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이중 생활
- 감독
- 크레그 R. 벡슬리
- 제작년도
- 1994
- 출연
- 쉴리아 켈리, 레이첼 티코틴, A. 마르티네즈, 토니 아바테마르코, 잭 안드레오찌, 데이비드 앤드류스, 제임스 아론
© 코리아씨네마 똠얌꿍, 슌사쿠, 国, 國, 纳, 陆海铃, 宍倉紗弥, 髙橋, 﨑, 𠮷野, 辻, 齋藤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은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사회적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1] 『꼬방동네 사람들』(이동철, 1981)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개봉 당시 “갖가지 사연을 안고 모여 사는 판자촌 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언론의 호평을 받았으나 [2] 실제로 이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존재했다. “제작 신고 때부터 우여곡절을 겪고 10개월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3] 라거나 ‘신고 접수 후 <꼬방동네 사람들>의 경우는 1백 21일 만에 수리 통보를 받아 제작에 나서게 됐다’ [4] 는 기사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초반 ‘사회적 아픔’을 다루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대 상황 및 검열 제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모든 제작사는 시나리오와 영화 필름을 검열받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검열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신고 과정에서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이 정사 장면, 외설, 비속·저속한 대사 등으로 사회적으로 말썽이 일고 있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크게 브레이크에 걸리고 있다’ [5] 는 기사는 당시 이루어지던 검열 항목을 알려 준다. 특히 에로티시즘은 주요 검열 대상이었다. 그런데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사회적 아픔과 가난한 사람들을 재현하는 데 중심을 둔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 영화와는 결이 달랐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영화는 더욱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회성 짙은 영화’에 대해 시대는 매우 민감했고 영화는 결국 수정되어야 했다. 이는 시대가 승인하고 요청한 영화, 그리고 대중의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로서 이 작품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격동의 시대, 대중 영화가 직면한 시련 이 영화의 제작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사회적 격동의 시기와 겹친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 시대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 초기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나 문화 분야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고 저항운동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였다. 1984년 5차 영화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국영화와 영화산업 또한 이런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6] 이러한 상황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이 ‘사회 현실’을 다룬다는 게 문화 검열 주체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특히 원작인 이동철의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은 “청계천변으로 흐르는 썩은 오물, 똥물, 악취 나는 시궁창을 코앞에 둔 채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동네” [7] 를 배경으로 성매매 여성과 소매치기, 구두닦이 등의 온갖 도시 하층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산업화 시기 도시 하층민이 그 존재 자체로 불안과 오염의 가능성을 내포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정주하는 변두리가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서 배제된 불안정, 궁핍, 무질서, 비도덕, 비윤리적인 타락한 성벽처럼 묘사되었다는 점 [8] 을 감안할 때,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재현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전두환 정권 수립 초기 사회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 코리아씨네마 이러한 점은 영화의 검열서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원작 소설 속 ‘검은 장갑’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 명숙을 주인공으로 삼아 주요 인물들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그러나 문화공보부 산하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을 절망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도박 등 사회악을 합리화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민층 묘사에 있어 가급적 훈훈한 인정미를 부각시키고 착한 의지로 살아가는 모습에 역점을 둠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비속한 대사가 많고 가정(사회) 윤리 저해 장면, 소매치기 장면, 도박 장면, 사기 장면” 등이 문제가 되었다. [9] 결국 시나리오는 대폭 개작되었다. 이후 신고한 시나리오는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부분은 전체적으로 삭제”했다. 대신 “비록 고난과 역경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결코 불의에 타협치 않고 밝은 내일을 향해 참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그들의 착한 의지와 인정이 넘치는 삶의 현장을 영상으로 옮김으로써 원작 소설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를 밝게 승화시켜 사회 계몽적인 작품을 제작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10] <꼬방동네 사람들> 심의서류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회신” 중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으며 가정 윤리(순결성)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 또다시 제작사에 개작을 요구했다. 