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
- 감독
- 임대웅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장현성, 이은실, 박영희
2004년 | 컬쳐캡미디어 감독: 김호준 | 각본: 유순일 | 각색: 조중훈 김요석 | 제작: 최순식 | 촬영: 서정민 | 미술: 윤도환 | 음악: 히드라 CAST 박상민: 김래원 | 서보은: 문근영 | 보은 조부: 김인문 | 상민 부: 한진희 | 상민 모: 김혜옥 | 보은 부: 송기윤 | 보은 모: 선우은숙 | 혜원: 신세경 | 동구: 류덕환 2004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무엇이었을까요? < 실미도 >( 강우석 , 2003)에 이은 두 번째 ‘천만 영화’ < 태극기 휘날리며 >( 강제규 , 2004)였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1위였죠. 당시 충무로가 만들 수 있는, 아니 당시 충무로의 수준을 뛰어넘는 대단한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2위는 어떤 영화였을까요? 놀랍게도 < 어린 신부 >였습니다. 비수기인 4월 초에 개봉한 이 영화는 전국 관객 315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권상우 를 스타덤에 올린 < 말죽거리 잔혹사 >( 유하 , 2004), 정우성 손예진 의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이재한 , 2004),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 범죄의 재구성 >(2004), 류승완 감독의 액션 판타지 < 아라한 장풍 대작전 >(2004), 원빈 신하균 의 < 우리 형 >( 안권태 , 2004), 강동원 조한선 의 < 늑대의 유혹 >( 김태균 , 2004)... 이 모든 영화들을 <어린 신부>가 제쳤고, 당시 대한민국은 ‘국민 여동생’ 문근영 신드롬으로 들끓었습니다. <어린 신부>는 24살 대학생 상민과 16살 여고생 보은의 결혼 이야기입니다. 보은의 할아버지는 꾀병을 부려, 죽기 전에 보은이 상민과 결혼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죠. 그렇게 ‘어린 신부’는 탄생합니다. 촬영 공개는 바로 그 결혼식 신이었습니다. 촬영이 공개된 날은 2003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청담동에 있는 어느 결혼식장이었는데요, 날씨가 엄청 추웠습니다. 배우들은 촬영이 없을 땐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죠. \ 현장에서 짬이 날 때 전화 통화를 하는 문근영의 모습입니다. 당시 문근영은 실제로 극중 나이와 같은 16세였고, <어린 신부>의 리얼리티는 배우와 캐릭터의 연령대 일치에서 생겨난 셈입니다. 김래원도 캐릭터와 같은 연령대였고요. 문근영이 주로 부각되었지만, <어린 신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토대엔 분명 김래원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있습니다. 당시 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승승장구 하던 김래원은 <어린 신부>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남자 주인공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게 되죠.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문근영의 모습입니다. 영화 속에서 하객들이 “예쁘다, 정말 예쁘다”라며 감탄하던 그 장면이죠. 당시 문근영은 TV에서 영화로 옮겨 오면서 < 장화, 홍련 >( 김지운 , 2003)으로 영화배우로서 자리를 굳히던 시절이죠. 그리고 <어린 신부>가 이어집니다. 사실 <장화, 홍련>의 수연과 <어린 신부>의 보은은, 극과 극의 감정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죠. 1년 사이에 그 극단을 오가는 건 10대 중반의 배우에겐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문근영은……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은 바로 보은의 할아버지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인문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정다운 연기가 이 영화에서도 관객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죠. 이 영화에서 양가 부모 캐릭터는, 주로 TV에서 활동하시는 중견 연기자들이 맡았습니다. 상민의 아버지는 한진희 씨, 어머니는 김혜옥 씨가 맡았습니다. 곧 있으면 신혼 여행을 떠날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충고를 하지만,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네요. 보은의 엄마 역은 선우은숙 씨가 맡았습니다. 아직 어린 딸이 안쓰럽기만 한 표정입니다. 대신 상민의 엄마는 며느리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어린 신부>는 김호준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한 김 감독은 1990년대 초부터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 축제 >(1996), 이정국 감독의 < 편지 >(1997) 등을 거쳐 10여 년의 도제 시스템 끝에 자신의 첫 영화를 만들게 되었죠. 한편 카메라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지난 번 < 몽정기 >( 정초신 , 20002) 포스팅 에서 자세히 설명 드렸던, 바로 그 분입니다. 