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랑해, 사요나라
- 감독
- 홍선혜
- 제작년도
- 2024
- 출연
- 마키타 아쥬, 아오키 아이리
지금 말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지극히 사적인 영화들의 목록이다. 만들고 싶은 영화, 꿈꾸는 영화들, 마음으로 두고 싶은 영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열 편의 작품은 굳이 말하자면 각별히 올해 내 마음에 다가왔던 영화들이다. 그러니 작품을 평가하거나 가치를 나열할 생각 대신에 마음이 동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적으려 한다. 먼저, 최근에 세상을 떠난 두 작가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 >(1993), 그리고 샹탈 아커만의 < 노 홈 무비 >(2015). 이 두 편의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획한 추모전의 일환으로 상영했다(사실 이들을 추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삶과 죽음을 간결하면서도 대담하게 다룬 작품들인데, 두 편 모두 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올리베이라는 영화가 예술이 아니며, 인생도 아니고, 그 둘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영화는 늘 그 사이에 있고, 우리 또한 영화들 사이에 있다.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관객을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공간에 초대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에게 초대받을 만한 친밀한 이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들의 방문이 작별을 통고받는 자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실은 우리가 함께할 시간을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후카다 코지의 < 사요나라 >(2015)와 필립 그랑드리외의 < 밤임에도 불구하고 >(2016)는 바라보는 것의 불안을 오래간만에 느낀 작품들이다. 후카다 코지의 영화에 대해서만 짧게 언급하자면,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대전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한 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했다. 히라타 오리자의 안드로이드 연극을 원작으로, 이른바 ‘포스트 3.11 영화’의 계열에 자리 잡을만한 작품이다. 미래의 어느 때, 원전사고가 일어난 일본에서 해외 이주정책이 발표되고, 폴란드 난민 출신의 여인은 이제는 더 이상 떠날 곳을 찾지 못해 예정된 죽음을 기다린다. 하루하루의 소멸될 시간에서 유일한 말벗은 시를 읽어주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창가의 소파에 누워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여인은 마침내 숨이 꺼지고, 시간이 흘러 그녀의 피부는 썩어들어 가고 한 줌의 뼈로 남게 된다. 그 모든 시간을 그녀 앞에서 꼼짝 않고 바라보던 이는 그녀의 로봇이다.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게 될 세계에서 우리의 죽음을 지켜볼 시선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파멸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매혹적인가.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특별히 나이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게 했던 영화들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민하고 자숙한다. 자기 자신으로 남는 피로감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야 할 욕구 사이에서 주저하고 용기를 내기도 한다. 주아옹 니콜라우의 < 존 프롬 >(2015)은 십 대들의 욕구와 환각 모험을 그리는데, 여전히 이런 경쾌한 움직임이 영화에서 가능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몹시 반가웠던 영화다. 이제 서른인 대만의 여성감독 위에이산의 < 어린 부모 >(2015)는 내가 꼽는 올해의 데뷔작 중의 한 편이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안이한 결말로 쉽게 끝나지 않으면서, 얇지만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서늘한 느낌이 오래 남았던 영화다.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한 번 더 기회가 여전히 주어진다는, 그럴 기회가 있음을 믿게 하는 영화다. 사실 이 두 편의 영화는 이 작품을 본 소수의 관객들과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나만의 리스트’로 남게 될 것이다. 미아 한센 러브의 < 다가오는 것들 >(2016)은 유일한 개봉작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만든 성숙한 영화라는 점에서 공감했다. 생 말로의 고요한 섬, ‘파도와 바람 소리만을 듣고자 했다’는 샤토브리앙의 무덤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이 영화가 끝난 뒤 다시 생각난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거쳐,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여인의 고립과 분리를 마치 섬의 고립처럼, 조수간만의 물결처럼 밀려오고 떠나가게 한다. 한때 급진적인 생각을 지녔던 주인공 여인은 학생들의 파업에 반발하고, 변모하는 철학 서적 마케팅 시장의 논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급진적인 사상의 제자에게서 사고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난까지 듣는다. 나도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자각! 그녀는 “난 변했다”고 말한다. 제자는 그녀에게 “그런데 세상은 그대로인 걸요. 더 나쁘기만 해요”라 반문한다. 변한 게 없는 변화의 삶이라니. 