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가면라이더 이그제이드 외전: 브레이브 & 스나이프
- 감독
- 스즈무라 노부히로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세토 토시키, 마츠모토 우쿄, 이이지마 히로키, 이와나가 테츠야, 마츠다 루카, 오노즈카 하야토, 코테 신야
코엔 형제의 옴니버스 서부극 < 카우보이의 노래The ballad of buster scruggs >(2018)를 구성하는 6개의 단편은 모든 죽음으로 끝맺는다. 정확히 말하면,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시신 이미지로 막을 내린다. 폭력의 장르의 원조인 서부극에서 죽음과 시신이 등장하는 건 물론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라는 희대의 영화광-유희자이가, 진지함과 심각함도 종종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로 바꿔놓은 당대 최고의 패러디 작가가,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선 갖가지 시각적 언어적 유머를 전시하거나 애틋한 혹은 달콤한 약속을 예비하고도, 끝내 음울한 시신 이미지로 모든 이야기를 닫은 결정이 범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여느 영화를 말할 때처럼, 감독의 세상에 대한 비전이나 서사의 내적 필연성으로부터 <카우보이의 노래>의 죽음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코엔 형제처럼 서사적 필연성에 무관심한 감독도 드물다. 그들의 영화에서 하나의 영화적 기호는 대개 다른 영화적 기호를 불러내는 전조로 등장하며, 기호들의 연쇄는 서사적 연쇄라기보다 기표적 연쇄의 퍼포먼스에 가깝다. 예측할 수 없이 연쇄하는 기표들의 자유분방한 운동에서, 영화적 기호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겠지만,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서사적 연쇄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에게라면 종잡을 수 없거나 경박하거나 때로 불쾌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의 재능은 영화적 요소들의 기표적 연쇄로부터 유희적 활력을 이끌어내는 점 자체에 있다기보다, 기표들의 소란스러운 연쇄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편의 영화를 매우 치밀하고 단단한 육체로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코엔 영화를 관람한 뒤, 우리는 대개 한바탕의 놀이 시간을 통과한 것처럼 느끼지만, 돌아보면 그곳엔 무언가 놀이의 퍼포먼스로 환원되지 않는 모종의 견고하고 아득한 실체가 버티고 있다고 간혹 느끼게 된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제목은 물론이고 존 포드 서부극의 아이콘인 모뉴먼트 밸리가 등장하는 첫 에피소드의 첫 장면, 그리고 이어서 말을 타고 등장하는 총잡이 카우보이라는 캐릭터에서 자신이 서부극임을 호들갑스럽게 강조한다. 물론 이 서부는 더 이상 고전기 서부극의 서부가 아니다. 서부극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기괴한 암석봉들이 산재한 이 장소의 형상이 익숙한데도 어딘지 낯선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코엔 형제가 우리를 이끌고 온, 이 서부는 어떤 서부인가. 고전기 서부극의 서부를 ‘그 서부’라 칭한다면, 이 서부는 그 서부의 모조이다. 이것은 이 서부가 촬영된 장소가 실제 모뉴먼트 밸리와 비슷하게 꾸며놓은 야외세트라는 뜻이 아니다. 실제 모뉴먼트 밸리에서 촬영되었다 해도, 이곳은 여전히 야외세트일 뿐이다. < 역마차Stagecoach >(존포드, 1939)에서 처음 등장한 모뉴먼트 밸리의 그 서부는 포드의 서부극에서뿐만 아니라 그때까지의 영화를 통틀어서도 처음 등장한 장소이며, 다른 나라의 관객은 물론 미국 관객들에게조차 완전히 낯선 장소였다. 그 서부에서 촬영된 영화의 서사가 비록 제작 시점보다 수십 년 전 과거의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따라서 당대의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도 현행적 장소로 설정된 건 아니긴 했지만, 그 독특하고 기괴한 장소의 형상이 영화에 최초로 새겨졌다는 점에서 그 장소는 1939년의 장소로서의 물질적 시원성이 있다. 그 서부와 이 서부 사이엔 최초와 그 이후의 시간적 서열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20세기 중후반, 원거리 통신과 교통수단에서 일어난 혁명은 지구상의 모든 곳을 가시화하고 접근 가능한 장소로 만들었다. 낭만적 상상력을 자극했던 저 너머의 장소가 사라진 뒤로, 그 서부도 사라졌다. 이제 모뉴먼트 밸리는 초월적 잠재성을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의 시각장에 갇힌 폐쇄공간이 되었다. 오늘의 서부극의 서부는 켈리 레이차트의 < 믹의 지름길 Meek's cutoff >(켈리 레이차트, 2010)에서처럼 알레고리화된 정신적 공간으로 드러나거나, 코엔의 또 다른 서부극 < 더 브레이브True grit >(2010)에서처럼 확대되고 개방된 무대로 드러나거나 혹은 SF영화의 우주처럼 서부의 가상적 변주공간으로 드러난다. 코엔은 첫 장면에 모뉴먼트 밸리를 등장시키면서 이 서부의 모조성을 위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짓궂은 방식으로 강조한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카우보이를 비추던 카메라는 갑자기 기타 내부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점(視點) 숏으로 바뀐다. 또한 카우보이의 노래가 듣는 위치에 따라 소리의 크기와 질감이 바뀌는 청점(聽點) 숏들을 몽타주한다. 이 시점과 청점 숏들은 당연히 특정 인물의 감각에 속할 수 없고(기타 안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객관적 숏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어서, 카메라의 존재와 이 장면의 인공성을 장난스럽게 노정하는 장치로밖에 볼 수 없다. 이곳은 지금 갖가지 촬영 장비가 들어서 있는 꾸며진 공간이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일종의 유희적 퍼포먼스가 될 것임을 이 숏들은 암시한다. 