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
- 감독
- 리차드 레스터
- 제작년도
- 1964
- 출연
- 존 레논, 조지 해리슨, 폴 맥카트니, 링고 스타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명단이 궁금합니다. 이건 영화감독을 만났을 때 꺼내 들기 가장 어려운 질문 중의 하나이다. 이 질문 속에는 취향의 지평을 지나쳐가는 질문 안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 지식, 체험, 감흥, (미적인, 혹은 정치적인, 때로 은밀하게 사적인) 판단, 무엇보다도 수용의 태도. 영화비평가들은 이런 질문을 받아들면 대부분 약간 젠체하면서 새침하고 교활하게 균형을 맞춰가면서 개인적인 척하는 공식적인 대답을 한다. 그런데 감독들은 이 질문 앞에서 이제까지의 자신의 작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들의 영화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종종 모순을 일으키거나 혹은 일시적인 행동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때로 심술궂어 보이는 것만 같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명단을 꺼내 들면서 개인적인 대답을 한다. 잉그마르 베르이만은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가 흥미롭다고 대답했다. 홍상수 는 <젊은 날의 링컨>, <이른 여름>, <저항>, <라딸랑뜨>, (등등과 함께) 열 편중의 하나로 뤼미에르 형제의 <항구를 떠나는 배>를 “떠올리는 순간이 좋다”고 대답했다. 봉준호 는 어떤 경우에도 <큐어>과 <조디악>을 빼놓는 법이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31년 판 오리지널 <프랑켄슈타인>을 포함시켰다. 가이 매딘은 (고레-에다의) <애프터 라이프>를 포함시켰다. 몬테 헬만은 열 편 중의 하나로 장 이모우의 <연인>을 뽑아 들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코스타-가브라스의 <Z>를 넣었다. 이런 명단은 끝이 없다. 물론 여기서 명단의 우열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임권택 감독님에게 망설이던 끝에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법이 없어요. 내 영화도 만들고 나면 다시 보지 않아요. 그런데 단 한 편, 펠리니의 <길>은 두 번을 보았어요. 그게 그렇게 쓸쓸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에 남는 거요” 그러면 어떤 영화감독들을 좋아하십니까? “그때는 영화를 볼 데가 극장밖에 없었으니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는 내가 영화 찍으러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였으니까, 존 포드,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그렇게 세 명이지, 제일 싫어했던 이름은 힛치콕이지, 그 칼부림 하는 영화를 한 번 보고는 다시는 볼 생각을 안 했으니까” 임권택 감독님은 <사이코>를 말하면서 (비유법이 아니라 정말로) 몸서리를 쳤다. 우선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권택 세대는 <카비리아의 밤>이 마지막 펠리니 영화였다. 임권택은 <달콤한 생활>부터 펠리니 영화를 보지 못했다. 만일 1963년에 임권택이 <8 1/2>을 보았다면 그 ‘이후’의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볼 수 있었을까, 라고 상상해보고 싶어진다. (임권택 감독님은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 상상은 단순하게 귀결되지 않을 것이다. 영향이라는 불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응답이다.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투쟁의 긍정과 긍정의 투쟁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영화사가 개인적인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사이에는 그 무대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거부와 저항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충무로의 첫 번째 세대들, 유현목 , 김기영 , 신상옥 , 김수용 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완전히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 자전거 도둑 >이나 < 무방비도시 >에 거의 영향 받지 않았다. 내가 이 영화 제목들을 꺼내 들었을 때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대답은 무미건조하게 “좋은 영화들이지요”라고 말한 게 전부이다. 임권택을 리얼리즘 영화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어 하는 비평들은 이 취향의 명단 앞에서 머뭇거릴 것이다. . <아일랜드의 연풍>(존 포드, 1952) 이 명단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기 바란다. 임권택의 영화를 차례로 보다가 세 편의 영화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될 것이다. 하나는 < 남자는 안팔려 >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같은 사나이>이고, 마지막 하나는 < 30년만의 대결 >이다. 아쉽지만 <남자는 안팔려>는 프린트가 유실되어 우리가 볼 수 없다. 나는 이미 < 바람 같은 사나이 >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각색한) 존 스타제스의 <황야의 7형제>를 각색한 영화라는 것을 이미 설명했다. 임권택은 수없이 많은 원작소설을 각색했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했고, 라디오 드라마를 각색했다. 그리고 세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각색했다. <남자는 안팔려>는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변주한 리메이크 영화이다. 그리고 <30년만의 대결>은 존 포드의 < 아일랜드의 연풍 >(지금은 <말 없는 사나이>라는 원제(The Quite Man)로 잘 알려졌지만 여기서는 국내 개봉제목으로 쓰겠다)의 리메이크이다. 먼저 첫인상을 고백해야겠다. <30년만의 대결>을 처음 보기 전까지 누구도 내게 이 영화가 <아일랜드의 연풍>의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는 무방비 상태였다. 어느 장면부터 처음 보는 이 영화를 어디선가 이미 보았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무룡과 박노식이 김지미를 사이에 두고 동네에서 주먹싸움을 시작할 때 누구라도 <아일랜드의 연풍>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임권택 감독님에게 혹시 이 영화가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한 번, 이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그거를 리메이크 한 거요, 라고 바로 말을 이어받으면서 그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거든, 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제17 포로수용소>와 그 영화 두 편이 제일 재미있게 본 영화요” 1955년 11월 15일에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 영화를 임권택은 (아마도) 연출부를 하면서 보았(을 것이)다. 그런 다음 <30년만의 대결>을 제작할 때 누구도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꺼내 들어 참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비디오가 발명되지 않았으며, 한국에는 시네마테크가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서 작업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자막에 각본 송장배, 각색 박남주라고 되어있다. 누군가 기억을 더듬으며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현장용 각본을 썼겠지만, 각색은 이 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왜 어디에도 원작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그때 한국은 국제 저작권협회에 가입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면 비틀즈의 곡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였으며, 충무로 녹음실에서는 음반 라이브러리에 보관된 음반을 자유롭게 꺼내 들어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저작권 여부의 진실은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흥미로운 방점. 17년 전에 본 영화의 기억, 그리고 감흥.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졌을까. 그런 다음 기억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던 <아일랜드의 연풍>은 어떤 영화였을까. 나는 여기서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에 대해서 쓰지는 않을 생각이다. (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허문영이 ‘존 포드 이야기’ 연재에서 좋은 글을 썼다 .) 대신 임권택은 존 포드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라는 오랜 질문에 질문해볼 생각이다. 나는 대답의 자리에 질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라 두 번 질문이라고 썼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이 임권택의 ‘자리에서’ 해보는 것이라면 두 번째 질문은 임권택의 ‘자리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우선 1971년이라는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 해에 임권택은 일곱 편의 영화를 찍었다. < 요검 >,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 둘째어머니 >, < 명동 삼국지 >, < 원한의 두 꼽추 >, 그리고 <30년만의 대결>. 이 영화들을 다른 방식으로 소개할 수도 있다. 무국적 무협영화 두 편, ‘다찌마와리’ 액션영화 네 편, 멜로드라마 한 편,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한 편. 그저 뒤죽박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명단. 여기서는 어떤 일관성도 발견할 수 없다. 그 말은 한 감독으로서 말 그대로 주문을 받아서 찍어내듯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임권택의 고통스러운 시간. 그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다음 영화를 준비할 틈도 없이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고 기억하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존경하는 존 포드의 영화를 만들었던 시간, 1971년이라는 참혹했던 그 해에 <30년만의 대결>을 만들었던 자리는 임권택의 잠시나마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가정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기의 이상할 정도로 비참하고, 우울하고, 참담하고, 어둡고,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버린 영화들 속에서 드물게도 명랑하고 쾌활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키겠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따금 유머를 간직한 장면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시종일관 로맨틱하고, 밝고, 명랑한 영화를 찾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대규와 판수 옥희 먼저 <아일랜드의 연풍>과 <30년만의 대결>의 서사에서 인물들의 배치에 관한 차이를 설명하겠다. <아일랜드의 연풍>은 션 쏘튼이 기차를 타고 미국을 떠나 고향인 아일랜드의 (가상의 마을) 이니스프리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중에 밝혀지기는 하지만 션 쏘튼은 권투시합에서 그만 상대방이 죽는 결과에 다시는 주먹을 사용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운명처럼 션 쏘튼 이웃에 사는 메리(모린 오하라)에게 반하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메리의 오빠 레드 윌(빅터 맥라글렌)은 지참금을 내놓지 않는다. 션 쏘튼은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아일랜드 여자인 메리에게는 모든 것이 달린 자존심의 문제이다. 션 쏘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오빠 레드 윌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온 마을로 이어지는 주먹 싸움의 장관이 펼쳐진다, 라고 썼지만 사실 5분 동안 이어지는 이 클라이맥스에서 정작 션 쏘튼과 오빠 레드 윌의 싸움 쇼트는 얼마 되지 않는다. 존 포드는 이 시퀀스를 구경꾼들과 이웃 사람들, 동네 주민들이 집단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동선으로 연결하면서 역동적으로 만든다. 물론 디테일의 아름다움은 다른 데 있고, 존 포드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션 쏘튼과 메리 사이의 보기 드물게 성숙한 사랑의 감정선이다. 