삶의 변화란 어떤 마음의 결심을 하는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대신 다른 곳에 가고, 다른 것들을 보고, 다른 것을 듣고,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것으로나 가능할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와 켄 로치의 두 작품은 영화라는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 은판 위의 여인 >(2016)에서 한 컷을 촬영하는데 몇 시간 내지 하루가 걸리는, 노출 시간이 긴 촬영을 고집하는 은판사진작가의 강박적인 작업은 이미지에 대한 어떤 기대가 없다면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위험하고 지루한 노동일 것이다. 영화작업이란 여전히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노동이다. 켄 로치의 영화는 이제는 작가적 접근보다는 어떤 하나의 사상이 작동하는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외에 다른 불만을 내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미 사상이 되어버린 예술가의 견해라고 할까.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본디 그에게 속한 존엄을 되돌려 받기 위해 주장한다. 행복에의 기대, 그 이미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켄 로치에게 영화라는 노동은 시민에게 존엄을, 시민권을 되돌려주는 예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나 홀로 이야기하게 될 한 작품이 남았다. 케이타 무카이의 <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 >(2016)가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이들은 내가 아는 한 서너 명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한 바 있으니, 제주 시민들 백여 명 정도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나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작은 미술관 강당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보느라 서다 앉기를 반복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했다. 나라에는 사슴은 많지만 국제영화제가 개최될만한 영화관은 없다고 한다. 나라시의 지원도 끊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어 개막식 레드 카펫 행사에 나섰다. 영화제의 중심에는 알다시피 가와세 나오미가 있다.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내게 영화제 방문은 그녀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을 깨는데 충분한 기회였다. 그녀의 수고와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였다. 아무튼, 이 작품은 실은 큰 기대 없이 보았던 영화다. 그때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였을 뿐이다. 영화 경험이 전무한 스물네 살의 청년이 만든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카탈로그에 실린 짧은 소개 글을 읽으며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될까, 염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몸을 뒤척거리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는데, 첫 내레이션부터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석양에?물든 호류지(나라현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절이라고 한다)가 보이면서 배경에는 희미한 종소리가 울린다. “호류지의 종은 두 시간마다 울린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금속의 울림은 온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울려 퍼지다가 사라져 간다. 내 어린 시절, 하루의 끝에서 울리던 그 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호류지의 종소리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도록 재촉하는 불안한 소리였다. 양호시설의 통금시간은 여섯 시. 밤 아홉시에는 소등이 된다. 화면에는 마치 수용소를 보여주는 것 같은 몇 장의 사진들이 슬라이드 화면처럼 지나가고, 날마다 똑같은 고아원에서의 반복적인 일과들이 설명된다. 그나마 특별한 날이라면 달이 바뀔 때마다의 생일잔치였다고 한다. 파티 장식도 없고, 음악도 없었고, 늘 똑같은 축축한 버터크림의 초콜릿 케이크가 전부였던 생일잔치이다. 그런데 이 달콤한 초콜릿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도 같아 그에게 어두운 과거를 단박에 떠올리게 한다. 감독 케이타 무카이는 이 작품으로 양호시설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18세가 되면 아이들은 양호시설을 떠나 자립해 살아가야만 한다. 그는 이제 성인이 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고, 양호시설에 자신을 맡긴 아버지와 힘겨운 대화를 시작한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 관심을 두어 양호시설 자원봉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작업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열등감, 부모에 대한 분노, 가난과 학대받은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말하게 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예전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들에게 기억은 그러므로 일종의 이중구속으로,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들은 양호시설에서의 삶을 비판하되 부정하지 않는다. 비록 수용시설의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 기억과 시간은 이제 간신히 긍정할 수 있게 된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를 한편으로는 달콤하고 씁쓸한 기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든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표현한다.