 시간이고 그렇기에 마침내 사유가 가능한 시간이기도 하다. 투쟁을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접을지, 이어나간다면 무엇을 이루기 위해 투쟁을 하는지, 투쟁에서 그동안 해온 수많은 노고는 무엇을 변화시켰는지, 재복에게 함께 해온 동료들은 어떤 의미인지, 일과 노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들의 생계와 일상은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멈춰놨던 질문들이 틈새의 시간에서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 휴가와 질문은 재복이 최종적으로 농성장을 아예 떠나는 파국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갈등 끝에 복직투쟁을 포기하는 건 ‘현실성’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영화들이 선택해왔던 결말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중요한 요즘 시대에 특별한 동기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재복이 돌아온다는 건, 언뜻 개연성 떨어지는 ‘이상적’이거나 ‘미련한’ 결말처럼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휴가>는 투쟁을 그만둘 충분히 납득 가능한 동기인 가족을 등장시킨다. 농성장을 나와 집으로 향한 재복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딸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5년 동안 부모의 돌봄 없이 스스로 커온 딸들에게 재복의 갑작스러운 돌봄은 어색함을 넘어서 때늦은 간섭과 잔소리가 된다. 이미 두 딸은 가난과 부모 없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특히 자신도 미성년이면서 동생을 돌보는 역할까지 해야 했던 큰 딸 현희(김정연)는 재복에게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재차 다그친다. 재복은 대학에 수시 합격한 큰 딸의 예치금 30만원을 구하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리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재복이 애초부터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며 그가 해온 투쟁의 가치를 무화하고 조롱한다. 재복은 결국 친구 우진이 매니저로 있는 수제가구 공방에서 휴가 기간 동안 일을 하게 된다. 재복은 다시 일을 시작하며 노동의 기쁨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매니저인 우진은 정확한 작업 지시도 없이 재복을 다른 직원인 준영에게 떠맡긴다. 그러나 준영은 매사 심드렁하고 자기 일만 할뿐 재복을 도와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초반에 실수를 하던 재복은 머지않아 일의 감각을 찾게 된다. 그가 꼼꼼하게 나무를 자르고 칠을 하고 사용한 장비들을 정성스럽게 닦아놓는 장면에서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재복은 무엇보다 돈을 벌어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 현희의 예치금을 마련하고 둘째 딸 현빈(이승주)에게는 원하던 패딩점퍼를 선물해준다.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함께 저녁밥도 먹는다. 그러나 재복은 또한 오랜만에 일상을 찾은 일터에서 오늘날의 불안정한 각개전투의 노동현장과 착취를 목격하게 된다. 재복이 공방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원래 일하던 이주 노동자가 비자 때문에 한국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재복의 사수인 20대 초반의 준영(김아석)은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준영은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밥 먹고, 아파도 혼자서 견딘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누구의 도움을 받아본 적 없는 준영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이처럼 보인다. 준영은, 타인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싶지 않듯이 자신도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생존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재복은 매번 준영에게 ‘도와줄까?’ ‘점심 먹으러 가냐?’고 묻지만 그는 괜찮다고 말하거나 그의 말을 아예 차단한다. 준영이 하루 종일 끼고 있는 무선 이어폰은 생존하기 위해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혼자’를 선택한 이의 장치다. ‘혼자’의 고립된 삶은 그가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가고 살아남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인 방법일 뿐이다. 