게다가 거의 천국처럼 색채 설계된 이니스프리의 테크니컬러는 <아일랜드의 연풍>을 존 포드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중의 하나로 끌어올린다. <30년만의 대결>은 대규(최무룡)과 판수(박노식)이 박포장기를 두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표현을 빌리면) “죽마고우”지만 30년 전에 한 여자(김지미)를 동시에 사랑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고향을 떠나갔다. 그런 옥희가 남편을 여의고 딸 지향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다. 대규는 상처를 하고 아들 웅(김희라)와 함께 목장을 하고 지내고, 판 수는 아내와 아들 민(윤양하)과 함께 양계장을 하며 지낸다. 이 마을의 두 명의 부자. 옥희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다시 대결을 시작한다. 문제는 고향에서 농지 제방이 무너지면서 시작한다. 비만 오면 매번 물난리를 겪는 고향에 옥희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 결심을 하지만 그건 큰돈이 드는 개간사업이다. 여차저차 한 우여곡절 끝에 옥희는 한 달 후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판수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어음을 쓰고 돈을 빌린다. 하지만 판수는 속임수를 쓰고 옥희는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자 마음에 끌리는 대규와 도망칠 생각을 한다. 떠나는 그들 앞에 판수의 아들이 나타나 그래도 이건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냐고 가로막는다. 대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기다리는 판수 앞에 나타나 옥희를 앞에 두고 주먹 대결을 벌인다. 밤이 올 때까지 다투던 두 사람은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앞에 두고 마지막 주먹을 주고받는다. 그런 다음 판수는 대규를 업고 옥희의 별장에 가서 내려놓은 다음 “나란 놈은 말야, 이제 마누라의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라고 껄껄 웃으며 그들 곁을 떠난다. “나란 놈은 말야, 이제 마누라의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 <아일랜드의 연풍>은 션 쏘튼을 주인공으로 하여 메리와의 로맨스를 통해서 고향이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배워나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서 공동체는 다소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봉쇄 속에 1952년 매카시 냉전 체제하의 미국에 대한 ‘어떤’ 진실을 불편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존 웨인이라는 스타 기호는 하나의 부조리기 되어간다. (잘 알려진 대로 보수주의자이지만 극우파를 혐오했던) 존 포드는 그걸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또한 그걸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1955년 정창화의 연출부를 하던 임권택이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할리우드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그 안에 놓여진 해석들 사이의 상호경쟁적인 모순들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라고 <아일랜드의 연풍>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그때는 한국전쟁이 휴전한 지 채 삼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셉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금지된 정치적 용어였다. 임권택이 <아일랜드의 연풍>의 이야기에 이끌린 행복은 특권화된 장소로서의 고향일 것이다. 아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향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그때 그의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세계 바깥에 놓여있었다. 갈 수 없는 집. 그 집이 놓여있는 고향이라는 장소. 그때 임권택이 가정하는 그 고향은 아직 한국전쟁이 도착하지 않은 곳이다. 거기서 임권택이 유지하려는 역사적 거리는 아직 미학적으로 형식화되지 않았고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으로 긴장을 잃지 않은 상태로 불안하게 머물러 있었다. 션 쏘튼은 자기가 돌아가고 싶을 때 고향에 돌아왔고 그런 다음 거기서 사랑이라는 시련을 견디면서 받아들여진다. 임권택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존 포드는 션 쏘튼과 함께 미국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가지만 임권택은 옥희라는 여자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시작한다. 우리는 옥희가 왜 대규와 판수 두 남자를 외면하고 다른 남자를 선택한 다음 고향을 떠나갔는지 끝까지 알지 못한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어디에서도 옥희가 자신과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볼 수 없다. 심지어 옥희의 딸조차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옥희는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단 한 순간도 더듬지 않는다. 차라리 잠시 고향에 여행 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니, 그렇다 할지라도 옥희는 고향의 목가적 풍경을 조금도 즐기지 않는다. 옥희를 동네 사람들은 설씨네 과수원집 딸이라고 부른다. 옥희는 단 한 번도 과수원을 방문하지 않는다. 정말 고향에 과수원이 있기는 한 것일까. <30년만의 대결>을 보면서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대규와 달아나기로 결심한 장면을 제외하면) 옥희가 외부에 전혀 외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선의를 가장하여 다시 떠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저수지라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공사. 저수지는 혹시 매거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이상할정도로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서 약간 용기를 내서 인용하고 싶다. “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첫 걸음을 내디디면 꿈 전체가 아니라 꿈 내용의 일부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에게 꿈과 관련하여 무슨 생각이 떠오르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정신적으로 아무 것도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꿈을 여러 부분으로 분할시켜 제시하면 환자는 각 꿈-부분의 배후 사고라고 부를 수 있는 일련의 생각들을 떠올린다. (중략) 내 방법은 전체적 해석이 아니라 부분적 해석이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 김인순 옮김) 물론 임권택을 환자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태를 추상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판수의 마지막 대사에서 어떤 입구를 찾은 것만 같았다. “...(중략)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 자장가. 잠들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 요점은 <30년만의 대결>을 일종의 백일몽처럼 가정한 다음 그 안으로 들어갈 때 전체와 만나는 대신 부분적으로 분할시켜 이 이상할 정도로 즐거운 영화 내부에서 난처하게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대목들만을 향해서 질문한다면 우리는 질문 안의 질문과 대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무대를 먼저 돌아보자. 이 마을에는 두 명의 부자가 있다. 한 명은 판수이고, 다른 한 명은 대규이다. 한 명은 양계장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목장을 하고 있다. 영화는 판수의 집과 대규의 집, 양계장과 목장을 오간다. 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우기가 다가오고 장마가 지면 제방이 무너져 농사를 망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단 한 장면도 논밭을 보여준 적이 없다. 더 이상한 것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마을 사람들 중에서 양계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볼 수 없다. 양계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과 한 눈에 구별되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분주하게 양계장과 목장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마치 서로 다른 고장에 사는 것처럼 겹치지 않는다. 양계장과 목장, 그리고 농사. 물론 그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존의 양식을 우리는 끝내 보지 못한다. <아일랜드의 연풍>에서의 이니스프리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매일 매일의 일상의 축제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천국이라면 <30년만의 대결>의 고향은 (끝내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둘로 분리된 생산양식이 공존하는 가운데 현재의 토대가 보이지 않는 (니코 풀란챠스의 표현을 빌려) 비-장소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일종의 신기루. 임권택의 고향에는 무언가 어긋난 질서가 있다. 옥희는 왜 돌아왔는가. 혹시 이 어긋난 질서를 교정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얼핏 보기에는 매거핀처럼 보이는 저수지가 사실은 가장 강력한 교정수단인 것은 아닐까. 이때 이 고향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양쪽으로 찢어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판수와 대규, 양계장과 목장을 단순히 두 개의 힘이 대립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가 과거에로 되돌아가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판수는 영화 내내 한복을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서울에서 온) 옥희를 만난다. 그의 집은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를 갖추었고 방안에는 오래된 자개장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아내도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갈 때까지 내내 한복을 입고 있으며, 아들 민은 가까스로 농촌을 벗어난 것 같은 면바지와 셔츠를 입고 다닌다. (지금의 우리들이 볼 때에는 다소 기괴하게도 민의 의상은 그때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새마을 지도자처럼 보인다) 반면 대규는 마치 도시생활을 하다 돌아온 것처럼 청바지를 입고 때로는 선글라스도 쓰고 다닌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아무도 청바지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없다. 청바지와 선글라스는 부의 상징이 아니다. 대규는 양옥의 양식으로 지어진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아들 웅은 가죽 바지와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오토바이는 이상할 정도로 이 농촌의 풍경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시끄러운 오토바이 모터 소리는 등장할 때마다 목가적인 풍경의 고요함을 깨트리곤 한다. 대규가 옥희와 함께 고향에서 달아나기 위해 머플러를 하고 댄디한 감각의 재킷을 입고 나타난 모습은 판수에게서 상상하기 힘든 의상이다. 그 둘은 어느 쪽도 고향에 긍정적인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 판수는 과도할 정도로 고리타분하고 회고적인 과거로 돌아서고 대규는 무언가 어색하고 종종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는 미래가 지나치게 서둘러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그 둘 사이에는 이상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구두쇠라는 사실이다. 그건 단순히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 과도하리만큼 집착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둘은 ‘충분히’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여전히’ 빈곤하다고 여긴다. 충분히 부자인데도 여전히 빈곤한 것은 자신의 재산에 채워야 할 공백을 셈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백은 재산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구두쇠는 그 불가능성을 재산의 물신성으로 환원하기 시작한다. 억압과 부인 사이의 도착적 관계. 신경증적 불안과 현실적 불안이 페티시즘을 매개로 결합한다. 