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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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이정재
- 참여 작품
- 오징어 게임 시즌3 (2025), 오징어 게임 시즌2 (2024), 리볼버 (2023), 헌트 (2022), 오징어 게임 (2021),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020), 사바하 (2018), 어쩌다, 결혼 (2018), 신과함께-인과 연 (2017), 대립군 (2017), 신과함께-죄와 벌 (2017), 대역전 (2016), 인천상륙작전 (2016), 암살 (2015), 빅매치 (2014), 관상 (2013), 도둑들 영화를 만들다 (2012), 신세계 (2012), 도둑들 (2012), 하녀 (2010), 트리플 (2009), 1724 기방난동사건 (2008), 에어 시티 (2007), 태풍 (2005), 오! 브라더스 (2003), 오버 더 레인보우 (2002), 선물 (2001), 흑수선 (2001), MOB 2025 1편 : 전운 (2000), 순애보 (2000), 시월애 (2000), 인터뷰 (2000), 정사 (1998), 이재수의 난 (1998), 태양은 없다 (1998), 박대박 (1997), 알바트로스 (1996), 불새 (1996), 모래시계 (1995), 느낌 (1994), 젊은 남자 (1994)
수집자료
뽀빠이와 토순이의 세계일주
- 필름규격
- 35mm
- 필름종류
- RP
- 색채
- 컬러
뽀빠이와 토순이의 세계일주
- 필름규격
- 35mm
- 필름종류
- RP
- 색채
- 컬러
모험 단키치와 뽀빠이 보물섬 탐험
- 필름규격
- 35mm
- 필름종류
- RP
- 색채
- 흑백
뽀빠이 : 뽀빠이의 우주여행
- 매체규격
- DVD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뽀빠이와 아들 1편
- 매체규격
- VHS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뽀빠이와 아들 2편
- 매체규격
- VHS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서라벌 폭소 뽀빠이 씨리즈 Vol.1-이상용 원맨쇼 리사이틀
- 매체유형
- LP
- 연주시간
- —
웃음따라 요절복통 제9집-뽀빠이 이상용 원맨쇼
- 매체유형
- CCT 콤팩트카세트
- 연주시간
- —
IMF로 웃음을 잃은 국민들께 드리는 뽀빠이와 올리브의 폭소열차 제1호
- 매체유형
- CCT 콤팩트카세트
- 연주시간
- —
뽀빠이와 토순이의 세계일주
- 매체유형
- 일반본
- 보관위치
- —
곰돌이와 토순이의 세계일주
- 매체유형
- 일반본
- 보관위치
- —
제29차 영화검열심의 결과보고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심의서류
- 보관위치
- —
문화영화 검열합격 통보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심의서류
- 보관위치
- —
문화영화 해외현지촬영 허가신청서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심의서류
- 보관위치
- —
콘텐츠
‘태권브이’의 아버지이자 한국 로봇애니메이션 영화의 창시자, 김청기 감독
<로보트 태권브이>와 <외계에서 온 우뢰매>로 한국 로봇 애니메이션 영화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김청기 감독.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58년 18세에 단행본 만화를 발간하며 만화작로 데뷔했다. 데뷔작은 펜싱만화 <무적의 오프린>인데 펜싱영화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그린 뒤 무작정 아리랑 문고를 찾아가 출판한 작품이었다. 당시 이화여대 근처에 인쇄소와 만화 총판들이 있었는데 만화책이 인쇄되어 나오면 자전거 부대가 각 동네의 대본소에 배달하는 방식으로 만화책이 유통되었다. 그래서 그는 때로 자전거부대가 대본소에서 신발주머니에 받아온 동전으로 작가료를 받기도 했다. 그가 만화작가 활동 중이던 1961년 5.16 이후 출판만화에 대한 검열이 생겨나 소재와 표현방법에 있어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예를들어 풍속에 위배 되기에 부모에게 반항적인 인물을 묘사할 수 없었고 한 컷 안에 총과 칼을 겨눌 수 없었으며 ‘이놈’, ‘이 새끼’, ‘이 자식’이라는 단어는 쓸 수 없었다. 결국 극적인 악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만화에 대한 공격은 심했고 어린이, 청소년 문제는 모두 만화 탓으로 돌려졌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작화가 서툴거나 느린 만화가의 그림 작업도 겸하며 수입 좋은 잘나가는 만화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59년 세기극장에서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를 본 뒤 그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림1)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의 한 장면 1967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의 흥행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방학시즌을 노리고 대거 제작된다. 그는 박영일의 애니메이션 영화 <손오공>(1968)과 <황금철인>(1968), <보물섬>(1969) 및 TBC 방송 애니메이션 <황금박쥐>(1968)의 원화 및 동화가로 참여한다. 그는 1968년 최초의 단편 애니메이션인 <개미와 베짱이>(1961)를 만든 박영일을 감독으로 세기상사가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인 <손오공>에 처음 참여했다. 작화가들 모두 만화를 그린 경험이 없는 시각디자인과 출신이다보니 작업이 도안 그리듯 늦어졌다. 결국 손이 빠른 그가 하룻밤에 120장씩 그리며 작업을 진척시켰다. 심지어 밑그림 없이 셀에 곧바로 동작을 그려낼 정도로 그의 작업속도는 빨랐다. 기여도가 커지자 월급 6천 원이 8천 원으로 올랐다. (그림2) <손오공>(박영일, 1968) 포스터. 그는 이 작품에 동화작가로 참여했다. 그는 <손오공> 제작 중에 TBC 방송국의 제안으로 TV애니메이션 <황금박쥐> 작업에 참여한다. TBC 방송국이 동화부를 두고 일본만화의 하청작업을 시작했을 때이다. 하지만 1초에 8장을 사용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었고 일본에서 지시받은 그대로 작업해야 했기에 그로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 TBC에서는 월급 1만 3천 원을 받았지만 그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세 달 만에 나와 다시 <손오공> 제작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때는 월급으로 만원을 받았는데 당시 만원이면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림3) <황금박쥐>(1968년 TBC방영)의 한 장면 그는 세기상사 제작의 <손오공>, <황금철인>, <보물선>에 참여할 때 세기상사가 수입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 <걸리버 여행기>(1939) 등의 필름을 보고 실사영화와 비교, 분석했다. 움직임을 기계적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 리듬을 고려해야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림4) 그가 작업한 애니메이션 광고의 한 장면 삼성제약 <판토> (그림5) 롯데 라면땅 <황금박쥐>편 그림이 빠르고 애니메이션 작업 경험이 있는 그에게는 곧 많은 기회가 생겼다. 애니메이션이 들어가는 광고와 문화영화 등의 작업과 연출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그는 1970년대 초 보림영화사, 선진문화사에 입사해 방송 CF, 각종 타이틀백, 문화영화, 기록영화에 사용되는 애니메이션을 맡아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 잘 맞지 않아 유현목 감독의 문화영화사인 유프로덕션으로 옮겨가 프리랜서로 일한다. 유프로덕션에서 때로 기록영화와 문화영화를 맡아 자율적으로 자기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시 청년 감독들이었던 김호선, 하길종, 홍파 등과 교류하며 실사영화에 대한 흐름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주요수입은 광고 스토리보드였다. 