문제 장면으로 제시된 “가정윤리(순결성) 저해 장면,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 태도 함양 저해 장면, 사회 비리 고발 장면이 전체 장면 126씬 중 29%인 36씬”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1] 대대적인 개작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제작사는 “시나리오를 전체적으로 재검토, 대폭 순화하여 계도적인 작품으로 개작”해야 했다. 이로써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장면 묘사를 절제하고 가정 윤리를 저해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한편” 몇 가지 문제 장면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제작을 허가받기에 이른다. [12] 요컨대 시나리오 개작 과정은, 비교적 소설 원작에 충실했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계몽’과 ‘사회 정화’라는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바꾸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몽의 내용은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1980년대가 요청한 서민 가족의 삶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의 시나리오 개작과 영화 제작 과정에서 변화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빈민촌을 배경으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의 삶이 대거 축소되는 대신 검은 장갑 명숙( 김보연 )과 그녀의 전남편이자 아들 준일( 이재진 )의 아버지인 주석( 안성기 ), 그리고 현 남편이자 살인자인 태섭( 김희라 )이 주축이 된 가족 이야기가 극의 중심을 차지한다. ‘배감독이 당초 원작이 지닌 강한 사회성과 패기의 메시지를 그대로 영화화하려 했으나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네 차례나 개작 지시를 받아 다소 감상적으로 굴절된 느낌’ [13] 이라고 평가한 것도 가족 이야기가 애정 관계와 얽히면서 영화 속에 두드러지게 재현된 점과 관련된다. 둘째,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는 검은 장갑 명숙이 홀로 주석의 아이와 빈민촌에 남는 걸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에서 검은 장갑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주석이다. 영화는 주석이 과거 소매치기였던 삶을 청산하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부장으로 거듭나도록 한다. 가령, 영화에서 ‘가족 사진’을 고이 간직한 채 명숙과 준일 주변을 맴돌고 “남자한테 가정이란 자기 몸보다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며 명숙에게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거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꼬방동네를 떠나는 명숙과 준일을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 태우는 주석의 모습 등은 소설과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는 새로운 장면들이다. 이로써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당대 정권이 승인하고 요청했던 서민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 코리아씨네마 실제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로 이어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남성은 가족을 이끄는 권위의 상징이자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산업 역군이었다. 주석은 그러한 현실 가부장의 문화적 판본이었다. 특히 아버지 없이 방황하는 준일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는 주석의 윤리적 책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가부장으로서 주석에게는 준일을 훈육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태섭이 살인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자수하기 위해 떠나는 것도 주석 가족의 삶이 사회적 안정과 질서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로써 영화는 1980년대 사회 안정과 근대화를 겨냥하는 계몽적인 가족 영화로서 대중과 만나게 된다. 한편, 당시 이루어진 문화 검열 과정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영화 속 빈민촌과 아파트의 풍경이다. 사실상 공간이 영화 속에서 가족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원작에서 드러나듯이 도시의 변두리 빈민촌은 더 이상 밀려날 데가 없는 도시 서민들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장소였다.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도 서민들이 살아가는 변두리 빈민촌의 풍경은, 가까운 거리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의 모습과 대비되어 주변화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시각화했다. 나아가 ‘이러한 대비적 장면은 그 자체로서 이미 도시 공간의 구조와 그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드러냈다.’ [14] 그런데 당시 아파트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주석을 중심으로 새롭게 꾸려질 가족에게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어쩌면 그들이 당도할 미래의 안락한 가족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파트’와 ‘빈민촌’의 선명한 대비는 양가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작가 황석영은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발문’에서 이 작품을 두고 작가 이동철이 스스로 판자촌에서 살아오는 동안 겪고 본 자기 동네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엮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15] 당대 삶의 현장성을 획득했던 소설은 출판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화는 달랐다. 