이때 옥희는 그 간극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 물신성을 무효로 만든다. 여기까지는 단순하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이걸 도식적으로 읽으면 안 된다. 물론 이 설정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장면의 재료들이 반대로 우리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어렵지 않게 대립의 상황에로 데려갈 때 이 백일몽이 의도하는 바를 명백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옛 것과 새 것. 지나가고 있는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 그 간극을 연결 짓기 위해 옥희가 나타났다. 만일 옥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고향의 간극은 그냥 찢어져나갔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 두 개의 힘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임권택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대규와 판수가 장기를 두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몰려들었다. 판수는 자기가 이겼다고 장 받아라, 라고 외치지만 대규는 멍이야, 라고 하면서 비기는 장기를 만든다. 비김수를 쓰면 한 쪽이 판을 엎거나 포기를 하(거나 양보를 하)기 전에는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는 법이다. 장기판을 덮고 판수는 대규에게 그러면 팔씨름으로 승부를 내자고 한다. 이것도 요지부동 박빙의 승부로 이어진다. 이 균형을 깨는 건 누군가 달려와 서울 간 설씨 과수원네 딸이 돌아왔어요, 라는 외침이다. <30년만의 대결>은 정확하게 거기서 시작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힘의 긴장관계. 그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어온 옥희. 나는 이걸 다소 아이러니하게 정식화시키고 싶다. 옥희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 있었는데 바깥에서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은 여기에 완전히 매혹되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옥희는 아무 것도 상징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가가면 <30년만의 대결>이 담고 있는 즐거운 기분을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눈 감은 척 지나간 가장 이상한 설정을 건드릴 것이다. 질문 안의 질문. 대규와 판수를 비교하면서 한 쪽은 전통, 다른 한 쪽은 근대, 라는 식으로 도식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의 가설을 전복시키기라도 하듯 서울에서 내려 온 옥희는 막 도착하자마자 방문한 대규와 판수를 한복을 입고 맞이한다. 마치 옥희가 고향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다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에게서 서울의 어떤 흔적도 볼 수 없다. 옥희는 줄곧 한복을 입고 생활한다. 심지어 자신의 생일잔치를 하는 자리에서도 촛불을 켠 케이크를 가져다놓고 서양의 생일 축하곡을 부르면서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 의상의 일관성이 계산된 연출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옥희는 저수지 공사를 위해서 과수원을 내놓고, 그런데 그걸 사려던 부동산 사업가가 내놓은 약속어음이 부도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갑자기 도회적인 복장을 하고 문 앞에 나타난다. 그런 다음 옥희는 다시 한복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예외로 하고...) 옥희가 한복을 벗어던지는 건 대규와 함께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 전부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이 영화가 1971년의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싶다. 나는 여기서 에드아루트 푹스를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풍속으로서의 역사. 사생활로서의 유물론. 일상생활의 사소한 디테일들 사이의 변증법. 옥희는 서울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때 서울에서 가시적인 풍경 앞에 형상화된 여성성은 두 종류의 여자로 나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 가정생활을 하는 여자들. 물론 실제의 한국 사회는 그때 청계천과 구로공단에서 ‘공순이’들을 착취하기 시작했고, 유한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이었던 ‘여대생’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었고, 정반대의 자리에서 밤의 길거리에서 타락한 요부의 에로틱한 이미지를 도시화로 옮겨놓은 성매매 산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풍경 저 너머에 매우 제한적이거나 그림자 아래 숨겨져 있었다. 나는 지금 1971년의 풍경을 말하는 중이다. 이때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경험해보지도 않은) 1950년대 미국 산업사회의 ‘오피스 레이디’의 복장을 마치 자신들의 교복처럼 입었다. 근대의 레디메이드. 혹은 근대화 식민지로서의 지체된 데자뷔.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OL(Office Lady)이라고 불렀다. 반대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이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신 설명하기라도 하듯 하나의 표시로서 전통적인 한복을 입었다. 나는 근대의 물결, 산업의 세계, 자본의 현장에 있지 않답니다, 라는 걸 의미하는 사회적인 모드의 양식. 복식의 수사학은 (바르뜨가 잘 설명한 것처럼) 은유가 빈곤한 개인적인 시학이자 (부르디외가 설명한 것처럼) 구별의 사회학이기도 하다. 1971년의 여성들은 아직 미혼이었을 때는 한복을 명절에만 입다가 결혼을 하면 마치 그것이 하나의 의무적인 의상인 것처럼 일상에서 입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여성이 한복을 입은 것은 이중적인 기호가 되었다. 하나는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습니다, 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남편이 있습니다, 라는 이중의 기호. 그때 한복에는 유교적인 가치의 맥락 속에서 전통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나는 집에서 가정을 지키는 정숙한 아내입니다, 라는 하나의 모델에 자기를 기입하기. 옥희가 고향에 돌아와 대규와 판수 앞에서 전시하는 복장은 정확하게 그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에 하나의 의미를 더하고 싶다. 옥희의 한복에서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물론 남편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옥희가 고향에 돌아와 전시하는 복장은 나는 정숙한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도 읽힐 수 있다. 누구에게? 대규와 판수에게. 돌아온 옥희에게 대규와 판수는 단 한 마디도 옥희의 전 남편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옥희는 단 한 마디도 전 남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금지의 단어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에는 어떤 애도도 없다. 서울을 괄호 친 채 추억과 향수만이 이들을 감싼다. 잃어버린 시간, 되찾은 시간. 대규와 웅 부자 판수와 민 부자 옥희와 지향 모녀 세 번째 이상한 설정. 대규와 판수, 그리고 옥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 한 명의 자식이 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마치 삶 자체를 ‘카피’한 것처럼 보인다. 아들은 아버지와 대결할 의사가 조금도 없다. 그건 대규의 아들 웅이나 판수의 아들 민 두 사람 모두 동일하다. (아버지가 바람이 나자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난 다음 민이 잠시 판수에게 저항하지만 그건 잠깐 동안 불평을 늘어놓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들은 마치 얌전하게 지내기만 하면 아버지가 재산을 물려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순종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설명적으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무엇보다 서사의 전반부에서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를 연출하는 것은 민과 웅이 옥희 딸 지향을 보자마자 경쟁적으로 구애를 할 때이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것처럼 다시 한번 반복한다. 이때 민과 웅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겪지 못한 똑같은 딜레마에 동시에 빠진다. 그들은 한 눈에 자신의 아버지 대규와 판수가 옥희와 재혼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그렇게 되면 새 어머니 옥희를 모시는 순간 지향을 상대방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을 못 견디게 만든다. 아버지의 이득은 자신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아버지의 상실을 기대하면서 상대방의 아버지의 이득을 기대하게 된다. 말하자면 두 명의 아들은 두 명의 아버지의 이해관계와 동일한 상호 모순의 계산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아일랜드의 연풍>에는 없는 구도이다. 물론 이 문제는 심각하게 진행된다기보다 서사 전체에서 가벼운 기분전환에 가깝다. 갈등은 간단하게 해결된다. 지향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뉴욕에 있는 애인이 갈등의 과정에서 적당한 순간에 나타나 민과 웅의 구애를 무효로 만든다. 지향은 약간의 미련도 없이 그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 그런 다음 지향은 애인과 함께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데 잠시만 멈춰보자. 지향은 분명히 자신의 어머니가 저수지 공사를 위해 과수원을 내놓았고 그 과정에서 부도가 난 (거짓) 약속어음 때문에 곤궁에 처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머니 곁을 미련 없이 떠난다. 단순한 갈등 속에 포함된 이해하기 힘든 서사 내부의 인과관계 사이의 불연속성들. 하지만 갈등이 단순하다고 해서 그것이 포함하는 의미마저 단순한 것은 아니다. 나는 먼저 갈등을 건드리고 난 다음 지향의 이상한 선택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등장할 때 갈등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이때 갈등은 양쪽 방향으로 향한다. 하나는 아들의 자리에 무언가를 물려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하나의 시간이 끝나고 하나의 사건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30년만의 대결>에서는 기이하게도 어떤 아들도 아버지와 대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아버지도 아들을 위한 자리를 남겨놓지 않는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30년만의 대결>에는 시간이 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시간의 진공상태에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임권택에게 가장 즐거운 것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거기서 어떤 시간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백일몽적인 환상. 시간 없는 장소. 과거에 머물러 있는 판수와 그를 둘러싼 미장센들. 아직 고향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대규. 대규와 판수의 공존. 그 둘 사이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균형의 긴장상태. 임권택이 여기서 즐기는 것은 고향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30년만의 대결> 속에서의 고향은 고색창연하면서도 (마을사람들의 초가지붕으로 둘러싸인 동네) 이상하게 모던하고 (젖소들이 유유히 노니는 유럽풍의 목장), 종종 퇴행적이면서도 (단 한 대의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진 동네) 때로 급진적이다. (웅은 1960년대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터사이클족(族)들과 어울린다) 이때 지향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이미 웅과 민이 그들의 아버지 대규와 판수의 카피라는 것을 설명했다. 웅과 민은 왜 동시에 지향에게 매혹된 것일까. 고향의 수상한 점. 지향(과 옥희 집에서 일하는 젊은 가정부)를 제외하고 이곳에서는 단 한 명도 젊은 여자를 볼 수 없다. 좀 우스꽝스러운 추론. 