최고의 광고기획사였던 제일기획, 한일기획의 감독들이 집까지 찾아와 스토리보드를 그려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그는 인기 있는 작가였다. 감각있는 그의 스토리보드만이 광고주에게 쉽사리 통과되었기 때문이었다. 종합적으로 그는 이즈음 CF나 문화영화 한 편을 온전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즉, 스토리와 구성, 작화, 음악, 녹음까지 가능한 연출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준비가 되었다. (광고경험으로 그는 편집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이런 감각은 빠른 속도감으로 탄생했다. 당시 극영화는 700커트 정도였는데 <태권브이>는 1200커트였고 예고편 3분짜리가 극영화 20분 분량의 커트 수였다.)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는 애니메이터 육성을 위한 키프로덕션을 용산에 만든다. 키프로덕션에서 그는 중앙정보부로부터 통일전선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수주받아 납품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4년 제1땅굴이 발견되자 아이디어를 얻어 <똘이장군>의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중앙정보부의 지원을 받아 완성, 개봉시키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1974년 박영일과 디즈니를 목표로 애니메이션 회사 서울프로덕션을 광화문에 설립한다. 우선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CF를 작업을 하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던 중 1975년 박영일 감독이 서거한다. 결국 그는 홀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도한다. 마침 TBC 방송에서 상영한 애니메이션 <마징가>가 일본만화인지 모른 채 어린들에게 인기를 끌고 완구가 마구 팔리는 등 애니메이터로서 경각심이 생겨나던 차였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영화 라이센스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친분이 있던 유프로덕션을 찾아갔다. 유현목 감독은 지상학 작가의 시나리오 “마징가 태권”을 그에게 권했다. “마징가”라는 주인공 설정이 불쾌해 거절한 그는 제목부터 바꾸고 스토리도 지상학 작가과 함께 한 달간 새롭게 만들며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글이 아닌 콘티로 풀어나갔다. 워낙 그림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고 빨라 심지어 실제 작업에서도 원화 없이 바로 작화에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로보트 태권 V>는 1976년 초 제작에 들어가 그해 7월 21일 개봉했다. (그림6) <로보트 태권 V> 얼굴 이미지 ‘태권 V’라는 설정은 ‘마징가에 대응할 우리 것을 뭘 하면 좋겠는가’라는 고민 속에서 탄생했다. 당시 태권도 액션 영화들이 등장하고 태권도가 군인들에게 국기로 막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주변의 반응 또한 ‘태권도라면 괜찮다. 제목이 좋다’ 였다. ‘태권 V’의 이미지는 사무실이 있던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힌트를 얻었다. 당시 모든 학교에 장군의 동상이 있을 정도로 군부정권은 정권의 정통성을 만들어내고자 무장 출신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성웅화 작업에 열심히였다. 그래서 그는 국난의 영웅 중 최고로 칭송받는 이순신 장군에서 모티브를 따와 근엄하고 멋진 이미지를 태권브이에 심어줬다. (그림7,8) <로보트 태권 V> 중 훈이와 마사오의 대련장면 <로보트 태권 V> 대결장면도 월트 디즈니의 책을 참고해 <백설공주>의 ‘로토스코핑 기법’ 즉 실사영화로 찍은 뒤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왕호 도장 유단자들과 유승선이 선릉에서 대련하는 것을 16미리 카메라로 찍고 편집한 뒤 그대로 그려 훈과 마사오의 대련장면에 사용해 리얼한 연출 효과를 냈다. (그림9) <로보트 태권 V>의 캐릭터들 왼쪽부터 윤박사, 악당 카프박사, 훈이, 깡통로봇 철이, 카프박사가 만든 인조인간 메리, 영희 <로보트 태권 V>는 태권도를 하는 로보트 외에도 컴플렉스가 심한 ‘카프 박사’, 인간이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 ‘메리’, 엉뚱하지만 친근한 ‘깡통로봇 철이’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굉장히 흥미롭다. 이중 ‘메리’는 매력과 연민을 지닌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당시 <6백만 불의 사나이>(1976년~1978년 TBC 방송), <소머즈>(1976년~1978년 MBC 방송) 같은 사이보그 캐릭터들이 인기를 끌어 ‘메리’라는 인조인간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예쁜 여자아이가 도둑질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당시의 사회적, 도덕적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검열을 피하기 위해 선한 설정을 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케이스다. 깡통로봇 철이는 그가 어린시절 학교의 큰 주전자를 보며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캐릭터를 재현한 결과물이다. (그림10,11) 안드로이드 메리와 깡통로봇 철이 <로보트 태권 V>의 음악은 최창권이 맡았는데 금관, 목관악기 편성을 잘해 음색이 깨끗하고 화려했다. 활기찬 주제곡 또한 인상적인데 태권브이 주제가는 최창권의 큰아들인 가수 최효섭이, 깡통로봇 주제는 작은아들이 불렀다. 효과는 김벌래가 담당했다. OST도 발매해 좋은 반응과 큰 수익을 얻었다. <로보트 태권 V>시리즈는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적을 북한을 의미하는 붉은 제국으로 설정하는 등 반공정신이 투철한 작가의 작품으로 인식시키려 했지만 <로보트 태권 V 제2탄 우주작전>에서 3분 20초 즉, 일주일의 작업분량을 삭제해야 했다. 일본 선수 마사오와 훈이 대결하는 장면에서 마사오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데 장발이었다는 이유에서 삭제됐던 것이다. (그림12) <로보트 태권 V 제2탄 우주작전> 마사오의 머리길이가 보이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장발단속이 행해져 바람에 날리는 마사오의 장발이 삭제되었다. <로보트 태권V>는 극영화처럼 지방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CF 스토리보드로 직접 돈을 모아 대부분 자비로 제작했다. 처음에는 18,000매로 계획했다. 일본 TV만화영화가 30분에 4,000매가 들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많은 18,000매면 1시간 16분 정도를 유연한 동작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제작에 들어가자 32,000매가 필요했고 이 숫자는 작화 뿐 아니라 트레이싱, 컬러링, 셀까지 이어지다보니 각각의 재료비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게 되었다. 총제작비 4500만원 중 유현목 감독으로부터는 지방투자자에게 단매하고 받은 진행비 200만 원과 후반 작업비용을 제공받았다. 나머지 금액은 김청기 감독의 사비로 빚을 져서 해결했다. 당시 애니메이션 재료들이 고가였고 또 많이 부족했기에 셀은 군사용 항공 필름과 엑스레이 필름을 구해 물에 불린 후 하이타이로 닦아서 사용했다. 종이며 연필 모두 질이 안 좋아 마루펜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다. 포스터 칼라도 국산은 색을 배합하면 색감이 탁해지는 등 재료에서 오는 고통이 컸다. (그림13) <로보트 태권V> 신문 광고 (그림14) <로보트 태권V) 개봉일 대한극장 앞에 즐비한 관객들 (그림15) <로보트 태권V) 극장 매표소 앞 행렬과 매진표시 작품을 완성시켜 개봉할 때도 고통은 이어졌다. <로보트 태권V> 1탄은 대한극장에서 개봉했는데 극장의 횡포가 심했다. 