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 감독
- 현문섭
- 제작년도
- 2020
- 출연
- 박신양, 이민기, 이레, 박민정, 박재준, 태인호, 김기천, 양재성, 윤종석, 김남우, 우민지, 유수경, 김근영, 최미라
코로나가 가장 심각하던 시기,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 간의 교류는 거의 단절되고, 국민들은 일부 격리되며 대부분의 문화 활동은 중지되었다. 많은 영화들은 부쩍 한산해진 극장가를 보며 개봉을 미루던가, OTT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 크리스토퍼 놀란 만큼은 고집을 꺾지 않았는데, 그의 신작 < 테넷 >은 이 시기 유일하게 극장에서만 공개된 텐트폴 영화였다. 놀란과 파트너십을 이어오던 워너는 가장 OTT 공개(및 동시 개봉)에 앞장서던 배급사였고, 그래서 놀란의 결정에 난감했던 게 사실이다. 몇 번의 연기를 거쳐(다른 작품들이 창고 영화가 되거나 TV 영화가 되어가는 속에서도) <테넷>은 코로나 속 극장에서 고군분투 블록버스터로 위용을 보였지만 장렬히 산화하고 만다. 할리우드 메이저에 진입했던 < 인썸니아 >부터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놀란과 워너의 관계에 금이 간 건 바로 이때였다. 놀란은 워너의 소극적인 홍보를 아쉬워했고, 워너는 놀란의 비협조적인 선택에 섭섭해 했다. 결국 놀란은 워너를 떠나 차기작을 유니버셜과 하기로 결정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프로젝트는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실제 인물을 다룬 전기물이었다. 전 세계에 핵이란 새로운 빛을, 그리고 동시에 두려운 공포를 안겨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원작 제목이다)'이자 천하의 둘도 없던 천재, 바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다룬 영화 < 오펜하이머 >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놀란과 유니버셜의 첫 협업물인 <오펜하이머>는 바로 놀란의 전 파트너였던 워너의 최고 기대작인 그레타 거윅의 < 바비 >와 맞붙게 되었고, <바비>가 <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를 넘어 워너의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는 바람에 <오펜하이머>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한번도 1위를 기록하지 못한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역대급 흥행을 찍은 경쟁작의 방해와 3시간이란 상영시간의 압박, 누드와 욕설로 인한 R등급 등 숱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는 < 조커 >의 뒤를 이어 R등급 영화사상 두 번째로 흥행한 작품이 되었고, < 보헤미안 랩소디 >가 가지고 있던 전기물 최고 흥행작 타이틀도 빼앗았으며, < 인셉션 >을 넘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리지널 작품으론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루드비히 고란손 안타깝게도 필생의 소망(!)이던 < 듄 > 작업 위해 자리를 비운 한스 짐머가 이번에도 그 속편을 위해 바쁜 관계로, 놀란은 전작 <테넷>을 함께 했던 루드비히 고란손을 다시 한 번 음악적 파트너로 맞이한다. 스웨덴 출신의 고란손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80년대생 영화음악가들 중 하나로,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베토벤의 이름을 딴(그의 아버지는 블루스 기타의 신 알버트 킹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그의 음악적 소양은 기타 교사였던 아버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톡홀름 왕립 음악학교를 졸업한 고란손은 미국 USC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의 영화과에 다니던 라이언 쿠글러와 의기투합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고란손은 영화음악가 테오도르 샤피로 밑에서 견습 생활을 이어가며 시트콤 <커뮤니티>로 자신의 첫 음악 크레딧을 얻는데, 여기서 차일디쉬 감비노로 활동하는 배우 도널드 글로버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이 둘과의 만남은 고란손에게 < 블랙 팬서 >의 오스카와 “This Is America”의 그래미라는 영예를 안겨다주었다. 영화음악과 힙합이란 전혀 다른 분야에서 동시에 성공을 거두며 화려한 커리어를 맞이한 고란손의 다음 스텝은 바로 놀란과의 계속된 협업이었다. 루드비히 고란손은 익숙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데 탁월한 식견과 해석력을 보여 왔다. 