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600년(서울의 모습)
- 감독
- 이지완
- 제작년도
- 1992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취향에 맞는 영화라는 것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이미 정전으로 기록된 작품 목록의 외부를 끊임없이 훑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지영 감독의 이력에서 데뷔작인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2)나 대표작으로 꼽히는 < 남부군 >(1990), < 하얀전쟁 >(1992)을 아는 사람들은 많아도, < 산배암 >(1988)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대의 영화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보았다. “이 작품 <산배암>의 광고 문안이나 포스터를 보면, 바로 그런 류의 한탕 영화라는 짐작을 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러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오히려 ‘벗기기’와 ‘지방 장사’가 기피하는 사회현실의 반영과 약간의 정치의식마저 담고 있기 때문 이다. 필자는 이 작품이 중견 정지영 감독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요즘 나온 영화 중 장선우 감독의 < 성공시대 >와 더불어 사회성 영화로 퍽 드물게 성공한 예에 속한다고 보았다.” - 정재형, “[영화평] 한국영화가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 정지영 감독의 <산배암>”, 《스크린》 1988년 10월호(통권56호), 284쪽. “4년여의 긴 공백 끝에 만든 < 거리의 악사 >는 검열로 인해 부분적인 사회묘사마저 생략됨으로써 평범한 멜로드라마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으며 화제작이었던 < 위기의 여자 >는 과다한 나눠찍기에 의한 편집이 거슬리는 1930년대 할리우드의 여성관객용 멜로드라마의 재판이었다. 1988년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 < 여자가 숨는 숲 >과 <산배암>은 정지영 감독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최악의 작품이었다. 정신분석학적 접근과 계급의식이 배제된 이 두 편의 여성 심리를 다룬 영화들은 충무로의 장르영화에 불과하다 .” - 전양준, “젊은 평론가가 본 한국 영화감독 10인 (5) 정지영”, 《한겨레》, 1990년 7월 1일자 11면 기사. 음?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위의 글이 <산배암>의 사회현실 반영과 정치의식(이 글의 뒤에서 이를 계급의식이라고 보충한다)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반면, 아래의 글은 ‘계급의식이 배제된’ 영화로, 심지어 정지영 감독 작품 중 최악의 영화로 평가한다. 당연히 하나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같은 지점에 대해 전혀 다르게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도대체 <산배암>은 어떤 영화인가? 탄실이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뱀도 잡고 벌레도 잡는 이 구역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순박한 산골소녀이다. 그러나 집은 가난하고 산골에는 일자리도 마땅치 않기에 탄실이는 소개를 받아 부잣집으로 들어간다. 마을 사람들은 떠나는 탄실의 뒤에서 ‘식모살이’를 가게 되었다고 수군대고, 일을 소개해 준 사람은 펄쩍 뛰며 ‘건강이 안 좋은 부잣집 사모님을 돌봐주는 일’이라고 정정해준다. 실제로 탄실이가 도착한 부잣집은 이미 나이 든 식모가 일을 봐주고 있으며, 탄실에게는 사모님의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목욕을 시켜주는 정도의 일이 주어진다. 오히려 사모님은 자신의 비싼 옷을 탄실에게 주며 앞으로 자신의 것은 모두 탄실의 것이기도 하다는 다정한(?) 말도 해준다. 하지만 이들의 평화로운 나날을 깨뜨리는 인물이 나타나니 이 집의 주인인 사장님이다. 사장님은 수상한 여자로부터 반복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피하고, 사모님은 자꾸만 사장님과 탄실 둘만 방에 남을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그렇다. 