촬영 당시 70세셨고, 2015년에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영화 속에서 결혼식은 보은의 수학여행 날에 치러집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보은의 결혼 사실을 모르죠. 단, ‘베프’인 혜원은 예외였는데요, 당시 14세였던 신세경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문근영보다 어린 유일한 배우? 당시 두 사람은 같은 소속사(나무 액터스)였는데요, 지금도 그곳에 함께 있네요. 상민의 선배인 지수 역은 김보경 이 맡았습니다. < 친구 >( 곽경택 , 2001)의 진숙 역으로 떠오른 그녀는 이 영화에 특별 출연을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양가 부모가 딸과 아들을, 며느리와 사위를, 배웅합니다. 보은 아빠 역은 탤런트 송기윤 씨가 맡았습니다. 선우은숙 씨 옆에 보은의 동생 동구 역을 맡은 류덕환이 보이네요. 실제로는 문근영보다 한 살 많은 오빠지만 영화에선 동생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담한 웨딩 카. 그리고 그 안의 신혼 부부입니다. 실제 촬영 때는 아니고 차 안에서 대기하는 모습입니다. 결혼식 신에 대해, 김래원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거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신”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문근영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편하게 촬영한 신”이라고 말합니다. 호기심 많은 성격인 보은이 ‘결혼 그 자체’만 생각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고 하네요.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소중한’ 흥행이었다. 올 초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 리틀 포레스트 >의 흥행은 극장가에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남성중심의 장르영화가 각광받는 분위기에서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적은 제작비에, 김태리 가 첫주연을 맡은 작품. 도시생활에 지친 혜원이 시골로 돌아와 꾸려가는 일상의 이야기가 전부다 보니 스토리라인도 단조로웠다. 임순례 감독이 < 제보자 >(2014)의 흥행에 실패한 후 꽤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이니 전작의 흥행이라는 수식어도 없는, 소위 업계의 표현대로라면 ‘총알이 부족한’ 영화였다. 개봉 2주차 흥행 역주행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앞서 열거한 모든 흥행 약점들은 <리틀 포레스트>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오히려 강점으로 다가왔고 극장가 비수기임에도 영화는 150만 명이 넘는 관객으로 흥행 반열에 올랐다. 관객들은 남성 캐릭터 위주의 극장가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에 환호했고, 소소한 이야기로 자극적인 설정의 장르영화에 지친 마음을 달랬다.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은 더 이상 남성 캐릭터의 등장과 자극적인 설정, 높은 예산의 영화만 흥행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변명을 불식시킬 수 있는 선례를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1996년 장편 < 세친구 >로 데뷔, 올해 22년. 임순례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세상밖으로> 스크립터 시절 이경영, 문성근, 여균동과 숲세권, 슬로우 푸드, 소확행 등의 가치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 일본 원작이 있지만, 혜원의 시골생활은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지금 대한민국 젊은 층의 사고를 여실히 반영한 작품이었다. 2018년의 ‘트렌드’를 담아낸 영화 같지만, 이 이야기가 탄탄하게 힘을 받은데는 임순례 감독이 지난 영화들을 통해 보여준 지향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경쟁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 소외받는 이 사회의 약자를 향한 마음, 근 10년 간 지속해 온 유기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대표를 역임하며 보여준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여성영화인 모임의 활동에서 이어진 끈으로 현재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함께 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으로 일하며 여성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의 철학이 모두 담긴 결과물이었다. <리틀 포레스트>로 또 한 번 임순례 감독의 건재함을 입증한 현재,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임순례 감독의 시간들을 살펴보려한다. 