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 감독
- 홍상수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김상경, 추상미, 예지원, 김학선, 전국향, 신현종, 최희라, 안길강, 김범춘, 이재희, 김보현, 구자승, 유태균, 한주환, 심지은, 최유리, 윤기애, 오주석, 이지훈, 권은수, 임춘자, 이방희, 이명진, 이유신, 김정희
2004년 | 튜브픽쳐스 감독, 각본: 김수현 | 각색: 김소정 김봉훈 | 제작: 황우현 황재우 | 촬영: 김철주 | 미술: 박혜성 | 음악: 이병훈 CAST 순이: 예지원 | 963: 김석훈 | 뭐시기: 정재영 | 개코: 박선우 | 장수로: 장선우 | 막내: 박희순 사연은 이렇습니다. 박수무당인 장수로(장선우)는 자신을 찾아온 여인네들에게 씨를 퍼트렸고, 그래서 배다른 형제들이 탄생합니다. 퀵서비스맨 963(김석훈), 레카차 드라이버 개코(박선우), 그리고 조폭인 뭐시기(정재영). 여기에 순이(예지원)이 가세하며 가족을 이룹니다. 순이는 길에서 뻥튀기를 팔다가 우연히 개코를 만나 가족이 되었고, 장수로는 젊은 순이에게 연정을 품죠. 이처럼 < 귀여워 >는 어느 콩가루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실외와 실내 모두 이뤄졌습니다. 실외는 2002년 11월, 실내는 2003년 1월이었는데요, 영화 개봉이 2004년 11월이었던 걸 감안하면 꽤 간격이 큽니다. 원래는 2003년 5월 개봉이었는데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죠. 공개된 장면은 뭐시기가 아버지 장수로를 찾아온 신입니다. 동네 평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데요, 딱 봐도 건달기가 줄줄 흐릅니다. 역할을 위해 실제 건달과 합숙하면서 연기를 준비했는데 단 며칠 만에 완벽하게 ‘조폭화’되었다고 하더군요. 뭐시기를 바라보는 장수로 역의 장선우입니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파와 콩나물 봉지를 들고 있죠. 사실 <귀여워>의 가장 놀라운 캐스팅은 장선우입니다. 김수현 감독은 장선우 감독의 < 너에게 나를 보낸다 >(1994) < 꽃잎 >(1996) < 나쁜 영화 >(1997) 연출부 출신인데요, 자신의 데뷔작에서 스승을 배우로 모셔온 셈이죠. 원래는 한진희 씨가 맡을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지연되면서 무산되었고, 이때 튜브픽쳐스의 황우현 대표가 ‘장선우 캐스팅’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의외로 주변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역할 제안을 하게 되었으며, 처음엔 난처해하던 장선우 감독은 농담처럼 “한번 망해보자”며 승락했다고 합니다. 뭐시기가 앉아 있는 평상 근처의 풍경입니다. 황학동 철거촌 주변 아파트죠. 김수현 감독은 말합니다. “철거는 서울의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죠. 황학동 아파트는 60년대 후반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부의 상징이었는데 10년도 못 가 철거가 거론됐어요. 서울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성격인데요, 끊임없이 변화가 이뤄지지만 실상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어요. 세우고 부수기만 반복할 뿐이죠.” <귀여워>는 지금은 사라진 폐허의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서울에 대한 기록의 측면에서도 가치를 지닙니다. <나쁜 영화> 연출부를 끝내고 일란성 세쌍둥이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던 김수현 감독은, 장수로와 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이야기가 쉽게 풀렸고 그 결과물은 <귀여워>가 됐습니다. 963의 퀵서비스나 개코의 레카차 운전사는 모두 감독이 직접 경험했던 직업이라고 하는데요, 생계를 위해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야생적 느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시기 예지원은 < 생활의 발견 >( 홍상수 , 2002) 이후 독보적인 아우라를 지니게 된 배우였죠. 그녀에게 ‘순이’는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안성맞춤 캐릭터였습니다. 좁은 아파트 복도에서 촬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 실내 장면은 양수리 세트에서 촬영되었습니다. 2003년 1월에 개봉된 세트 촬영 현장입니다. 밖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둘째 개코가 발톱을 깎으면서 맞이합니다. 이 역할을 맡은 배우가 왠지 낯익다고 느껴지신다면… 맞습니다. ‘하얀 겨울’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남성 듀오 ‘미스터 투’의 멤버 박선우입니다. 김수현 감독의 동국대학교 영화과 후배인데요, 파격 캐스팅을 통해 이 영화로 데뷔해 신인답지 않는 노련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박선우는 영화음악을 맡기는 줄 알고 연락을 받자마자 김수현 감독에게 달려왔다고 하는데요, 기다리는 건 ‘개코’라는 캐릭터였습니다. 