탄실이는 사실 불구가 된 사모님을 대신하여 씨받이가 되기 위해 이 집에 온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1년 전에 < 씨받이 >(임권택, 1986)가 국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 이 여우주연상을 탄 이후라 이러한 소재가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 또 뻔한 이야기겠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묘미는 이 다음에 있다. 탄실은 결국 아기를 빼앗기고 집에서 쫓겨난다. 이런 상황에서 탄실은 무엇을 원할까? 복수? 우리의 탄실이는 이래 봬도 산골에서 뱀도 잡고 벌레도 잡고 놀던 건강한 소녀이다. 그녀는 복수에서 더 나아가 이 집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고자 하고, 그 과정이 영화 속에서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펼쳐진다. ‘산배암’이 된 탄실이는 독으로 상대를 단박에 물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커멓게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천천히 숨통을 조이며 이 집안에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머지는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도록 하자. 그래도 명색이 ‘구술로 푸는 한국영화사 미스터리’가 아닌가. 구술에 대한 이야기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끝을 낼 수는 없다. 그럼 이제 한 집안을 집어삼키려는 ‘산배암’보다 더욱 어둡고 음습하고, 찝찝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여러분 이 영화 한 번만 봐주세요 정지영과 1988년 정지영 감독은 여러모로 1988년 한 해 동안, ‘뱀’과 인연이 많았다. <산배암>은 8월 27일 코리아극장에서 개봉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미국 직배영화 < 위험한 정사 >(아드리안 린, 1987)가 한창 상영되고 있던 신영극장과 코리아극장에 영화감독 장길수 와 조감독 최진식 이 뱀을 풀며 소란을 피웠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업무방해혐의로 체포했다. (“미영화 직배 반대 시위 두 영화감독 즉심 넘겨”, 《동아일보》, 1988년 9월 27일자 14면 기사) 사건이 그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1년 뒤인 1989년 9월 4일 정지영 감독은 포항에서 <남부군> 촬영 도중 경찰에 체포되었다. 혐의는 코리아극장과 신영극장에 뱀을 집어넣도록 사주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정지영 감독에게 직접 들어보자. UIP 직배반대시위 (사진: 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정: 매일 코리아극장하고 신영극장 양쪽에, 그때 미국영화 직배가 상영될 때니까. 남: <위험한 정사>. 정: 어어. 그래 양쪽에 가서 매일 데모를 하면서 저녁에 들어와서 회의를 하고 헤어지고, 매일을! 그랬어요. (중략) 그런데 그렇게 데모를 할… 그때 88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구역 안에서는 일체의 시위가 금지돼 있었다구. 근데 그거를 우리는 무시하고 한 거거든? 근데 신문에 안 나. (웃음) 신문에 단신으로 “영화인들이 이렇게 데모하고 있다” 나오고. (중략) 그래 그것이 쌓이다가 사람들이 지쳐가고 그러니까 누가 뱀 얘길 꺼낸 거지. “언제까지 이렇게 싸울 거냐” 정부에서 무슨 반응이라도, ‘자, 보자. 왜 그러냐. 너네들 만나나 보자’ 이런 반응도 없고. 기자들이 와서 취재도 안 하고. “이거 어떡할 거냐.” 그래서 누군가가 “이거 사고 치지 않으면 신문에 안 납니다.” (웃음) 그래서 “사고를 어떻게 치냐” 그랬더니, “사고를 곱게 치는 법이 하나 있다. 지금 <위험한 정사>를 하고 있는 극장에 뱀을 놓으면은… 물론 독 없는 뱀을 놓으면은, 사람들은 놀라겠지만 그걸로 크게 신문에 나면 극장은 며칠간 문을 닫고, 그럼 그건 사고다. 기자들이 안 다룰 수가 없다, 왜 그렇게 됐는가를. 그걸 해야 된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그 주장을 한 사람은 옛날에 그런 사건이 있었대요, 충무로에. 어느 극장에 뱀을 넣어서 며칠 뭐 ‘일주일간의 휴관을 했다’ 이런 게 있었대. (136~137쪽) ‘뱀 얘기’를 제안한 사람의 “어느 극장에 뱀을 넣어서 휴관을 했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 사건도 매우 재미있으니,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살펴보고 가면 좋을 듯하다. 1958년, 충무로 극장 주변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깡패끼리 백주에 집단폭행이 일어나더니 그 보복을 하기 위하여 극장 관람석에다 뱀까지 집어넣어 관객들이 한때 혼란을 일으키고 다시 복수전을 전개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중략)… 지난번 29일 낮 11시경 세기극장 주변의 주도권을 빼앗으려고 극장 주변에 모였던 소위 명동파와 종로파 간에 패싸움이 벌어져서 …(중략)… 2일 밤에는 세기극장 관람석에다 뱀 두 마리를 집어넣어 관객들이 일대혼란을 일으킨 일이 있으나 이 뱀은 어느 파에서 집어넣은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다. - “새로 개관한 세기극장에 뱀 소동”, 《조선일보》, 1958년 6월 5일자 2면 기사. 