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빙
- 감독
- 임철민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김현민, 박용대, 이재진, 송준혁, 정준영
장철과 호금전의 무협에서 이소룡과 성룡의 쿵푸 액션으로. 오우삼과 서극, 왕가위에 이르는 뉴웨이브까지. 20세기 중·후반 홍콩영화는 각기 다른 색깔의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에 스며들었다.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 중국어권 영화 전반 역시 (정치, 외교, 경제 정책에 따른 변함은 있더라도) 예술과 산업의 측면에서 한국영화와 인연을 맺으며 그간 서로가 아시아영화의 한 종류로 자리 잡는 데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국영화가 중국어권 영화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어떻게 초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영화에 반영했는지를, 홍콩 시티대학교(City University of Hong Kong)와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컨퍼런스 ‘ 목적지 홍콩: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와의 조우(Destination Hong Kong: South Korean Cinema’s Encounter with Chinese-Language Cinemas) ’에서 되짚어보았다. 홍콩 시티대 이상준 교수와 한국영상자료원 정종화 학예연구팀장이 공동 의장을 맡았으며, 2025년 5월 16일과 17일,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각국의 연구자 및 아카이브 관계자들이 발표를 위해 홍콩 시티대를 찾았다. 중국어권과의 영화 교류의 흐름을 조망하는 자리가, 한·홍 합작의 주요 결과물 제작에 기여한 제작사 쇼브라더스의 설립자 런런쇼(Run Run Shaw)가 건립을 지원한 (홍콩 시티대 내) 런런쇼 창의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되어 더욱 뜻깊었다. 시티대 이상준 교수는 “1950년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등과의 초국가적 및 초지역적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영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본다”라는 컨퍼런스의 목적을 밝혔다. 초청 강연자로 함께 한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은 “기관의 대표자일 뿐만 아니라 홍콩영화의 오랜 팬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더욱 감회가 깊다”라면서, “이번 행사는 한국영상자료원이 해외 학술기관과는 처음으로 공동 개최하는 컨퍼런스일 텐데,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작은 한 걸음이 위대한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라며 응원을 건넸다. 정종화 학예연구팀장 역시 본 컨퍼런스를 “한국과 중국어권, 특히 홍콩 간 영화적 교류에 대한 연구를 진작하는 특별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컨퍼런스를 계기로 이상준 교수와의 협업을 지속하며 더욱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주최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컨퍼런스 이후에도 관계 기관과의 협력을 이어가며 연구 성과를 가다듬는 데 대한 의지를 밝혔다. 1950~60년대 한국과 중국어권 간 합작 사례부터 양국 21세기 감독들의 화제작까지, 시대나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이어진 양일간의 열띤 발표와 토론 내용을 기록한다. 먼저, 두 패널의 발표가 진행된 컨퍼런스 1일차 현장을 담았다. * 컨퍼런스 '목적지 홍콩: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와의 조우' 개최 개요 및 프로그램 북( 링크 ) <패널 1>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 간 전후(戰後) 합작 1950년대 이후의 전후 한국영화계에서 중국어권과의 합작이 시도된 배경과 방식, 그리고 결과의 함의를 다뤘고, 홍콩 침례대학교 김신동 교수가 이끌었다. 한국영화인 강범구를 통해 본 1960년대 한국-대만 영화 교류사 (한국영상자료원 정종화 학예연구팀장) 정종화 학예연구팀장은 1960년대 액션 장르 흥행을 이끌었던 강범구 감독의 작품이 한국영화 최초로 대만에 수출되거나 대만과의 합작을 통해 제작된 과정에 집중했다. 1960년대 한국과 대만의 영화 합작에 관한 첫 번째 학술적 연구다. 냉전 시기 동아시아 정세를 반영한 대만의 정치적 상황과 반일 감정이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과 맞물리며 두 국가의 영화적 교류의 토대가 마련되었는데, 흥미롭게도 과거 양국과 식민지-제국 관계였던 일본의 영화기술이 필요한 현장이었음을 포착한다. 영자원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강범구 감독을 면담해 기록한 구술채록문과 작품별 심의서류, 합작 계약서 등이 근거가 되었다. 전후 냉전 상황 속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산업 및 기술적 요소가 상호작용하던 도중, 영화산업을 매개로 세 국가의 관계가 형성되는 한 지점을 재발견하는 연구였다. 강범구 감독은 1950년대 신상옥 감독의 현장에 촬영보조로 합류하며 영화계에 입문했고, < 지옥화 >(신상옥, 1958) 등의 작품에서 촬영감독으로 활약했다. 제작자 최관두 가 속한 한흥영화사와 협력하면서부터는 액션 스릴러에 초점을 두고 연출 활동을 시작해 독특한 액션 연출 및 촬영 기법으로 주목받았지만, 한국영화사에서는 아쉽게도 주변부 인물로 비춰지는 데 그쳤다. 그런데 그가 세 번째로 연출한 < 안개낀 거리 >(1963)는 1963년,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대만에 수출된 후 놀랍게도 흥행을 기록했다. 강범구 감독은 구술채록 당시 이러한 흥행의 비결이, (대만 역시 냉전 시기를 통과 중인 동아시아의 일부였음을 감안할 때) 상업적 장르영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전후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 한 데 있었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양국 간 외교적 긴장을 야기한 지정학적 요인 [1] 의 영향으로 대만은 일본영화의 수입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안개낀 거리>는 이때 대만에 수출되면서 현지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얻고 일본영화의 빈자리를 메꿔 보다 쉽게 흥행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964년 6월, 대만의 일본영화 수입이 재개되면서 그러한 이점의 효력이 상실되었고, 대만에서 한국영화의 입지는 다시 변방으로 밀려났다. 강범구 감독과 박상호 감독 / <안개낀 거리>, <탈출명령> 포스터 하지만 1965년, 한국과 대만은 강범구 감독을 필두로 최초의 합작을 시도한다. 그의 액션 연출을 인상 깊게 바라본 대만의 감독 겸 제작자 가오 런허(Gao Renhe)의 제안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전쟁·액션 영화 < 탈출명령 >(1966) 제작을 위해, 대영영화주식회사와 대만 중흥영업유한공사(Chung Shing Films Corporation)가 합작했다. 계약서상 한국은 각본, 연출, 캐스팅을, 대만은 주로 재정 지출을 담당했음이 나타난다. 두 국가 간 최초의 합작은 한국의 창작적 리더십과 대만의 투자가 결합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탈출명령> 합작 과정에서 국내 영화인들의 작업 편리성이 일본 영화산업 의 기술을 통해 향상되었을 여지도 발견된다. 강범구 감독은 푸티지를 매일 일본 도요랩(Toyo Laboratory)으로 운송해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현상·편집했으며, 본 합작을 계기로 일본의 영화 기자재와 소품용 총기가 항공편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했고, 촬영 현장에 중국어 통역사가 동반했음에도 일본 관계자가 소통을 도왔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나 결과는 아쉬웠다. 제작비 규모가 계획한 예산을 초과해 대만 중흥영업유한공사의 재정적 부담이 컸는데, 박스오피스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흥행 불발에 더해 한국과 대만의 최초 합작 사례이다 보니 제도적 지원 역시 부족했던 터라, <탈출명령>은 한 번의 실험적 합작 시도의 결과물로만 남고 말았다. 