서사적 필연성에 무관심한 이야기의 중심 소재는 사건이 아니라 사고다. 사건과 사고는 벌어지는 일 자체가 아니라 서사에 맥락화되는 방식에 따라 구분된다. 사건은 내적 필연성을 지닌 것으로 새겨져 사건이 벌어지면 결코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사고는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것으로 제시되며 이전과 이후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사건의 서사는 대개 불연속적 선형성으로 나타나며, 사고의 서사는 대개 대체에 의한 연속적인 순환구조 혹은 나선구조로 나타난다. 코엔식 기호놀이의 서사가 요청하는 건 당연하게도 기표들이 필연성에 흡수되지 않고 뛰어놀 수 있는 사고의 서사다. 사고의 우연성과 돌발성은 기표들의 활력의 동력원이 될 것이다. 관객을 노골적 모조의 서부에 초대한 코엔 형제는 고전기 서부극의 소재가 된 진중한 사건들을 돌발적이고 황당한 사고로 전환해 패러디의 난장을 상연한다. 이 난장의 활력과 민첩함 그리고 발작적 반전이 다음 장면을 전혀 예상할 수 없게 만들어, 보는 이의 넋을 빼놓는다. <카우보이의 노래>의 여섯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잠재적 순환구조를 갖고 있다. 1편의 깝죽대던 카우보이 버스터는 또 다른 총잡이와의 결투로 갑작스레 죽는다. 새로운 총잡이 역시 언젠가 그렇게 죽을 것이다. 하늘로 날아오르던 피살자의 영혼이 살해자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그들의 동일한 운명을 유머러스하게 암시한다. 2편의 실패한 은행 강도는 교수형 당할뻔하다 살아나지만 황당한 계기로 다시 목을 매달린다. 3편의 팔다리 없는 음유시인은 버림받은 뒤 ‘수학하는 닭’으로 대체되지만 명민한 닭 역시 언젠가 음유시인의 운명이 될 것이다. 음유시인과 닭을 끌고 겨울 들판을 통과하던 늙고 초라한 쇼맨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5편의 젊은 웨건마스터는 한 여인과 맺어져 정착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뻔했지만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실패한다. 지나치게 과묵한 늙은 웨건마스터의 젊은 시절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이들의 나선적 순환의 삶의 끝은 모두 죽음이다. 그러니 마지막 에피소드의 좁은 포장마차 안에서 저마다 자신의 삶이 특별하다고 뽐내던 다섯 인물이 결국 공동묘지와도 같은 호텔 안으로 사라져가는 음울한 결말은 적절한 마침표다. 이 에피소드들에서 죽음은 장대하고 비극적인 죽음이 아니라, 우연적 사고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거나, 인물과 서사의 개별성과 관계없이 예정된 죽음이다. 바깥이 사라진 모조 서부는 박제된 유해와 고대의 형상이 보존된 유사박물관과도 같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이 폐쇄된 유사박물관에서 자기 죽음을 소극(笑劇)으로 재상연하는 유령들의 잔치 혹은 죽은 자들이 부르는 묘지의 발라드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톰 웨이츠가 늙은 금 채굴꾼으로 등장하는 네 번째 에피소드를 잊기 힘들다. 이 에피소드는 예외적이다. 무대는 야트막한 언덕의 나무들과 산에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 냇물이 흐르며 수리부엉이와 사슴과 물고기가 한가롭게 거니는 아름다운 분지다. 노인은 곳곳에 구멍을 파다 마침내 금을 발견한다. 그 순간 비열한 젊은 도둑이 뒤에서 그를 쏘지만, 총알이 급소를 피하는 바람에 반격에 성공해 도둑을 죽인다. 노인은 황금이 나온 구덩이에 젊은 도둑의 시신을 밀어 넣고 유유히 떠난다. 부엉이와 사슴과 물고기도 돌아온다. 여섯 에피소드 중 유일한 승리의 이야기, 축복의 퍼포먼스다. 남다은의 표현대로 “죽음의 기운이 넘실대는 다른 에피소드와 달리... 모든 것들의 생명력을 경애”한다. (『필로』 5호) 이 예외성에는 다른 얼굴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에피소드의 모조 서부들은 물리적으로 개방되어 있지만, 이 에피소드의 공간만 유일하게 바깥으로부터 구획된 물리적 한정 공간이다. 전자의 서부는 풀 한포기도 드문 황야이지만 이곳은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생명체가 광채를 발하는 풍요의 초원이다. 이곳은 어쩌면 폐쇄된 모조 서부가 잃어버린 바깥의 상상적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분지마저 서부의 인간이 침투해 상처 입힌다. 스스로도 상처 입었지만, 노인은 살아서 이 공간을 떠난다. 그가 떠나자 곧바로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돌아왔으므로 노인의 채굴과 획득과 살인은 이 아름다운 공간의 균형을 훼손하지 않는, 사건 아닌 사고일 뿐인가. 하지만, 노인과 함께 금을 향한 욕망도 살아나갔다. 그 탐욕은 앞으로도 또 다른 자연의 성지를 파헤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화사한 에피소드는 어쩌면 가장 불길한 예기인가. 물론 코엔은 어느 쪽으로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묘지 가운데 핀 꽃의 위안 혹은 위안을 가장한 묵시록. 코엔의 유희는 즐겁지만 은밀하게 우리를 흔든다.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하니까, 다소 수박 겉핥는 식의 이야기가 되더라도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볼까 한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지는 글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계획적이고 (조금은 의뭉스러운) 중간정리 정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얄밉겠지만 어쩔 수 없고, 그 대신, 소개되는 책들은 다 읽어버린 것이 인생의 황량한 구멍을 남겨놓은 느낌을 줄 정도로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니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장바구니에 넣어둘 것을 조심스레 추천하는 바이다. 