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 감독
- 유영의(대해스님)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황금알
1. 금정연의 문자를 씹었다. 종종 있는 일이다. 그는 문자를 보내고 나는 씹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멘션을 보내고 금정연이 씹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금이 간다거나 어색한 상황이 발생하진 않는다. 적어도 지난 금정연의 원고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지난 원고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했다. “(JD는) 여전히 답이 없다. 말풍선도…” 금정연이 나의 답장을 기다렸다니. 어떻게 임창정 얘기를 꺼내고도 내 답장을 기다릴 수가 있지? 임창정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내가 만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면 그건 오로지 임창정 탓이다. 한국 남자가 나오는 악몽을 꾼다면 그는 임창정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고 한국 남자가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는 <소주 한잔>일 것이며 한국 남자가 시비를 건다면 그는 17대1로 싸운 자신의 과거를 자랑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임창정이야말로 한국 영화의 부인된 무언가이며 아무리 외면해도 기어코 돌아오는 실재의 찌꺼기다. 우연히 홍대나 건대의 술집이나 거리(혹은 그와 유사한 모든 먹자골목)를 지나치기라도 하면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우리를 습격하지 않는가. 나는 왜 그의 바이브레이션만 들어도 식은땀이 날까.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이건 임창정이라는 배우이자 가수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라캉의 저 유명한 말을 생각해보라. “성적 관계 같은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임창정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임창정에 대해서 말해야한다. 2. 하지만 임창정에 대해 말하려면 윤제균에 대해 말해야한다고, 나는 소전서림에서 만난 문윤기에게 말했다. 윤제균이요? 윤기씨는 그런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듯 말했다. < 색즉시공 >(2002)이 개봉했을 때 그는 아마 초등학생이었으니 그럴수도 있다. 나는 윤기씨에게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트라우마가 내 입을 봉하고 성대를 틀어막았다. 게다가 임창정에 대해 말하려면 이병헌과 최민수와 류승룡과 김상진과 신재호/신동엽에 대해서도 말해야하지 않나. 이 이름들은 무엇이며 이렇게 목록화 되는 이유가 뭐냐고는 묻지 말길. 나는 그 세계가 궁금하지도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도 그 세계를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영화과에 입학한 이후 영화를 피해 이십여년을 도망다닌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니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영화가 턱밑까지 칼을 들이 밀었고 마감을 알리는 메일은 벌써 일주일 전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마감과 글쓰기의 고통 때문에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진심) 말해야할 때가 왔다는 의미이다. 3. 이쯤에서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유추의 방식으로 연결될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 루이 셰페르의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가 그것인데, 나는 이 책의 서문을 다음과 같이 편집한 후 적용할 것이다. 관객에게 영화는 무엇보다도 영화에 대한 분석이 제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으로 등장한다. 이야기가 이들 ‘괴물들’에게 역할(의미)을 부여하기 이전에, 이야기와 관계없이, ‘괴물들’은 그것이 나타나는 순간에 이미 무언가 알 수 없는 의미 자체로서 관객인 나에게 도래하는 것이었다. 스크린 위에 나타난 무언가는 바로 내 속에 도래하고 그곳에 들어와 일정한 장소를 점유한다. 내가 고찰하고 싶은 것은 영화와 함께 태어나 여전히 고착되어 있는 이상한 감정 – 이미지를 계속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남게 되는, 말하자면 부식토와 같은 물질적인 감정에 대해서이다. 이것이 영화와 개인의 삶의 어떤 표현되지 않는 부분 사이에 사적인 연결을 갖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내 삶의 가장 숨겨진 부분이며 내 삶에서 가장 굴종에 처해진 부분이기라도 하듯이, 침묵에 빠지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말하려 해도 실어증에 빠지고 만다. 