하지만 정종화 팀장에 따르면, 해외 영화 수입 비율 충족을 위한 위장 합작이 만연했던 당시, 양국의 영화적 역량과 자본을 충실히 투입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위 사례는 재조명될 가치가 있다. 정치, 외교, 기술적 측면에서 세 국가의 역할이 교차하며 쓰인, 동아시아 영화사의 독특한 협업 역사로도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한·홍 합작 멜로 속 여성 캐릭터의 민족 수행: <이국정원>과 <사랑의 스잔나>를 중심으로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윤서연 연구원) 윤서연 연구원은 한국과 홍콩이 합작한 멜로드라마 영화의 여성 인물이 민족성이나 국적을 수행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현상을 소개했다. 나아가 동 시기 한국 정세의 영향으로 극중 인물들의 젠더가 국적을 대변하는 양상을 띠는 점 역시 짚었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한국의 경우 6.25 전쟁 포함) 후 한국과 홍콩의 역사·문화적 의식이 인물을 통해 알레고리화되는 합작 멜로드라마 중에서도, 윤서연 연구원은 주인공의 부모가 국적이 다른 남녀의 이성 교제를 허락하는 구조를 띤 < 이국정원 >(전창근, 도광계, 와카스기 미쓰오, 1957)과 < 사랑의 스잔나 >(김종용, 송존수, 1976)에 대해 설명했다. 두 작품에는 홍콩 출신 여성 인물이 한국문화를 경험하며 국적이나 민족성을 ‘유동적으로 수행’ 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2] <이국정원>에서는 한복에 가깝게 디자인된 주인공 방음(우민)의 의상이, 그의 민족성 수행을 암시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방음의 모친 역시 과거에 교제했던 한국인 남성과 찍은 사진에서 한복을 입은 모습이다. [3] <사랑의 스잔나>에서 국휘( 이승용 )와 추하(진추하) 두 사람은 민속촌을 방문해 한국의 전통 혼례식이 치러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그 순간 국휘는 추하에게 청혼한다. 홍콩 출신 여성 인물과 한국의 민족성 간 격차를 좁히고 여성 인물의 적극적인 민족성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윤서연 연구원은 메리 앤 도안(Mary Ann Doane)의 “ 여성 가면(Female masquerade) ”이라는 개념을 빌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계기를 설명했다. 메리 앤 도안에 따르면, 영화 속 여성 인물들은 의상이나 몸짓을 통해 소위 ‘여성적인’ 특성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가부장적 사회 체계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생존 전략을 추구한다. [4] 한·홍 합작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이 생존 전략은 타국의 문화적 맥락에 적응 하는 데 필요한 의상과 몸짓을 선보이는 홍콩 출신 여성 인물들에 의해 연기된다. (좌) <이국정원> 중 과거 교제한 한국인 남성과 촬영한 사진에서 한복을 입고 있는 방음의 모친 (우) <사랑의 스잔나> 중 추하와 국휘 그렇다면 왜 한·홍 합작 멜로에서는 대부분 한국인이 남성으로, 홍콩 출신이 여성으로 설정되어있을까? 윤서연 연구원은 한국과 남성을, 그리고 아시아의 타국과 여성을 연결해 한국이 국가적 남성성(National masculinity)을 회복 하려고 했다는 이영재의 주장을 인용했다. 이영재는 한국인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교제하는 구도(이를 반영한 멜로드라마 영화의 합작에 한국영화계가 투자한 이력 포함)를,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전후 한국사회가 문화적 영향력을 분출함으로써 권력을 지닌 가부장적 개념의 남성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언급했다. [5] 국가로서의 주권을 되찾고 전쟁까지 거친 후, 아시아의 패권 다툼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열망이 극중에서는 젠더를 통한 국적 은유의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외에도 남성 인물의 한국적 민족성과 경제적 능력 보장 여부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양상도 언급하면서 인물과 내러티브가 설정된 맥락을 주제와 연관 지어 더욱 구체화했다. 가부장제의 한계를 반영한 젠더적 수행과 국가적 권력에 대한 당시 한국의 시각을 포착해, 한·홍 합작의 결과물로서는 깊이 분석된 적이 드문 멜로드라마 장르를 다각도로 관찰하는 계기를 마련한 연구였다. ‘자유의 꾀꼬리’ 정형의 스타덤: 1960년대 영광영업공사의 한·홍 합작 영화 네 편을 중심으로 (홍콩 링난대학교 디지털아트·문화산업학부 연구 조교수 제시카 시우인 여웅) 제시카 시우인 여웅(Jesscia Siu-yin Yeung) 교수는 1960년대 광둥어권 지역의 영광영업공사를 중심으로 제작된 한·홍 합작 영화의 흥행을, 네 편의 작품에서 배우 정형(Ting Yang)의 역량과 연관 지어 설명했다. 그간 만다린어권이나 일본에 비해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한 광둥어권 아시아 여성 배우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리처드 다이어(Richard Dyer)의 스타 이론을 비롯해 정형 출연작을 다수 제작한 제작자 황척한(Wong Cheuk-hon)의 회고록, 그리고 각 작품의 전단을 참고했다. 정형은 황척한이 설립한 만다린어권 제작사 자유영업공사의 1960년대 작품에서 사실적이고 섬세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활약했다. 이후 황척한이 작품 심의 및 개봉 기준이 비교적 유연한 광둥어권에 영광영업공사를 세웠고, 영광영업공사 제작 작품 여러 편에도 주연으로 발탁돼 흥행에 기여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 서유기 >(김수용, 1962)의 경우 당시 한국에서 박정희 정부가 지원한 한양영화공사가 자유영업공사의 막 웡 헤이 감독과 협업하면서 김수용 감독이 연출에 나선 작품이다. 광둥어권에서는 이스트만 컬러 필름과 테크니컬러의 와이드스크린 포맷, 그리고 일본의 특수효과를 최초로 이용해 촬영한 작품이기도 하며, 이 작품에서 정형은 칠선공주로 분해 열연했다. 다음 합작 결과물인 < 에스 오 에스 홍콩(SOS 홍콩) >(최경옥, 1966)은 당시 아시아에서 열풍을 일으킨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유사한 첩보 액션 장르로 합작하기를 신상옥과 최은희 가 황척한에게 제안해 신필름과 영광영업공사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정형은 이 작품에 주연 백민( 박노식 )을 돕는 요원 마리나를 연기했는데, 이때 배포된 전단을 보면 ‘대역 없이 정형 스스로 공중의 헬리콥터를 타고 오르는 모습에 주목해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제시카 교수는 주·조연 여부와는 관계없는 정형의 열연이 담긴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소규모 독립영화사로서의 영광영업공사을 대표하는 여성 배우 로서 그가 최선을 다해 연기했음을 보인다. 세 번째 작품은 멜로드라마 < 조용한 이별 >(정창화, 1967)이다. 정형은 이 작품에서 주연 정예화를 연기했고, 함께 연기한 남정임 은 당시 한국 최고의 여성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홍콩 최고의 여성 배우 정형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임을 감안해 조연을 연기하라’라는 동료 배우 최은희의 조언에 설득되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제시카 교수는 전했다. 마지막으로, 전쟁 블록버스터 < 장렬 509 대전차대 >(김동학, 1967)는 다른 배역들의 캐스팅은 황척한이 바라는 대로 진행하되, 주연으로는 반드시 신영균 과 정형이 캐스팅되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제작되었다. 정형은 남매를 찾기 위해 군대에 합류한 간호장교 임수랑 역을 맡았고, 제시카 교수는 추운 날씨와 열악한 현장에서 노고가 많았다고 전한 정형의 발언을 강조했다. <에스 오 에스 홍콩(SOS 홍콩)> 중 마리나(정형) / <장렬 509 대전차대> 중 신성호(신영균)와 임수랑(정형) 광둥어권 관객을 타겟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소규모 독립영화사로 시작한 영광영업공사. 