그레이엄 그린,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첫 번째는, 죽은 엄마의 화장터에서 처음 만나 자신을 ‘이모’ 라고 소개하며 내 손에 (당신이 직접 꺾어온)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그분과의 몇몇 일화를,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처럼 각색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첫 번째 칼럼, 「펀 홈」 에 대한 글 에서 소개했던 엄마의 활력 넘치는 여자 친구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그분의 얼굴은 그 옛날, 아마도 스물 몇 살이었던 것 같은 엄마의 여행 사진 속에서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독사진을 똑같은 앵글로 하나씩 찍어준 그 장소는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해변처럼 보였고, 한껏 포즈를 잡은 그들은 고전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들, 그러니까 마치 캐서린 헵번과 나탈리 우드처럼 당당하고 우아했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헵번처럼 후리후리한 아름다움을 조용히 뿜어내던 그 여성이 바로 내게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바로 그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쓰인,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에서도 은퇴한 은행 매니저인 주인공 남자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화장된 유골함을 기다리며, ‘난생처음 보는 이모’의 접근을 받아 인사한다. 메리 여왕처럼 차려입고 등장해, 죽은 엄마가 사실은 그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준 그 이모란 여자는 조카와 함께 파리와 이스탄불을 함께 여행한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까지 내 경험과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웃기고 재밌는 책이고 언젠가 (초현실적이다 싶은) 기회가 오면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런 기회 속에는 (내가 이모로 캐스팅하고 싶은) 틸다 스윈튼이나 케이트 블란쳇이 캐릭터의 나이와 얼추 맞는 시기가 되었다는 조건까지 포함되어 있다. 존 어빙의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은 내가 준비도 못 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뜨지 않는 한, 죽기 직전에 몇 장이라도 다시 들춰보며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책일 것이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책을 4부작 시리즈로 만들 기획안을 평생 가지고 살았고, 죽기 일보 직전인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하고 슬플 것이다. 오랫동안 내가 상상한,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가프’였지만, 몇 년 전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턴 세스 로건으로 슬그머니 얼굴이 바뀌었다. 아무리 내 머릿속의 극장이라지만, 죽은 사람을 캐스팅해 계획을 굴려보는 것까진 잘 안 되더라. 그리고 그 책의 실질적인 심장(heart)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가프의 어머니) ‘제니’가 있다. 존 어빙,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가프’의 어머니, ‘제니 필즈’는?세계대전 중에 부상병을 치료하던 간호사였고, 평생 간호사복을 입고 지낸, 열혈?여권 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죽기 전까지 소설가 아들 ‘가프’를?열성적으로?지원하고 격려했던 멘토이자,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던 강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 커버 사진을 볼 때마다 매번,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간호사복은 결국 ‘제니 필즈’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가프’의 인생도 종말을 고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난 ‘가프’가 벽 앞에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이 커버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짠해지고,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한 (소명에 가까운) 계획을 다듬는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나는, 이를테면, 넷플릭스 임원 회의에 참석해 4부작 정도의 시리즈의 기획안은 얼마든지 피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 속의 나는 제2의 봉준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말이다. 