우리는 영화화된 행위에 대한 상상적인 참여를 통해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스크린의 형식이나 존재에 우리를 투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삶 속에서 성장한다. 영화는 현실적인 어떤 것의 현실화 혹은 전용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인 것이란 잠정적으로 관객처럼 사는 어떤 것이다. 이미지와 경험적인 정동이 섞인 기억의 삶이다. 이것은 영화를 신체의 일부, 자신의 신체임에도 우리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부분처럼 사용하는 습관에 대한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장 루이 셰페르는 영화가 불러오는 시뮬레이션이 실제의 세계로부터 빌려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 시뮬레이션은 그 시뮬레이션의 모상인 영화보다 선행하는 것이며 계속해서 지속된다. 이 시뮬레이션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는 어떤 신체의 운명 속에서 욕망했던 것이다. 지젝은 사본의 사본인 예술이 직접적인 첫번째 층위인 사본-물질적 현실과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이데아 자체와 경쟁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물질적 대상을 복사할 때 사실상 복사되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제3의) 이데아라고 말이다. “플라톤이 예술의 위협에 그토록 당혹스럽게 반응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이데아는 곧 현실이 복사될 때 나타나는 그 무엇이다. 사본(현실)의 사본(영화)의 사본인 셰페르의 시물레이션은 바로 이와 유사한 매커니즘을 가진다. 그것은 영화로부터 복사되어나온 환영이지만 영화보다 선행하는 현실보다 선행하는 무언가로 구성되며 그러므로 현실은 곧 영화가 시뮬레이션 될 때 일어나는 그 무엇인가의 복사물이 된다. 이러한 매커니즘은 빙크스 볼링의 경우처럼 영화의 수준 따위는 따지지 않는다. 따지는 방법도 모르며 안다한들 그 기준은 기이한 전-의식적인 단계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괴물이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이 괴물이 괴물이 아닌 것처럼 군다는 사실이다. 4. 그러나 비천한 영화란 무엇일까. 정연씨를 통해, 마테리알의 오픈 스페이스를 통해 비천한 영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너무나 적절한 작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천한 영화는 디테일과 뉘앙스는 다르지만 유사한 형태로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해왔다. 보통은 길티 플레저라는 이름으로, 요즘 말로는 쿠소 영화, 언젠가는 시네마 지옥이라는 명명하에 우리를 울리고 웃기지 않았나. 하지만 여기에도 혼란의 여지는 있다. 에드 우드와 같은 유형의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는 망작 또는 괴작은 비천한 영화에 속할 수 있을까? 괴작과 망작을 한 묶음에 넣을 수 있을까? 유년의 기억을 차지하는 길티 플레저 영화들은 뻔하고 전형적이지만 망작은 아니지 않나? 이를테면 정연씨가 사랑하는 < 콘에어 >(1997)는 러닝 셔츠를 입고 턱걸이를 하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상상만해도 입안의 콜라가 뿜어져 나오지만, 생각보다 좋은(?) 영화 아닌가. 내가 초등학교 때 가장 사랑한 영화 는 < 록키 4 >(1987)였다. < 록키 1 >(1976)도 아니고 <록키 2>(1980)도 아닌, 4탄. 한 영화 잡지에서 <록키 4>를 최악의 시리즈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천하의 졸작으로 평가한 걸 본 이후 나는 어디서도 <록키 4>를 인생 영화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면 비천한 영화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범작 2) 망작 3) 괴작.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비천한 영화들이 기거하는 시네마 지옥 속에서 이 세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천한 영화 대부분은 개인의 기억에 속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이 의미를 (거의) 상실한다. 중요한 건 이 영화들을 사랑했다는 기억을 비천하게 만드는 사회와 나와 영화의 관계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진짜 비천한 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들 사이의 위계와 위상이, 비천함의 지정학이 행위자들을 비천하게 만든다. 어른이 된다는 것, 나아가 씨네필이 된다는 것은 이 비천함을 숨기거나 잊고 부정하는 것이다. 영화잡지의 리스트, 선생님들의 평론, 커뮤니티의 평가들이 우리를 그러한 길로 이끈다. 물론 다른 길도 있다. 