이날 963은 오토바이에 순이를 태우고 질주하다가 함께 집에 들어오는데요, 순이를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하는 장수로는, 아들에게 순이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며 아들의 뒷통수를 갈깁니다. 약간은 비뚤어지고 냉소적이면서 내성적인 963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연기하기 가장 까다로운 역할일 텐데요, 김석훈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역할을 해냈습니다. 집안 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구조가 매우 특이합니다. 철거촌에 있는 집인데. 집 안도 철거되어 있는 셈이죠. 좁은 세트 안에서 앵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촬영을 했습니다. 당시 예지원의 매니저는 지금은 고인이 된 하용수 였습니다. <귀여워> 시나리오를 읽고 “혹시 예지원이라는 배우를 잘 알고 쓴 시나리오냐?”고 물을 정도로 적역이었다고 하네요. 배우 역시 순이와 자신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준비 과정부터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었고 현장에서 감독에게 가장 힘이 되어 준 배우였다고 합니다. 당시 정재영은 < 킬러들의 수다 >( 장진 , 2001) < 피도 눈물도 없이 >( 류승완 , 2002)로 조금씩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하며 거친 마초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말끝마다 “뭐시기”라는 말을 붙이는 뭐시기는 철거반을 이끄는 건달인데요, 정재영은 거의 완벽하게 역할을 해냅니다. 장수로의 부스스한 헤어스타일도 섬세한 작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장선우의 연기에 대해 현장 스태프들은 “연기와 연기 아닌 것의 경계에 서 있는 묘한 느낌의 연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김수현 감독은 매우 꼼꼼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감독은 <귀여워>가 결국은 “네 남자가 순이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영화”라며, 남자들의 그 귀여운 모습이 <귀여워>라는 제목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감독은 < 창피해 >(2011) < 우리 손자 베스트 >(2017) 등을 내놓았습니다. 김수현 감독은 말합니다. “남자들은 무엇인가 계속 이뤄내려고 하죠. 세상이든 자신이든 끊임없이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정작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반면에 순이는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가벼운 사람인 것 같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요. 그녀는 변화를 주도하지 않고, 상대에 반응하면서 변화를 이끌어내죠. 남자들이 뭔가 이루려고 아등바등해서 세상이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자연에 동조하며,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대안을 보여주는 모델이 순이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봉준호 | 원작: 김광림 | 각본: 봉준호, 심성보 | 제작: 차승재 | 촬영: 김형구 | 프로덕션 디자이너: 류성희 | 음악: 타로 이와시로 CAST 박두만: 송강호 | 서태윤: 김상경 | 조용구: 김뢰하 | 신 반장: 송재호 | 구 반장: 변희봉 | 권귀옥: 고서희 | 박현규: 박해일 2000년 이후 한국영화에서 가장 빛났던 해는 언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2003년을 꼽고 싶습니다. 1999년 < 쉬리 >( 강제규 ) 이후 이른바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한 한국영화는 2003년에 놀라운 다양성을 갖추게 됩니다. 일단 2003년에 나온 한국영화 주요작 리스트를 살펴보겠습니다. < 동갑내기 과외하기 >( 김경형 ) < 싱글즈 >( 권칠인 ) < 바람난 가족 >( 임상수 ) < 선생 김봉두 >( 장규성 )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이재용 ) < 실미도 >( 강우석 ) < 오! 브라더스 >( 김용화 ) < 올드보이 >( 박찬욱 ) < 장화, 홍련 >( 김지운 ) < 지구를 지켜라! >( 장준환 ) < 클래식 >( 곽재용 ) < 황산벌 >( 이준익 )… 코미디, 로맨스, 호러, 스릴러, 드라마, 사극, 멜로 등 거의 모든 장르가 흥행작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 살인의 추억 >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현장 공개는 2002년 10월에 있었습니다. 