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살수
- 감독
- 계치홍, 마츠오 아키노리
- 제작년도
- 1971
- 출연
- 하리리, 장패산, 정묘, 황충훈, 이군, 첨삼
2001년 | 싸이더스 감독: 김태균 | 원작: 서동헌 | 각본: 서동헌 정안철 허균 박헌수 김태균 | 제작: 차승재 | 촬영: 최영택 | 미술: 장근영 김경희 | 음악: 박영 | 특수효과: 정도안 | 무술감독: 이응준 | 시각효과: 장성호 CAST 김경수: 장혁 | 유채이: 신민아 | 장량: 김수로 | 송학림: 권상우 | 소요선: 공효진 | 마방진: 허준호 | 교감: 변희봉 | 요마: 차시은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화두 중 하나는 컴퓨터 그래픽이었습니다. 그 역사는 채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적잖은 기술적 축적이 있었고, 테크놀로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콘텐츠만 만나면 폭발력을 지닐 듯했습니다. < 화산고 >(2001, 김태균)는 그 첫 시도입니다. 이후 < 해운대 >(2009, 윤제균 )이나 최근 < 신과 함께 > 시리즈(2018~2019, 김용화 ) 등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블록버스터의 시작은 <화산고>였던 셈이죠. 무협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을 결합한 이 영화는 어쩌면 반 걸음 정도는 앞서 간 실험이었는데요, 개봉 당시엔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월드 마켓에서 마니아 층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현장 공개는 6월 말, 어느 여름 밤에 이뤄졌습니다. 장소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도양’이라는 곳이었는데요, 지금은 도로 사정이 나아져서 서울에서 5시간 정도 걸리지만 당시엔 장장 7시간을 가야 했던 곳입니다. 소록도로 가는 배가 떠나는 부두 근처에 있는 어느 폐교에 세워진 야외 세트는 장관이었는데요, 전국을 뒤지며 1,000개에 달하는 폐교를 둘러본 끝에 헌팅한 장소입니다. 운동장 양 끝엔 거대한 조명탑이 있고, 그곳엔 ‘火山’ ‘武’ 같은 한자가 새겨진 붉은 휘장이 걸려 있습니다. 살수차는 지하수를 끌어 올려 폭우를 만들어내고, 카메라는 크레인에 올라가 있었으며, 무술 팀은 끊임없이 와이어를 잡아당기던 분주한 밤 현장이었습니다. 이날 촬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수학 교사 마방진(허준호)과 주인공 경수(장혁)의 대결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와이어 액션이었는데요, 마방진의 가격에 경수가 하늘로 치솟는 장면 때문이었죠. 허리에 와이어를 매단 경수의 몸이 한 순간에 갑자기 솟구치는 장면을 위해, 카메라 밖에선 무술 팀(이른바 ‘땡김이’)이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와이어를 잡아 당깁니다. 10번 넘는 테이크 만에 OK 사인이 났는데요, 카메라 앵글을 바꿔서 그 장면을 반복합니다. 그때마다 장혁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야 했고요.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 같습니다. 12개의 살수구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면 ‘우중 액션’이 시작됩니다. 어릴 적 우연하게 뇌전벽력을 맞아 극강투기를 가지게 된 경수. 그는 여덟 번 퇴학을 맞고 아홉 번째 전학으로 화산고에 옵니다. 영화 < 짱 >(1998, 양윤호 ), 드라마 <학교>(1999)로 고등학생 이미지가 강했던 장혁에게 <화산고>는 어쩌면 운명적인 캐릭터였을지도 모릅니다. 마방진 역의 허준호. ‘빌런’ 캐릭터로 허준호만큼 다크 포스를 내뿜는 배우도 많지 않을 겁니다. <화산고>에서도 경수를 압도하는 엄청난 힘을 보여줍니다. 장혁은 경수를 “바보스럽지만 바보는 아닌” 캐릭터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을 만들어내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11개월 동안 이어진 촬영은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신인급 배우에게 결코 쉽지 않았는데요, 촬영이 끝났을 땐 마치 학교를 졸업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화산고> 현장에서 와이어는 장혁에겐 마치 신체의 일부와도 같았습니다. 