이전에 “ 한국영화 야인시대 ”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지만, 1958년에는 임화수 로 대표되는 종로파와 이화룡 으로 대표되는 명동파를 통하지 않고는 극장의 운영이 불가능했다. 이정재라는 든든한 뒷배를 갖고 있던 명동파는 틈만 나면 종로파와 세력 다툼을 벌였는데, 여기에 영화계에 갓 뛰어든 세기상사의 ‘세기극장’이 애꿎게 세력 결투의 장이 된 것이다. 사실 이 시기 명동을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의 흐름은 조용히 충무로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건달 세력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명동도, 종로도 아닌 ‘충무로’에 사업가 출신의 영화제작자(수입업자)들이 새로운 터전으로 잡고 모여들면서 시작되었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신창영화사의 전석진 대표의 구술을 살짝 스포하자면, ‘화성영화사(이화룡)-한흥영화사( 최관두 )-대원영화사( 원선 )-한성영화사( 정진모 )’는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명동파’의 대표들이었다. 이들은 각각의 회사인 듯 보이지만 하나의 쩐주를 통해 굴러가는 한 덩어리였다고 한다. 이를 깨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 무역을 통해 크게 성장한 기업가들이었다. 세기상사가 그랬고, 이우석 이 영화계에 뛰어든 것도 이 시기였고(아직 동아수출공사는 설립 전이다), 불이무역이나 동양영화사와 같은 영화사들이 모두 무역업으로 시작해 충무로에 극장을 세우고 영화계로 들어왔다. 이 이야기는 그 나름으로 크고 재미있는 얘기니까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다루어볼 것이다. 아무튼 저 ‘뱀 소동’의 이면에는 이러한 충무로 vs 명동의 세력 다툼이 배경에 있었다는 사실만 알아두자. 직배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에 ‘뱀을 넣자’라고 제안한 사람은 무려 3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기억해내고 의견을 낸 것인데, 이는 다시 말해 그가 1988년 직배저지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 영화계 원로의 위치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 번만 더 스포를 하자면, 역시 올해 진행하고 있는 주제사의 구술자인 정병각 감독은 이 시기 직배저지투쟁과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을 떠올리며, “원로영화인들의 참여가 매우 활발했다”라고 회고했다. 당시 영화계에서 원로영화인들은 딱히 일거리를 찾지 못해 그 지위가 매우 약해진 상황이었는데, ‘직배’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역할이 생긴 것에 내심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직배저지투쟁이나 이후 이어진 스크린쿼터사수투쟁과 영화진흥법 투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영화 직배’라는 외부 세력과의 투쟁인 동시에 기존 충무로 세력과 새로 유입된 충무로 신진 인력들 사이의 세력 투쟁 또한 내재하고 있었다. 세력 다툼엔 역시 ‘뱀’이 등장하기 마련인가보다. 뱀은 사라졌지만… 다시 1988년으로 돌아오자. 저 뱀 제안을 듣고 회의가 진행 중이던 장내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정지영 감독은 공식적으로는 저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정: 내가 말은 나왔지만 이것은 공식화 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여러분들이 박수를 쳤지만은 이것이 실현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사고를 어떻게 칩니까. 일단 이건 없던 걸로 합니다. 회의록에도 지웁니다.” 이렇게 하고 헤어지고난 다음에 그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사람을 불렀어, 내가. “어떻게 뱀을 넣냐?” (모두 웃음) “뱀을 어떻게 넣냐. 