해남 땅끝 마을이었는데요, 영화에선 30초 조금 넘게 나오는 단 두 컷을 위해 수십 명의 제작진이 그 먼 곳까지 간 거였죠. 취재진이 아침 일찍 광화문에서 모여서 현장까지 가는 데 5시간 가까이 걸렸던 걸로 기억 납니다. <살인의 추억>은 촬영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졌는데요, 그 중 ‘끝판왕’이 바로 땅끝 마을 촬영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 취재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서울에 도착했을 땐 자정이 넘었던걸로 기억납니다. 먼 길을 가긴 했지만, 공개된 장면은 간단합니다. 서태윤(김상경)은 갈대밭에 사체가 있을 거로 예측합니다. 서류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그래서 대규모 수색을 벌이지만,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는 길 한 켠에 차를 세우고 실뜨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서태윤과 박두만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장면이죠. 간단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슈퍼크레인을 사용한 이 장면의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컷을 끊지 않고 하나의 테이크 안에 그 모든 상황을 담아야 했기 때문이죠. 감독들에게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현장에서 봉준호 감독은 마치 친절한 선생님 같았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범죄영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아마도 데뷔작인 < 플란다스의 개 >(2000)부터 시작됐을 텐데요, <살인의 추억>에 대해선 “1980년대를 재현하되 기억에 의존한 묘사가 되기를, 그래서 현재와의 거리감은 더 증폭되기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장의 든든한 베테랑, 김형구 촬영감독과 이강산 조명기사입니다. 두 분의 파트너십은 김성수 감독의 영화에서 빛을 발했는데요. 단편 < 비명도시 >(1993)부터 시작해 < 비트 >(1997) < 태양은 없다 >(2000) < 무사 >(2001) < 영어완전정복 >(2003)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 괴물 >도 두 장인의 콜라보였고요. < 아름다운 시절 >( 이광모 , 1998) < 박하사탕 >( 이창동 , 2000) < 봄날은 간다 >( 허진호 , 2001) < 역도산 >( 송해성 , 2004) 등도 김형구-이강산의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강산 조명기사는 2006년 52세의 젊은 나이에, <괴물>을 유작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인의 추억> 현장엔 외국인 스태프가 있었습니다. 조명부의 무라치 히데키 씨는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허진호)를 보고 한국영화에 매료되었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살인의 추억> 현장까지 이르렀습니다. 실뜨기는 원래 시나리오엔 없었던 부분인데, 촬영 당일 아침 봉준호 감독이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틈나는 대로 실뜨기를 연습했는데요, 여기엔 김상경도 가세해 선배 김뢰하에게 실뜨기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날 김형구 촬영감독은 거의 온종일 크레인 위에 있어야 했습니다. 유려한 카메라로 갈대밭을 훑어 내려가는 컨셉트 때문이었죠. 한편 키 큰 갈대밭 때문에 슬레이트 치는 게 쉽지 않았는데요, 갈대밭 높이 때문에 전경으로 등장하는 엑스트라도 175cm가 넘는 사람들로만 동원해야 했습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살인의 추억>엔 당시의 물건들이 꼼꼼하게 등장합니다. 경찰차는 대우 맵시 차종입니다. 그리고 전경 버스 내부의 모습입니다. 새삼 놀라운 건, <살인의 추억>은 김상경의 ‘겨우’ 두 번째 영화라는 점이죠. 첫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 생활의 발견 >(2002)이었는데요, <살인의 추억>을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홍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김상경에게 봉준호 감독 한번 만나 보라며 “<살인의 추억>이 네 두 번째 영화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영화에선 송강호가 선배 형사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김뢰하가 선배입니다. 한편 이날 촬영 때 김뢰하는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요, 실뜨기 장면을 잘 보시면 조용구 형사가 사탕을 먹고 있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계속 당을 섭취해야 했던 김뢰하의 몸 상태 때문에 만들어낸 영화적 설정이었다고 하네요. 