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나누크
- 감독
- 로버트 플래허티
- 제작년도
- 1922
- 출연
- 알라카리알락, 닐라
영화사에서 첫 번째 다큐멘터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1895년 12월 28일에 상영된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의 10편의 영화이다. 그런 다음 영화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영화라는 장비를 손에 넣은 많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à la lettre)’ 영화 제작자들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사건, 인물, 풍경, 하여튼 각자의 호기심이 닿는 곳을 향해서 닥치는 대로 찍기 시작했다. 낯선 식민지를 찾아 나선 제국주의 시대의 탐험대에는 그들의 모험을 기록하는 촬영팀이 동반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도시가 모습을 갖추면서 일련의 도시교향곡 형식의 실험적인 ‘기록’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1930년대까지 다큐멘터리라는 표현 대신 ‘넌픽션(non fiction)’영화라는 표현을 써서 영화의 하부 장르 중의 하나로 취급되었고, 이 표현은 꽤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 다큐멘터리의 태도를 지니고 찍기 시작한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답은 초기 영화사학자들과 다큐멘터리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소 입장에 따라 다르다. 로버트 플래허티의 < 북극의 나누크 >가 다큐멘터리의 태도를 지닌 첫 번째 영화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첫 번째 이정표가 되었다는 설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사 책에 소개된 것과 달리 <북극의 나누크>는 로버트 플래허티의 첫 번째 북극 에스키모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아무래도 영화 제작 모험담에 관한 과정을 통해 <북극의 나누크>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플래허티는 광산업자인 아버지를 따라 광산 측량기사가 되어 가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1910년, 플래허티가 26살이 되었을 때 허드슨만 철광 탐사를 위해 북극 탐험을 하게 되었다. 네 차례에 걸쳐 북극 탐사를 떠나면서 플래허티는 방문한 장소와 사람을 촬영했다. 이때 처음에는 사진기로 촬영하던 플래허티는 세 번째 탐사를 한 1913년부터 영화 장비로 바꾸게 되었다. 영화 촬영을 위해서 플래허티는 촬영기술을 3주 동안 배웠고, 이것이 그가 배운 영화 제작 교육의 전부였다. 여기서 촬영한 내용을 편집하여 1915년 3월 30일 토론토 대학교에서 시사를 가지기도 하였다. 플래허티는 이 과정에서 광산 측량기사로서의 직업을 버리고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서의 미래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북극을 탐사하는 영화로부터 에스키모의 일상생활에 관한 기록영화로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영화를 제작할 결심을 했다. 프랑스 르비용 형제 상사(商社)에서 투자를 결정했고, 필름과 두 대의 카메라, 조명, 발전기, 여기에 현상과 인화를 위한 장비와 영사기까지 준비해서 1920년 8월 15일 허드슨만에 도착했다. 여기서 주인공으로 삼을 에스키모 ‘나누크’를 만났다. ‘나누크’의 원래 이름은 ‘알라카리아라크’였고, ‘나누크(Nanook)’는 그의 별명인 에스키모어로 ‘북극곰’이라는 뜻이었다. 모두 6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진 <북극의 나누크>에서 플래허티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실제로 북극에서 촬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 앞에 있는 인물들이 배우가 아니라 ‘이누이트(Inuit)’ 북극 에스키모라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주기 위해 자막 설명, 빙산이 떠 있는 북극의 풍경의 장면(long_shot), 광활한 설경, 자연에 던져진 원주민들의 생활을 어떤 드라마의 개입 없이 차례로 보여주면서 영화 안에서 사실성(l’effet de realité)이라는 문제와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로버트 플래허티의 영화 관람에 대한 경험의 깊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북극의 나누크>가 1920년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관점에 따라서 두 번째 시퀀스의 ‘이누이트’ 에스키모와 백인들 사이의 물물 거래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이 장면은 희극적으로 진행되지만 정치 경제학적 약탈의 순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순간은 나누크가 카메라를 마주 보면서 웃는 장면이다. 어쩌면 이 순간의 장면을 보고 고다르는 브레히트를 끌어들여 카메라를 마주 보는 (< 비브르 사 비 >)의 나나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인류학을 공부했던 고다르는 당연히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학교 교육이 아니더라도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실에서 <북극의 나누크>에 열광했던 앙드레 바쟁의 조언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극의 나누크>에서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대목은 여섯 번째 시퀀스의 바다표범 사냥 장면이다. 5분 20초에 이르는 이 씬은 ‘나누크’가 얼음 구멍으로 드리운 낚시를 문 바다표범을 잡아당기면서 그의 동료와 가족을 부르고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줄다리기하는 장면이다. 