거의 항상 몸에 달려 있었으니까요. 거친 액션을 소화하느라 온몸에 멍이 들었고, 일곱 번 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엔 너무 익숙해져서, 와이어에 매달린 상태에서 자장면을 먹을 정도가 되었다네요. 1997년 어느 공모전에 출품된 시나리오가 하나 있었습니다. <화산고>였죠. 당선되진 않았지만 그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었던 김태균 감독은 원작자 서동헌에게 영화화 제안을 했는데요, 처음엔 직접 연출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이후 < 키스할까요? >(1998)을 마친 후 불현듯 <화산고> 시나리오가 떠올라 친구인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에게 제안했고, 2년에 걸쳐 <화산고>를 만들게 됩니다. 촬영에 11개월, 후반작업에 6개월. 당시 한국영화로선 파격적인 제작 일정이었죠. <화산고>의 클라이맥스 액션 신은 마치 서부극을 연상시킵니다. 김태균 감독은 이 대목에 대해 “총과 총의 대결이 아니라 물 싸움으로 변형”시켰다고 설명합니다. <화산고>는 제작 노하우에서 그 어떤 참고 자료도 없었던 영화입니다. 의도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와이어 액션을 위해 홍콩 액션 팀을 불러올 수도 있었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해외 업체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모두 국내 인력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그래야 뭔가 쌓인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제작비와 일정이 늘어났죠. “아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영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지막지한 괴로움을 겪었어요. 과연 이 영화를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했죠.” 김태균 감독의 말입니다. 김태균 감독은 <화산고>를 “근사함과 망가짐이 공존하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주 촌스러운 구석도 있고, 만화적인 톤도 있지만, 근사한 비주얼과 스펙터클이 결합된 영화. 그런 면에서 <화산고>는 거대하면서도 무모하고 한편으론 용기 있는 시도였습니다.
열 편 모두 사사로운 이유에서 선택한 영화들이지만, < 디아만티노Diamantino >(가브리엘 아브란테스/다니엘 슈미트, 2018)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 리스트의 취지에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에서이다. 가장 공감했거나, 탁월하다고 생각한 영화는 아니었다. 여러 유형의 영화들을 참신한 조합으로 선보일 수 있는가를 항시 고민해야 하는 직업의식의 발로에서 <디아만티노>를 봤을 때, 이 영화는 무논리, 무정형, 무감각의 진공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완력이 대단했다. <디아만티노>는 이민 위기, 민족주의, 트럼프, 인공두뇌학, 젠더 바꾸기, 정치적 부패, 인터넷 범죄 및 글로벌 스포츠 비즈니스의 뒤안을 구불구불 훑어간다. 포르투갈 출신의 영화감독 가브리엘 아브란테스와 미국인인 다니엘 슈미트가, 몇 편의 단편영화를 거쳐 공동으로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아브란테스와 슈미트는 허접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와 설익은 특수효과, 이미지 훼손, 장르 횡단, 불경스러운 상상력을 오가며,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아방가르드 SF 코미디를 창조해냈다. 글로벌 축구 스타 디아만티노 마타모로스(미겔 고미스의 < 타부Tabu >(2012), < 천일야화As mil e uma noites >(2015)에 나온 배우 카를로타 코타가 뇌리에 각인되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타고난 운동능력이 아니라면, 세상 물정에 어두운, 공허한 청년이다. 