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
- 감독
- 최인현
- 제작년도
- 1964
- 출연
- 신영균, 신성일, 김지미, 박암, 이민자, 이경희, 방성자, 이예춘, 방수일, 박상익, 최성호, 김무용, 서월영, 정애란, 서영춘, 구봉서, 노도원, 임운학, 조덕성, 정철, 김기범, 이창식, 임해림, 임성포, 박병기, 최창호, 김웅, 임동훈, 송일근, 이기홍
일단 < 클로즈 유어 아이즈 >(빅토르 에리세, 2023)를 골랐다. 이 영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 룸 넥스트 도어 >(2024) 사이에서 몇 초 망설였는데 그래도 빅토르 에리세의 신작을 넣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에리세의 영화를 내 리스트에 넣을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올까. 어떤 때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스페인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파블로 베르헤르의 < 로봇 드림 >(2023)인데, 아직 쌍둥이 빌딩이 건재했던 1980년대 뉴욕을 기가 막히게 재현한 애니메이션이다. 거기에 절절한 로봇과 개가 주인공인 멜로드라마를 넣어서. 오로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만 가능한 마법이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오시야마 키요타카의 < 룩백 >(2024)이다. 창작과 창작자에 대해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짧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예술가 영화다. 예술가 영화도 두 편이 더 있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 다른 하나는 모나 아샤쉐의 < 리틀 걸 블루 >(2023)로, 감독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여러분이 프랑스어권 유성애자 여성작가의 피학적인 오토 픽션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멀리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그런다면 여러분은 마리옹 코티아르가 펼친 최고의 명연 하나를 놓치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냐고? 그렇긴 한데 그와 상관없이 감독은 코티아르에게 자기 어머니 역을 시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해가 간다. 모녀 이야기는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조지 밀러, 2024)의 도입부를 여는 중요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꼭 필요한 무언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2015)가 그랬던 것처럼 끝내주게 재미있는 액션물이고, 이 영화의 실망스러운 흥행성적은 관객들이 뭘 모를 때가 많다는 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긴 관객들은 개봉 당시 존 카펜터의 < 괴물 >(1982)도 대충 넘겼다. 그냥 그렇다고. 로즈 글래스의 < 러브 라이즈 블리딩 >(2023)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는 필름 누아르로, 몸과 섹스와 퀴어성에 대해 정말 신나고 뻔뻔스러운 장면들을 엮어대는 오락물이다. 아, 그리고 재미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하는 말인데, 션 베이커의 < 아노라 >(2024)와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 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4)이 주는 재미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성노동자가 연결된 계급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 인디 영화와 마흐사 아미니 시위를 다룬 사회파 이란 영화가 이렇게 갑자기 대중적으로 (심지어 거의 고전 할리우드스럽게) 재미있어지면 관객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과는 별도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주는 즐거움을 주제의 무게나 구질구질함을 두려워하며 버릴 필요는 없다. 한국영화를 두 편 골랐다. 더 고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방에 종말론적 예언이 나팔처럼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올해 한국영화를 보는 경험은 여러모로 즐거웠다. 그런 경험을 제공해준 영화가 주류영화가 아니었을 뿐이다. 올해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퀴어, 특히 여성 퀴어 영화들의 공습으로, 어떤 때는 네 편의 영화가 동시에 극장에 걸려 다들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당사자성 넘치는 사실주의극인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부터 올해 가장 뻔뻔스러운 길티 플레저인 < 히든 페이스 >(김대우, 2024)까지 다양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때문에 드라마 < 정년이 >(2024)의 비겁함이 더 짜증난다. 오정민 의 < 장손 >(2023)은 거의 임권택 과 이두용 의 직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러면 당연히 올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텐데, 아니다. 이 영화도 ‘재미있다.’ 거의 1세기에 가까운 한반도의 역사를 가족사에 녹여낸 재주, 대한민국 가부장제에 대한 냉정한 고찰만큼이나 신기한 건 이런 주제로 신선한 재미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 열 편 중 아홉 편은 호오도를 떠나 대중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고른 영화가 남궁선 의 < 힘을 낼 시간 >(2024)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유로 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다섯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팝 아이돌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다. 수없이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면 전보를 쳐라’라는 옛 할리우드의 격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놓고 뻔뻔스럽게 교훈과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들은 많다. 전보로 전달한 텍스트의 다발과, 주제에 공감하는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결합한 결과물의 차이는 엄청나다. 당연히 ’공익영화’는 비하 단어가 될 수 없다. 