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 물장수
- 감독
- 김선경
- 제작년도
- 1982
- 출연
- 서병헌, 하우성, 채은희, 김영일, 장천, 최명희, 이재영, 권성영, 남포동, 임성포, 최순석, 이백, 이화진, 홍성찬
드디어 ‘짝퉁 이소룡’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마치 무간지옥처럼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나오는 건 자유가 아니, 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그냥 관두는 것으로(-_-;). 어쨌건 그 무수한 짝퉁들 중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배우는 바로,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이기도 한 거룡 (본명 문경석)이다. 이름과 외모만 보고 홍콩 배우로 착각할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물론 최초의 짝퉁 이소룡도 한국 사람이었다. < 사망유희 >(1978) 촬영 도중 이소룡이 죽자, 부랴부랴 외모가 비슷했던 한국 출신 무술배우 당룡 (본명 김태정)이 그를 대신하여 작품을 마무리했던 것. 거룡 과 당룡 사실 이소룡이 액션 연기와 별개로 점프나 회전에 뛰어난 배우는 아니었는데, 그가 느닷없이 날아차기로 천정의 전구를 깨고 텀블링까지 했다. 사정상 선글라스 낀 얼굴을 클로즈업할 수는 없지만, 개인기는 오리지널보다 짝퉁이 더 뛰어났던 그 기묘한 괴리감이랄까. 이후 장 끌로드 반담 주연 < 특명 어벤저 >(1986) 등에도 출연했던 당룡 은 안타깝게도 지난 2011년 채 일흔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떴다. 당시 한국의 이소룡을 발굴하려 했던 화천공사 박종찬 회장과 김시현 감독에 의해 발탁된 거룡 은 < 최후의 정무문 >(1977)을 시작으로 < 오대제자 >(1978), < 정무지보 >(1978), < 일소일권 >(1980), < 월광쌍수 >(1981), < 흑표비객 >(1981), < 뇌권 >(1983) 등 거의 대부분 김시현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홍콩과 대만으로도 진출해 ‘Bruce Lea’라는(아, 정말 어지럽다) 영어이름을 썼던 장정의와 함께 한 강홍 감독의 <쾌권괴초>(1980), 류충량 등과 함께한 하지강 감독의 <잡가고수>(1979) 등에 출연했다. < 일소일권 > 출연 당시의 거룡 냉정하게 비교하자면 이소룡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거룡 은 그보다 더 진한 얼굴과 능청스런 코믹 쿵후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키는 이소룡과 비슷하지만 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몸이라, 정리하자면 이소룡보다 더 진하고 굵었다고나 할까. 더 나아가 < 소림사 용팔이 >(1982)에서는 박노식 이 전형을 만든 전라도 용팔이와 이소룡 캐릭터가 결합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이소룡’이라는 기괴한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부분 처음에는 ‘뭐야, 하나도 안 닮았잖아!’라고 불평했다가 점점 그의 키치적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작품들 중 단연 압권은 이소룡이 < 사망유희 >에서 입었던(타란티노의 < 킬빌 >에서 우마 서먼도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그대로 입고 나온 < 일소일권 >이다. 영화 속 배경은 홍콩으로 설정돼 있지만 사실은 한국 대관령 주변인 어딘가에서, 한 폭력단의 착취에 정면 도전한 한국인 청년 한용( 거룡 )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그는 착취당하는 한 식당에 취직한 주방장으로 나와,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되기에 앞서 그 특유의 코믹 장면들을 열심히 보여준다. 김정용 감독, 정진화 주연 < 소림사 주방장 >(1981) 보다 한 해 앞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 소림사 용팔이 >도 그렇지만 거룡은 다른 액션 스타들과 달리 정진화(<소림사 주방장> < 산동 물장수 >)처럼 꽤 연기가 되는 배우라, 그런 킬링타임용 장면들이 딱히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목장에서 펼쳐지는 라스트 액션신이다. < 일소일권 > 철빠따 액션 눈여겨볼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이소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팔과 다리의 옆 줄무늬가 거룡 의 몸매만큼이나 상당히 굵어서 일단 ‘빵’ 터진다. 