그러니 웅과 민이 어떤 여자와도 데이트를 하지 못하면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웅과 민은 어느 쪽도 자신의 고향 애인을 외면하고 지향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면하는 것은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애쓰는 판수이다. (물론 대규는 이미 상처(喪妻)했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수고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매혹의 요점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향은 여기서 조금도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웅과 민을 사로잡은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건 지향 자신도 자기가 그걸 갖고 있다고 알지 못하는 그 어떤 힘, 그런데 웅과 민에게만 의미가 있는 그 어떤 것이라고 가정해볼 수 없을까. 혹시 웅과 민이 지향에게 끌리는 것은 그녀가 서울에서 왔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한 번 더 환기하는 1971년의 상황, 서울과 ‘시골’의 격차는 단지 지리적인 것 이상으로 근대의 지체된 시간적 간극의 물화이기도 했다. 나는 구태여 시골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곳은 지방 도시가 아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버스 한 대 볼 수 없는 마을. 대규는 옥희와 이 마을에서 도망치려할 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언덕을 걸어서 읍내까지 갈 생각이었다. 360도로 카메라가 둘러보아도(round_panning) 그저 산과 논밭과 언덕과 가로수가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길만이 보이는 동네. 여기에 갑자기 ‘출현한’ 지향은 웅과 민에게 단지 서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기호 그 자체일 것이다. 그저 풍문으로 전하는 서울. 그때 웅과 민은 지향에게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다가간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지향은 세 개의 가능성을 품고있는 매혹의 근거였던 것은 아닐까. 어떤 세 개의 가능성? 아버지를 떠날 수 있는 가능성. 집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 <30년만의 대결>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이 모든 설정의 이면에는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계기로 가득 넘쳐난다. <젊은 날의 링컨>(존 포드, 1939) 당황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30년만의 대결>은 (미학적인 성취는 일단 제쳐둔 상태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에 가까이 가져다놓으면 놓을수록 마치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사의 결들이 점점 더 완강해진다. 그래서 그 둘 사이에서 유사점이라곤 클라이맥스의 순간에 두 사내가 주먹으로 싸우면서 서로의 우정을 나누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라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나는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임권택은 존 포드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임권택은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무엇을 즐긴 것일까. 존 포드에 대한 많은 글들은 풍경에 대해서 언급한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존 포드는 풍경이 아니라 장소의 영화를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성립시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한다. 하나의 장소라는 문제. 그때 그 장소는 종종 무심하고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것처럼 거기 있지만 하여튼 거기서 등장인물들은 살아야하고, 견뎌야하고. 배워야하고, 기쁨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매번 결단을 내려야한다. 이 장소에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거기서 영화가 시작하고 거기서 영화가 끝난다. 존 포드는 영화에서 드라마가 행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심리적인 장면을 연출한 적이 없다. 존 포드는 행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표현하긴 했지만 여기서 애쓰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 자체가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종종 기적처럼 보인다. 하나의 과정. 존 포드의 방법론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날의 링컨>은 성장의 장소를 찍고 있는 중이다. 정확하게 똑같은 의미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은 휴식의 장소로서의 이니스프리를 성립시키기 위해 애쓰는 영화이다. 여기서 임권택이 즐긴 것은 휴식이고, 그가 배운 것은 그것을 성립시켜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1971년의 임권택은 지친 몸을 이끌고 이 휴식의 장소에 와서 허송세월을 보내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막 영화에 도착했던 자신의 젊은 날의 순간에 잠시 머문다. <아일랜드의 연풍>을 보면서 잠시나마 누렸던 꿈결 같은 귀향의 시간. 아마도 그때 전라남도 장성은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만큼이나 먼 곳이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곳.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장성과 한국전쟁 이후의 장성은 얼마나 다른 곳이었을까. 소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들 토벌의 무대에 되었던 곳 중의 하나.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 물론 비평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30년만의 대결>을 말하면서 이 영화의 씬들 사이에 묻어나는 정감을 완전히 치워버리면 우리는 해야 할 말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개념적인 영화가 아니다. 임권택은 열렬한 시네필이 아니다. 아직은 <30년만의 대결>이 성숙하지 않은 임권택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기서 옥희가 돌아온 고향이 임권택이 그 자신의 고향에 이끌리기 시작하는 증후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들)에서 은밀한 고향의 선을 탐색해왔다. 그는 아주 느리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0년만의 대결>은 < 바람 같은 사나이 >와 < 아내들의 행진 > 사이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을 이어주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하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다른 한 편으로 물 쓰듯이 낭비해버렸지만 마음 한 구석에 존 포드라는 위대한 이름을 가슴에 품었던 젊은 날의 청춘에 대한 호소를 담은 그 자신만의 내밀한 예술의 세계가 있다. 영화라는 특수한 세계.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삶. 먹고 산다는 근거. 이 세계는 돈 밖에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여튼 여기는 예술의 세계이다. 현실적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품어야하는 이 세계의 진정성에 대한 의지. 정창화의 연출부를 하면서 품어보았을 어떤 꿈. 틀림없이 수백 번도, 수천 번도 더 가져보았을 꿈. 임권택은 몇 차례이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영화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을 해보았죠, 그리고 그걸 버리면서 내 영화를 찾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비로소 한 거지요” 아마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선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선이 더 있을 것이다. 그건 자기 삶의 궁핍함에 대항하는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의 세계였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 몰래 숨어서라도 기쁨을 하여튼 유지하려는 안간힘. 프로이트의 가설. 그런데 마치 임권택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적 조건을 더 나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것만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만들었다. 1971년의 영화들의 목록. 임권택은 고통과 비애로 가득 찬 세계를 그 자리에로 되돌아오듯이 반복해서 다루었다. 그의 주인공들은 비참했고(< 황야의 독수리 >), 더럽혀졌고(<둘째 어머니>), 종종 신체절단의 시련을 이겨내야 했으며(< 애꾸눈 박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원한의 두 꼽추>), 그런 다음 쫓겨나듯이 자기의 세계에서 퇴장해야만 했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오랫동안 그의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실존적인 현실때문이 아니라 타락한 로맨스가 요구하는 규칙에 따라 그렇게 행동했다. <30년만의 대결>은 마치 거기에 반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승하는 로맨틱한 감정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다. 세 개의 선. 고향의 선. 예술의 선. 로맨스의 선. <30년만의 대결>이 내게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개의 선이 완전히 서로 뒤엉켜버렸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연풍>의 이니스프리 처음의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존 포드의 이니스프리와 임권택의 고향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이니스프리는 에덴동산이지만 임권택의 고향은 애당초 가져본 적이 없는 에덴이라는 것이다. <30년만의 대결>에서 옥희는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교회를 찾아가 목사를 자신의 멘토처럼 여기면서 모든 것을 의논하지만 정작 목사는 여기서 가장 무능하고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팔려가듯이 옥희가 판수와 결혼을 해야 할 때조차 속수무책으로 주례를 진행해야하는 입장에 놓이는데도 그걸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때 이 영화는 세상에 어떤 믿음도, 기대도, 신념도, 희망도 없음을 부지불식간에 내비친다. 다소 괴이하게도 임권택의 고향은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자본주의적인 거래의 양식 아래 규칙이 집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협상도 없다. 계약을 맺으면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고향의 법칙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그 안에서 로맨스가 버틴다.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지참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약혼녀 메리의 오빠 레드 윌과 주먹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30년만의 대결>은 아주 멀리 떨어져있다. 결혼식을 피해 도망치던 옥희와 대규 앞에 판수의 아들 민이 나타나서 가로 막았을 때 대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교회로 되돌아간다. 그런 다음 판수에게 목장 문서를 내민다. 그러자 판수는 그 문서를 불태워버린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판수는 여기서 자신에게 돈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제스처는 정반대이다. 판수는 그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론 ‘구두쇠’ 판수는 그 돈이 탐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돈을 받으면 판수는 대규와 싸움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정확하게 그 돈은 거래이다. 그 돈을 거절함으로써 판수는 대규와 싸울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다. 이 로맨스는 거래로 시작해서 거래로 끝난다. 그러므로 대규는 이 권리를 산 판수에게 승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우리는 이미 판수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보았다. 집에서 ‘결혼 행진곡’을 틀어놓고 웨딩 마치 연습을 하는 판수를 보고 민이 녹음기를 집어던지면서 아버지는 집을 나간 어머니는 생각도 하지 않느냐, 라고 소리치고 나갈 때 혼자 남은 판수는 중얼거린다. “질 수가 없어, 질 수가 없어” 판수는 30년 동안 사랑한 옥희를 잊을 수가 없어, 포기할 수가 없어, 놓칠 수가 없어, 라고 말하지 않았다. 