배창호 감독의 야심에 찬 데뷔작은 사회 안정에 도움이 안 되는 문화 생산물로 여겨졌다. 영화는 집단 대중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였던 만큼 다른 문화예술에 비해 엄격한 관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당대 문화 계몽은 현실의 모순이나 불합리를 드러내기보다는, 일반 대중이 공감할 만한 서민 가족의 삶을 통해 근대화의 욕망을 환기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다가 영화 속 메시지는 근대화의 긴 터널을 통과하던 대중의 욕망과도 공명하는 데가 있었다. 따라서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근대화를 위해 문화적 에너지를 공급했던 영화의 역할과 대중 욕망의 양상, 그리고 문화 제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코리아씨네마 *** [1] “사회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현암사가 이 시대의 양심에 호소하는 세 권의의 장편소설!”, 《경향신문》, 1981. 9. 28. [2]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3] “<꼬방동네 사람들> 제작 완료 기구한 운명 헤치는 여인 그려”, 《경향신문》, 1982. 7. 15. [4] “제작자협 당국 영진공 불황 타개 간담회 ‘영화 제작 행정 규제 융통성을...’”, 《경향신문》, 1982. 5. 3. [5] 위의 글. [6] 김동호 외, 『한국영화 정책사』, 나나출판, 2005, 258~259쪽. [7] 이동철, 『꼬방동네 사람들』, 현암사, 1981, 7쪽. [8] 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현실문화, 2011, 107쪽. [9]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0]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1]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2]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3]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14] 정태수, 「1980년대 한국 영화에서의 생산의 공간(1980-1987)」,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 공간Ⅰ(1980-1987)』, 박이정, 2018, 28쪽. [15] 이동철, 앞의 책, 372쪽.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
사진: 창비 박사학위논문 제출 기한이 약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 나는 여전히 명확한 주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남은 시간을 꾸준히 쓰기만 해도 눈사태처럼 쌓여 있는 백지를 채우기에는 준비해둔 것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가득했다. 그것은 대학원 시절 내내 또는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누적되었던 불만과 환멸, 분노와 냉소 같은 것이었다. 십여 년 동안 대학원의 골방에 묵으며 쌓인 이런 정념이 내가 가진 유일한,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자원이라고 주문처럼 되뇌면서 대학에 들어온 이래로 보고 겪어온 장면들을 수없이 복기하곤 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참여정부의 탈권위주의적인 기조와 더불어 월드컵 이후의 희망과 자신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 등 변화에 대한 기대와 전망 속에 펼쳐졌다. 사회 전반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 역시 아직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페미니즘, 장애인권, 신자유주의 비판 등 여러 진보적인 담론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유통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열린 사회’의 환상을 깨는 사건도 많았다. 이라크 파병과 노동자들의 죽음, 대학의 기업화, 한미 FTA 등. 주변에는 한나라당만큼이나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명박이 당선되던 날의 그 우울함을 기억한다. 숭례문 화재와 명박산성, 용산참사와 쌍용차, 노무현의 죽음,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의혹 등으로 점철된 5년. 그리고 이어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는 이미 무너진 사회가 물에 잠기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그런 이명박근혜 시대를 기어이 우리 손으로 끝내던 그때 그 광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만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품었었는지. 그런데 드넓은 광장에 촛불이 물결처럼 넘실대던 그 ‘스펙터클’ 이후 한국사회는 과연 얼마나 더 좋은 사회가 되었는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냈는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켜낸 공(功, merit)을 가져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의 자녀는 어떻게 대학에 가고 어떻게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가? 그들은 여성 비서에게 무슨 짓을 하는가? 이토록 ‘민주적인’ 사회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죽어가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구의역 김군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왜 죽었는가? 왜 동성애는 (심지어 ‘민주’당 대선 후보에 의해서도) 반대되는가? 왜 장애인은 아직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싸워야 하는가?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주주의의 ‘민’에 속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 민주주의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가 이대로여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학문의 언어로 던지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가능케 한 것은 하나의 은유였다. 역사는 극(劇, drama)이라는 것. 