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 새장 - 이제 한국에도
- 제작년도
- 2007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
<동두천>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김진아(UCLA 영화과 교수, 영화감독) < 두번째 사랑 >(2007), < 파이널 레시피 >(2013) 등 다섯 편의 장편영화와, 미군 위안부 3부작 < 동두천 >(2017), < 소요산 >(2021), < 아메리칸 타운 >(2023) 등을 연출. 미국 UCLA 대학 종신교수로 시각예술의 재현 윤리, 초국가적 영화론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모든 예술매체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유배가 필요하다. 편안하고 안락한 나의 공간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이 존재하는 불편한 세상으로 스스로를 떠밀어야 한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새를 찾아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여정은 너무 고통스러워 한 번에 읽어낼 수 없었다. 눈밭에 굴러 떨어져 혼절하고, 다시 일어나 겨우 도착한 친구의 집에서 죽어 있는 새를 마주하는 그 여정은, 문장마다 숨이 막혀 몇 번이고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쳐야만 했다. 그레이스 조의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2023)에서, 한때 기지촌 여성으로 살아냈고 끝내 조현병으로 생을 마감한 작가 자신의 어머니의 고통 또한 그러하다. 마치 홀린 사람처럼 야생버섯과 블랙베리를 찾아 숲을 헤매는 그녀의 모습은, 책을 덮고 돌아본 방 안의 벽과 창문조차 낯설게 만들었다. 문학은, 이토록 깊은 몰입 끝에, 언어로 짜인 세계를 읽는 이의 의식 속에 스스로 구축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예술이다. 영화는 어떤가? 공간예술인 동시에 시간예술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영화는 몰입과 감정이입을 위해 편집과 음악 등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주인공이 겪는 아픔은 눈물방울의 클로즈업으로,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처연한 바이올린 소리로 우리에게 주입된다. 얼핏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게 하는 강력한 매체로 보이지만, 그러나 이 공감은 순간적/피상적이고, 고통을 겪는 타자를 철저히 대상화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카메라의 앞에 선 피사체와 뒤에 선 촬영의 주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아무리 몰입되어도 이 보이지 않는 선을 절대로 넘을 수 없다. 이 선은 화면 속 세계를 심리적/물리적으로 관객이 위치한 공간과는 다른 차원으로 완벽하게 분리해낸다. 섹스와 폭력은 물론,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라는 장르가 생길 정도로, 2D 영상매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하고 공공연하게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삼게 되었다. 그 선 덕분이다. 더 큰 문제는 힘의 역학이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실사(實寫, live action) 이미지 제작의 특성상, 전통적으로 카메라의 뒤에는 권력을 가진 자가 있어 왔고 카메라 앞에 서는 피사체는 그 권력에 의해 대상화되어 왔다. 식민 지배국, 제1세계의 시민, 남성, 자본을 가진 자는 카메라의 뒤에서 이미지를 통제하는 힘과 발언권을 갖고, 식민 피지배국, 제3세계의 빈민, 여성, 자본을 갖지 못한 자는 카메라의 앞에서 피사체로 전락하여 목소리를 잃는다. 결과적으로 이 보이지 않는 선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한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비교되는 전무후무한 권력을 주었다. 우리가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피사체의 목소리는, 실상 카메라 뒤에 선 권력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이, 우리는 실은 타인의 고통을 착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상현실에서는 이 공식들이 교란된다. 카메라의 앞과 뒤를 구분 짓는 그 선이 와해 되기 때문이다. 프레임으로 제한된 세계를 그 세계 밖에서 관망할 수 있는 평면 영화와 달리, 360도 터진 가상현실의 공간은 관객이 그 세계 안에 들어가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자발적인 유배 가 장소적 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주1 그 세계 안에 내 자신이 던져진다는 것만으로도 2D 평면 영화의 근본적인 심리적 기제인 ‘관음’이 작동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유배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시선의 주체(관객)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몸을 잃는다. *주2 시선은 성성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대처할 물리적 몸이 사라진다는 것은, 당황스럽다 못해 악몽에 가위를 눌리는 것 같은 공포스러운 경험이다. <소요산>(좌)과 <아메리칸 타운>(우) 중 이렇게 주권(agency)과 권력을 잃고 상처 입기 쉬워진(vulnerable) 관객 앞에, 고통받는 타자의 모습은 전혀 다른 차원의 울림을 갖는다. 이는 대상화된 타자의 고통에 대한 반응과는 사뭇 다른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밥상머리 텔레비전 속 평면화면에 등장한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은 이미 식상해진 이미지일지 모른다. 그러나 VR 기어를 쓰고 북극해의 빙산 위에 선 내 앞에, 해빙으로 작아진 빙산에 필사적으로 올라타려 애쓰는 북극곰이 있다면, 과연 그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어차피 내 눈앞의 세계가 실재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유난스러울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뇌의 입장에서 보자면 눈앞의 세계가 실재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시신경을 통해 접수된 정보는 실재/가상을 떠나 두뇌를 자극하는 똑같은 전기신호일 뿐이다.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들과 사물들이 실재가 아님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어도, 그 세계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감성(affect)은 우리의 심리를 뒤흔든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이렇게 관객은 몸(physical agency)을 잃고 영상 속에 등장하는 피사체와 같은 차원에 서게 된다. 