이를 이끈 황척한은 다른 대형 제작사에 대항해 경쟁력을 갖추고자 정형의 스타덤을 동원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트만 컬러 필름이나 테크니컬러의 와이드스크린 포맷, 일본의 특수효과를 도입하는 등 최첨단 영화 제작 기술까지 뒷받침되었음을 보이며, 제시카 교수는 영광영업공사가 1950~60년대 중국어권 영화계에서 정형을 필두로 차별화되기 위해 노력한 역사를 되짚었다. <반혼녀>와 신상옥·최은희의 기구한 운명: 홍콩 속 영화적 모험 (홍콩 침례대학교 영화과 조교수 케니 응) 케니 응(Kenny NG) 교수는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가 홍콩 영화계에 입문하고 합작을 시도하게 된 계기를 해설했다. 신상옥은 1960~7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로서 제작사 신필름을 운영했으며, 첩보, 액션 스릴러, 멜로드라마는 물론 초자연적 소재까지 다루면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연출을 이어간 유능한 창작자였다. 하지만 국내 영화검열의 강도는 1970년대 중반까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고, 영화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제와 표현 방식의 폭이 매우 좁아진 터라 한국영화의 질적 완성도는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자 했던 신상옥 감독에게는 불리한 환경이었으며, 그가 운영하던 신필름도 1975년에 폐업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신상옥 감독은 홍콩 제작사 쇼브라더스와 합작을 시작했다. 쇼브라더스가 제작한 작품에 한국인 배우들이 출연하도록 하는 ‘ 위장 합작(Counterfeit co-production) ’의 방식이었는데, 케니 응 교수는 이것이 신상옥 감독으로 하여금 제작 과정에서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양국 영화산업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6] <반혼녀> 중 한도령(이승용)과 연화(리칭) 한편, 신상옥 감독이 시대적 한계를 지닌 사회 제도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과 그를 에워싼 금기시된 사랑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케니 응 교수는 당시 검열을 비롯한 사회적 권력의 억압에 의해 억눌리고 은폐된 욕망이 분출되는 양상 을 관찰했다. 특히 한·홍 합작 영화 < 반혼녀 >(신상옥, 1973)에서, ‘유령’이라는 초현실적 소재가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추구해 상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내러티브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고 봤다. 거액의 돈을 가지고 연인 연화(리칭)에게 가려고 했던 한도령(이승용)은 산적에게 기습을 당하고, 한도령과 만나지 못한 채 생을 다한 연화가 유령이 되어 그를 찾아와 사랑을 이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케니 응 교수는 유령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라는 설정 자체가 사회적 통념에 반하려는 시도이며, 여기에 호러와 코미디 요소가 섞여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말한다. 또한 성과 폭력에 관한 묘사가 비교적 엄격히 규제되었던 1970년대의 시대적 한계를 그만의 예술성으로 극복한 방식 역시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7] 신상옥 감독과 쇼브라더스 간 이와 같은 협력을 기점으로, ‘유령이 등장하는 로맨스’가 아시아 영화에서 장르로 인식되고 활발히 제작되는 데 기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 토론 * 패널 1의 발표자 4인이 발표한 후, 홍콩 링난대학교 디지털아트·문화산업학부 연구 조교수 에녹 이욕 탐(Enok Yee-Iok Tam)이 아래와 같이 질문했고, 발표자들이 답변했다. Q. 제시카 시우인 여웅 교수에게 (질문1) 본 연구에서 정형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홍콩 자유영업공사와 영광영업공사의 설립자 황척한 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한국과 홍콩의 합작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지정학적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한 영광영업공사 는 소규모의 독립영화 제작사에 가까웠음에도, 한국은 어떻게 이들과 합작을 고려하게 되었을까? (답변) 냉전 시기 홍콩과 대만, 한국(남한),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은 아시아의 반공 지역으로 구분되었고, 황척한은 이들 중 대만과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의 영화시장에 진입을 시도했지만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아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서유기>가 흥행하면서 제작자로서 그의 명성이 한국에 전해지고 합작 대상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당시 개최되어오던 아시아영화제도 아시아 국가들 간의 합작을 매개하는 장으로 기능했을 수 있다. (질문2) 한·홍 합작이 활성화되던 시기 아시아에서 ‘ 007 시리즈 ’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말씀하셨다. 007 시리즈 열풍을 중심으로 한 당시 첩보 액션의 인기가 황척헌과 한국영화계의 합작에 미친 영향이 궁금하다. (답변) 007 시리즈는 비슷한 시기 여러 문화권에 의해 이용된 영화적 트렌드였다. 세계 각지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유사한 그림을 연출하고 싶어 했고, 헬리콥터 액션 신 촬영에 동참한 정형 역시 이 트렌드에 합류하는 배우로 인식되려는 의지를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들 역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 시리즈와 유사한 장르에 안착해, 박스오피스 흥행을 보장하고 상업적 성공을 이룩하려고 했으리라고 본다. Q. 정종화 팀장에게 (질문1) 위에서 제시카 교수가 언급하셨듯이, 팀장님께서도 007 시리즈 개봉과 더불어 첩보 액션 장르의 인기가 합작 영화의 장르 설정 및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형 첩보 액션이 냉전이 진행 중이던 당시 대만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은 배경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 (답변) 한국에서 개봉한 첫 007 시리즈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 007 제2탄 – 위기일발 >(테렌스 영, 1963)이었다. 국내 개봉 연도인 1965년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 성과를 거뒀고, 당연히 한국 스타일의 첩보 액션 장르가 확립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는 특히 북한을 적대자로 설정하는 반공 기조의 내러티브가 결합되었다. 또한 스파이 출신의 여성과 한국 남성 요원이 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 이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모험 등 여러 대목에서 007 시리즈의 흥행 공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007 시리즈의 자장 아래 제작된 작품들은 당시까지 제작 및 개봉된 한국영화에서는 관찰되지 않은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강인하고 생기 넘치는 남성 주인공 이 등장하며, 서구의 007 시리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족’에 대한 강한 집착 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만을 포함한 해외 국가에서 제작된 작품들과 대만 박스오피스에서 경쟁해야 했던 강범구 감독의 관점에서, 007 시리즈 첩보 액션의 이러한 특징들은 대만 관객을 사로잡는 데 유용한 기회로 작용했다. 그는 장르영화에 관한 새로운 미학 을 추구하고, 빠른 편집 을 시도했으며,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액션 내러티브 를 고안했다. 