가깝게는 지난 2024년 12월 하룻밤 사이에 계엄 선포와 해제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국내외 언론에서는 K-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지만, 그 이전부터도 한국 현대사에는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그리고 이미 만들어져 관객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내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영화 같은 역사, 드라마틱한 역사를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 중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한 편의 드라마라는 이 은유를 단순한 수사로서가 아니라 진지한 발판으로 삼았다. 만일 역사가 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러하듯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은 좋은 극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이런 극을 보며 감동해도 좋은가? 계속해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자랑스러워해도 되는가? (상) <오! 꿈의 나라>, <명성, 그 6일의 기록> 중 / (하) <꽃잎> 중 / © 이은, 푸른영상,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이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먼저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 혹은 드라마가 어떤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봤다. 역사라는 극을 구상하는 작가로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장면을 기억하고 기대하는지, 그리고 극에 참여하여 연기하는 배우로서 우리가 어떤 장면을 상연해왔는지 살펴봤다. 1980년대를 한국 민주주의의 가까운 기원으로 설정하고, 이 시기에 생산되었거나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사진, 소설, 시, 그림, 노래, 수기 등을 되는대로 수집하여 보고 읽고 들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와 5․18기념재단 사진아카이브 를 매일 들락거렸고, 대학 도서관과 국회도서관, 유튜브,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등을 뒤져서 < 오! 꿈의 나라 >(이은, 장동홍, 장윤현, 1989)나 < 꽃잎 >(장선우, 1996), < 명성, 그 6일의 기록 >(김동원, 1997) 등을 보았다. 임철우, 공선옥, 김영현, 공지영, 권여선 등의 소설을 읽었고, 각종 도록과 온라인 갤러리에서 오윤, 신학철, 홍성담, 강요배, 임옥상 등의 민중미술 작품을 찾아서 보았다. 1980년대의 여러 일간지를 교차하여 훑어보고 나무위키까지도 활용하면서 각종 사건을 연도별·월별로 숙지했고, 사건의 장소를 지도와 영상에서 찾아보거나 직접 가보기도 했다. 길을 오갈 때는 꽃다지부터 안치환, 윤선애, 이성지, 그리고 김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온갖 민중가요를 들었다. 인용을 위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2017)나 『소년이 온다』(2014)를 다시 들춰볼 때면 책을 덮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일쑤였고 영락없이 눈물을 쏟곤 했다. 낮에는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돌보며 그 생명력에 감격하다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는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훼손된 주검 사진을 보며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는 일은 연구를 위해 각종 표와 숫자로 이루어진 자료(data) 속에 파묻히는 작업과는 달랐다. 그것은 연구이기 이전에 한국에서 사회학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역사적 교양을 뒤늦게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나보다 앞서 세상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 역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화적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간혹 주변에서 나의 근황을 물을 때면 나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다면서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볍게 답하곤 했지만, 그것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망(webs of significance)”에 동참한다는, 진지한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었다. [1]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나아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신념처럼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보았거나 기억하는 장면들, 그리고 내가 본 다양한 자료의 페이지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마다 등장하는 것은 어떤 몸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때로는 곤봉과 개머리판에 맞아 터지고 덜렁거리는 몸, 벌벌 떨며 밀실의 욕조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몸, 해체되고 허물어진 채 부패해가는 몸이었고, 때로는 뒷사람에 밀려 앞으로 앞으로 넘실대며 나아가는 몸, 주변의 건물을 울림통 삼아 웅장한 구호와 노래를 뿜어내는 인파의 거대한 몸집이었다. 그리고 이런 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이런 몸의 이미지를 보는 나의 몸 역시 차분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언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는 온몸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를 계속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드라마이지만,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과연 살만한 것이었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김대중, 2009년 1월 7일 일기)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진: 네이버 영화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박하사탕 >(이창동, 1999) 중 김영호( 설경구 )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몸과 마음에 회복될 수 없는 흔적을 가진 이들이 부지기수이며,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도 허다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찬란한 역사였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 역시 축복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이런 민주주의를 계속할 순 없을 것이다. 