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라우린
- 감독
- 샌더 브로이어, 비테 반 훌젠
- 제작년도
- 2015
(본문 속 사진을 클릭하시면 링크가 열립니다.)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 이 어두운 세계에서 희망 가득한 긍정의 말로 이 글을 시작하는 걸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영화의 현재는 참으로 좋지요!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최상이죠! 그런데 내 생각보다 더 좋다면 어떡한다. 하지만 호들갑 떨진 맙시다. 그것도 좋지만 누구도 심장 마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쇼크받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요즘 내가 LP를 자주 듣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브릿팝을 듣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더라도 뉴오더는 전혀 브릿팝이라고 할 수 없다. 1993년에 나온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Republic]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브릿팝은 90년대 영국에서 유행했던 다소 복고적인 기타 팝을 가리키는 다소 두루뭉술한 용어다. 전설적인 60년대에서 패션과 태도, 분위기와 멜로디를 빌려온 브릿팝은 그런지로 대표되던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20년 넘도록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차게 식은 차를 후후 불어 마시던 영국인들의 자존감을 채워주었다. 1997년 신노동당을 표방하며 18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토니 블레어 정부는 브릿팝의 흥행을 등에 업고 쿨 브리타니아라는 이름으로 음악과 영화, 패션과 축구를 아우르는 일종의 문화 캠페인을 벌인다. 실제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블레어는 하원 파티에 브릿팝 밴드들을 부르며 힙한 모습을 과시하기를 즐겼다. 하지만 훗날 펭귄북스에서 3권으로 출간된 대변인 알라스테어 캠벨의 일기에 따르면, 다우닝가에서 열린 총리 취임 기념 연회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랄프 파인즈와 함께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참석할 거라는 소식을 전달받은 TB(토니 블레어)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가 그를 초대한 건지 모르겠군. 그는 분명히 미친 록큰롤 같은 소동을 일으킬 거고 나는 전설적인 사건의 희생양이 되겠지. 앨런 맥기(*오아시스를 발굴한 크리에이션 레코즈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 노엘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받아내야 해. 맥기는 떨고 있는 총리에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노엘은 괜찮을 거라고, 오아시스의 다른 반쪽(리엄 갤러거)을 초대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연회 당일, 아내를 대동한 노엘이 맥기와 맥기의 여자친구와 함께 총리 관저에 도착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를 마주한 블레어가의 아이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얗게 굳어버렸다. 노엘은 블레어의 성공을 축하했고, 블레어는 노엘의 성공을 축하했다. 그리고 둘은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고 싶지 않다… 영상 1. 다우닝가에 도착하는 노엘 갤러거 그날 노엘은 술을 진탕 마셨고, 별다른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으며, TB와 쿨 브리타니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물론 영원한 적은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 수상을 지낸 제3대 파머스턴 자작 헨리 존 템플의 말이다. 1997년은 브릿팝이 이미 프로파간다로서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던 해였다. 오아시스와 함께 브릿팝 전쟁의 당사자였던 블러가 브릿팝의 죽음을 선언하며 미국적인 향취로 가득한 다섯 번째 앨범 [블러]를 발표했고, 80퍼센트에 달했던 블레어의 지지율은 어느새 52퍼센트로 급락했다. 1999년 노엘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옵저버’에 입사한 햇병아리 기자였던 닉 패튼 월시에게 신노동당은 변장한 토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불평을 쏟아냈다.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어, 그렇잖아? 똑같은 똥들이 있는 다른 날들일 뿐이지. 그 뭐야, ‘우리는 이제 모두 중산층입니다We’re all middle-class now’? 그건 정말 모욕적이었어. 중산층이 된다는 건 좀 있으면 자살할 거라는 말이잖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루한 일이 바로 중산층이 되는 거라고! 그럼 애초에 총리가 주최한 파티에는 왜 참석한 거냐는 신참 기자의 질문에 노엘은 조금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난 그냥 이렇게 생각했지. 영국 총리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젠장, 내가 빌어먹을 괴짜라도 된 것 같군. 나는 그날 밤에 기사 작위라도 받으려는 모양이라고 확신했어. 누구나 살아가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잖아, 안 그래? -한 마디로 하면 이거죠.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불역열호. -…정연씨,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떠오르지 않나요, 지돈씨? 케이팝으로 시작해서 < 기생충 >과 < 오징어 게임 >으로 그리고 다시 BTS와 청와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랑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걸 느끼지 못하겠어요? JD는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그보다는 딸기와 퍼지로 코팅된 쇼트브레드가 들어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떠오르는군요. 먹고 싶다 벤앤제리. -아니, 저기요. 