임순례 감독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건 ‘한국에서 그 시절, 여성이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고도 중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차기작을 내놓고 호평 받는가’에 대한 답변과도 같을 것이다. 임순례 감독이 처음 영화계에 뜻을 품고 입문하기까지 90년대 초반의 상황으로 볼때 감독 데뷔까지는 쉽지 않은 굴곡이 있었다. 감독들의 데뷔까지의 과정을 기술한 『데뷔의 순간』(주성철 저)에 보면 “여자라서” 영화감독이 되는 걸 불가능해 보인다는 시선에 처음엔 꿈을 접고 처음엔 영문학과를 택하기도 했으며, 감독을 꿈꾸는 여자들 대부분이 스크립터 역할이 주어지던 때라, 오히려 그 인식을 피하려고 부러 연출부의 다른 포지션을 꿈꾸기도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어쨌든 감독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우회로를 탐색하던 끝에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그는 여균동 감독의 < 세상 밖으로 >(1994)의 연출부에서 스크립터로 일한다. 그 시기에 임순례 감독이 스스로 만든 영화가 독립단편 영화로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낸 < 우중산책 >(1994)이었다.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근무하는 매표직원 여성의 이야기를 응시한 작품으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영화계가 임순례 감독을 주목하는 계기가 된다. 마침 당시는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에 유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전까지 일반적이던 충무로 도제시스템을 통해 입봉을 하려했다면 장벽이 될 요소들이 없지 않았지만, 영화제 수상으로 입증한 재능을 인정받으며, 임순례 감독의 장편 데뷔는 다소 빨리 찾아왔다. 그렇게 2년 후 <세 친구>(1996)가 첫 장편 연출작이 되었다. < 미망인 >(1955)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수식되는 박남옥 감독 이후 흔치 않은, 한국 여성감독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록할 만한 등장이었다. <세친구> 주인공들과 함께 <세 친구>와 이후 < 와이키키 브라더스 >(1996)까지, 단편 <우중산책>과 더불어 임순례 감독의 초기작으로 불리는 세 작품은 다르지만, 무력한 청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되는 영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세 친구가 갑작스레 날아온 입영통지서를 받고,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청년에게 가하는 압박과 모순을 여실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호평 받았으며, <세 친구>에서 묘사된 씁쓸한 청춘의 삶은 차기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 이어진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더 성우( 이얼 )이 떠났던 고향 수안보 와이키키 호텔에 다시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꿈꾸던 밴드일을 하고 있지만, 생활에 치여 허우적대는 30대 밴드 마스터와 그가 바라보는 친구들의 현재가 씁쓸하게 묘사된다. 마치 <세 친구>의 막막한 청춘의 20년 후를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싶은 드라마 장치를 통해 임순례 감독은 개개인을 압박하는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화두를 또 한 번 던지고 있다. 잇단 비평적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임순례 감독의 시장에서의 입지는 미약했다. 호평과 반대로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은 장편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가 2000년대 초반 박찬욱 , 봉준호 , 김지운 , 류승완 등의 감독이 대거 출연하며 한국의 장르영화가 ‘뉴웨이브’라는 말로 지칭되며 활황을 맞기 시작할 때 정작 여성감독들의 입지와 여성이 주최가 되는 영화들은 자취를 감추었던 시절이다. 그 사이 임순례 감독은 인권영화 옴니버스 프로젝트 < 여섯 개의 시선 >(2003)중 한 편인 < 그녀의 무게 >를 연출했다. 외모지상주의인 사회에서 한 여성의 극단적 선택을 그린 작품으로, 단편 <우중산책>에서부터, 이후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7), < 날아라 펭귄 >(2009) 등에서 임순례 감독이 표방한 여성 서사와 맥을 잇는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편 연출의 기회는 쉽게 찾질 못했던 휴지기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임순례 감독의 ‘부활’을 알리는 기회가 찾아온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활약한 여자 핸드볼 선수단의 활약을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임순례 감독은 자신이 가진 주제가 대중과의 접점을 획득한 첫 순간이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함께 한 명필름과 함께한 작품으로, 전작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걸린 6년 만의 신작이었다. <우생순>은 모든 면에서 기록적인 작품이었다. 