그래서 빌 콘티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록키 발보아의 세계에서 힙합 리듬으로 새로운 적자 크리드에게 시선을 돌리는데 성공했고, 마블의 고전적이고 영웅적인 심포니가 득세하는 전장에서도 리얼한 아프리칸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이식했으며, 마에스트로 존 윌리엄스가 굳건히 세워놓은 갤럭시 사가에서 향토적이고 이국적인 베이스 리코더를 내세운 색다른 만달로리안 사운드로 새로운 여정의 진군가를 완성해냈다. 랜디 뉴먼이나 마이클 지아치노가 꽉 잡고 있던 픽사 애니메이션에서도 흥분하면 래서 판다가 되는 틴에이저의 고충을 끌어안은 그의 음악은 반짝반짝 빛났다. 엔트로피와 양자역학이 판을 치는 놀란과의 첫 만남에선 데이빗 줄리앙과 한스 짐머가 구축해놓은 미니멀한 사운드에서 더 나아가 쉽게 시도하지 않는 실험적인 백마스킹을 통해 앞뒤가 똑같은 회문 구조의 인버전 스코어를 현실에 구현해냈다. 고란손은 감독들이 요구한 사항을 받아들이되 기존의 존재하던 스타일을 반복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낸다. 이게 수많은 영화음악가들이 데뷔하고 활동하는 할리우드에서 빠른 시간 안에 그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인셉션>에서의 에디트 피아프, < 인터스텔라 >에서의 파이프오르간, < 덩케르크 >에서의 시계초침과 엘가, 그리고 <테넷>에서의 인버전된 백마스킹이 핵심적인 사운드 키워드로 자리했던 놀란의 영화음악답게 이번 <오펜하이머>에서 놀란이 영화음악가에게 내민 카드는 바로 바이올린이었다. 오펜하이머가 여러 층위를 가진 복잡한 내면의 천재였고, 일반 전기물처럼 쭉 한사람의 일생을 따라가기보단 원자력협회의 오펜하이머 청문회와 스트로스 제독의 인사청문회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일대기까지 세 가지 시간 선을 엮어낸 다층적인 구조라 레이어 쌓기 가장 좋은 악기인 바이올린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고란손 역시 아름답고 환상적인 선율의 비브라토를 연주하다가도 바로 브릿지로 격한 소리를 만들거나 빠르고 예민한 트릴이나 미끄러지는 글리산도로 신경질적이고 공포적인 효과로 돌변할 수 있는 바이올린이야말로 오펜하이머가 핵무기를 만들면서 가졌던 이중적인 측면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악기로 받아들였다. 아내 세레나 맥키니가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한 고란손은 놀란이 던진 이 아이디어를 맘에 들어 했고, 1인칭으로 묘사된 시나리오 속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바이올린으로 극대화 시킬 방법들을 다양하게 찾았다. 압도적인 건 바로 오펜하이머가 가진 고뇌와 무게감,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천재성과 감정의 기복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한 큐 안에서 스트링 세션이 변화무쌍하게 4마디마다 템포가 변화해 최대 21번의 빠르기가 가중되는 'Can You Hear The Music'이나 'Destroyer Of Worlds'같은 트랙이다. 처음 시작보다 무려 3배나 빨라지는 연주는 한 테이크 안에 라이브가 불가능하다 생각해 후반 믹싱적 테크닉을 시도하려했으나 아내의 격려와 시도로 실제 연주를 사흘에 걸쳐 이뤄냈으며, 이는 남들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오펜하이머의 시선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이제는 시작돼 멈출 수 없는 핵 개발의 체인 리액션을 표출한 방식이기도 했다. 더욱이 영화상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트리니티 실험에 흘러나오는 8분에 이르는 대곡 'Trinity'는 폭발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고조되며 심장을 마구 옥죄여오는 킬링 트랙인데, 버나드 허먼이 울고 갈 정도로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현의 비명들 아래 깔리는 웅장한 관악기와 어두운 일렉트릭의 조화는 폭발 순간 침묵에 휩싸이며 먹먹함을 선사한다. 버튼을 누르면 결코 이전으론 되돌아갈 수 없는 결과를 낳는 핵의 운명처럼, 이 모든 소리의 파편들이 쌓여 거대한 침묵을 완성한 건지 모른다. 여기에 가이거 계수기를 비롯한 다양한 펄스파의 소리들과 군중의 발소리를 채집한 효과들이 어우러지는 아방가르드한 공명감은 핵개발 이후의 바뀐, 그리고 멈출 수 없는 세상의 연쇄적인 반응을 담아내는 듯 불길하고 무섭게 다가온다. 간혹 섬세한 하프와 간헐적인 피아노가 덧입혀지며 아내 키티와 동료 과학자들 간의 신뢰를 구축하기도 하지만, 독일과 소련과의 원폭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며(또 작중 후반 증인들의 증언이 거듭됨에 따라 불리해지며) 그 초조한 긴장감을 담아내는 규칙적인 초침소리와 금속성의 엠비언트, 현악 오스티나토의 질주감은 별다른 화려한 비주얼 없이도 청각적으로 스크린을 압도해버린다. 기억에 남는 명징한 테마들은 없지만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며 켜켜이 쌓이는 현악의 구조와 강도는 점점 완성되어가는 원폭을 보듯, 증언이 쌓이며 점점 인물들을 구체화 시키는 청문회를 보듯 단단하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런 강렬함에도 고란손은 스코어에 드럼이나 팀파니 같은 전통적인 타악기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활로 현을 때리거나 샘플링된 소리들로 효과를 주었을 뿐이다. 