표돌리기로 극장은 관객수를 줄였고 상영중단 커트라인이 1200명이었지만 개봉 21일이 되자 1800명이 들어도 간판을 내리게 했다. 현금으로 수입을 챙긴 극장은 제작사에 어음으로 대금을 줬다. 그가 최종적으로 얻은 수입은 유현목 감독과 서울흥행수입 절반을 나눈 것이 전부였고 유현목 감독은 서울흥행수입의 절반과 부산흥행 수입을 가져갔다. 결국 그는 빚을 다 갚지 못해 당시 1800만원 상당의 사당동 단독주택을 팔아야 했다. 극장의 횡포에 부당함을 느낀 그는 <로보트 태권 V> 3탄부터 극장이 아닌 시민회관에서 개봉하며 어린이 영화의 새로운 흥행 관행을 만들어냈다. (그림16) <똘이장군> 포스터 그는 <똘이장군>(김청기, 1979)에서 수익을 냈고 <로보트 태권V>로 얻은 빚을 갚을 수 있었다. 키프로덕션 시절 기획했던 이 작품은 『정글북』과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소재에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섞어 만든 것이었다. 동아광고에서 대명해 제작했고 제작비의 일부는 지방 선판매로 해결했다. 개봉관 상영이 힘들어 서울 2번관 서너 개를 잡았는데 오히려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똘이’ 라는 이름은 <코주부> 김용환 선생의 <똘똘이의 모험>을 참고해서 지은 작명이다. (그림17) <혹성 로보트 썬더 A>(김청기, 1982) 포스터 그는 <똘이장군>의 흥행이 성공한 후 다시 로봇만화로 돌아온다. 로봇만화가 나오면 각종 완구들이 덩달아 인기였는데, 완구업체 ‘뽀빠이과학’은 <로보트 태권 V와 황금날개의 대결>(김청기, 1978)부터 완구를 만들어 수익을 보고 있었다. <혹성 로보트 썬더 A>(김청기, 1982)때부터 완구업체 ‘뽀빠이과학’은 독점 판매권을 얻고자 김청기 감독에게 제작비의 일부를 대고 판권을 사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완구 모델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할 때라 뽀빠이과학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합체로봇을 가져와 “이런 모델로 영화를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결국 그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영화화되지 않는 모델일 경우에 한해 제안을 받아들였고 조금씩 변형시켜 작품에 사용했다. 회사를 유지하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뽀빠이과학의 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뽀빠이과학은 제작비의 3분의 1 정도를 부담했다. (그림18)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김청기, 1982) 포스터 (그림19) <로보트군단과 메카3>(김청기, 1985)의 한 장면 (그림20) <똘이와 제타 로봇>(김청기, 1985)의 한 장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김청기, 1982), <로보트군단과 메카3>(김청기, 1985)는 이름을 빼고 싶을 정도로 작가로서 자부심에 상처를 입힌 작품이었다. 하지만 흥행을 위해서는 그의 이름이 필요했다. <똘이와 제타 로봇>(김청기, 1985)도 뽀빠이과학에서 제공한 완구를 모델로 한 작품인데 그래도 어려운 시기를 만회시켜준 영화였다. 소인국의 ‘파라셀 공주’가 완구 비행기에서 뚜껑이 열고 등장하는 것이 당시 아이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슈퍼 태권V>(김청기, 1982)의 경우 합체는 뽀빠이과학의 요구대로 갔지만 캐릭터의 얼굴과 태권브이의 이미지는 벗어나지 않았다. 1980년대 들면서 태권브이 모델이 조금씩 변하는데 이 또한 완구업체의 영향이 있었다. <84 태권브이>(김청기, 1984)에서는 3단 변신합체로봇과 칼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뽀빠이과학과 연출자의 의견 차이로 태권브이의 얼굴이 완구와 애니메이션이 차이가 날 정도였다. (그림21) <84 태권브이>(김청기, 1984)의 한 장면 (그림22) <84 태권브이>(김청기, 1984)의 한 장면 훌쩍 커버린 깡통로봇과 미나 <84 태권브이>(1984)는 <로보트 태권 V>(1976)를 본 아이들이 성장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주인공인 훈이, 미나, 영희의 외모나 체형 또한 성장하고 분위기도 현대적으로 바뀌는 변화를 보여줬다. 하지만 <84 태권브이>의 흥행은 LA 올림픽과 문화생활의 변화 때문에 기대 이하의 실망을 안겨줬다. 자가용이 늘어 아이들과 교외로 이동하는 레저가 생겨났고 주차가 힘들었던 극장에는 발길이 뜸해졌다. 게다가 1980년대 컬러TV가 보급되어 화려한 원색의 어린이 만화가 연일 방송되었다. 어린이 영화가 퇴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타격을 받게 된다. (그림23) <외계에서 온 우뢰매>(김청기, 1986) 포스터 어린이 영화의 퇴조라는 위기를 타개하고자 새로운 도전으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한 로봇 영화 <외계에서 온 우뢰매>(김청기, 1986)를 만들게 된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황금날개>의 스토리를 각색해 만든 것이다. 순진하고 어벙한 주인공이 덤블링을 하면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에 디즈니의 <메리 포핀스>(1964)처럼 실사와 만화가 어우러지는 형식을 더해 만든 작품이었다. 마침 뽀빠이과학이 독수리가 로봇이 되는 우뢰매 완구를 가져왔는데 썩 괜찮았다. 하지만 실사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각각 따로 찍은 뒤 합성해야 했기에 제작비가 상당했다. 결국 뽀빠이 과학이 제작비 5천만을 투자해 제작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림24) <외계에서 온 우뢰매>(김청기, 1986)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합성 장면. 우뢰매가 악당 로봇 캉가를 공격하려는 장면 코메디언 심형래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다행히 덤블링이 가능해 <우뢰매>시리즈에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심형래를 주인공 ‘에스퍼맨’으로 설정하고 ‘데일리’ 또한 <로보트 태권 V>의 메리와 같이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가져갔다. 그는 이때도 만약 데일리가 지구인일 경우 검열에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25) <외계에서 온 우뢰매>(김청기, 1986)의 한 장면. 에스퍼맨 심형래와 데일리 천은경 <외계에서 온 우뢰매>(1986)가 흥행에 성공하자 그 수입과 <외계에서 온 우뢰매 2>(김청기, 1986)의 선판매금을 합쳐 잠실에 세를 얻고 3억을 들여 올림피아극장을 만들었다. 마침 소극장 붐이 일었을 때였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는 겨울방학시즌 개봉 때 올림피아 극장에서도 상영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부터는 <스타워즈>를 모델로 특수촬영을 해보고자 애니메이션과 모형을 사용했다. (사진26) <외계에서 온 우뢰매 2>(김청기, 1986) 데일리 송금란과 에스퍼맨 심형래가 모형으로 된 우뢰매를 출동시키는 장면 그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의 성공 후 성인 히어로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이오맨>(조명화·김청기, 1988)을 제작한다. 이 작품도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주인공을 <6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 같은 사이보그로 그리고자 한 작품이었다. 홍콩, 태국 등지로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는 등 평균제작비가 1억이던 시절 5억의 제작비를 투자한 대작이었다. (그림27) <바이오맨>(조명화·김청기, 1988) 홍보전단 <바이오맨>은 국도극장에서 개봉하기로 했으나 마침 개방화 물결 속에서 1988년부터 공산권 국가들의 작품이 대거 국내에 상영되고 화제를 모을 때였다. <바이오맨>은 갑작스럽게 중국영화에 밀려 국도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게 된다. 