누가 넣냐, 도대체?” “아니 이거 사람 사서 넣으면 되는 거지 우리가 어떻게 넣냐” “그러면 뱀은 어디?” “아이, 청계천 가면 뱀 많다.” (웃음)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 시켜서 청계천 가서 꽃뱀 사 가지고, 사람 사 가지고 뱀을 넣었지. 그러나 ‘뱀들은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차갑고 거친 시멘트 위에서 독이 올라 몽글몽글 자기들끼리 엉킨 채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라고 한다( 2022년 주제사 1권 <김형종> 2차 구술채록문 , 90~91쪽 참조). 결국 뱀의 출현은 다소간의 소요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대세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사이 싸움의 방향이 바뀌었다. 영화인들은 ‘직배’가 영화산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외교의 문제이기 때문에 저항을 한들 그 거대한 흐름 자체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직배저지’가 아닌 ‘스크린쿼터사수’와 ‘영화진흥법 제정’ 운동을 펼쳐나갔다. 그런데 앞서도 말한 대로, 이 사건은 1년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남부군> 촬영 현장. 이 사진의 뒷면에는 ‘이 장면을 찍고 밤에 서울로 연행 당함’이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사진: 정지영 기증) 정: 그러다가 어느 날 포항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형사들이 갑자기 와 가지고 나를 연행해 갔지. 여기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있는 건데, 내가 한참 촬영을 하는데 형사들이 왔다고. 계곡 위에서 찍고 있는데 형사들이 계곡까지 올라왔어요. 올라와 가지고 “왠일이냐?”고 그랬더니 “감독님, 서울로 올라가셔야 되겠는데요” 그래. “아니 서울은 왜 갑자기 올라가느냐?”고 내가 그랬더니 신문을 딱 주는데 보니까 거기에 ‘정지영 감독 구속’으로 돼 있어. 나는 여기서 지금 촬영을 하고 있는데 《조선일보》에 ‘정지영 감독 구속’ (1989년 9월 3일자 15면 기사-편집자 주)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냐?” 그랬더니 “아 글쎄 말입니다” 그래. “근데 왜 나를 연행해 가냐?” 그랬더니… 재밌다고, 이게. “아니 여기 구속으로 돼 있는데 감독님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말이 돼? 그렇게 한심한 시대였다는 거지, 말하자면. (웃음) 그러니까 신문에 ‘구속’으로 돼 있으니까 나는 구속돼 있어야 된다는 얘기 아니야? 신문의 오보를 내가 몸으로 실현해 주라는 거 아니야, 그건? (웃음) 남: 아, 그러면 그거는 어디서 정보를 미리 제공받아서 나온 기사가 아니라 오보가 난 거였던 거네요? 정: 오보를 일부러 쓴 거지. 나를 잡아오려고 일부러 오보를 낸 거지 . 물론 본인을 잡기 위해 일부러 오보를 냈다는 것은 정지영의 추측이다. 그러나 오보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속이든, 구속을 위해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것이든 둘 다 어이가 없는 이유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정지영 감독은 1989년 <남부군> 촬영 도중 체포되어 UIP영화 상영 극장에 뱀을 풀어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구치소에서 석방된 날, 정지영 감독(2열 좌2)과 정회철 감독(2열 우2)의 모습 (정지영 기증) 어쨌든 시작은 이렇게 과격하고 무모했지만, 이후 투쟁은 대학가에서 문화운동을 주도하던 새로운 세대의 합류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다고 1980년대 후반의 ‘직배저지투쟁’이 완전 실패라고는 볼 수 없다. 정지영은 이 시기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스스로 평가를 내렸다. 정: 우리가 이 운동을 통해서 ‘우리 영화는 우리가 살려야지 누가 보호해 주는 게 아니다’란 생각을 한 거지. 왜냐면은 직배저지투쟁할 때 극장 앞에서 막 데모를 할 때 관객들이 표를 사 가지고 들어가요. 영화인들이 와서 데모 하고 있는데 표 사 가지고 들어가. 누군가가 이제 “관객 여러분, 이거 직배영화입니다. 영화 구경하지 마세요!” 그랬을 때 뭐라고 대답을 들었냐면, “당신들이 영화 잘 만들어 봐. 우리가 한국영화 보지 왜 미국영화 보겠어, 이 사람들아. 영화나 똑바로 만들어!” 그러고 들어갔다구. 그만큼 한국영화가 관객들한테 우습게 보였을 때란 말이지. 