다른 모든 영화가 그렇듯 좋은 공익영화와 나쁜 공익영화 그리고 그 사이에 걸쳐진 광대한 스펙트럼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힘을 낼 시간>은 여러모로 일단 효율적인 공익영화다.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러닝타임 안에서, 선정적인 실제 사건의 구체적인 재현 없이 한국 연예계의 문제점들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얼마나 되는가.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취인데, <힘을 낼 시간>은 이 모든 정보와 메시지를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공익영화로서의 기능은 영화의 매력에 어떤 핸디캡도 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이 영화의 다음 성취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케이팝이라는 장르에 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초창기의 시도는 김기영 (동명이인이다)의 < 진실게임 >(2000)이다. 아마 더 이전 작품도 있을 거고 사실 여기서 정확한 경계선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래도 20년은 더 됐다. 하지만 성공작이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들 주저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들은 < 내일부터 우리는 >(윤성호, 2017), < 아이돌 권한대행 >(윤성호, 박현진, 2017), <탑 매니지먼트>(2022)로 이어지는 윤성호 의 시리즈들이다. 만드는 사람들의 아이돌 문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개성적인 유머 속에서 조화를 이룬 작품들인데 이 작품들이 아이돌 스토리텔링의 주류가 된 적은 없다. 아쉽게도. 나머지는 대부분 성공보다는 실패로 기억된다. 그 중 가장 처참한 실패는 아무래도 드라마 <청춘시대 2>(2017)였던 거 같은데. 일단 이 시리즈는 왜 아이돌 이야기를 왜 굳이 거기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건 여러모로 최악의 오타쿠적 선택이었다. <힘을 낼 시간>은 소위 ’망돌‘이라는 소재를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청춘시대 2>와 반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장점이다. 일단 영화는 왜 이 영화가 ‘망돌들’의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명쾌하고 당연한 이유를 갖고 있다. 주인공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 주인공 중 망돌은 ‘파이브 갓 차일드‘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였던 태희( 현우석 )뿐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 ‘러브앤리즈’의 멤버 수민( 최성은 )과 사랑(하서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제법 히트한 노래도 한 편 이상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래보다는 이 팀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더 먼저 떠올리고 제대로 정산을 못 받고 은퇴한 건 태희와 다를 게 없다. 하여간 이 셋은 전재산 98만원을 챙겨들고 제주도 여행을 오는데, 그만 첫날에 한 명이 사고를 내 돈 대부분을 날려버린다. 이 정도면 너무 어이가 없어 슬슬 웃음이 나오는 가학적인 블랙 코미디를 기대해 볼 만도 한 상황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얼마 전에 < 십개월의 미래 >(2020)를 만든 남궁선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평화롭고 진지한 길을 간다. 세 사람은 귤 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자기들을 알아보는 케이팝 팬도 만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따분하게 들린다면 미안하지만, <힘을 낼 시간>은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치유의 과정에 대한 영화이고 여기에 진지하다. 이 영화에서 치유라는 단어는 결코 가볍게 쓰이지 않는다. <힘을 낼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의미로’ 머글스럽다는 것이다. 이 영화엔 다른 케이팝 아이돌 관련 작품들에서 쉽게 발견되는 징그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케이팝 아이돌의 친숙한 이미지를 따르고 그걸 페티시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부당한 노동 조건 속에서 시달리다 버려진 젊은 노동자들을 그린다. 이 영화가 정공 공익영화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쓰면 무지 재미없게 들리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들은 대부분 대중적 재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그건 일단 이 진지함의 정공법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화엔 더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오타쿠적인 선택 대부분을 피해가고 있고 일부러 아이돌 캐스팅도 하지 않은 영화인데도 여전히 아이돌스러운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대 장면 하나 나오지 않고 ‘가상의 아이돌 그룹 만들기 게임’에 집착하지 않으며 골수팬을 등장시키지 않는데도 영화는 부서진 홀로그램 조각처럼 케이팝 그룹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노력한 팬이라면 러브앤리즈 팬픽을 쓰는 게 가능할 정도다. 영화의 의도는 전혀 아니겠지만. <힘을 낼 시간>은 최선 또는 최악의 타이밍에 개봉한다.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정치 상황이 모든 이슈를 잡아먹었으니 개봉하는 영화에겐 타격이 크다. 하지만 뉴진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돌의 노동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바로 그 정치적 상황 속에서 수많은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국회 앞에서 휘두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 이 영화에 맞는 시기가 있을까. 듀나(영화평론가) l SF 작가이고 영화 컬럼니스트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가능한 꿈의 공간들』(2015),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2022),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2019),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2020) 등이 있다.