전작의 흥행을 입증하지 못한 감독이 시장의 기대를 얻지 못한 채 손을 댄 작품이자, 흥행 취약장르인 스포츠 영화라는 우려도 가지고 있었다. 또 여성이 전면에 나선 여성 주연 영화라는 점도 우려의 지점이었다. 기획으로만 보자면 역시 대중의 선택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애초 ‘여성감독’으로서 의식을 배제한 채 매 작품 임했던 그가 침체된 여성감독의 입지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는 아니었으라. 하지만 “이번만은 손익분기점을 맞추겠다”는 감독 자신의 의도에서 시작해,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룬 성공은 당시 충무로 여성감독의 명맥을 환기하는 기록할 만한 성과이기도 했다. 영화 속, 여성으로, 주부로, 비인기종목으로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국가대표 여성 핸드볼 선수들의 처우와도 겹쳐지며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우생순>은 소외받는 핸드볼 선수들의 분투라는 점에서 다분히 상업적인 스포츠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임순례 감독의 전작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씁쓸한 정서를 나눠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소 ‘마이너’하다 칭해졌던 요소들을 탈피하고자, 나현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합류해 감동이 있는 휴먼드라마의 틀을 완성했으며, 스포츠영화가 줄 수 있는 스펙터클한 촬영과 편집 역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의 <리틀 포레스트>가 그랬듯, 약점이라고 지적된 <우생순>의 모든 요소들이 오히려 극장가에 신선한 환기를 시켜주는 요소로 다가온 결과다. 임순례, 이미례, 박남옥, 이정향 이후 임순례 감독은 기존 약자를 돌아보던 시선을 확장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짚어보는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사교육 열풍, 기러기 아빠 문제와 식성과 취향 등에 인색한 우리사회의 풍경을 모자이크 한 <날아라 펭귄>을 거쳐, 시골로 내려간 아나키스트 최해갑 가족의 충돌을 통해 자본주의, 환경 파괴, 국가, 교육의 문제를 되새김질 하는 < 남쪽으로 튀어 >(2012), 2005년 있었던 황우석 사건을 모티브로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다룬 <제보자>(2014)등에서 보여준 일련의 흐름은 임순례 감독의 색깔로 다가왔다. 또한 그 사이 상업영화의 사이즈에 머물지 않고 작은 영화의 기획과 연출로도 활동을 이어왔다. 우시장에 몰래 소를 팔러 갔다가 소와 여행을 하며, 자아를 찾는 한 남자의 내적 성장을 그린 작품 <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2010)을 연출하며 자신의 삶의 철학을 견지해 왔으며, 연출가의 역할을 하는 그 시기, 동물보호를 위한 옴니버스영화 < 미안해, 고마워 >( 송일곤 , 오점균 , 박흥식 , 임순례, 2011)의 제작 총지휘와 연출을 하는 등의 활동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영화로 실천해 오기도 했다. 가장 최근 임순례 감독을 만난 건 영화계 성폭력 예방, 피해자 지원을 모색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으로서였다. 『씨네21』과 든든이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함께 센터장으로 역임된 명필름 심재명 센터와 회의를 가지기도 했는데, 영화계에서 소외된 ‘여성’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임순례 감독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함을 안겨준다. 지난 3월 열린 개소식에서 임순례 감독은 “미세먼지가 많다고 활동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지 않냐”며 미투운동은 “권력을 가진 남자의 횡포와 이에 공적으로 보호할 장치를 갖추지 못한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자 어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각종 편견에 찬 시선으로 위축됐던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운동을 전달하며, 미투운동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임순례 감독이 개진해 온 필모그래피 자체에 충무로가 가진 구조적 문제와 해결 방법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순례 감독은 그런 면에서 배급과 투자가 규모가 큰 영화로만 몰리”는 상황에서 여성감독의 약세를 몸소 겪고 지켜보면서, 영화계 수직계열화의 흐름에서도 설 자리를 잃지 않고 지금의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다. 