그것이 나한테 자극을 줬는데 다른 사람한테 자극을 안 줬겠어? ‘우리한테 책임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래서 그런 것들이 모두 자극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운동이 모든 영화인들에게 (사이) 용기도 만들어 주고. 또 열심히 해야겠다는 어떤 자세를, 사명감 이런 걸 만들어 주지 않았겠는가. 나는 직배운동이나 스크린쿼터투쟁이나 검열 투쟁 이런 것들이 그냥 ‘표현의 자유 문제를 우리가 지적한다’ 이런 차원이 아니고, 그 운동 자체가 영화인들 개개인에게 ‘우리가 우리 영화를 잘 만들어야 사랑을 받을 수 있어’ 이런 어떤 사명감 같은 걸 심어주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요. 2023년 『1980년대 한국영화: ‘서울의 봄’부터 코리안 뉴웨이브까지』 중 ‘구술로 보는 1980년대 한국영화’ 챕터를 쓸 때도, 이 ‘뱀 소동’은 무조건 넣는다는 일념으로 글을 구성했었다. 개인적으로 이 ‘극장에 나타난 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당히 무모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굉장한 시대적 위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 >가 상영 중인 극장에 뱀을 풀었으면 완전 4D 체험이 가능했을 텐데’ 같은 상상을 해보면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한국 영화시장을 집어삼키기 위해 (질적으로나 물량적으로 한국영화와 비교도 되지 않는) 미국영화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올 때, 한국의 영화인들은 뱀을 내세워 이를 물리치려 했다. 마치 거대한 폭풍 앞에 부채 한 장을 들고 서 있는 형세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다시 <산배암>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해볼까 한다. 정지영 감독(우3)과 <산배암> 출연 배우들. (《스크린》 기증) 위 사진 속 집과 마당은 묘하게 < 기생충 >(봉준호, 2019)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산배암>과 <기생충>은 ‘계급’과 ‘계단’이라는 모티프에서 매우 유사함을 갖고 있다. 1988년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류층 가정에 들어간 순진한 산골소녀는 자신이 가진 건강한 생명력까지도 착취하려는 이들에게 ‘산배암’이 되어 저항했다. 그리고 지금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계급에 대한 인식은 ‘뱀’에서 ‘기생충’으로 바뀌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언제든 자신이 받는 억압에 대해 ‘뱀’으로 돌변해 상대를 위협할 수 있었던 이들이, 이제는 숙주에게 붙어 사는 기생충이 되었다. 기생충은 숙주가 없이는 살 수 없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숙주에게 붙어 그 체계 안에서 피와 고름 같은 것을 먹으며 살아남든가, 아니면 공멸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존방식은 제3의 길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날의 한국영화 안에, 그리고 극장 안에 다시 ‘뱀’이 나타날 수 있을까?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1959년부터 이어져 온 동두천의 터줏대감 1959년 경기도 동두천시 생연동에서 문을 연 동광극장 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상업용 개봉영화 단관 영화관(스크린을 하나만 갖춘 극장)이다. 전국에 단관 영화관들이 몇몇 있지만 예술영화 전용관, 실버극장 등으로 운영이 되고 있고 개봉영화 상영관으로 단관인 곳은 동광극장이 유일한데, 단독 건물이기까지 하다. 건물 자체가 영화관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1986년에 수리를 위해 천장을 뜯을 때 상량에 “1959”라고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2024년 기준으로 2,500편이 넘는 영화를 상영했다. 현재 극장 대표인 고재서 씨가 1986년 인수하여 관리 및 운영 중이다. 동광극장이 오랫동안 지역에서 자리하게 되면서 극장 근처 다리 이름도 ‘동광교’라고 불리게 되었고, ‘동광’이라는 이름이 붙은 슈퍼마켓이나 카페 등이 영화관이 운영되는 긴 역사 내내 인근에 있곤 했다. 2024년 현재도 동광극장 백 미터 거리 안에 동광슈퍼, 동광호프, 카페동광, 동광여인숙 등이 있다. 2011년 도로명 주소가 생길 때(2011년 도로명 주소 고시, 2014년 전면 시행) 영화관이 있는 지역은 ‘동광로’가 되었다. 동광극장 인근에는 동광극장처럼 지역에서 오래된 ‘문화극장(2관 운영)’이 있으며 ‘양키시장(구 애신시장),’ ‘제일시장,’ ‘중앙시장’이 있다. 