버나드 허먼의 신경질적이고 풍부한 스트링에 나인 인치 네일의 공감각적인 일렉트릭 사운드를 포용한 채 필립 글래스나 막스 리히터의 미니멀리즘과 요한 요한손의 드론 음악을 결합시켜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현대음악처럼 풀어낸 루드비히 고란손의 추상적이고 과할 정도로 시끄러운 사운드 임팩트는 핵이란 거대 담론이 가진 여러 방향성과 폭발력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층위의 감정 스펙트럼을 방사형으로 내뿜어낸 비장의 OST다. Track List 1. Fission 2. Can You Hear the Music 3. A Lowly Shoe Salesman 4. Quantum Mechanics 5. Gravity Swallows Light 6. Meeting Kitty 7. Groves 8. Manhattan Project 9. American Prometheus 10. Atmospheric Ignition 11. Los Alamos 12. Fusion 13. Colonel Pash 14. Theorists 15. Ground Zero 16. Trinity 17. What We Have Done 18. Power Stays in the Shadows 19. The Trial 20. Dr. Hill 21. Kitty Comes to Testify 22. Something More Important 23. Destroyer of Worlds 24. Oppenheimer
작년 한 해는 뭐 하는 한 해였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 판데믹 때문에 영화업계는 불안과 침체가 주였던 것 같은데 그나마 이래저래 만난 한국 영화들이 2020년을 관통하는 한 줄기 빛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1월 말, 2월 초 참가했던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는 윤단비 감독의 < 남매의 여름밤 >이 밝은 미래 부문 상을 탄 것, 같은 곳에서 다른 한국 영화들의 활약과 함께 작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탄 봉준호 감독의 < 기생충 >이 흑백 버전 월드 프리미어와 마스터클래스를 엄청난 열기 속에 마친 것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 한 해, 곧이어 2월 초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전례 없이 비영어권 영화로 <기생충>이 최고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 상을 휩쓴 것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 한 해였다. 세계인이 감탄한 가운데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LA 현지 시각 2월 9일) 끝나고 이틀인가 사흘 후, 연상호 감독과 < 반도 > 단독 인터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서울에 있는 투자배급사의 밀폐된 유리 상자 같은 회의실 안에서는 마크스를 벗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거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진 일상에 오늘도 Zoom 화상 인터뷰가 잡혀있다.) 어쨌든 한국 안팎으로 2016년작 < 부산행 >이 이례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에 이어 그 후속작인 <반도> 역시 칸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후 여름 성수기 텐트폴 개봉의 수순을 밟을 것에 국제적인 기대가 이미 모아졌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2020년은 정말 신나는 한 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11월 말, 12월 초 시점에서는 이게 다 올해 얘기 맞나 팩트 체크를 해야 할 정도로 다른 세상의 먼 과거 얘기가 돼버린 것 같다.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COVID-19)’라는 말이나 ‘판데믹이 영화업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얘기가 빠지는 기사는 거의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극장 관객 수는 폭락했고 영화사들은 극장 개봉을 미루거나 OTT로 직행했고, 칸 영화제도 취소한다 만다 한참 끌다가 결국 6월에서야 선정작 발표만 하고 물리적 영화제 자체는 취소하는 형태가 됐고, 앞으로 영화 제작과 상영은 잘해나갈 수 있을까 계속 불안하고 우울한 2020년이 돼버렸다. (그래도 일찍부터 세계 여름 동시기 개봉을 준비했던 <반도>는 그나마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잘 취한 한국 외 아시아 몇 개국 중심으로 개봉을 과감히 실행하면서 얼어 있었던 극장가를 어느 정도 녹여주었다. 칸 영화제는 열리지 않았지만 공식 선정작 목록에 오른 <반도>는 그것과 별 상관 없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이례적인 흥행기록을 또 세웠고, 국제 영화업계는 그 행보에 주목했다.) 