이는 피사체의 대상화, 타자화를 극복한 새로운 공감기제(empathy-schema)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촬영 주체와 피사체, 즉 관객과 영화 속 대상이 동일한 차원에 존재하게 되는 가상현실 매체의 속성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1992년, 주한미군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한 기지촌 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영화 이상의 매체가 필요했다. 그녀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 대상화된 피해자를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착취할 수 있는 매체는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두천의 쪽방에서 피를 흘리며 수 시간에 걸쳐 죽어간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 감히 입 밖으로 말해질 수 없는 그 처참한 죽음과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1992년의 그날을 잊힌 역사 속 한 문장이 아니라,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간 관객에 의해 매번 새롭게 살아나는 현재의 사건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질문들은 궁극의 답을 찾지 못해 머릿속을 맴돌며 < 동두천 >(2017) *주3 을 완성하게 했고, 이후 8년간 3부작을 VR로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두천>, <소요산>, <아메리칸 타운> 포스터 많은 평론가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두고 역사의 은유와 상징, 혹은 화자로 등장하는 유령에 대해 분석해왔다. 일면 타당한 분석이다. 하지만 이 3부작의 진짜 핵심은, 비극이 자행된 공간에서 화자로서의 유령을 ‘보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관객, 곧 우리 자신이 몸을 잃은 시점(視點, point of view), 다시 말해 유령이 ‘되는’ 데 있다. 이는 오직 VR 매체를 통해 가능한 존재론적 유배를 통해 실현된다. 관객이 자신의 존재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동두천>에서, 처음 관객은 무고한 방관자로서 기지촌의 풍경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야의 언저리를 스치는 한 여성의 존재를 느낀다. 지나가는 성 노동자, 미군, 행인들과는 달리 어쩐지 시선을 끄는 그녀를, 관객은 점차 눈으로 좇게 된다. 그러나 발소리만 남긴 채 그녀는 좀처럼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좁디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내 그녀가 관객을 향해 걸어온다. 드디어 그녀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가 들 찰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없는 그 좁은 골목에서, 그녀는 관객을 향해 직진해온다. 관객은 자신의 몸이 있어야 할 자리를 그녀가 그대로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을 경험한다. 그녀가 유령이라면, 관객 또한 이미 유령이 된 것이다. <동두천> 중 미군 ‘위안부’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 소요산 >(2021) *주4 에서는 피사체가 관객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관객은 더 나아가, 피사체인 그녀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몸, 곧 성대가 된다. 낙검자 수용소 곳곳을 거닐며 감금되었던 여성들의 일상을 따라가던 관객은, 어느새 그녀가 짧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 뛰어내린 옥상 끝에 선다. 그녀의 몸도, 나의 몸도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가쁜 숨소리는 내 옆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두 귀 사이에서 울린다. 그녀의 숨소리가 멈추고 옥상에서 보이는 산과 하늘에 서서히 밤이 내린다. 수용소의 복도에는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흐느낌은 점차 통곡과 오열로 바뀌고, 관객은 또 한 번 깨닫는다. 그 울음소리가 내 몸 밖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두 귀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소요산> 중 관객과 피사체가 동일한 차원에 위치하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피사체는 더 이상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관람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사체가 관객을 바라보는 역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 < 아메리칸 타운 >(2023) *주5 에서는 관객(보는 자)과 피사체(보이는 자)의 역학관계가 뒤바뀌는 경험을 거울이라는 기호(記號, signifier)를 통해 제시한다. 군산 미 공군기지 주변, 주식회사 형식으로 설립된 기지촌 ‘아메리칸 타운’ 곳곳에는 이 공간의 특수성을 설명하듯, 실내 어디든 시선이 닿는 곳마다 거울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거울 속, 마땅히 내가 비쳐야 할 자리에 정작 ‘나’는 없다. 밤이 내리고, 그녀의 기척이 과거 타운의 번성했던 소리와 함께 되살아난다. 이윽고 거울 속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녀가 대신 등장한다. 거울 속 그녀는 미군 위안부 여성으로서 하룻밤의 일과를 담담히 수행하고 있다. 고단한 밤이 끝나고, 햇살이 비치는 마당으로 나오는 여인. 관객은 이제 빨래를 걷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빨래를 걷던 여인이 관객을 알아본다. 관객에게 다가온 여인이 마침내 말을 건넨다. 피사체가 관객을 알아보고 말을 거는 이 순간, 관객은 존재의 도치(倒置, inversion), 궁극의 유배를 경험한다. <아메리칸 타운> 중 2D 영화가 갖는 넘을 수 없는 한계, 즉 대상화의 문제는 이렇게 가상현실이라는 매체 안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미학적/상징적으로나마 답을 얻는다. 이렇게 보면, 가상현실 영화에서 관람(viewing) 행위를 ‘체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몸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타자의 고통을 ‘몸소’ 체험(體驗)하게 된다는 역설. 신체성(physicality)을 포기하고 유령(幽靈)—즉, 실체 없는 영혼—이 된 관객은, 더 이상 편안하고 익숙했던 자신의 세계에 머무를 수 없다. 관객은 유배된다. 그러나 일단 자아의 물리적 경계인 몸을 잃고 나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사물과 세계의 ‘---되기(becoming)’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몸을 잃고, 오로지 시선과 의식만 남은 가상의 세계 안에서, 나는 당신이, 풀이, 나무가, 고양이가, 바위가, 파도가, 지구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해빙으로 작아진 빙산 위에 위태롭게 선 북극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장소적 유배), 심지어 내가 그 북극곰이 된다면(존재론적 유배)? 