재복은 먼저 살아본 어른으로서, 그리고 복직투쟁을 겪은 노동자 선배로서 함께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 도시락을 싸와서 밥을 같이 먹고 나무 널판지가 떨어져 준영이 부상을 입자 떨어트린 휴대폰을 집까지 가져다주고 저녁을 같이 먹고 냉장고를 채워주고 보일러를 고쳐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산재신청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재복이 준영의 산재신청을 도와주고 친구인 우진에게도 산재신청을 해주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노조를 만들고 복직투쟁을 하면서 노동자로서 성장해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투쟁은 그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될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기존의 권력관계를 바꿔보려 하거나 승패 이외의 가치를 경험해 본적이 없는 준영은 일을 하다 다치게 된 것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린다. 심지어는 매니저인 우진이 차로 병원을 데려다주고 다리가 다 낳으면 직장으로 돌아오라고 한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한 일이라고 말한다. 재복은 “맨날 당하고만 살 거냐”고 재차 말하지만 준영은 “아저씨, 저 그런 거 안 해요”라고 말한다. 준영에게 ‘그런 거’는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일을 하는, 손해 보는 짓이다. 재복은 ‘휴가’의 시간에 복직투쟁을 통해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일상, 즉 일터로 돌아오지만, 그는 거꾸로 일상에서 노동착취와 투쟁의 현장을 목격한다. 영화는 2층에 있는 공방 창문에서 건너편 1층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준영을 내려다보는 재복을 보여준다. ‘어디 가냐?’는 재복의 말에 대답도 없이 나가던 준영이 겨우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장면은 이후 다시 동일한 시점으로 반복된다. 준영이 다치고 현장실습을 나온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 민재(박재형) 역시 준영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혼자 슬쩍 나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는다. 카메라는 재복의 시점으로 준영을 바라보던 것과 마찬가지 각도로 그런 민재를 2층 창문에서 바라본다. 무선 이어폰과 편의점 컵라면으로 압축되는 젊은 세대의 노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복의 큰 딸 현희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복직투쟁을 하는 노동자로서 당사자인 재복은 휴가를 통해 일상에서 오늘날의 노동현장을 목격한다. 재복은 휴가를 통해 일상과 투쟁현장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는 또한 농성장에서 하던 돌봄 노동을 일상에서 반복한다. 자신의 집과 준영의 집 모두에서 냉장고를 청소하고, 음식물을 채우고, 반찬을 하고, 밥을 차려 같이 나눠 먹는다. 투쟁은 한편으로 주위를 살피는 목격이고 돌봄이다. 그의 일상은 투쟁의 노동으로 채워진다. 재복은 휴가 기간 동안 만용의 전화를 받지 않으며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우진의 취직 제안을 물리치고 농성장으로 돌아간다. 열흘의 휴가가 끝난 후 그는 갖가지 반찬을 해서 반은 딸들을 위한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반은 농성장에 들고 갈 가방에 싼다. 영화는 재복이 집의 문을 닫고 나가 농성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정성들여 보여준다. 준영은 재복의 설득에 회사에서 치료비를 받게 되었지만, 재복이 민재까지 돌볼 수는 없다. 재복은 대신 자신의 농성장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투쟁은 다른 노동현장의 투쟁으로 이어져 있다. 재복은 자신만 잘 살기보다는 함께 잘 살기를 선택한다. 그 길은 어둡고 불안할 수 있지만 그는 돌봐야할 동료가 있다. 그의 농성장에도 그가 목격해야 할 이들이 있다. 재복은 농성장에 걸린 투쟁기간을 알리는 표지판 ‘1893일째’에서 3을 4로 바꿔 놓으며 투쟁의 일상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고공투쟁에 들어간 영석에게 그가 좋아하는 소시지 볶음과 반찬을 올려 보낸다. 위를 올려다보는 재복의 시점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던 아이들을 내려다보던 시점과 중첩된다. 영화는 묵묵하고 담담하게 재복의 목격과 성찰의 시간을 지켜보고, 그가 돌아오는 길, 즉 함께 살기를 선택하는 그 길이 오히려 현실이고 사실성에 근거한 것이라 말하며, 해고노동자의 존엄과 품위를 보여준다. 재복은 그렇게 농성장에 돌아와 ‘휴가’라는 시간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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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여성 서사일 것이다. 어쩌면 애초에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남성 서사에 경도되어 영화를 하리라 마음먹었을지 모르는 나조차 이런 생각을 마땅히 한다. 지금 여성 서사는 우리가 마주한 시대정신이다. 2000년대 이른바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도래하기 이전의 옛날 옛적 20세기에,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 방화(邦畫)를 주로 지배한 장르는 ‘에로’였다. 90년대만 해도 나는 한국 영화란 아무 맥락 없이 여자 옷이나 벗기려고 애쓰는 덧없는 이야기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 한국형 착취 장르의 기원에는 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있었고, 그 대중적 효시가 된 한 작품을 오랫동안 원흉으로 생각했다. 