플래허티는 두 대의 카메라로 찍으면서도 ‘나누크’가 낚시하는 장면을 긴장을 고조시키는 몽타주 편집을 위한 쇼트(close_up)로 교차 편집하며 진행하는 대신 낚시 장면의 사실성을 보존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만큼 물러나서 지켜본다. 이 촬영은 다큐멘터리에서 관찰자의 거리(observer’s distance)를 발명하는 순간이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진 않다. <북극의 나누크>에 대해서 인류학자들은 현지답사(field work)의 관점으로 다시 다가가면서 로버트 플래허티가 영화를 위해 민족지 재현 장면의 많은 부분을 설정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플래허티가 찍은 ‘이누이트’ 에스키모들은 <북극의 나누크>를 촬영했을 때 이미 상당 부분 백인 문명을 받아들였으며, 영화를 위해서 과거 조상들의 방식을 재연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누크’의 아내는 그의 아내가 아니라 플래허티의 현지 에스키모 처가 아내 배역을 연기한 것이었다. <북극의 나누크>는 다큐멘터리의 방법을 발명했지만 동시에 다큐멘터리에서의 재현의 윤리에 대해서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하지만 <북극의 나누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접근의 방법이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12개월간 ‘이누이트’ 에스키모들과 살면서 다큐멘터리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영화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아니, 질문이라고 해도 좋다. 여기서 또 하나의 영화가 시작되었다.
1. 올해 내가 꼽은 열한 편의 리스트를 살펴보니 한국영화가 1편, 아시아 영화 3편, 남미영화 1편, 유럽영화가 6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영화가 많은 반면 북미 영화는 단 한편도 포함되지 않았다. 유럽영화 중에서는 < 아페림! Aferim! > <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 Chuck Norris vs Communism > 등 루마니아 영화가 2편이나 포함되었다. 지극히 사사로운 방식으로 리스트에 올린 3편의 아시아 거장들의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영화의 관계를 해석하고 풀어가는데 유독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깊은 공감을 느낀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거나 친숙하다고 말할 수 없는 무협영화에서조차 그러한 감정을 느꼈으니 거기에는 아마도 단순히 개별 감독과 작품과의 교감을 넘어선 ‘아시아’라는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과 경험치들이 어떤 식으로든 녹아있기 때문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 택시 >는 20년간 일체의 영화촬영과 인터뷰, 해외출국을 금지당한, 말하자면 예술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거장의 영화적 열정과 혼이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영화이다.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무릎을 꺾을 만한 상황에서도 파나히 감독은 쉽사리 성마른 분노와 좌절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라고 왜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내면의 분노를 자신의 나라, 사람들을 향한 깊이를 측량하기 어려운 애정과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사랑하는 자의 분노란 이런 것이라는 것. <택시>를 보면서 이란 당국이 제아무리 거장의 입에 재갈을 채우고 예술혼을 꺾으려 해도 그들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한 경외감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협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장르적 쾌감을 모조리 제거해버린 이 정적이고 불친절한 무협영화에서 관객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활극의 동적인 쾌감이 아니라 주인공 섭은낭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내적 고뇌이다. 4:3 화면은 일찌감치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감을 접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몸속에 쌓여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나게 된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거장의 영화적 고집에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젖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매우 부드럽고 달콤하며 쉬운 