그 결과, 같은 시기의 대만 장르영화들에 비해 그의 작품이 국제적 감각을 지녔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코멘트_패널 체어 김신동 교수) 개인적으로, 007 시리즈는 첩보 액션 스릴러임과 동시에, 세계 각지의 생활 모습을 노출하며 낯선 지역의 풍경을 매혹적인 소재로 소비하는 이국주의(Exoticism)의 관점에서 제작된 관광 영화 (Tourism film)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 한국영화계 역시 이러한 시각적 즐거움이 전시된 영화를 만들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1960~70년대에는 멀리 위치한 해외 국가에 접근하기가 여의치 않았고, 홍콩을 비롯해 일본의 오사카, 필리핀의 마닐라, 대만 정도가 그들이 지리적 배경으로 선정할 수 있는 ‘외국’의 범위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홍콩은 그중에서도 한국영화계와 관객 모두가 매력을 느낀 공간이었다. <패널 2> 아시아 영화 속 경계 허물기 일본 교토대학교 김수현 연구원이 이끈 패널로, 동시대 중국어권 영화가 서로 다른 국적이나 지역성, 젠더 등의 ‘경계’를 사유 또는 표현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중국어권 동아시아의 ‘악센트 차이니즈 시네마’: 장률의 <야나가와> 등 트랜스내셔널 영화 제작을 이론화하기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박사 수료자 클로이 원셴 장) 클로이 원셴 장(Chloe Wenxian Zhang)은 영화 속에서 관찰되는 억양과 방언이 작품의 형식과 미시적 담론, 그리고 인물들의 자기 정체성 인식의 측면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연구했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재중동포 3세로서 국가나 민족의 경계에 관한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를 선보였던 장률 감독의 < 야나가와 >(2021)를 텍스트로 선정했다. 장률 감독은 ‘국적’을 주제로 디아스포라 감성을 일깨우는 비주류 독립영화, 하나의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경계를 가로지르는(Border-crossing)’ 영화를 발표한 초국가적 작가(Transnational auteur)로 알려져 있다. 클로이는 장률이 대사의 ‘ 억양(Accent) ’을 사유하는 방식을 통해 본 작품이 색다른 트랜스내셔널 시네마가 될 수 있음을 보였다. <야나가와>에서 주인공 아추안, 그리고 형제 리동과 리천은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표준 중국어로 인식된 ‘부동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고, 이에 대한 인물들의 기억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같은 중국인이더라도 표준 중국어인 부동화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는 소외되도록 하는 관습으로서의 ‘내부 타자화(Internal othering)’를, 클로이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 타자의 단일언어주의(Monolingualism of the Other) ’ 개념을 적용해 설명했다. 데리다는 인간은 오직 한 가지의 언어를 모국어로 습득하지만 이는 본래 ‘타자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타자는 권력을 바탕으로 그의 언어만을 말하도록 교육하거나 강요하고,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은 언어를 배우고 소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베이징 방언을 사용하던 아추안이 부동화를 선호하는 다수로서의 ‘타자’가 지닌 권력에 의해 소외되자, 그가 공동체 안에서 존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리동이 자신 역시 베이징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타자가 강요한 언어에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야나가와> 중 아추안과 리동 한편, 클로이는 억양이 단순히 누군가의 정체성을 재단하는 지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실존하는 행위 로 인정할 수 있음을 보였다. 억양이 무언가를 욕망하거나 열망하고, 그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을 가리킨다고 설명한 문화비평가 푸자 라간(Pooja Ragan)을 인용했다. <야나가와>의 후반에 아추안과 일본인 여성이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고 표현한 장면과, < 후쿠오카 >(2019)에서 한국인과 중국인(만다린어 구사), 일본인이 단어가 아니라 발화의 톤과 몸짓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이 그 예다. 단어가 무너지면, 삶의 방식으로서 실존하는 억양과 몸짓 등이 비로소 언어를 초월해 공명을 일으키고, 장률의 작품에서처럼 아시아 국가 간의 친밀감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클로이는 <야나가와>를 내셔널,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라는 개념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이 선택한 ‘억양’의 색다른 의미를 철학적 차원에서 발굴해 장률 작품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소개했다. 내러티브를 매개하고 인물들의 감정을 증폭하는 핵심 요소로서, 그리고 언어로는 극복할 수 없는 서로 다른 화자 간의 장벽을 친밀감으로 허무는 행위 그 자체로서 ‘억양’을 상정한다. 언어의 형태가 아니면서도 영화에서 인물 간 본연의 소통을 돕는 실천적 행위로서 ‘억양’의 지위를 재정립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소속감의 한계를 질문하기: 동시대 한국영화 속 화교 인물 연구 (홍콩대학교 현대언어문화학과 방문 교수 김소혜) 김소혜 교수는 동시대 한국영화가 화교 또는 조선족 출신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한국영화가 인물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재현하는 데 여전히 한계를 보임을 지적한다. 화교와 조선족은 내/외국인을 가르는 이분법에 도전하고, 민족적 동질성에 관해 일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을 흔든다. 이렇게 국적이나 민족 인식에 관한 긴장을 논의하는 장이,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통해 마련되기 시작했다. 김소혜 교수는 화교를 이주 시점을 기준으로 두 종류 [8] 로 구분하고, 그중에서도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와 < 극한직업 >(이병헌, 2018), 그리고 < 신세계 >(박훈정, 2012)를 사례로 연구했다. 인천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 다섯 명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묘사되는 인천은 번화한 서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동시에 화교 인구가 이주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도 덧붙여지면서 작품 전반에 ‘소외’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더불어, 인물 다섯 명 중 화교의 후손으로 설정된 일란성 쌍둥이 비류( 이은실 )와 온조( 이은주 )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개성을 지닌 주체로 비춰지지 않는다. 일란성 쌍둥이라는 인물 설정에서 나타나듯,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인’으로서의 캐릭터는 그들에게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인물들 모두가 불확실한 미래를 찾아 떠나고, 그들이 함께 돌보던 고양이가 유일하게 인천에 남은 비류와 온조에게 건네진다는 내러티브 역시, 두 인물이 인천에게 입혀진 ‘소외된 지역’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함을 암시한다. 비류와 온조는 다른 인물들과 같이 몸소 성장을 경험하는 주체가 아닌 그들의 성장에 기여하는 주변적 인물 로만 그려진다. 2000년대 이후 화교 인물은 특유의 언어적, 문화적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국과 더욱 광범위한 중국어권 사회 사이의 소통을 매개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문화에 더욱 잘 동화된 ‘ 안전한 비주류 ’로서의 화교 인물이 형성된다. 배우 진선규 는 매우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인물로 그려진 전작 < 범죄도시 >(강윤성, 2017)에서의 역할과 다르게, <극한직업>에서는 전직 유도 국가대표이자 현직 경찰로 등장하며 유순하고 정직한 이미지를 표방한다. 