나의 이런 편견과 오해가 깨진 것은 미니홈피가 아직 유행하던 시절의 어느 날 밤 EBS에서였다. 영화란 직접 보기 전에 규정하고 떠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 70년대의 밤, 아기 업은 엄마를 조용히 뒤따르는 아이의 뒷모습과 연탄 쌓인 여인숙 골목길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김밥을 파는 행상의 구성진 목소리가 주술같이 들리고, 봉고를 두들기는 재즈 퍼커션 사운드트랙이 깔리면, 어느 여인이 골목에 숨어있다 갑자기 나타나 허연 눈과 이빨과 손톱을 번뜩이며 귀신처럼 화면에 달려든다. 그리곤 경찰들이 어둔 골목의 여성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끌고 간다. 윤락행위 단속에 걸려 속옷 차림으로 팔다리를 바동거리는 여인들 중에 우리의 주인공이 있다. 볏짚 거적 뒤에 숨었다가 들켜선 “난 잘못한 게 없다”는 그녀에게 경찰은 외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숨어?” 새빨간 비닐 재킷을 입고 경찰을 향해 관객을 향해 세상을 향해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손을 뻗는 그녀의 얼굴 위로 주인공의 이름을 담은 빨간색 제목이 뜬다. ‘이젠 그만 가야지, 이젠 정말 가야지, 날이 새기 전에, 미련 없이, 돌아보지 말고 가야지’ 하는 노래와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흘러가는 이 영화가 바로 < 영자의 전성시대 >( 김호선 , 1975)다. 영자, 영자, 영자.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이름이 한동안 가슴에 사무친다. 월남 파병을 갔다 온 청년 창수( 송재호 )는 간밤의 일제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 갇힌 영자( 염복순 )와 3년 만에 재회한다. 창수는 친오빠인 척 영자를 철창에서 꺼내주고, 영자는 창수에게 혀를 메롱 내밀며 살짝 깨무는 시그니처 표정을 지어준다. 헤어지기 전에 창수는 철공소 노동자 막내였고, 영자는 사장 집에 갓 상경한 어린 식모였다. 현재 시점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둘의 과거 속, 순진무구했던 영자는 비록 식모살이 처지라도 자존감과 자기 주관이 뚜렷한 소녀였다. 반말로 “넌 뭐니? 이름은 뭐니? 고향이 어디니?” 짹짹 물어대는 창수에게 영자는 “서울사람들은 아무한테나 반말하나요?” 하고 받아친다. 창수가 먼저 자기 이름을 밝히고 “나도 시골 놈이야” 고백하고 나서야 영자는 창수 얼굴에 고추장이나 묻혀주며 약간 마음을 연다. 영자가 좋아진 창수는 매번 자기만 꿍해서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묻지만 영자는 창수가 그냥 귀찮다. 입대를 앞두고 3년만 기다려 달라고 매달리며 낑낑 우는 창수에게 영자는 “나는 서울에 돈 벌려 왔지 연애하러 온 게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이도저도 안되면 억지로라도 안아보겠다고 달려드는 창수지만 적어도 영자가 싫다고 하면 곧바로 멈출 줄은 알았다. 그러나 피고용인 여자애가 NO라고 한들 멈출 줄도 모르고 멈출 필요도 없는 사장 아들이 영자를 겁탈하고, 이 일로 되레 영자만 쫓겨나면서 영자의 팔자는 기구한 쪽으로 향한다. 영자의 꿈은 돈을 버는 것, “기술을 배워서 평생 혼자 사는 것”이었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엄혹한 시대에 자신만의 기술을 가지려던 영자의 꿈은 이미 진취적이고 주체적이었다. 문제는 기술을 배우려면 우선 돈이 들고, 아직 세상은 기술을 갖고자 하는 여성의 의지를 비하할 뿐이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아는 언니조차 “여자가 기술 가져봐야 팔자만 드셀 뿐, 그저 제일 좋은 기술은 그럴듯한 놈팡이 하나 골라잡는 것”이라며 영자의 꿈을 무시한다. 봉제공장 일용직으로 밤새도록 미싱을 돌리며 매일이 고단한 영자는 언니가 집에 남자를 데려오는 날이면 근처 여인숙에 가서 몇 푼을 내고 주인아주머니네 방구석에서 쪽잠을 자야한다. 온종일 재봉틀을 돌려 번 월급은 외상값을 제하고 나자 동전 몇 푼만 달랑 남는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는 황당하리만큼 적었지만, 이때만 해도 영자는 절망하기보단 깔깔 웃었다. 택시를 모는 여성 기사를 보고 운전을 배우리라 마음먹은 영자는 언니를 따라 홀에 나가지만 곧 그만둔다. 언니 말대로 아무리 “돈이 문제”라지만, 아버지뻘 남자들이 추근거리면서 운전 공부를 한다고 하니 집에 가서 밥이나 지으라고 비웃는 곳에 있기 싫다. 그래서 영자는 버스 안내양이 되지만, 매일 콩나물시루 같이 승객들을 미어터지도록 태운 버스에 위태롭게 매달리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왼팔을 잃고 만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잊히질 않는다. 그녀의 팔은 말 그대로 슝―하고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70년대 일본의 ‘도에이 핑키 바이올런스’ 영화 따위나 찾아보며 낄낄거렸던 나는 이 한국영화의 표현주의 앞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영자의 전성시대>의 이 씬보다 더 잔인무도한 신체 절단 장면을 알지 못한다. 기술을 배우려던 젊은 여자에게 세상은 팔을 앗아간 값으로 달랑 30만원 보상금을 내어주며 “너무 비관 말고 용기 있게 살아가라”는 헛소리나 지껄인다. “고맙습니다” 말하고 돌아서는 그녀에게 언니는 이 돈으로 미장원을 차리자고 바람을 넣지만 영자는 그 돈을 모두 고향의 늙은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보낸다. 자살 시도에 어이없이 실패하고 돌아와서, 없는 팔이 쑤시고 아파 약을 소주에 타 마시는 영자. 