리스트를 부정하고 선생님들의 뒤통수를 치고 커뮤니티를 혁신하려는 이들은 부인된 비천함 속에서, 사회가 어둠 속으로 쫓아낸 네트워크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고 비천함 그 자체의 미학화를 시도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명명들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극도의 섬세함과 정치적 현명함을 요구한다. 비천하되 너무 비천하지 않은 영화들로, 괴작이지만 망작은 아니고 범작이지만 윤리를 벗어나지 않고(아니면 아주 완전히 벗어났거나) 잊혀졌지만 스토리텔링 하기 좋은 영화를 선택할 것. 5. 하지만 내게 임창정은 비천한 영화도 시네마 지옥도 쿠소 영화도 아니다. 임창정은 현실에 뿌리내린 시뮬레이션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묻기도 했다. 왜 그렇게 임창정이 싫은건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임창정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건… 6.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하기로 한 <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1987) GV를 앞두고 금정연은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의 회고록 링크를 보냈다. 나는 스포츠서울 창간 편집국장이자 추리소설가인 이상우의 회고록 링크를 보냈다. 이태원과 이상우는 옛날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건달이자 영화제작자로 일세를 풍미했고 한 사람은 스포츠신문의 귀재이자 한국의 조르주 심농으로 알려져 있지만(안 알려져 있기도 하다) 두 사람은 한번도 함께 일을 하거나 마주치지 않았다. 최소한 회고록의 내용을 봤을 땐 그렇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정연씨와 내가 함께 한 GV의 픽션 속에서 잠깐이지만 마주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6.10 민주항쟁이 있고 한달 후쯤 개봉한 작품으로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관객 수는 약 28만명. 영화에 대해 할 얘기는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우리는 영화 보다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주로 했다. 청춘영화의 계보나 당시 영화계의 상황 같은 것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과거의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의 곤혹스러움이었다. 만약 과거의 영화가 동시대의 영화를 뛰어넘는 걸작이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과거의 영화가 역사의 과오를 되새기게 해주는 따위의 용도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과거의 작품이 현재의 시각에서 안이한 범작일 때 발생한다. 스탠리 카벨의 말처럼 우리는 “결코 그 당시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과거의 작품을 보고 이야기해야하는 걸까? 우리가 역사학자도 아닌데 말이다. 안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불가능한 태도다. 과거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아카이브와 네트워크를 경유한 너무 많은 과거가 현재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 범속한 과거들에 어떤 식으로건 응답 할 것을 요구받는다. 뭐라고 말할까? 그건 너무 비천하다고 무시하거나 그저 개인의 추억일 뿐이라고 뭉개고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7. 국문학자 권보드래는 기이할정도로 충격적이고 다층적인 3.1운동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직접성’과 ‘무매개성’을 동원한다. 파국과 유토피아가 함께 임박해 있다는 감각은 민중들의 시간성에 있어 직접성의 형식을 구성한다. 한편 무매개성은 문제가 좀 더 복잡하다. 3.1 운동은 일반적으로 기미독립선언서, 유관순 등으로 대표되어 왔다. 이러한 대표성에는 민족이나 진보라는 관념, 사회주의, 의회정치 등등이 매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3.1 운동의 면면을 살펴보면 현실은 다르게 작동했다. 교통도 통신도 미비하고 변변한 조직체도 없는 시절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운동에 참여하고 사건을 일으켰다. 권보드래는 묻는다 “인민은 대표되고 재현되어야만 하는가? 개별 그대로, 인민의 존재 그대로 사건의 동력이 될 수는 없는가?” “매개되지 않고 대표되지 않는 세계가 가능할까.” 이를 한국 영화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특정 사조나 흥행, 감독이나 작품 등으로 매개되지 않고 대표되지 않는 한국 영화의 역사가 가능할까. 영화가 실재의 찌꺼기처럼 존재하며 현실을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시뮬레이션이라면, 그것을 개별 그대로의 동력으로, 사건으로 구조화할 순 없을까. 헤겔의 유명한 문구가 있다. “세계의 역사는 세계의 도살장이다.” 프랑코 모레티는 이 표현을 가져와 <문학의 도살장>을 썼다. 살아남은 소수의 문학과 사라져버린 다수의 문학. 추앙받는 소수의 영화와 비천해져버린 다수의 영화.