찰스 포티스,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세 번째 프로젝트는, 이미 존 웨인이나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영화 <더 브레이브 True Grit>로 유명해진 찰스 포티스의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나는 이 책의 1인칭 주인공 화자인 ‘매티 로스’의 목소리를 정말로 좋아하는데, 책을 펼칠 때마다 매번 그의 대사를 소리 내 따라 읽어볼 정도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친 자를 처치하고 복수를 완성하고자 먼 길을 떠나는 14살짜리 소녀라는 인물 설정 자체도 끝내주게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치도록 깐깐하고 자기 앞가림에 능숙하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 당당한 애티튜드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 복수를 완성시켜줄 사람을 찾아다니던 ‘매티’가 악명 높은 연방보안관 ‘루스터 코그번’을 고용하기 위해 찾아온 장면 속, 두 사람의 대화는 볼 때마다 두근두근하다. “저를 영 하찮게 생각하시는 군요, 코그번 씨.” “아니, 난 네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네 생각 따윈 아예 하질 않아.” “정부로부터 2달러, 이동 거리에 따라 1.5km당 10센트씩, 거기에 사례금으로 50달러를 드릴게요.” “제법 열심히 조사했군.” “그럼요,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요.” 비교적 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엔 형제의 영화 버전이 내게 특히 좋았던 것은, 이런 ‘매티’를 거의 완벽한 캐스팅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이었다. 스크린에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고집불통스러운 얼굴이 나오는 그 순간의 쾌감이란.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책의 스토리라인을 느슨하게 각색한 이야기를 조금씩 굴려보았는데, 내가 상상하는 이 책의 각색 버전은, (좀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무신란(1170년)이 일어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시기의 고려를 배경으로 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벽란포구 뒷골목의 좁은 길을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비틀대며 걸어가면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매섭게 불어대는 을씨년스런 바닷바람에도 거친 모시 적삼과 홑겹의 천 바지, 볏짚을 대충 엮은 도롱이를 걸친 채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열 몇 살짜리 아이. 품에 꼭 끌어안은 작은 봇짐을 귀한 보물이라 생각해 달려든 거지 사내아이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좀처럼 밀리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이 작은 몸집의 소녀에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단단하고 비범한 면모가 숨어있다. 그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란 소년들 중에 대장 격인 아이의 어깨춤을 붙잡은 이 여자아이는 비상식량인 도토리 수십 알을 던져주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불상이 있다는 다원(茶園)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아이가 천릿길을 걸어 벽란포구를 찾은 것은 이곳에 있는 한 다원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이 있어 거기에 진실로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상이 있는 다원에는 이 아이는 물론이고 포구에 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원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에 관한 것으로, 사실 이들은 무신란에서 공을 세워 신분이 해방된 여인 무사들이다. 그들은 불상이 있는 방의 뒷벽에 숨어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몰래 듣고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틈틈이 하고 있었던 것. 어느 골목에 숨어있듯 자리한 다원을 찾아낸 여자아이는 불상 앞에 엎드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점차, 당상역관 외동딸의 몸종이었던 이 아이가 어떤 연유로 자신이 모시던 아씨와 그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킨 좌우승 장군의 목을 베고 싶어 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여자아이는, 이 영화의 ‘매티’이고, 세 명의 여성 무사들 중 캡틴이 ‘루스터 코그번’, 두 번째 무사가 (현상금을 노리고 합류한 특수경비대원) ‘라뷔프’ 인 셈이다.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연결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상관없지. 나는 그야말로, ‘grit / 용기, 근성, 끈기, 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까. 즉, 이 영화가 ‘매티’처럼 당당하고 용감한 여자들이 메인이 되는 여성주의 무협 드라마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좀 더 그럴듯하게 완결된 형태의 트리트먼트와 초고 수준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이런 기획에 대해 슬그머니 수다를 떨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쳐서 더 이상 개발시키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런 글의 분량을 채우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해 보는 것으로 만족. 일단락.