그리고 수개월 간 개막을 할지 말지 고민하던 부산 국제영화제는 조심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 및 방역 조치를 강화한 상태의 축소된 행사를 10월에 개최하기로 했다. 이에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는 영화제에 선정된 떠오르는 한국 영화 신인들 몇에 대한 취재를 하게 됐고, 덕분에 신선한 장편 데뷔작들을 또다시 볼 수 있게 됐다. 그 중 뉴 커런츠 부문에 선정된 이란희 감독의 < 휴가 >가 기억에 가장 남는 영화 중의 한 편이다. 보통 취재를 위한 스크리너 링크를 받으면 당장 관람하지 못한다. 다른 일이 좀 없는 늦은 밤이나 주말에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때 가서 링크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경우, 보내준 이에게 연락하기 곤란한 타이밍이다. 그래서 이메일로 받으면 “잘 받았습니다” 답신을 하기 전에 먼저 스크리너를 잠깐씩 틀어본다. 앞부분 크레딧과 첫 장면 몇 초가 잘 나오나 보고, 무작위로 중간쯤 계속 문제없이 나오나 한두 군데 정도를 틀어본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2-5초씩만 틀어본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맨 끝은 피한다. 그런데 반갑게도 이번 부산 영화제 기대작으로 받은 스크리너들은 거의 다 불과 그 몇 초 안에 ‘아, 이 영화 좋을 것 같다’ 싶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 보고 났더니 실제로 이 불안하고 침체된 시기에 영화에 대한 희망을 주는 작품들이 맞았다. 신기해서 주로 취재 기자로 일하는 나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와 평론가 친구들에게 SNS상으로 물었다. 어떻게 몇 초 안에 영화가 좋다는 게 티가 나지? 무슨 연출력의 힘이나 미쟝센의 요소들이 결합하면 총 5초 내에 느낌이 오게 할 수 있을까? 쟁쟁한 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제대로 답을 못 해준 건지 안 해준 건지 그저 좋은 영화를 봤다니 기뻐해 주고, 기껏 해 봤자 ‘많이 보다 보면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정도였다. 주인공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3초 동안 나오는데 ‘뭐 하나 동행해 보고 싶다’,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배경과 소리가 나오는 장면을 2초 동안 보는데 ‘저 안에서 호흡해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무슨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그런 느낌을 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휴가>도 분명히 그런 영화 중 하나다. <휴가>는 중년의 해고 노동자 재복이 동료들과 함께 1,882일째 농성하는 날 해고 무효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고, 일단 장기 농성을 하던 차가운 노상의 텐트를 떠나 며칠간 재충전의 시간, 남들처럼 ‘휴가’를 가자는 결론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엉망이 된 집에 들어간 재복은 밀린 청소와 정리를 시작하는데 딸들은 너무 오랫동안 가정을 비웠던 아빠가 반갑지 않다. 농성장에서 식사 담당인 재복은 집에서도 따뜻한 밥을 차리지만 애들은 외면하고 늘 먹었던 듯한 라면을 알아서 해 먹는다. 고3인 큰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합격한 대학에 낼 예치금이 필요하고, 작은딸은 롱 패딩 코트를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재복은 얼마 없는 휴가 동안 돈을 벌기 위해 친구가 관리자로 있는 가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이전에 단편 영화 < 파마 >, < 천막 > 등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외 다수 영화제에서 기대주로 떠올랐던 이란희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감독은 2012년 실제로 어떤 기타 공장 해고 노동자 밴드 공연을 보고 그 멤버들에 관한 시나리오를 쓸 생각으로 취재하다가 결국 단편 영화를 몇 편 찍게 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보게 된 장기 농성자들 중에 12년간 투쟁한 사람이 농성장을 중간에 떠났다가 몇 번이나 돌아온 것을 보면서 궁금해하다가 어떤 일을 하다가 왜 돌아왔는지 이해하려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할 일이 있고 ‘일정이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이렇듯 재복도 가깝게는 함께 지낸 공장 동료들과 멀게는 더 큰 노조 조직들과의 연대 의식과 책임감으로 농성에 성실히 임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돌보아야 할 가족들이 있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재복은 무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누군가 억울한 일, 어려운 일을 당한다 생각하면 없는 처지에도 발 벗고 나서서 도우려 한다. 