그녀가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온 최소한의 자존과 존엄을 내려놓는 때는, 고통과 슬픔에 지친 나머지 그가 누구든 사람 품에 따뜻하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다. 여인숙 주인의 은밀한 제안에 결국 응한 영자는 이 가난하고 더러운 골목에서 ‘밀로의 비너스’로 거듭난다. 도시괴담에 나오던 팔 없는 매춘부. 그녀가 바로 영자였다. 전역 후 목욕탕 보일러실 구석에서 숙식하며 세신사로 일하는 창수는 다시 만난 영자를 이렇게 내버려둘 수 없다. 김씨 아저씨(최불암)는 네 장래나 걱정하라지만, 창수는 영자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영자의 성병 치료비를 내고 병이 나을 때까지 손님을 안 받고 술도 못 마시도록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그녀를 찾는다. 영자 말대로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이다. 김씨 아저씨의 군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창수는 영자와 같이 살 생각이다. 살림 차릴 최소한의 조건인 전세방 구할 돈은 아직 없지만 창수는 손수 의수를 만들어 영자의 빈 팔에 달아준다. 한쪽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숭고하지만, 받는 쪽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의리 때문이라도 이 사랑을 마냥 받기만 할 순 없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관계도 있지만, 하나 빼기 하나가 0이 되는 관계도 있다”는 김씨 아저씨의 말에 영자는 “마이너스 1”이 아니라 “보태기 1”이 되겠다고 나름대로 발버둥 친다. “두 사람 간신히 같이 끓여먹고 잠 잘 수 있는 방”만이라도 창수 손을 안 빌리고 자기 힘으로 마련하고 싶다. 영자에게 팔 병신 운운하는 녀석에게 주먹을 날린 창수가 구치소에 갇히고,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나기로 한 날. 꼭 오겠다고 한 영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창수도 영자가 왜 안 나타나는지 알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 둘이 다시 헤어지기 전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 있다. 창수가 한밤중 문 열기 전의 목욕탕에 몰래 영자를 불러 씻기고 때를 밀어주는 장면이다. 창수는 “이 때 좀 봐” 하며 영자의 등을 밀고, 창수에게 몸을 내맡긴 영자는 새삼스레 ‘창피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항상 당당하고 창피한 건 없었던 영자는 창수를 만난 이후 이상하게 모든 게 걸핏하면 창피하다. 창수는 영자에게 또 묻는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영자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답하고, 창수는 바라는 대답이 아니라 조금 실망한다. 나는 이 장면을 다시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어떤 예의를 발견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저 내가 욕망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깨닫는 순간이 있다. 내 옆에서 고단한 숨을 내뱉으며 자는 이 사람이 여자나 남자 따위가 아니라 이 세계를 역시 힘겹게 살아가는 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깨닫는 순간이다. 그이와 내가 잠시나마 서로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기적인가. 조선작의 원작 소설에서 영자는 불에 타죽지만, 김승옥이 각색한 시나리오는 영자를 위한 영화 나름의 다른 결말을 마련했다. 비록 그 시절의 한계가 있는 결말이지만 영화적 진실로서 더할 나위가 없고, 나는 영화가 끝날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내가 이 작품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누군가를 향해 마냥 영화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뿐이지만, 결말만큼은 쓰지 않겠다.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맞잡고 하고픈 말들은 너무 많아요’ 마지막 삽입곡의 이 가사처럼, 어떤 이야기는 말이나 글로 전하기엔 한계가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인간을, 여성을 착취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여성 주인공을 통해 자본주의가 파괴하고 소외시킨 인간성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후 이 작품의 대중적 성공을 따라 복제, 재생산하며 유행하기 시작한 호스티스 영화들은 에로 장르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도중에 인간과 여성에 대한 예의를 대놓고 빼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 장르의 영화 속에서도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몇몇 작품들이 오늘날 따로 불리어지기를 바란다. 여성 서사의 기준과 범위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이 적극적으로 포용될 수 있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영자 역할을 한 염복순 배우의 얼굴이 개인적으로 현대 여성의 외모처럼 느껴져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새롭다. 그의 얼굴은 (우리가 백치미라고 왜곡하는) 죄가 없는 순백의 표정에서 세상을 향한 환멸까지 변화무쌍하지만, 내내 자신만의 고고함을 잃지 않는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영자의 전성시대>는 한 시대의 중요한 작품으로 한국 영화에 남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영화 속 여성 서사의 역사에 ‘영자’의 이름이 오래 남아 빛나길 바란다. 그리고 2020년대에는 새로운 여성 화자(들)의 진정한 ‘전성시대’가 도래하길. >> 영자의 전성시대 VOD 보러가기 <<