페널티킥을 실축함으로써, 그가 이루려 했던 마지막 목표인 포르투갈의 월드컵 우승을 이루지 못한 디아만티노는 자신의 지평을 넓히고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로 결심한다. 그 자신의 실책 때문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아버지를 향한 부채감으로 선한 사역에 복무하기로 작정한 디아만티노는 모잠비크를 탈출한 난민 소년 라힘을 입양한다. 그러나 열심과 정성을 다해 살뜰히 돌보았던 이 소년의 정체는 포르투갈 정부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레즈비언 요원 아이샤. 아이샤는 디아만티노의 사악한 쌍둥이 자매가 연루된 돈세탁 작업을 조사하기 위해 저택에 잠입하였다. 여기에 국가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적의 슈퍼 팀과 위대한 포르투갈 재건을 위해 디아만티노를 복제하려고 하는 미친 과학자 람보르기니 박사가 준동한다. 더하여 이 미끈한 축구 아이콘의 공상 속에 등장하는 초고층 빌딩 크기의 털북숭이 강아지도 있다. 인물의 유형, 공간, 사건, 묘사의 수준에서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디아만티노>는 전 지구적인 대격변을 현장에서 경험하는 축구 스타의 고통스러운 환상을 보여준다. 과연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중심을 상실한 채 흘러가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달리 요약할 방법은 없다. 사건은 빠르게 진행되지만, 전개가 혼란스럽지는 않다. 강인한 육체를 가진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디아만티노는 모든 측면에서 메트로 섹슈얼 슈퍼스타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연상시키는 아바타이다. 대리모를 통해 아들을 입양한 호날두처럼 디아만티노는 아프리카 이민자 소년을 입양한다. 그러나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태연자약하게 달려 있다. “여기서 본 이야기, 모든 이름, 등장인물. 사건은 실제가 아닙니다. 실존 인물, 장소, 제품, 유전적 절차 또는 거대한 강아지에 대해 어떠한 유추도 해서는 안 됩니다.” 뻔뻔스럽기까지 한 이 경고는 스스로를 희롱하려는 듯한 이 영화의 어조를 닮았다. 디아만티노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판단은 곤란해진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항존한다. 탄탄한 근육과 아름다운 몸을 가진 뇌가 텅 빈 사람. 그는 순수한 인간이거나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무지한 저능아이다. 디아만티노는 그가 처한 상황에서 늘 소외된다. 딱한 처지의 난민들을 동정하는 그의 선의는 너무 순수해서 가장(假裝)한 것처럼 보인다. 디아만티노의 순수함과 유치함, 성실함은 이렇듯 심각한 세계와 대비되면서 풍자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빚어놓은 듯 단단한 육체는 디아만티노의 자선 의지와 한 몸을 이룬다. 성실한 육체에 깃든 성실한 의지. 디아만티노의 어린애 같은 태도는 경멸의 대상이지만 영화는 순수성의 인격화를 표상하는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위대한 인류의 자산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변화하는 캐릭터로서 디아만티노의 전환점은 난민의 위기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개인 요트와 저택에 파묻힌 그가 아는 유일한 고통은 축구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별안간 그는 현실 세계의 고통을 알게 된다. 이 부조리극이 어떤 심각한 정치 드라마보다 논쟁적이 되는 것도 이 순간부터이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미친 시대’를 목도하게 된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디아만티노>는 오만가지 장르, 작가의 계보를 활발하게 혼성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초기작들을 연상시키는 인물들, 특별히 디아만티노의 쌍둥이 누이는 알모도바르적인 캐릭터의 전형이다. 