판수의 목표는 옥희와 결혼하는 것아 아니라 대규가 옥희와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규가 제공해야 할 대가는 옥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판수와의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대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규는 하루 종일 주먹 싸움 끝에 늦은 저녁 대폿집에서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판수의 주먹에 결국 나가떨어진다. 정말 대규는 쓰러진 것일까. 판수가 대규를 등에 업고 옥희에게 데려다 준 다음 호기롭게 떠나자 이게 그저 ‘한바탕 쇼’라는 듯이 슬쩍 눈을 뜨고 조용히 지켜보자는 신호를 장난스럽게 보낸다.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것은 낮의 풍경이 아니라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밤의 정경이다. 로맨스는 여기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존 포드를 존경하던 그 예술의 세계도 거의 희미해져서 잘 분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제 판수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대규와 옥희가 고향을 떠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 마지막 장면은 둘 중 양자선택 속에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 거의 알기 힘들다. <30년만의 대결>은 결국 판수를 아내에게 되돌려 보내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제 발로 돌아온 옥희가 어쩔 수없이 제 발로 다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야기인가. 이 명랑한 영화의 이면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계획과 목적을 향해서 부산하게 계산한 다음 비밀스러이 상대방을 이용하고 전유하려는 싸움이 펼쳐진다. 그걸 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임권택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에서 로맨스는 항상 근대에 밀려나가면서 애처롭게 뒤돌아보는 것이다. 임권택은 그걸 어디선가 보기는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경험해볼 수 없는 것처럼 다룬다. 그러므로 나는 약간 대담하게 <30년만의 대결>을 정의 내려 보고 싶다. 이 영화는 조건의 영화이다. 어떤 조건?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도약의 자리에로 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영화. 그는 계속해서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과정을 어디서 끊을 수 있는 지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 잡초 >를 자기가 제작하고 연출하기 전의 일이다. 여기서는 그걸 영화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미세한 변화들. 하지만 되풀이되는 실패들. 그러면서 어딘가에 기대서라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 장면들. 효과들은 잘 발휘되지 않고 있으며 무언가 의심만이 둘러싸고 어수선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변화를 감지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자기 영화로부터 낯설어지기 시작하는 임권택.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의 쇼트들, 그 낯섦. 그보다 더 분명한 변화의 조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계속)
영화업자가 극장 안에서 관객들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 판타지아 >(1940)를 소개한다. 그러나 할리우드로부터 상영이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고는 <판타지아>의 ‘모조품’을 만들기로 하고, 감옥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애니메이터들을 데려온다. 영화가 시작되면 여섯 곡의 클래식 음악과 함께 디즈니 <판타지아>에 대한 패러디와 풍자가 넘쳐나는 전복적인 애니메이션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핑크 플로이드의 더블 음반 ‘더 월 The Wall’을 영상으로 옮긴 알란 파커 감독의 <더 월 The Wall>(1982), 비틀즈 음악을 소재로 만든 애니메이션 < 옐로우 서브마린 Yellow Submarine >(1968) 등과 함께 음악을 모티브로 한 영화 가운데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 알레그로 논 트로포 Allegro non Troppo >는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 작가 브루노 보제토(1938~ )의 1976년 작품으로 <서부와 소다 West and Soda>(1965), <빕, 나의 형제 슈퍼맨 The Super Vips>(1968)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 알레그로 논 트로포 >의 에피소드들 이 유머러스하고 디즈니 보수주의에 저항하는 대담한 옴니버스 장편 애니메이션 < 알레그로 논 트로포 >의 첫 곡은 드뷔시의 관현악 ‘목신의 오후 전주곡’으로 시작하는데, 감독은 < 판타지아 >의 ‘전원 교향곡’ 에피소드를 패러디하여 젊고 아름다운 목신(牧神)이 아닌 늙은 목신의 여성을 향한 관능적 몽상을 허망하게 그리고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7번’이 흐르고, 파시즘과 독재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풍자가 빛을 발한다. < 알레그로 논 트로포 >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콜라병이 등장하는 세 번째 에피소드는 반복적인 메타모르포제 리듬을 타는 라벨의 ‘볼레로’를 배경 음악으로 하여 인류의 탄생과 진화를 충격적인 반전으로 패러디한 영상이다.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를 애니메이션 화한 네 번째 에피소드는 철거로 파괴된 황량한 도시에 살고 있는 작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음악과 어우러진 서정적인 화면은 아마도 이 작품에서 가장 슬프고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비발디의 ‘협주곡 C장조‘를 소재로 하였는데, 식사 준비를 방해받은 벌의 반격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애니메이터까지 싸움이 벌어져 온통 난장판이 되는 이야기이며,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로 시작되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을 등장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온갖 병폐와 모순을 거침없이 들춰내고, 다시 한 번 디즈니의 < 판타지아 >를 조롱하는 피날레로 이어진다. <타품! 무기의 역사! Tapum! Weapons History!>(1958), <서부와 소다 West and Soda>(1965) <미스터 로시, 자동차를 사다 Mister Rossi Buys a Car>(1966), <오페라 Opera>(1973)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 국민작가’로 불리는 브루노 보제토는 1938년 밀라노 태생으로 10대 시절 만든 8mm 단편 애니메이션 <도날드 덕 카툰>(1953)을 시작으로 하여, 20세가 되던 해에 만든 단편 <타품! 무기의 역사! Tapum! Weapons History!>(1958)를 계기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그는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미스터 로시, 자동차를 사다 Mister Rossi Buys a Car>(1966), 바르셀로나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피클즈 Pickles>(1971), 안시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오페라 Opera>(1973), 히로시마 영화제에서 수상한 <지그문트 Sigmund>(1983),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한 <미스터 타오 Mister Tao>(1988),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바 있는 <메뚜기 Grasshoppers>(1990), 카툰스 온 더 베이 등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스파게티 가족 Spaghetti Family>(1996), <바쁘게 사는 자들의 세상에 대한 역사(History of the World for Those in a Hurry>(2001), <인생 Life>(2003), <도로의 무기 Weapons on the Road>(2008), <섹스&펀 Sex & Fun>(2012> 등 지난 60여 년 동안 거의 매해 거르지 않고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 발표해왔으며, 각종 영화제에서 120여 회에 달하는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끊임없는 창작 의지로 일생을 바쳐 만든 70여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과 라이브액션 그리고 일곱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특유의 풍자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거장 브루노 보제토, 그의 다양한 애니메이션들은 유튜브 채널( www.youtube.com/user/BrunoBozzettoChannel )에서 온라인으로 만나볼 수 있다.
한밤중에 빨치산들이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을 모아놓은 다음 식량을 내놓으라고 위협한다. 아마도 한국전쟁 중일 것이다. 가난한 이 마을에서는 보릿고개라 자신들이 먹을 식량조차 변변치 않은 지경이다. 그러자 마을 사람 중의 한 명을 사살한 다음 다시 돌아올 때까지 쌀 다섯 가마를 구하라고 말하고 떠난다.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국군 토벌대 장교가 있었지만 이 마을까지 부대가 오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알려준다. 실망한 마을 사람들에게 목사님이 나서서 읍내에 나가 우리를 보호해 줄 사람을 구해오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읍내에 가서 여섯 명의 건달을 이끌고 있는 길용이라는 사내를 만난다. 잠깐, 이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가 아닌가요? 당신의 추측이 맞다.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이 도적들에게 약탈당하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 뭉쳐서 싸우는 시대활극 < 7인의 사무라이 >가 < 바람 같은 사나이 >의 원판이다. 하지만 임권택 이 참조한 영화는 <7인의 사무라이>가 아니라 존 스타제스의 < 황야의 7인 >이다.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찰스 브론슨, 홀스트 부크홀츠, 브래드 덱스터, 로버트 본이 일곱 명의 카우보이로 나온 그 영화. 역시 악당에는 일라이 워락. 임권택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의 하나는 그가 몇 차례이고 할리우드영화들을 리메이크했다는 사실이다. 좀 더 가혹하게 말하면 표절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 한국은 아직 국제 저작권 협회에 가입하지 않았고, 한국영화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노래가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때 임권택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만희 는 < 석양의 무법자 >를 본 다음 < 쇠사슬을 끊어라 >를 찍었다. (그리고 다시 이 영화를 원본으로 하여 김지운 이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을 만들었다) 내가 환기하고 싶은 사실은 임권택이 할리우드 영화와 가졌던 친화성에 대해서 거의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 사이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거나 혹은 그 둘 사이의 간극의 심연 사이에서 인정투쟁을 위한 필사의 도약 따위는 없다. 오히려 그때의 한국영화에서 할리우드영화는 하나의 운명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머무는 것에 대한 도착적 친화성에의 자발적 항복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1945년 해방, 친일 문학가들이 그렇게 빨리 해방이 될 줄 몰랐다고 탄식을 했을 만큼 절대적인 일본 제국주의의 머리에 원자폭탄을 떨어트리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나라. 1950년 전쟁 속에서 ‘소비에트와 중공’ 사회주의 군대와 싸운 다음 나라를 절반으로 만든 나라. 상상할 수 없는 풍요로움의 왕국.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과 문화들. 거기서 싹튼 대학가 포크 송과 이태원 로큰롤. 우리는 이 영향 관계 아래 21세기에도 그렇게 머물고 있다. 그런데 그때는 휴전을 하고 고작 10년이 조금 더 지난 다음이었다.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과 그들이 보는 할리우드영화 사이의 괴리감. “영화를 처음 만들 때는 누구나 목표를 갖게 되잖아요. 