인터뷰에서 그가 한 발언 중 “자주 영화를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소통하는 매개체로서 영화의 매력”을 놓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지난 22년 그가 내놓은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소통하고자 하는 캐릭터가 이 사회의 힘없는 청년, 여성, 소외된 자, 그리고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그 소통의 창구를 지속적으로 열어준 임순례 감독의 자리가 지금의 극장가에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다시 한 번 <리틀 포레스트>의 성공 이후 임순례 감독의 행보가 기대되고 또 매번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살부(殺父), 가장 급진적인 정치성 <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는 < 지구를 지켜라 >(2003)로 한국영화사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등장한 장준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지구를 지켜라>는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와 마니아 관객층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결과를 낳았는데, 하나는 이 영화가 ‘저주받은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준환 감독이 그 후 10년 동안 장편영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준환 감독이 그야말로 “또라이 미친 영화” 1) 를 기획하다 10년 만에 내놓은 영화가 <화이>였다. 이 영화는 당해 비수기였던 10월 초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개봉하여 23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2) 평단에서도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채 애매하게 남은 면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급진적인 영화에 속한다. 그 이유는 주인공인 프로타고니스트가 아버지를 살해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적(賊)의 간악함을 폭로하기 위해 살부가 재현되는 일은 있었으나, 관객이 호감을 가지고 공감하는 주인공이 그것을 행한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소년 화이(여진구)는 친부뿐 아니라 양부들, 그리고 개발독재의 수괴까지 모든 아비를 죽인다. 요컨대 <화이>는 아비를 정조준한 영화라 할 수 있다. <화이> 이전 한국영화사에서는 아버지에게 역사적 책임을 묻고 그들을 제대로 처벌한 적이 없다. 근대 식민지가 되며 전근대에 속한 아버지는 무능한 존재로 전락했다. 이후 근대 문명의 세례를 받은 아버지는 무책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개인의 방탕으로 가산을 탕진하든, 독립운동에 투신하든 결과적으로 가족에게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부장제와 환유적 관계를 이루는 전근대 유교체계나 근대 민족의 주권이 붕괴되고 훼손된 상태에서 아버지가 자리할 곳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식민지 조선영화에서 아버지는 병자로 재현되곤 했다. 해방 이후에 잠시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투사로서의 아버지가 출현하기는 했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 현실적 의미는 다시 무색해졌다. 전후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비를 부정하는 유럽의 젊은이들과 공감했다. 그러나 농경을 기반으로 하여 유교적 가부장의 전통이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사회에서 아비에게 반항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전후 영화에서 아버지는 부재한 것으로 처리되는 정도였다. 전후 재건이 본격화되고 민주적인 자유와 평등보다는 당장의 가난을 구원해 줄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해지면서 한국영화에 다시 아버지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개 무능하고 무책임하지만 근대 엘리트가 된 자식의 ‘효심’에 의해 소환되었다. 자식 세대는 전근대적 가치[孝]로 아버지를 존중하며 근대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가부장을 꿈꾸었다. 이로써 아비 세대에 대해 식민지화와 전쟁의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일은 제대로 질문도 해보지 못한 채 봉합되었다. 이후 재건의 리더십이 다른 가부장을 허용하지 않는 폭력으로 전개되자 청년 세대는 폭력적 가부장에 의해 살해되거나, 순응하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가학-피학’의 경험은 합리화되고 피학이 가학으로 전승되는 질긴 고리가 형성되었다. <군번 없는 용사> 한국영화에서 그 고리를 끊는 시도로서의 의미를 갖는 ‘살부(殺父)’가 재현된 것은 이만희의 < 군번 없는 용사 >(1966)에서였다. 이 영화에서 국방군 유격대 대장을 장남(신영균)으로, 인민군 장교를 차남(신성일)으로 둔 아버지(최인현)는 장남 편에 서다가 차남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때 차남은 반공주의가 권장하던 일반적 인민군의 표상, 즉 단순한 패륜과 악의 범주에서 벗어나며 깊은 고뇌를 보여주어 반공주의의 이분법 도식뿐 아니라 부자관계의 재현 면에서도 작지 않은 균열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별 문제 없이 검열을 통과하고 개봉했다는 것은 공산주의의 만행을 고발하는 반공영화의 맥락에서 이해되었음을 말해준다. 