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댄스 2
- 감독
- 샘 훠스틴버그
- 제작년도
- 1984
- 출연
- 루신다 딕키, 아돌포 퀴노네스, 마이클 챔버스
© 코리아씨네마 똠얌꿍, 슌사쿠, 国, 國, 纳, 陆海铃, 宍倉紗弥, 髙橋, 﨑, 𠮷野, 辻, 齋藤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은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사회적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1] 『꼬방동네 사람들』(이동철, 1981)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개봉 당시 “갖가지 사연을 안고 모여 사는 판자촌 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언론의 호평을 받았으나 [2] 실제로 이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존재했다. “제작 신고 때부터 우여곡절을 겪고 10개월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3] 라거나 ‘신고 접수 후 <꼬방동네 사람들>의 경우는 1백 21일 만에 수리 통보를 받아 제작에 나서게 됐다’ [4] 는 기사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초반 ‘사회적 아픔’을 다루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대 상황 및 검열 제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모든 제작사는 시나리오와 영화 필름을 검열받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검열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신고 과정에서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이 정사 장면, 외설, 비속·저속한 대사 등으로 사회적으로 말썽이 일고 있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크게 브레이크에 걸리고 있다’ [5] 는 기사는 당시 이루어지던 검열 항목을 알려 준다. 특히 에로티시즘은 주요 검열 대상이었다. 그런데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사회적 아픔과 가난한 사람들을 재현하는 데 중심을 둔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 영화와는 결이 달랐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영화는 더욱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회성 짙은 영화’에 대해 시대는 매우 민감했고 영화는 결국 수정되어야 했다. 이는 시대가 승인하고 요청한 영화, 그리고 대중의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로서 이 작품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격동의 시대, 대중 영화가 직면한 시련 이 영화의 제작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사회적 격동의 시기와 겹친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 시대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 초기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나 문화 분야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고 저항운동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였다. 1984년 5차 영화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국영화와 영화산업 또한 이런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6] 이러한 상황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이 ‘사회 현실’을 다룬다는 게 문화 검열 주체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특히 원작인 이동철의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은 “청계천변으로 흐르는 썩은 오물, 똥물, 악취 나는 시궁창을 코앞에 둔 채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동네” [7] 를 배경으로 성매매 여성과 소매치기, 구두닦이 등의 온갖 도시 하층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산업화 시기 도시 하층민이 그 존재 자체로 불안과 오염의 가능성을 내포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정주하는 변두리가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서 배제된 불안정, 궁핍, 무질서, 비도덕, 비윤리적인 타락한 성벽처럼 묘사되었다는 점 [8] 을 감안할 때,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재현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전두환 정권 수립 초기 사회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 코리아씨네마 이러한 점은 영화의 검열서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원작 소설 속 ‘검은 장갑’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 명숙을 주인공으로 삼아 주요 인물들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그러나 문화공보부 산하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을 절망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도박 등 사회악을 합리화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민층 묘사에 있어 가급적 훈훈한 인정미를 부각시키고 착한 의지로 살아가는 모습에 역점을 둠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비속한 대사가 많고 가정(사회) 윤리 저해 장면, 소매치기 장면, 도박 장면, 사기 장면” 등이 문제가 되었다. [9] 결국 시나리오는 대폭 개작되었다. 이후 신고한 시나리오는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부분은 전체적으로 삭제”했다. 대신 “비록 고난과 역경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결코 불의에 타협치 않고 밝은 내일을 향해 참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그들의 착한 의지와 인정이 넘치는 삶의 현장을 영상으로 옮김으로써 원작 소설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를 밝게 승화시켜 사회 계몽적인 작품을 제작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10] <꼬방동네 사람들> 심의서류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회신” 중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으며 가정 윤리(순결성)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 또다시 제작사에 개작을 요구했다. 문제 장면으로 제시된 “가정윤리(순결성) 저해 장면,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 태도 함양 저해 장면, 사회 비리 고발 장면이 전체 장면 126씬 중 29%인 36씬”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1] 대대적인 개작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제작사는 “시나리오를 전체적으로 재검토, 대폭 순화하여 계도적인 작품으로 개작”해야 했다. 