마냥 자랑스러워하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물론 무대에서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객석을 박차고 나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주역’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대단한 감동을 주는 자랑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영화 < 1987 >(장준환, 2017)에서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져요?” 하고 냉소하던 연희( 김태리 )가 선배 이한열( 강동원 )의 죽음을 보고 회심하여 광장으로 달려나가면서 민주주의라는 극의 국면 역시 결정적으로 전환되었음을 현실에서 경험한 이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라는 극에 배우로서 참여하지도 않았고, 객석에서 이러한 극을 보며 감격하지도 않았던, 민주주의의 극장 밖에서 살아온 이들도 있다. 민주주의의 주역들이 민주화된 사회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낯선 것이었고 남의 것이었다. 이들의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부정하기까지 했던 자들이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의 주인공 아니냐’며 함께 무대로 올라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자고 호소한다면 극장 밖에선 아마 이런 목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1987>, <극장전> 중 / 사진: 네이버 영화 , ㈜영화제작전원사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자긴 이제 재미 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 < 극장전 >(홍상수, 2005) 중 영실( 엄지원 )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런 민주주의를 계속해나갈 수도,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의 작가이자 배우로서 우리는 죽음-결집의 레퍼토리와 함께 몸과 마음이 쪼개졌다가 커지기를 반복했다. 스펙터클로 점철된 이러한 영화가 주는 극적 쾌감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우리 삶의 보금자리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덜 자랑스럽고 덜 극적이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희망하며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내란과 탄핵을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수호의 이력을 다시 한 줄 추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이 최근의 역사를 완전무장 하고서 국회로 쳐들어온 계엄군이나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은 시민들이라는 스펙터클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은 소수자와의 연대, 성평등, 노동 있는 민주주의, 평화와 안전, 기억과 애도 등을 외쳤다. [2] 이러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거기에 힘이 보태진다면, 크고 대단한 장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모두가 아끼는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다른 민주주의를 향한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 [1] 막스 베버,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 김덕영 옮김, 길, 2021, 293쪽; 클리퍼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 문옥표 옮김, 까치, 1998, 13쪽. [2] 유현미․김이선․김정환․박상은․장진범, 「광장에서 만난 세계: 윤석열 퇴진 집회 시민발언문 분석」, 『경제와 사회』 146.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김정환(사회학자) l 문화사회학, 사회이론을 전공 분야로 삼고 있다. 『연구자의 탄생』(2022, 공저),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2020, 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신자유주의적 상상』(2026, 공역), 『사회론』(2015) 등의 책을 옮겼다. 사회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문화 현상의 해석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전개와 변화를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근·현대 한국사회를 관통한 균열과 진통의 시간을 영화에 남은 흔적으로 기억합니다. 장길수 감독의 < 은마는 오지 않는다 >(1991)는 안정효 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이후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국내 백상예술제에서 작품상 등 5개 부문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제15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여 언례 역을 맡았던 이혜숙 배우가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장길수 감독이 각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1] 장길수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제작 동기로 한국과 미국 문화의 갈등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그려 보려 애썼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2] 이에 따르면 영화는 미국과 한국의 문화 충돌과 갈등 문제를 유엔군 병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은 후 ‘양공주’로 전락해 가는 순박한 시골 여인의 삶을 통해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순박한 