영화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에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전작들에서부터 영화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감독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깊이 전이되어 왔던 관객으로서, 한층 경쾌해진 그녀의 이번 고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 자개단추 Pearl Button >는 2010년 작품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Nostalgia for the Light >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전반부를 보면서 구즈만 감독도 늙었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쇠꼬챙이처럼 꼿꼿한 자세로 불의에 맞서고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던 감독들이 나이가 들어 둥글둥글하고 원만해진 태도로 세상과의 화해를 설파할 때, 세상은 이런 영화들에 대해 종종 ‘노인의 지혜’ ‘현자의 깨달음’이라는 두루뭉술한 헌사를 바치곤 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초반부에 카메라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천체를 관측할 때, 이 감독도 우주의 법칙 운운하며 역사와 인생의 포용을 이야기하려는구나, 라고 속단했다. 그러나 완전히 틀렸다. 그의 시선이 우주와 자연을 경유해 인간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극대에서 극소로, 우주의 역사와 땅의 역사를 연결하며 결국은 훨씬 깊고 넓어진 시야로 아물지 않은 인간과 역사의 고통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영화의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서 우주를 향하던 시선은 <자개단추>에서는 생명의 기원인 물, 바다로 향한다. 칠레의 땅과 바다, 원시 부족의 삶과 물방울 속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밟으며 우리는 다시 유구한 역사를 거쳐 현재로 돌아온다. 개인적으로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 비해 <자개단추>의 성취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멈추지 않는 거장의 거대한 조망의 노력과 시야의 확보, 영화적 성취에 경의를 표한다. 이번 리스트에 올린 유럽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가운데 지적인 발견의 즐거움까지 주는 영화들이다. 45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아온 노부부의 신뢰와 애정이 우연한 계기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가는 과정을 잔인하도록 섬세하고 냉랭하게 보여주는 심리극 < 45년 후 45 Years >를 제외하면 < 코베인: 몽타주 오브 헥 Cobain: Montage of Heck > <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 > < 수메 - 혁명의 사운드 Sume - The Sound of a Revolution > < 아페림! >은 매끄러운 영화적 만듦새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미지의 영역에 접근해 다양한 층위에 대한 발견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들이었다. <수메, 혁명의 사운드>는 그린란드에 대해서라면 기껏해야 < 북극의 나누크 >가 알려준 것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나의 일천함을 비웃으며, 그린란드 최초의 록밴드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현재, 음악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알려주었고,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와 <아페림!> < 의미의 창조 The Creation of Meaning > 역시 유사한 체험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기도 해서 기회가 된다면 일견을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이 글에서는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각본상) 수상작인 라드 주드 감독의 <아페림!>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2. < 아페림! >은 루마니아 지방 귀족의 아내와 정사를 벌이고 도망간 집시 노예를 잡아오라는 영주의 명령을 받고 노예를 찾아 나선 순사 코스탄틴과 그의 아들 이오니타의 여정을 다룬 로드무비이자 루마니아 판 수정주의 웨스턴이다. 영화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집시 노예제도는 14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 중엽 폐지된 제도라 하는데, 공산당 집권 시기에 이 제도에 관한 기록은 루마니아의 공식 역사에서 삭제된다. 수백 년 지속된 인종차별제도의 유산이 현재에도 루마니아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중요한 사건이 공식 역사에서 사라짐으로써 현대 루마니아인들은 대안적인 역사 연구나 아카이브 등의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만 근근이 사라진 과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독은 시끌벅적한 하이브리드 장르의 외피를 빌어 사라진 과거의 이미지를 희미하게나마 복원하고자 한다. 