과거에서 배운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전세계가 K-문화에 열광하는 지금… 음악 1 ‘Ice Cream as Main Course’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피아노 선율이 들려온다.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Ice Cream as Main Course’ 전주다. 갑자기?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JD를 바라본다.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아 핀 조명을 받으며 건반을 두드리고 있던 JD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먹을 꼭 쥔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길을 닦은 사람들입니다 ♪쓰레기로 가득한 오늘날의 거리 말예요 ♪타투 바와 스포츠 바들 ♪당신은 당신이 하는 생각을 들을 수 없죠 ♪그것들이 가라앉으며 내는 잘랑잘랑잘랑 소리뿐 ♪에너지 드링크를 섞은 보드카 한 잔 더 ♪그치만 옛날로 돌아가면 ♪우리도 쿨했었는데 ♪헐리우드의 Musso and Frank’s에서 ♪우리는 메인 코스로 아이스크림을 시켰죠 ♪실크로 된 터번을 쓰고 ♪초코 우유를 마시면서 ♪물론 럼주 한 잔은 옆에 두고서 ... ... ... 노래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우리는 후렴을 함께 소리높여 합창했고, 아마 어느 부분에서는 눈까지 감았던 것 같다. < 어바웃 어 보이 >에서 휴 그랜트가 그랬던 것처럼. 영상 2 <어바웃 어 보이>의 한 장면 정말이지 나는 뮤지컬 영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슬프게도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나는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콜라를 본다, 라고 정지돈은 [영화와 시]에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영화를 소비할 때는 배스킨라빈스나 벤앤제리스를 보는 거라나 뭐라나. 나는 다른 많은 이름들처럼 벤앤제리스라는 이름도 정지돈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벤앤제리스는 뉴욕주 롱아일랜드 출신의 두 친구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가 1978년 설립한 회사다. 2000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매각되었지만 독립적인 운영 방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벤과 제리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샌더스를 위해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버니의 열망(Bernie’s Yearning)이라는 한정판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는데, 민트향 아이스크림을 덮고 있는 얇은 초콜릿 막을 숟가락으로 깨부수고 마구 뒤섞음으로써 상위 1퍼센트가 소유한 부를 99퍼센트에게 골고루 돌려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할까요? 벤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이 아이스크림의 맛을 표현하자면 참여(participatory)의 맛이 난다고 하고 싶군요. 참여하시겠습니까? 깔끔한 폰트와 배색이 돋보이는 벤엔제리스의 홈페이지에는 맛의 무덤이라는 섹션이 있다. 그곳에는 화석 연료(초콜릿 쿠키 조각, 공룡 퍼지 및 퍼지가 물결무늬로 스월된 스윗 크림 아이스크림), 거북이 수프(퍼지로 코팅한 캐러멜 캐슈넛과 물결무늬로 스월된 바닐라 아이스크림), 둔감한 신성(밀크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화이트 퍼지 우유가 스월된 화이트 초콜릿 아이스크림 그리고 다크 퍼지 우유), 도시의 혼돈(코코넛 아몬드 퍼지 칩과 뉴욕의 슈퍼 퍼지 덩어리가 스월된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만남 그리고 코코넛 아이스크림과 화이트 및 다크 초콜릿 덩어리, 피칸과 구운 아몬드의 조화), 악랄한 조합(피칸, 아몬드, 건포도와 초콜릿 칩이 들어간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은퇴한 아이스크림들의 묘비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쿨 브리타니아의 것도 있다. 그림 1 쿨 브리타니아 묘비 쿨 브리타니아 1995~1998 이 맛은 엄청난 강타자였지만 - & 파울로 아웃되었습니다. 딸기 앤 쇼트브레드 - 독실한 사랑의 조합 하지만 슬프게도 마땅히 누려야 할 명성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즐기기엔 너무 영국스러웠나 봅니다. 말라버린 강둑의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블러의 베이시스트이자 ‘알렉스 제임스 제공Alex James Presents’, ‘좋은 웨일스 공녀 모드Good Queen Maude’, 그리고 뉴오더의 노래 제목을 딴 ‘블루 먼데이Blue Monday’ 등 빛나는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다수의 치즈를 생산하는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성공적인 영농기업인 알렉스 제임스는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냐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제 일부가 죽어요. 이런 식의 사카즘은 영국의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조너선 스위프트에서 로렌스 스턴, 토머스 드 퀸시,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G.K. 체스터턴 등으로 이어지는 두터운 계보(절반 이상이 아일랜드계로 이루어졌다는 게 특히 영국적이다)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리씨는 자신이 이끌었던 전설적인 밴드 더 스미스의 재결합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꾸한 바 있다. 스미스라고? 그 이름은 내게 말라버린 강둑에서 죽어가는 물고기를 연상시킬 뿐인데? 브릿팝이요? 그건 그냥 똥처럼 들리는 소리죠. 펄프와 프로젝트 밴드 JARV IS...의 리더이자 최근 웨스 앤더슨의 영화 < 프렌치 디스패치 >와 함께 하는(companion) 샹송 커버 앨범을 발표하며 뜨뜻미지근한 솔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또 한 명의 영국 전통 사카즘 전수자 자비스 코커는 2017년 피치포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민족주의적인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깃발을 흔드는 음악 같은 게 아니었어요. 