이로써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장면 묘사를 절제하고 가정 윤리를 저해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한편” 몇 가지 문제 장면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제작을 허가받기에 이른다. [12] 요컨대 시나리오 개작 과정은, 비교적 소설 원작에 충실했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계몽’과 ‘사회 정화’라는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바꾸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몽의 내용은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1980년대가 요청한 서민 가족의 삶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의 시나리오 개작과 영화 제작 과정에서 변화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빈민촌을 배경으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의 삶이 대거 축소되는 대신 검은 장갑 명숙( 김보연 )과 그녀의 전남편이자 아들 준일( 이재진 )의 아버지인 주석( 안성기 ), 그리고 현 남편이자 살인자인 태섭( 김희라 )이 주축이 된 가족 이야기가 극의 중심을 차지한다. ‘배감독이 당초 원작이 지닌 강한 사회성과 패기의 메시지를 그대로 영화화하려 했으나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네 차례나 개작 지시를 받아 다소 감상적으로 굴절된 느낌’ [13] 이라고 평가한 것도 가족 이야기가 애정 관계와 얽히면서 영화 속에 두드러지게 재현된 점과 관련된다. 둘째,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는 검은 장갑 명숙이 홀로 주석의 아이와 빈민촌에 남는 걸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에서 검은 장갑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주석이다. 영화는 주석이 과거 소매치기였던 삶을 청산하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부장으로 거듭나도록 한다. 가령, 영화에서 ‘가족 사진’을 고이 간직한 채 명숙과 준일 주변을 맴돌고 “남자한테 가정이란 자기 몸보다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며 명숙에게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거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꼬방동네를 떠나는 명숙과 준일을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 태우는 주석의 모습 등은 소설과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는 새로운 장면들이다. 이로써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당대 정권이 승인하고 요청했던 서민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 코리아씨네마 실제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로 이어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남성은 가족을 이끄는 권위의 상징이자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산업 역군이었다. 주석은 그러한 현실 가부장의 문화적 판본이었다. 특히 아버지 없이 방황하는 준일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는 주석의 윤리적 책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가부장으로서 주석에게는 준일을 훈육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태섭이 살인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자수하기 위해 떠나는 것도 주석 가족의 삶이 사회적 안정과 질서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로써 영화는 1980년대 사회 안정과 근대화를 겨냥하는 계몽적인 가족 영화로서 대중과 만나게 된다. 한편, 당시 이루어진 문화 검열 과정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영화 속 빈민촌과 아파트의 풍경이다. 사실상 공간이 영화 속에서 가족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원작에서 드러나듯이 도시의 변두리 빈민촌은 더 이상 밀려날 데가 없는 도시 서민들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장소였다.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도 서민들이 살아가는 변두리 빈민촌의 풍경은, 가까운 거리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의 모습과 대비되어 주변화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시각화했다. 나아가 ‘이러한 대비적 장면은 그 자체로서 이미 도시 공간의 구조와 그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드러냈다.’ [14] 그런데 당시 아파트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주석을 중심으로 새롭게 꾸려질 가족에게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어쩌면 그들이 당도할 미래의 안락한 가족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파트’와 ‘빈민촌’의 선명한 대비는 양가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작가 황석영은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발문’에서 이 작품을 두고 작가 이동철이 스스로 판자촌에서 살아오는 동안 겪고 본 자기 동네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엮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15] 당대 삶의 현장성을 획득했던 소설은 출판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화는 달랐다. 배창호 감독의 야심에 찬 데뷔작은 사회 안정에 도움이 안 되는 문화 생산물로 여겨졌다. 영화는 집단 대중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였던 만큼 다른 문화예술에 비해 엄격한 관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당대 문화 계몽은 현실의 모순이나 불합리를 드러내기보다는, 일반 대중이 공감할 만한 서민 가족의 삶을 통해 근대화의 욕망을 환기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다가 영화 속 메시지는 근대화의 긴 터널을 통과하던 대중의 욕망과도 공명하는 데가 있었다. 따라서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근대화를 위해 문화적 에너지를 공급했던 영화의 역할과 대중 욕망의 양상, 그리고 문화 제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코리아씨네마 *** [1] “사회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현암사가 이 시대의 양심에 호소하는 세 권의의 장편소설!”, 《경향신문》, 1981. 9. 28. [2]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3] “<꼬방동네 사람들> 제작 완료 기구한 운명 헤치는 여인 그려”, 《경향신문》, 1982. 7. 15. [4] “제작자협 당국 영진공 불황 타개 간담회 ‘영화 제작 행정 규제 융통성을...’”, 《경향신문》, 1982. 5. 3. [5] 위의 글. [6] 김동호 외, 『한국영화 정책사』, 나나출판, 2005, 258~259쪽. [7] 이동철, 『꼬방동네 사람들』, 현암사, 1981, 7쪽. [8] 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현실문화, 2011, 107쪽. [9]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0]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1]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2]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3]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14] 정태수, 「1980년대 한국 영화에서의 생산의 공간(1980-1987)」,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 공간Ⅰ(1980-1987)』, 박이정, 2018, 28쪽. [15] 이동철, 앞의 책, 372쪽.