1980년대 충무로의 가장 독특한 발명품이라면 아동용 SF 액션 영화일 것이다. ‘연소자’ 관객층을 위한 영화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1970년대 < 로보트 태권 V >( 김청기 , 1976)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로봇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에도 꾸준히 제작되었고, < 하늘나라 엄마 별이 >( 이영우 , 1981)나 < 저 하늘에도 슬픔이 >( 김수용 , 1984) 같은 신파 가족 영화도 명맥을 이었다. 이때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김청기, 1986)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시작된 아동용 SF 액션 장르 영화들은, 사실 수많은 요소들의 기묘한 혼합이었다. 일단 애니메이션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당대의 아동용 SF는 장르적 시도이었을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SF 액션을 만들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채운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에 일본 특촬물의 콘셉트를 결합시킨 것일까. 후자 쪽에 좀 더 기울긴 하지만, 아무튼 그 결과물은 실사 촬영과 조잡한 그래픽, 애니메이션과 초보적인 미니어처 촬영과 심하게 티 나는 합성 장면이 뒤엉킨, 가히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1. 하늘을 나는 에스퍼맨. 한국영화의 대표적 슈퍼히어로다. 2. 우뢰매 로봇의 위용. 3. 박사 캐릭터는 < 우뢰매 > 시리즈를 비롯 이 장르의 빠지지 않는 캐릭터다. 엄용수는 <우뢰매> 시리즈와 < 흑성마왕과 슈퍼왕자 >( 박옥상 , 1987)에 박사로 등장한다. 참고로 그는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4. < 우뢰매 > 시리즈의 보미는 당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던 ‘국민 누나’였다. 걸 그룹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의 멤버인 우윤아 가 역할을 맡았다. 내러티브 부분엔 < E.T .>(스티븐 스필버그, 1982)의 개봉과 TV 시리즈 <브이>(1985) 방영 이후 불기 시작한 ‘외계인 열풍’이 가세했다. 1980년대는 UFO나 외계인이 비로소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한 시기인데, 아동용 SF는 그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7~8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한국형 SF는 죄다 외계인이 등장했다. 스토리 라인 역시 천편일률적이었는데,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은하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 2-1. 그들은 지구의 그 무엇을 가져가려고 온 침략자이다. 2-2. 그들은 사정이 있어 지구에 불시착한 망명객이다. 이때 외계의 악당들이 따라온다. 3. 지구의 슈퍼히어로가 외계의 악당을 제압한다. 4. 괴짜 과학자와 용감한 아이들이 가세한다. 2-2의 경우, 외계인과 아이들 사이엔 우정이 싹튼다. 5-1.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지구를 지켰다. 5-2. 지구를 지켰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의 슬픈 이별이 이어진다. 이외에도 다양한 영향력이 있었다. SF라곤 하지만 히어로와 악당의 대결 콘셉트는 무협 영화에서 왔다. 그들은 외계가 아니라 마치 소림사에서 온 듯했고, 각종 권법을 구사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생경한 광경이었다. 여기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결합되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심형래의 영향이었다. 당시 설문조사를 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동급이었던 심형래 의 인기는, < 우뢰매 > 시리즈 탄생의 중요한 토대였다. 그의 장기는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는 몸 개그. 