브릿팝이라고 불렸을 때는 정말로 불쾌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어떤 대안적인 문화를 전용해서 거기에 유니온잭을 꽂고 크레딧을 모두 가져가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심지어 다섯 번째 회고록을 출간한 유명인들이 득실득실한 영국의 문화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코커의 첫 번째 회고록은 2022년에야 출간된 예정으로, 책소개에 따르면 이것은 자비스의 독특한 삶, 펄프, 20세기 대중문화, 좋았던 시절과 그가 차라리 잊고 싶은 실수라고 말하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일생 동안 축적된 파편들은 글쓰기와 뮤지션십, 퍼포먼스와 야망, 스타일과 연출 기법 등 그의 창작 과정을 보여준다. 이건 인생 이야기(life story)가 아니다. 다락방 이야기(loft story)다. 회고록의 제목은 [좋은 팝, 나쁜 팝Good Pop, Bad Pop]이라고 한다, 세상에. 혼톨로지, 혹은 지나간 미래/도래할 과거의 유령 그림 2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한 장면 그러니까 문제는 책이고 음반이고 영화다. 닉 혼비의 소설(책)을 각색한 <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Fidelity>(영화)에서 챔피언십 바이닐이라는 이름의 레코드점(음반)을 운영하는 존 쿠색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느냐다. 책들, 음반들, 영화들—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날 얄팍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것이 빌어먹을 진실이다. 블라블라블라. (어디선가 자비스 코커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나는 내가 깊다고 말한 적 없어, 나는 아주 깊게 얄팍하지 ♪내 지식의 부재는 광대하고, 내 지평은 좁다 ♪난 내가 크다고 말한 적 없어, 똑똑하다고 말한 적도 없지 ♪만약 네가 내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찾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영원히 기다려야 할 거야 ♪여어엉원히 말이야 -책들, 음반들, 영화들은 중요하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는지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JD가 이어 말했다. -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책들, 음반들, 영화들이 중요한 건 우리가 그것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요. -같은 말 아닌가요? -아니요. 존 쿠색의 말을 생각하세요. 같은 영화에서 쿠색은 화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죠. 불행하기 떄문에 음악을 듣는 걸까, 음악을 듣기 때문에 불행한 걸까? 그 둘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정지돈에 따르면 그것들이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죽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는 늘 심령 현상을 전달해왔다고 키틀러는 말했습니다. 라캉에 의하면, 실재계에서는 시체라는 단어조차도 완곡어법이기 때문입니다. 정지돈은 계속해서 키틀러를 인용했다. 1837년 모스 부호가 발명된 후, 영매 강령술자들의 ‘노크를 하는 영혼들’이 망자의 영역에서부터 각자의 메시지를 가지고 즉각 뒤이어 등장했습니다. 또한 사진 건판들이 영혼이나 유령의 모상들을 지체 없이 전달하기 시작했고요. 1878년 에디슨이 ‘북아메리카 리뷰North American Review’에 자신이 최근에 발명한 축음기가 어디에 사용될 수 있을지를 예견했을 때, 그 열 가지 목록 중 하나는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말”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이 뤼미에르는 영화를 가리켜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도구에 불과하며 미래 없는 발명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어떨까요?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 제논이 델포이 신전에서 무엇이 가장 훌륭한 삶인가에 대해 신탁을 청했을 때, 그가 받은 대답은 죽은 이들과 교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필로소피아라기보다는 네크로필리아에 더 가까운 신탁을 듣자마자 고대인의 글을 읽으라는 뜻이라고 이해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컴퓨터로 편집한 자료와 샘플을 구식 신시사이저 음색이나 어쿠스틱 악기와 뒤섞고, 라이브러리 음악과 영화음악에서 영감받아 만들거나 통째로 훔친 모티프를 인더스트리얼 드론과 추상적 노이즈에 엮으며 낭송이나 습득한 소리를 신비한 뮈지크 콩크레트/라디오 드라마풍으로 삽입해서 음악을 만드는 혼톨로지의 전략은 이미 고대에도 존재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편집과 전유, 샘플링과 빙의, 그리고 아카이빙은 최근에야 발명된 게 아니라 기록 그 자체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조건이라는 거죠.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건 사태를 명료하게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예요. 우리의 영화에도 혼톨로지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이용… 과거를 새롭게 상상하는 동시에 미래를 새롭게 기억… 다중적인 시간 축을 동시에 나열… 일종의 피드백 루프를 통해… 어째서일까? 그의 말은 마치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렸고,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꽤나 길게… 꿈에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죽은 존재들의 무언의 호소에 민감해지는 게 아닐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미래가 과거의 미래, 곧 역사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순수한 선행 기억상실 모든 것은 시간 문제다. 요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원고를 마감하는 것도 시간 문제고, 밀린 책을 쓰는 것도 시간 문제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 물론 중요하지. 