올해도 열 편을 뽑았는데, 한국 영화가 다섯 편, 외국 영화가 다섯 편이다. 아홉 편이 극영화이고 한 편은 다큐멘터리다. SF는 세 편,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작품이 세 편 또는 네 편이다. (< 수라 >의 주인공을 누구로 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다큐멘터리인 <수라>를 뽑았다. 좋은 영화이기도 했지만 의무감을 느낀다. 올해 나온 영화 중 더 이상 우리가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는 걸 <수라>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있을까. < 당나귀 EO >와 < 다섯번째 흉추 >는 모두 비인간 주인공이 인간사회를 떠돌며 겪는 여정을 그린다. <당나귀 EO>가 < 당나귀 발타자르 >의 보다 발랄하고 화려한 버전이라면 (그렇다고 결말의 가차없음과 서글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다섯번째 흉추>는 매트리스에 붙어 살면서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뽑아 먹으며 결국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변신해가는 곰팡이가 주인공이다. 두 작품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데, 나로서는 <다섯번째 흉추>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장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가장 많이 본 영화이기 때문일까. OTT에 들어온 뒤로 거의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은 영화이다. < 아니말리아 >도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계 종족의 접촉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임산부 주인공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정 중 인간이 당연시하는 모든 것들의 우선순위가 파괴되는데, 정말 내 취향의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다. < A.I. 소녀 >는 아슬아슬하지만 단단하기 짝이 없는 하드 SF다. 인터넷에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서서히 인격을 갖고 성장해간다. 이 장르 특유의 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압도적인 치밀함과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름다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 플라워 킬링 문 >은 스콜세지의 첫 서부극이다. 아마도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미국 영화사에 대해 빠삭한 이 노장이 이 장르에 대한 존경과 원죄의식이 빽빽하게 차 있는 이 네 시간에 가까운 영화를 보며 압도되지 않기는 힘들다. 단지 미국 선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거칠 수밖에 없는 당사자성에 대한 논의를 피해가기는 어렵다. < 지옥만세 >는 올해 내가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신나는 모험담이다. 그리고 이 모험담의 재료는 내가 질색하는 것들, 그러니까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 그리고 종교와 같은 재료를 갖고 만들어졌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발랄한 결과물이 나왔다니, 볼 때마다 신기하기 그지 없다. < 너와 나 >는 올해 한국 영화 중 최고의 로맨스다. 화사한 청춘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기만적일 정도로 소박하고 단순한 재료들로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처럼 교묘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작품도 많지 않다. 나머지 두 편은 창작자에 대한 영화다. < 어파이어 >와 < 비밀의 언덕 >. 두 편 모두 창작자라는 인간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이기적이고 치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둘 다 재미있는데, 비교해 보면 <어파이어> 쪽이 훨씬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독일인 백인 남자 작가에게는 충분한 거리두기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비밀의 언덕>을 볼 때는 그게 좀 어렵다. 이지은의 <비밀의 언덕>은 내가 올해 본 한국 영화 중 두 번째로 힘들게 본 작품이다. 첫번째는 < 서울의 봄 >이고 이 영화를 보면서 왜 괴로워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다행히도 <서울의 봄>의 고통스러움과는 달리 <비밀의 언덕>의 고통스러움은 재감상 때는 많이 사라지는 종류다. 초등학교 5학년생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하지만 주인공 명은은 결코 안전한 아이가 아니다. 일단 이 아이를 따라가기 시작한 관객들은 러닝타임이 10분을 넘기기도 전에 ’큰일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시작부터 경고음이 들린다. 명은은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쟁이에도 종류가 있고 등급이 있는데, 명은은 그 중 가장 까다로운 부류이다. 일단 이 아이는 영화 시작부터 부모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시장에서 일하는 부모가 부끄러워 가상의 중산층 부모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냥 거짓말만 하는 게 아니라 스파이처럼 가짜 가족 앨범까지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명은이 다니는 1996년 수도권 소도시 초등학교라는 시공간에서 부모의 계급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명은에겐 가족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이 아이에겐 현실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현실을 고치는 것이 당연하다. 