한국인 여성 장 형사( 이하늬 )와의 로맨스까지 등장하면서 그가 민족적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내 위치를 점한다는 인식이 강화된다. <신세계>에서 이자성( 이정재 )은 화교 출신 인물이지만 이를 이용해 폭력 조직에 잠입하며 한국 경찰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반면, 이 작품에서 정청( 황정민 )이 일시적인 폭력 행사를 위해 불러들인 조선족 인물들은 의상과 말투 등에서 한국인과 크게 대비되도록 설정되어있다. 게다가 후반부에는 이자성마저도 끝내 경찰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폭력 조직에 동화되고, 한국의 공식적인 사회 구조가 아니라 스스로 진입한 지하세계에서 소속감을 획득한다. 한국영화에서 화교 인물이 배경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낸 사례임을 인정하더라도, <극한직업>과 <신세계>와 같은 동시대 작품은 그들을 ‘한국에 동화되기 쉬운 덜 잔인한 비주류’라는 이미지로 재단한 후에 소환하려고 한다. 김소혜 교수는 이러한 설정이, 화교 인물들을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화교 인물들에 대한 가시성은 확보되었지만, 한국사회의 다양성 담론의 한계와 더불어 한국영화가 긴 시간 침묵을 강요받은 비주류 공동체를 재현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경계 위의 여성 동성애: <녹야>와 <블루 송> 속 한·중 퀴어의 조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 미디어학과 박사 수료자 앤디 주) 앤디 주(Andy K. Zhu)는 중국 퀴어영화에서 한국과 중국의 퀴어적 조우가 발생하는 맥락을 설명한다. 특히 최근 발표되는 중국 퀴어영화 중 다수가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성을 아우르는 중국 북동부의 ‘ 동북(Dōngběi) ’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9] 여기에 퀴어 연구를 접목해, 이분법적인 사고로부터 탈피해서 국적과 젠더 등에 관한 복잡한 질문을 사유하는 공간으로서 동북이 지닌 가능성 역시 제안하고, 관련 영화로는 < 녹야 >(한슈아이, 2023)와 <블루 송>(경즈한, 2023)이 언급됐다. 중국의 퀴어영화의 배경으로 동북이 부상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앤디는 영화의 본질이자 단어 자체에도 반영되어있는 ‘ 움직임 (Kino)’의 개념을 퀴어에 적용했다. 그는 다수의 퀴어영화가 인물들의 퀴어한 욕망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국경을 초월한 ‘움직임’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퀴어영화 연구에 필요한 방법론으로 ‘ 키노정치학 (Kinopolitics)’을 선택한다. 나아가, 두 작품에서 특히 돋보이는 퀴어한 인물들의 움직임을 규정하는 개념으로 “ 경계 위의 여성 동성애 (Bordering lesbianism)”를 소개했다. 국가의 중심지로부터 소외된 지역에서 역시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여성 퀴어 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특유의 움직임을 실천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녹야> 중 중국인이지만 한국으로 이주해 공항에서 세관 직원으로 근무하는 진샤(판빙빙)는 가정폭력과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로 고통 받던 중에 초록머리 여자( 이주영 )를 만난다. 두 사람이 공항 보안 검색 중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이방인이자 이주 노동자인 진샤에게 한국인인 초록머리 여자는 그를 유혹하듯이 미소를 지으며 가깝게 다가온다. 퀴어적 접촉의 시도 이후, 두 인물은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제거함으로써 국경, 젠더, 권력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력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을 함께 실천한다. 작품에서 인천·서울은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 이주 노동자와, 마약 밀매에 연루되며 불안정한 삶을 지속하는 한국인이 동시에 머무는, 역시나 역동성이 가득한 공간으로 표현된다. <녹야> 중 <블루 송>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하얼빈에 거주하며 서로 다른 민족적 정체성의 공존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소녀 루시엔이, 조선족 소녀 밍메이를 만나며 퀴어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극중 루시엔은 교내 공연을 준비하며 한복을 입어야 하는 장면에서 그가 입을 차례가 되자 여성용 한복이 모자라 남성용 한복을 입게 되고, 한복 자체의 질감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의 민족성을 상징하는 한복에 익숙하지 않은 것과 여성용 한복에 접근하지 않는 설정은, 국적과 젠더의 측면에서 루시엔의 정체성이 고정되어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또한 루시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만나 그와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밍메이는 하얼빈에서 조선족이 머무는 공간으로 루시엔을 안내하며 또 다른 민족성의 경험을 유도하기도 한다. 두 작품은 퀴어적 인물에 대해 널리 각인된 이미지를 재확인하지 않는다. 대신 장르적 혼종성(네오 누아르인 <녹야>, 성장과 멜로를 섞은 <블루 송>)과 언어와 의복의 뒤섞임, 키노정치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역동적 공간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이 조우하는 장면을 짚으며 이들 작품의 ‘악센트 시네마(Accent cinema)’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특히 동북과 한국, 북한의 경계에서 퀴어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퀴어영화를 지리적 공간과 연결했다는 점이 독특했다. 이러한 지리적 경계가 지닌 영화적 가능성을 향후 중국어권 퀴어영화에 대한 연구에서 주목할 주제로 남겨두기도 했다. * 토론 * 패널 2의 발표자 3인이 발표한 후, 홍콩 링난대학교 디지털아트·문화산업학부의 박지희 조교수가 아래와 같이 질문했고, 발표자들이 답변했다. Q. 클로이 원셴 장에게 (질문1) <야나가와>의 배경이 되는 일본 후쿠오카현의 야나가와시는 국제적으로 활동한 일본의 예술가 오노 요코의 고향이자 일제강점기 조선의 윤동주 시인이 생을 마감한 지역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제국주의 역사의 상흔이 남아있는 장소 이다. 이를 배경으로 극중 인물들이 중국어의 암묵적 위계와 그로 인한 차별, 차별이 낳은 상처와 분투한다는 설정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이러한 배경 설정이, 클로이가 언급한 ‘악센트 시네마’가 경계를 가로지르는 작품이 되는 데 기여하는 것일까? (답변) 시간 관계상 장률이 야나가와를 식민지의 상흔을 간직한 역사적 공간으로서 어떻게 사유해냈는지를 다루지 못했다. 오노 요코와 윤동주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역사적 또는 언어학적으로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많았다. 주목할 점은, 장률의 작품은 언어학적, 영화적, 역사적으로 풍부한 의미를 지닌 기호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억양(악센트)’은 그러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역사적 핵심 주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꼭 적용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Q. 