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복합문화공간의 진화 '에무시네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시작된다. 종로구 중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3호선 경복궁역과 873m, 5호선 광화문역과 915m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성이 높다.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광장이 위치하고 서쪽에는 서울특별시 교육청, 경희궁, 숭정전이 있다. 남쪽으로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과 고종의 길, 국립정동극장이 있으며 북쪽에는 동인시장과 운경고택, 배화여자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가장 눈에 띄는 지리적 특성은 서울 중심에 있으면서도 자연적 환경과 가깝다는 점이다. 에무시네마는 건물 뒤편으로 펼쳐지는 경희궁 숲과 맞닿아 있어 복잡한 번화가를 잊게 하는,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을 선사한다. 2010년 사계절출판사 건물의 지하 1층을 확보한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전시와 연극 등 실험적인 무대를 꾸리며 관람객을 위한 예술·공연의 장을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공간은 소규모 공연장과 갤러리로만 가능했으나, 2014년 건물 전체 리노베이션을 진행하며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가장 먼저 1층에 아름다운 숲을 등진 '카페 에무'를 오픈하고, 이듬해 2015년 지하 1층을 공연장 '팡타개라지'로 개조했다. 공연장 한편에 바(bar)를 만들어 술과 음료까지 즐길 수 있게 된 팡타개라지는 관객이 무대를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건물 2층에 에무시네마 1관을 개관하고 3년 뒤인 2018년 여름, 3층에 2관을 개관했다. 복합문화공간에서 에무시네마의 탄생이 가장 늦었지만 현재 많은 관객을 활발하게 이끌며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지하 1층 공연장 팡타개라지의 공연 무대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지하 2층부터 4층 옥상까지 차례대로 스튜디오 에무(B2), 공연장 팡타개라지(B1), 카페 에무(1F), 에무시네마 1관(2F), 에무시네마 2관(3F), 가르강 루프탑(4F)이 위치해있다. 에무시네마는 한 건물에 여러 문화 공간이 자리한 특성을 활용하여 위아래로 오갈 수 있는 입체적인 방식의 영화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작품을 보고 나서 카페에서 소모임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또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다른 상영관으로 향하는 관객 주도형 형태를 고안한 것이다. 수직적 이동이 아닌, 수평형 이동의 문화 행사도 있다. 코로나19 중 선보인 '격조콘'은 사람들이 같은 주파수를 맞춘 헤드폰을 쓰고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하도록 만든, 독특한 형태의 행사다. 관객이 건물 뒤편의 경희궁 숲길까지 따라가도록 유도하면서 에무시네마가 가진 공간적 여건을 십분 활용한 선례로 자리 잡았다. 에무시네마 1관 내부 1020세대를 위한 문화공간 한 건물에 여러 문화공간이 있는 덕에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영화를 매개로 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왔다. 대표적으로 '시네마 브레이크'는 인근 직장인들을 위한 점심시간 상영회로 핫도그와 샌드위치를 제공하며 30분짜리 짤막한 단편영화를 선보였고, '살롱 데 뷰'에서는 전문가와 영화를 관람하고 1층 카페 에무로 내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을 진행했다. 또 건물 옥상을 활용한 '별빛 영화제'도 관객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상영관의 폐쇄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는 밤의 포근함으로 대체되고 딱딱한 극장 의자는 푹신한 캠핑용 의자로 바뀌었다. 맥주, 커피, 핫도그 등 스낵 옵션을 제공하며 영화를 누워서 관람할 수 있는 빈백도 제공한다. 야외 상영의 아늑한 분위기는 실내 생활이 장기화 된 코로나19 이후 더 각광받았고, 상영마다 1분 내 매진 행렬을 기록하기도 했다. 에무시네마는 세 시그니처 행사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며 복합문화공간 에무만의 브랜딩 메이킹을 성공한다. 에무시네마 1관 앞 통로와 입구 에무시네마의 주요 관객층이 1020세대인 사실도 큰 상징성을 갖는다. 예술영화는 난해하고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에무시네마의 경우 이용자 대부분이 이제 막 예술영화·다양성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입문자들이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운영 철학대로 누구나 예술을 쉽게 즐기게 독려한 결과다. 다채로운 행사가 관객을 복합문화공간 에무로 진입시켰다면, 흥미로운 기획전은 공간에 대한 관심을 관람의 실천으로 연결시켰다. 양인모 프로그래머는 실제 관객층 수요를 면밀히 분석하여 프로그램 기획에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5월에는 5월의 날씨를 연상시키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작품을 모아 <에릭 로메르 특별전>을 열었고,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프랑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언급된 <비브르 사 비>를 놓치지 않고 특별상영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에무시네마 관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으로 꼽은 크리스티안 페촐트 기획전을 열어 작은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낯선 작품을 1020세대 눈높이에 맞춰 콘셉트를 부여하거나 관객의 수요와 반응을 기반으로 프로그래밍을 구성한 결과 긍정적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에무가 이토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원천은 복합문화공간에 반영한 브랜드 철학 때문이다. 16세기 유럽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에라스뮈스의 영향을 받아 엘리트주의에 저항하며, 남녀노소 모두가 공평하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오직 교육받은 자만이 예술을 안다는 말에 반기를 들고, 모두에게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짚어주었다. 건물 외부 통로 "숲속의 오솔길에서 에라스무스를 만나다"라고 적혀 있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복합문화공간 에무 2. 설립일: 2010년 11월 13일 3. 대표자: 김상민 4. 운영시간: 10:00 ~ 22:00 (시간표에 따라 유동적) 5. 입장료: 일반 9,000원, 청소년 8,000원, 경로, 장애인, 조조할인 6,000원 6. 공간 구성 1) 상영관 2개관, 2층·3층 2) 카페 에무: 1층 커피 및 음료 판매, 도서 판매, 20석 3) 팡타개라지: 지하 1층, 술과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 4) 스튜디오 에무: 지하 2층, 영화영상 콘텐츠 기획 및 미학 연구를 위한 공유 오피스 5) 가르강 루프탑: 옥상 가르강 루프탑. 단체 행사나 야외 상영회 진행 7. 