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도수
- 감독
- 원화평
- 제작년도
- 1978
- 출연
- 황정리, 원소전, 석천, 풍학온, 성룡(청룽)
성룡의 < 취권 >(1978)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 정무문 >(1972)으로 대표되는 이소룡 영화의 비장미는 이른바 ‘코믹 쿵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변화의 물결은 유하 감독의 < 말죽거리 잔혹사 >(2004)의 마지막 장면에 잘 드러난다. ‘아뵤~’ 하며 쌍절곤을 휘두르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비틀비틀 취객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 이후 성룡은 < 사형도수 >(1978)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며 이른바 ‘소자’(小子) 장르를 굳건히 안착시켰다. 말썽만 피우던 철부지 아들이 가문의 복수를 위해 마음을 고쳐먹고 결국 승리하고야 만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소룡의 <정무문>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룡의 <취권>도 무수히 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했다. 성룡 역시 <취권>을 스스로 패러디하여, 웃음보가 터져서 깔깔대며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는 결정타를 날리는 소권(笑拳)을 소재로 한 < 소권괴초 >(1979)를 만들 정도였다. < 복권 >, < 원권 >, < 소권 > 이소룡 사후 본고장인 홍콩만큼이나 수많은 ‘짝퉁 이소룡’이 등장했고, 심지어 홍콩으로 수출까지 했던 ‘세계 2위의 무술영화 생산 국가’ 한국도 그 아류의 대열에서 빠질 수 없었다. 애무와 체위를 권법에 응용하여(하지만 관객 정서와 검열문제 등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진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던) 사랑을 해야 잘 싸울 수 있는 이형표 감독의 < 애권 >(1980)을 시작으로 가공할 배치기를 선보인 김정용 감독의 < 복권 >(1980)과 원숭이의 동작을 응용한 < 원권 >(1980), 성룡의 ‘소권’보다 더욱 강력하게 상대를 웃겨 버리는 이혁수 감독의 < 소권 >(1980), ‘근육질의 짝퉁 이소룡’으로 명성을 날린 거룡과 함께 한 김시현 감독의 < 매권 >(1980)과 < 뇌권 >(1983), 영상자료원에 시나리오만 남아 있고 일체의 정보가 없는 남기남 감독의 <희권>도 있었다. 이미 제목들만 나열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당시에는 무슨 아무개 ‘권’만 붙이면 어지간히 흥행이 되던 시절이었기에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당시 「경향신문」은 “국산영화 중 가장 문제가 많은 것은 홍콩무술영화 아류와 저질유행어에서 따온 것들로 예술적 감각이나 함축성이 전혀 없다”며 “해괴하고 엉뚱한 영화제목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얼토당토않은 조어들이 판을 치면서 언어순화의 사회적 차원은 물론 시민들의 의식구조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이런 무질서한 풍토와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준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 신애권 >, < 소애권 >, < 요사권 > 졸지에 시민들의 의식구조에 악영향을 끼치는 대표 감독이 돼버렸지만, 무려 서울대 영문학과 출신의 이형표 는 < 서울의 지붕 밑 >(1961) 등을 통해 소시민의 애잔한 삶과 일상을 정감 넘치게 그려온 감독이었다. 어쨌건 그는 당시 < 애권 >의 속편인 < 신애권 >(1982), < 여애권 >(1982), < 소애권 >(1983)을 차례로 만들며 그 흐름을 주도했다. 심지어 <여애권>의 서영란과 함께 일종의 스핀오프 격인 < 요사권 >(1980)을 만들기도 했다. 역시 다른 <애권>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무도인들로 들끓던 만주를 배경으로 한 <요사권>의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분홍색 하트 ♥ 그래픽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무림에 나타난 홍일점! 희한한 내용, 요상한 재주, 유별난 스타일의 액션도원경!” 