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amirang]4대강 삽질 미쳤군 미쳤군, 미쳤군 미쳤군 미쳤어!
- 제작년도
- 2010
<삽질> < 삽질 >( 김병기 , 2018)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이어 개봉하였고, < 메이드 인 차이나 – 그날, 바다 SPINOFF#1 >( 김지영 , 2019)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되고, < 대통령의 7시간 >( 이상호 , 2019)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일명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혹은 무비 저널리즘이 다수 상영되고 있는 셈이다. 탐사보도 형식의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는 몇 해 되었다. < 다이빙벨 > 시리즈와 < 김광석 >, < 자백 >과 < 공범자들 >, < 더 플랜 >, < 저수지 게임 >, < 그날, 바다 >은 상영 뿐 아니라 개봉을 통한 상영 운동을 한 작품이다. 모두 당대 사회적 현안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실제 불러온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았다. 최근 부상하는 한국의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방송의 저널리즘과 독립 다큐멘터리의 의외의 만남에서 촉발한다. 한국에서는 방송 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른 지지기반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었다. 2010년 전후 언론 탄압으로 인해 방송국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PD들을 대거 해고하는 사태에 발생했다. 해고 언론인들은 방송국 밖 인터넷 방송(뉴스타파, 오마이뉴스)과 독립 영화로 적극적으로 진입하고 유입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상호 감독(<다이빙벨>시리즈)와 최승호 감독(<자백>, <공범자들>이다. <공범자들>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주로 저널리스트이자 감독이 은폐되고 부조리한 사건의 실체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구성을 취한다. 마이클 무어식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추적하는 감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감독은 저널리스트로서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고발하고 때때로 고발 대상이 만나주지 않아도 끈질기게 만남을 시도한다. 이때 화면에 등장한 감독이자 저널리스트는 기존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감독의 등장과는 결정적으로 차이를 갖는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감독은 대상과의 관계맺음 방식에서 대변자 혹은 함께 경험하는 자라면,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감독은 저널리스트의 정신과 사명감을 형상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비리나 거짓을 폭로하기 위해 악을 끝까지 쫓는 정의로운 인물로, 마치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나 탐정 영화의 화자 같은 역할을 한다. 이 경우 관객은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의 행위에 주목하고 그들의 가설과 분노에 동일시하게 된다. 인물의 실패가 예견된 행위들은 극적 긴장과 비판적 웃음을 유발해 공감과 설득을 촉발한다. 여기서 핵심은 사건의 진실을 확증할 증거와 증거에 대한 팩트 체크이다. 여기서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의 위태로운 선택이 발생할 수 있다. 증거를 파헤치는 과정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거나 검증되지 않은 증거로 사회적 파장을 겨냥한 경우나 혹은 증거의 팩트 자체를 검증하는데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경우다. 진실을 쫓는 자와 진실을 둘러싼 주장과 가설은 넘쳐나는데 정작 사건의 실체와 진실은 가려진다. 최악의 경우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사건의 여론몰이 도구로 선정적으로 활용하게 되는 경우다. <대통령의 7시간> 최근 한국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는 크게 두 방식으로 진실 논쟁을 추구한다. 둘 다 사건을 추적하고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현장과 전문가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한 축은 사건 현장에 초점을 맞춰 발로 뛰면서 몸으로 취재를 하고, 다른 하나는 증거에 초점을 맞춰 사건에 접근하고자 한다. 주로 데이터와 인터넷 정보를 활용한다. 전자는 전통적인 방송의 저널리즘 계보와 궤를 같이 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딴지일보에서부터 인터넷 방송과 팟캐스트와 같이 새로운 플랫폼에서 각광받는 저널리즘 형식이다. <자백>, <공범자들>, <삽질>이 전자의 사례로 들 수 있고, 프로젝트 부 시리즈 <더플랜>, <저수지게임>, <그날, 바다>, 그리고 스핀오프로 제작된 <메이드 인 차이나-그날, 바다>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현장 중심이든 데이터 중심이든 사건의 증거를 찾아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사후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는 여러 가설들이 증거와 경합을 하게 된다. 다만 가설은 열린 가설이 되어야 할 것이고 증거는 확증편향이 아닌 다방면의 팩트 체크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여정이 사건 수사 기관의 수사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다. 영화가 진실을 찾는다면 좋겠지만 영화는 왜곡되고 은폐된 사건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진실을 찾아갈 수 있도록 촉매하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초기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보여준 한계를 다른 방식으로 모색하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 속에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답을 찾아가고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염려와 기대가 교차된다.