극장 규모 및 구성 - 1관(2층): 좌석수 51석, 2015년 5월 개관 - 2관(3층): 좌석수 52석, 2018년 7월 개관 인터뷰: 김상민 대표(복합문화공간 에무 대표) 김상민 대표 이자연 _복합문화공간 에무는 팡타개라지, 카페 에무, 가르강 루프탑 등 다양한 공간 구성이 특징입니다. 지금 에무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상민 _복합문화공간 에무가 처음 설립됐던 2010년에는 사계절출판사가 자리해 있었어요. 지하 1층만 복합문화공간 에무라고 일컬으며 갤러리, 연극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진행했었죠. 2014년 무렵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면서 층별로 하나씩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비유하자면 강이 흘러 퇴적 현상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강줄기가 형성되잖아요. 그것처럼 순간순간 그 시기에 맞는 일을 해왔더니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이 만들어진 거예요. 1층에 '카페 에무'를 만들고 지하 1층에 '팡타개라지' 공연장을 설치하고, 지하 2층에 '갤러리 에무'를 두었어요. 영화관은 사실 뒤늦게 완성됐죠. 리노베이션 이후 2015년에 2층에 처음 자리를 잡았거든요. 그리고 2018년 여름, 3층에 2관을 만들었어요. 영화관이 첫 개관했던 2016년 5월 5일. 저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인 것 같아요.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이 생긴 덕에 재미있는 다양한 기획을 해볼 수도 있었어요. 오렌지필름과 단편영화제를 열거나 <프리즘오브> 잡지와 함께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또 직장인을 위해 점심시간에 '시네마 브레이크'라는 상영회를 열기도 했어요. 이자연 _에무(emu)라는 이름은 16세기 유럽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에라스뮈스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영화를 비롯한 인문학적 활동을 실행하고 싶다는 의미일까요? 김상민 _맞습니다. 처음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만들어질 때 에라스뮈스의 철학과 사상을 기반으로 운영하려고 했어요. 에라스뮈스는 네덜란드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로 당시 <우신예찬>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현재까지도 교육 후원재단으로서 유럽에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에라스뮈스는 당시 권력자 간의 비리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했는데, 이러한 맥락의 문제가 현대사회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잖아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누구나 편하고 자유롭게 예술을 접하고 향유할 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로 에라스뮈스의 철학을 반영하고자 했어요. 양질의 교육을 받고 학습한 자만이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맥락이에요. 이자연 _영화관이 가장 마지막으로 지어졌어요. 가장 늦더라도 에무시네마를 꼭 개관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김상민 _제가 무대 디자인을 전공한 터라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미국에서 활동하던 와중에 이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 찾아오게 되었죠. 2014년부터 자연스럽게 팀장직을 맡아 일을 시작했고, 2018년부터 대표로서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사적 맥락에서 영화는 제 삶의 중심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실험적인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요. 1층 카페 내부에서 바라본 테라스 이자연 _대표님은 무대 디자이너로서 꿈을 키우기 위해 공연예술의 메카인 뉴욕으로 떠난 이력이 있어요. 그때의 경험이 에무시네마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김상민 _만약 사업만 했다면 실무적인 디테일은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실무를 함께 작업해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겠죠. 무대 디자인은 커다란 목표를 산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과 조율이 필요해요. 기본적인 기틀을 함께 잡아나가는 과정이 에무시네마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공동체에서 내가 어떤 역할로 참여해야 하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또 명확한 무대 콘셉트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매일 작은 결정을 이뤄나가야 해요. 논리적 판단이 무척 중요한 순간들이었죠. 그때의 시간들이 극장을 운영하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데 무척 유용했어요. 이자연 _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대표직을 맡았어요. 팀장으로 시작해 대표직에 오르기까지 책임감이 막중했을 텐데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김상민 _회사 운영이란 회사 전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사업의 디테일을 잡아가야 해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지만, 실무자로서 느꼈던 결정권의 제약이 아쉬워서 직접 키를 쥐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누군가 방향을 제시하면 맹목적으로 따르고 실행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일을 선도하고 결과를 책임지고 싶었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그로부터 배우고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려서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안 해본 게 아직 많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해봤자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쉽게 도전할 수 있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 자리는 종로의 중심으로부터 약간 떨어져 있어요. 언덕을 올라야 하기도 하고요. 이러한 지리적 환경이 에무시네마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요? 김상민 _에무시네마는 도심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접근하기에 아주 용이한 공간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창조적이라는 것은 오히려 제한된 구도 안에서 나타나잖아요. 어떻게 하면 이 거리와 구조를 뛰어넘어 관객들을 유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니까 그런 점에서 에무만의 크리에이티브한 행사를 고안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이자연 _접근이 어려웠던 지점이 오히려 다양한 행사의 발판이 되었던 거네요. 그렇다면 어떤 행사를 진행했었나요? 김상민 _저희가 숲을 등지고 있거든요. 이 아름다운 숲을 강점화할 수 있었죠. 예를 들어 코로나19 중 '격조콘'이라는 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거리를 두고 무선 헤드폰을 쓴 사람들이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면서 주파수에 맞춰 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는 행사예요. 