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양적 연구도, 형식주의도 아날학파도 아니다. 흥미롭게도 권보드래는 <3월 1일의 밤> ‘나가는 글’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아직, 3.1 운동을 만나면 길을 잃는다.” 나는 정연씨에게 답장을 썼다. “임창정 신보가 나왔네요. 17집. 유튜브 링크 보냅니다. 노래제목은 <트로트가 싫어요> https://youtu.be/wsH0mv3yZEc 왠지 < 국제시장 >이 생각나네요..”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2002년 | 두사부필름, 필름지 감독, 각본: 윤제균 | 제작: 윤제균 이효승 조윤호 | 촬영: 김용철 | 미술: 구진오 | 음악: 박영철 김형중 CAST 은식: 임창정 | 은효: 하지원 | 성국: 최성국 | 유미: 유채영 | 상욱: 정민 | 지원: 진재영 | 경주: 신이 | 현희: 함소원 ‘섹스 코미디’는 한국영화가 취약한 장르입니다. 심의와 검열이 긴 시간 동안 영화적 상상력을 억제했던 게 큰 이유죠. 1980년대 사극 에로나, 1990년대 몇몇 시리즈가 섹스와 코미디를 결합하려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 색즉시공 >(2002)은 이 장르의 몇 안 되는 성공 사례입니다.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 남녀들의 호르몬 왕성한 이야기. 추하거나 노골적이지 않고 사실적이면서 야한 영화. 바로 <색즉시공>입니다. 2001년 8월, <색즉시공>은 영화의 컨셉트에 맞게 수영장 신을 공개했습니다. 촬영 장소는 지금은 문을 닫은 드림랜드 수영장. 야외 촬영에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물까지 있어서 촬영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사실 영화 촬영 현장 공개를 수영장에서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죠. 그런 만큼 취재진의 열기가 매우 뜨거웠는데요, 하지원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만 적어도 10대는 넘었습니다. 교양 체육 수업을 위해 수영장에 집합한 차력부 남학생들. 이때 에어로빅부의 여학생들을 발견합니다. 남학생들은 어설프게 자른 수박을 들고 다가가는데… 이때 은식(임창정)은 짝사랑하는 은효(하지원)의 수영복 차림 앞에서 움찔합니다. 여대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최고의 킹카 함상욱(정민). 그리고 퀸카인 김지원(진재영). 그들의 등장은 이 신에 묘한 텐션을 만들어냅니다. 은효의 에어로빅부 친구들. 그들은 함상욱과 김지원을 바라보며 선망과 질투의 눈빛을 보냅니다. 현희 역의 함소원은 미스코리아 출신, 경주 역의 신이는 < 노랑머리2 >( 김유민 , 2001)에서 하리수 와 공연하며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윤경 역의 윤시후는 CF 모델 출신. 대부분 신인급 배우들입니다. 파란색 비키니의 하지원은 이때까지만 해도 호러 퀸 이미지가 강했죠. <색즉시공>을 통해 확실한 이미지 변신을 한 셈입니다. “은효는 말이 전혀 없다가도 갑자기 엉뚱한 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애인지 잘 모르겠어요”라며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합니다. 안쓰러운 눈빛의 은식. 이날 임창정이 준비한 의상은 모두 평상시 그가 입던 옷들이었다고 합니다. 첫 영화 < 두사부일체 >(2001)로 빅 히트를 기록했던 윤제균 감독. 그는 자신의 대학 생활을 토대로 <색즉시공>의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임창정은 <두사부일체>의 카메오 출연으로 윤제균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색즉시공>에선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촬영 전부터 숱한 술자리로 호흡을 맞추며 작품을 준비했는데요, 윤제균 감독은 임창정을 모델로 은식이라는 캐릭터를 구체화시켰고, 차력부 설정은 임창정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색즉시공>은 하지원 임창정, 두 배우에 큰 육체적 도전이었습니다. 하지원은 에어로빅 장면을 위해 3개월 이상 매일 5시간씩 에어로빅 연습을 하며 역할을 준비했는데요, 이외에도 팔굽혀펴기 150회와 윗몸일으키기 350회가 일일 기본 운동량이었다고 합니다. 임창정은 각목, 철근, 불 등이 동원된 차력 장면을 직접 소화했는데요, 합기도 유단자들이나 할 법한 수위였습니다. <색즉시공>의 가장 뜨거운 커플은 아마도 성국(최성국)과 유미(유채영)일 겁니다. 차력부와 에어로빅부의 엄한 고참들인 그들은 첫눈에 반해 ‘운명’ 같은 커플이 됩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유채영은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서 오버액션 전문 코믹 캐릭터로 활약했는데요, 2014년 안타깝게도 암으로 4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민과 진재영은 <색즉시공>에서 가장 섹시한 남녀였습니다. 지금은 두 배우 모두 은퇴했네요. 개봉 전 <색즉시공> 제작 발표회 현장입니다. 출연진 대부분이 참여해 무대를 꽉 채웠습니다. 몇몇 배우들의 근황을 살펴보면, 정민은 은퇴 후 바리스타로 활동중이며 진재영은 인터넷 쇼핑몰 CEO가 되었습니다. 