지방의 흥행사들은 서울 상영관의 개봉 이력과 선전물을 받아 흥행을 해야 했기에 궁여지책으로 어린이회관에서 <바이오맨>을 개봉하게 된다. 작품의 성격과 상영관이 전혀 맞지 않아 흥행은 요원했다. (그림28) 만화잡지 《월간 우뢰매》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의 흥행 속에서 1988년에는 잡지 《월간 우뢰매》를 창간한다. 본격 로봇 만화잡지였는데 어린이 대상 잡지여서 광고수입이 없었고 결국 적자를 보며 운영하다 18권까지 발매하고는 폐간한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국세청으로부터 잡지 90만 권의 판매에 대한 소득세가 부과된다. 당시 열악한 출판업계 관행상 영수증 처리가 미비해 제대로 된 비용 증빙을 할 수 없어 공제 없이 고스란히 세금을 내야만 했다. 그는 세금을 벌기 위해 비디오사업에 뛰어들었으나 당시 포화상태였던 비디오업계에 진입해 성공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태권브이’의 아버지이자 한국 로봇애니메이션 영화의 창시자인 그는 1990년대 중반 안타깝게도 파산을 선언하고 낙향한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으로 사업을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이후 방송국과 주변인들의 요청으로 애니메이션 몇 편을 만들었고 1999년에는 영화사 ‘신씨네’ 신철 대표에게 <태권브이>의 저작권을 넘기고는 제작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림29) 2016년 ‘태권브이’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 ‘엉뚱산수화전’의 작품 현재는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며 조용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는 위기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로보트 태권브이>와 <외계에서 온 우뢰매>라는 성공적인 시리즈를 만들어내 국내 애니메이션과 어린이 영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놓지 않고 있다.
[테마연재]<우뢰매> <별똥왕자> <반달가면> 시리즈 , 1980년대 아동용 SF 액션
1980년대 충무로의 가장 독특한 발명품이라면 아동용 SF 액션 영화일 것이다. ‘연소자’ 관객층을 위한 영화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1970년대 < 로보트 태권 V >( 김청기 , 1976)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로봇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에도 꾸준히 제작되었고, < 하늘나라 엄마 별이 >( 이영우 , 1981)나 < 저 하늘에도 슬픔이 >( 김수용 , 1984) 같은 신파 가족 영화도 명맥을 이었다. 이때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김청기, 1986)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시작된 아동용 SF 액션 장르 영화들은, 사실 수많은 요소들의 기묘한 혼합이었다. 일단 애니메이션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당대의 아동용 SF는 장르적 시도이었을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SF 액션을 만들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채운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에 일본 특촬물의 콘셉트를 결합시킨 것일까. 후자 쪽에 좀 더 기울긴 하지만, 아무튼 그 결과물은 실사 촬영과 조잡한 그래픽, 애니메이션과 초보적인 미니어처 촬영과 심하게 티 나는 합성 장면이 뒤엉킨, 가히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1. 하늘을 나는 에스퍼맨. 한국영화의 대표적 슈퍼히어로다. 2. 우뢰매 로봇의 위용. 3. 박사 캐릭터는 < 우뢰매 > 시리즈를 비롯 이 장르의 빠지지 않는 캐릭터다. 엄용수는 <우뢰매> 시리즈와 < 흑성마왕과 슈퍼왕자 >( 박옥상 , 1987)에 박사로 등장한다. 참고로 그는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4. < 우뢰매 > 시리즈의 보미는 당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던 ‘국민 누나’였다. 걸 그룹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의 멤버인 우윤아 가 역할을 맡았다. 내러티브 부분엔 < E.T .>(스티븐 스필버그, 1982)의 개봉과 TV 시리즈 <브이>(1985) 방영 이후 불기 시작한 ‘외계인 열풍’이 가세했다. 1980년대는 UFO나 외계인이 비로소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한 시기인데, 아동용 SF는 그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7~8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한국형 SF는 죄다 외계인이 등장했다. 스토리 라인 역시 천편일률적이었는데,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은하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 2-1. 그들은 지구의 그 무엇을 가져가려고 온 침략자이다. 2-2. 그들은 사정이 있어 지구에 불시착한 망명객이다. 이때 외계의 악당들이 따라온다. 3. 지구의 슈퍼히어로가 외계의 악당을 제압한다. 4. 괴짜 과학자와 용감한 아이들이 가세한다. 2-2의 경우, 외계인과 아이들 사이엔 우정이 싹튼다. 5-1.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지구를 지켰다. 5-2. 지구를 지켰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의 슬픈 이별이 이어진다. 이외에도 다양한 영향력이 있었다. SF라곤 하지만 히어로와 악당의 대결 콘셉트는 무협 영화에서 왔다. 그들은 외계가 아니라 마치 소림사에서 온 듯했고, 각종 권법을 구사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생경한 광경이었다. 여기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결합되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심형래의 영향이었다. 당시 설문조사를 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동급이었던 심형래 의 인기는, < 우뢰매 > 시리즈 탄생의 중요한 토대였다. 그의 장기는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는 몸 개그. 심형태의 성공 이후, ‘뽀식이’ 이용식 , ‘밥풀떼기’ 김정식 , ‘공포의 삼겹살’ 김형곤 , ‘맹구’ 이창훈 그리고 ‘호랑나비’ 김흥국까지, 아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연예인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개그맨이 조연과 악당으로 활약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완구 업체였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시리즈의 뽀빠이 과학, < 은하에서 온 별똥 동자 > 시리즈의 건양 과학 교재사, < 스파크맨 >( 김경식 , 1988)의 삼성 교재 완구사, < 우주의 용사 반달 가면 >( 임정호 , 1991)의 정일 과학 등 제작비는 영화를 통해 완구 판매를 노리는 업체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이런 물적 토대는 이 영화들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 일설에 의하면, 장난감을 만드는 금형을 일본에서 들여왔기에 ‘어쩔 수 없이’ 영화 캐릭터도 일본 것을 베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우뢰매부터 시작해 수많은 로봇과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표절 시비에 시달렸던 건 그런 이유인데, 아무튼 완구 업체의 전략은 적중했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 영화와 장난감이 결합된,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적 부가 시장 탄생이었던 셈이다. < 우뢰매 > 시리즈가 나왔던 1986~93년 동안 등장했던 아동용 프랜차이즈들. SF 이외의 장르도 포함시켰다. 