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의 종소리는 이 둘의 특별한 결합이다. 기술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케이타 무카이의 촬영이 가장 탁월한 표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는 중반 이후의 장면부터는 내내 서서 보아야 할 정도로 몹시 감동을 받기도 했다. 나라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상영 후 잠깐 감독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작품이 상영되기를 기원한다고 말을 건넸다. 그 자리에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그의 친구들도 함께했다. 때마침 올해 제주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상영할 수 있었고, 상영 후 그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에서의 첫 상영에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공개될 만한 작품이 아니라며 부끄러워했고, 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가 국내에서도 더 상영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그를 한 명의 작가로서 기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삶이 영화라는 것을 통해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떻든 나는 그의 다음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도 일본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AKB48에서 처음으로 센터를 맡았던 마에다 아츠코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오프닝이 지나가고 나면, 영화 제목이 나온다. ‘사요나라 가부키초’. 안녕 가부키초, 라는 서정적인 제목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러브호텔’로 바꾼 것 아닐까 잠시 의심했다. 하지만 영문 제목 자체가 ‘가부키초 러브호텔’이다.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에서도 환락가인 가부키초에 위치한 러브호텔의 하루를 보여주는 군상극.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섹스를 하고, 싸우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안녕을 고한다. 가부키초는 언젠가 떠나가야만 하는 곳이다. 때로는 살해당한 채로. 가부키초는 환락가다. 일본의 신주쿠는 도쿄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온갖 일이 벌어지는 거리다. 신주쿠 골덴가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드는 퇴폐적이면서도 유장한 거리라면, 가부키초는 그야말로 난잡하고 휘황찬란한 환락가 자체다. 러브호텔과 풍속 업소가 빼곡하게 들어차고 야쿠자와 불량청소년과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곳. 하세 세이슈의 소설 「불야성」 3부작을 읽어보면 1980년대부터 다국적 공간으로 변해버린 가부키초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그걸 판타지로 풀어내면 기쿠치 히데유키의 <마계도시 신주쿠> 정도가 된다.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신주쿠 흑사회>와 <표류가>는 야쿠자와 중국계 조직폭력단을 중심으로 가부키초를 들여다본 영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가부키초는 여전히 환락가이지만 여느 도시의 번화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면 나오는, 유난히 번들거리고 뒤틀린 공간.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거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계도시 신주쿠> <신주쿠 흑사회> <표류가> 러브호텔 아트라스의 점장 테츠는 인디 뮤지션인 사야와 동거하고 있다. 오다이바의 특급 호텔에서 일하는 호텔리어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곳이다. 아트라스에서 객실 청소를 하는 스즈키 사토미는 폭행사건의 범인인 야스오와 함께 도주 중이다.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시효가 끝나 자유의 몸이 된다. 한국에서 온 혜나는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동거 중인 정수에게도 말을 못했지만 그녀는 데리헤루, 즉 콜걸 일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성행위는 하지 않지만 유사 성행위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거리를 헤매는 여성들을 데리헤루에 팔아버리는 일을 하는 마사야는 가출소녀 요코를 만나 아틀라스에 하루 숙박을 한다. 단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2층을 통째로 빌린 AV 촬영팀에 피자를 전해주러 간 테츠는 여동생을 발견한다. 테츠의 가족은 해일이 모든 것을 파괴한 센다이 지역에 살고 있었다. 전문대를 다니던 여동생은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 때 AV 배우 모집 광고를 보고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 번 도쿄에 와서 촬영하고는 돌아간다. 이제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학교도 잘 다닐 수 있다. 죄책감은 없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혜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왔다. 여기서 번 돈으로 한국에 가서 옷가게를 낼 생각이다. 건설회사에서 밀려나 전단지를 돌리게 된 중년 남자를, 그녀는 따뜻하게 안아준다. 요코는 재혼한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도망쳤다. 죽어버리라는 말까지 들었다. 요코는 말한다. ‘죽어버리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매춘을 해서라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거야’라고. 