“‘너 왜 그랬어’라고 물어봤을 때 ‘몰라 그냥 한 건데’라고 한 거는요, 그 사람이 정말 생각 없이 행동했던 게 아니라 지금 생각 없이 대답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선생님.” 영화 리뷰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이경미 감독에게 가장 많이 보이는 키워드가 ‘괴작’, ‘괴랄하다’ 라는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주에서 온 감독’, ‘신선한 문법’이라는 키워드도 찾을 수 있다. 나는 전자와 후자 모두가 이경미 감독을 수식할 수 있는 좋은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가파른 호흡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말, 그리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 학생들에게 ‘전따’라는 말을 듣는 선생. 자신의 손을 가위로 내리찌르고, 딸의 허밍을 떠올리며 모든 의심을 거두지 않는 엄마. 이경미 감독은 < 미쓰 홍당무 > (2008)과 < 비밀은 없다 >(2015) 두 편의 장편영화에서 강력하다못해 폭주하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행동을 먼저 등장시키고, 불규칙한 사운드와 인서트를 통해 퍼즐 맞추기를 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경미 감독의 도치법적인 연출은 위의 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는 전혀 다른 장르이다. 하지만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많다. 무엇보다 아주 장르적이면서 동시에 장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각각 코미디와 스릴러의 장르성을 강력하게 띄고 있으면서도 이경미 감독의 문법으로 코미디와 스릴러의 공식을 빗겨간다. 여기서 우리는 단번에 알 수 있다. 이경미 감독은 무엇을 아주 강력하게 뒤집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영화적 요소에서부터 ‘전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미쓰 홍당무>에서 미숙은 삽질을 하며 종철에게 자신이 전화를 한 이유에 대해서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말 하고, 복장검사에 걸린 종희에게 ‘못되게 굴다가 한 번 착한 짓을 하면 사람들이 다 착하게 본다. 그러니까 착하게 살지 말아라’라는 말을 쏟아낸다. <비밀은 없다>에서는 고향을 숨기던 연홍이 딸의 실종을 파해치던 중 극에 달하자 ‘여기 사람들 하나도 못 믿것다야.’라며 굉장히 토착적인 호흡의 사투리를 구사한다. 관객 입장으로서는 한 번에 이해가 안 되는 대사들인데다가, 배우들의 호흡이 빨라서 잘 알아들을 수도 없다. 또한, ‘괴랄하다’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이 보였던 <비밀은 없다>의 허밍음에 대해서도 관객들은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경미 감독은 인터뷰에서 평소 영화를 만들 때 음악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며, <비밀은 없다>의 허밍음은 배우에게 촬영 전부터 연습시켜 녹음한 중요한 장치라고 밝혔다. 실제 영화의 절반 가까이의 사운드를 이 허밍음이 차지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이에 대해 ‘불쾌했다’라는 평을 종종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배우와 감독이 가진 역량의 부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분히, ‘의도성’을 가진 연출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쓰 홍당무>는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을 ‘타의적’으로 웃기게 만든 것이 아닌, ‘내가 나여서’ 그랬던 거라며 그러나 동시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관객은 웃지만 너무나도 슬프게 울어버리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코미디의 기존 문법을 빗겨간다. <비밀은 없다>는 실종된 딸에 관한 의문을 밝히는 스릴러로 포장되어있지만 단순히 딸을 찾는 엄마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배우들의 가파른 호흡과 폭주하는 스토리텔링으로 기존 서사의 문법을 명쾌하게 빗겨갓듯, 기존 서사 공식과 감독만의 호흡을 넘나들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이는 감독의 한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다. ‘내 영화에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남성 영화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성 영화가 많이 나오는 시대가 되면, 그때 나는 남성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이경미 감독은 자신만의 새로운 화법으로 세계 속의 이면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영화적인 소스에서만 변주를 주었을까. 