당시 이 프랜차이즈들은 1년에 두 편씩(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내놓기도 했다. 1. 영원한 ‘데일리’ 천은경. <우뢰매> 시리즈 1, 3, 4, 8편에 출연했다. 2. 5편의 ‘데일리’였던 이혜진 . 3. 1987년 3편에 외계인 ‘삐용’으로 등장한 강리나 . 이후 그녀는 섹시 스타로 부상한다. 당시 천은경 , 이혜진 , 강리나를 비롯 <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3 >( 석도원 , 1988)의 우연희 , < 바이오맨 >의 신미아 , <우뢰매> 6편의 데일리였던 김종아 등은 성인용 영화와 아동용 영화를 겸업했다. 석도원, 방순덕 , 조명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4. <우뢰매> 시리즈 최고의 파격 캐스팅이었던 7편 < 돌아온 우뢰매 >( 임종호 , 1992)의 이봉걸 . ‘인간 기중기’였던 씨름 선수 이봉걸은 외계인 ‘마주기’로 등장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일단 1986년 <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의 시작이다. 1980~85년에 약 30편 정도 장편 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을 했는데, <외계에서 온 우뢰매>가 등장하면서 아동 영화 시장은 실사 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1986~89년에 애니메이션은 대여섯 편에 불과했다). 공식 기록은 서울 개봉관 관객 5,527명이지만, 이 영화는 ‘상영이 가능한’ 전국 각지의 수많은 공간에서 공개된, 풍문에 의하면 100만 명 이상이 보았다는 영화였다. 이처럼 1980년대 아동용 SF는 기록 이상의 위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10세 이하 어린이 시장에선 절대적인 콘텐츠였다. 그 힘은 비디오 대여점 시장까지 이어졌는데 1990년 전후 시기엔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은 OVA 마켓이 형성된다. 여기서 <반달가면> 시리즈는 흥미로운 사례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가지만, < 반달가면 >은 역주행을 했던 것. 1~2편인 <전설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0)과 <신비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1)은 비디오 영화였지만, 3편인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임종호, 1991)은 극장용으로 제작되었다(이후 다시 비디오로 돌아가 6편까지 제작되었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가 포문을 열자 봇물이 터졌고, 한국영화는 비로소 장르 프랜차이즈의 시대가 열렸다. 어른들을 위해 < 애마부인 >과 < 산딸기 > 시리즈가 있었다면, 아이들을 위해선 <우뢰매>와 <영구> 시리즈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심형래 는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조상이 되는데, <우뢰매> 시리즈를 비롯 SF 장르를 벗어난 < 슈퍼 홍길동 >과 < 영구와 땡칠이 > 시리즈가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제작자 겸 감독이 된 그는, 이후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수많은 구설에 오르는 영욕의 세월을 보내지만, 1980년대로 한정할 때 한국영화에서 ‘심형래’라는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부실한 퀄리티로 ‘애들 코 묻은 돈’을 가져간다는 비난이 따라다녔지만, 이건 철저히 어른의 시각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당대 ‘심형래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였다. 1. <별똥왕자> 시리즈의 이건주 .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의 아역들은 아동용 SF 액션의 단골 배우였는데 ‘순돌이’ 이건주를 비롯, 최정화 송정림 이종민 등이 있다. 2. <우뢰매> 6편에 오면 파워 슈트가 등장한다. 3. 당시로선 ‘고퀄’이었던 < 스파크맨 >. 여기서 심형래 는 슈퍼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고뇌하는, <우뢰매> 시리즈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4. 1990년대를 대표한 <반달가면> 프랜차이즈. < 영구와 땡칠이 >( 남기남 , 1989)는 그 절정이었다. 당시 상영관은 < 록키 호러 픽쳐 쇼 >(짐 셔먼, 1975)을 방불케 하는 컬트의 용광로였다. 영구의 부름에 아이들은 마치 그를 대면하는 듯 “예~~!”라고 대답했고, “영구~ 없다!”라는 대사 한 마디에 자지러졌으며, ‘소쩍꿍’ 장면엔 좌석에서 일어나 영구의 동작을 따라 했다. <영구와 땡칠이>의 공식 시리즈는 4편까지 이어졌지만, 이후 수많은 ‘ 심형래 시리즈’가 비디오 영화로 이어졌다. 엔터테이너 심형래, 그는 장르의 섭렵자였고 캐릭터의 만물상이었다. 포졸, 흑기사, 각시탈, 괴도 루팡, 탐정, 도사, 007, 돈키호테, 대부, 헐크, 황비홍, 할매… 흥행 트렌드에 맞춰 1년에 네다섯 편씩 쏟아지는 그의 영화들은 ‘질’과 상관없이 ‘양’으로 아이들을 공격하는 융단 폭격기였다. 다시 SF 장르에 집중해 보자. 사실 당대의 영화들은 한계투성이였다. 가장 심각한 건 윤리적인 부분이었다. 그 시절 아동 영화엔 아동에 대한 배려가 심하게 부족했다. 유해 요소로 가득 한 불량식품?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일찍 성에 눈뜬 아이들을 위한 숨겨진 배려였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보기 민망한 노출 장면도 심심찮았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1986)에서 데일리(송금란)는 “에스퍼맨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요”라는 위험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시각적 표현은 과잉되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 타입의 의상은 거의 유니폼이었다. 악당의 경우 한껏 부풀린 퍼머 머리에 진한 눈 화장이 필수였고, 액션을 수행함에도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섹시한 느낌의 여배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1980년대의 ‘시대 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이 아동 영화 장르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섹슈얼한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반달가면> 시리즈는 범죄 요소가 너무 강했고 폭력의 수위도 높았다. 언어적인 면도 심각했다. 각종 유행어가 난무한 건 개그맨들이 주로 출연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병신 같은 것들!” 같은 욕설에 가까운 대사를 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술 마시는 장면도 간혹 있었고 흡연도 자유로웠다. < 텔레파시 여행 >( 왕호 , 1991)의 좀비들은 모여서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1. <우뢰매> 2편엔 보미의 노출 장면이 있다. 아동용 영화로선 파격적이다. 2. < 드래곤볼 >에서 부르마( 이주희 )의 샤워 장면을 엿보는 손오공(허성태). 전형적인 에로 영화의 앵글이다. 3. < 마카리안 고 >의 외계인 악당. 강렬한 메이크업과 풍성한 퍼머 헤어스타일은 클리셰였다. 4. < 외계인 코브라 >( 김병기 , 1988)에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당시 인기 개그맨 황기순 과 이원승 . 