늦가을은 꽤 일찍 해가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아직 촬영 분량이 남았는데, 서서히 석양이 지고 있습니다. 갈대밭 쪽에서 뭔가 찾았다는 고함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립니다. 실뜨기를 하던 두 사람은 일어서서 그쪽을 바라봅니다. 또 한 명의 희생자, 독고현순의 발견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홍상수 의 열아홉 번째 영화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에서 독일 함부르크 해변에 서 있던 영희( 김민희 )를 업고 간 (1부의) 검은 옷의 남자는 그녀를 (2부의) 강릉에 데려다 놓는다. 그곳엔 폐인처럼 지내다 겨우 신작 준비에 들어간 영희의 옛 애인인 감독 상원( 문성근 )도 와 있다. 사실 홍상수에게 강릉은 낯선 곳이 아니다. 그가 영화에서 공간이 아닌 ‘장소’를 선택해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 선택은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영화 < 강원도의 힘 >의 주인공 지숙( 오윤홍 )도 강릉을 두 번 찾아간다. 지숙의 (첫 번째) 강릉행 여정은 상권( 백종학 )에 의해서 느슨하게 반복된다. 그런데 상권이 지숙과 같은 강릉행 기차를 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관객들은 지숙의 이야기(편의상 1부)와 상권의 이야기(편의상 2부)를 포개 놓고 ‘부지런히’ 빈칸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다. 지숙 일행이 지나쳤던 여자에게 상권은 ‘인상이 깨끗하다며’ 지분대고, 1부에서 사고사로 알려졌던 여자의 죽음은 2부에서 상권의 신고로 인해 살인 사건으로 밝혀진다. 낙산사를 찾은 지숙이 남긴 기와불사 메시지(‘어머니 건강하세요’) 역시 2부에서 상권이 발견하고, 지숙이 집 앞에서 발견한 낙서(‘조금 더 긴 호흡으로 기다리자’)를 상권이 썼다는 것도 관객들은 나중에 알게 된다. 영화는 1부에서 던진 질문을 2부에서 답하기도 하고, 1부에서 무의미하게 보였던 것들의 의미를 2부에서 채워 주기도 한다. 두 개의 시간이 교차하고 공간이 중첩되면서 만들어낸 (반복과) 차이를 발견하고, 그 공백을 능동적으로 메우는 것은 사실 홍상수 영화를 보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부지런한’ 관객들은 이후 17편의 영화를 거쳐오면서 열심히 학습해 왔다. 실제로 그 과정은 너무나 매혹적이라 관객들은 홍상수가 만들어 놓은 미로에 기꺼이 빠져들곤 했다. 홍상수의 영화들 20편 가까운 영화를 거치면서 홍상수 의 ‘차이와 반복’도 발전(혹은 변주)을 거듭해 왔다. 같은 사건이 서로 다른 인물들에 의해 반복 재현되면서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오! 수정 >) 꿈이나 판타지를 경유하여 반복되기도 하며(< 다른 나라에서 >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 서로 다른/같은 인물들이 동일한/다른 공간을 반복하면서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강원도의 힘 > < 생활의 발견 >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 하하하 >). 어떨 땐 현실이 영화를 반복하기도 하고(< 극장전 >), 영화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시간’이 반복되기도 하며(< 자유의 언덕 >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유사한 사건을 모르는 척 서로 다른 인물들이 반복하기도(< 북촌 방향 >), 서로 다른 사건이 같은 인물(배우)에 의해 반복되기도 한다(<극장전> <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 심지어 최근작 두 편(< 밤의 해변에서 혼자 > < 그 후 >)은 홍상수 자신의 현실을 영화가 스스로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차이-반복’의 틈새는 커지기도, 혹은 작아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영화 ‘내(內)’ 리듬 이외에 홍상수의 필모그래피를 가로지르는 영화 ‘간(間)’ 리듬도 흥미로운 고민거리이지만, 여기에서 논의하는 건 적절치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때 문제는 ‘차이-반복-틈새’라는 ‘운동’을 학습해온 관객들은 그 관성(慣性)으로 인해 (능동적이다 못해) 무리할 정도로 영화의 틈새를 메우려 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차이와 반복 사이에 남겨진 나머지, 잘 의미화되지 않는 ‘잉여’에 대해서는 슬며시 눈감아 버리고 만다. 홍상수는 날카롭게 (마치 퍼즐을 배치하는 것처럼) 이 점을 파고든다. 산에 오르다 지숙이 발견한 금붕어는 상권이 키우게 된 금붕어 일리 없다. 그리고 지숙이 산 채로 묻었기 때문에 상권의 금붕어가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를 보는 관객들은 두 개의 사건을 지숙과 상권, 그리고 죽은 태아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고 싶어진다. 