이경미 감독은 ‘캐릭터’라는 아주 강력한 무기로 자신의 의도를 더 확고히 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 여성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기존 문법을 또 한 번 비튼다. 바로 ‘감정적인 여성캐릭터’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여성캐릭터는 중요한 순간에 ‘감정’에 호소하며 영화 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린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를 뒤집기 위해서 이경미 감독은 ‘이성적인 여성 캐릭터’를 배치하는 것이 아닌 ‘정말로 엄청나게 감정적인’, 즉 아주 신경질적인 여성 캐릭터(미숙과 연홍)를 세계와 갈등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새롭게 발견한다. <미쓰 홍당무>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짝사랑 상대 앞에서 실제로 ‘삽질’을 하며 폭주하듯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는 미숙은 제자의 부모님의 이혼을 막을 대책으로 내연녀와의 성적인 문자를 기획하고, 제자와 합이 잘 맞지 않자 컴퓨터 실 부품을 부시고 서로 상처를 낸다. 또 생뚱맞게 피부과 의사에게 자신의 하루를 털어놓는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캠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에서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이성적인 수사방식이 아닌 굿, 최면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딸의 메일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고객센터에 딸의 목소리를 흉내낸다. <미쓰 홍당무>의 미숙과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신경질적인 여성’으로서 세계와 대립하며,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발견하게 한다. <미쓰 홍당무>가 감정적인 여성, 신경질적인 여성들(미숙과 종희)의 연대를 그리고, 여성들 사이에 남성(종철)을 존재하게 했다면, <비밀은 없다>에서는 그러한 여성을 남성의 세계로 대립하게 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지점은 ‘여성 청소년 캐릭터’이다. <미쓰 홍당무>의 종희와 <비밀은 없다>의 민진은 청소년물이나 성장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영화의 키를 쥐고 있는 건 종희와 민진이고,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말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종희와 민진은 청소년이 아닌 종희와 민진 그 자체로 주체성을 획득하는데, 종희와 민진이 가장 중요하게 가지고 있는 키는 ‘연대’와 ‘전복’이다. 종희와 미숙, 그리고 민진과 미옥, 연홍의 연대는 신경질적인 여성을 세계와 대립시키는데 핵심적으로 작동한다. 종희와 민진은 왕따를 당하고 있는 청소년으로서 사회에 소외된 주체인데, 이들은 기성 여성(선생인 미숙과 엄마인 연홍)을 자신보다 멍청한 존재로 판단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지켜주기까지 한다. 선생인 미숙이 자신의 아빠를 짝사랑하게 된 이유가 ‘아빠가 귀에 대고 속삭여서’라는 어이없는 말을 듣고, 미숙에게 아빠가 ‘귀를 핥았다고 하라’며 지시한다. <비밀은 없다>에서는 <미쓰 홍당무>에서 이경미 감독이 스스로 다뤘던 선생-제자의 문법을 다시 비틀어, 아빠의 내연녀가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민진이 선생에게 돈을 요구하고 일방적인 욕을 퍼붓는다. 