대부분 관객들은 명은과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심각한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된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작은 동네에서 거짓말은 쉽게 숨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명은은 여러 면에서 우등생이다. 그건 기준을 세워놓으면 최선을 다하는 아이의 성격과도 연결되어 있다. 아이는 여러 모로 좋은 반장이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추진력 있고 부지런하며 무엇보다 리더 자질이다. 아이는 좋은 작가이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열심히 준비를 하고 열심히 글을 쓴다. 통일에 대한 글을 쓰라는 과제가 주어지면 명은은 혼자 판문점까지 가서 직접 견학을 한다. 후반에 가면 아이가 표절을 한 것이 아니냐고 몇 초 동안 의심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짓말을 했다면 모를까, 표절은 명은이 절대로 하지 않을 일 중 하나다. 단지 아이에겐 상한선이 있다. 아주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 불안불안 위태롭게 유지되던 명은의 우주는 학교에 혜진과 하얀이라는 학생들이 전학오면서 흔들린다. 교장선생님은 이 아이들에게 될 수 있는 한 평범한 배경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들은 그 주어진 허구를 가볍게 하나씩 깨트린다. 평범한 집안의 이란성쌍둥이로 소개되었지만, 아이들의 엄마는 유흥업소 사장이고 하얀은 업소 직원의 딸이다. 명은이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숨겼을 사실인데, 혜진과 하얀은 이를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네 삶을 소재로 글짓기를 하는데, 이들이 별 노력없이 쓴 글은 명은이 판문점까지 가서 취재한 글을 가볍게 넘어선다. 명은의 질투심은 하늘을 찌른다. 자연스럽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대한 오래된 전설이 떠오른다. 전설이라고 한 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 아마데우스 >는 옛 헛소문에 기반을 둔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천재와 범재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단순한 세계의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명은과 혜진 & 하얀의 관계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명은이 은근슬쩍 혜진을 사보타지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 아이는 곧 친구가 된다. 무엇보다 명은은 두 아이의 작가로서의 능력과 인간적 매력을 알아보는 소수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이야기가 아니냐고? 아니라니까 그러네. 여기서부터 영화는 명은의 작가로서의 성장을 보여준다. 아이가 엄청나게 정신적으로 성장했다는 게 아니다. 단지 아이의 세계관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추구해왔던 전략과 목표 상당수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좋은 글에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대범함과 솔직함도 필요하다. 그리고 영화가 배경인 1990년대 중반은 정말로 이런 글이 먹힐 수 있는 시기이다.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명은은 혜진 & 하얀 콤비와 같은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다. 이미 작가로서 꾸준한 훈련을 해왔던 것이다. 단지 전략만 수정하면 된다. <비밀의 언덕>에는 천재와 범재를 구분하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없으며, 평범한 작가의 노력도 인정을 받는다. 아니, 명은도 평범한 작가는 아니다. 학교 글짓기를 위해 판문점까지 가는 부지런함,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글을 쓰는 집요함도 재능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하면서도 특별한 지점은 명은의 정신적 성숙이 좋은 작가가 된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창작자에 대한 이야기는 반대의 순서를 따르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그런 판타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훌륭한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기술이며 아무리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만든 창작자라도 여전히 그냥 개*#₩일 수 있다. 아니, 그 개*#₩는 사람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개*#₩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개*#₩다. 하지만 명은은 성장한다. 갑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경멸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랬다면 좋은 작가도 못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쓴 글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 자신의 기술적/예술적 성취가 늘 우선순위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주변의 결점있는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명은은 작가가 되었을까. 명은을 연기한 주연배우 문승아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려고 한 것부터가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혜진을 따라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이 단계를 거쳐 성장했으니 더 이상 글을 쓸 이유가 있을까? 멋진 캐릭터 해석인데, 나는 다른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글쟁이인 혜진과 하얀은 자신의 삶에서 밑천이 떨어지면 그냥 글을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명은과 같은 작가는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이다.