심형태의 성공 이후, ‘뽀식이’ 이용식 , ‘밥풀떼기’ 김정식 , ‘공포의 삼겹살’ 김형곤 , ‘맹구’ 이창훈 그리고 ‘호랑나비’ 김흥국까지, 아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연예인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개그맨이 조연과 악당으로 활약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완구 업체였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시리즈의 뽀빠이 과학, < 은하에서 온 별똥 동자 > 시리즈의 건양 과학 교재사, < 스파크맨 >( 김경식 , 1988)의 삼성 교재 완구사, < 우주의 용사 반달 가면 >( 임정호 , 1991)의 정일 과학 등 제작비는 영화를 통해 완구 판매를 노리는 업체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이런 물적 토대는 이 영화들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 일설에 의하면, 장난감을 만드는 금형을 일본에서 들여왔기에 ‘어쩔 수 없이’ 영화 캐릭터도 일본 것을 베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우뢰매부터 시작해 수많은 로봇과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표절 시비에 시달렸던 건 그런 이유인데, 아무튼 완구 업체의 전략은 적중했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 영화와 장난감이 결합된,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적 부가 시장 탄생이었던 셈이다. < 우뢰매 > 시리즈가 나왔던 1986~93년 동안 등장했던 아동용 프랜차이즈들. SF 이외의 장르도 포함시켰다. 당시 이 프랜차이즈들은 1년에 두 편씩(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내놓기도 했다. 1. 영원한 ‘데일리’ 천은경. <우뢰매> 시리즈 1, 3, 4, 8편에 출연했다. 2. 5편의 ‘데일리’였던 이혜진 . 3. 1987년 3편에 외계인 ‘삐용’으로 등장한 강리나 . 이후 그녀는 섹시 스타로 부상한다. 당시 천은경 , 이혜진 , 강리나를 비롯 <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3 >( 석도원 , 1988)의 우연희 , < 바이오맨 >의 신미아 , <우뢰매> 6편의 데일리였던 김종아 등은 성인용 영화와 아동용 영화를 겸업했다. 석도원, 방순덕 , 조명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4. <우뢰매> 시리즈 최고의 파격 캐스팅이었던 7편 < 돌아온 우뢰매 >( 임종호 , 1992)의 이봉걸 . ‘인간 기중기’였던 씨름 선수 이봉걸은 외계인 ‘마주기’로 등장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일단 1986년 <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의 시작이다. 1980~85년에 약 30편 정도 장편 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을 했는데, <외계에서 온 우뢰매>가 등장하면서 아동 영화 시장은 실사 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1986~89년에 애니메이션은 대여섯 편에 불과했다). 공식 기록은 서울 개봉관 관객 5,527명이지만, 이 영화는 ‘상영이 가능한’ 전국 각지의 수많은 공간에서 공개된, 풍문에 의하면 100만 명 이상이 보았다는 영화였다. 이처럼 1980년대 아동용 SF는 기록 이상의 위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10세 이하 어린이 시장에선 절대적인 콘텐츠였다. 그 힘은 비디오 대여점 시장까지 이어졌는데 1990년 전후 시기엔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은 OVA 마켓이 형성된다. 여기서 <반달가면> 시리즈는 흥미로운 사례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가지만, < 반달가면 >은 역주행을 했던 것. 1~2편인 <전설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0)과 <신비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1)은 비디오 영화였지만, 3편인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임종호, 1991)은 극장용으로 제작되었다(이후 다시 비디오로 돌아가 6편까지 제작되었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가 포문을 열자 봇물이 터졌고, 한국영화는 비로소 장르 프랜차이즈의 시대가 열렸다. 어른들을 위해 < 애마부인 >과 < 산딸기 > 시리즈가 있었다면, 아이들을 위해선 <우뢰매>와 <영구> 시리즈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심형래 는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조상이 되는데, <우뢰매> 시리즈를 비롯 SF 장르를 벗어난 < 슈퍼 홍길동 >과 < 영구와 땡칠이 > 시리즈가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제작자 겸 감독이 된 그는, 이후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수많은 구설에 오르는 영욕의 세월을 보내지만, 1980년대로 한정할 때 한국영화에서 ‘심형래’라는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부실한 퀄리티로 ‘애들 코 묻은 돈’을 가져간다는 비난이 따라다녔지만, 이건 철저히 어른의 시각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당대 ‘심형래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였다. 1. <별똥왕자> 시리즈의 이건주 .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의 아역들은 아동용 SF 액션의 단골 배우였는데 ‘순돌이’ 이건주를 비롯, 최정화 송정림 이종민 등이 있다. 2. <우뢰매> 6편에 오면 파워 슈트가 등장한다. 3. 당시로선 ‘고퀄’이었던 < 스파크맨 >. 여기서 심형래 는 슈퍼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고뇌하는, <우뢰매> 시리즈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4. 1990년대를 대표한 <반달가면> 프랜차이즈. < 영구와 땡칠이 >( 남기남 , 1989)는 그 절정이었다. 당시 상영관은 < 록키 호러 픽쳐 쇼 >(짐 셔먼, 1975)을 방불케 하는 컬트의 용광로였다. 