주인을 잃고 눈폭풍에 홀로 갇힌 작은 새를 구하러 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화자가 나라면? 새를 포기할 수 없어 눈보라를 헤치고 걷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한다면? 아니, 춥고 어두운 새장에 갇혀 그녀가 구하러 오는 줄도 모르고 차갑게 식어가는 작은 새가 바로 ‘나’라면? 이렇게 내장 깊숙이 파고드는(visceral) 강렬한 감각으로, VR 매체는 타자의 고통을 존재의 유배로 ‘체험’하게 한다. *주6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연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상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VR 기어를 벗고 돌아온 실재의 세계다. 가상의 공간에서 당신은 그들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듣고, 보고, 느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어를 벗은 당신에게는 목소리가, 몸이 있다. 이제 당신이 나설 차례다. *** 주1. VR 실사(實寫, live action) 영화가 평면 영상물과 달리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360도 전체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의도가 배제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드넓은 세계 속에 VR 카메라로 특정 장소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연출자의 명확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사실, VR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활용하는 모든 매체에서 ‘중립적 시선’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Heisenberg Uncertainty Principle)처럼, 관찰자와 대상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완벽히 중립적이고 간섭 없는 관찰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관찰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세계는 이미 관찰자의 개입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주2. 본고에서 논하는 VR 매체의 특성은 실사 촬영 기반의 3D 360 영화적 VR 환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사(實寫, live action) 가상현실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위치가 곧 관객의 시점(point of view)이 되며, 360도로 펼쳐진 세계의 중심이 된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3D 360 영화적 가상현실 공간 안에서 관객에게 남는 것은 시선뿐이다. 일부 작품에서 관객에게 아바타 형태로 몸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그 아바타의 행동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주3. 동두천 , 360 3D 시네마틱 VR, 12분, 2017 주4. 소요산 , 360 3D 시네마틱 VR, 12분, 2021 주5. 아메리칸 타운 , 360 3D 시네마틱 VR, 16분, 2023 주6. 모든 미디어는 가치 중립적이며, 가상현실 매체 또한 마찬가지다. 가상현실이라는 매체 자체가 본질적으로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인류애를 증폭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VR 원년’이라 불리던 2016년, 가상현실 매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들 대부분은 공포와 폭력을 피학적 방식으로 변주하는 데 집중했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를 체험하거나, 납치·감금되어 의자에 묶인 채 가해자와 마주하는 설정의 콘텐츠들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품 역시 타자를 향한 폭력과 성을 관음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 피학적 서사라는 사실이다. 시선만 남은 관객은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능동적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수동적 피해자 혹은 관찰자로 설정되는 것이 이 매체에 더 적합하다. 이런 관객의 위치성은 실사 다큐멘터리 영역에서는 윤리적 미덕으로 환영받았지만, 오락성과 능동적 서사 전개를 중시하는 기존 영화산업에서는 상업적 활용의 한계로 작용했다. 이는 건전한 자본의 유입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가상현실 매체의 대중화에 제약을 걸었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사진 - " 동두천 ", " 소요산 ", " 아메리칸 타운 ", Gina Kim - 필자 제공
1978년은 모든 것이 나쁜 상태였다. 이미 3년 전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된 다음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다. 무언가 위협적인 사건이 계속 벌어졌다. 그 해가 시작되었을 때 영화배우 최은희 가 북한에 납치되었다, 고 발표했다. 3월 1일에 윤보선 전(前)대통령을 비롯하여 민주인사들이 ‘3.1 민주선언’을 했지만 그 해 가을 10월에 정부는 휴전선에서 세 번째 남침 땅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선거에서 박정희는 삼선 대통령이 되었다.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그때 한국 ‘상업’영화 장르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하이틴 청춘영화뿐이었다. 그리고 새마을영화, 반공영화, 문예영화라는 이름의 정책영화들이 외국영화 스크린 쿼터를 얻기 위해 그저 의무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검열은 무자비하게 이루어졌다. 유현목 은 (아마도 그의 마지막 걸작이라고 해야 할) < 장마 >를 완성했지만 거의 아무도 보지 않았다. 김기영 은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찍은 다음 일 년 동안 개봉을 시키지 못했다. 이 영화를 시네필들이 발견하기까지는 박찬욱 의 열렬한 지지를 기다려야만 했다. 김수용 은 마치 실험영화를 만들기라도 하듯 대사가 없는 영화 < 웃음소리 >를 찍었다. 하지만 비평은 미처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침묵을 지켰다. 영화인들을 향해 “피고(被告)”라고 말하길 즐기던 하길종 은 완전히 항복하듯이 물러나서 < 병태와 영자, 속 바보들의 행진 >을 거의 자포자기하듯이 찍은 다음 그 이듬 해 2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임권택 은 그 안에서 묵묵히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그 해에 네 편의 영화를 찍었다. 임권택을 임권택으로 만든 < 족보 >를 만든 해였다. 