두 번째로 이소룡의 쌍절곤에서 더 나아가 야구 배트를 들고 ‘철빠따’ 액션을 구사하는 모습이 거의 경이롭다. 스파이크를 신은 상대가 흙을 긁어 뿌리는 가운데 난이도 높은 대결이 펼쳐진다. 쌍절곤이 아닌 철빠따라 지칭하여 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 파괴력 또한 엄청나다. 나중에는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비록 B급 ‘짝퉁’이라 불린다 하더라도, 그리고 ‘으악새 영화’라 천시당하던 우울한 시절에도, 어떤 식으로든 홍콩의 오리지널보다 하나라도 더 나은 것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눈물겨운 ‘독기’가 숨어있는 것. 날렵하면서도 파괴력 넘쳤던 거룡 의 액션영화들, 특히 김진태 감독의 < 월광쌍수 >(1981)나 김시현 감독의 < 흑표비객 >(1981)은 오히려 해외에서 DVD 출시돼 있다. 언급한 영화들 중 영상자료원에는 < 일소일권 > DVD와 VOD, < Enter the Invincible Hero >라는 제목으로 해외에서 출시된 <흑표비객> DVD, < 소림사 용팔이 > VHS가 있다. 특히 <흑표비객>의 경우 그 못지않게 화려했던 당대의 액션배우 왕호와 가공할 일대일 대결을 펼쳤다. 비록 거룡의 뜻하지 않은 급소 차기로 서둘러 대결이 마무리됐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프레디 VS 제이슨’ 같은 대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또한 <소림사 용팔이>에서 거룡과 멋진 호흡을 보여준 대머리 배우 최민규 (최민규가 거룡의 어깨 위에 올라탄 너무나도 멋진 스틸이 있다)가 <흑표비객>에서는 악당이었다. ‘王’자 불빛이 들어오는 거대한 펜던트를 목에 걸고 그만큼이나 거대한(물론 특수분장) 참외 배꼽도 인상적이었다. 그 배꼽이 ‘삼손의 머리카락’ 같은 역할을 하는지라, 비정하게도 거룡은 그 배꼽을 뽑아서 죽여 버렸다. 그야말로 이성적으로는 황당하지만 액션신의 퀄리티가 좋으니 그저 가만히 보고 있게 된다. B무비의 매력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이성과 분리된 텍스트 향유라고나 할까. < 소림사 용팔이 > 거룡 과 최민규 거룡 이영주 이석구 감독: 김시현 , 하지강 각본: 이정근 개봉극장: 세일극장 관람인원: 4922(서울)명
이탈리아 서부극을 ‘마카로니 웨스턴’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르는 작명법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김치 무협’이라 명명할만한 독특한 장르가 있었다. 한국을 중국처럼 꾸미고 복장도 중국식으로 입은 채 버젓이 소림사까지 등장시켜 ‘무림’이 어쩌고 ‘중원’이 어쩌고 했던 일련의 무술영화들이다. 만주 웨스턴의 활황에 이어 이두용 의 태권액션영화들마저 그 명맥이 끊긴 1980년대 초반, 그러니까 이소룡과 성룡의 등장 이후 모두 넋이 나간 채 명절마다 성룡 영화만 기다리며 한국액션영화의 독창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 시기에 김영일 , 왕룡 , 정진화 같은 몇몇 액션배우들이 대부분 전북 고창에서 촬영한 일련의 ‘짝퉁 무술영화’들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 소림사 주방장 >(1981)같은 영화들은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당한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의 평가는 가혹했다. 