그때는 볼만한 영화라는 게 할리우드 영화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다들 그때 본 영화들이 자기의 목표가 된 거예요. 그러다가 점점 그게 얼마나 허망한 목표인 줄 깨달아가면서 자기의 영화를 찾기 시작한 거지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나는 사태를 단순하게 식민지 문화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다. 반대로 여기에는 근대라는 모던한 꿈이 역사라는 악몽과 서로 간섭하면서 그 한계를 초월하기는커녕 그 안에 주저앉아 격렬하게 자신의 실존을 증명해가는 과정이 있다. 이 말의 방점. 그 안에 주저앉기. 말하자면 끊임없는 연습. 그 안에서 영화는 주어진 경험세계로부터 자신의 이념 세계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영화에서 삶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 싶다. <7인의 사무라이>(1954) <황야의 7인>(1960) <바람 같은 사나이>(1968) 임권택 의 세 번째 영화 < 남자는 안 팔려 >는 빌리 와일더의 < 뜨거운 것이 좋아 >이고, 여기서 구봉서 와 이대엽 이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이 했던 여장을 하고 나온(다고 한)다. < 30년 만의 대결 >은 존 포드의 <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 >을 다시 만들었다. 모린 오하라에는 김지미 가 마돈나로 나오고 최무룡 이 존 웨인으로 박노식 이 빅터 맥라글랜으로 나와 긴 주먹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 바람 같은 사나이 >가 < 황야의 7인 >을 리메이크한 사실은 잘 안 알려졌다. 심지어 개봉 당시에도 그런 소개가 없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틀림없이 임권택이 1968년 < 바람 같은 사나이 >를 만들었을 때는 아직 < 7인의 사무라이 >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일본영화가 수입금지 되었으며 극장상영이(나 텔레비전 방영이) 아니면 달리 영화를 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았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오늘날 볼 수 있는 200분 판본의 <7인의 사무라이>가 아니라 다시 160분으로 편집된 극장 개봉 판이었을 것이다. 도날드 리치에 의하면(「The Films of Kurosawa Akira」) <7인의 사무라이>는 개봉했던 1954년 4월 26일 일본에서도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만 잠시 상영하고 사라졌다. 그런 다음 두 번 세 번에 걸쳐 재편집되었고 미국에서는 이 160분 판본을 수입한 RKO 사에서 다시 편집했다고 한다. 이런 미국식 편집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도 < 설국열차 >를 미국에 개봉하면서 하비 와인스타인이 편집한 사례를 알고 있다. <7인의 사무라이>는 1991년에야 190분 버전으로 복원되었고 2002년에 개봉 버전에 가까운 203분으로 복원되었다. 아마도 <7인의 사무라이>를 서부극으로 각색한 존 스타제스는 RKO 편집본을 보았을 것이다. <황야의 7인>은 일본에 개봉해서 일본 영화평론의 웨스턴 ‘狂人’이라는 마스부치 겐(增淵健)으로부터 “충분히 납득할만한 구로사와 원작의 환골탈태”라고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는 <황야의 7인>을 본 다음 “완전히 실망스럽다”고 그냥 간단하게 대답했다. 1960년에 만들어진 이 서부극은 재빨리 수입되어 서울에서 1962년 크리스마스 프로그램으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그해 임권택은 그해 구정에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로 데뷔하였고 7월에 두 번째 영화 < 전쟁과 노인 >을 만들었다. 아마 그런 다음 <황야의 7인>을 극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서부극 영화들에 대해서 모든 장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셈에 포함시켜 주기 바란다. 하지만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사무라이 활극도 아니고 서부극은 더더구나 아니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이자 다찌마와리 액션활극이고 반공영화이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바람 같은 사나이>는 1968년의 영화이다. 길용은 오래전 동백마을에서 쫓겨난 사내였다. 그런 다음 그는 떠돌이 약장사와 바람잡이 이인조, 공기총 명사수, 소매치기 이인조를 이끌고 장터마다 돌아다니면서 가짜 약을 팔고 내기 판돈을 따고 길거리에서 주머니를 터는 패거리를 이끄는 두목이다. 말하자면 칠 인의 건달들. 그들은 갈 곳 없는 자신들에게 길용이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길용은 가난 끝에 사랑하던 영희가 이웃 마을 돈 많은 집에 시집을 가자 분을 참지 못하고 혼례식장에서 소동을 부리고 아버지로부터 다시는 고향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는 말을 듣고 쫓겨난 처지였다. 길용을 찾아온 고향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게다가 공비들에게 아버지가 총살을 당하고 지금은 어린 여동생 옥이 혼자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 아직도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영희가 있는 고향에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떠나기 전에 모은 돈을 패거리 동생들에게 모두 나눠주지만 그들은 형님이 고향이라면서 함께 마을을 지키기로 뜻을 모은다. 나는 무리하게 <바람 같은 사나이>의 서사를 < 7인의 사무라이 >로부터 가까이서 연상하거나 < 황야의 7인 >과 비교하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세 편은 서로 정교하게 영향을 주고받았다기보다는 마치 그저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남아있는 감흥을 가지고서 자기의 편에서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세 편의 영화는 비교하기에 너무 예술적 차이가 벌어진다. <7인의 사무라이>는 단지 걸작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할 정도로 위대한 영화이다. 도날드 리치는 일본영화란 <7인의 사무라이>라고 말했다. 완전하게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 견해를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 <황야의 7인>이 걸작은 아니지만 웨스턴 장르 안에서 컬트의 지위를 차지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바람 같은 사나이>는 한국영화사 안에서조차 거의 기억되지 않을 만큼 실패했다. 단지 발견되지 못했다기보다는 대부분 엉성하게 구성되었으며 이 시기 한국영화의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같은 해에 임권택 이 만든 세 편의 영화 중에는 < 요화 장희빈 >이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임권택은 어떤 감흥을 찍고 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게 대부분 단조롭게 나타나고 있고 종종 아직은 두텁게 장면을 뒤덮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 태백산맥 >을 본 다음 다시 <바람 같은 사나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거기서 겹쳐져 있는 동일한 두 개의 장면들 사이에서 오히려 이쪽이 더 선명한 기억의 흔적들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임권택은 그 스스로 돌아보기도 싫은 기억이라고 고향에서의 빨치산과 국군 사이의 상호상잔(相互相殘)의 밤과 낮을 언급하면서도 처음부터 이 시간에로 마치 하나의 원장면처럼 되돌아오고 다시 돌아왔다. 이건 임권택의 영화를 차례대로 보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여기서 저기서, 이번에도 또 이번에도, 그 시간을 그게 견딜만해 질 때까지 건드려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걸 임권택의 원장면에 대한 탐구라는 하나의 (트라우마라기보다는 멜랑콜리에 가까운) 개념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이다. 기억 속의 기호의 난독증. 그걸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산산조각 난 광경. 상상 속에서조차 겁먹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그러진 이미지. 하지만 그걸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그 장면의 공포와 다시 마주쳐야만 한다. 나는 지금 따분하게 한 사람의 전기를 재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영화와 삶이 분리될 수 없는 텍스트의 서명을 써 놓는, 놓을 수밖에 없는, 그렇게 반복할 수밖에 없는 방법의 실존에 대해서 질문하려는 것이다. 밤에 내려오는 사람들 영화의 첫 장면. 공비들이 한밤중에 산에서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집합시킨다. 이때 임권택 은 이 장면을 마치 귀신들이 무리 지어 찾아오는 공포영화처럼 찍었다. 밤에 찾아오는 사람들. 왜 그들은 낮에 찾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 하지만 영토의 안에 있는 사람들. 어쩌면 거기 아버지 어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그걸 고백할 때가 아니다. 너무 많은 고향 사람들이 죽었고 유족들이 고향에 살아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인정하면 안 된다.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첫 장면을 밤에 시작하는 영화들이 많다는 것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임권택의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는 밤에 시작한다. 게다가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밤 장면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영화이다. 같은 길을 걸어 마을에 들어오는 두 남자 누군가 밤을 낮으로 만들어야 한다. 혹은 밤을 끝내야 한다. 여기 두 개의 선택이 있다. 두 명의 남자가 똑같은 길을 따라 마을을 찾아오는 장면을 유심히 보아주기 바란다. 하지만 두 남자는 동시에 도착하지 않고 서로 시차를 두고 마을을 찾아온다. 먼저 찾아온 남자는 국방군 장교지만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국방군이 이 마을까지 도착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한다. 국가의 보호로부터 버림받은 지역. 일종의 무법지대. 차라리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전선. 그런 다음 이 장교는 마을에 머문다. 하지만 그가 마을에서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마을 사람 중의 누군가와 교분을 맺지도 않는다. 그는 언젠가 도착할 국방군을 위한 신호이다. 국가의 가느다란 끈의 마지막 끝. 여기서 첫 번째 남자에 의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가정을 해보자. 국방군 장교가 절대적으로 수는 부족하지만 여섯 명의 소대원을 끌고 마을에 찾아온 다음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공비들과 싸우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임권택 은 이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두 번째 찾아오는 남자는 원래 이 마을에서 자라났지만 고향에서 쫓겨난 다음 다시 돌아온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쌀 다섯 가마를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을 함께 지킬 여섯 명의 건달들과 함께 온다. 반대로 이야기는 장르 안에서 흥미롭게 작동하지만 그런 희생적인 전투가 한국전쟁 중에 정말 있었을 것이라고는 거의 믿기 어렵다. 임권택은 왜 역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을 버려두고 있을 수 없는 것을 가정하는 것일까. 여기서 두 남자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첫 번째 남자에게 동백마을은 자신이 지켜야 할 국토 전체 중의 하나의 작은, 아주 작은 지역에 불과하지만 두 번째 남자에게 이 마을은 자신의 고향이자 유일하게 돌아오기를 갈망한 곳이라는 지정학적 서열이다. 좀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여기는 전체 중의 작은 일부이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전부이다. 그래서 한쪽은 언제든지 전술상의 이유로 이 지역을 양보할 수 있지만 다른 한 쪽은 여기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은 신기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어떤 갈등도 빚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동일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편이 올바른 교정이 될 것이다. 그 둘은 둘이 합쳐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따금 이 영화는 어떤 불투명성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수많은 예 중의 하나. 