시골 여인이 양공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즉 ‘한국전쟁’과 ‘유엔군 참전’이라는 조건은 이 영화를 문화와 역사라는 두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전쟁이 낳은 뼈아픈 존재, ‘양공주’라는 타자의 출현 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작가 안정효는 작품에 형상화된 언례(이혜숙)가 사실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던 평범한 자신의 어머니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한국전쟁 당시 수없이 희생되었던 여성 중에서 발견된 존재이자 이름이었다. “언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51년 여름, 지금은 부천이라고 이름(조)차 바뀌어버린 소사읍 심곡리에서였습니다. (중략) 내가 언례씨를 발견한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러 왔다는 유엔군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하지 않으려고 (날)마다 도망을 다니던 내 어머니와 (다)른 많은 여자들 한가운데서였습니다. [3] ” (괄호 표기 필자)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아픈 부분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내몰린 여성들에게 다양한 희생이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외국군 주둔과 전쟁으로 인한 생활난은 여성으로 하여금 몸을 팔아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게끔 강요”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부녀자들이 생활난으로 일반 ‘양공주’나 매춘 행위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준다. [4] 이러한 당대 상황과 위의 인용문 내용을 겹쳐 읽어 보면 언례는 전쟁이 낳은 뼈아픈 존재들을 호명하는 대표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통에 남편도 없이 홀로 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먹고 살기 위해 양공주의 삶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그녀들의 목소리로 직접 증언되어야 했으나 지난 몇십 년 동안 사회적 배척과 배제 속에 잠들어 있었다. “전쟁미망인, 이산가족 여성, 불구가 된 남편, 그리고 ‘양공주’라고 불린 기지촌 여성들은 1950년대 결여된 가부장성을 홀로 지탱하며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까지 견뎌야 했던 불안한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었다” [5] 라는 지적은 1950년대 전후 여성들이 마주해야 했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따라서 언례와 양공주의 삶은, 잊힌 채 침묵 당해 왔던 타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며 역사의 뒤안길에서 귀환하는 궤적을 보여 주는 사례이자, 한국전쟁과 문화 식민의 공간이 어떻게 한국의 영토와 신체, 그리고 문화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면서 현재에 이르도록 했는지에 대한 기원을 되짚어 보는 문화적 계기로 작용한다. 이를 잘 말해 주듯 소설과 영화는 한국전쟁에서 출현한 양공주가 어떻게 전쟁을 통해 생산되고 문화적 타자로 호명되어 갔는가에 관심을 둔다. 양공주의 탄생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조건과 문화적 침식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비극으로 조명하는 방식은 허버트 미트갱(Herbert Mitgang)이 미국에서 출판한 안정효의 소설을 두고 “반미 소설이 아닌 반전 소설”이라고 평가한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6] 전쟁은 물질적 파괴뿐만 아니라 문화적·정신적 파괴 또한 초래함으로써 휴머니즘에 대한 깊은 비판과 성찰을 유도한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양공주로 호명되는 언례의 변화 과정은, 이를 둘러싼 전쟁과 휴머니즘의 문제를 부각하면서 ‘반전 소설’이자 ‘반전 영화’로서의 새로운 지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장길수 감독의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비로소 양공주의 삶이 형성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적극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극중 언례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한진 /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양공주의 삶을 통해 만나는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의 그늘 개봉 당시 이 작품은 “한국 속의 아메리카니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성 영화”로 소개됐다. [7] ‘아메리카니즘’이라는 문화적 현상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미군 주둔이 본격화되면서 1950년대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그런데 영화는 양공주와 ‘양키 문화’를 시각적 흥밋거리로 재현하기보다는 한국전쟁과 함께 나타난 아메리카니즘을 전쟁과 휴머니즘, 그리고 문화 침범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와 함께 드러낸다. 금산리에서 평범한 시골 촌부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언례의 삶이 급격하게 훼손되는 데는 유엔군의 참전과 전쟁에 휘말린 금산리 사람들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 태도가 크게 작용한다. 언례가 유엔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그녀는 황훈장( 전무송 )의 말을 통해 드러나듯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마땅한’ 더러운 존재가 된다. 그녀를 배척하는 금산리 사람들의 태도 이면에는 순결한 신체와 영토가 훼손당한 데 대한 문화적 충격과 유교적인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언례의 집과 신체는 전쟁으로 초래된 영토적 파괴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언례가 양공주로 변화하는 과정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급변 속에 끼어있는 존재, 즉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이’와 ‘경계’의 존재가 놓인 문화적 곤경을 집약해서 보여 준다. 