최성국은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 만날 수 있고, 윤시후는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중입니다. 함소원은 <색즉시공> 이후 가수와 연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종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대학은 이후 트랜스젠더로서 이시연으로 개명하고 지금은 BJ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달환과 최원영은 꾸준히 연기 활동 중인데요, 특히 최원영은 최근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출연했습니다. “은수는 솔직히 멍청하죠. 순박하고 착한 역할이에요. 은식이는 지금까지 제가 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의 총집합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이제 이 영화 하고 그런 역은 안 하려고요.”(임창정) “은효란 인물은 남들이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든 것 같아요. 엉뚱한 면도 많고, 때로는 당차고 때로는 엽기적이에요. 너무 터프해서 남자다울 때도 있고요. 그런 반면에 순수하고 여리기도 해요.”(하지원)
영화란 무엇인가.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이제는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손에 들어보았을 앙드레 바-쟁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에는 이제는 어렴풋한 향수마저 깃든 느낌이다. 이런 질문을 할 때에는 보통 영화를 알고 싶다는 욕망이 전제된다.(그냥 폼 잡으려고 책장에 비치해놓은 사람도 적지 않은 모양이긴 하지만) 움직이는 그림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이 매체는 재미있게도 ‘시간’에 대해서 마술을 부리며 ‘예술’의 이름을 부여받았다. 단순히 활동사진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영화들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답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진리와도 같았던 이른바 아트 하우스 영화들이 몰락하고 오히려 쓰레기 취급을 받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마술을 부리기 시작하고... 아아 도대체 영화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에 온몸으로 부딪힌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도 거칠거칠한 최야성 감독. 그는 무려 20세에 < 검은 도시 >를 감독하며 (아직도 깨지지 않는) 최연소 감독의 기록을 가지게 된 사람이다. 2014년 현재까지 총 7편의 영화를 감독한 그는 충무로의 아웃사이더였고 영화광들의 조롱거리였으며 본인 스스로는 ‘여자 대신 고정관념을 벗기며’ ‘창작, 독창성으로 세계적 쇼부를 치는’이라 말하는 영화감독이었다.(다 본인의 실제 언급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본인만의 영화제작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남들이 한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둘째, 최소한의 제작비만을 사용한다. 셋째, 가장 사실적인 것이 가장 영화적인 것이다. 라는 것이다. ( < 로켓트는 발사됐다 >의 DVD 서플먼트에 들어간 이 인터뷰에서 3대 원칙 중 2번째 원칙을 설명하며 술값을 아끼려 사무실에서 김치에 병맥주를 마시는 알뜰 넘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야성 감독 3대 영화제작 원칙 < 로켓트는 발사됐다 >는 이 세 가지 원칙을 충실하게 지켜나간 작품이다. 이 영화의 홍보 카피이기도 했던 ‘노 시나리오, 스냅무비’(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로 남들이 했던 것을 피해갔고, 모든 배우들을 ‘이게 세계적으로 되는 영화예요. 한 번 도와주세요.’로 잠깐잠깐 우정 출연시켰기에 제작비가 거의 안 들었다. 또한 가장 사실적인 것을 위해 최야성 감독은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으로 ‘영화를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단 본인의 3원칙은 지킨 셈이다.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영화’를 생각하면 일단 톰 디칠로의 < 망각의 삶 >이 떠오른다. 스티브 부세미가 분한 독립 영화감독은 촬영장에서 발생하는 온갖 변수와 상상도 할 수 없었던(그러나 일단 발생하니 어쩔 수 없는)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이 그렸던 완성과 점점 멀어져가는 상황을 속 터지게 지켜본다. 그래도, 그런 영화 현장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버릴 수 없다는 결론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웃음과 낭만, 그리고 씁쓸함이 교차하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로켓트는 발사됐다>는 안타깝게도 그런 영화 만들기의 고단함보다는 땡처리 옷 장사의 어려움이 더 리얼하게 그려져 있었으니... 