이런 활동도 경의궁 숲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또 경희궁 문화길 '두둥-탁! 페스티벌'은 경희궁길에 위치한 문화공간을 살려보자는 취지로 진행한 행사였어요. 경희궁이 사실 사대문 안에서 파손이 가장 심한 궁이거든요. 우리가 복원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그 이야기와 의미를 살리는 활동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비롯한 다섯 단체가 모여 페스티벌을 구성했습니다. 또 '판타지아 에무'라고 아티스트가 추천한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아티스트의 단독 공연이나 짧은 특별 공연을 들어보기도 했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의 조직 체계는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나요? 김상민 _먼저 시네마팀은 양인모 프로그래머를 중심으로 시네마 매니저와 코디네이터, 사원으로 구성돼 있어요. 에무시네마의 개봉작이나 기획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진행합니다. 거기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매니저와 사원이 함께 관리하고요. 한 단계 나아가 영업과 홍보까지도 다루고 있어요. 공연장 운영을 담당하는 공연팀이 있고, '카페 에무'를 관리하는 카페운영팀이 있습니다. 에무시네마 사무실 내부 이자연 _에무시네마에는 총 2개의 관이 있습니다. 멀티플렉스에 비해 적은 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에무시네마만의 분위기가 있을 것 같아요. 김상민 _실험적인 영화나 개봉관을 찾기 어려운 작품을 위한 기획전을 경험할 수 있어요. 사실 큰 극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 않은 실험적 기획은 위험하게 여기거든요. 하지만 에무시네마같이 작은 규모의 영화관은 그런 계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이익을 따지는 기준이 그보다 낮기 때문에 도전의 기회가 더 많습니다. 기획 방향도 이렇게 저렇게 바꿔 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만의 데이터를 쉽게 쌓을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영화 산업에 있어서 작은 동네 영화관이 더 많아지고 오래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간 구조 자체가 다양성을 독려할 수 있는 거죠. 또 영화관마다 개성과 색깔이 뚜렷해야 관객의 취향이 두루두루 분포될 수 있을 거라 믿고요. 이자연 _코로나19로 극장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위기를 겪었는데요. 에무시네마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나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상민 _에무시네마는 2019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훌륭한 예술독립영화를 상영하면서 최정점을 맞이한 느낌이었거든요. 영화 산업 자체가 굉장히 역동적이고 활발했죠. 특히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졌어요. 그때 에무시네마는 외국인을 위한 <기생충> 영어 자막 상영까지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관객으로 붐볐어요. 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기도 했고요. 그 이후에 코로나19로 접어들면서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죠. 2020년 2월까지만 해도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한 열흘 정도 쉬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관객 수가 한 자릿수인 날도 많아졌고요. 상당히 무기력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그때 몇 번 진행한 공연장 대관 사업이 그나마 좀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적자로 힘들어지면 공연장 대관 요청이 들어오고, 또 힘들어지면 정부 지원을 받고. 이런 식으로 근근이 이어져왔어요. 그러다가 '별빛 영화제'가 확 성장했죠. 다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억눌려 있어서 그런지 야외 상영을 적극적으로 찾아줬어요. 에무시네마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습니다. 별빛영화제가 열리는 옥상의 야외 상영장 이자연 _한국예술영화관협회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기도 했다고요. 김상민 _전 지역의 작은 예술영화관 사업인들이 모두 모여 있는 단체예요. 원래 그전에는 교류가 그렇게까지 활발하지 않았어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매달 모여서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누게 됐어요. 서로 본받아야 할 점도 찾고 서로의 존재 자체로 위로를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의지를 많이 했죠. 영화관들이 각자도생하던 시기를 넘어서 교감하고 협업하는 길로 나아가면서 어려웠던 코로나19를 서로 의지하며 버틸 수 있었어요. 인터뷰: 양인모 프로그래머(에무시네마 프로그래머) 양인모 프로그래머 이자연 _에무시네마를 소개해주세요. 양인모 _'복합문화공간 에무'는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요. 고요한 언덕길을 올라오다 보면 금세 발견할 수 있죠. 뒤편으로 울창한 숲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건물 자체가 영화적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대도시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살짝 벗어나 보이거든요. 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이 공간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이곳만의 큰 장점이에요. 에무시네마에서는 주로 예술영화와 한국 독립영화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자연 _프로그래머로서 상영작을 선정할 때 어떤 지점을 가장 눈여겨보나요? 양인모 _일단 개봉을 앞둔 신작 중 영화사적 맥락을 가지며 동시대성이 있는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있어요. 관객의 감각을 예리하게 하고 몸은 영화관에 있지만 어딘가 멀리 갈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거든요. 또 관객들의 성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에무시네마의 주요 관객층을 살피고 경향을 분석하는 일도 중요해요. 근래에는 관객 연령층이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이 가장 많아요. 세대적 취향을 프로그래밍에 반영하기도 하고요. 옛날 영화 중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것 같은 작품을 골라 기획전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영화라도 누군가에겐 첫 영화죠. 새로운 관객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해요. 보통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관객들은 이제 막 영화에 입문하고 예술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이 대부분이라 눈높이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자연 _가장 기억에 남는 에무시네마 기획전이 있다면요? 양인모 _1930년대에 제작된 프랑스영화를 모아 상영한 기획전이 있었어요. 그 당시가 영화사적으로 ‘시적 리얼리즘’으로 구분하던 시기였거든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막 이동할 즈음이라 영화가 말을 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고요. 