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프로젝트의 원작은, ‘희곡 (drama)’ 으로, 2010년 퓰리처상 ‘drama’ 부문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요키,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퓰리처상 drama 부문 수상작은 대부분 ‘play (연극)’ 대본일 확률이 높지만, 가끔씩 <렌트>나 <해밀턴> 같은 뮤지컬 대본이 탈 경우도 있다. 2010년에도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최종 후보작들은 모두 연극 대본이었으나, 브라이언 요키의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이 깜짝 수상작이 되면서 여러 말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조울증에 시달리며 약 없이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중년의 가정주부가 주인공인 이 희곡은 그가 전기충격요법을 받는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두고, 결국 혼자 집을 떠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례적으로 어둡고 심각한 스토리라인의 ‘가족 뮤지컬’이다. 이 이야기에서 독특하게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 다이애나가, 갓난아이 때 죽은 아들(게이브)을 십몇 년 동안 자신의 환상 속에서 무럭무럭 키워왔으며 두 사람끼리 대화를 나눈다는 것으로, 이는 극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그에겐 “난 살아있어! I’m alive!”라고 끊임없이 외쳐대고 노래를 부르는 ‘환상 속의 아들 (imaginary son)’는 물론이고, (학교에선 굉장한 수재로 주목받아도) 집안에서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딸(나탈리)도 있는데, ‘수퍼보이와 투명소녀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나탈리의 시그니처 테마이다. 결국, 나탈리는 엄마의 처방약을 몰래 훔쳐 복용하기 시작하고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가 아버지이자 남편인 ‘댄’이지만,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한숨 나오긴 마찬가지다. 결국 그에게도 환상 속의 아들이 찾아와 노래를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소원하고 기대하는 엔딩치고도 참 가차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긴 밤이 지나면 빛이 찾아올 거야.’라고 합창하는 등장인물들의 마지막 노래로 끝나는 이 작품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ALL: (sung) Day after day We’ll find the will to find our way knowing that the darkest skies will someday see the sun DAN: When our long night is done DAN and NATALIE: There will be light DIANA: There will be light ALL: There will be light When we open up our lives Sons and daughters, husbands, wives Can fight that f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Lights fade.) End of Act 2. Curtain. 마치,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21세기 록-뮤지컬의 형태로 다시 쓴 듯한 이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하기에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보편적인 구석이 있다. 물론, 메이저 투자사 피칭 자리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냐’는 무언의 비아냥과 놀림 같은 걸 받을 수 있겠지만, 독립영화의 시스템 안에서라면 격렬하고 흥미진진한 작가 정신을 발휘하기에 매우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뮤지컬이 될 것이니까. <레미제라블>같이 현장에서 모든 노래를 레코딩한다는 계획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그것이 이 작품만의 영화적 전략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자,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했어야 했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해서, 다소 수박 겉핥는 식으로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보았다. 지난 몇 회간 이 코너를 통해 주절대본 영미문학 각색 프로젝트는 사실상 나에게만 의미 있고 재미있지,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그냥 대부분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코너에서 소개한 몇 권의 책들은 분명히 장바구니에 넣어둘 만한 재밌고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 거 있잖나, “그 책을 다 읽어버린 것은 내 인생에 황량한 구멍을 남겼다. David Copperfield, the last novel I read, and the completion of which has left a devastating hole in my life”, 고 감상을 얘기할 만한 경우들. 사실, 저 말은 「데이빗 커퍼필드」를 읽은 후 ‘닉 혼비’의 표현인데... 마음에 들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 몇 개의 각색 프로젝트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초현실적인) 기회가 찾아와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저런 표현이 가능한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end. #1 펀 홈 #2 안녕, 내일 또 만나 #3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5 이모와의 여행, 그 외 몇몇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하니까, 다소 수박 겉핥는 식의 이야기가 되더라도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볼까 한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지는 글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계획적이고 (조금은 의뭉스러운) 중간정리 정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얄밉겠지만 어쩔 수 없고, 그 대신, 소개되는 책들은 다 읽어버린 것이 인생의 황량한 구멍을 남겨놓은 느낌을 줄 정도로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니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장바구니에 넣어둘 것을 조심스레 추천하는 바이다. 