김소혜 교수에게 (질문1) 한국영화에서 화교 인물들은 말씀해주신 대로 배경의 일부 또는 단일민족주의에 관한 고정관념을 연상시키는 객체로 소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 장르영화 ’의 문법 속에서 이들은 또 다른 종류의 매력이나 잠재력 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시로 드신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측면을 발견하셨을지 궁금하다. (답변) 본 연구에서는 화교 인물들이 그간 작품의 주요 인물의 뒤편으로 물러서는 존재로 묘사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말씀해주신 대로 그들은 한국의 역사와 지역성을 깨닫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성장 장르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비류와 온조를 일란성 쌍둥이로 설정해 서로를 거울에 비춘 대칭적 이미지로 제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주의 역사와 급변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세계>에서 역시 화교에 대한 편견을 답습하는 장면이 많이 발견되지만, 이자성의 경우 화교 출신이자 한국 경찰로 근무하는 양가적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설정되어, 갱스터 누아르·언더커버 장르의 문법 안에서 모종의 자율성(또는 모호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기존의 경향을 전복할 만큼의 위력을 지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추후 화교 인물의 재현을 시도한 다른 작품들의 사례에서 지속적으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신세계> 중 *** [1] 1963년 10월 7일 발생한 주홍칭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도쿄에서 주홍칭(周洪景)이라는 인물이 정치적 망명을 위해 대만 입국 허가를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가 그를 중국 공산당으로 보내면서 대만과 일본 사이의 외교적 긴장이 발생했다. [2] 이는 다른 작품에서 여성 인물에 대한 한국인 남성 인물의 기대로도 표출된 바 있다. < 비련 >(정창화, 1967)에서 양일환( 남궁원 )이 한국 여성의 옷은 아름답고, 상대 여성에게 잘 어울릴 것이라고 언급하거나, < 조용한 이별 >(정창화, 1967)에서 이상현( 신성일 )이 극중 유학생인 정예화(정형)와 창덕궁에서 만나 한복을 입도록 하고 시부모님께 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예가 된다. [3] 하지만 모친은 현재 다른 남성과 결혼해 홍콩에 정착했는데, 이렇게 중년 여성 인물은 현 가정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다른 국적의 남성과 과거에 맺은 연인 관계를 숨기는 경향이 짙다. < 나는 비밀이 있다 >(김용덕, 1963)에서도, 차경녀( 주증녀 )는 홍콩에서 결혼한 적이 있지만 이내 한국으로 넘어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며 홍콩에서 낳은 자녀의 존재 역시 부정한다. [4] Doane, M.A., Film and the masquerade: Theorising the female spectator , Screen, 1982. [5] 이영재, 『아시아적 신체』, 소명출판, 2019. [6] 대표적으로 < 대폭군 >(임원식, 1966)이 있다. 한국어 버전에는 최은희가, 중국어 버전에는 리리화가 출연했다. 컬러로 촬영되었으며 홍콩 쇼브라더스 스튜디오와 서울 교외 지역 모두를 로케이션으로 하여 약 25,000여 명이 촬영에 임했다. 제작에는 오백만 홍콩 달러라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어, 양국 영화산업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동원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 보은의 구름다리 >(최경옥, 1963), < 달기 >(최인현, 악풍, 1964) 등 신필름과 쇼브라더스가 합작한 작품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7] 이외에도 < 꿈 >(신상옥, 1955)은 전후 한국 여성이 맞닥뜨린 사회적 제약을 조신( 황남 )과 달례( 최은희 )의 금기시된 로맨스, 그리고 클로즈업과 몽타주 등의 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승려와 여성 간의 사랑과 성적 욕망을 다루며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1950년대 영화적 실험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8]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중국 산둥 성에서 조선으로 이주한 중국인을 ‘구화교’로,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992년에 한국과 수교를 맺은 뒤 한국으로 대거 이주한 한국계 민족, 즉 조선족을 ‘신화교’로 칭했다. [9] 동북은 1990년대부터 국영 공장들의 폐쇄로 중국에서 쇠퇴와 폐허의 상징이 됐지만, 앤디는 영화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수십년간 중국사회의 변천사를 반추하게 하는 공간으로 이 지역을 재조명한다.
(이 글에는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일러 없이는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 중에서 이 영화를 볼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나중에 읽기를 권합니다. 저는 이미 경고했습니다) 러시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주제넘게 확장 시키고 싶지 않다. 아마 나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심도 깊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분이 계실 것이다. 여기서는 영화에서 멈출 것이다. 작년에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 편은 우크라이나 감독인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다큐멘터리 < 파괴의 자연사 >였고, 다른 한 편은 러시아 감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 페트로프의 감기 >이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파괴의 자연사>를 편집하면서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우크라이나의 상공에서 쏟아붓는 미사일과 도로변을 따라 행진하는 러시아의 탱크들, 참혹하게 무너지는 공공건물들, 길거리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을 길 없이 울고 있는 아이들, 집 잃은 여자들, 구덩이에 처박힌 시신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면 모스크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빅토르 최와 그 주변의 1980년대 러시아 펑크 락 씬의 연대기를 다룬 < 레토 >를 만든 다음 자신이 이끄는 극단 ‘플라테 포르메(Plate-forme)’에서 연극 무대를 올릴 계획으로 알렉세이 사르니코프의 소설 <페트로프, 발톱>을 각색하고 있었다. 반정부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를 러시아 정부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극단에 지급한 정부 보조금 1만 유로를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횡령했다는 죄로 자택 감금을 구형하였다. 연극은 영화로 바뀌었다. 아쉽지만 나는 원작소설을 읽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엇을 설명해야 할까. <페트로프의 감기>는 거의 난장판처럼 진행된다. 나는 이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모스크바에 관한 초현실주의적인 풍속도하고 불렀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이 말에 저항했다. 아니에요, 지금 초현실적인 것은 러시아의 현실이에요. 이 이야기를 따라오지 못하는 건 당신이 러시아 바깥에 있기 때문이에요. 이 원작은 대중소설이에요.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따라오는데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아요.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이거든요. 이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이 말을 어디서 멈춰 세워야 할까.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영화의 첫 장면. 페트로프는 한밤중에 만원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그런데 지금 감기에 걸려서 연신 콜록거린다. 주변 승객들은 짜증을 낸다. 얼른 귀가 해야 하는데 왜 이다지도 집에 가는 길은 먼 것일까.