영구의 부름에 아이들은 마치 그를 대면하는 듯 “예~~!”라고 대답했고, “영구~ 없다!”라는 대사 한 마디에 자지러졌으며, ‘소쩍꿍’ 장면엔 좌석에서 일어나 영구의 동작을 따라 했다. <영구와 땡칠이>의 공식 시리즈는 4편까지 이어졌지만, 이후 수많은 ‘ 심형래 시리즈’가 비디오 영화로 이어졌다. 엔터테이너 심형래, 그는 장르의 섭렵자였고 캐릭터의 만물상이었다. 포졸, 흑기사, 각시탈, 괴도 루팡, 탐정, 도사, 007, 돈키호테, 대부, 헐크, 황비홍, 할매… 흥행 트렌드에 맞춰 1년에 네다섯 편씩 쏟아지는 그의 영화들은 ‘질’과 상관없이 ‘양’으로 아이들을 공격하는 융단 폭격기였다. 다시 SF 장르에 집중해 보자. 사실 당대의 영화들은 한계투성이였다. 가장 심각한 건 윤리적인 부분이었다. 그 시절 아동 영화엔 아동에 대한 배려가 심하게 부족했다. 유해 요소로 가득 한 불량식품?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일찍 성에 눈뜬 아이들을 위한 숨겨진 배려였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보기 민망한 노출 장면도 심심찮았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1986)에서 데일리(송금란)는 “에스퍼맨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요”라는 위험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시각적 표현은 과잉되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 타입의 의상은 거의 유니폼이었다. 악당의 경우 한껏 부풀린 퍼머 머리에 진한 눈 화장이 필수였고, 액션을 수행함에도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섹시한 느낌의 여배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1980년대의 ‘시대 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이 아동 영화 장르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섹슈얼한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반달가면> 시리즈는 범죄 요소가 너무 강했고 폭력의 수위도 높았다. 언어적인 면도 심각했다. 각종 유행어가 난무한 건 개그맨들이 주로 출연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병신 같은 것들!” 같은 욕설에 가까운 대사를 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술 마시는 장면도 간혹 있었고 흡연도 자유로웠다. < 텔레파시 여행 >( 왕호 , 1991)의 좀비들은 모여서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1. <우뢰매> 2편엔 보미의 노출 장면이 있다. 아동용 영화로선 파격적이다. 2. < 드래곤볼 >에서 부르마( 이주희 )의 샤워 장면을 엿보는 손오공(허성태). 전형적인 에로 영화의 앵글이다. 3. < 마카리안 고 >의 외계인 악당. 강렬한 메이크업과 풍성한 퍼머 헤어스타일은 클리셰였다. 4. < 외계인 코브라 >( 김병기 , 1988)에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당시 인기 개그맨 황기순 과 이원승 . 외계인들은 대부분 파충류로 설정되어 있는데, 황기순은 새를 먹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9)엔 쥐를 먹는 장면도 있다. 은근히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이라는 국가 대사가 이어지는 시기였기에? 실제로 여러 영화에 호돌이가 등장했고, 올림픽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며, 많은 아역 캐릭터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 마카리안 고 >( 김완기 , 1987)는 ‘독도’를 중심 배경으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건 1987년에 1~2편, 1988년에 3편이 나온 <별똥왕자> 시리즈였다. 명성왕국에서 지구로 피신 온 별똥 왕자( 이건주 )와 지구 어린이들 사이의 우정이 중심인데, 1편엔 대표적인 ‘국뽕’ 가요인 ‘아, 대한민국’이 흐르고 3S 정책의 대표적 이벤트인 프로야구가 등장한다. 2편은 석도원 감독의 당부를 담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어른께 공경하고 도덕을 존중하는, 착하고 아름다운” 어린이가 되자고 약속하자는 내용. 그리고 영화엔 이런 장면이 있다. 아이들과 어른 사이의 대화다. 어른: 그 사람들은 우주인이야. 아이들: 우주인이요? 어른: 우주인 중에서도 아주 나쁜 우주인이야. 아이들: 그럼 북괴 공산당 같은 나쁜 놈들이군요? 어른: 응. 맞았어. 아이1: 그럼 우주 공산당이구나! 아이2: 우주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자유와 평화를 없애려는 나쁜 놈들, 공산당은 나빠요. 아이3: 공산당은 싫어요!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수많은 아이들을 ‘이승복 어린이’로 만들어 버리는 이 대목은 1980년대 아동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단서를 준다. 반공 영화와 국책 영화가 사실상 사라진 1980년대 중반, 뚜렷한 이분법으로 ‘우리 편’과 ‘적’을 나누는 한국영화 장르는 SF 액션이 거의 유일했다. 