그런데 그 해에 임권택의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이한 영화 두 편을 더 찍었다. <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와 < 가깝고도 먼 길 >.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두 편의 영화가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두 편 모두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전에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었던 전쟁영화 < 울지 않으리 >가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 희생당한 아이들, 여기서 반격하기라도 하듯 환상의 서사가 활동을 시작한다. 아이들이 총을 들고 어른들을 대신해서 전쟁을 한다. 상징적인 비유들. 아이러니의 전복. 나는 이미 이 영화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두 편은 완전히 다른 특별한 순간을 담고 있다. 임권택 은 주제에 대한 어떤 탐구나 소재에 대한 어떤 관심도 없이 여기서 오로지 영화가 이런 경우에도 견딜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만 같다. 이런 경우. 영화는 너무 쉽게 관습에 복종해왔다. 이 예술의 문법은 할리우드 고전영화들의 표본에서 끌어내고 거기서 체계를 만들었다. 문법이 만들어내는 경우. 그것을 따라가면서 만들어진 영화들. 임권택은 그것을 ( 정창화 를 경유하여) 경험으로 배운 다음 그것이 그의 영화 안에서 관습이 되었을 때 그 영화들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미 < 왕십리 >에서부터 눈에 보이게 임권택의 영화는 느려지고 있었다. 거기서 멈춰야하는데 그냥 지켜보았고, 주고 받아야하는데 두 사람을 하나의 화면에 놓아두었으며, 이따금 이야기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아무 상관도 없는 풍경 안에 놓인 그 사람을 멀리서 쳐다보았다. 영화가 무언가를 느껴보는 시간. 임권택은 제제나 소재가 아니라 영화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마, 아마 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다. 영화라는 문제. 영화 안에서의 질문. 종종 이 질문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거기서 어떤 대답도 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에서 그 대답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각자의 결론이 있을 뿐이다. 그때 결론은 힘의 방법을 지시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힘은 거기에 있어요. 아무도 영화에서의 힘을 정의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그 힘은 이제까지의 관습을 부숴버릴 것이다. 예술에서 형식의 문제는 그 예술의 존재의 문제이다. 여기서 그 예술의 위계질서의 자리를 놓고 다투기 시작할 것이다. 예술의 능력이 형식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임권택은 판단의 순간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때 판단은 반성이라고 살짝 말을 바꾸어도 괜찮을 것이다. 무엇을 더 음미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전형적인 세계. 자유로운 활동. 이때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영화 자체가 부서질 수도 있다. 임권택은 자신이 위태로운 자리에 왔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한 번 더 반복하듯이 말하겠다. 이런 경우에도 견딜 수 있을까. 아마도 <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를 각자는 자기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영화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자본과 정치, 예술.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영화제작자와 검열관과 영화감독. 동아수출공사는 이 영화를 (처음에는 ‘위기 영화(Crisis film)이라고 정의 내려진 다음 하위 자르로 재(再)명명된) 재난영화(Disaster Movie)로 기획했(던 것 같)다. 할리우드는 1973년 < 포세이돈 어드벤처 >의 성공으로 일련의 재난영화들이 만들어졌고 < 타워링 >에서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스필버그의 < 죠스 >도 일련의 재난영화 장르로 기획된 영화이다. 예기치 않은 지진으로 발생한 해양해일이 제야의 파티를 벌이는 거대한 관광유람선을 덮친다. 상하가 뒤집힌 배에서 처음 만난 생면부지의 승객들은 시시각각 차오르는 바닷물을 피해 미로 같은 구조물 속에서 위로,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동아수출공사는 이 영화를 수입한 회사이다. 물론 그때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재난영화 규모의 영화를 제작할 수 없었다.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는 아동 재난영화로 기획되었다. 이 영화를 본 검열관은 먼저 ‘아동’ 주인공 영화라는 사실에 안심했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씬에서 중공(그때는 중국을 ‘中共’이라고 불렀다. 물론 ‘中華人民共和國’의 약자이지만 사람들은 ‘中國共産黨’의 약자처럼 읽었다) 화물선에 구출된 주인공 김한 어린이에게 ‘중공’ 선원들이 북한으로 보내줄까, 라는 질문에 완강하게 저항하며 대한민국, 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검열관들에게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1968년 12월 1일 강원도에 침투했던 무장공비들이 마주친 삼척 시골마을의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자 그 일가 전체를 살해한 사건을 연상시켰을 것이다. 이승복 일가 참상은 박정희 정권 내내 반공(反共)교육과 홍보의 이미지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검열관에게는 아동 교육홍보 반공영화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든다는 문제와 만나게 되면 완전히 다른 질문이 된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거대한 배가 뒤집히는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아니며 엄청난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피노키오>가 아니다. 혹은 하이 테크한 스펙터클 < 라이프 오브 파이 >가 아니다. 영화라는 시스템이 허락하는 조건과 상황. 영화에서 이미지의 생명은 화폐, 라고 고다르가 말했을 때 그 말은 고통스러운 전언이다. 영화에서 어떤 풍경이 있을 때, 거기에 어떤 사물이 나타날 때, 그 사물이 사건이 될 때, 그 사건 안으로 주인공이 들어가야 할 때, 이 모든 관계는 화폐의 연쇄고리이다. 종종 우리들은 이 문제를 지나치게 영화에서 하위 체계에 놓아둔다. 시나리오의 많은 장면들은 쓰기도 전에 삭제된다. 