두 개의 우연한 독립 사건을 ‘차이-반복-틈새’의 운동 안에 슬며시 밀어 넣은 건 홍상수이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건 관객들이다. 그러니 홍상수가 영화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매번 ‘관객들이 그렇게 봤다면 그게 맞는 것’이라고 대답해 온 건 그냥 하는 말의 유희가 아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운동의 관성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쉬워진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자전거 바퀴의 반복적인 회전 운동만을 지켜보고 있으면 이 자전거가 어디로 나가는지 절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도 홍상수이지만, 핸들을 잡고 있는 것 역시 그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홍상수의 게임의 규칙, 그 처음으로 돌아가 그의 운동이 어디로 향하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그것만이 쳇바퀴 도는 것 같은 홍상수 영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의 게임의 규칙의 출발점이기도 한 <강원도의 힘>을 보는 것이 중요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 강원도의 힘 >에서 지숙과 상권이 교차/반복하는 여정은 첫 번째 강릉행 일 뿐, 지숙의 두 번째 강릉행은 ‘차이-반복’의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 ‘우연히’ 결정한 첫 번째 여정과는 달리 두 번째 여정은 지숙이 오롯이 혼자 결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강릉행이 첫 번째 강릉행을 ‘반복’ 하는 걸까? 아니,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두 번째 강릉행은 앞서 언급한 홍상수 영화의 ‘잉여’처럼 보인다. 이제 우리는 지숙의 두 번째 강릉 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환기하기 위한 조금 자세한 줄거리. 대학생 지숙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1박 2일 강릉 여행을 떠난다. 민박집을 찾던 지숙 일행은 우연히 경찰관( 김유석 )을 알게 되고 도움도 받는다. 그날 저녁, 일행과 함께 술을 마친 경찰관은 술에 취한 지숙을 초소로 데려가 섹스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다음 날, 지숙과 친구들은 서울로 돌아온다. 며칠 후 지숙은 경찰을 만나겠다며 다시 강릉으로 떠나고, 그와 하룻밤을 보낸다. 한편, 강릉으로 가던 지숙 일행의 기차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대학 강사 상권이 타고 있다. 유부남인 그는 최근까지 이어왔던 지숙과의 연인관계를 정리하고 후배의 권유로 강릉 여행에 나선 것이다. 길을 묻는 낯선 여자에게 한눈을 팔고, 급기야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상권도 서울로 돌아온다. 며칠 후 기다렸던 교수 임용 소식을 듣게 된 그는 지숙에게 다시 만나자고 연락한다. 목욕탕의 저울, 낙서 첫 번째 강릉행의 끝, 지숙일행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다음 장면에서 지숙은 공중목욕탕에 가고 탕에 들어갔다가 나와 몸무게를 잰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 적힌 (상권의) 낙서를 발견하고 수건을 꺼내 지운다. 다시 숏이 바뀌면 친구의 집에 찾아온 지숙이 다시 강릉에 가기로 했다고 말하며 거짓말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걱정스럽다는 친구의 모습을 뒤로하고 지숙은 강릉으로 향한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 지숙은 왜 다시 강릉에 가는 걸까? 가장 쉬운 답. 경찰을 만나기 위해서. 친구에게 한 말에 따르면 강릉에서 돌아온 지숙은 그와 몇 번 통화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자신을 겁탈하려다 실패한, 한 번밖에 만난 적 없는 경찰을 만나러 (지숙의 말에 따르면) 하루 만에 돌아올 수도 없는 길을 떠난다는 건 무리한 해석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첫 번째 강릉행과 두 번째 강릉행 사이의 두 개의 장면(목욕탕, 낙서)이 의미를 잃고 만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홍상수 는 숏을 낭비하는 감독이 아니다. 그러니 이 두 개의 장면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목욕탕 장면. 탕에서 나온 지숙이 체중계에 올라간다.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를 한참을 바라본다. 카메라 역시 그녀를 따라 체중을 바라보다 심지어 그녀가 체중계에 내려선 다음 바늘이 영점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체중계 앞을 한참 지키고 서 있다. 