외계인들은 대부분 파충류로 설정되어 있는데, 황기순은 새를 먹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9)엔 쥐를 먹는 장면도 있다. 은근히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이라는 국가 대사가 이어지는 시기였기에? 실제로 여러 영화에 호돌이가 등장했고, 올림픽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며, 많은 아역 캐릭터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 마카리안 고 >( 김완기 , 1987)는 ‘독도’를 중심 배경으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건 1987년에 1~2편, 1988년에 3편이 나온 <별똥왕자> 시리즈였다. 명성왕국에서 지구로 피신 온 별똥 왕자( 이건주 )와 지구 어린이들 사이의 우정이 중심인데, 1편엔 대표적인 ‘국뽕’ 가요인 ‘아, 대한민국’이 흐르고 3S 정책의 대표적 이벤트인 프로야구가 등장한다. 2편은 석도원 감독의 당부를 담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어른께 공경하고 도덕을 존중하는, 착하고 아름다운” 어린이가 되자고 약속하자는 내용. 그리고 영화엔 이런 장면이 있다. 아이들과 어른 사이의 대화다. 어른: 그 사람들은 우주인이야. 아이들: 우주인이요? 어른: 우주인 중에서도 아주 나쁜 우주인이야. 아이들: 그럼 북괴 공산당 같은 나쁜 놈들이군요? 어른: 응. 맞았어. 아이1: 그럼 우주 공산당이구나! 아이2: 우주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자유와 평화를 없애려는 나쁜 놈들, 공산당은 나빠요. 아이3: 공산당은 싫어요!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수많은 아이들을 ‘이승복 어린이’로 만들어 버리는 이 대목은 1980년대 아동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단서를 준다. 반공 영화와 국책 영화가 사실상 사라진 1980년대 중반, 뚜렷한 이분법으로 ‘우리 편’과 ‘적’을 나누는 한국영화 장르는 SF 액션이 거의 유일했다. 물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 사이의 우정도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시기 아동용 영화의 세계관은 이전의 이념적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온 외계의 악당은, 남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 세력과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건 크로스오버 현상이었다. < 외계인과 콩콩 강시 >( 안승호 , 1989)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강시 영화를 접목시켰고, 인기 만화를 각색한 < 드래곤볼 >( 왕룡 , 1990)도 등장했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8)은 당시 < 돌아이 > 시리즈로 인기를 끌던 전영록 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역시 당대 청춘스타로 부상하던 박중훈 은, ‘전체 관람가’라곤 하나 사실 성인용 콘셉트가 만만치 않았던 < 바이오맨 >(조명화, 김청기 , 1989)에서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 로보캅 >(폴 버호멘, 1987)의 영향을 받은 듯한 캐릭터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하이브리드의 성격이 강했던 당시의 SF 액션은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이며 영토를 확장했다. 1. < 외계 번개용 >의 전영록 . < 돌아이 > 시리즈 캐릭터의 연장이다. 2. < 바이오맨 >의 박중훈 . 이 영화는 다소 성인용에 가깝다. 3. <우뢰매> 1편에 나오는 이재은 . 이외에도 안연홍 김민정 그리고 이병헌 의 동생인 이은희 등이 아역 시절 이 장르에 등장했다. 4. < 스파크맨 >의 오로라 공주 김진경 . 당시 CF 모델이었던 그녀는 수많은 남자 아동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이 장르는 1980년대 후반에 짧은 화양연화를 보낸 후 1990년대 초가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공룡의 몰락과도 같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자본 구조에서 오는 완성도의 미흡함일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초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 이른바 ‘<우뢰매> 류’ 영화들은 새 자본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르 내부에 있었다. 진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토대가 워낙 취약하다 보니 그 속도가 더뎠다. 초반엔 아예 애니메이션 장면과 실사 장면을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어설프지만 합성이 시도되었고, 미니어처 촬영도 있었다. 정도안(특수효과)이나 신재호(특수분장) 같은 장인들도 이 시기 경력을 시작하며 열악한 상황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 스파크맨 >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의상과 소품과 특수효과 등은 당대의 ‘고퀄’이었다. 그럼에도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은 로케이션과 미술이었다. 이 시기 SF 액션은 그냥 주택가에서 찍었다. 액션이 벌어지는 우주선 내부는, 얼핏 봐도 아파트 보일러실 같은 곳이었고, 마분지나 은박지로 배경을 처리한 듯 보이는 후줄근한 비주얼이었다.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 임종호 , 1991)에서 외계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나이트클럽에서 촬영될 정도였다. 양적 팽창만큼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던 1980년대산 아동용 SF 액션 영화들은 1990년대를 견디지 못했다. 특히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캐머런, 1991)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등이 컴퓨터그래픽의 경이로운 스펙터클을 선보이며 관객의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렸다. 1. < 우뢰매 > 4편에서 에스퍼맨과 형래는 동네 제과점에서 만나 빵을 먹는다. 일상적 설정이라고는 하나… 조금 심했다.. 2.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에선 나이트클럽이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화면 위쪽에 사이키 조명이 보인다. 3. < 우뢰매 > 4편의 미니어쳐. 아동용 SF 장르는 나름의 기술 발전을 이루려 했다. 4. <우뢰매>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엔딩. “안녕”이라는 자막은 이후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애용되었다. 1980년대엔 여러 장르적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단명했다. 사회적 변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의 격변, 장르 내부의 모순, 외부적 영향 등 그 이유는 다양했고, SF 액션의 소멸은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장르를 기억해야 한다면, 당시 가장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지녔던 영화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정의의 사도 에스퍼맨은 우뢰매와 함께 우리를 지켜준다.” 이 믿음직한 한 마디는, 현재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대의 관객들 귓가엔 여전히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을 것이다.