만약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상영시간을 비례로 ‘핵심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법 같은 게 있다면 애석하게도 < 로켓트는 발사됐다 >의 내용은 영화를 찍는 것과 별로 상관이 없어진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땡장사(‘사장님이 미쳤어요!’류의 문구로 호객하여 떨이로 의류를 판매하는 형태) 옷 장수 최야성 사장이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결국 아르바이트로 위장한 양아치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옷을 도둑맞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90분의 상영시간에서 60분이 대충 이런 내용에 유명 배우들의 우정 출연으로 연출된 ‘썰렁 때리는’ 개그들이다. 우리는 시나리오 없이도 충분히 훌륭한 영화가 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로켓트는 발사됐다>는 그런 류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제작자이며 주연배우이기도 한 최야성 감독이 당시로선 신선한 시도를 한 것은 그럭저럭 인정해줄 수 있다. 한 가지 그가 착각했던 것은, ‘아무도 안 한 것’이 ‘아무도 생각 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름이 자주 호명된다. 독창성, 신선함의 상징으로 최야성 감독이 닮고 싶어하는 감독인데, 그는 옷가게 구석 소파에 누워 < 저수지의 개들 >을 보며 ‘타란티노를 재끼는’ 영화를 만들겠다며 중얼거린다. 문제는 그 중얼거림이 영화를 만들기 전의 다짐 같은 것이 아니라 관객이 보고 있는 영화의 한 숏 이라는 것이 문제다. 어찌어찌 유명 배우들을 만나 영화출연을 타진하며 ‘세계적으로 쇼부를 보겠다’고 수 없이 다짐을 하지만 그 다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다짐하는 과정을 봐야만 하는 관객은 그래서?? 어쩌라고?? 뭐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로켓트는 발사됐다>의 크랭크 인 장면에서 끝난다. “하여튼 영화 하나 찍기 되게 힘드네.” 라고 지나가듯 말하는 그 장면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봤던 배우들이 사실 영화의 스태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내가 본 장면들의 촬영이 이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끝과 시작이 맞붙어 있는 순환구조. 돌고 도는 인생사. 색즉시공 공즉시색. 감독이 자신만만(사실 그리 자신만만하지도 않다. 영화상 보이는 그의 태도나 말투는 거의 기어들어가다시피 하다. 안쓰러워...) 하게 말한 것 같은 영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8살의 어린 영화감독이 뭔가 다른 것을 하고자 하는 안간힘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카메오 비슷하게 출연하는 중구난방의 배우들. 그 리스트는 다음과 같은데, 최종원 , 김보성 , 현석 , 독고영재 , 허준호 , 박준규 , 조상구 , 박상면 , 가수 정광태 , 개그맨 김용 (이 분은 아예 조연급 분량이다), 시인 원태연 , 영화감독 김기덕 , 김두영 (영화 마니아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 주글래살래 >의 바로 그 감독이다.) 등 그야말로 다국적군이라 불릴만한 우정의 무대를 보는 재미가 있다. 어떻게 캡쳐 뜨나 했더니... 감사한 포스터 1997년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스타트 같은 해였다. 이창동 감독의 < 초록물고기 >, 김성수 감독의 < 비트 >, 송능한 감독의 < 넘버 3 >가 차례로 개봉했고 장윤현 감독의 < 접속 >, 임권택 의 < 창 >, 배용균 감독의 <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 역시 이해에 개봉했다. (흥행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의 < 3인조 >도 같은 해 공개되었다.) 이런 좋은 작품들이 쏟아질 때, < 로켓트는 발사됐다 >는 개봉관을 한 곳도 잡지 못하고 3주간의 무료 상영을 했다. 다시 언급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거나 당시 평가받지 못한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영화가 이상이며 꿈이었던 시절의 향수가 남아있는 작품 같아 길티 플레져 비슷한 호감이 생긴다. 신선한 시도와 트래쉬 무비 사이 어디쯤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 영화를 뭐라고 평가하든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why not? 아님 말구! 감독 최야성 은 <로켓트는 발사됐다> 이후 2편의 영화를 더 제작, 감독하고 현재는 MC야성 이라는 이름의 가수로, 3건의 특허를 등록한 발명가로, 중견화가 조범제 화백의 매니저로... 하여간 바쁜 삶을 살고 계신다. 과연 도전의 귀재라 불리는 사내답다. 최야성 독고영재 김보성 감독: 최야성 각본: 최야성 개봉극장: 시네마천국(서울) 관람인원: 69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