그녀의 몸무게를 보여주는 것이 왜 이토록 필요했던 것일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영화의 후반부, 지숙이 상권과 다시 만나는 장면까지 기다려야 한다. 2부의 상권 이야기가 한참 지나간 다음, 상권은 지숙에게 다시 연락한다. 그리고 둘은 (이전에 그래왔던 듯) 모텔로 가 섹스를 시도한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며 섹스를 하려는 상권에게 지숙은 ‘애 떼는 수술’을 했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우리는 지숙이 체중계 위에서 보고 있던 것이 자신의 몸무게가 아니라 자신의 체중에서 제거된 아이의 몸무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숙은 체중계 위에서 떠나간, 아니 자신이 ‘살해’한 아이의 몸무게를 참혹하게 바라본 것이다. 우리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지숙에게는 너무나 명백한 아이의 빈자리를 홍상수 는 이 숏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이제 우리는 지숙의 중절수술 시점을 기준으로 첫 번째 강릉행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첫 번째 여정에서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에 대해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와불사, 생매장 다시 처음. 강릉에 도착한 지숙과 친구들은 해변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른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광산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딸을 잃고 슬퍼하며 부르던 노래. ‘영영’ 인지 ‘너는’인지 가사를 놓고 반복하며 노래를 하는 친구들을 두고 지숙은 더 이상 부르기 싫다는 듯 가요집에서 가장 행복하고 신나는 노래를 찾아 선창하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 행복하길...’ )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지숙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커피숍에 들어온 지숙은 고3 때 자신을 짝사랑하던 동네 친구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간신히 살았지만 병원에 입원한 후 소식도 알지 못하는 그 아이를 지숙은 문득 강릉에 와서 떠올린 것이다. 온천에 가겠다는 친구들과 헤어져 지숙은 (굳이) 혼자 낙산사로 향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절에서 방생한 거북이 두 마리를 본다. 방생(放生). 불교 경전, ‘금광명경(金光明經)’에 나오는 유수장자는 늪에서 말라 죽어가는 물고기들을 구해낸다. 마치 영화는, 아니 강릉은 죽음으로 이끌리는 지숙을 삶으로 끌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낙산사에 오른 지숙은 불상 앞에서 절을 한 뒤 기와불사를 한다. (1부에서 기와불사를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2부에서 상권이 지숙의 기와불사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가족을 향해 남긴 유서와 같은 메시지. 먼저 떠나는 자신 대신 오래 살아남아 달라는 기원. 혹은 죽지 말아 달라는 부탁.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길에서 발견한 ‘살아 있는’ 물고기를 그대로 매장해버리는 지숙의 단호함에는 어떤 결단의 공기가 서려 있다. 아이를 임신한 지숙은 어쩌면 (아이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하기 위해 강릉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 자살이라던 낯선 여자의 죽음은 같이 있던 남자에 의한 살인으로 밝혀진다. 자살과 살인(낙태)의 흐릿한 경계. 지금 지숙을 그 경계에 서서 자신의 죽음을 막으려는 강릉의 ‘힘’과 겨루고 있는 중이다. “미안해” 하루밖에 남지 않은 강릉에서의 마지막 밤,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은 (마치 지숙의 자살을 방조라도 하듯) 지숙을 ‘상투적’이라며 비난한 다음, 그 자리에 혼자 남겨두고 자리를 떠난다. (강릉역에 도착해 길도 알지 못하는 지숙을 덩그러니 혼자 두고 역에 숨어 그녀가 헤매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던 두 친구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오히려 그녀의 자살을 막는 건 그 자리를 지키는 경찰이다. 술에 취한 그는 지숙을 ‘초소’로 데려간다. 초소(哨所). 경계와 감시를 하는 곳. 혹은 죽음으로부터 지숙을 지키는 장소. 경찰과 함께 (어쩌면 덕분에) 지숙은 그 밤을 무사히 넘긴다. 이렇게 지숙이 죽음을 넘겼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 강원도의 힘 >에서 가장 이상한 장면인 이튿날 아침 민박집 앞에서의 숏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마치 큰 병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킨 듯 지숙이 민박집 앞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다. 