그렇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있기만 하다면. 시간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관련된 문제는 또 있다. 뭘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건 약간의 시간만 흘러도 까맣게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정지돈이 말하는 몇몇 고유명사들은 나도 익히 아는 것들이었다. 나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역자 유현주 선생을 모시고 출간 기념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내개 전혀 새롭게 들렸다. 혼톨로지? 물론 알지.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물론 혼톨로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을 두어 번은 읽었으니까.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읽었다. 반쯤. 나원영과 강덕구가 번역한 마크 피셔의 글들도 읽었고, 큰 상관은 없지만 베리얼의 첫 두 앨범을 최근 LP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들은 내게 매번 새롭게만 느껴지는 걸까? 내게 아주 많은 시간이 있다면 책상 앞에 앉아 이것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볼텐데.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나는 마감을 해야 한다. 마치 나는 입이 없고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 하는 것처럼! 그럴 때면 늘 그렇게 하는 것처럼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구글링을 하던 나는 시간에 쫓기는 흔들리는 눈으로 검색 결과들을 빠르게 훑어보다가, 내가 찾는 줄도 모르고 절박하게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유레카. 나는 정지돈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한다. -자, 들어보세요 지돈씨. 혼톨로지 음악 경향의 창작 방식에는 작곡, 연주, 녹음 과정이 생략되어 있고 타인의 음반을 샘플링한 후 이를 편집하고 아날로그 음반의 노이즈를 증폭 혹은 삼입시키는 식으로 창작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창작 과정은 작곡은 쓰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빙의되게끔 허용하는 것의 문제라는 트리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Maxinquaye]는 정해진 구조 없이 트리키 본인의 맘에 든 몇몇 단편적 소리들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생략… 또 생략… 이음매에서 어긋난 시간 속에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어때요, 제가 여기서 어떤 아이디어를 차용했는지 알겠어요? -빙의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홍상수에? -아니요, 근데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네요. 그건 일단 키핑 해둘게요. 제가 꽂힌 구절은 이거에요. ‘정해진 구조 없이’ ‘본인의 맘에 든 몇몇 단편적 소리들을 토대로’ ‘이음매에서 어긋난 시간 속에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저는 이게 이번 원고뿐만 아니라 우리 영화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구태여 매끈하게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고, 우리가 좋아하는 단편들로만 채우는 거죠. 장면들, 인물들, 대사들, 장소들, 소리들, 작은 이야기들. 그러니까 고다르가 언젠가 자신의 영화에서 한 인물이 단순히 여기에서 저기에서 이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길을 걷는 장면을 찍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것처럼요. 대신 우리는 그걸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서 가져오는 거고요. -그게 뭐지? 어떤 건지 잘 와닿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요? -이렇게 하는 거라니까요. -??? -바로 이렇게요! (다음 회에 계속) *이 글은 다음 글들의 크고 작은 부분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졌다.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감기도령, 문피아, 2021) [참을 수 없는 가우초](‘크툴루 신화’)(로베르토 볼라뇨, 이경민 옮김, 열린책들, 2013) [영화, 축음기, 타자기](프리드리히 키틀러, 유현주.김남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9) 'Ice Cream as Main Course'(Jarvis Cocker and Chilly Gonzales) [영화와 시](정지돈, 시간의흐름, 2020)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아이스크림, 무슨 맛?'(오마이뉴스) 'Tony Blair was worried Oasis would trash Downing Street'(NME) 'Noel looks back in anger at drinks party with Blair'(The Observer) <디스 이즈 팝>(S01XE0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50 Best Britpop Albums'(Pitchfork)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스티븐 프라이스, 2000) <레트로마니아>(사이먼 레이놀즈, 최성민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7)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전주국제영화제 엮음, 프로파간다, 2021)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2) '크래클의 형이상학- 아프로퓨처리즘과 혼톨로지'(마크 피셔, 420 옮김, 네이버블로그 '좋습니다') '레이브 이후의 런던'(마크 피셔, gkd 옮김, 네이버블로그 'K-atacccombb') '트릭놀로지의 유령들'(이엔씨, 포스타입 '알 수 없는 평론가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할란 앨리슨, 신해경.