영화사에 이런 중대한 변화를 잘 보여줄 줄리앙 뒤비비에, 장 비고, 장 르누아르 감독까지 함께 담아 보여줬어요. 장 비고의 <라탈랑트>는 언제 봐도 정말 아름답죠. 이것은 제가 에무시네마에 와서 처음으로 진행한 기획전이었어요.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던 저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작품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시대의 영화다 보니 실제로 관객들로부터 새로웠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뿌듯했습니다. 이자연 _요새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경험하고 체험하는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무시네마 프로그램에 새롭게 적용하거나 전략을 세운 부분이 있나요? 양인모 _일단 극장에서의 경험 자체가 공간 경험이고 오프라인이잖아요. 한자리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그 자체가 물리적인 경험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그런 것들이 더 희소해지고 귀중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지점을 강조할수록 영화관의 지속성이 더 길어지지 않나 생각해요. 저희도 OTT 플랫폼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기도 해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그걸 극장에서 상영하면 관객들이 찾아오거든요. 그 풍경을 보면서 거기에 바로 극장의 본질적인 희망이 있다고 봐요. OTT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경험들이 있는 거죠. 무엇보다 요즘엔 관객 사이에 적극적인 관람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 N차 관람 인증이나 영화의 몇 장면을 SNS상에서 새로운 밈으로 만들어 재가공해 재미를 북돋는다든지. 그러한 관객 주도적인 현상을 공간에 접목시키도록 하고 싶어요. 에무시네마 매표공간 이자연 _코로나19 이후 극장 풍경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 변화를 언제 가장 크게 체감하시나요? 또 어떤 대안책을 고려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양인모 _저는 2020년에 입사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기본값인 상태로 일을 시작했어요. 오히려 그 전의 극장 프로그래밍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만의 희망적인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위기를 느끼고 관객이 드물게 오는 상황을 경험했지만 조금씩 회복하면서 긍정적 변화를 찾아낼 수 있었어요. 초반엔 영화인을 초빙해서 GV 등 다양한 행사를 시도했고요. 또 루프탑에서 상영하는 별빛 영화제의 경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야외에서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진행했죠. 빠른 매진을 거듭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어요. 이 자리를 통해 관객들과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교감을 하다 보니 좋은 관계성이 생겨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항상 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관객들과 더 직접적인 연결성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자연 _팡타개라지, 카페에무, 가르강 루프탑 등 건물 안에서 예술 활동과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게 구성돼 있어요. 이러한 환경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양인모 _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적이면서도 공동의 경험인데요. 그 경험을 확장하려면 아무래도 영화관의 공간적 요소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영화의 감상은 극장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서 정리되기도 하고요. 또한 관객들이 모여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동시에 같은 행위를 이루는 자리이기 때문에 에무시네마가 그 경험 그대로 이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영화만 보고 흩어지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어떤 새로운 일이 다시금 일어날 수 있게끔 하는 거죠. 극장에서 같은 시간에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 만남의 우연성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카페 앞 통로에 위치한 건물 층별 안내판 이자연 _공식 개관 이후 7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에무시네마를 생명력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양인모 _역시나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창작가가 있고 관객이 있어야 확인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죠. 제가 관객으로서 에무시네마를 처음 방문한 게 2016년이었어요. 이제 막 개관했을 때였죠. 어떤 GV를 듣기 위해서였는데, GV가 끝나니 아래 카페에서 회식 비슷한 자리가 마련되더라고요. 스무 명 정도의 관객과 감독이 함께 영화를 보고 회식을 한 거죠. 토론하듯 영화 얘기도 계속 나누고요. 이런 상황 자체가 굉장히 드물고 신기하잖아요. 거기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요. 그런 것을 지향해 나가는 게 에무시네마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지금 여기서 뭔가가 일어났어.’ 그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야 하겠죠. 그게 없어지면 생명력이 희미해지는 것 같을 테고요. 10대 후반의 관객들이 세대적 흐름을 이어나갈 자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자연 _청소년 관객을 위한 자리를 모색하고 계신 걸까요? 양인모 _그렇죠. 영화라는 게 영화의 경험과 극장의 경험이 뒤섞인 곳이잖아요. 청소년들이 낯설고도 새로운 경험을 에무시네마에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기에게 영감을 주는 일상적 공간 하나만 생겨도 그 사람의 생에 아주 긍정적이고 큰 변화가 생겨나니까요. 게다가 10대 후반 때의 경험은 대부분 성인 때보다 더 크게 다가오잖아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운 경험이 그들의 삶에 일어나도록 돕고 싶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는 좋은 메시지를 담은 작은 규모의 영화들을 많이 상영하는데요. 숫자와 성적이 중요한 세상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계속 보이는 게 왜 중요한가요? 양인모 _박석영 감독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싶어요. 사람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멋지고 세련된 사람도 있고 까칠하고 지루한 사람도 있어요. 영화도 사람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관객 각자에게 한 편의 영화가 모두 다르게 다가올 거라 믿어요. 그러니 그 다양성을 최대한 모두 반영할 수 있도록 작지만 다채로운 작품을 더 많이, 더 자주 보여주고 환대할 수 있는 공간인 극장이 세상에 하나쯤은 있어야겠죠. 에무시네마 2관 내부 이자연 _앞으로 에무시네마에서 준비 중인 사업이 있다면요? 