이는 그녀가 경계 공간에 놓여 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금산리의 집과 양공주의 집은 전통 공간과 ‘양키 공간’으로 구분된다. 언례는 이 두 영역을 오감으로써 전쟁 전-전쟁 후, 전통-근대, 순수-오염, 선-악, 유교 문화-양키 문화 사이에 놓인 상징적 존재로 변모한다. 금산리의 집과 양공주의 집에서의 언례 (사진: 한진 /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문화 침범의 경계에 놓여 있는 언례에게 목소리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아들 만식과 황훈장, 그리고 찬돌 등의 남성적 시선이 영화 곳곳에서 규율 권력으로 출현하지만 언례와 용녀( 김보연 ), 순덕( 방은희 )은 삶에 대한 발언권을 가진 존재들로 생동감을 지닌다. 게다가 이는 양공주들을 문화 침범의 ‘쓰레기들’로 분류하려는 폭력적인 권력자들의 비윤리적 태도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문화적 저항이 된다. 영화에서는 미군의 쓰레기를 뒤지거나 구걸하고 쓰레기 더미를 차지하기 위해 패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여러 차례 재현되는데, 이는 한국전쟁이 초래한 아메리카니즘’이 한국인의 삶에 가져온 문화적 오염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들이다. 이로써 양공주의 삶과 한국인의 삶은 문화적 ‘오염’이라는 측면에서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양공주의 삶을 비판할 만한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을 경유하면서 ‘전쟁’과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의 주제로 접근한다. 미군의 주둔과 함께 시작된 ‘양공주의 삶’과 ‘쓰레기를 줍는 삶’은 한국전쟁이라는 급격한 변화 속에 내몰린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마주한 시대의 현실이자 곤경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신들을 배척하는 마을 사람들과 갈등하는 언례와 용녀, 순덕의 목소리와 저항이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질 때 이는 전쟁과 휴머니즘을 둘러싼 확장된 문화적 보편성과 현실성을 획득하는 길을 열게 된다. 마을 사람들과 대립하는 용녀와 순덕, 쓰레기를 줍던 마을 아이들의 패싸움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러한 영화 재현 양상은 사실 보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영화사에서 양공주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신상옥 감독의 영화 < 지옥화 >(1958)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양공주 쏘냐( 최은희 )는 육체적인 매력과 화려한 미제 사치품으로 무장한 채 남성들을 유혹하거나 미 군수품을 밀수하는 데 협력하는 ‘돈’과 ‘욕망’의 화신으로 이미지화된다. 영화 속에서 기지촌 양공주로 재현되는 줄리( 강선희 )에게 그나마 전쟁 전 순수했던 과거 이야기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순결한 동식( 조해원 )과의 결합을 위해 설정된 것이라고 할 만큼 주변적이고 작위적이다. 이는 영화 <지옥화>가 전통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당대 문화 이데올로기를 영화적으로 전유하기 위해 양공주를 동원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따라서 영화 속 양공주의 삶은 현실성을 획득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장길수 감독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 와서야 비로소 양공주의 삶이 현실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의 단단한 문화적 결합이 독재정권의 몰락과 함께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그동안 침묵했던 타자들의 출현을 알리면서 해방의 길을 모색하던 때 당도한 이 영화는,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의 거친 파도 속에서 그동안 잠자고 있던 타자들의 삶을 증언하는 대표적 작품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레이스 M. 조는 책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2008)에서 ‘양공주는 단지 죽거나 감상적으로 과거를 일깨우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현재에 생산적이고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유령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8] 실제로 양공주로 오랫동안 침묵 당한 삶을 산 어머니를 둔 그녀에게 양공주는 잊힌 과거를 현재로 다시 불러오는 주체적 존재들이다. 문화적 차원에서 양공주에게 다시 목소리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레이스 M. 조의 연구와 저서들은 이를 위한 후속 세대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잊힌 자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증언’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당도하고 있다. 그리고 <은마는 오지 않는다>야말로, 이러한 문화적 실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 [1] “방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몬트리올 영화제 2부문 수상”, 《동아일보》, 1991. 9. 3. [2] “인터뷰 몬트리올 영화제 각본상 수상 영예 장길수 감독 ‘방화 문제의식 세계 수준’”, 《경향신문》, 1991. 9. 4. [3]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언례에게/안정효 전쟁과 폭력의 희생양이었던 한국 여인 모습 알리려 했소”, 《동아일보》, 1996. 4. 30. [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전쟁과 사회 구조의 변화』, 1999, 41쪽. [5] 김학재 외,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50년대』, 창비, 2016, 71쪽. [6] “Books of The Times; Korean’s Novel Is Anti-War But Anti-American”, The New York Times , 1990. 2. 21. [7] “<개벽>, <은마는...>, <산산이부서진...>, 세계 영화 시장 ‘노크’”, 《조선일보》, 1991. 2. 22. [8] Grace M. Cho,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 University of Minesota Press, 2008, p. 18.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