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녀
- 감독
- 이신명
- 제작년도
- 1975
- 출연
- 박근형, 김영애, 김추련, 정미하, 최정훈, 신구, 도금봉, 최성호, 김남일, 김지영, 정광임, 정미경, 최명희, 이해룡, 장정국, 김명섭, 김기종, 홍윤정, 김기범, 최석, 임성포, 추봉, 남은주, 박희숙, 최현복, 박진경, 진리리, 나갑성
홍은원 (洪恩遠)은 영화계에서 그 본명과 예명 홍설아(洪雪娥)·홍진아(洪眞娥)만큼이나 여러 일에 종사했다. 그는 스크립터로 출발해 조감독을 거쳐 시나리오작가, 작사가, 감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능을 보인 충무로의 정통파였다. 두 예명에 예쁠 아(娥)자를 넣을 만큼 그는 눈처럼 아름답고 참되게 살려고 했던 것일까. 실제로 스튜디오에선 언니로 통할 만큼 영화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1950년대 중후반 그는 전창근 , 유두연 감독과 허백년 평론가 등 영화인들이 즐겨 찾던 명동 나일구 다방에 자주 나타났다. 명동에는 이 다방과 함께 김승호 , 김동원 , 장민호 와 같은 배우들이 드나든 동방살롱 등이 있었다.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에서 명동 방향 골목에 있던 예술인들의 찻집이었다. 충무로에 스타다방, 청맥다방과 같은 영화인들의 휴식 공간이 미처 생기기 전이었다. 아침에는 으레 날계란을 띄운 모닝커피가 나왔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창근 감독 일행과 한자리에 있던 한 여성이 담소 중에 크게 웃었다. 누군가가 야한 농담을 한 모양이었다. 궁금해서 돌아보니 바로 홍은원 씨였다. 작고 가냘픈 몸매였지만 베레모를 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작 그와 알고 지내게 된 것은 훨씬 뒤였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은연중에 인사를 하게 된 것이다. 직접 만나고 보니 활달하고 정이 깊은 분이었다. 그의 두 번째 감독 작품 < 홀어머니 > (1964)가 개봉된 시기였다. <오해가 남긴 것> 촬영현장 홍은원은 명문가 출신이다. 구한말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낸 홍철주(洪澈周)의 손녀로, 1922년 9월 24일 은행가인 홍우만(洪佑晩)의 2남2녀 중 둘째 딸로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교육자인 어머니 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서울 재동국민학교를 거쳐 경기고녀(경기고등여학교, 現 경기여고)에 입학한 뒤에는 학과보다 오히려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광복 전 경기고녀를 졸업했으나 집안 형편이 나빠지는 바람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들어가게 된 것이 마루젠(丸善)주식회사였다. 다행히 서적부 소속이라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1년 3개월을 보내고 아버지를 따라 만주 신경(新京)의 반관반민의 직장으로 옮겼다. 1940년 초여름이었다. 그는 새 직장에서 합창단원으로 뽑히고 다시 1년 만에 신경음악단의 홍일점 가수가 된다. 그때 받은 월급이 120원, 웬만한 봉급자의 갑절이 넘는 고액이었다. 조선영화사에서 음악을 담당한 친지를 졸라 최인규 감독을 소개받은 것은 여름휴가를 얻고 경성(서울)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최 감독은 그에게 < 태양의 아이들 >이라는 시나리오를 건네주며 하고 싶은 역할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연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8·15 광복을 맞아 서울에 돌아온 것은 1946년 11월 초순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박계주 작가 일행을 따라 돈암동 최인규 감독 집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는 < 자유만세 >의 주인공인 전창근, 황려희 와 감독을 꿈꾸는 박남 옥도 와 있었다. 최 감독은 그에게 다음 작품인 < 죄 없는 죄인 >(1947)의 스크립터 일을 제의했다. 