그레이엄 그린,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첫 번째는, 죽은 엄마의 화장터에서 처음 만나 자신을 ‘이모’ 라고 소개하며 내 손에 (당신이 직접 꺾어온)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그분과의 몇몇 일화를,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처럼 각색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첫 번째 칼럼, 「펀 홈」 에 대한 글에서 소개했던 엄마의 활력 넘치는 여자 친구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그분의 얼굴은 그 옛날, 아마도 스물 몇 살이었던 것 같은 엄마의 여행 사진 속에서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독사진을 똑같은 앵글로 하나씩 찍어준 그 장소는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해변처럼 보였고, 한껏 포즈를 잡은 그들은 고전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들, 그러니까 마치 캐서린 헵번과 나탈리 우드처럼 당당하고 우아했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헵번처럼 후리후리한 아름다움을 조용히 뿜어내던 그 여성이 바로 내게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바로 그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쓰인,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에서도 은퇴한 은행 매니저인 주인공 남자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화장된 유골함을 기다리며, ‘난생처음 보는 이모’의 접근을 받아 인사한다. 메리 여왕처럼 차려입고 등장해, 죽은 엄마가 사실은 그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준 그 이모란 여자는 조카와 함께 파리와 이스탄불을 함께 여행한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까지 내 경험과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웃기고 재밌는 책이고 언젠가 (초현실적이다 싶은) 기회가 오면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런 기회 속에는 (내가 이모로 캐스팅하고 싶은) 틸다 스윈튼이나 케이트 블란쳇이 캐릭터의 나이와 얼추 맞는 시기가 되었다는 조건까지 포함되어 있다. 존 어빙의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은 내가 준비도 못 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뜨지 않는 한, 죽기 직전에 몇 장이라도 다시 들춰보며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책일 것이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책을 4부작 시리즈로 만들 기획안을 평생 가지고 살았고, 죽기 일보 직전인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하고 슬플 것이다. 오랫동안 내가 상상한,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가프’였지만, 몇 년 전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턴 세스 로건으로 슬그머니 얼굴이 바뀌었다. 아무리 내 머릿속의 극장이라지만, 죽은 사람을 캐스팅해 계획을 굴려보는 것까진 잘 안 되더라. 그리고 그 책의 실질적인 심장(heart)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가프의 어머니) ‘제니’가 있다. 존 어빙,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가프’의 어머니, ‘제니 필즈’는?세계대전 중에 부상병을 치료하던 간호사였고, 평생 간호사복을 입고 지낸, 열혈?여권 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죽기 전까지 소설가 아들 ‘가프’를?열성적으로?지원하고 격려했던 멘토이자,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던 강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 커버 사진을 볼 때마다 매번,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간호사복은 결국 ‘제니 필즈’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가프’의 인생도 종말을 고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난 ‘가프’가 벽 앞에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이 커버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짠해지고,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한 (소명에 가까운) 계획을 다듬는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나는, 이를테면, 넷플릭스 임원 회의에 참석해 4부작 정도의 시리즈의 기획안은 얼마든지 피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 속의 나는 제2의 봉준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말이다. 