찍을 수 없는 장면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문학과 영화의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시스템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풍경은 화폐의 권리이며 결정에 따라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 설명은 둘 사이의 등가성을 인정하고 교환 가치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임권택이 찍어야하는 풍경. 진행해야 하는 사건. 그냥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에 열두 살 소년 김한 어린이가 표류하는 이야기가 그 전부이다. 달리 가족과 연락할 도구도 없으며, 구조를 요청할만한 방법도 없다. 가지고 있던 트랜지스터라디오는 김한 어린이가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다음 (한국방송은 더 이상 잡히지 않고 주파수에는 중국 방송만이 잡힌다) 배터리가 방전된다. 이 소년이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구조를 기다리며 버티는 것 말고는 달리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무언가를 하기에는 배가 너무 좁다. 주변의 풍경은 바다가 전부이다. 텅 빈 미장센.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는 <캐스트 어웨이>가 아니다. 게다가 소년을 구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구조대는 허락할 수 있는 제작비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1978년은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에 도착하기 전이다. 그러므로 여기엔 별다른 사건이 있을 수 없다. 임권택은 그걸 끌어안고 바다로 나아갔다. 물론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에서 서사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돛단배 한 척에 별다른 엔진도 없이 바다로 떠밀려 내려간 다음 라디오 방송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전 국민적인 구조 대상이 되었는데도 레이더망과 헬리콥터 수색을 피해서 조류의 흐름을 따라 저 멀리 공해상으로까지 떠밀려갔다는 진행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게다가 동해 벌섬 근처에서 실종되었다면 동해상에서 떠돌았을 텐데 그 배를 왜 ‘중공’ 화물선이 구했는지도 잘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왜 이 영화의 설정을 서해로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때 한국은 대만과 수교를 맺고 ‘중공’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은 것은 1992년이다. 그런데 아무런 외교적 분쟁 없이 김한 어린이는 (아마도) 인도적 차원에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환기하지만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 족보 >과 같은 해에 찍은 영화이다. 그 이듬 해 임권택은 < 깃발 없는 기수 >와 < 짝코 >를 연달아 연출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임권택의 관심은 서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는 영화에서 서사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거의 무의미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의 이야기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의도적으로 영화의 순서를 무시하고 서사의 순서대로 이야기하겠다. 평화롭게 야구를 하며 놀고 있는 아이들. 그때 공이 멀리 날아가고 김한은 그 공을 주우려다가 나무 위의 새장을 발견한다. 김한은 나무에 올라가 새장에서 새알을 꺼내려다가 새장을 나무에서 떨어트린다. 그때 동네 할아버지가 와서 야단치며 그 새장을 다시 나무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그만 나무에서 떨어진다. 가난한 할아버지는 응급치료만 받고 병원을 떠나자 걱정이 된 아이들은 치료비를 모으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시작이다. (하지만 중간 과정은 김한 어린이가 배에서 표류할 때 플래시백으로 다시 진행된다) 궁리하던 김한은 용돈을 받기 위해 해안가 마을에서 큰 배의 선주인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거기서 알고 지내던 칠성이형이 돛단배로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걸 보고 김한은 호기심에 몰래 그 배를 훔쳐 타고 바다로 간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고 지루해진 김한은 잠깐 낮잠을 자다가 깨어나서 배가 바다 한 복판으로 흘러왔음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가 영화가 시작하고 20분이다. 그런 다음 1시간 10분이 더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달리 설명할 내용이 없다. 설명할 드라마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갑자기 배가 나타난다. 누군가 구조 요청을 보낸 것도 아니고 또 무언가 단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우연히 바다 한 복판에서 배를 만난다. 표류하던 김한은 ‘중공’ 화물선에 구조되고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반 친구들을 만난다. 영화가 더 이상 진행해야 할 사건이 없는데도 거기 영화가 있을 때 비로소 영화적, 이라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체자레 자바티니의 정식화 때문이다. 그런 다음 각자는 각자의 방법으로 이 정식을 밀고 나아갔다. 임권택은 1953년에 자바티니가 주장한 ‘영화에 관한 몇 가지 사유’를 읽지 못했다. (이 글은 지금도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임권택이 영화에서 이론이 정식화시켜놓은 자리를 우회해서 자기 자신의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 같은 자리에 도착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았다. 결국에는 동일한 결론. 예기치 않게 여기서 임권택은 영화에서 잉여의 시간들이라는 문제와 만나게 되었다. 임권택은 이전에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이 영화가 섬세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여기에는 섬세한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에서 시련은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사건이 아니라 잉여의 시간들을 견디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이 영화를 무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없었다면 < 만다라 >는 없었을 것이다. 잉여의 시간들로 이어지는 만행 길.