이수현 옮김, 아작, 2017)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미 대선이 치러졌던 지난 11월 8일,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 힐러리 클린턴이 쭉 앞서던 필라델피아 주의 색깔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승리의 여신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음이 거의 확정 된 순간이었다. 그날 밤과 이후의 며칠 동안 42번가의 타임스퀘어의 한 건물의 광고판엔 트럼프가 미칠 영향을 경고하는 문구가 걸렸고, 뉴욕의 시민들은 퇴근 후 매일 저녁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앞으로 몰려가 그들의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다. 이튿날 아침엔 소위 말하는 ‘뉴욕 버블’을 꺼트리기라도 할 기세로 비가 내렸다. 현재 필자가 재학 중인 컬럼비아 대학교의 예술 대학은 ‘뉴욕 버블’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할 만한 집단이다.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고, 몇몇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선 레이스 내내 침묵을 지키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집단. 몇몇 미국인 학생들은 실의에 빠져 수업에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농담을 던질 힘이 남아 있던 영화학도들은 흐린 하늘을 가리키며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모습이구나…’라며 쓴웃음을 겨우 지어냈다. 유학생과 미국인 학생의 비율이 6:4일 정도로, 타 국적의 학생들이 많은 집단이지만, 미국의 군사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나라 출신들이 꽤 많은 탓에, 우리는 국적을 불문하고 함께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공유하고 서로를 달랬다. 영화학도들뿐만 아니라 영화과의 교수들도 어느 정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많은 극작 혹은 연출 분과의 교수들이 본격적인 수업 시작 전 30~40분의 시간을 대선에 대해 말하는 것에 할애했고, 학장은 모든 예술학도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학과 건물의 로비 한쪽 벽면엔 ‘다가올 시대의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써 붙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졸도Swoon>(1992)과 < 세비지 그레이스Savage Grace >(2007)를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가르치는 중인 톰 케일런이 사석에서 내게 해준 말이었다. 자신의 연출 수업 시간에 < 살인의 추억 >(2003)을 예시로 보여줄 정도로 봉준호 감독의 열렬한 팬인 케일런은 종종 내게 한국 사회에 대해 묻기도 하기에, 우리는 각자가 속한 사회뿐만 아니라, 타자로서 각자의 사회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는데, 무수한 긴 한숨들이 지나간 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챙길 때,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클리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서로 더 사랑하고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에 그의 말이 내게 와 닿진 않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었지만, 그의 말마따나 클리셰처럼 느껴졌달까. 하지만 정확히 그날 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케일런의 말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한국에서 날아온 기사 하나를 며칠이 지나 뒤늦게 읽은 순간, 그의 말은 더 이상 클리셰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11월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 행동에서, 10대 청소년들이 폴리스 라인 앞에 늘어서 경찰을 지켰다는 내용이었다. 방금 읽은 것을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졌다. 클리셰가 무엇인가?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냄에 있어 독창적인 고민 없이, 이미 사용될 만큼 사용된 장치를 쉬운 선택지로 골라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반복 사용된 듯 보이는 보편적인 장치라도, 적절한 곳에 위치해 확실하게 효과를 발휘한다면, 아무도 그것이 클리세라고 어깃장을 놓지 않는다. 경찰에게 보호받아야 할 10대 청소년들이 평화 시위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경찰을 보호하려고 나섰다는 이야기가 우리가 서로 더 사랑하고 지켜나가야지만 희망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메시지와 만났을 때, 나는 마치 ‘문제에 처한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실행할 용기를 낸다.’는 아주 보편적인 스토리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보는 관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흔히 정치 비관론에 빠진 이들은, 다시금 뭔가를 바꿔보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냉소를 던진다. ‘그래 봤자 변하는 것은 없더라.’, ‘겪어 보니 그 놈이 그 놈이고, 다 똑같더라.’라는 흔한 푸념부터, 심하게는 ‘촛불은 바람에 쉽게 꺼진다.’까지 등의 논리가 일종의 갑옷이자 눈가리개가 되어 그들을 둘러싼다. 어쩌면 그들이 보기에 역사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던 착취와 지배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의 시도들은 역사의 클리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의 저항과 움직임은 때때로 즉각적인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세대와 세대를, 그리고 세기와 세기를 거쳐 더딘 응답을 언제나 받아내곤 했다. 