두 번째 남자와 고향 사이에서 매개하는 역할을 목사가 나서서 떠안을 때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동백마을은 아주 작은 마을이고 마을 주민들은 단 한 명도 결정적인 순간에 찬송가를 부르지 않으며 이 영화에는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단 한 쇼트도 없다. 게다가 길용은 고향에 돌아와서 교회를 찾아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혹은 길용은 하느님을 믿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길용의 애인이 그런 것도 아니다. 또는 목사가 이야기에서 어떤 결정적인 해결의 역할을 하는 순간도 없다. 구태여 교회가 필요하다면 여섯 명의 건달 중 막내가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에 응답할 때뿐이다. 하지만 가장 난처한 순간은 목사가 읍내에 가서 길용을 설득하여 고향으로 데려올 때이다. 나는 여기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이 장면에서 지금 <바람 같은 사나이>는 사운드 네가가 유실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보고 나면 다시 보고 싶게 만든다. 다시 본다는 것은 그 순간에 다시 가고 싶다는 뜻이다. 거기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모든 실패조차 지나쳐가면서 어느 순간 과잉 하는 힘으로 지나간 시간을 무한정 반복하게 싶게 만드는 이것임. 설명할 수 없는 이것임. 여기서 순환은 일시적으로 중단될 것이다. 반대로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질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엔 종합에의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실패가 우리를 이것에로 최대한 접근 시킨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장면은 괴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실패의 질서가 있다. 당연하게도, 이미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그리고 존 스타제스의 웨스턴에서 본 것처럼, 물론 마지막 장면은 이 일곱 명의 사내들(과 국방군 장교와 엉겁결에 끼어든 리어카꾼)과 빨치산의 전투 시퀀스이다. 무엇보다도 이 전투는 아무 의미가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마치 눈앞에서 금방 벌어질 전쟁처럼 하나씩 물어보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갔고, 그러므로 이 마을에는 초가집들 말고는 달리 지킬 것이 없다. 곡물도 없고 재산이랄 것도 없는 가난한 시골 마을이다. 게다가 빨치산에서 탈출한 여인은 이제 곧 북한으로 귀대하게 될 연대가 이 부대와 합류할 것이라는 정보를 준 다음 죽는다. 그 정보를 듣고도 철수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마치 이들은 마지막 시퀀스를 위해서, 오로지 영화를 위해서, 여기 남아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들은 남겨진 숫자뿐만 아니라 무기도 열세이다. 누가 보아도 차라리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읍내로 철수하고 그런 다음 군부대와 합류하여 이들과 싸우기 위해 돌아오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다. 그런데도 납득할 수 있는 어떤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냥 남아서 마을을 습격하기 위해 찾아올 빨치산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 같은 자멸적인 태도. 당신들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그건 빨치산 쪽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전쟁은 패색이 짙고 (아마도) 남부군이 북한으로 이동하면서 도착하기를 기다려 합류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인 결정일 것이다. 여기서 전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으며 설혹 승리한다 할지라도 이득이 없다. 오히려 후퇴할 시간만을 뺏길 것이며 게다가 이 전투는 그들의 흔적을 남길 뿐만 아니라 탄약조차 낭비하게 되어 이후 벌어질 수도 있는 국방군과의 전투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에게 쌀 다섯 가마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동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면서 빨치산 부대 전원을 이끌고 마을로 향한다. 마치 이들의 결정은 자신들이 후퇴하기 전에 국방군이 도착하여 자신들을 섬멸해주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전술이다. 나는 약간 냉소적으로 열거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로 맞선 두 개의 그룹 모두에게 공통된 정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지나치면 안 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 완전히 전멸하기를 기대하는 중이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아이러니. 이 무시무시한 공포의 전율을 쥐어짜는 것만 같은 감흥. 누구라도 조롱하듯이 지켜보게 될 이 상황에서 크게 웃으면서 가장 잔인하게 쳐다볼 사람은 임권택 이다. 이것이 이 장면을 모골이 송연하게 만드는 부정의 논리이다. 이 마지막 시퀀스에서 양쪽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제로에 근접한다. 일곱 명의 사내가 이 마을을 지킨다고 하지만 차라리 전원이 무사히 철수한 다음 마을 사람들과 되돌아와서 함께 재건하는 편이 훨씬 건설적일 것이다. 빨치산은 이 마을을 포기하고 빨리 본대에 합류하여 철수하는 편이 훨씬 전술적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마을은 양쪽 모두에게 생명을 내걸고 전선을 만들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 여기에는 실제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보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동백마을을 포기하는 것이다. 마치 이 동백마을이 그들 모두에게 어떤 물신숭배처럼 보일 정도이다. 어떤 물신? 고향이라는 물신. 한국에서 고향은 매우 까다로운 문화 담론의 계보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걸 충분히 지적할만한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소 일반론적인 방식으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약간 따분한 표현이긴 하지만 고향은 그들 모두에게 큰 타자 안에 머물기 위한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그 안에서 머물기. 하지만 그들이 거기 머물려고 노력할수록 그들은 자신이 그 안의 결여된 원인이자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좀 더 무자비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어느 쪽이건 고향의 실수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소될 때에만 고향은 다시 말끔해질 것이다. < 바람 같은 사나이 >의 이야기는 말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당신은 도식적이라고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당신에게 < 바람 같은 사나이 >가 이야기 위에 두텁게 덧칠해서 지워버린 결정적인 정보가 역사라는 것을 일깨우고 싶다. 고향을 사이에 두고 <바람 같은 사나이>는 의도적으로 불균형하게 배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둘 사이를 조정하기 위해 거기 있어야 할 것이 강제적으로 지워진 것을 보충할 필요를 느낀다. 길용이 고향을 떠난 이야기는 그가 돌아온 다음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후회를 하며 짧게 회상하는 장면으로 불려 나온다. (flash_back) 그러나 빨치산들은 그냥 처음부터 저 산속에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다른 마을이 아니라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한국전쟁은 장르가 아니다. 그들은 아무 곳에나 머물지 않았다. 그걸 임권택 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해방 이후 고향에서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그런 다음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어제까지 고향 사람들이었다. 그런 다음 고향을 관리하듯이 밤만 되면 내려왔다. 그러므로 필요 이상으로 비열하게 그려진 이 마을 빨치산의 지도자도 이 마을에서,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인근 마을에서, 그렇게 전쟁이 나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양쪽 편을 가르고 난 다음 산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마을을 놓고 거기 머물기 위해 다투는 중이다. 1968년은 이데올로기를 거세하였고 영화에서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희생에 가까운 전멸의 전술이다. 한쪽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숫자의 상대와 전투를 치르기로 결심하고, 다른 한쪽은 여기서 지체하는 만큼 그들을 섬멸하기 위해 국방군이 가까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작전을 개시한다. 여기에는 미학적 긴장감도 없고 그렇다고 극적인 흥미가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죽음에 대한 거의 외설적 묘사라고나 할까. 전투의 첫 접촉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빨치산 대장은 텅 비어있는 마을을 향해서 기관총을 쏘아댄다. 그때마다 약장사는 총알을 피해서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소매치기도 하모니카를 불면서 총구를 유인한다. 말하자면 전투의 첫 접촉. 여기서 임권택 이 일곱 명의 건달들의 각자의 전문적인 기술을 전투의 드라마 안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바이올린 연주나 소매치기 기술은 정작 전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명사수가 ‘귀신도 놀랄만한’ 솜씨를 보여주는 장면도 없다. 이 영화는 하워드 혹스적인 영화가 아니다.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 리오 브라보 >가 아니다. 기관총을 쏘아대던 빨치산 대장이 돌격, 을 외치자 부대원들은 일제히 산을 타고 마을을 향하기 시작한다. 이때 정말 괴이하게도 그들이 논두렁을 밟고 달려가는 장면에서 이제 막 봄날이 시작되어 파릇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논밭의 풍경이 이상할 정도로 아름답다. 나는 처음에 내가 무얼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면서 탄식하게 되는 것은 텅 빈 농촌 마을 그저 전쟁만 아니라면 한가로운 이 봄날의 장면이 찍고 싶어서 전투장면을 한정 없이 길게 늘여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 공기의 느낌이다. 이 시퀀스는 정말 길다. 종종 누가 누구를 쏘는지도 잊을 정도로 한없이 이어진다. 한 명씩 한 명씩 죽어가지만 이 시퀀스에는 애도의 감상이 없다. 마치 그들은 장르의 법칙에 따라 소멸하듯이 그렇게 차례로 자기의 역할이 끝나자 죽어간다. 반공영화가 마치 다찌마와리 장르가 끝나가듯이 그렇게 종말을 맞이하는 중이다. 이때 임권택은 어느 쪽의 승리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이 명백하다. 빨치산 공비들은 총알에 자신을 내맡기듯 그렇게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은 채 어떤 엄폐물도 없는 논두렁을 가로질러 끝도 없이 달려온다. 일곱 명의 건달은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긴다. 절망적인 사격. 왜냐하면 총은 겨우 아홉 자루이고 한없이 밀려오는 공비들은 곧 마을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병전을 벌여야 할 것이고 이 수많은 공비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영화가 무심코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 같다.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텅 빈 마을. 그 마을의 잉여. 이 전투는 동백마을에 아무 쓸모도 없는 낭비일 뿐이다. 만일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 잉여를 말소하기 위해서 지금 그걸 하는 중이다. 그걸 알지 못하는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삭제되는 중이다. 나는 이미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보자마자 깜짝 놀란 마음을 안고 임권택의 첫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다음 몇 번이고 다시 반복될 전멸의 테마를 이야기했다. <바람 같은 사나이>는 그걸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시퀀스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장면은 국방군이 나타날 때이다. 그들은 일곱 명의 건달이 대부분 죽어갔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런 다음 빨치산 공비들을 향해서 어떤 항복의 권유도 없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한다. 