찰스 포티스,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세 번째 프로젝트는, 이미 존 웨인이나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영화 <더 브레이브 True Grit>로 유명해진 찰스 포티스의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 나는 이 책의 1인칭 주인공 화자인 ‘매티 로스’의 목소리를 정말로 좋아하는데, 책을 펼칠 때마다 매번 그의 대사를 소리 내 따라 읽어볼 정도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친 자를 처치하고 복수를 완성하고자 먼 길을 떠나는 14살짜리 소녀라는 인물 설정 자체도 끝내주게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치도록 깐깐하고 자기 앞가림에 능숙하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 당당한 애티튜드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 복수를 완성시켜줄 사람을 찾아다니던 ‘매티’가 악명 높은 연방보안관 ‘루스터 코그번’을 고용하기 위해 찾아온 장면 속, 두 사람의 대화는 볼 때마다 두근두근하다. “저를 영 하찮게 생각하시는 군요, 코그번 씨.” “아니, 난 네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네 생각 따윈 아예 하질 않아.” “정부로부터 2달러, 이동 거리에 따라 1.5km당 10센트씩, 거기에 사례금으로 50달러를 드릴게요.” “제법 열심히 조사했군.” “그럼요,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요.” 비교적 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엔 형제의 영화 버전이 내게 특히 좋았던 것은, 이런 ‘매티’를 거의 완벽한 캐스팅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이었다. 스크린에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고집불통스러운 얼굴이 나오는 그 순간의 쾌감이란.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책의 스토리라인을 느슨하게 각색한 이야기를 조금씩 굴려보았는데, 내가 상상하는 이 책의 각색 버전은, (좀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무신란(1170년)이 일어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시기의 고려를 배경으로 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벽란포구 뒷골목의 좁은 길을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비틀대며 걸어가면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매섭게 불어대는 을씨년스런 바닷바람에도 거친 모시 적삼과 홑겹의 천 바지, 볏짚을 대충 엮은 도롱이를 걸친 채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열 몇 살짜리 아이. 품에 꼭 끌어안은 작은 봇짐을 귀한 보물이라 생각해 달려든 거지 사내아이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좀처럼 밀리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이 작은 몸집의 소녀에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단단하고 비범한 면모가 숨어있다. 그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란 소년들 중에 대장 격인 아이의 어깨춤을 붙잡은 이 여자아이는 비상식량인 도토리 수십 알을 던져주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불상이 있다는 다원(茶園)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아이가 천릿길을 걸어 벽란포구를 찾은 것은 이곳에 있는 한 다원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이 있어 거기에 진실로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상이 있는 다원에는 이 아이는 물론이고 포구에 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원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에 관한 것으로, 사실 이들은 무신란에서 공을 세워 신분이 해방된 여인 무사들이다. 그들은 불상이 있는 방의 뒷벽에 숨어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몰래 듣고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틈틈이 하고 있었던 것. 어느 골목에 숨어있듯 자리한 다원을 찾아낸 여자아이는 불상 앞에 엎드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점차, 당상역관 외동딸의 몸종이었던 이 아이가 어떤 연유로 자신이 모시던 아씨와 그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킨 좌우승 장군의 목을 베고 싶어 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여자아이는, 이 영화의 ‘매티’이고, 세 명의 여성 무사들 중 캡틴이 ‘루스터 코그번’, 두 번째 무사가 (현상금을 노리고 합류한 특수경비대원) ‘라뷔프’ 인 셈이다.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연결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상관없지. 나는 그야말로, ‘grit / 용기, 근성, 끈기, 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까. 즉, 이 영화가 ‘매티’처럼 당당하고 용감한 여자들이 메인이 되는 여성주의 무협 드라마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좀 더 그럴듯하게 완결된 형태의 트리트먼트와 초고 수준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이런 기획에 대해 슬그머니 수다를 떨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쳐서 더 이상 개발시키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런 글의 분량을 채우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해 보는 것으로 만족. 일단락.