이때 그가 촬영 현장에서 터득한 것이 영화제작에는 낮과 밤이 따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홍은원은 이 일이 끝나자 다섯 살 아래인 극작가 이용찬과 결혼했다. 그러나 양가 부모의 반대 속에 이루어진 부부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딸(이희재 숙명여대 교수, 박물관장 역임)을 낳고 4년 8개월 만에 헤어지고 말았다. <여판사> 촬영현장 1953년 초가을 그는 전쟁이 할퀴고 간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촬영기사 한형모 였다. 그는 결혼에 실패한 후배를 위로하며 영화로 보람을 찾으라고 권유했다. 이에 힘입어 조정호 감독의 < 여군 >에 조감독 겸 스크립터로 들어가 현장 감각을 익히고, 잇따라 전창근 감독의 < 불사조의 언덕 >(1955), < 단종애사 >(1956)와 이강천 감독의 < 백치 아다다 >(1956), < 사랑 >(1957)의 스크립터 겸 조감독 일을 했다. 특히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검은 머리 큰 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로 시작되는 그의 작사곡 ‘백치 아다다’(김동진 작곡)는 여주인공인 가수 나애심이 불러 크게 히트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홍은원은 그사이 시나리오에도 손을 댔다. 신경균 감독의 < 유정무정 >(1959)과 유두연 감독의 < 젊은 설계도 >(1960)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영화계에 들어선 지 11년 만이다. 이후 시나리오작가 유두연 의 콘티뉴이티 담당 수석 조감독으로 들어가 그의 감독 데뷔작 < 조춘(早春) >(1959)과 < 사랑의 십자가 >(1959)를 완성시키고 윤봉춘 감독의 < 여인천하 >(1962), < 애정삼백년 >(1962) 등에 참여하며 시대물을 익혔다. 그에게 메가폰을 잡을 기회가 온 것은 이 무렵이다. 1962년 4월 <사랑의 십자가>를 찍은 장환(張煥) 기사가 원고 한 뭉치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어느 여판사의 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 여판사 >(1962, 명보극장 개봉)였다. 뜻밖에 화폐개혁이 단행되는 악조건 속에서 어렵게 완성한 문정숙 주연의 <여판사>는 “여감독다운 섬세한 플롯의 전개에 명확한 커팅은 몇 사람의 중견감독을 조감독으로서 오히려 길러낸 숨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새영화 ‘여판사’, 「경향신문」)는 호평을 받았다. 이어 조미령 주연의 < 홀어머니 > (1964, 아세아극장)와 김지미 주연의 < 오해가 남긴 것 >(1965)을 만들었다. 그런데 세 작품 이후 그에게 좀처럼 연출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홍은원은 환갑이 지나도 다람쥐처럼 영화계를 누비고 다닐 것”이라던 유두연의 예상과 달리 그는 스스로 표현했듯 “환갑은커녕 50세도 못 돼서”(여류감독의 비애, 「세대」 1976년 1월호) 영화 현장에서 물러나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다가 1999년 1월 5일 세브란스병원에서 76세의 생애를 마쳤다. 37년 전인 1981년 늦은 봄, 첫 여감독과 함께 셋이 커피를 마시며 추억의 영화를 얘기하던 서울 서대문 근처의 다방 정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김영희 편집기사와 홍은원 감독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대한민국 연예계는 쑥대밭이 됐다. ‘그건 너’의 이장희 를 비롯해 신중현 , 윤형주 , 김추자 , 장현 , 정훈희 , 어니언스의 임창제 , 그리고 코미디언 이상해 등 구속과 불구속, 체포와 자수 등이 마구 뒤엉켜 23명의 가수, 2명의 코미디언, 26명의 악사, 그리고 3명의 배우가 붙들렸다. 이듬해 1976년까지 100명이 넘는 연예인들이 이른바 ‘대마초 파동’ 명단에 올랐으니, 방송국에서는 ‘틀 노래가 없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이장희, 신중현, 김추자 등 낯익은 이름들 사이에서 발견한 이름이 바로 배우 정미하 다. 