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가까스로 서 있는 페트로프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다. 자꾸만 일이 생긴다. 누군가 갑자기 버스를 세운다. 그러더니 페트로프에게 내리라고 한다. 길거리에 총을 든 사내들이 서 있다. 다른 차 한 대가 도착한다. 그리고 거기서 부자들을 내리라고 한 다음 벽에 일렬로 세워놓는다. 한 사내가 페트로프에게 소총을 들려주면서 방금 도착한 부자들의 총살형에 가담하기를 요구한다. 페트로프는 내키지 않지만, 얼른 마치고 집에 가고 싶어 한다. 버스 안은 초록색 전등으로 물들어 있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일상생활이 녹슬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그 안에서 숨을 쉬다가 폐 속으로 옮겨올 것만 같다. 만화가 페트로프. 누군가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군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그런 도식의 위험을 재빨리 빠져나간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익숙해지기 힘든 영화이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레토>가 아니다. 멜랑코리와 낭만적인 서정성 사이에서 유지하던 수심에 가득 찬 우울한 균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처럼 온 사방이 음산하고, 아니 차라리, 모든 등장인물은 귀신처럼 여기저기서 어슬렁거린다. 물론 두 영화 사이에 공통점도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던 방향을 갑자기 선회하면서 머릿속에 가까스로 세워진 구성을 부순 다음 형식을 다시 재분배해나간다. 마치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다. 다시, 다시, 다시, 라고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은 명령. 그렇게 다시 시작할 때마다 조각나버린 이 단편적인 시퀀스들이 서로 어디서 어디로 서로를 이어 붙여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의도적으로 <페트로프의 감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르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러시아가 지금 작동하는 방식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장면보다도 페트로프가 작가를 찾아가서 총으로 쏘아 죽인 다음 집을 불태워버리는 18분이 조금 넘는 단 하나의 쇼트(lon_take)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러 개의 이야기를 겹쳐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지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가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갑자기 시간이 탈선을 일으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지층을 파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줄기들을 따라가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간의 여기저기로 뻗어나간다. 어린 페트로프. 청년 페트로프. 서로 다른 시간의 지층들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연결되어있는 것일까. 그들은 서로 다른 줄기들 사이에서 엉겨 붙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어떤 목적도 갖지 않은 채 그렇게 수렴되지도 않는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우리를 도와준다. 나는 영화가 집단적인 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스크바의 인민들이 함께 꾸는 꿈, 그런데 이 꿈은 지금 감기에 걸려 열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두통에 시달리면서 횡설수설하는 것만 같다. 온몸에서 열이 나는 아들을 껴안고 한밤중에 눈길을 달려갈 때 하늘에서 UFO가 나타나는 순간 누구라도 망연자실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이다. 몇 번이고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으로 영화가 되돌아온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새해가 오지 않는 것일까.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한 번 더 우리에게 힌트를 준다. 나는 이 시나리오를 감금된 상태에서 써야만 했어요. 하지만 감금되었다고 해서 생각이 멈추는 건 아닙니다. 내 상상은 몸을 빠져나와서 모스크바 시내를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때 나는 유령 같은 상태였어요. 페트로프는 화가 난 상태이고, 내내 불안에 시달리고, 그리고 겁먹어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러면서 <페트로프의 감기>는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서사 사이에 놓인 종종 칸막이처럼 여겨지는 경계를 옮겨가고 넘어간다. 러시아 바깥에 있는 나는 이 영화가 공격 목표로 하는 정치적 대상이나 행정적 절차, 정부 기관의 비유들을 거의 읽어내기 힘들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행간 사이에 주석을 달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쩔쩔맨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겠다. 시종일관 외관들 사이에서 환각을 일으키고 허깨비들처럼 마주한 다음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효과들 속에서 유령의 육체가 망가져 가고 있다. 그렇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무엇인가. 공기 중에 떠도는 바이러스. 어떤 공기. 모스크바의 공기. 러시아의 공기. 공기가 오염되었다. 페트로프는 점점 가쁘게 숨을 쉰다. 아니, 가까스로 숨을 쉰다. 결정적인 장면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모스크바 시내를 빙빙 돌아서 마지막에 이르자 페트로프는 관에 누워있다가 일어난다. 이제는 알겠다. 페트로프는 거리에서 죽어서 그렇게 모스크바의 구천을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저승에 가지 못했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관에서 일어난 페트로프는 눈길을 걷고, 걷고, 걷고, 걸어서, 개울을 건너, 진흙탕이 되어버린 좁은 길에서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러시안 래퍼 허스키가 음산한 목소리로 ‘복수(Revenge)’를 읊조린다. 아코디언 소리가 삐거덕, 삐거덕하면서 울린다. 페트로프는 새해를 맞이하지 못한다. 어쩌면 모스크바는 새해를 맞이하지 못할지 모른다. 페트로프는 떠났지만, 또 다른 유령이 모스크바를 배회할 것이다. 유령들은 외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근 몇 년간, 무언가로부터 혹은 어딘가로부터 끝없이 도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초에 소설가 U와 걸으며, 이런 푸념을 빙빙 돌려가며 늘어놓았다. U는 결코 내게 직접 묻지 않았지만, 만약에 누군가 내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느냐 묻는다면 ‘너무도 구체적인 나, 나보다도 구체적인 나’라고 답할 것이다. 이어, 그럼 도대체 어딘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느냐 묻는다면, ‘이상하리만치 안정적인 내 바운더리’라고 답할 것이다. U는 이를 묻는 대신에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아무래도 한정될 수 밖에 없는 어휘로 글을 쓰는거야. 예를 들어, 사과를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대신 “나는 어제 아침에 사과를 먹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사과를 먹는다”고 표현하는거지. 나는 어제 아침에도 닭가슴살 200g 한 봉지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고, 오늘 아침에도 같은 닭가슴살 한 봉지를 먹었으며, 2019년에는 같은 회사의 같은 닭가슴살 300봉지를, 2020년에는 315봉지를, 2021년에는 무려 375봉지를 먹었다고 여기 적지만, 이는 결코 내가 닭가슴살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행히, 어떤 e-커머스 플랫폼도 이를 오해하지 않았고, 내게 닭가슴살 광고를 띄운 일은 여태껏 없다. 