말주변이 없는 듯하면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소신을 갖고 말할 때는 사람들이 당황해하면서도 설득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봉하 배우는 성실한 곰 같으면서도 섬세한 면을 드러내는 재복을 연기하는데 가슴을 천천히 미어지게 한다. 이 영화 전체가 그런 것 같다. 덤덤하게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을 따라다니는데 섬세한 순간순간과 사건들이 모여서 조용히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게 있다. 스포일러를 쓰지 않고 이란희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칭찬하기 힘들다. 그런데 어쨌든 시나리오를 받쳐준 노신웅 촬영감독과 한동훈 동시녹음 기사와 이연정 편집자의 역할도 꼽을 만할 것 같다. 분명 처음에 2~5초씩 스크리너를 돌렸을 때 매력을 느끼게 한 그 모습들이나 소리들도 감독의 연출 아래 그들의 공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 큰딸 현희를 연기한 김정연 배우, 작은딸 현빈을 연기한 이승주 배우, 그리고 작업장의 젊은 동료 준영을 연기한 김아석 배우를 보면서 계속해서 한국 영화의 자라나는 연기자 풀이 메마르지 않음에 희망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영화는 10회차, 2월 18일부터 3월 1일 사이에 촬영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저희가 촬영을 마치자마자 한국이 난리 났었다’는 감독의 기억이 있다.) 주로 인천에서 촬영했는데, 한 회차는 서울 강남역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농성장에서 찍었다고 한다. 노조를 만들려다가 해고돼 복직을 위해 355일 동안 고공농성한 김용희씨가 아직 철탑 위에 있을 때의 농성장인데, 그 로케이션이 영화 속에 제대로 활용된다. 감독은 '노동 이슈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고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나도 평생 부자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것 같다. 허투루 살지 않고, 최대한 성실하게 인간적인 측면에서’ 도리를 지키며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이들을 보살피려는 재복도 그런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양극화로 ‘좋은 인성까지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안에서 세습되고 있는 생각이 들더라’ 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만, 어쨌든 제도가 바뀌든 안 바뀌든 살아야 하니까 그럼 우리는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뭘 가지고 여유가 있어서 나오는 에티켓 같은 것이 아니라 힘든 와중에도 이 일은 하는 내가 사람이니까 잘하려고 하는 고민’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도 재복은 누가 보든 말든 착실하게 정성껏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농성하느라 묵혔던 기술과 경력을 살려 가구 만드는 아르바이트에 임할 때 나름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남들처럼 휴가 때 어디 좋은 데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아픈 등에 파스를 붙여가면서 노동하는 것인데도 나름 품위가 있어 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대충 감이 왔겠지만 <휴가>는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가 아니다. 저예산 독립 영화다. 인천영상위원회, 한국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전주영화제작소 등 여러 단체의 기획개발, 제작, 후반 작업 등 각 단계별 지원뿐만 아니라, 밥을 날라다 주고 장소를 빌려준 지역 주민들의 성원 등 여로모로 지원이 들어간 작품이다. 영화업계 역시 양극화되어가는 상황에서 <휴가>와 같은 독립영화들도 품위 있게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족한 글을 몇 자 적어봤다. 가장 인간적인 작은 단위의 관찰과 동조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문제와 함께 좀 더 넓은 폭의 사회 문제도 곱씹어 볼 수 있게 하는 영화는 지원해줄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게 지역이나 국가의 단체로서든, 개인 극장 입장권을 예매하는 관람객으로서든, 밥을 날라다 주는 이웃으로서든 말이다.