대부분 다시 활동을 재개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날 이후’ 완전히 사라져버린 정미하는 < 애종 >(1975)과 < 비녀 >(1976) 단 두 편만을 남겼다. 진하게 생기지 않은 그녀는 당시의 시선으로 보자면 무척 담백하고 세련된 외모였다. 신인으로서 연기력은 부족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도도하게 느껴졌다. 어쨌건 더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영화계를 영영 떠나버렸다. 시신의 발견과 다양한 과학수사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정보에 따르면 대한극장에서 433명의 관객만 관람한, 정미하 의 두 번째 영화이자 마지막 작품인 < 비녀 >는 전형적인 B무비 스타일의 스릴러다. 데이트 중이던 연인들에 의해 무려 뼈다귀가 삐져나온 시체가 발견되는데, 의치를 단서로 밝혀낸 정보에 따르면 살해당한 시체(정미하)는 1년 전에 죽임을 당한 것이며 당시 나이는 27~28세였다. 이에 과학수사연구소에서 복안술의 권위자 송 박사( 최정훈 )와 황 박사(신구), 그리고 또 다른 여성연구원 하 박사( 김영애 )를 중심으로 수사가 펼쳐지고, 뼛속에서 검출된 플랑크톤으로 인해 익사로 판명된다(과학수사연구소의 놀라운 실력!). 그를 바탕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이가 바로 원경식 형사( 박근형 )다. 두 명의 ‘꽃할배’가 펼치는 공조수사랄까. 게다가 범행현장에 있던 벤츠 승용차의 차번호까지 입수되는데(3-3027이라는 번호판을 보고 ‘3학년3반 27번’으로 기억한 놀라운 소녀!) 정작 그 차의 주인 유옥련( 도금봉 )은 도둑맞은 차라며 발뺌한다. 그렇게 다른 단서들이 더해져 익사가 아니라 이미 죽임을 당한 상태에서 옮겨져 온 것임이 드러난다. 과학수사연구소 박사들과 원 형사 이후 과학수사연구소의 송 박사와 황 박사가 돋보기를 들고 증거물을 살펴보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뭔가 당시로선 대단한 과학수사 분위기를 뽐낸다. 비록 미흡한 세트이긴 하나 연구소 내부의 분위기도 어딘가 조악한 SF 세트 느낌이다. 중요한 전달사항은 내부의 스피커를 통해 방송되기도 한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더 압권이다. 신구는 마치 인기 TV 프로그램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말투로 황 박사가 죽은 아가씨의 뻐드렁니를 근거로 예쁘지 않은 여성일 거라 판단하고, 반곱슬인 것으로 보아 성격이 강할 것이라 추측한다. 또한 가난한 여자가 값비싼 의치를 한 것에 더해 ‘정신 바른 여성은 염색을 하지 않는다’는 시대착오적인 멘트로 염색을 한 그 여성이 행실이 바르지 못한 일류 호스티스라는 결론까지 다다른다. 게다가 황 박사는 골반을 보고 직감하건대 ‘성행위가 아주 능한 여자라 생각된다’고도 말한다.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얘기들이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진지하게 과학적 접근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렇게만 끝나면 황당하겠지만, 당연히 과학수사도 잊지 않는다. ‘피해여성의 음모는 범죄해결의 열쇠’라며 털 집착증을 보이는 황 박사는 그 털 대신 피해자의 손톱에서 남자의 피 흔적을 발견하면서 수사는 다시 활기를 띤다. 그렇게 얻은 정보들로 과학수사연구소는 무려 3D로 복원해낸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한다. 하지만 여자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밝혀지는 사연은 무척 기구하다. 거의 < 화차 >와도 같은 이야기다. 몽타주가 신문에 실리면서 피해자가 자신의 사촌 동생인 것 같다는 울산으로부터 제보가 도착한다. 시골 출신의 ‘깍쟁이’ 미라( 정미하 )라는 여자가 집을 나간 지 7년이나 됐고 성형수술을 한 뒤 유력 재벌 고두만의 정부로 생활했다. 그 사이 ‘옷 벗고 버는 직업’으로 돈을 벌었고 직업소개를 통해 바에 취직도 했으며 심지어 이름 또한 ‘변화자’로 바꾸었다. ‘화자’라는 이름 또한 왠지 <화차>를 떠올리게 한다, 고 그냥 마음대로 생각해봤다. 