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왕십리>에서부터, 그것도 전체가 아니라 아마도 절반으로 나눈 후반부에서, 임권택의 영화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드라마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들 사이의 관계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순간적이긴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는 그걸 <둘째 어머니>에서도 보았다. <만다라>(1981) 다소 장황하게 이 문제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임권택의 영화 전체 안에서 이제까지 잘 설명되지 않은 상태의 형식이 있다. 처음 볼 때는 통상적인 설명에 따라 이 상태를 나태한 형식으로만 받아들였다. 내 생각을 바꾼 건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와 < 가깝고도 먼 길 >이었다. 하지만 두 영화는 동일한 문제의식 위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둘을 분리해서 설명할 것이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자. 임권택은 드라마가 전부라고 결론을 내린 다음 영화는 거기에 복종해야한다는 믿음으로 장치들을 동원하고 그 안에서 시스템을 만들면서 시작했다. < 망부석 >은 이미 그가 이 시스템의 장인이 되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기이한 방식으로 모더니즘 영화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배우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서 리얼리즘이라는 질문을 배웠다. 영화에서 리얼리즘은 문학과 다른 경로를 밟아 나아갔다. 귀도 아리스토타르코와 앙드레 바쟁의 논쟁. 사회 안에서의 영화의 리얼리즘이라는 정치적 규정과 영화 안에서 세계의 존재의 형식에 대한 반론. 환상 없는 세상 앞에서 영화는 쇼트가 세계라는 시간 속에 놓여야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영화는 무엇을 느껴보는가. 대답이 기괴하게도 빈곤의 실체가 아니라 시간의 형식이었다. < 오발탄 >이 리얼리즘 영화이자 이미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따라가고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거리에서 무작정 배회하는 실직자들. 그저 거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쇼트들. <오발탄>은 < 자전거 도둑 >이 아니라 < 흔들리는 대지 >이다. 그런 다음 < 만추 >와 만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펜스. 단지 그것뿐인 쇼트들, 아마도, 아마도 안토니오니의 풍경. 거기서 1974년 세대, 이장호 와 하길종 , 김호선 은 각자의 방법을 배웠다. < 별들의 고향 >, < 바보들의 행진 >, < 영자의 전성시대 >. 물론 거기서만 배운 것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하게 잡종 교배된 역사가 있다. 그때는 아무런 설명도 알지 못했다. 1974년 세대는 자신들이 왜 그렇게 아메리칸 뉴 시네마가 친숙한 지 스스로 설명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단지 변방의 영화 문화에 속하던 그들이 동시대 ‘우드스탁 제너레이션’이 된다는 흥분만이 거기에 있었다. 네오리얼리즘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누벨바그를 경유하여 아메리칸 뉴 시네마로 다가온 할리우드가 그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이미 그들 세대가 몰락한 다음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임권택은 그들 곁에서 멀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성립이라는 문제. 저렇게 진행해도 괜찮은가. 새로운 시청각 기호들의 배치. 저렇게 촬영해도 괜찮은가. 그것들이 창조해내는 영화적 상황, 저렇게 편집해도 괜찮은가.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감각. 이때 임권택은 그 상황에 적응해야 할 필요는 느꼈(을 것이)다. 물론 한 번에 어떤 단절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임권택의 영화에서 종종 나태하다고 비난한 장면들, 사실은 그 순간에 임권택은 그 장면이 사건 안에서 네 것이거나 내 것인지 결정할 수 없는 어떤 개입이 가능한 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실험, 이라는 말을 피했다. 임권택은 영화에서 실험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시험과 실험은 임권택의 영화에서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실험이 그 예술의 존재론에 질문을 던진다면 시험은 그 예술의 능력에 대한 반성적 판단을 요구할 것이다. 임권택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무모한 드라마를 끌어안지 못했을 것이다. 무모한 드라마? 무엇보다도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자꾸만 균형이 깨져버리고 방향을 상실한다는 인상을 안겨준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표류. 여기서 임권택은 사실상 드라마를 어떻게 해서든지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해야만 개입의 여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엇이? 하나의 위기. 드라마의 위기.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영화의 어디쯤 온 것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전에는 임권택의 영화에서 기승전결은 하나의 리듬이었으며, 그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아름답게 다루는데 거의 모든 영화적 순간들이 바쳐졌다. 여기서는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의 리듬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거의 아무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감정의 어느 지점에 온 것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가장 이상한 것은 한 쪽은 표류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탐색을 하고 있는데 끝내 둘 사이에서 어떤 끈도 발견하지 못한 채 김한 어린이는 완전히 바깥으로 빠져나간 버린 다음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둘 사이에는 아무 드라마도 없다. 물론 임권택은 돛단배를 탄 김한 어린이를 하나의 시퀀스로 놓은 다음 육지에서 걱정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군부대. 돛단배의 주인인 칠성이와 그의 아버지, 분주히 그들 사이를 오가는 월간 신여성 기자 혜미를 또 다른 시퀀스로 놓고 그 둘 사이를 교차편집 한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사라진 효과. 그 둘은 각자 활동할 뿐이다. 이때 임권택은 이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어떤 객관적인 자리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얻으려면 영화 바깥으로 나와서 무능력하게 그저 이쪽과 저쪽을 쳐다보는 도리밖에 없다. 불균질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두 개의 시퀀스. 