누군가가 지금 신분제의 부활과 노예 사유화, 그리고 여성의 정치 참여 제한을 주장한다면 그 누군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겠지만, 사실 노예 해방이 이뤄지고 여성 참정권이 인정받은 것은 이 길고 긴 인류의 역사의 끝자락, 불과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뤄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침묵하는 기득권의 냉소와 탄압을 겪어 내고 당연해야 하는 것들을 이뤄내려는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과 그 과정은 길고 긴 인류의 역사라는 이야기 속에서 분명 효과를 발휘한, 클리셰가 아닌 그 무엇이다. 1989년의 할로윈데이, < 오즈의 마법사 > 속 인물 도로시로 분한 ACT UP의 멤버가 ‘도널드 트럼프를 체포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임하고 있다. [사진출처]Surrender Donald! A Queer Call to Action Since 1989 사실 도널드 트럼프(와 그가 대표하는 집단)에 대한 저항도 이번 미 대선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어 왔다. 케일런이 속해 있기도 한 국제단체 ACT UP(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의 멤버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트럼프 타워를 건축하며 받았던 육백이십만 달러의 세금 혜택이 뉴욕의 빈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할 예산으로 사용될 수 있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트럼프를 가난한 자들을 소외시키고 부유한 자들의 특권을 강화하는 잘못된 체제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1989년 10월 31일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앞에서 트럼프에 저항하는 시위를 펼쳤다. 1989년의 그 날 20대 청년이었을 톰이 트럼프 타워 앞에 서 있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그 해 태어난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한 명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트럼프와 그로 대변되는 이 사회의 시스템과 싸워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시간 동안 거대한 부조리와 싸워왔다면 지칠 법도 할 텐데, 앞서 언급한 대화 이후 며칠이 지나 수업 시간에 교수와 학생으로서 다시 만난 케일런은 대선 결과를 다시금 언급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다.’라고 자신의 학생들에게 말했다. 영화라는 것은 하나의 매체이자 언어이며, 감독 혹은 작가가 되길 지망하는 우리는 각자의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세상에 맞서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미의 발언이었다. 그렇다, 미국이냐 한국이냐의 지리적 문제를 차치하고, 지금은 영화에 대해 말할 때가 아니라, 영화가 말해야 할 때다. 우리가 어딘가의 광장에 모여 우리의 목소리로 부정에 맞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화 또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용기를 내서 그것을 말해야만 하는 시기이다. 평론가 강소원은 11월 23일 자로 부산일보에 게재된 본인의 칼럼에서 올해 부산독립영화제 출품작 대다수의 문제가 ‘절망적인 시대를 절망적인 영화로 담아냈다는 데 있지 않고 그 절망적인 시대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지금 광장으로 뛰쳐나온 세대의 영화 속에선 왜 그러한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강소원의 이러한 지적이 단지 부산의 젊은 감독에게만 해당하는 분석이 아닌, 필자가 속한 세대의 감독들이 만든 지난 몇 년간의 독립 영화 전반에 적용 가능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로 하여금 영화 속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만든, 지난 역사 속의 여러 사태에 대항할 때마다 느낄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이 우리의 말문이 잠시 막히게 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느리고 더디게 승리를 쟁취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또 다른 아주 길고 긴 싸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중이다. 누군가가 살아온 평생보다 더 오랜 시간 광장에서 싸웠지만 지치지 않은 이가 있으며, 누군가보다 훨씬 적은 세월을 살았지만, 용기를 가지고 광장에 발을 디딘 이들이 있다. 당장은 우리의 이러한 또 한 번의 저항이, 그간 무수히 있어 왔던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클리셰적인 시도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다시 한번 느린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분명 나아지는 중이고, 우리가 써내려가는 중인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영화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클리셰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렇게 주장하는 필자부터 그동안의 비관론을 버리고, 다시 한번 희망을 바라보려고 한다. 나로 하여금 너무나 당연한 것이 모두 클리셰는 아님을 깨닫게 해준 광장의 청소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위 사진 설명: 미 대선 이튿날인 11월 9일,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정경. 네온 사인 속 문구: “Trump victory causes ‘SERIOUS CONCERNS’ in Middle East”(트럼프의 승리는 중동 지역에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한다.)