엔딩 자막에 나와 있듯이 이 영화의 몇몇 내레이션과 대사는 역사적 기록에 기반하고 있다. 사라진 역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감독 자신이 19세기와 친숙해질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 감독은 영화 내내 수없이 인용되는 민간전승 문화와 루마니아, 외국 작가들의 문학을 선택한다.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멘탈리티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는 최대한 그 시대의 언어에 가깝게 다가가 익숙해지고자 했고 그 결과를 영화 속에 녹여낸다. 그러나 감독은 과거를 재현하는 어떠한 시도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영화를 35mm 흑백 와이드로 촬영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 영화가 역사에 대한 주관적이고 인공적인 재연물(re-enactment)”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그가 재연(re-enactment)한 역사 역시 그의 역사적 관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순사 코스탄틴은 감독의 비전을 대행하는 페르소나이자 관찰자이다. 1835년 루마니아 남부 지역 왈라키아를 출발해서 중부 유럽 카르파티아 산맥 등 루마니아의 수려한 자연을 통과하면서 코스탄틴 부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종차별주의, 노예제, 계급차별, 여성의 열악한 지위 등 당대 루마니아의 여러 문제들과 조우한다. 코스탄틴은 구시대와 근대 사회의 문지방에 위치한 인물이다. 한편으로 그는 스스로 구시대의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자신 역시 한 발을 구시대에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뱉어내는 말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격적인 슬랭들이다. 이러한 언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인종차별주의적 편견을 드러낸다. 한편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낡은 지식을 비웃고, ‘법의 준수’를 강조하며 잡혀 온 노예에 대해 잘못한 만큼만 처벌해달라고 영주에게 부탁할 만큼 근대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패트릭 갬블러는 이러한 코스탄틴 캐릭터에 대해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와 돈키호테 사이”의 인물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코스탄틴 부자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는 루마니아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의 기원을 희극적이면서도 날카롭게 탐구해 나간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모든 민족, 인종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쉼 없이 나열하는 신부의 모습일 것이다. 각 민족에 대한 그의 장광설은 집시에서 유대인까지 모든 민족과 종교를 총망라하는 백과사전적 편견의 보고라 할 만하다. 모든 인종이 다 모인 유럽의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결과적으로 코스탄틴 부자의 여행은 구시대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코스탄틴의 정체성의 위기를 야기한다. 코스탄틴은 몸의 절반을 구시대에 담가온 인물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죄 없는 노예를 풀어주자는 아들의 부탁에 영주에게 죽음 아닌 다른 적절한 처벌을 부탁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무색하게도 귀족의 복수는 경악스러울 만큼 살벌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다. 그의 폭정은 노예뿐 아니라 마을의 주민들, 심지어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잔인한 처벌 후에 영주의 성을 나서는 코스탄틴의 풀 죽은 모습은 어딘가 측은하다. 변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내. 신은 벌레 하나도 돌보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아. 우리는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사는 거야.” 그것은 변명 같기도 하고 체념 같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선인장이 흔들리는 루마니아의 광활하고 텅 빈 평원으로 들어왔던 처음 모습처럼, 이제 두 사람은 임무를 마치고 공동체를 떠나는 황야의 사나이처럼 석양을 향해 사라져 간다. 영웅의 소명을 마치고 퇴장하는 웨스턴의 주인공들처럼 그들 역시 무대를 떠나지만 무대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인 ‘아페림’은 ‘브라보’라는 뜻의 루마니아어이다. 코스탄틴이 노예를 잡아왔을 때 영주는 ‘아페림!’이라고 외친다. 코스탄틴 부자의 여행은 구체제의 질서가 얼마나 완고하게 지속되는지, 진보와 변화는 얼마나 느리게 진행되는지 보여주었다. ‘아페림’이라는 감탄사는 과거를 향한 아이러니한 수사일 뿐 아니라 그 과거의 영향 아래 있는 현재 루마니아 사회에 대한 역설적 논평이기도 할 것이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이 영화가 미래를 향해 어느 정도 문을 열어놓았는지, 코스탄틴 부자는 어디를 향해 떠나갔는지는 관객이 직접 판단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