그러니까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남들이 보기에 희한하고 요상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우리는 즐긴다!’는 그들만의 B급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흙바람 몰아치는 만주 비슷한 곳' 신나는 도입부 음악과 함께 < 애권 >이 시작하면 “1940년, 흙바람 몰아치는 만주 비슷한 곳”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국경지대의 성문이 등장한다.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가 등장해 사기를 치고, 주인공 황석불( 강용석 )은 그들을 꼬나본다. 이때부터 뻔한 컨벤션과 장난스런 키치의 미학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분명 남한산성 어디일 텐데 사람들이 버젓이 중국옷을 입고 국경을 넘나든다. 주변에서 꿀차와 번데기를 파는 아줌마를 즉석 캐스팅했는지, 뽀글뽀글 싸구려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가 주인공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어머! 어머!” 하는 과도한 리액션까지 선보인다. 그때 ‘이 약을 먹으면 칼도 배를 뚫지 못 한다’는 얘기에 석불이 “내가 한 번 해 보겠소”라는 얘기와 함께 약장수의 배를 칼로 찌른다. 하지만 약장수가 배에 두툼한 책을 숨겨놓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예전에 < 황야의 무법자 >라는 영화를 봤는데 배에 솥뚜껑이 있더라구!”라며 느닷없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의 실제 장면을 느닷없이 언급하는 황당함이란!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의 장대한 시작을 알렸던 셀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솥뚜껑을 방패삼아 총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았던 장면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한국의 ‘김치 무협’ 영화에서 패러디됐다고나 할까. 바로 석불은 죽은 아버지의 원수 옥달평을 찾아 만주로 온 것이다. 옥달평은 돈벌이가 목적인 살인 무술대회를 열어 무림을 어지럽히는 장본인이다. 강직한 일도관의 청담사부( 이강조 )는 옥사부에게 ‘무도는 마음부터 닦는 것’이라 충고하지만, 청담사부의 눈 밑에 짙게 드리워진 다크 서클은 그가 곧 살해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렇게 무림은 옥사부의 세상이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찾아간 스승 화삼유( 배수천 )는 술주정뱅이 폐인이 돼 있다. 그래도 석불은 화삼유의 딸 쇼냥( 윤상미 )이 마음에 들어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한편, 옥달평은 예정대로 무술대회를 개최하려 하고 전국 각지에서 (누가 봐도 용인 민속촌으로 보이는) 흑룡여관으로 고수들이 몰려든다. 그중에는 ‘흐르는 별’이라 불리는 유성(遊星)권의 달인도 있다. 헤어스타일부터 동작까지 ‘짝퉁 성룡’이라 할 수 있는 석불은 아버지의 원수를 찾는 와중에도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쇼냥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 운운하며 “저도 시를 참 좋아합니다”라고 접근한다. 쇼냥이 들고 있는 책을 향해 ‘마음의 양식’이 아닌 “책은 양식의 마음이죠”라는 썰렁한 대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나중에 적들과 싸울 때는, 적의 무기를 피해 조롱하면서 “삐빠빠룰라~ 멀리 기적이 우네~”라며 이은하의 ‘밤차’를 부르기도 한다. 만주를 배경으로 아무리 포스트모던하게 시공간을 뒤섞었다지만 잠시도 ‘자투리 개그’를 쉬지 않는다. 그저 보다 보면 자연스레 적응되는 경지까지 가게 되니, 그냥 마음 편히 당대 오락영화의 능청스런 풍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석불이가 놈에게 잡혔소. 내일 구하러 가야겠소. 사랑해 주시오.' 좀 다른 얘기지만, 남기남 감독의 < 영구와 땡칠이 >(1989)의 도입부를 기억하는가. 닫힌 문을 배경으로 성우가 “어린이 여러분, 우리 함께 영구를 불러보기로 해요. 하나, 둘, 셋! 영구야~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자, 다시 한 번 불러볼까요? 하나, 둘, 셋!”