그런 요코를 보고, 마사야는 혼돈에 빠진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예정된 균열이 생기거나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관계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하필이면 테츠가 일하는 아틀라스에, 사야가 다른 남자하고 들어온다. 음반회사의 관계자다. 사야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테츠는 애먼 방문을 걷어차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사야의 얼굴을 보고도, 그만두라고 말하거나, 손을 잡고 도망치지도 못한다.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아니까.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의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혜나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수에게 말하지 못한다. 아무리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테츠는 여동생에게 말한다. AV 배우 한다고 부모님한테 말할 수 있어? 여동생은 아니라며,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아무리 자신은 떳떳해도, 세상은 다른 눈으로 보는 일과 사람들이 있다. 가부키초의 러브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 태반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간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떳떳하고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시효가 끝날 때까지 꿋꿋하게 버티면서 일을 하는 사토미처럼.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요코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약속을 지키는 마사야처럼, 그들에게는 최후의 믿음이 있다. 그건 요코의 끈질긴 생명력 같은 것이다. 죽어라, 하는 말에는 결코 복종할 수 없다는 오기 같은 것.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라고 내뱉는 테츠보다는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야. 접대로 한 건데 뭘 그래. 데뷔할 수 있잖아.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야? 쪼잔해, 라고 말하는 사야가 훨씬 더 건강하고 애잔하다.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이란인 등이 뒤엉켜 살아남기 위해 살육전을 벌이던 가부키초에서는 지금도 보통의 남녀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상의 어둠에 파먹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혜나도, 사야도, 요코도, 사토미도 악착같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간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 들어온 감옥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요나라는,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쓰는 인사다. 다시 보지 않으려 할 때. 그러니까 이제 그들은 가부키초를 떠나간다. 혜나도, 마사야도, 사야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부키초가 기억에서 지워야 할 지옥이나 악몽은 전혀 아니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이 그리는 가부키초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는 공간일 뿐이다. 지저분하다거나 추악하다고 힐난할 수도 있는, 아래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몸을 팔거나, 뒤틀린 욕망이 뒤엉킨 곳이지만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씁쓸하면서도 건강하고 경쾌하게 그들의 하루를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종잇장 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별다르지 않으니까.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 나도, 언제 한 칸 아래의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니까. 1982년 핑크영화로 데뷔한 히로키 류이치는 < 경멸: 에고이스트 > < 도발적 관계: 엠 > < SM 작가 > 등에서는 도발적이고 뒤틀린 성애를 묘사하지만 < 바이브레이터 > < 노란 코끼리 > 등에서 여성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태도를 드러낸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후자에 가깝다. 굳이 따진다면 인정희극에 기울어진다. 비극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카메라를 가져간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이재한 감독은 1971년 한국에서 태어나,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4살 때 처음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다 뉴욕대학교 영화과에서 영화를 공부한다. 대학 졸업 후, 뉴욕의 이민 2세대, 10대 갱스터의 삶을 다룬 < 컷 런스 딥 >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 여러 국제영화제를 돌며 상영된 후 2000년 한국에서 개봉하지만 한국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지는 못한다. 그러나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을 만드는 능력이 인정되어 이후 이재한 감독은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연출하다 2001년 일본의 니혼TV 드라마 <퓨어 소울~내가 너를 잊어도 Pure Soul~君が僕を忘れても>를 리메이크한 영화 < 내 머릿속의 지우개 >(2004)를 연출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2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 박스오피스 5위를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수출되어 인기를 모았다. 