[칼럼]맥스무비, 원 이슈 영화 매거진을 발행하며
삶은 개구리 증후군. 현재 모든 미디어가 처해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모두 데워지기 시작한 냄비 안의 개구리 신세지만, 물이 끓는 줄도 모른 채 넋 놓고 있는 게으른 개구리는 없다. 미디어 환경은 분기별로 트렌드가 바뀌고, 사용자는 이미 모바일 왕국으로 이사를 떠났다. 삶아지기 전에 냄비 밖으로 튀어나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과연 냄비 밖에 우리들이 살아갈 새로운 ‘물’이 존재하는가? 아무도 모른다. 일단 냄비 밖으로 튀어나왔는데, 가도 가도 바싹 마른 모래사막이라면? 튀어나갔다가 더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 일단 지금은 살아야 한다. 점차 뜨거워지는 냄비 안에서 괴롭게 버티면서, 다들 사력을 다해 생존 가능한 냄비 밖 개척지를 찾고 있다. 이미 흐물거리기 시작한 ‘종이 개구리’들은 더욱 절박하다. 맥스무비가 2013년 11월 종이 잡지 『맥스무비 매거진』을 복간할 때, 사라져가는 종이 영화 잡지의 귀환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우려하는 시선이 더 많았다. 오랜 오프라인 기반 미디어들이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를 외치며 종이 대신 온라인에서 생존 가능성을 찾는 차에 온라인 기반이었던 맥스무비가 종이 잡지, 그것도 이제는 종적을 감춘 ‘영화 월간지’를 되살린다니 그럴 만했다. “요즘 사람들은 (잡지)를 안 읽는다”는 조언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맥스무비가 선택한 ‘종이 월간지’는 오히려 냄비 밖에서 물을 찾으려는 탐험이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항상 ‘독자(소비자)’를 향한다고 말하지만, 대개 ‘만드는 사람’ 중심으로 사고한다. 예전처럼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데, 왜 읽히지 않을까. 이 질문을 파고들 때, 미디어라면 ‘읽을 것이 없는 시대’를 만든 자기 반성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비자 입장에선 ‘돈을 주고 사서’ 읽을 만한 것이 없는 시대가 됐고, 더 큰 책임은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다. ‘온라인은 확산 매체, 오프라인은 저장 매체. 온라인 콘텐츠는 공유하고 싶어야, 오프라인 콘텐츠는 소장 하고 싶어야 살아남는다.’ 기존의 온라인 미디어 맥스무비에 월간지 『맥스무비 매거진』을 복간해 ‘On & OFF’ 양 날개를 정비하면서 세운 원칙이다. 온라인 콘텐츠는 빠르고, 쉽게 많은 사용자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빠르고 쉽게 흘러가 버린다. 다들 공들여 콘텐츠를 만들지만, 수많은 뉴스피드 안에 섞여 들어가면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온라인 콘텐츠는 대개 ‘무료’다. 전문 미디어로서 생존하기 위해선 반드시 우리만의 무기가 필요했고, 유가 종이 잡지가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콘텐츠는 그 성질이 달아야 한다. 하나의 콘텐츠를 그저 양쪽 그릇에 옮겨 담아선 안 된다. 그래서 월간지의 방향을 ‘대특집’으로 잡았다. 한 가지 이슈를 정해 잡지 전체 콘텐츠의 60% 이상, 매달 80~1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특집 이슈로 채웠다. 오프라인 콘텐츠는 일부 확산 가능한 아이템을 제외하면 온라인에 무료로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고 소장한 사용자에게 지불 가치를 보존해줘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년간, 36권의 잡지 중 몇몇 이슈는 즉각적인 독자의 반응을 얻어 완판 사례를 기록했다. 판매율도 높아져 평균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매진된 이슈가 중고 사이트에서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타 월간지보다 가격을 높게 책정했고, 부록 등의 부가 선물을 제공하지 않고 얻은 성과였다.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를 확인했지만, 시행착오의 기간이기도 했다. 어렴풋이 선택과 집중의 윤곽을 더듬었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었다. 말이 쉽지, 독자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면서 영화 전문 미디어로서 아카이빙의 가치를 갖는 콘텐츠를 매달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것은 ‘골라 담기’였다. 한 주에 평균 크고 작은 20여 편의 영화가 개봉하고, IPTV로 직행하는 영화들도 있다. 영화와 관련된 책과 공연도 줄줄이 등장한다. 감독, 배우, 스태프 등 놓치고 싶지 않은 인물도 많다. 모든 ‘NEWS’는 즉각 온라인 피드가 되어 돌아다니기 때문에 미리 취재해서 월간지에 실어도 종종 뒷북처럼 여겨졌다. 한정된 인원으로 온라인 콘텐츠는 속도 경쟁에 합류하면서, 오프라인 콘텐츠의 소장 가치를 강화하는 일이 힘에 부쳤던 것도 사실이다. ‘투 트랙’ 전략은 우리 모두에게 낯설었고, 전례도 없었다. 콘텐츠를 만들 때, 더하기보다 빼기가 열 배쯤 중요하다는 걸 3년의 시행착오 끝에 배웠다. 원 이슈 『맥스무비 매거진』, 원피스 ~ 봉준호 ‘백 가지를 나직하게 속삭이지 말고, 한 가지를 크게 부르짖어라’ 책 『미친 듯이 심플』 2016년 12월 『맥스무비 매거진』 시즌 2 ‘원 이슈 리뉴얼’은 쉽지 않았던 ‘빼기’의 결과물이다. ‘대 특집’을 내세우면서도 이 영화도 빼면 안 될 것 같고, 이 인물도 빼면 안 될 것 같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지 않겠냐며 주섬주섬 담았던 게 사실이다. ‘잡지는 잡스러워야, 잡지’라는 오랜 습관을 털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올인’은 살 떨리는 배팅이다. 우리가 선택한 하나가 독자에게 외면받으면 끝이라는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하나를 크게 부르짖기 위해선, 다른 것을 빼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활성화된 온라인 플랫폼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첫 원 이슈 『맥스무비 매거진』 37호의 주제는 < 원피스 >였다. 다른 데서 볼 수 없었던 우리의 콘텐츠가 필요했다. 10년 넘게 원피스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줬던 국보급 성우들을 한 자리에 모았고, 일본 도쿄 타워에 위치한 ‘원피스 테마파크’로 취재를 떠났다. 시도 때도 없이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를 외치는 루피의 무대뽀 정신을 우리에게 세뇌시켰다. “가자! 