선생인 미숙은 종희가 자신의 팔이 아플까봐 ‘커진다 커진다 커진다’를 대신 써줬다는 얘기를 하며 베시시 웃고, ‘엄마는 멍청해서 지켜줘야 해요’라는 민진의 유언을 들은 엄마 연홍은 민진의 친구 미옥을 안아준다 바로 여기서 감독이 보여준 종희와 민진이 기성 여성을 연대하는 동시에 그들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영화의 구조는 감독이 세계를 뒤집고 비틀고 있는 여러 단서들을 증명하는 격이 된다. 이경미 감독이 뒤집고 있는 세계에 대한 단서를 내가 다 파악하고 통찰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경미 감독이 두 영화에 공통적인 화법으로 던져놓은 다른 소스들에서 조금의 단서들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작 <Love Set>를 통해 한 번 더 확고히 했다고 생각한다. 극 중 IU(이지은)와 두나(배두나)는 20분 가량의 단편 러닝타임 대부분을 테니스 코트에서 움직인다. 역시 어딘가 화나 있는 듯한 신경질적인 여성 캐릭터, 아빠를 내어주기 싫은 건지 남자친구와 결혼하기 싫은 건지 확실하진 않지만 강력한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여성 청소년 캐릭터. 테니스 경기 동안 배우들의 신음, 랠리, 자두를 씹어먹는 소리, 그리고 피를 뚝뚝 흘리는 여성의 신체를 클로즈업한다. 이들은 경기를 끝내고 손을 맞잡게 되는데, 몇몇 영화 리뷰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동성애적 코드가 있음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또, male gaze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는 평도 많은데, 이 작품의 감독은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이경미 감독은 대중에게 영화가 한 방면으로 해석될 여지를 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연출점으로부터 이경미 감독과 대중의 관계는, 이경미를 지독하게 싫어하거나, 열렬히 응원하거나. 이 둘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전따와 전따 애인은 바로 무대로 올라와주시길 바랍니다.” “니가 전따고 내가 전따 애인이지?” “무슨 소리에요! 선생님이 전따고 내가 전따 애인이지!” <미쓰 홍당무>에서 미숙의 담당과목은 원래 러시아어였다. 하지만 뭐든지 자신보다 잘나 보이는 양희에게 담당 과목도, 짝사랑 상대도 빼앗겨버린다. (이 점에서 여성과 여성이 대립하는 방식에 대해서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여성과 여성이 대립하는 것은 여성의 연대와 그 이면의 전복을 얘기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얼굴이 빨개서 뭘 하든지 우스워보이고, 학생들에게 선생이 ‘전따’라고 불리며, 학생보다 영어를 못해서 아침마다 영어학원에 가야하는 미숙은 자신의 사랑도 지켜야하고 공연 연습도 해야하기 때문에 잠을 잘 시간도, 밥을 먹을 시간도 없다. 게다가 피부과는 미숙을 피해서 이사를 가 버린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지역 감정이 심한 경상도에서 전라도가 고향인 걸 숨기며 살다 들통이 나서 ‘정말 전라도에요?’라는 질문까지 받는다. 전라도면 전라도지 ‘정말 전라도에요?’라는 질문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출생지, 외모와 같은 것들로 차별받는 주인공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자신이 가장 의지하는 남편의 세계에서 점차 소외된다. 이경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여성주의에 한정되어 작품을 찍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 속 여성을 분리되고 약하고 소외된 존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사람들의 편견들을 넣고 싶었고, 그것과 싸워서 극복하고 이기는 인물을 그려내고 싶었다. ”라고 한 점에서 비추어 볼 때, 이경미 감독이 여성캐릭터를 새롭게 발견한 점, 기존 문법과 다른 새로운 화법을 구사하며 신선한 장치들로 영화를 구성했다는 점들은 이경미 감독이 영화를 빌어 세계에 하고 싶은 말이 배타적인 동시에 이타적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해보게 된다. ‘나여서, 내가 나여서 그랬던 거에요.’라며 자신을 한 없이 자조적으로 끌고 갔던 미숙이, ‘전따와 전따 애인’일지라도 우리는 너희와 수준이 다르다며 열심히 연습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다. 연홍은 민진의 가사를 해석하고, 미옥을 끌어안는다. 이윽고 어지럽게 나열되어있던 불규칙들이 한 곳에 모이고, 이들이 버티고 있던 세계는 전복된다. 미숙과 종희가 서로 등 지고 팔짱을 낀 채로, 번갈아가며 세계에서 발을 뗀는 것처럼, 한 발씩, 한 발씩.