특히 이 영화는 일본에서는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30억 엔의 수입을 올려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역대 흥행 1위의 한국영화가 되었는데, 2010년에는 츠지 히토나리(?仁成)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일본어 영화 < 사요나라 이츠카 サヨナライツカ >를 연출하며 일본에서 자신이 세운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라는 박스오피스 기록을 깬다. <사요나라 이츠카>는 13억 엔의 수입을 올리며 장기 상영되었고, 2010년 일본에서 상영된 외국영화 중 16위의 흥행기록을 세운다. 2010년 여름 개봉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 포화 속으로 >는 한국에서 약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고 유럽, 아시아, 북미 지역으로 수출되었다. 차기작으로는 오우삼 감독의 1989년 작 < 첩혈쌍웅 >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는 <더 킬러 The Killer>가 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무산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 베스트셀러 「제3종의 애정」을 원작으로 한 < 제3의 사랑 >을 촬영하여 2015년 하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교포 영화감독 이재한 의 행보는 그의 데뷔작 < 컷 런스 딥 >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소수 민족적 정체성으로부터 얻었을 법한 경험을 활용한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 사요나라 이츠카 >는 한국에서 기획/제작된 프로젝트이지만 일본 배우를 캐스팅하여 일본어로 제작되었고 태국 방콕에서 한국/일본/태국의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되었다. 그의 영화들은 제작, 투자 방식, 그리고 그 영화가 말을 거는 대상을 설정하는 데 있어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영화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어로 제작된 영화든, 영어로 제작된 영화든 그의 프로젝트들의 기획과 제작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이러한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범-아시아적인(pan-Asia) 궤적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동시대의 ‘한국’ 영화계를 홈 베이스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동시대의 한국영화란 전통적인 충무로 영화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어 내는 프로듀서 체계가 근간이 된 충무로-이후 영화도 아닌 아시아에서 가장 최전방의 엔터테인먼트 상품들을 생산해 내며, 전 아시아적인 팬덤을 지닌 문화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한국영화이다. 한류는 아시아 각 지역의 문화산업계에 때로는 감탄을 동반한 벤치마킹의 모델로서, 때로는 방어적이고 적대적인 음모론의 중심으로서 한국 정부가 세밀하게 기획한 전략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정부에서 기획하고 시행한 한류의 전략이, 실제로 존재해온 아시아의 각 지역의 한류 팬덤을 앞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부 차원의 그리고 산업 차원의 전략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러한 전략적인 프로젝트들은 오히려 번번이 실패했다 할 것이다. 예컨대 2000년대 초반 연달아 기획되었으나, 실패한 합작 블록버스터들은 상당 부분 이렇게 잘못 계산된 대(對)-아시아 전략들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실패의 원인이 아시아에서 한국영화나 한국의 문화 상품들에 대한 인기가 식었기 때문은 아니다. 히트 한류 상품들은 세대와 지역의 범위를 넓히며 계속 출현하고 있으며, 다만 그 흐름과 규모를 예측하고, 기획,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여전하다. 이재한 감독과 그의 영화들은 앞서 언급한 그러한 규모와 영향력을 갖는 동시대의 한국 문화상품에서 기대할만한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범아시아적인 감각들의 예상 가능한 구현물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시장 전략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아시아의 한국문화 소비자들 역시 함께 공유하고 있을) 취향과 문화적 자산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보여 더욱 흥미롭다. 이재한 감독은 < 사요나라 이츠카 >의 제작 동기를 말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츠지 히토나리의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자연스레 익숙한 일본 배우가 일본어로 연기하는 장면이 상상되었기에 일본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이러한 <사요나라 이츠카>의 제작 동기는 경제적 전략을 위한 현지화라는 목표에서가 아니라 다문화적인 문화상품 소비와 그로부터 비롯한 지식, 역사적 상상력에서 온다. 예컨대 (해적판을 제외하고라도) 한국 밖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유래의 출판 콘텐츠인 귀여니의 청춘 소설을 읽으며 방콕이나 자카르타, 혹은 상하이나 부탄의 소녀들이 자신의 로컬 스타보다는 그만큼, 혹은 그보다 친숙한 한국의 아이돌들을 떠올리며 가상 캐스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2010년대의 한국영화는 연구도, 비평도 심지어 산업도 따라 잡고 있지 못하는 어떤 순간을 목도 중이며, 이재한의 영화들은 그 새로운 현상과 변화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