그곳이 어디든!”은 우리의 등을 다독여주는 대사처럼 들렸다. 첫 원 이슈 매거진 <원피스>는 고맙게도 완판됐고, 재판을 찍었다. 이후 ‘신카이 마코토’ 이슈 38호는 < 너의 이름은. > 촬영지 직접 투어 콘텐츠가 회자되며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이슈 39호 ‘로건’, 2017년을 빛낼 라이징 스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한국에서 발행된 봉준 호 감독의 첫 단행본 형식 매거진 ‘봉준호’,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배우 설경구의 25년을 담은 ‘설경구는 아름답다’까지 원 이슈를 이어왔다. 고맙게도 독자들은 지갑을 열었고, 완판 보도 자료를 여러 번 낼 수 있었다. ‘읽지 않는 시대는 없다’고 말해주는 독자들 덕분에 매번 용기를 얻고 있다. 물론 ‘원 이슈’라는 길을 앞서간 훌륭한 매체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일본의 기획 매거진 『부루투스』 『뽀빠이』의 지속성, 한국의 브랜드 원 이슈 『매거진 B』가 닦아 놓은 단행본 형식 매거진의 가능성을 영화 잡지에 접목 시켰다. 마침 문학계에서도 『릿터』 『악스트』 『미스테리아』 등의 잡지가 창간되어 주목받았다. 마침 올해 6월,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이 출간되면서 ‘한물갔다’고 조롱당하던 낡은 것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 같은 흥분도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아날로그의 복수 THE REVENGE of ANALOG’다. ‘레거시(Legacy)’라는 우아한 오명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했던 오프라인 미디어에겐 ‘반격’이 더욱 통쾌하게 들리겠지만, ‘복수’가 더 정확하고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반가운 마음에 『아날로그의 반격』을 오독할 수도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이 시작되었으니 과거의 종이 잡지를 그대로 만들어도 사 줄 독자가 있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지금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대등하게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다만 이 책은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말살시킬 것처럼, 아날로그는 완벽하게 숨이 끊어진 것처럼 떠들던 호들갑이 ‘팩트’가 아님을 확인시킨다. ‘아날로그’ 혹은 ‘종이’라는 이유로 덮어놓고 한물간, 구태의연한, 혁신적이지 못한,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법한 ‘유물’ 취급을 하는 것인 매우 쉽다. 동시에 게으르다. 한편으로는 디지털 독트린에 휩쓸려 디지털이라는 껍데기만 주물럭거리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수두룩하다. 뉴스피드에 난무하는 큐레이션을 가장한 카피 콘텐츠는 미디어 신뢰도를 깎아 먹었고, 조각난 정보로 오독을 불러일으키고, 조회 수 낚시질에 열을 올리다가 ‘기레기’라는 오명을 얻지 않았나. 게다가 모두 디지털을 외치고 있지만, 디지털 미디어는 아직 괄목할 만한 매출 구조를 찾지 못했다. “자동차가 발명됐다고 말이 사라진 게 아니다. 비싸고 귀해졌을 뿐.” 『뉴스위크』프리미엄 인쇄본 재창간 축사에서 2013년 종이 잡지를 폐간한 『뉴스위크』가 1년 만에 『뉴스위크』 프리미엄 인쇄본을 재창간 하면서 일러 준 교훈이다. 『맥스무비 매거진』원 이슈를 발행하면서 얻은 교훈을 덧붙이자면, ‘종이 잡지’는 비싸고 귀한 말을 탄 ‘경험’을 공유하는 사용자가 있어야만 가치가 생긴다. 특히 ‘신카이 마코토’와 ‘로건’ 그리고 가장 최근 발행한 43호 ‘설경구는 아름답다’를 만들면서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 얼마나 적극적이고 열성적인지 놀랍게 확인할 수 있었다.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사용자들에겐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최근 원 이슈 매거진 발행 후 우리는 동일한 콘텐츠 경험이 타인과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되어 준다는 걸 확인했다. 콘텐츠 구매 경험을 통해 연결되고 싶은 욕구를 가진 독자를 찾아내고, 그들이 소장 하고 싶어 하는 이슈를 탐색하는 예민함이 에디터에게 어느 때보다 필요한 자질이라는 걸 배워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이슈를 찾는 건 유니콘을 찾는 것과 같다. 원 이슈 『맥스무비 매거진』은 앞으로 ‘콘텐츠를 사고 싶어, 살 수 있는’ 사용자가 잡지를 손에 쥐고, 책장을 넘기는 그 경험을 만족시킬 콘텐츠를 찾기 위해 더욱더 눈에 불을 켤 생각이다. 사족이지만, 비싸고 귀하지만 소장할 만큼 가치 있다고 판단할 수준의 콘텐츠 완성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독자는 귀한 줄 안다면, 귀한 대접을 하는 게 당연하다. 구구절절 길게 적고 보니, 실은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혼자 비장하게 떠든 것 같아 부끄럽다. ‘맥스무비’가 온라인 영화 미디어로 쌓아온 시간이 18년, 유가 오프라인 잡지를 발행한 지 4년이 됐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직 쌓아가야 할 것이 더 많다. 오프라인 매거진은 더욱 공들여 독자를 만족시켜야 하고, 온라인 미디어는 더 빠르게 퍼져나가야 한다. 맥스무비 동영상 콘텐츠는 가벼운 스낵 스타일을 탈피해 더욱 ‘영화적’인 콘텐츠로 방향을 잡았다.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지 않았던 종이 잡지 콘텐츠는 디지털 그릇에 제대로 담아 유료화 서비스로 선보일 계획이다.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것과 절대 바뀌지 않을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미디어 종사자들의 숙명이니 앓는 소리 할 것도 없다. 가끔 예전이 그리울 때도 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인터뷰를 한 뒤, 대화하고 생각하며, 글을 다듬고 또 다듬어서, 며칠 불면의 마감을 보낸 뒤 따끈한 잡지 한 권을 들고 소주 한잔하러 가면 일이 끝났던 때. 하지만 시간은 똥도 꽃으로 만든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한 번도 쉬운 적은 없었다. 그래서 눈이 팽팽 돌아가는 이 시대도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영화만을 말할 수 있는, 영화 전문 미디어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