블로그, 유튜브 등 개인 미디어 시대의 활성화와 더불어 이 지역으로 일명 ‘레트로 여행’을 체험하러 오는 젊은 층들이 시장과 영화관들을 둘러보곤 하는데, 그들에게 동광극장은 필수코스 중 하나이다. 지역 주민들의 추천에 의해 2023년 ‘경기도형 노포(오래된 가게)’ 중 한 곳으로 선정된 이후로는 개인뿐 아니라 지자체나 단체 등에서 공정여행이나 지역 역사 등을 주제로 여행 프로그램을 짜면서 지역의 명소로서 동광극장을 찾기도 한다. 경기 노포 같은 경우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경기도만의 정서와 이야기를 발굴해서 생활 관광의 대표 콘텐츠로 발굴한다’라는 목적으로 2023년 처음 실시한 것으로, ‘가게 운영 기간 20년 이상에 지역 정서를 반영하고 있어야 하며 보존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선정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데, 영화관으로서는 동광극장이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건물 외벽 “경기노포” 표지 1950년대부터 동두천시에 영화관이 여러 개 자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군 기지 도시였던 것이 주요했다. 동두천시는 원래는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이라는 작은 시골 면 소재지였으나 한국전쟁 중 미군이 주둔한 이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동두천읍, 동두천시로 점차 승격되었다. 1951년에는 미국 육군 제24사단의 휴양소가 설치되었고, 1952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미군 제7사단이 장기 주둔했다. 제7사단이 1970년 이후 본국으로 철수한 뒤에는 전방에 있던 미군 제2사단이 동두천으로 이전하고 총 6개의 미군 부대가 주둔해 왔다. 즉, 동두천시는 미군과 미군기지로 인해 인구가 늘고 지역 상권이 발전할 수 있었다. 1960~1970년대 동두천은 “리틀 시카고(Little Chicago)”라고 불리며 ‘동두천에 가면 한국 돈보다 달러가 더 많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의 호황을 누렸다. 1979년 당시 기준으로 동두천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6%가 미군을 대상으로 한 생업에 종사한 것으로 집계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군 부대가 단계적으로 철수하면서 미군이 80% 감소하였고, 이에 동두천시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지역 경제를 지탱해 주던 미군들이 떠나면서 도심 상가들의 휴·폐업이 이어졌다. 미군에 의존해오던 동두천시 지역 경제가 쇠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추억의 유물과 현재의 시스템이 공존하는 공간 동광극장 역시 호황기에는 영화 간판을 그리는 ‘화공’을 비롯하여 영화관 전체 직원이 10명에 달했다가 지금은 고재서 대표 1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재서 대표는 영사기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름 영사기로 상영할 당시에 직접 영화를 틀기도 했다. 동광극장에 들어오면 보이는 ‘35mm 필름 영사기’ 같은 경우 영화 상영은 하지 않지만 지금도 작동 가능하게 관리되고 있다. 현재 영화 상영은 디지털 영사기로 상영되고 있는데 영사기는 모니터로 체크하고 매표기에도 전산화가 도입되어 있다. 한 번 영화를 틀면 최소 2~3주간 상영한다. 지금도 작동 가능한 로비의 필름 영사기 동광극장은 1993년 5월에 4개월간 문을 닫았다가 가을에 재개관했는데 그 당시 스크린과 음향 시설 등을 리모델링했고, 리모델링 이후 최신 영화를 가까운 곳에서 좀 더 쾌적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개봉관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012년 7월부터는 디지털 영사기로 상영 시스템이 바뀌었다. 필름 영사기로 상영한 마지막 작품은 < 연가시 >(박정우, 2012)였고 디지털 영사기로 상영한 첫 번째 작품은 < 도둑들 >(최동훈, 2012)이었다. 필름 영사기뿐 아니라, 동광극장은 외부와 내부 모두 현재의 영화관들과는 달리 영화관 초창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을 준다. 이 때문에 영화박물관이나 촬영 세트장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입구 왼편에 매점이 있고 오른편이 티켓부스다. 그리고 나머지 전체가 휴게실인데 소파와 안마의자가 있고 영화관의 옛 사진들과 영화 포스터들이 구석구석 붙어 있다. 