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프로젝트의 원작은, ‘희곡 (drama)’ 으로, 2010년 퓰리처상 ‘drama’ 부문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요키,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퓰리처상 drama 부문 수상작은 대부분 ‘play (연극)’ 대본일 확률이 높지만, 가끔씩 <렌트>나 <해밀턴> 같은 뮤지컬 대본이 탈 경우도 있다. 2010년에도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최종 후보작들은 모두 연극 대본이었으나, 브라이언 요키의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이 깜짝 수상작이 되면서 여러 말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조울증에 시달리며 약 없이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중년의 가정주부가 주인공인 이 희곡은 그가 전기충격요법을 받는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두고, 결국 혼자 집을 떠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례적으로 어둡고 심각한 스토리라인의 ‘가족 뮤지컬’이다. 이 이야기에서 독특하게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 다이애나가, 갓난아이 때 죽은 아들(게이브)을 십몇 년 동안 자신의 환상 속에서 무럭무럭 키워왔으며 두 사람끼리 대화를 나눈다는 것으로, 이는 극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그에겐 “난 살아있어! I’m alive!”라고 끊임없이 외쳐대고 노래를 부르는 ‘환상 속의 아들 (imaginary son)’는 물론이고, (학교에선 굉장한 수재로 주목받아도) 집안에서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딸(나탈리)도 있는데, ‘수퍼보이와 투명소녀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나탈리의 시그니처 테마이다. 결국, 나탈리는 엄마의 처방약을 몰래 훔쳐 복용하기 시작하고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가 아버지이자 남편인 ‘댄’이지만,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한숨 나오긴 마찬가지다. 결국 그에게도 환상 속의 아들이 찾아와 노래를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소원하고 기대하는 엔딩치고도 참 가차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긴 밤이 지나면 빛이 찾아올 거야.’라고 합창하는 등장인물들의 마지막 노래로 끝나는 이 작품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ALL: (sung) Day after day We’ll find the will to find our way knowing that the darkest skies will someday see the sun DAN: When our long night is done DAN and NATALIE: There will be light DIANA: There will be light ALL: There will be light When we open up our lives Sons and daughters, husbands, wives Can fight that f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Lights fade.) End of Act 2. Curtain. 마치,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21세기 록-뮤지컬의 형태로 다시 쓴 듯한 이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하기에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보편적인 구석이 있다. 물론, 메이저 투자사 피칭 자리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냐’는 무언의 비아냥과 놀림 같은 걸 받을 수 있겠지만, 독립영화의 시스템 안에서라면 격렬하고 흥미진진한 작가 정신을 발휘하기에 매우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뮤지컬이 될 것이니까. <레미제라블>같이 현장에서 모든 노래를 레코딩한다는 계획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그것이 이 작품만의 영화적 전략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자,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했어야 했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해서, 다소 수박 겉핥는 식으로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보았다. 지난 몇 회간 이 코너를 통해 주절대본 영미문학 각색 프로젝트는 사실상 나에게만 의미 있고 재미있지,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그냥 대부분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코너에서 소개한 몇 권의 책들은 분명히 장바구니에 넣어둘 만한 재밌고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 거 있잖나, “그 책을 다 읽어버린 것은 내 인생에 황량한 구멍을 남겼다. David Copperfield, the last novel I read, and the completion of which has left a devastating hole in my life”, 고 감상을 얘기할 만한 경우들. 사실, 저 말은 「데이빗 커퍼필드」를 읽은 후 ‘닉 혼비’의 표현인데... 마음에 들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 몇 개의 각색 프로젝트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초현실적인) 기회가 찾아와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저런 표현이 가능한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