어두운 화면. 흰색의 자막이 기차처럼 흘러간다. 희끗희끗 날리는 눈발과 함께 잡음이 잔뜩 낀 방송의 파편들이 들려온다. “...좋은 아침입니다. 2014년 7월 1일 오늘 오전 6시에... 지난 7년간 논쟁을 들끓게 했던 문제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환경 단체와 개발도상국들의 시위자들이 여전히 반대하는 가운데... CW7이 지구 온난화의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왔고...” 이 아래로 깔리는 음악은 나른하지만 불길한 기운을 머금는다. 공허한 바람소리가, 피아노의 떨림이, 스트링의 스산함이 예사롭지 않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여긴 지도자들은 오늘 79개국 대기의 상층부에 CW7의 살포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지구 평균 기온이 적정한 수준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공냉각제인 CW7에 의해... 인류의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방안이 될 것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창공에 뜬 비행기들. 대량으로 살포되는 인공냉각제. 인류의 고된 운명을 암시하듯, 비극적인 서막을 고하듯 혼(Horn)이 포효하고 팀파니가 굉음을 터트리며 영화 타이틀이 찍힌다. 그리고 그 이후 세상에 대해 간단하게 자막으로 소개한다. “CW7 살포 후 머잖아 세계가 얼어버렸다. 모든 생명체가 멸종됐다.” 새로운 빙하기 위로 기차 한대가 매서운 속도로 달리며 설명은 이어진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방주에 탑승한 몇 안 되는 소중한 이들이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이다.” 이 영화는 영원한 겨울, 얼어붙은 백색의 세상, 지구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향하여 달리는 열차에 대한 얘기다. 절대 멈추지 않는 열차. 그것은 바로 온 세계를 축소해 담아놓은 100여량의 ‘설국열차’다. 설국열차 < 플란다스의 개 >와 < 살인의 추억 >, < 괴물 > 그리고 < 마더 >로 자신의 세계를 확고하게 쌓아나간 봉준호 감독은 그간 소문만 무성하던 < 설국열차 >를 차기작으로 결정했다. 2004년 <괴물>의 프리 프로덕션을 준비하며 홍대의 한 만화서점에서 프랑스 원작과 마주친 지 대략 7년의 세월이 지나서였다. 국내에서 희귀한 장르인 괴수물을 만들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그였기에 본격적인 SF물을 표방한 <설국열차>에 쏟아지는 지대한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제작자로 박찬욱 감독이 나서며 범상치 않은 프로젝트가 될 것임을 암시한 것처럼 제작비 4,000만 달러라는 역대 최고 규모에, 할리우드의 쟁쟁한 배우들과 다국적의 스탭들이 대거 참여하여 그 기대치를 한껏 부풀렸다. <괴물>에 이어 송강호 와 고아성 이 그대로 부녀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 캡틴 아메리카 >의 수장 크리스 에반스와 < 빌리 엘리어트 >의 차세대 스타 제이미 벨, 아카데미 조연상을 거머쥔 바 있는 두 명의 여배우 틸다 윈스턴과 옥타비아 스펜서 외에 관록파 배우 에드 해리스와 존 허트까지, 국내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캐스팅 파워를 자랑했으며, 체코 출신의 미술감독 앙드레 넥바실과 쟁쟁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로 다져진 VFX 디자이너 에릭 덜스트, 줄리안 스펜서 같은 노련한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참여해 내실을 갖췄다. 그런 이유로 음악 역시 국내 음악감독보다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영화음악가를 원했는데, 봉준호 감독은 < 3:10 투 유마 >에서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줘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됐던 마르코 벨트라미를 낙점했다. 마르코 벨트라미 196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브라운대와 예일대 음악과를 졸업한 마르코 벨트라미는 그 실력만큼이나 스승 복과 작품 운이 따른 영화음악가다. 쇤베르크의 사위이자 이탈리아의 거장 루이지 노노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USC에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전설 제리 골드스미스에게도 사사받았고, 단편과 TV물로 영화음악에 뛰어든 지 3년 만에 웨스 크레이븐의 < 스크림 > 음악을 맡아 획기적인 성공을 경험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모든 음악을 담당하며 빠르게 주류에 편입해 들어간 그는 이후 메이저 영화사의 호러나 스릴러 장르에서 활약해 자신만의 어둡고 비장미 넘치는 색채를 더욱 발전시켰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함께 한 < 미믹 >과 < 블레이드 2 >를 비롯해, < 패컬티 > < 크로우 2 > < 왓쳐 > < 드라큘라 2000 > < 캔디케인 > < 레지던트 이블 > < 언더월드 2 > 등 유독 음울하고 어두운 장르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명성을 드높였는데, 장중한 혼과 강렬한 퍼커션, 서정적인 스트링에 일렉트릭 사운드를 곁들인 독자적인 스타일은 유행에 함몰되지 않는 그만의 독특한 인장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노르웨이의 <디나>, 덴마크의 <선생님의 외계인>, 프랑스의 <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 > 등 세계 각국의 작품들에 도전해 언어와 국경의 장벽을 뛰어넘었을 뿐더러, 장르에 있어서도 스펙트럼을 넓혀 인디 드라마부터 코미디, 스포츠, 서부극과 휴머니즘 등 다양한 선구안을 보여주었다. 특히 < 3:10 투 유마 >와 < 허트 로커 >의 연이은 아카데미 음악상 노미네이트로 60년대생 또래 작곡가 중에서 마이클 지아치노와 다리오 마리아넬리와 함께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설국열차> 음악을 담당한 작년 2013년은 마르코 벨트라미가 가장 바빴던 한해로 무려 7작품에 이름을 올리며 얼마나 잘 나가는지 손수 증명해보였다. <설국열차>는 마르코 벨트라미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발현되는 작품이다. 암울하고 어두운 톤의 심상에, 캐릭터들의 잿빛 미래를 투영시킨 디스토피아적인 사운드는 그의 초기작부터 견지해왔던 음악세계로 인도한다. 풍부한 스트링과 마이너한 테마 그리고 울부짖는 취주악 파트에 과도한 일렉트릭 효과, 그리고 심장 박동처럼 두근두근 고동치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타악 세션의 조화는 지독한 심연의 구렁텅이 속으로 떨어뜨린다.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한 벌레부터 지옥에서 불려온 악마의 자식이나 낮에도 돌아다닐 수 있는 돌연변이 뱀파이어 안티 히어로, 감정을 가진 유일한 로봇, 666 표식을 한 악마의 부활과 학교에 숨어들어 인간 행세를 하는 외계 변종 생물체, 그리고 고전적인 드라큘라까지 줄곧 외면 받고 잊혀진, 저주와 악이라는 미명 하에 터부시 되어 왔던 캐릭터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여 온 마르코 벨트라미의 음악은 설국열차의 뒷칸에 자리 잡은 하층민들에게도 유효하다. 앞 칸으로 가기위해 체제전복적인 일을 도모하는 커티스 일행과 열차 각 량의 다양한 모습들을 묘사하는 그의 스코어는 박진감 넘치면서도 동시에 애수어리다. 