멀티플렉스 극장이 들어선 1990년대 말에도 개봉작을 볼라치면 으레 종로와 충무로에 소재한 극장들을 찾았다. 그중 하나가 명보극장으로 5개의 상영관을 갖춘 쾌적한 시설과 주변의 오래된 맛집들 때문에 자주 찾는 극장이었다. 명보극장은 2008년 폐관돼 현재는 명보아트홀이란 이름의 공연장으로 운영 중인데 그중 한 관이 실버영화관으로 간신히 극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명보극장이 배우 신영균 의 소유였다고 기억하는데, 그보다 앞서 명보극장을 세운 영화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세아영화사의 이지룡 대표다. 명보극장은 6?25전쟁 후 충무로에 처음 세워진 현대식 극장으로 개관일엔 당대 정치 실세이던 이기붕과 박마리아 여사를 비롯해 많은 귀빈이 족적을 남겼다. 사실 명보극장은 그 이름부터 이지룡의 역사가 묻어 있다. 극장 설립에 대한 기사가 나가고 극장 이름도 공모해 명성이라는 이름이 당선될 뻔했지만, 영화광이었던 자신의 청년기를 회상하며 함흥 출신인 그가 자주 드나들던 함흥 명보극장을 떠올려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당선시키며 붙인 이름이었다. 함흥 출신 서울시민에겐 가슴 뭉클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물론 29세의 나이에 거대 자본이나 의지할 만한 건 설사 없이 일단 극장을 세우고 보자는 아찔한 자신감은 그간 사업에서 승승장구해왔던 그의 이력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는 함흥에서 대흥상업을 나와 함산금융조합에서 일했고 장사를 시작해 재미를 보려던 차에 6.25전쟁이 나 월남했다. 그의 청년기는 빠른 셈과 화술 등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확인하고 토대를 닦아가던 시기였다. 피난 시절 부산에서 창고업과 함흥냉면 장사로 대박을 터뜨리며 사업에 눈을 떠갔다. 휴전 즈음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로 올라와 건설업에 몸담았지만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 무렵 외화 수입을 하며 친척이던 수도극장 부사장 이회극의 사무실을 드나들다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람들이 몰려드는 극장 사업에 매력을 느껴 서서히 빠져들었다. 때는 마침 1950년대 중반으로 한국 영화제작의 르네상스기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극장을 짓기로 결정한 이지룡 은 인맥이 있던 삼양물산을 투자사로 유치하고 고향 친구인 양봉식 (연방영화사 부사장)과 합심해 수도극장 맞은편 332평의 소유주 17명을 설득해 부동산을 매입하고 고향 선배였던 서울시 도시계획 위원장 주원에게 추천받은, 프랑스 유학을 막 마치고 돌아온 건축가 김중업에게 설계를 맡겼다(사실 극장이 완공된 뒤 설계를 무시하고 건축해 설계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김중업이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공사를 맡길 건설사를 찾던 때 국회 부의장인 조경규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하여 국회 부의장의 추천을 받은 일신산업이 시공을 맡게됐다. 하지만 자본도 장비도 기술도 없던 일신산업은 공사비만 받고 삽질만 해놓은 채 철수한다. 공사는 중단된 채 자금은 떨어지고 건설사도 없는 위기 속에서, 파헤쳐진 땅 가장자리에 위험하게 위치한 박산부인과 원장은 이지룡 에게 대림산업을 소개한다. 대림산업 이석구 대표에게 찾아가 다시 한 번 극장업의 밝은전망에 대해 피력하고 투자와 공사재개에 대한 약속을 받아낸다. 하지만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 6대 4의 조건으로 대림산업이 더 많은 주식을 갖게 된다. 대기업의 횡포, 갑의 월권 등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비극은 극장이 개관된 후 운영 체계가 잡혀갈 무렵 시작된다. 한동안은 영화계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명보극장이 개관할 때 지역구인 명동 주먹 이화룡(화성영화사 대표)이 직접 수표주임을 정해주는 업계의 전통(?)은 문외한이라면 이해하기 힘들지 않았겠는가. 이 수표주임이 동대문 주먹 유지광과 싸움이 붙어 신문지상을 시끄럽게 한 소소한 일화도 있었으니 극장 경영은 꽤나 다채로웠을 것이다. 