이라 말하고 어린 관객들이 일제히 “영구야~”하고 부르면 심형래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러니까 관객과의 인터랙티브를 시도하는 그런 의도적인 조악함이 당시에는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굳이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들먹이고 싶진 않지만, 원래 그것은 원본이라 할 수 있는 < 취권 >에서도 빠지지 않는 설정이었다. <취권>에서 성룡의 스승인 소화자(원소전)도 마지막 대결에 느닷없이 “영화에서 이런 중요한 장면에 내가 빠질 수 없지!”라고 외치며 등장했으니까. 게다가 술병을 달고 사는 화삼유는 누가 봐도 소화자를 패러디한 것 아닌가. 1~6번 순서로 편집되어있는 애권 의 다양한 권법들 하지만 알고 보니 화삼유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폐인 행세를 한 것이었다. 석불이 악당들에게 잡혀 가자 “석불이를 구하러 가야겠소. 어서 나를 사랑해 주시오”라며 대놓고 화류계의 여자를 만나 애권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애무난무권’이니 ‘일심충천권’이니 ‘양인상상권’이니 하는 이름을 갖다 붙이긴 했지만, 관객이 보기에 그저 똑같이 여자 몸을 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구조된 석불도 본격적으로 쇼냥과 함께 애권을 익히고, 결국 흐르는 별과 최후 대결을 벌이게 된다. 갑자기 싸우다 말고 포옹과 키스를 하려 하니 흐르는 별은 당연히 징그러워 질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석불은 마치 적과 함께 탱고를 추듯 “이것이 바로 만주의 마지막 밤의 탱고다!”라며 애권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정체불명의 애권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흐르는 별의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다. “사랑이 날 죽이는 구나~” 그렇게 먹구름이 낀 무림은 홍콩 사람들도 듣도 보도 못한 애권으로 인해 평화를 찾게 된다. 애권이 독특한 것은 그 애권의 최대 적이 체력의 감퇴도 아니요, 의지의 부족도 아닌 바로 주인공의 권태기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 신애권 >에서는 급기야 장인인 화삼유가 복수를 위해 사위의 외도를 용인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제 더 이상 아내를 보면서는 애정이 생기지 않으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막장 드라마’는 장르를 초월하여 존재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기발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어설프고 조악한, 대체 이런 현기증 나는 권법이 어디 또 있었던가. / 글: 주성철 (씨네21 기자) 강용석 배수천 이강조 윤상미 김정란 감독 이형표 각본 이일목 촬영 양영길 개봉극장 아세아극장 개봉일 1980-04-24 관람인원 61,286(서울)명
이탈리아 서부극을 ‘마카로니 웨스턴’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르는 작명법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김치 무협’이라 명명할만한 독특한 장르가 있었다. 한국을 중국처럼 꾸미고 복장도 중국식으로 입은 채 버젓이 소림사까지 등장시켜 ‘무림’이 어쩌고 ‘중원’이 어쩌고 했던 일련의 무술영화들이다. 만주 웨스턴의 활황에 이어 이두용 의 태권액션영화들마저 그 명맥이 끊긴 1980년대 초반, 그러니까 이소룡과 성룡의 등장 이후 모두 넋이 나간 채 명절마다 성룡 영화만 기다리며 한국액션영화의 독창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 시기에 김영일 , 왕룡 , 정진화 같은 몇몇 액션배우들이 대부분 전북 고창에서 촬영한 일련의 ‘짝퉁 무술영화’들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 소림사 주방장 >(1981)같은 영화들은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당한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의 평가는 가혹했다. 