#1 자식 키우기 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 포르노를 보고 있다. 엄마는 과일을 깎아 아들에게 가져온다. 포르노에 열중인 아들은 먹기 싫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래도 하나 먹어보라는 엄마는 포크로 과일을 찍어 아들의 입에 가져간다. 귀찮다는데 왜 그러냐며 과일을 집어 던지는 아들. 엄마는 섭섭하다. #2 부쩍 커버린 아이 아들은 게이다. 남자친구와의 오럴섹스에 열중인 아들의 방을 훔치는 엄마. 행위에 열중인 아들과 친구에게 다리를 들어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열심히 닦고 방을 나가자 본격적인 섹스가 시작된다. #3 두 어른 엄마는 자해를 했다. 상의를 모두 벗어 가슴이 그대로 드러난 엄마의 상체에는 칼로 그은 큰 상처가 있다. 울고 있는 엄마에게 아들은 화를 낸다. #4 어린 엄마, 늙은 자식 자해로 인해 자리에 누운 엄마에게 아들은 과일을 깎아 준다. 이제야 기분이 좋아진 엄마. 자신만 먹기 미안했는지 아들에게 과일을 권한다. 그러자 아들은 화를 내며 과일을 집어 던진다. 위의 장면들 1997년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알려진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의 내용은 상기에 적시한 그대로다. 달리 이 영화의 내용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저렇게 썼다. 이 영화는 아들이 포르노를 보고 남자친구(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남자다)와 오럴섹스를 하는 환경 속에 ‘엄마’를 끼워 넣는다. 아들의 기이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범한 엄마가 하듯 과일을 먹이려 하고, 방을 훔치는 엄마의 행동이 충돌을 일으켜 ‘대체 이게 뭐냐’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 혹은 갈 데까지 간 짓궂음. 이미지도 이러한데,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앰비언스(환경음)까지 모두 삭제한 채 음악만이 흐르고 있어 관객에게 ‘이래도 견딜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 같다. 극한까지 몰아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단편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연출자인 김정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모성의 맹목성 중 한 단면을 단순 무지하게 증폭시켜 스케치해 보기로 하였다. 그것을 위해 모성의 반대말이라고 생각되는 포르노와 폭력의 이미지를 대비시키기로 했다. 나의 저급한 상상은 모성과 포르노를 한 공간에 몰아넣고, 어쩌면 그것이 서로 어울릴 수도 있으리라는 망상에까지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모성과 포르노라는 단어가 한 문장에 있는 것도 어색하지만, 그것이 잘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 과격한 몽상가는 이 영화로 세간에 두각을 나타낸 ‘지하창작집단 파적’의 소속이었다. 김정구를 필두로 윤영호 , 이진우 , 김일안 , 김유하 , 조성제 등의 창작자가 속해있던 이 집단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서로서로가 어떨 땐 연출로, 어떨 땐 스태프 혹은 배우로 참여하며 < 삼승할망 >(윤영호 감독), < GOD >(이진우 감독), < 피로 물든 세계지도 >(김유하 감독) 등 20여 편이 넘는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던 그들은 ‘파적’. 즉 ‘적막을 깨트린다’는 뜻에 걸맞게 신, 섹스, 낙태 등 금기로 치부되었던 소재를 자유롭게 다뤘다. 다른 이야기지만, 김정구 감독이 ‘장난으로’ 쓴 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우연히 장선우 감독의 눈에 띄어 ‘한국 영화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어떤 영화를 출현토록 하는 씨앗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하창작집단 파적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 이후에도 김정구 감독은 < 샴, 하드로맨스 >라는 작품으로 근친상간과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남녀의 애절한 사랑의 기묘한 교차점을 선보였고, < 사자성어 >의 에피소드를 맡아 마치 인사하듯이 섹스가 대단치 않은 일인 농담 같은 세상을 그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파적의 멤버들과 함께 만든 옴니버스 < 좀비처럼 걸어봐 >는 그간의 작업을 정리라도 하는 듯 ‘파적필름’이라는 회사까지 차려 제작된 작품이었다. 파적의 주요 멤버인 김설우 , 윤영호 , 김정구 , 김유하 (이 김유하 감독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한 유하 감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확실한 자료를 찾지 못해 언급은 하지 않는다.) 네 명이 각자 하나씩 에피소드를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다. 그들은 이 영화 속에서 광기, 집착, 식인, 죽음 등 그간 탐구해왔던 소재들을 풀어내고 있다. 현재까지 김정구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은 OCN에서 제작한 스릴러 드라마 < COMA >의 <붉을 홍> 에피소드이다. (다른 멤버인 이진우 감독은 현재 활발한 활동 중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도 그랬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억눌린 상상력이 폭발하는 때였다. 당시 영화 산업의 자본주의적 잠재력에 시선이 쏠리고 이에 발맞춰 재능있는 감독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며 한국 영화에 희망적 기운이 만발하던 때였다. 각 지자체는 너도나도 영화제를 기획하기 바빴고 뜨고 지는 감독들도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영화를 제작하던 ‘지하창작집단 파적’은 현재 활동은 멈춰있지만(해산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실한 자료가 없어 멈춰있다고 썼다.) 금기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영상 연출에 대해 한 번쯤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요즘 상업, 독립 영화를 합친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있으면 왠지, 다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운 기분이 든다. 요새는 모든 것이 계획되고 과정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다. 모험가는 다시 나타날 것인가? 이미지로의 탐험은 이미 끝났는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임근아 ... 엄마 조성제 ... 아들 김일안 ... 아들의 애인 감독: 김정구 각본: 김정구 제작사: 지하창작 집단 '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