대주주인 대림산업은 상무 양봉식을 해고하고 부사장이던 이지룡 과 삼양물산을 몰아낸다. 결국 그는 투자금마저 회수하지 못한 채 명보극장을 떠난다. 이지룡 이 그만두고 난 뒤 대림산업은 극장 공사비 허위신고와 입장세 포탈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그는 이미 떠난 뒤였기에 기억하지 못했다. 자유당 시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명보극장의 설립 이야기다. “연출자가 뭐 하는데 밀어줘야지” 억울하게 퇴출당한 이지룡 은 주식을 찾을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에 대림산업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한다. 하지만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헌법 적용이 일시 중지된 후 변호사로부터 사건을 덮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알고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이지룡의 명보극장 이야기는 “…그래가 재수가 없었지”라고 담담하게 끝이 난다. 그러나 이지룡 은 영화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 대명으로 영화제작에 뛰어들어1966년 아세아영화사를 설립한다. 영화사 이름답게 홍콩과의 합작영화도 7편이나 제작했고, 정창화 감독이 홍콩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도 했다. “정창화 감독한텐 내가 이긴 적이 없지, 연출자가 뭐 하는데 밀어줘야지”라고 말하는 이지룡은 정창화 감독의 영화를 가장 많이 제작한 국내 제작자이기도 하다. 정창화 감독과의 첫 작품은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인데 일제 말기 일본군의 버마전선을 배경으로 한 전쟁물이다. 광릉수목원에 버마전선을 만들어 촬영한 작품으로 제작자와 감독이 미공보부에 들어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버마전선의 영상을 찾아 고증하고 일부를 복사해 영화에 사용하는 등 사실적이고 충실한 재현을 위해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정창화 감독이 쇼브라더스에 스카우트되는 계기가 된 영화 < 순간은 영원히 >(정창화, 1966)도 그가 제작한 작품이다. 첩보영화인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위기X7호>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제목을 바꾸라는 공보부의 요구로 <순간은 영원히>라는 다소 멜로스러운 제목이 붙게 됐다. 홍콩 유린영화사와의 합작품으로, 홍콩에서 로케이션을 하고 개봉한 이 작품을 본 쇼브라더스의 런런쇼는 이지룡에게 감독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지룡은 정창화 감독에게 당분간 액션영화를 제작할 계획이 없으니 홍콩으로 가 기량을 펼치라고 홍콩행을 적극 권유했다. 이지룡 은 1971년 < 20인의 여도적 >이라는 작품을 직접 연출했고, 1973년에는 < 쥬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 >( 이성구 )를 일본의 고즈시마 섬에서 올로케로 제작했다. 1989년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를 제작하며 노장의 면모를 보여준 뒤 1992년 은퇴한다. 이지룡 은 흥남철수작전 때 서호진에서 간신히 수송선을 타고 월남한 자칭 ‘삼팔따라지’로 극장, 수입, 제작 등을 아우르며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짧은 지면에서 밝히지 못한 그의 다양한 활동은 채록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구술자는 아세아영화사 이후 유림흥업, 다남흥업 등의 제작사를 만들며 1990년대까지 제작을 이어간 영화계의 산증인임에도 불구하고 면담자의 부족한 지식과 기술로 제작의 묘수, 합작의 묘수, 제작자와 언론 및 관료들과의 관계 등 제작 이면의 이야기는 자세히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들 혹은 말하지 않는 순간들이 주는 뉘앙스를 통해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와 재미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