이장호 감독의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마지막 장면에서, 섀도복싱을 하는 덕배( 안성기 )의 잽은 흡사 태양을 두들기려는 듯 보인다. 때맞춰 안빈낙도의 정서를 노래한 김도향의 동명 주제가도 터져 나오지만 사실 덕배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낯선 서울살이에서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두 절친은 각각 감옥과 군대로 끌려갔다. 그 자신은 중국집 배달 일도 그만두고 전업 권투선수의 길로 나섰음에도 스파링에서조차 내내 얻어맞기만 한다. 애먼 태양에라도 화풀이를 해보려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내 카메라는 물러서고 석양은 조롱하듯 멀어진다. 못다 한 화풀이는 1년여 후를 기약해야 했다. 긴급조치와 10월 유신 시국의 1974년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로동 2인조 카빈 강도 사건’을 영화화하면서, 이장호 감독은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1)라는 강렬한 타이틀을 선택했다. 실화에 대한 감독의 해석인 이 제목 문구는 중의적이다. 그들이 쏜 것은 부도난 희망을 낳은 위선의 태양이자, 또한 사람의 이름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문도석( 이영호 )과 이종배( 박일 ) 2인조에게 있어 태양의 빛이란 만물을 평등하게 내리쬐는 축복이 아니었던 게다. 아울러 경찰에 포위된 이종배가 자살하기 전 손수 총을 쏴서 목숨을 끊은 어린 장남의 이름도 하필이면 ‘태양’이었다. 첫 번째 해석은 범인들의 대담성과 잔인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을 낳은 사회적 맥락을 돌아보자고 말했던 박완서, 최인호(사건을 각색한 소설 『지구인』을 썼다) 등의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어쩌면 영화라는 예술에 몸담고 있었던 이장호 감독은 그들을 범행으로 내몬 가난보다도, 그 가난으로 인해 좌절된 두 실존 인물의 예술적 야심에 연민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갓 1차 범행을 마친 두 캐릭터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종배와 문도석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나오던 어느 가장을 차로 납치했다가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총으로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도로변에 있던 아기엄마 하나도 오발된 총탄을 맞아 목숨을 잃는다. 이런 급박한 상황 끝에 야산으로 도피한 범인들이건만 문도석은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질 않나, 이종배는 마치 조각을 하듯 세심하게 변장 목적으로 길렀던 수염을 면도하고 있다. 실제 문도석 또한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이종배는 미술가가 꿈이었으나 생계를 위해 극장 간판을 그려야 했다고 한다. 이렇듯 못 이룬 꿈의 상징들과 어우러져,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도석은 자기연민에 빠지고 종배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자신들의 범행 속보를 들으며 “대낮에 살인강도가 설치고 다니니…”라며 남 얘기하듯 중얼거릴 만큼. 범행을 후회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도석과 주범인 종배의 갈등은 장차 갈대밭에서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익스트림 풀 쇼트로 멀어지며 관조적으로 거리를 두는 이 싸움은 글자 그대로 이전투구다. 액션의 박진감과 타격의 쾌감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고, 질질 끌리는 발길질과 힘겨운 주먹질에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고통의 신음만 울려 퍼진다. 사회의 혜택이 닿지 않는 버려진 땅에서, 소외된 자의 분노는 또 다른 소외된 자를 향할 뿐이며, 약자들은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는 생존하지 못한다. 이후 2차 범행은 이종배 단독으로 진행된다. 손을 씻고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보려 했던 문도석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 탓에 경제적 곤란을 겪다 다시 종배에게 돌아온다. 2인조가 3차 범행을 모의하는 곳은 사람이 찾지 않는 철 지난 해수욕장. 그들이 억하심정을 품고 있는 태양의 또 다른 반대말은 물인지라, 두 사람도 이 공간에서만은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파도를 타고 나아가야 할 배 한 척은 모래톱에 엎어져 있을 따름이니, 애초 그들에게 자유란 막다른 배수의 진에서나 가능한 반쪽짜리일 뿐이다. 