어떤 포로도 필요 없다는 듯한 이 무정함은 마치 청소를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마지막 표현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청소. 국가에서 청소를 하는 것. 빨치산. 그리고 일곱 명의 건달. 하지만 임권택 은 여기서 알리바이를 내세우는 것처럼 서둘러 장황한 에필로그를 준비한다. 일곱 명의 건달 중의 막내는 공비였지만 몇 달 전에 자수를 해서 이 패거리를 따라다니고 있었고, 그는 마침 동백마을의 빨치산 공비들과 함께 산에 오른 사회주의자 인텔리 애인의 죽음을 목도한 다음 이 전투에 참여한다. 하지만 총을 맞았는데도 목사가 건네준 성경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나서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고 이제 길용의 애인이 마지막 질문을 한다. “대답을 듣고 싶어요” 그녀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피난을 가면서 길용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다. “대답해주세요, 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때 길용은 모호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그만 가줘, 다음에 만나면 그때 대답을 하기로 하지”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덧붙였다. “노력해주세요. 불행한 일이 없도록.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이번에는 화면 안으로 교회 종소리가 들려온다. (off_sound_in_frame) 길용은 간단하게 대답한다. “영, 교회로 가지 않겠소. 하느님과 목사님이 계신 곳에서 부탁할 일이 있소” 그녀도 흔쾌히 대답한다. “좋아요” 그리고 끝. 이때 여기에는 죽은 여섯 명의 건달들과 동백마을까지 쌀 다섯 가마를 리어카에 싣고 왔다가 뜬금없이 전투에 참여하여 죽은 사내를 위한 어떤 애도의 시간도 없다. 마치 그들은 처음부터 있어야 할 자리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영화에서 말끔하게 사라진다. “우리는 또 다시 진 걸세.”, <7인의 사무라이>(위), <황야의 7인>(아래) 나는 이 엔딩에 대해서 약간 더 논쟁을 하고 싶다. < 7인의 사무라이 >는 몹시 긴 시간 동안 도적 떼들에 맞서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과 농민들이 싸우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마지막에 모든 싸움이 끝난 다음 떠나가면서 사무라이들의 첫째인 감베이가 또 다른 사무라이에게 하는 그 유명한 대사, “우리는 또 다시 진 걸세. 우리는 졌어. 이긴 것은 농부들이야” 라는 그 말 때문에 찍은 영화이다. 사무라이들은 농부가 아니다. 그들이 다룰 줄 아는 것은 칼이지 농기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마을을 떠나야 한다. 사실 그 승리는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제부터 사라져 가는 계급이자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졌고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천황의 항복 이후 9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 임권택 은 < 바람 같은 사나이 >를 휴전 이후 16년 뒤에 만들었다. 물론 이 영화는 처음부터 <7인의 사무라이>처럼 야심적인 기획이 아니었다. 나는 두 영화를 마주 보게 할 의도는 조금도 없다고 이미 말했다. 내가 질문하려는 것은 길용이 왜 처음부터 여기 남아야만 하나의 이야기로 <바람 같은 사나이>가 성립 되냐는 것이다. < 황야의 7인 >도 일곱 명의 카우보이들은 멕시코 국경의 이 마을에 와서 도적 떼를 물리친 다음 마찬가지로 떠난다. 마을은 그들의 것이지 이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도적 떼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원래의 자리에 돌아가기 위한 것처럼, 마치 제 자리에 복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 자기의 권리를 되찾듯이 길용이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약간의 가정. 여기서 한국전쟁을 괄호치고 이야기의 형식을 조금만 비틀면 단지 그의 동생 여섯 명과 리어카꾼의 죽음만이 아니라 공비들의 시체가 논두렁에 즐비하게 널리는 전투마저 길용이 돌아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할 수 없이 치러야 한다, 고 예언하는 운명적인 귀환이 마침내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부르고 싶을 지경이다. 오이디푸스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를 죽여야 하며, 아버지는 아들의 귀환을 위해서 그때 그 순간에 그곳을 지나면서 아들에게 죽어야만 한다. <바람 같은 사나이>는 시작하면 공비들이 산에서 마을에 내려와 양민을 학살하고 쌀 다섯 가마를 요구한 다음에 물러가지만 이 장면은 동시에 길용이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인 아버지가 공비들에게 처형을 당하고 아들 길용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다음 홀로 남은 딸이자 길용의 어린 여동생 옥이를 길용과 결혼하지 못한 영희가 돌본다. 나는 다소 냉담하게 물어보고 싶다. 영희는 길용의 어린 여동생 옥이를 돌봐야 할 어떤 의무도 없다. 그런데 왜 그녀는 엄마 없는 옥이를 엄마처럼 돌보는 것일까. 질문을 정식화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이 모든 장치들이 정교하게 짜여진 (하지만 따분한)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변주곡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읽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기 바란다. 핵심은 이 모든 귀결이 목적론에 따라 작동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라가던 우리를 멈칫 세우는 것이다. 무엇이 이 영화 안에서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가. 이 이야기가 괴상한 것은 우연이 다른 우연 없이 서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때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우연(들)이 가까이 접근할 때 갑자기 이 모든 것을 잡아먹는 것은 고향이라는 집합 안의 블랙홀이다. 여기에는 두 개의 관점이 있다. 길용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고, 이 영화는 이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는 그것을 잃었고 그런 다음 되찾으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거기에 있는 고향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잃은 것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되찾을 것도 없다. 그 마을에 사는 농부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쌀을 내놓으라고 해도 내줄 쌀이 없다. 텅 빈 마을. 거기에 쌀 다섯 가마를 갖고 길용이 돌아온다. 아버지는 죽었고 아들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향에 찾아온다. 간단한 도식. 마치 그 둘은 형식과 내용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이때 서로는 서로에게 수행적인 임무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 다음 두 개의 임무 사이에서 갑자기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한 오이디푸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르면 약간 과격하게 반격하고 싶어진다. 이건 히스테리인 줄 알았는데 정신분열에 빠진 오이디푸스 판본이 아닌가요. 그리고 여기에 무서운 국가가 있다. 차례로 등장하는 검열의 심급들. <바람 같은 사나이>는 정확하게 그 자리에서 자포자기한 영화이다. 그런 다음 재빨리 가족 안으로 후퇴하였다. 떠나는 사람들, <7인의 사무라이>(위), <황야의 7인>(아래) 남는 사람, <바람 같은 사나이> 아직 할 말이 남았다.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매정한 영화이다. 감정선은 대부분 끊어졌으며 인물들 사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네트워크는 거의 가녀리게 여겨질 정도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 전쟁과 여교사 >를 떠올려보면 그게 기이하게 보일 정도이다. 심지어 거기서는 감정이 과잉한 나머지 그 선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엉키기까지 한다. 두 영화의 동일한 배경. 하지만 서로는 서로에게서 완전히 벗어난다. 역사라는 사건은 영화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앞에서 존재하고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 살아가야 한다, 살아나야 한다. 이때 임권택 은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하나의 실험처럼 다룬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임권택은 실험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매번의 작업은 각각의 실험이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실험의 흔적이다. 나는 어디서부터 그 선이 끊어진, 자취가 어디선가 사라진,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관점의 뿌리 자체가 어디론가 뽑혀버린, 그래서 마치 포기해버린 것만 같은 자리에서 이리저리 흩어진 흔적들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아도 길용과 여섯 명의 건달들 사이에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줄 정도로 나누는 우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설명 없이 이 영화의 서사는 성립될 수 있는가. 그들은 그저 장르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고 그런 다음 자기에게 내어준 운명을 따른다. 그런 다음 오직 길용만이 희생의 열매를 맛본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왜 다른 이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들은 길용이 여기에 머물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가 하느님의 왕국으로 향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고향 이외의 모든 장소가 마치 비-장소(non_place)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공비들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출몰해도 마을 사람들 중에 이곳을 떠날 결심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금만 이 영화와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면 마치 길용이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안간힘이 거의 필사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하나의 주체로 성립될 수 있다는 최종적인 명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때 핵심은 떠나간 자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원상복귀의 갈망이다. 여기서 떠나갔을 때의 시간과 돌아올 때의 조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에 대한 만족할만한 대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이 영화 안에서 우리를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나는 이미 <바람 같은 사나이>가 몇 차례이고 밤의 영화라고 말했다. 임권택에게 이 영화는 두 개의 입구를 보여주는 중이다. 하나는 다찌마와리 액션활극으로 가는 길이다. 임권택은 그런 다음 몇 년간 충실하게 이 장르를 찍었다. 그런 다음 여러 가지 이유로 반공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이 두 개의 입구는 사실은 하나의 길로 향하는 도정의 시작이다. 그 길의 끝에는 고향이 있다. 하지만 그때 임권택은 아직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있을 것이다, 라고만 어렴풋하게 말한다. 위장하고 있는 화해. 은밀한 야심. 고전적인 작가주의 이론은 거기에서 시작했고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라고 서명할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있을 지도 모를 여백을 이용하여 보충하고 싶다.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 임권택은 장애물들을 차례로 제거해나갈 것이다. 같은 말이지만 말소시켜 나갈 것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말끔하게 청소할 것이다.반복해서 말하겠다. <바람 같은 사나이>는 매정한 영화이다. (계속) 추신_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현재 영화 시작하고 11분 52초 동안 사운드 네가가 유실되었다. 이후의 장면들로 충분히 내용을 유추할 수 있긴 하지만 몇 장면들은 대사가 몹시 궁금하다. 특히 (이미 언급한) 목사가 길용을 설득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