그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둘 사이에서 의도적인 어떤 결과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둘 사이의 차이는 하나는 바다 위에서 진행되고 다른 하나는 육지에 머물러 있는 것뿐이다. 적어도 이 차이를 임권택은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다. 김한 어린이를 제외하고 누구도 바다 위로 나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김한 어린이를 직접 탐색하기 위해 배를 빌리기까지 하지만 그런 다음 아버지는 배와 함께 영화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김한 어린이가 귀환할 때 공항에서 다시 나타난다) 오직 유일한 예외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지친 김한 어린이가 환상을 볼 때 저 멀리서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구조선을 타고 나타나는 장면뿐이다. 그런데 마치 누구도 바다 위에 올 수 없다는 걸 환기시키기라도 하듯 그들은 저 멀리서 나타난 다음 갑자기 김한 어린이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 마치 그들끼리 바다에 관광을 나오기라도 한 듯,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김한 어린이에게서 고개를 돌린 다음 다른 곳을 보면서 그들끼리 즐겁게 웃는다. 이 장면은 처음부터 환상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이 씬은 김한 어린이가 바다 저쪽을 바라보자 화면은 초점이 맞지 않은 상태(out_of_focus)로 시작한다. 어쩌면 원래의 목표는 김한 어린이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헛것이 보일만큼 지쳤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보조적인 설명 씬처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주관적인 환상 속에서 김한 어린이가 구조를 받는 대신 버림을 받을 때 이상할 정도로 보는 쪽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왜냐하면 문득 여기서 이 영화가 비극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가깝고도 먼 길>에서 벌어지고 만다) 이 공포에 질린 환상은 영화 전체에서 마치 오점처럼 작동한다. 오점? 그렇다. 자칫하면 영화에서 오점은 의미의 네트워크 전체에서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권택은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설명할 때마다 거의 반복하듯이 같은 말을 했다. “지엽적인 재미를 따라가다가는 영화 전체를 망치는 거예요” 이 씬이 영화에서 무슨 특별한 장치도 아니고 이야기의 전환을 이루는 것도 아니며 김한 어린이에게 최소의 위기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위협적으로 거기에 있다. 임권택은 여기서 드라마가 수순을 밟아나가는 방법을 중단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그 장면 앞에서 예정된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이제 임권택의 영화에서 진부한 것으로 가치를 잃어버리는 결정적인 순간과 마주하고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거의 집중력이 없어 보이는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상투적인 실패작의 전형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권택은 이 영화를 반대편의 극단에 가져다놓고 있는 중이다. 나는 좀 더 이 장면에 머무르고 싶다. 임권택은 아주 가끔 이상한 환상, 혹은 꿈을 갑자기 사사 안에 밀어 넣을 때가 있다. 그게 문제를 일으키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 게다가 서사에서 오점일 뿐만 아니라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이 전 해에 연출한 < 옥례기 >에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꿈 장면이 나온다. 옥례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중매 시집을 간다. 그리고 첫 날 밤 이 남자가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인데다가 정신박약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 이 표현이 ‘멸시’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의 언어로 서술하는 중이다) 옥례는 꿈에서 이 동네를 도망치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잡으러 몰려온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서사는 사실상 정반대이다. 옥례는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내조한다. 어떤 의심도 없이 내내 옥례는 희생을 받아들인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이때 이 환상 혹은 꿈은 단지 그것이 현실인가 아닌가, 혹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라는 단순한 진위 판단의 여부를 슬그머니 넘어선다. 여기서 장황한 정신분석의 개념을 전개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점은 서사에 끼어든 꿈, 혹은 환상은 단순하게 서사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종종 전체를 전복시킬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한 어린이는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안도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부모님과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제까지 말썽을 부리면서 개구쟁이로 생활한 자기를 이 기회를 빌려 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실은 이 꿈이 말하는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금 웃는 것은 자기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외면하면서 기쁨에 차서 웃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정은 단지 짓궂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김한 어린이는 구조된 다음 표류하던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공통점은 여전히 표류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꿈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동일한 상태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의 요구이다. 못 찾는 것인가, 버림받은 것인가. 사실로부터 해석에로 옮겨갈 때 영화는 드라마를 고정점으로부터 풀어헤쳐 놓게 된다. 