예술가가 되지 못한 범죄자들을 향한 감독의 연민과 감정이입은 이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는 호러영화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5)와 스포츠물 < 이장호의 외인구단 >(1986)과 함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드물게 본격 장르 영화로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다만 < 엑소시스트 >를 비롯해 공포영화의 익숙한 관습을 적극적으로 빌려왔던 <너 또한 별이 되어>와 달리 이 작품에서 갱스터 장르는 대체로 서사의 틀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그런데 실화의 리얼리티와 육중한 메시지가 이끌어가던 극은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장르를 소환한다. 유유히 은행을 턴 후 직원들에게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켜놓고 떠나는 강도들의 모습은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흑백화면으로 묘사되었다. 고전 갱스터물의 패러디로 연출된 이 장면은 곧 이종배의 상상임이 밝혀진다.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시뮬레이션의 실패는 파멸의 출발점이 된다. 음악가와 미술가가 되지 못하고 강도가 돼야 했던 것처럼, 이 종합예술 콤비의 영화적 상상력도 현실 앞에서 좌절된다. 신분이 탄로 난 문도석은 아내에게 유서를 남기고 아들과 함께 먼저 자살을 택한다. 유서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플래시백 화면, 그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던 해변의 기억 속 도석의 머리 위에는 아직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허나 경찰에 포위된 어둠 속 종배의 집 위로는 단죄의 벼락만이 내리칠 뿐이다. 저항을 포기한 그는 실제 이종배가 유서에서 밝힌 대로 자신이 살해한 이들의 시신 유기장소를 경찰에게 상세히 고백한 후 동반자살을 원하는 아내를 먼저 쏜다. 그리고 드디어 총구는 어린 맏아들 태양을 향한다. 겁이 난다는 아들에게 종배는 아빠의 이름을 크게 외치라고 시킨다. “이종배!”를 부르짖는 아이에게 “더 크게!”를 종용하는 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이 대목은 이전에 등장한 바 있는 놀이터 장면의 반복이다. 술래가 된 아들 태양이 아빠가 탄 회전무대를 돌려줄 때도 부자는 똑같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쓰고 돌려봤자 회전무대는 제자리로 돌아올 뿐, 결국 지친 태양이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랐던 후손 또한 쳇바퀴의 현실에 좌절할 것을 직감했던 종배. 아버지의 이름은 이제 죽음의 이름이 되고,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는 절망은 끝내 태양을 쏘고 만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로 흔히 리얼리즘 시대라 불리는 2기 필모그래피를 열어젖혔던 이장호 감독은 후속작으로 < 어둠의 자식들 >(1981)과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를 동시에 착수했다. 두 영화 모두에 온전한 역량을 투여할 수 없었던 감독은 <어둠의 자식들>에 힘을 싣는 것을 선택했고, 이 작품은 상대적인 저평가의 불운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힘을 뺀 덕분에 오히려 과잉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연출의 미덕은 물론, 이후 감독이 선보일 작가적 탐구의 방향성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먼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종교적 구원의 가능성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살아남은 도석의 아내( 이경실 )는 성당 신부로부터 자신이 살인자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이 결말은 시력(빛/태양)을 잃은 후 신에게 의탁한 안요한 목사의 실화극이자 후속작인 <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2)의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당대 불평등 구조의 근원을 좇아 유신 시대의 과거로 떠났던 감독은 이종배의 이력에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얻었다. 영화에서 그는 말한다. “난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었다. 별의별 끔찍한 죽음을 한꺼번에 봤어. 추운 겨울 들판에다가 갓난애를 버리고 가는 지독한 여자도 있었지. 굶주림은 밥 먹는 것보다 많았어.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놈 봤니? 나도 태어날 때부터 강도질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야.” 어쩌면 이 모든 참혹한 현실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 전쟁과 분단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훗날 감독의 역작인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7)를 통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