달리는 기차라는 콘셉트에 맞게 규칙적으로 약동하는 비트에 미니멀한 주제부를 부여한 <설국열차>의 음악은 짧지만 효율적으로 각 칸의 성격들을 정의하고, 액션에 드라마틱한 동기를 심어주었다. 이는 그전의 < 헬보이 >나 < 아이 로봇 >, < 터미네이터 3 >와 < 노잉 > 등에서 들려줬던 방식과도 유사하며, 할리우드 스코어 특유의 스케일과 빠른 호흡을 불어넣어 좁고 한정된 공간의 제약과 단선적으로 보일 수 있는 플롯의 한계를 지워버렸다. 마르코의 동료이자 프로그래머인 벅 샌더스는 다양한 소리들의 질료를 모아 음악 아래 배치해두었고, 이를 베이스 삼아 덧입혀진 스코어는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인 반향을 이끌어냈다. 페이크 OST커버(좌), CJ 디지털 음원 커버(우) 영화상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쓰인 곡은 도끼를 든 갱들과 어두운 터널 속에서 혈전을 벌릴 때 등장하는 ‘Blackout Fight’다. 일방적으로 도륙당하다 성냥을 떠올리고 형세 역전을 일궈내는 흐름에 배치돼 있는데, 고요하던 엠비언트 사운드가 점차 고조되다 휙휙 몰아치는 스트링과 파워풀한 퍼커션이 가세해 절정에 치닫는 혼과 브라스가 순차적으로 어우러지는 이 곡은 진정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고 관객들을 흥분케 하는 묘미가 있다. 테마나 멜로디라 할 것 없이 단순무식하게 오스티나토를 위압적으로 몰아붙이는 큐이지만, 그래서 더 기차라는 배경이 도드라지고 대치라는 상황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트랙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처음 반란을 일으킬 때 흘러나왔던 ‘Requesting An Upgrade’와 메이슨을 처단하고 난 뒤 앞 칸으로 전진하는 장면에서 쓰이는 ‘We Go Forward’ 역시 쉽게 잊을 수 없는 큐들로 짧고 점층적인 미니멀한 사운드가 가진 위력과 효과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마르코 벨트라미는 특히 오케스트라에 각종 이펙트나 다양한 소리들을 접목시켜 종종 자신만의 특색 있는 사운드를 창출하는데, 주로 호러 영화에서 활용될 법한 효과들을 정극에 도입해 독특한 긴장과 염세적인 분위기를 묘사해낸다. < 맥스 페인 >과 < 허트 로커 > 등에서 사용돼 이미 검증된 바 있는 이 방식은 ‘This is the End’, ‘Axe Gang’, ‘The Seven’, ‘Steam Car’, ‘Snow Melt’ 등에서 언뜻 드러나며 음계가 표현해낼 수 없는 지점의 감성을 포착하는 동시에, 음향과 멜로디의 접점과 경계를 통해 황폐하면서도 위협적이고 복합적인 심상을 자아낸다. 시스템과 전복적인 세력 간의 충돌로 읽혀질 수 있는 ‘소리’와 ‘테마’의 충돌은 마르코 벨트라미가 그간 담당해온 여러 디스토피아 사운드트랙의 중추이자 근간인 셈이다. 반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Sushi’나 ‘Yona’s Theme’ 같은 서정적인 큐들의 배치는 다른 큐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모노톤 일색의 스코어에 일말의 휴머니즘을 설파한다. 금방 꺼져버릴 것 같은 성냥불이지만 온기와 밝음을 머금은 것처럼 적지만 분명한 어조로. 그는 최근작인 < 소울 서퍼 >나 <더 세션>을 통해 이런 종류의 감정에 대해 탁월하게 공감을 자아낸 바 있다.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This is the Beginning’은 영화 내내 유지해왔던 디스토피아의 톤을 뒤집어 그 희망적인 시선을 계속 이어주는 곡으로 할리우드 특유의 파워풀하면서도 큰 스케일의 관현악 사운드를 유감없이 접할 수 있는, 사운드트랙의 백미이기도 하다. 육중하면서도 스피디하게 달려가는 기차를 형상화한 듯한 리듬과 서사적인 구조는 물론 결말에 이르러서 기차 탈선의 느낌을 상징하는 금속성의 엠비언트 소리들의 충돌로 곡을 마무리 짓는 것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트랙리스트엔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맨 마지막 곡인 ‘Yona’s Theme’가 끝나고 나면 몇 초 지난 뒤에 사운드트랙의 이스터 에그로 마르코가 제일 처음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윌포드 찬가’의 데모 버전(그의 가족들이 직접 불렀다!)이 흘러나온다. 사운드트랙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삽입곡으로 등장하는 곡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단백질 블록을 만들어내는 칸에서 조리사가 틀어놓았던 음악은 하드록그룹 Cream이 부르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Strange Brew(수상한 제조)’이고, 식물원 칸에서는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클래식 중에 하나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이 흘러나온다. 사우나 칸에서는 Ray Noble의 ‘Midnight With The Stars And You’가 슬쩍 들리는데 영화 < 샤이닝 >의 엔딩곡으로 쓰였던 노래로, 봉준호 감독이 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헌정을 담아 선택한 곡이라고 한다. <설국열차>를 봉준호 감독의 베스트라 단언할 수 없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마르코 벨트라미 역시 <설국열차>가 최고작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필모 중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품었고, 세계적인 공감대를 공유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마르코 벨트라미 역시 생소한 아시아 영화에 도전했으며, 자신의 필모에서(최신작인 < 더 기버: 기억전달자 >까지 포함해) 가장 극대화된 디스토피아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끝에서 시작해 시작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갖는 힘은 언제나 크다. 그 울림을 고스란히 간직한 음악 역시 귀중하다. 마르코 벨트라미의 <설국열차>는 그런 에너지들이 충돌하고 폭발하며 힘차게 질주해대는 비장의 OST다. Blackout Fight Track List 1. This Is The End 2. Stomp 3. Preparation 4. Requesting An Upgrade 5. Take The Engine 6. Axe Gang 7. Axe Schlomo 8. Blackout Fight 9. Water Supply 10. Go Ahead 11. Sushi 12. The Seven 13. We Go Forward 14. Steam Car 15. Seoul Train 16. Snow Melt 17. Take My Place 18. Yona Lights 19. This Is The Beginning 20. Yona’s Th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