글을 조각내어 다른 순서로 재조합한 윌리엄 버로우즈의 콜라주 플롯, 리차드 켈리의 < 사우스 랜드 테일Southland tales >(2006)의 허무주의, 존 워터스의 터무니없는 컬트 고전들, 한나 바르베라의 풍자만화, 제임스 본드의 패러디, 심지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성 정치학적 비전에 이르기까지 이질적 요소들의 접붙이기를 펼쳐 보인다. 서사는 고전적 팝 컬쳐, 신앙심이 깊은 시네필리아, 초현실주의 대중문화 아이디어의 융합이다. 아브란테스와 슈미트는 유럽을 잠식한 난민 위기, 네오-파시즘, 블랙시트, 감시 테크놀로지, 빈곤, 스포츠 애국주의, 인간복제와 같은 현대적인 주제들을 한밤중의 소동극 위에 얹는다.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흔들어댄 칵테일마냥 각각의 주제는 어떤 초점도 만들지 않고 평평해진다. 감독은 진정성 있게 이들 주제를 다루고 있는가? 이 유치한 ‘병맛 코미디’는 무엇을 표방하려는가? <디아만티노>는 하나의 상태에서 무작위적으로 확장해나가는 일종의 자유 형식을 채택한 영화이다. 이미지의 전략도 같은 맥락을 따른다. 어수선하고 화려한 색채, 지글거리는 16mm 필름의 터프한 룩, 한편으론 미끄러질 것처럼 블링블링한 상업광고의 비주얼, 의도적으로 장난스럽게 만들어진 CGI 화면을 합쳐 놓은 이 영화의 미학은 스토리텔링만큼 거칠고 우연적이다. 관념보다 이미지를 선호하는 영화감독은 일류가 될 공산이 크다. 숱한 연상을 자유로이 불러일으키면서도 편협한 목적으로 위해 소비되지 않는 이미지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총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디아만티노>는 2018년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출품되어 그랑프리를 받았다. 카오스적인 무논리가 횡행하는 키치 미학에 비평가들이 호응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평론가들의 눈이 어떻게 된 것일까? 영화의 표면에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폭력적인 체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 균질화된 표현의 영역 바깥으로 탈주하려는 욕망이 넘실댄다. 남발되는 시각효과는 기술적으로 하자가 있고, 참혹한 수준의 발 연기에 한숨이 나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에는 개성을 더한다. 이 반(反) 미학이 겨냥하는 바는 명확하다. 어떤 영화로부터의 영향도 거부하지 않는, 그 무엇과도 다른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 <디아만티노>를 본 뒤 며칠간 한 편의 영화가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스탠리 큐브릭의 < 시계태엽 오렌지Clockwork orange >(1971)이다. 물론 두 영화는 다르다. 누군가는 “격이 다르다”고 화를 낼 수도 있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교화되지 않는 앙팡테리블 알렉스와 <디아만티노>의 백치 축구 선수 디아만티노는 불가역적인 강압과 제도적 폭력의 희생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적 성정(性情)은 교정되지 않는다. 알렉스의 내면화된 폭력 성향에 의해, 디아만티노의 순진무구함에 의해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두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철저히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그것을 조롱하기보다는 인간의 결점을 즐긴다. 심지어 그 결점이, 살면 살수록 나빠져만 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디아만티노의 백치미는 그 우매한 순수성으로 인해 규범화된 폭력과 정치적 위선을 도드라져 보이도록 한다. 언제나 문제는 상상력이 아니겠는가. 오랫동안 인류를 사로잡았던 예술작품이 보여주었던 것도, 일상을 풍요롭게 할 최상급의 공상도, 그것이 없다면 영화를 볼 이유가 없는 희열의 기원도 모두 상상력에 있다. 행여 <디아만티노>는 모든 관객이 즐거이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열광적으로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상하지만 용감한, 올해의 영화를 뽑으라면, 나는 여기에 한 표이다.