물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 사이의 우정도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시기 아동용 영화의 세계관은 이전의 이념적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온 외계의 악당은, 남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 세력과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건 크로스오버 현상이었다. < 외계인과 콩콩 강시 >( 안승호 , 1989)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강시 영화를 접목시켰고, 인기 만화를 각색한 < 드래곤볼 >( 왕룡 , 1990)도 등장했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8)은 당시 < 돌아이 > 시리즈로 인기를 끌던 전영록 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역시 당대 청춘스타로 부상하던 박중훈 은, ‘전체 관람가’라곤 하나 사실 성인용 콘셉트가 만만치 않았던 < 바이오맨 >(조명화, 김청기 , 1989)에서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 로보캅 >(폴 버호멘, 1987)의 영향을 받은 듯한 캐릭터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하이브리드의 성격이 강했던 당시의 SF 액션은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이며 영토를 확장했다. 1. < 외계 번개용 >의 전영록 . < 돌아이 > 시리즈 캐릭터의 연장이다. 2. < 바이오맨 >의 박중훈 . 이 영화는 다소 성인용에 가깝다. 3. <우뢰매> 1편에 나오는 이재은 . 이외에도 안연홍 김민정 그리고 이병헌 의 동생인 이은희 등이 아역 시절 이 장르에 등장했다. 4. < 스파크맨 >의 오로라 공주 김진경 . 당시 CF 모델이었던 그녀는 수많은 남자 아동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이 장르는 1980년대 후반에 짧은 화양연화를 보낸 후 1990년대 초가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공룡의 몰락과도 같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자본 구조에서 오는 완성도의 미흡함일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초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 이른바 ‘<우뢰매> 류’ 영화들은 새 자본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르 내부에 있었다. 진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토대가 워낙 취약하다 보니 그 속도가 더뎠다. 초반엔 아예 애니메이션 장면과 실사 장면을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어설프지만 합성이 시도되었고, 미니어처 촬영도 있었다. 정도안(특수효과)이나 신재호(특수분장) 같은 장인들도 이 시기 경력을 시작하며 열악한 상황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 스파크맨 >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의상과 소품과 특수효과 등은 당대의 ‘고퀄’이었다. 그럼에도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은 로케이션과 미술이었다. 이 시기 SF 액션은 그냥 주택가에서 찍었다. 액션이 벌어지는 우주선 내부는, 얼핏 봐도 아파트 보일러실 같은 곳이었고, 마분지나 은박지로 배경을 처리한 듯 보이는 후줄근한 비주얼이었다.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 임종호 , 1991)에서 외계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나이트클럽에서 촬영될 정도였다. 양적 팽창만큼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던 1980년대산 아동용 SF 액션 영화들은 1990년대를 견디지 못했다. 특히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캐머런, 1991)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등이 컴퓨터그래픽의 경이로운 스펙터클을 선보이며 관객의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렸다. 1. < 우뢰매 > 4편에서 에스퍼맨과 형래는 동네 제과점에서 만나 빵을 먹는다. 일상적 설정이라고는 하나… 조금 심했다.. 2.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에선 나이트클럽이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화면 위쪽에 사이키 조명이 보인다. 3. < 우뢰매 > 4편의 미니어쳐. 아동용 SF 장르는 나름의 기술 발전을 이루려 했다. 4. <우뢰매>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엔딩. “안녕”이라는 자막은 이후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애용되었다. 1980년대엔 여러 장르적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단명했다. 사회적 변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의 격변, 장르 내부의 모순, 외부적 영향 등 그 이유는 다양했고, SF 액션의 소멸은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장르를 기억해야 한다면, 당시 가장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지녔던 영화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정의의 사도 에스퍼맨은 우뢰매와 함께 우리를 지켜준다.” 이 믿음직한 한 마디는, 현재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대의 관객들 귓가엔 여전히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