서사 안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교환과 교정, 그 사이에 놓인 선택의 불확정성. <옥례기>(1977) 그렇다면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왜 임권택에게 드라마는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단지 그걸 진부함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할리우드의 위대한 고전영화들은 드라마 안에서도 결코 진부한 공식 안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리고 임권택은 그걸 감탄을 하면서 바라보았다. 그게 너무나도 놀라워서 연출부 시절에는 그의 동료들과 프린트를 카피한 다음 프레임 단위로 그걸 경이롭게 지켜보았던 경험이 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그 대답의 일부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여기까지 우리는 그 한 척의 작은 배만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바다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를 진행하면서 임권택은 영화 앞에서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는 세계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건 모든 영화의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걸 피하고 싶으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 앞에서 스튜디오는 얼마나 조잡한가. 종종 세계는 시나리오를 때려 부셨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멈추지 않는 비. 정반대로 아무리 기다려도 내리지 않는 비. 무한정 기다릴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시스템의 영화라면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임권택은 속수무책인 바다로 영화를 가져다 놓았다. 평면의 공간. 미장센 제로의 장소. 단 한 명의 등장인물, 열 두 살의 어린 아이. 아주 작은 배. 영화는 여기서 다가가는 것과 멀리 물러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거기서는 레일을 깔아놓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크레인을 세워서 상하로 움직일 수도 없다. 단조로운 망원렌즈.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힘겨운 자세로 바라보는 클로즈업의 단편들. 나는 어떤 장면의 구도에서 이석기가 무거운 35미리 카메라를 들고 그 작은 배 위에서 위태롭게 찍을 수밖에 없었을 자세를 떠올리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보다 삼년 전인 1975년,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스필버그는 <죠스>를 찍은 다음 두 번 다시 바다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상어와의 바다에서의 쫓고 쫓기는 추적극을 보러가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할 수 있는 한 바다에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계속해서 해변에서만 머물다가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 11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바다로 나간다. 임권택은 어촌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로 먼저 나간다. 아니, 나가버린다, 라고 말하고 싶다. 바다에는 김한 어린이가 대결해야 할 대상이 없다. 구태여 그것이 있다면 바다 위에서의 시간이다. 임권택이 바다로 간 것은 거기서 바다를 음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기서 마주하는 것은 바다가 주는 공포이다. 이때 그것은 드라마로서 주어진 공포라는 장치가 아니라 영화 앞에 마주하고 있는 바다가 주는 공포이다. 그걸 영화가 견뎌볼 수 있을까. 세 개의 질문, 첫 번째 질문. 그걸 견뎌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대부분 이 영화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들은 이 대답에서 멈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망스럽다. 임권택은 아직은 드라마의 장치 안에 머물면서 교차편집을 하면서 여전히 망설인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 그걸 견뎌야 한다면 영화는 어떻게 될까. 여기서 임권택은 바다가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영화가 감당해야하는 순간들과 마주한다. 그 해에 임권택은 <족보>를 찍으면서 설진영 노인이 일렬로 늘어선 커다란 포플러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 사이를 걸어오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위대한 장면에 대해서 나는 이미 설명했다) 여기는 도호 스튜디오가 아니다. 이 바람은 <요진보>의 거대한 선풍기 바람이 아니다. 그저 그 시간에 부는 바람. 영화가 그때 거기에 있다는 문제. 지금 바다는 화면 앞에서 명백하게 과잉하고 있다. 그러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만일 영화가 드라마를 포기하고 그 과잉에 몰두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세 번째 질문이 나왔을 것이다. 그걸 견뎌야 한다면 영화는 무엇을 찍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임권택은 여기서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이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에 기록되어 있다. 그때 바다는 어떤 은유도 상징도 아니다. 그런데 그 공포가 종종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 말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나는 바다, 라고 써야 할 자리에 공포, 라고 말했다. 방치될 수밖에 없는 환경. 바다는 그저 거기에 있다. 마치 재난과도 같은 그것. 이제까지는 그냥 놓아두면 영화의 장치들을 닥치는 대로 망가트려버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것. 그런데 거기에 장치들을 대신하는 세계의 체험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을 임권택은 몇몇 순간에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그냥 내버려둔다. 영화에서 상실이란 없다. 하나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물러날 이유가 없어졌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영화에서 충분히 실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독도에서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를 찍으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임권택의 표정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 장면들이 증명하는 기이한 선물, 바다라는 영도(零度)를 깨달았을 때 그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