역설적이게도 반공영화이기에 극단적인 재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3) <군번 없는 용사>가 나온 지 47년 만에 나온 영화 <화이>는 질풍노도와 같은 사춘기 소년과 범죄자 양부들이라는 설정을 통해 살부를 구현한다. 주인공 화이는 어린 시절 자신을 유괴했던 ‘낮도깨비’라는 범죄 집단에 의해 길러진 아이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친부모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을 안긴 이들이 양육자이기도 하다는 아이러니는 이 영화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그것은 주인공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화이는 ‘화(火)’에서 쉽게 연상되는 불의 이미지 때문에 강렬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이름은 반전의 의미 또한 내포한다. 그의 이름은 소년이 어린 시절 유괴되어 숨겨진 장소가 화이목 아래였다는 데에서 유래했는데, 사전적 의미로 화이(和易)란 ‘온화하며 까다롭지 아니하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화이는 본성 면에서는 바로 그런 아이, 사철나무처럼 변함없이 푸를 것 같은 아이다. 그러나 그가 유괴되고 적의 손에 양육되었다는 것에서 이미 화이에게는 분노와 복수로 타오를 불씨가 잠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불씨는 어떻게 타오를 것인가? 이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관객과 공유하며 전개된다. 그리고 이 영화가 선택하는 방식은 파격적인 정면 돌파다. 화이에게는 6명의 아비가 있다. 생부(이경영)와 5명의 양부가 그들이다. 5명의 양부는 낮도깨비 조직의 5명의 범죄자들, 리더 석태(김윤석), 브레인 진성(장현성), 스나이퍼 범수(박해준), 사이코패스 기술자 동범(김성균), 말더듬이 드라이버 기태(조진웅)이다. 화이는 제도 교육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온갖 범죄 기술을 전수 받으며 성장한다. 그럼에도 화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어둠을 두려워하는 여린 소년이다. 그는 어둠 속에서 괴물을 보곤 하며 미칠 듯한 두려움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석태는 오히려 그런 화이를 지하실에 가두고 괴물을 대면하라며 학대한다. 이는 화이를 자신과 같이 만들고자 하는 석태의 집착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집착을 괴물이 되어 버리면 괴물이 두렵지 않다는 경험적 ‘교육’ 논리로 합리화한다. 이는 ‘하면 된다!’ 식의 개발독재기 극기 교육을 상기시킨다. 석태는 진성이 화이를 유학 보내려고 하자 화이로 하여금 생부를 살해하게 하여 원죄의 굴레에 밀어 넣는다. 매우 극단적인 전개이지만 한국영화사에서 부모가 자식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몰아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심청전>(1925/1937/1956/1985)의 심봉사, <무정>(1939/1962)의 박진사(영채의 부친)는 자신의 안위나 신념을 위해 딸을 팔거나, 파는 것을 묵인했다. 그러면 <사도세자>(1956), <사도>(2015)의 영조나, <연산군>(1961/1987))의 성종은 어떠한가? 또는 <황야의 독수리>(임권택, 1969)나 <서편제>(임권택, 1991)에 나오는 아비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모두 자식을 죽음이나 광기로 떠밀었다. 그럼에도 아비의 폭력은 ‘자식이 아비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정당화되곤 했다. 이러한 정당화에는 아버지가 그르다 해도 자식이 아비를 거스르는 것은 패륜이라는 묵은 합의가 저류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아버지 대신 자식이 속죄양이 되었고, 이로써 텍스트는 아슬아슬하게 봉합되곤 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화이>는 다르게 대응한다. 바로 아버지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들을 죽이는 순서가 의미심장하다. 화이는 생부(生父)를 시작으로 진성, 범수, 동범, 기태, 석태의 순으로 죽인다. 그런데 화이가 생부를 죽이는 일이 석태의 음모에 빠져 아무것도 모르고 한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화이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게 되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벽장에 숨어있는 엄마(서영화)를 석태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석태가 임형택(이경영)이 생부임을 말하지 않은 채 그를 쏘라고 명령했을 때 생부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너 혹시?”였다. 이 말을 듣자마자 화이는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나중에 경찰관들이 참혹한 현장을 보고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라 추정하는 것은 화이의 위기 심리―눈앞에 선 이가 자신의 현(現)존재 기반을 뒤흔드는 인물임을 감지하고 그것을 강하게 부정하려 했음―를 말해준다. 그러기에 화이가 가장 친부에 가까웠던 아버지, 자신에게 음악과 교양을 가르치고 유학까지 보내려 했던 진성을 생부 다음으로 죽이는 것은 필연적인 전개이다. 