무국적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 소림사 주방장 >의 흥행 이후 ‘저질 무술영화들이 판친다’는 요지의 1982년 무렵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중국 전통의 고증도 무시한 채 마구 치고 박거나 엉뚱한 에피소드로 웃기는 무국적 단세포식 날림”이라며 “가끔 수입되는 중국, 홍콩영화들을 흉내 내거나 마치 그들의 영화인 것처럼 관객을 현혹시키자는 어설픈 속셈도 작용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면서 “이따금 한국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내한하는 홍콩영화인들마저 이들 영화를 보고 ‘무대가 한국이냐 중국이냐’를 물어온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당시 액션영화에 열광하던 젊은 관객들의 기호와 별개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정진화 가 있었다. 1956년생인 정진화 는 < 돌아온 외다리 >(1974) 등 이두용 사단의 영화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김선경 감독의 < 특명 >(1976)을 비롯 역시 김선경 감독이 연출하고 왕호와 황태수(본명 황정리 ) 등 선배 액션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던 < 흑룡강 >(1976), < 밀명객 >(1976) 등에 출연했다. < 복권 >(1980), < 소림사 주방장 >(1981), < 무림걸식도사 >(1982) 등에 늘 함께 출연했던, 그러니까 늘 정진화를 괴롭히는 익숙한 악당으로 출연했던 김영일 이 < 소권괴초 >(1979) 등 홍콩으로 건너가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마지막 세대 배우였다면, 정진화는 이런 짝퉁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유일한 토종 배우였다. 홍콩 무술영화들을 연구하고 모방은 하되 순수 국내파였다고나 할까. < 무림악인전 >(1980)으로 김정용 감독과 만난 뒤 배치기를 필살기로 하는 코믹무술영화 <복권>(1980)의 주인공을 맡으며 일약 당대 한국 무술영화의 스타로 떠오른다. 성룡에게 로웨이가 있었다면 정진화 에게 김정용 이 있었다고 할 만큼, 그는 김정용 감독의 일련의 무술영화들에서 주인공을 도맡았다. 그의 남다른 점은 왕호 , 거룡 , 왕룡 등의 선배들이 이소룡의 아우라를 좇는 사람들이었다면 < 복권 >을 필두로 장발을 한 채 성룡식 코믹 액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사실 그가 구사한 대부분의 코믹한 동작들은 성룡의 < 사형도수 >(1978)와 < 취권 >(1978)에서 유래한다. 위 두 영화에서 코주부 스승으로 출연한 원소전 캐릭터 역시 그대로 가져왔을 정도다. 아무튼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이듬해에는 성룡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장발의 정진화를 모방한 하우성 주연, 김선경 감독의 < 산동 물장수 >(1982)라는 영화도 나왔다. < 소림사 주방장 >은 이후 < 소림사 용팔이 >(1982), < 소림사 주천귀동 >(1982), < 소림사 왕서방 >(1982) 등 무려 10여 편이 넘는 아류작을 낳을 정도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정진화 의 출연작들은 ‘아마존’같은 해외사이트에 마치 홍콩영화인 것처럼 출시돼 있다. ‘Elton Chong’이라는 영어이름으로 등록된 그를 보고 한국인 배우 정진화로 연결 짓는 해외 액션마니아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의 작품들 중 수작에 속하는 < 무림 걸식도사 >(1982)는 < Invincible Obsessed Fighter >, <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 >(1982)은 < Magnificent Natural Fist >, < 홍도경 >(1985)은 < Dragon Against Vampire >라는 제목으로 출시돼 있다. 이후 김정용 감독과의 파트너십은 계속되어 < 람보 >나 < 인디아나 존스 > 시리즈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는 < 아라한 >(1986)은 당대 무국적적인 한국 액션영화의 황혼기라 할 수 있으며, < 팔도 쌍나팔 >(1987)은 현대물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두용 감독의 < 돌아이 >(1985)가 당시 충무로의 양지의 액션영화였다면 그 반대 지점의 영화가 바로 <팔도 쌍나팔>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1990년이 되기 이전 이른바 ‘개인기’를 지닌 액션배우들은 정진화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후 충무로를 떠난 그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TV드라마 <무인시대>(2003)에 출연하기도 했다. / 글: 주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