영화 제작에 관해 아무런 경험이 없는 관객들만큼 ‘데이터 매니저’는 현장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이었다. 필름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고 대부분의 영화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게 되면서 새로이 생겨난 개념이기에 그렇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필름에 촬영내용이 기록됐던 지난 시절에 비해 디지털은 실물이 아니다. 디지털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인화지에 인화하기 전까진 그저 카메라 혹은 컴퓨터 안의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데이터를 관리하는 파트. 그것이 데이터 매니저이다. DSLR 카메라를 사용해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32기가 혹은 64기가 용량의 메모리 카드에 저장이 된다. 영화용 디지털카메라도 마찬가지인데 카메라 기종마다 각양각색의 메모리 카드가 존재한다. 대략 담뱃갑 하나 정도의 크기인 이 메모리 카드에 1차적으로 촬영분량이 저장 되고 대개의 현장엔 카메라 한 대당 4개의 메모리 카드를 사용한다. 4개의 메모리 카드를 모두 사용하게 되면 그 날 촬영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계속해서 촬영을 진행하기 위해선 처음 사용했던 메모리 카드의 내용 즉, 데이터를 어딘가에 저장 혹은 백업을 할 필요가 있고 디지털 시대 초창기엔 이 역할을 촬영부 막내들이 맡곤 했다. 그러나 점점 카메라 기종이 고해상도를 지원하게 되고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 발전하면서 하나의 메모리 카드가 수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도 커졌고 촬영부 막내가 잠깐 짬을 내서 이 업무를 처리하기엔 무리가 왔다. 가장 많이 쓰이는 카메라인 ALEXA XT의 경우 메모리 카드 하나에 400기가가 넘는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으나 소스의 포맷에 따라선 한두 시간 잠깐 촬영을 해도 100기가 200기가가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실물인 필름에 비해 데이터는 손실 혹은 유실의 위험성도 크다. 아예 하나의 파트를 만들어 이 업무만을 처리하는 ‘누군가’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현재 촬영이 진행 중인 상업영화 현장에는 데이터 매니저가 반드시 한 명 이상 존재한다. 촬영부의 하위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점점 촬영부와는 따로 떨어져 하나의 파트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촬영부와 가장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제작부, 현장편집, 스크립터, 때에 따라선 의상과 CG, 분장팀과도 연관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본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니 스태프들은 자신이 관여한 작업을 확인하고 싶을 때 데이터 매니저를 찾곤 한다. 데이터 매니저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찾기 쉬운 방법이 있는데, 현장에서 약간 떨어져서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데이터 매니저이다. 그렇다. 데이터 매니저는 남들 다 뛰어다니고 바쁠 때 혼자 앉아 있다. 상업영화 현장에서 팀이 아닌 단독으로 움직이는 파트가 셋 있는데 스틸 촬영기사, 메이킹 기사, 그리고 데이터 매니저이다. 영화 규모에 따라선 두 명이 한 조로 투입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혼자 구석에 앉아 일을 한다. 사실 일 자체는 힘들지 않다. 수시로 건네받는 메모리 카드를 백업받고 다시 촬영부에게 전해준다. 촬영부는 백업이 완료된 메모리 카드를 포맷해서 재사용한다. 백업받은 데이터를 정리하고 어떤 포맷으로 찍혔는지, 몇 개의 클립이 촬영되었는지, 용량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 뒤 소스를 눈으로 확인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장비도 초창기에 비해 많이 안정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디지털의 특성상 다양한 오류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녹색, 혹은 붉은 점이 화면에 순간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검은 점이 보이기도 한다. 각각 배드 픽셀 (bad pixel), 데드 픽셀(dead pixel)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대표적인 디지털 오류들이다. 이외에도 플리커가 보인다던지 할레이션 따위가 들어온다던지 촬영적 오류들을 확인해서 촬영부에 일러주기도 한다. 