모범적인 목사였고 유괴당한 화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던 생부를 살해하는 순간 화이가 디뎌야 할 기반과 지켜야 할 경계는 모두 무너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화이를 향한 다른 아비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화이와 반목시키는 측면에서도 이는 효과적이었다. 사격과 각종 범죄기술을 가르친 기능적 아버지인 범수와 동범은 진성이 화이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안 순간 화이가 자신들을 보다 쉽게 죽일 수 있음을 감지하고 화이를 잡는 데 매진할 수밖에 없다.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 관습에 충실하게 두 아비는 화이가 불러들인 그들의 적에 의해 처치된다. 그리고 화이가 마주하는 아비는 기태다. 그는 가장 감정적이고 즉자적으로 화이를 사랑하는 아비이다. 유괴된 화이를 제일 먼저 안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그가 본능적 온정에 움직이는 인물임을 드러내는 표지다. 그런 면에서 그는 관습적인 모성성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화이를 차마 해치지 못하고 화이도 그를 죽이지 못한다. 그는 화이가 올라간 고층 철조물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 처리된다. 그런데 기태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에서 이 영화의 태도가 드러난다. 화이의 손을 잡고 허공에 매달리게 된 기태는 “아빠가 미안해”라는 말을 남기고 화이를 살리고자 스스로 화이의 손을 놓는다. 이때 카메라는 기태의 시선으로 추락하는 그를 끝까지 추적하여 철근이 솟아난 콘크리트 바닥에 그가 떨어져 온몸이 뚫리는 것을 관객으로 하여금 감각케 한다. 그리고 석태의 시선으로 그의 참혹한 죽음을 확인 사살하듯 목도케 한다. 이는 감각적 충격에 대한 영화적 탐닉이기도 한데, 그것이 가장 온정적인 아비 죽음을 보여주는 데 발동되었다는 것은 찌른 칼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이 영화의 의지를 드러낸다. 화이가 기태를 죽이는 것을 본 석태는 화이의 생모를 찾아가 죽인다. 그리고 자신은 화이만 있으면 된다며, 화이에게 이젠 다 끝났으니 힘들었던 일은 자신이 다 정리해 주겠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석태의 왜곡된 열망과 집착이 결국 아비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했음이 드러난다. 그는 총을 든 화이에게 묻는다. “자 누굴 쏠 거야? 아빠야? 괴물이야?” 그러자 화이는 ‘괴물 아버지’ 석태를 쏜다. 여기에서 영화가 끝났다면 화이가 ‘괴물을 쏜 아이’나 ‘괴물이 된 아이’는 될 수 있어도 ‘괴물을 삼킨 아이’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삼킨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입에 넣어서 목구멍으로 넘김으로써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괴물에 대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도 괴물이 되는 것이 괴물에 대한 주체의 복속이라면, 괴물을 삼키는 것은 주체에 괴물을 복속시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에 화이는 신도시(명품 청화 골든시티)의 준공식에서 “싸악 밀고 도시를 새로 만든” 개발독재자 전회장(문성근)을 사살함으로써 ‘괴물을 삼킨 아이’임을 입증한다. 화이는 자신의 피학을 또 다른 약자에 대한 가학으로 전수하여 아버지와 같아지는 형태가 아니라 가학을 가해자에게 돌려줌으로써 ‘피학-가학’의 전승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2006년 < 괴물 >에서 2009년 < 마더 >로 이어지는 봉준호 감독의 작업이 한국 사회에서 왜곡된 모성을 문제 삼고 있다면,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아버지의 신화를 깨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짝패를 이룬다. 그런데 봉준호 영화가 제기하는 모성의 문제가 현재적이고 현상적인 차원의 것이었다면, 장준환이 내놓은 아비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근본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보다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영화적 재현은 급진적이었다. 살부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허문 상태에서 간악한 적이나 광인에 의해 자행된 것이 아니라 눈 맑은 소년에 의해 리얼리티가 확보된 가운데 감행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나는 2000년대 한국의 주류영화시장에서 이보다 더 급진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1) 《씨네21》 1136호, 2017년 12.26, 61면. 2)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통계정보 (http://www.kobis.or.kr/kobis/business/main/main.do) 참조. 3) <군번 없는 용사>에 대해서는 박유희, 「살부의 윤리와 핍진성의 기율: <군번 없는 용사를 통해 본 이만희의 영화세계」, 『영상문화』 19호, 부산영화평론가협회, 2015.12, 10-25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