양인모 _공간의 경험을 강조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이에요. 영화 감상 모임이라든지 영화 기반의 독서 모임이라든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커뮤니티 비즈니스 쪽일 것 같습니다. 또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고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장소가 되도록 신경 쓰려 합니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비즈니스 활동이나 창작 활동을 유도하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창작 활동이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에무시네마에 돌아올 수 있잖아요. 그런 선순환을 만들 수 있길 바라는 게 에무의 꿈입니다. 이자연 _2032년이 되었다고 가정해보면 2022년은 에무시네마의 프로그래머로서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요? 양인모 _일단 올해는 특별 상영전을 많이 했어요. 폴 토머스 앤더슨, 에릭 로메르, 짐 자무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등 익숙하지만 늘 크게 다가오는 이름들과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또한 별빛 영화제와 한국영화 기획전을 통해 <접속>,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예전 한국영화를 만나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굿즈처럼 특별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걸 받아보시면 굉장히 좋아하세요. 특유의 밝은 표정이 있어요. 올해는 그 관객들의 표정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얼굴을 더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32년까지 쭉 이어가고 싶습니다. 필자: 이자연(씨네21) 사진촬영: 오계옥(씨네21) 인터뷰 일자: 2022년 9월 21일
사랑과 영혼 영화감독 H와 김희천의 전시가 있는 북촌의 갤러리에 가기로 했다. 바쁜 일정에 쫓기는 중에 겨우 시간을 내고 약속을 잡았다. 김희천의 2021년 VR 작품 <사랑과 영혼>도 보고 신작도 본다는 생각에 H는 신이 났다. 일전에 그는 김희천의 작품을 보고 “영화는 끝났네요”라고 말했다. 물론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나도 그도 그 사실을 알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뱉는 걸 좋아한다. 소설은 끝났네요, 문학은 죽었네요, 종이책은 없어질 거예요, 민주주의는 끝났어요, 지구는 30년 내로 사라질 거예요,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사실 줄여도 이미 늦음. 마찬가지로 당신들이 이제부터 열심히 책을 읽고 극장에 가도 문학과 영화의 필연적인 소멸을 막을 순 없음.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절박하게 믿거나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최후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걸까. 단지 수사라고 하기엔 최후가 너무 많고 임박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최후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무뎌진다. 이성복이 어느 인터뷰에선가 말한 것처럼 시가 사라진다면 사라지라지, 사라질만하니까 사라지는 것 아닌가, 같은 생각도 들고 무력감도 들고. 때로는 영화는 죽지 않았으며 이제야 진짜로 살기 시작했다! 는 식의 객기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최후를 믿는 사람도 있다.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친구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포배양육에 투자하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 동료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의 고향은 텍사스 오스틴으로 대서양을 건너기 위해 뗏목을 제작하고 있단다. 내가 들은 바로 오스틴은 텍사스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도시다. 친구의 동료가 기후 정의를 외치는 건 그 때문일까. 동기는 다르지만 네덜란드의 미술가 바스 얀 아더가 떠오른다. 그는 “Ocean wave”라는 13피트짜리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길을 잃었다. 삼부작 퍼포먼스의 두번째 작업이었고 제목은 “In search of the miraculous”.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철학자 페테르 우스펜스키의 「기적을 찾아서: 알려지지 않은 가르침들의 파편」이라는 책에서 가져온 제목으로, 이 책에서 우스펜스키는 유물론적 오컬트를 창시한 신비주의 사상가 구르지예프의 교리를 해설한다. 구르지예프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함께 인육을 먹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것이 사후에 도달한 우주와 현생의 우리를 연결하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한 아마존 독자는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겼다.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사랑해.” 바스 얀 아더의 범선은 1976년 4월 18일 아일랜드 해안에서 발견됐다. 포르투갈의 아조레스 제도에서 그를봤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확인된 바 없으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비극적인 최후로 미술계의 전설이 되었지만 이는 여러 측면에서 역설적인 일이다. 작품의 제목처럼 기적이 있었다면 최후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날까? 지구의 온도가 상승해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H와 전시를 보기로 한 날은 일요일이었고 우리는 3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갤러리는 휴관이었다. 나는 당일 점심에 지도 앱을 검색하다 그 사실을 알았다. H가 물었다. 휴무일 확인 안 했어요?(참고로 일정은 내가 잡았다) 내가 대답했다. 이상하네요. 제가 확인했을 때까지만해도 월요일이 휴무였는데. 언제 확인했는데요? 이틀 전에요. H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화를 내거나 내게 깊은 실망을 했을 것이다. 휴무일을 체크 안했다고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을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 그러나 H는 된 사람이었고 타인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드문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그렇죠? 제가 미술관에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왜 갑자기 휴무일을 바꿨는지? H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H는 된 사람이지만 가끔 내버려둬야할 문제를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는 모든 문제를 그냥 두는 편이다. 내가 일으킨 문제라면 더욱…. 우리는 전시를 보는 대신 카페에 가기로 했다. 마침 나는 소설가 W와 점심을 먹었고 그에게 H를 만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W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영화인보다 영화를 더 보는 사람이다. W가 내게 말했다. 고다르 살아있다는 소식 들었어요? 네? 죽은 걸로 위장하고 잠적한 거래요. 왜요? 안락사 문제를 이슈화 하려구요. 헐. 미친. 