어젯밤에 사라진 친구들은 지숙의 흐트러진 머리를 대신 묶어주며 지숙 앞에 와서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무엇이 미안해서? 너를 자살하도록 내버려 두어서 미안해. “사람을 이런 데서 혼자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법이 어딨어요?” 이렇게 돌아온 서울에서 지숙은 함께 죽는 대신 아이만 죽게 하는 선택을 한다. (목욕탕 장면) 하지만 죄책감의 시달리는 지숙 앞에 상권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집 앞 낙서 장면) 지숙이 두 번째 강릉행을 결정하는 건 아마도 살고 싶어서였던 건 아닐까? 아이를 죽이고도 끝나지 않는 굴레, 이 ‘긴 호흡’에서 벗어나는 길은 아마도 죽음밖에 없다고 지숙은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자살)을 (다시 한번) 막기 위해 지숙은 강릉으로 향한다. 이 두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이상한 장면(지숙이 자신을 늦게 데리러 온 경찰에게 이상할 정도로 심하게 화를 내는 장면)은 성립하지 않는다. 강릉에 도착해 경찰의 차에 탄 지숙은 사력을 다해 그에게 화를 낸다. “사람을 이런 데서 혼자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법이 어딨어요?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알아요? (...)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가긴 어딜 가?” 히스테리에 가까운 지숙의 분노는 ‘불안한 나를 혼자 죽게 하지 말아요. 제발 나를 살려주세요’라는 절박한 외침처럼 들린다. 그렇게 강릉에 찾아온 지숙을 경찰이 모텔로 데려가 (마치 상권처럼) 섹스를 하려 들 때 지숙은 경찰의 머리를 마구 때리며 거부한다. 머쓱해 진 경찰이 ‘내가 술 깰게’ 라고 말하며 고쳐 앉고, 지숙이 잠깐 화장실에 가자 자살이라도 하려는 듯 베란다로 나가 난간 밖으로 몸을 내민다. 하지만 난간 끝에 매달려 있던 경찰은 이내 다시 주섬주섬 방 안으로 들어온다. 생각해보면 홍상수 의 영화에서 섹스에 실패한 남자가 자살을 떠올리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니 차라리 섹스와 죽음이 가깝게 붙어 있다고나 할까? < 극장전 >의 상원( 이기우 )도 영실( 엄지원 )과의 섹스가 잘 되지 않자 깨끗하게 죽고 싶다고 말하고 수면제를 사와 (결국 실패가 예정된)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자살시도 자체가 아니라 이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실패한 자살의 반복. 경찰이 난간을 다시 기어 올라올 때, 우리는 안도하면서 영화 초반, 지숙이 이야기한 (자살에서 살아 돌아온)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죽음을 생각하며 강릉을 다시 찾은 지숙도 아마 ‘살아’ 돌아갈 것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통곡을 하는 지숙의 울음 속엔 (자신이) 살았다는 안도와 (자신이 살기 위해 결국) 죽어야/죽여야 했던 아이에 대한 애도가 뒤섞여 있다. 그 후 상권이 다시 찾아와 섹스를 하려 들 때, 지숙은 임신시키려는 것이냐며 “나도 좀 살아야겠어요.” 라고 말한다. 다시 강릉 행을 반복하며 죽음을 떠올리지/실행하지 않겠다는 지숙의 다짐은 병원을 나서며 담배를 끊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동수( 김상경 )(< 극장전 >), 죽음의 문턱에 선 영희를 업어 강릉으로 데려온 검은 옷의 남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 과거의 애인 창숙( 김새벽 )을 반복하지 않고 출판사를 박차고 나와 눈을 맞으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아름( 김민희 )(< 그 후 >)(아직도 나는 아름이 출판사에 다시 방문하는 에필로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과 닮아 있다. 차이와 반복의 운동에서 벗어난 ‘잉여’는 차이와 반복의 운동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말하자면 이 ‘잉여’들이 홍상수 의 게임의 규칙의 단단한 힘의 균형에 균열을 가져오는 것이다. 상권은 과거를 반복하지만 그 자리에 지숙은 없다. 교수로 임용된 상권은 속물 같은 동료 교수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 옆 테이블에서 인사 온 여학생을 탐욕스럽게 바라본다. 아마도 똑같은 방식으로 상권은 지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건 그가 교수가 되든 되지 않든 강원도에서 어떠한 배움도 얻지 못한 상권의 벗어날 수 없는 반복이다. 상권도 지숙처럼 ‘눈물’을 흘리지만 그건 먼지가 만들어낸 ‘인공/가짜’ 눈물일 뿐이다. (“눈에 뭐가 들어갔었나 봐.”) 