무국적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 소림사 주방장 >의 흥행 이후 ‘저질 무술영화들이 판친다’는 요지의 1982년 무렵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중국 전통의 고증도 무시한 채 마구 치고 박거나 엉뚱한 에피소드로 웃기는 무국적 단세포식 날림”이라며 “가끔 수입되는 중국, 홍콩영화들을 흉내 내거나 마치 그들의 영화인 것처럼 관객을 현혹시키자는 어설픈 속셈도 작용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면서 “이따금 한국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내한하는 홍콩영화인들마저 이들 영화를 보고 ‘무대가 한국이냐 중국이냐’를 물어온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당시 액션영화에 열광하던 젊은 관객들의 기호와 별개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정진화 가 있었다. 1956년생인 정진화 는 < 돌아온 외다리 >(1974) 등 이두용 사단의 영화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김선경 감독의 < 특명 >(1976)을 비롯 역시 김선경 감독이 연출하고 왕호와 황태수(본명 황정리 ) 등 선배 액션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던 < 흑룡강 >(1976), < 밀명객 >(1976) 등에 출연했다. < 복권 >(1980), < 소림사 주방장 >(1981), < 무림걸식도사 >(1982) 등에 늘 함께 출연했던, 그러니까 늘 정진화를 괴롭히는 익숙한 악당으로 출연했던 김영일 이 < 소권괴초 >(1979) 등 홍콩으로 건너가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마지막 세대 배우였다면, 정진화는 이런 짝퉁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유일한 토종 배우였다. 홍콩 무술영화들을 연구하고 모방은 하되 순수 국내파였다고나 할까. < 무림악인전 >(1980)으로 김정용 감독과 만난 뒤 배치기를 필살기로 하는 코믹무술영화 <복권>(1980)의 주인공을 맡으며 일약 당대 한국 무술영화의 스타로 떠오른다. 성룡에게 로웨이가 있었다면 정진화 에게 김정용 이 있었다고 할 만큼, 그는 김정용 감독의 일련의 무술영화들에서 주인공을 도맡았다. 그의 남다른 점은 왕호 , 거룡 , 왕룡 등의 선배들이 이소룡의 아우라를 좇는 사람들이었다면 < 복권 >을 필두로 장발을 한 채 성룡식 코믹 액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사실 그가 구사한 대부분의 코믹한 동작들은 성룡의 < 사형도수 >(1978)와 < 취권 >(1978)에서 유래한다. 위 두 영화에서 코주부 스승으로 출연한 원소전 캐릭터 역시 그대로 가져왔을 정도다. 아무튼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이듬해에는 성룡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장발의 정진화를 모방한 하우성 주연, 김선경 감독의 < 산동 물장수 >(1982)라는 영화도 나왔다. < 소림사 주방장 >은 이후 < 소림사 용팔이 >(1982), < 소림사 주천귀동 >(1982), < 소림사 왕서방 >(1982) 등 무려 10여 편이 넘는 아류작을 낳을 정도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정진화 의 출연작들은 ‘아마존’같은 해외사이트에 마치 홍콩영화인 것처럼 출시돼 있다. ‘Elton Chong’이라는 영어이름으로 등록된 그를 보고 한국인 배우 정진화로 연결 짓는 해외 액션마니아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의 작품들 중 수작에 속하는 < 무림 걸식도사 >(1982)는 < Invincible Obsessed Fighter >, <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 >(1982)은 < Magnificent Natural Fist >, < 홍도경 >(1985)은 < Dragon Against Vampire >라는 제목으로 출시돼 있다. 이후 김정용 감독과의 파트너십은 계속되어 < 람보 >나 < 인디아나 존스 > 시리즈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는 < 아라한 >(1986)은 당대 무국적적인 한국 액션영화의 황혼기라 할 수 있으며, < 팔도 쌍나팔 >(1987)은 현대물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두용 감독의 < 돌아이 >(1985)가 당시 충무로의 양지의 액션영화였다면 그 반대 지점의 영화가 바로 <팔도 쌍나팔>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1990년이 되기 이전 이른바 ‘개인기’를 지닌 액션배우들은 정진화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후 충무로를 떠난 그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TV드라마 <무인시대>(2003)에 출연하기도 했다. / 글: 주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