이렇게 촬영 내용을 전부 눈으로 확인하면 외장 하드디스크에 데이터를 담아 DI(Digital Intermediate)파트로 보낸다. DI 파트는 최종적으로 데이터를 보관하며 색보정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상영본이라고 할 수 있는 DCP(Digital Cinema Package)까지 책임진다. 데이터 매니저는 이후 해당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원본 데이터를 보관한다. 필자가 데이터 매니저의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물론,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이고 슬픈 이유를 제외한다면, 위에 언급한대로 모든 소스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 현장은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난장판이다. 촬영감독이 보고 연출자가 보고 최종적으로 관객들이 보게 되는 뷰파인더 안의 세상은 멋지고 예쁜 배우들이 아름답고 신비한 공간에서 로맨틱하고 달달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화면 밖으로 한 걸음만 멀어져도 수많은 조명 장비와 녹음 장비들이 늘어서 있고 백여 명의 스태프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으며 온갖 소품들과 미술 대도구들이 치워져 있다. 때에 따라선 발전차는 물론이거니와 커다란 조명차나 살수차가 위엄을 자랑하며 서 있기도 한다. 차분하게 앉아서 소스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란 이야기다. 연출자, 연출자 옆의 스크립터, 현장편집기사, 제작자, 분장팀장 정도만이 그럴 수 있다. 나머지 스태프들은 제 할 일 하기도 바쁘다. 하지만 데이터 매니저는 이런 소스들을 확인하는 것이 본 업무이다. 촬영 전 읽어봤던 시나리오가 어떤 식으로 촬영이 되고 어떻게 화면구성을 하는지 데이터 매니저는 볼 수 있다. 소스를 보면서 어떻게 편집이 될지 상상해 보기도 하고 이런 장면에선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 혹은 어떤 방식으로 연기연출을 해야 할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 가려진 시간 >의 촬영 소스들을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신은수 배우가 연기한 수린 역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큰 눈망울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필자도 연출이 전공인지라) 나도 모르게 “컷! 오케이!” 라고 말해 버린 기억이 있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주변부터 살폈다. 천만 다행히도 필자의 월권행위(?)를 들을만한 사람은 없었다. 완도에서 많은 분량을 촬영했고 때문에 서울과 완도를 수도 없이 왕복했는데 데이터 매니저의 페이는 위험수당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완도에서 3, 4회차 촬영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정말 긴장된다. 혹여나 사고가 나서. 나 죽는 건 그렇다 치고. 데이터가 전부 다 날아가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긴 시간 운전하면서 절대로 졸 수가 없었다. 물론 최종적으로 세 개의 하드디스크에 백업을 한다. 동일한 내용의 데이터를 세 군데에 백업을 하고 이를 제작부와 서로 나눠서 소지하기도 한다. 그래도 농담 삼아 ‘오늘은 죽어도 되는 날 : 지금까지의 촬영분을 전부 DI실에 넘기고 완도로 내려가는 날’과, ‘절대 죽으면 안 되는 날 : 몇 회차의 촬영분량을 담은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는 날’로 구분해서 말하기도 했다. 영화 내용상 숲속에서 촬영할 일이 많았다. 모두들 수풀을 헤치며 장비와 소품을 옮겼다. 필자 역시 노트북 컴퓨터와 전용으로 들고 다니는 테이블 등등을 숲속 한가운데에 옮겨 놓고 그 자리에 앉아 백업 작업을 했다. 혼자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다 보니 메이킹 영상이나 스틸 사진에 데이터 메니져가 찍힐 확률은 매우 낮다. 의무적으로 한 번은 찍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날 스틸 기사님이 필자를 도촬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뭐 찍을 게 있어서 찍느냐고 농치니 스틸 기사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런 산속에 앉아 컴퓨터 하는 그림 흔치 않아요.” 데이터 매니저는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전기가 근처에 있어야 하고 현장과도 너무 멀면 안 된다. 카메라 앵글에 잡힐 만한 곳도 피해야 한다. 현장 나갈 때는 항상 맨 먼저 하는 일이 어디에 자리를 잡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그 날도 나름 머리를 굴려 자리를 잡았는데 어쨌거나 숲속 한복판이었다. 스틸 기사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테이블까지 펼쳐 놓고 노트북 컴퓨터를, 그것도 전국에서 영화판에만 반 이상이 몰려 있다는 A사 제품의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