섹스에 대한 상권의 끊임없는 집착은 (죽음에 이끌리는 지숙과는 달리) 삶에 대한 집착에 다른 말처럼 보인다. ( 홍상수 의 남자들이 섹스에 실패할 때 죽음을 떠올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설악산 권금성 정상에서 아슬아슬한 산행을 하는 이들을 보면서 자신과는 다른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라며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그런 상권의 모습을 횟집 수족관에서 ‘살아 있는’ 물고기와 병치시킨다. 살아 있지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존재. “임신시키려고 그래요?”, 사라진 금붕어 하지만 동시에 섹스는 그들에게 두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사랑해’라고 말하며 지숙과 섹스를 하려던 상권은 그녀가 “임신시키려고 그래요?”라고 말하자 멈칫한다. 이후 십 여 편의 영화를 돌아온 우리는 홍상수 의 남자들이 ‘사랑’라고 말할 때 이것이 곧 ‘섹스 하고 싶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 밤과 낮 >의 성남( 김영호 )을 제외하면 이 말을 부인에게 한 (유부)남은 없었다는 점도 함께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성남조차 부인의 임신 소식에 불안해한다. (성남의 목욕탕 꿈 장면을 떠올려 보라.) < 극장전 >에서 상원에게 (부인도 여자친구도 아닌) ‘첩’이 되어주겠다는 영실의 말은 섹스는 하지만 부인/가족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여기엔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오! 수정 >)이지만, 그 짝이 ‘부인-임신-가족’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사적으로 막고 싶어하는 일종의 저항감이 깃들어 있다. 마치 이 저항감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 홍상수의 영화에서 가족은 거의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어딘가 한쪽이 비어 있는 형태(<극장전> < 하하하 > < 다른 나라에서 >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로 나타난다. < 그 후 >에서 창숙과 사랑에 빠져 새벽에 집을 도망치듯 나오던 봉완( 권해효 )은 ‘아빠’라고 부르는 (부인 혹은 딸, 결국은 가족) 소리를 못 들은 척 하고 떠나 버린다. (부인의 임신, 혹은 딸의 등장에) ‘집’으로 돌아온 성남과 봉완이 오래가지 않아 또다시 집을 떠날 것이라는 예감은 근거 없는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상권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갑작스럽게 후진하는 차에 부인과 아들이 치일 뻔 하자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아이/부인이 죽을 뻔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아이/부인이 죽었으면 하는 자신의 은밀한 소망을 깨달은 데서 오는 두려움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상권의 가족은 어디론가 외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이 외출은 주차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상권에게 아이와 부인은 속물에 가까운 교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이유이자 ‘사랑’하는 여자들과의 섹스를 숨겨야 하는 번거로운 방해물에 불과하다. 강릉에 다녀온 다음, 사라진 한 마리의 금붕어가 어디로 갔는지 상권은 알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지숙은 아마도 다시는 상권을 만나지 않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 다시는 죽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죽음의 반대편에서 ‘산다’는 건, 탐욕스럽고(교수 임용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간 노교수는 상권이 잊고 놓고 간 우산을 흡족하게 바라본다.), 속물 스러운(상권은 자신의 심부름을 했던 여직원에게 잔돈을 가지겠냐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대고, 지나가는 개에 물릴까봐 전전긍긍하며, 원했던 교수직을 힘들게 얻은 다음 동료들과 고작 취중 섹스의 쾌감이나 논해야 한다.)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 < 강원도의 힘 >은 말한다. 이 영화 한편으로 홍상수 영화 모두를 아우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누군가 (홍상수의 ‘베스트’가 아니라) ‘홍상수 영화는 결국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 강원도의 힘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20년을 돌아 이제 <강원도의 힘>을 다시 생각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