원 형사가 그 행적을 뒤쫓는 긴박한 수사장면은 정지화면의 스틸컷으로 스타일리시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다 숨겨진 남자친구 유종근( 김추련 )의 존재도 알게 된다. 그를 상대로 마치 거짓말 탐지기 사용하듯 심문하는 하 박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음악 좋아해요?” “자동차 운전할 줄 아세요?” 어떤 기준으로 뽑은 질문인지 모르겠으나 김영애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급기야 발뺌하는 유종근 앞에 미라의 골반뼈를 보여준 다음 실제 머리를 보여주는데, 잠깐이나마 진짜 정미하의 머리가 드러날 때는 거의 소스라칠 정도로 놀랍다(정미하가 테이블 밑에 들어가 머리만 쏙 나오게 한 것이다). 그를 통해 서서히 사건의 충격적인 전말이 드러난다. 결국 회장에게 살해될 수밖에 없었으나, 미라 혹은 화자는 끝까지 매력적인 ‘센’ 여자였다. 그와 별개로 < 비녀 >의 비디오 재킷은 하얗게 메이크업을 한, 실제 출연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 도금봉 의 사진이 꽉 차 있어서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아무래도 ‘도금봉’과 ‘비녀’라는 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웃는 머리 정미하 의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더 가슴 아픈 영화는 그녀의 데뷔작인 정진우 감독의 < 애종 >이다. 끝내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애종>은 이장호 감독의 < 별들의 고향 >(1974)으로 시작된 이른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영향권 아래 있다. 은행 지점장이었던 아버지( 최불암 )가 몰락하고 세상을 뜨면서 졸지에 소녀 가장이 된 미다(정미하)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생계 전선에 뛰어든다. 첫 장면부터 지긋지긋하다. 여관방에서 취업을 미끼로 미다를 성적으로 유린하려는 총무과장은 침대 위에서 뻣뻣하게 누워만 있는 미다에게 “너 송장이냐? 협조해야 할 것 아냐!”라고 다그친다. 순진한 미다는 “어떻게 하는 게 협조인가요?”라고 되묻는다. 첫 장면부터 과감한 노출을 선보이는데 그 육체가 아름다울수록, 나이 든 총무과장의 얼굴 뒤로 ‘집에 연탄 한 장 없다’는 어머니의 보이스오버가 겹칠 때 거의 지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죽하면 여관방을 탈출하듯 나와서는 명동성당 앞을 지나며 “당신의 아들 예수는 죽었나요? 그럼 나한테 멀쩡한 취직자리 하나 달라고 해주세요.”라는 독백까지 내뱉는다. < 애종 >이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다른 호스티스 드라마의 여주인공들과 달리 이런저런 남자들에 인해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만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다. 살롱에서 연주하며 생계를 유지하게 된 상황에서 “앞으로 < 대부 >는 바흐를, < 러브 스토리 >는 베토벤을, < 007 >은 모차르트를 생각하며 치겠어요. 개가 돼서 개처럼 살아가렵니다.” 혹은 “바흐보다는 ‘목포의 눈물’이 돈이 되는 세상이에요.”라고 한탄할 때 가슴이 찢어진다. 결국 미다는 그토록 좋아했던 바흐를 연주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비록 단 두 편이지만 공교롭게도 정미하 는 매번 죽음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안타깝게도 뭔가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대마초 파동을 겪으며 현실의 배우로서의 삶도 끝났다. 정미하가 이후 순탄하게 더 활동하며 대단한 배우가 됐을 거라 감히 마음대로 상상할 수는 없겠으나, < 애종 >과 < 비녀 > 단 두 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던 배우다. 영화 속에서 뭔가 멍하게 슬픔 가득한 표정이 쉬이 잊히지 않는다. 정미하 박근형 김영애 신구 김추련 도금봉 감독: 이신명 각본: 문상훈 개봉극장: 대한 관람인원: 43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