비록 룰루레몬 광고를 하루에 수십 번씩 온갖 페이지에서 보고 틈날때마다 클릭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얘기를 건너뛰고 비참하네… 중얼거렸다. 지금의 기술환경이 우리의 윤곽을 끊임없이 더듬고 이가 빠진 곳을 조물조물 채워나가기에, 나도 덩달아 원치도 않는 내 윤곽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매일 어쩔 수 없이 목격하게 되는 내 삶의 윤곽들이 어찌나 지루하고, 별 볼 일 없는지. 당장이라도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 U는 아마 언젠가는 보통의 사람들도 데이터를 취합해서 넷플릭스 스타일로 다큐멘터리를 생성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올지도 몰라, 추가로 돈을 내면, 네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큐멘터리 방향에 맞게 너에 대해 심층적으로 질문해주는거지, 카메라 앞에 앉을 필요도 없어, 그냥 사진 한 장으로 영상을 생성할 수 있을테니까. 같은 소리를 하고. 나는 또 비참하네… 중얼거렸다. U는 2019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 <프리 솔로>를 내게 추천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프리 솔로>의 주인공인 등반가 알렉스 호널드의 어떤 면을 보고 나를 떠올렸다는데… 착실히 준비한 티를 팍 팍 내며, 알렉스 호널드가 엘 캐피탠을 프리솔로로 성공하는 여정을 높은 완성도로 포착한 다큐멘터리 너머, 어떤 점이? 뇌 회로 어딘가가 고장난 듯한 사람의 크고 새까만 동공? 약간 돌아있는 눈빛 같은 것? 올해 여름 U와 나는 그 시커먼 광기가 잊혀질 즈음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 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 >(이하 <알피니스트>)을 함께 보았다. <프리 솔로>와 다르게 주인공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전혀 치밀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줄곧 어딘가가 기운 채로 나아가는 이 작품을,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에 넣을 작품으로 제일 먼저 정한 것은, 왜긴, 결과는 엉성하게 남은 것들을 어떻게든 오므리며 애를 쓰다 끝난 꼴이지만, 그게 좋았으니까? 공동감독 중 하나인 피터 모티머는 한 화상 인터뷰에서 <알피니스트>를 통해 재야에서 믿기 힘든 등반에 연이어 성공한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조명하고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밝힌다. 지독히도 뻔하고 지루한 이유에서 시작한 작품이긴 하지만, 피터 모티머는 또 어떤 인터뷰에선 본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버린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인 듯, “… 이 영화의 문제는, 어떻게 이 유령같은 1) 마크의 성격을 포착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우리가 그것을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우릴 신경 쓰지 않는지… (… the question of the film is, how do you capture Marc's personality, this elusive thing? And there was kind of no better way to capture it than by showing how we couldn't capture it. How he didn't care about us…)” 2) 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소 상충할 수 있는 두 얘기가 모두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이 영화가 어딘가 찌그러진 듯한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영화의 전반부는 ‘세간의 인정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산만을 기백있게 오르는'에 초점을 맞춰 그럭저럭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지만, 절반이 되기 전 쯤 마크-앙드레 르클렉이 종적을 감춘 뒤 부터는 처음의 욕심을 놓은 것이 명백하다. 그래서 별로였다는 것은 아니고, 두 감독이 돌연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지 맘대로 하니까 사랑스럽지 않냐고 하는 부분처럼, 영화도 사랑스러워진 것 같아. 맞아, 나는 그 부분이 특히 귀엽고 좋았는데, 그냥 제 영화보다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더 사랑하는거 같아서 웃기고 좋았어. 돌아온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감독들에게 어떤 등반을 프리솔로로 처음 도전할 때 이를 촬영하는 것은, 아무리 각별히 신경써서 준비하더라도 그 자체로 경험이 달라지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한다. 앞으로 촬영할 모든 등반이 새로운 도전이 아닌 이미 성공한 프리솔로잉을 재연하는 (감독들 입장에선) 다소 김이 빠진 채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내 마크-앙드레 르클렉의 등반 자체에는 각이 잘 안 선 것 같아 <프리 솔로>와는 다르게 긴장감도 크게 만들어내지 못했고. U는 두 감독이 <프리 솔로> 같은 것을, 혹은 <프리 솔로>보다 더 짜릿한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냐고 내게 물었다. 당연한 거 아냐? 그래도 내 생각에 <알피니스트>는 투명한 맛이 있어. 감독들이 하나도 숨기질 않았어. <알피니스트>는 <프리 솔로>의 주인공 알렉스 호널드가 자기보다 쩌는 등반가로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심지어 그 인터뷰 음성 뒤로 깔린 영상은, 영화 후반부에 홀연히 사라진 마크-앙드레가 로브슨산 엠퍼러 페이스를 성공하고 돌아와서 그걸 재연한 촬영본을 아무런 설명없이 쓰잖아. 그래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비장함과 긴장감을 만들어내려고. 맞아. 영화는 이리저리 고군분투했지만, 마크-앙드레 르클렉이 다른 등반에서 눈보라에 사망함으로써,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마무리 된다. 결국 피터 모티머 감독의 인터뷰처럼 결국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포착하지 못한 채로 끝난 것이다. 아마도 피터 모티머, 닉 로잔 두 감독은 너무도 희미하게 흩어진 마크-앙드레 르클렉의 초상을 그대로 내놓고 싶었을 것이다. 마크-앙드레 르클렉의 사망 후 편집됐을 <알피니스트>는 텅 빈 곳들을 적당한 풋티지, 모션그래픽 영상, 방향 없이 수집된 여러 진술 등으로 채우고 있다. 나레이션을 맡은 피터 모티머는, 마크-앙드레 르클렉에게서 어떠한 구체적인 답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도, 등반가이기도 한 자신의 오랜 질문인 등반의 본질에 대한 것에서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말로 영화를 시작하고, 그게 이 허술한 영화를 근사하진 않더라도 사랑스럽게 만든다. 망한 다큐멘터리, 만세! U, 나는 올해 내내 가까운 모든 사람들이 너무도 구체적이라고 느껴져서 힘들었어. 어떤 누구에 대해서, 어떤 것도, 단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 내 자신에 대한 것 마저도. 답답하고, 앞으로 차에 치일 일은 없을 것만 같아서. U는 뇌의 회로가 하나 고장난 사람처럼 텅 빈 새카만 눈빛을 하고선, 내 말은 못 들은 척 한 채 의뭉스럽게 군다. 만약 마크-앙드레 르클렉이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등반했다면, 영화는 달라졌을까? 내가 그에 대해 답하기도 전에 U는 덧붙인다.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어제 산에 올랐다.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오늘도 산에 오른다. *** 1) 넷플릭스는 <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에서 'elusive'를 '유령 같은'으로 번역한 적이 있다. 2) Capturing the Elusive: an interview with Peter Mortimer and Nick Rosen, "What If Cinema...",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