그러나 말을 마친 W는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H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W는 세계를 역설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냥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W의 픽션적 재능은 훨씬 복합적이다. 그의 거짓말은 특정 이익이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세계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편의상 H의 방식을 세계-자체world-in-itself 라고 부르고 W의 방식을 세계-역설 world-in-paradox 이라고 부르자. 반면 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역설로 만들지도 못하는 종류의 사람으로 전형적인 해석만 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세계-바보world-idiot라고 부르자. 갑자기 무슨 세계 타령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는 미국의 철학자 유진 새커가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라는 책에서 도입한 틀을 가지고 온 것이다. 유진 새커는 철학이 더 이상 사유할 수 없는 가능성의 지평에 부딪히는 순간을 말하기 위해 이와 같은 틀을 도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에-대한-세계world-for-us이다. 이는 인간에 의해 해석되고 의미부여 된 세계다. 그러나 실재 세계는 인간의 시도에 맞서 종종 반격하고 저항한다.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는 실재의 균열. 이런 세계를 세계-자체라고 부른다. 이때 세계-자체는 가능성의 지평을 구성한다. 가능성의 지평은 사유의 한계 지점,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다. 그러나 유진 새커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길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없는-세계world-without-us로 이 세계는 세계로부터 인간을 뺀 것이다. 한계 이후, 우리의 사유와 해석, 의미 너머의 세계.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사유할 수 있을까? 그것 자체가 역설 아닌가. 내가 갑자기 유진 새커의 구분을 도입한 이유는, H와 W, 내가 그날 카페에서 한국 영화와 한국 영화의 종말,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없는-영화cinema-without-Kmovie 또는 영화-없는-한국영화Kmovie-without-cinema. 한국 영화는 세계처럼 우리에 의해 해석되고 의미부여되지만 종종 예상을 뛰어넘어 우리를 습격한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습격이 “영화” 또는 “한국” 둘 중 하나를 없애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어떨까? 2022년 여름 한국 영화 시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서교동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W와 H는 초면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므로 대화는 막힘없이 이어졌다. < 비상선언 > 봤어요? 아니요. < 외계+인 >봤어요? 아니요. < 헤어질 결심 > 봤어요? 네. 2시간짜리 CF 같더라구요. 저는 좋았는데… < 헌트 > 봤어요? 저는 이번 여름 시장에서 <헌트>가 제일 잘 한 것 같았어요. 저도 봤어요. 무한도전 같더라구요. 황정민이 나왔죠? 아닌가, 그건 < 수리남 >인가. <수리남>에는 조우진이 나오지 않아요? 조우진은 <외계+인>에 나오죠. 아… <수리남> 감독이 이정재인가요? 이정재는 <헌트> 감독. 아. <헌트>에 조우진이 나오죠? 그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북스토어 리 마빈 나는 정연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의 연재는 마지막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고, 그러나 대단원의 막은 대단히 희박한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한국 영화가 먼저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러나 이것은 산업으로서의 한국 영화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국 영화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사람들은 영화를 제작하고 극장에 갈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건 특정 시네마 체제라고 말할 무언가로, 2000년대 초반 즈음 시작되어 2022년에 끝난 무언가를 뜻합니다. 노무현에서 시작되어 문재인에서 끝났달까요. 이게 뭘까요, 정연씨. 시네마 자체를 응시하는 영화감독 H는 이런 사변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시네마의 역설을 가지고 노는 W는 이제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신호로 해석합니다. 며칠 전 정연씨와 임재철, 이여로씨를 만난 저녁에서 임재철이 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의 한 장면이었죠. 젊은 변호사 제임스 스튜어트는 새롭게 부임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갱단에 걸려 구타를 당합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갱단의 두목인 리 마빈에게 말하죠. What kind men of are you? 당신 같은 사람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이요? 리 마빈은 설명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채찍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를 내려칩니다. This Kind! 이런 놈이다, 이 새끼야! 임재철이 이 장면을 묘사했을 때 정연씨가 행복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저도 정연씨만큼 박장대소했습니다. 미래의 어느 날 임재철 평론가가 운영하는 서점이 떠올라서였을까요? 어느 순수한 씨네필이 서점에 찾아옵니다. 그는 책을 하나 꺼내들고 서점 주인에게 묻겠죠. 이 책은 어떤 종류의 책인가요? 서점 주인은 책을 받아들고 한숨을 쉬더니 책으로 씨네필의 머리를 내려칩니다. 이런 책이다, 이 새끼야! 하지만 실제 영화의 장면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영화에서 리 마빈은 채찍이 아니라 손등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를 싸대기를 때립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은 다음에 일어나죠. 바닥에 쓰러진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리 마빈이 묻습니다. 그러는 너는 어떤 종류의 인간이냐? 제임스 스튜어트는 말합니다. 나는 정식으로 허가받은 변호사요. 당신이 총으로 나를 위협한다면 나는 법으로 당신을 감방에 집어넣겠소! 결과적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는 이 말 덕분에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습니다. 리 마빈은 채찍으로 후려치면서 말합니다. 법? 하! 내가 진짜 법을 알려주마. 리 마빈은 사회의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물입니다. 유진 새커가 말한 우리-없는-세계의 핵심은 무관심이죠. 인간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영화는 또는 한국 영화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시네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아닐까. 시네마의 종말이니 인류의 멸종이니 하는 건 우리에게나 심각한 문제인 것이지요.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