손으로 직접 쓴 관람 시 주의사항 표지는 물론 신문 기사 등도 있는데 동광극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휴게실에 모두 있는 셈이다. 휴게실 공간의 맨 끝에 철문을 열면 상영관에 입장하게 된다. 상영관 안에는 관객의 보행을 돕는 파란 LED 조명선이 있고 조명선을 따라 들어간 뒤 원하는 좌석에 앉으면 된다. 리모델링 당시 스크린 아래 무대를 뜯어내고 소파를 놓았고 그로 인해 50석이 줄어들었는데, 대신 앞뒤 객석의 간격이 넓어져서 더 쾌적해졌다. 1층 같은 경우 2009년에 전석 갈색의 가죽 리클라이너 소파와 간이 테이블을 설치하였는데 테이블과 보조 받침대가 있고 핸드폰 충전이 가능하도록 콘센트까지 설치되어 있다. 동광극장 상영관 내부 전경 동광극장은 건물 하나를 영화관으로만 쓰고 있다 보니 2층 건물 외부 전체가 상영작 포스터 간판을 비롯해서 영화관 관련한 표지들로 덮여 있다. 건물 맨 위에는 관객 수 1,000만 명이 넘은 한국영화들이 필름 모양 속에 나열되어 있고 그 밑에 노란색 액자 모양으로 크게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포스터가 있다. 상영작을 홍보하는 간판 그림은 1990년대 말까지 그려졌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사진으로 걸린다. 그 밑에 작게 “1959”라고 영화관이 문을 연 연도가 적혀 있다. 상영작 홍보 포스터 간판 밑에 전광판이 있고 그 밑에 “동광극장 상영 중”이라는 글자와 입구가 있다. 입구 같은 경우 도로가 새롭게 나면서 도로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옛 입구가 있는 건물 벽면에 극장 이름이 시멘트로 조각되어 남아있다. 동광극장 외관 간판 부분 근접 사진 이렇듯 예전의 모습을 가진 영화관 내·외부 모습 때문에 유명 드라마 촬영지로 등장한 바 있으며(드라마 <시그널>, 드라마 <응답하라 1988>) 김중미 작가의 자전적 소설 『나의 동두천』(2018)에도 등장한다. SNS상에서는 ‘와칸다 극장’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유튜버가 방문했을 2018년 당시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안소니 루소, 조 루소, 2018)가 개봉해서 전국적인 흥행을 하고 있었는데, 동광극장에서도 해당 영화를 틀고 있어서 영화 속 주요 배경인 ‘와칸다 왕국’ 이름을 따서 누리꾼들이 지은 것이다. “극장은 계속 열려 있어야 하니까” 현재는 설날이나 추석에 손님이 몰리는 편이고 흥행작이 개봉하면 지역 주민들이 극장을 찾아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들이 많이 보러 온 작품은 2023년 11월 22일에 개봉한 < 서울의 봄 >(김성수, 2022)이었다. 평소에는 영화관에 영화 자체를 보러 오는 손님보다 레트로 여행 등의 컨셉으로 인근 시장들을 둘러보고 오래된 영화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동광극장 같은 경우 지역신문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으나 장기적인 효과를 불러오지는 못했다. 전체적인 지역 경제 쇠퇴와 더불어 인근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은 물론 코로나 시기 OTT의 급부상 등이 부진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광극장은 개봉관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고 이어가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친 극장 내부 리모델링 작업을 거쳤고, 매일 영화관을 열고 있다. 동광극장이 가진 소망은 1959년에 문을 연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계속 개봉영화를 상영하는 상업영화관으로 지역에 남는 것이다. 극장주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그러므로 극장은 계속 열려 있어야 하니까.” 동광극장 로비 전경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 경기도 동두천시 동광로 33 (생연동) 2) 설립일 : 1959년 3) 대표자 : 고재서 4) 규모 : 지상 2층, 면적 483.63㎡, 연면적 707.32㎡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훨체어석): 상영관 1개관 총 283석 (리클라이너 의자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240석, 지정좌석제가 아닌 자율 착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자율적 운영, 정기휴무 없음 7) 입장료 및 할인 정책 - 일반인 주중 9,000원, 주말 9,000원, 문화가 있는 날 6,000원 - 군인, 간부, 소방공무원 주중 8,000원, 주말 8,000원, 문화가 있는 날 6,000원 - 청소년, 정복 군인 주중 7,000원, 주말 7,000원, 문화가 있는 날 6,000원 - 경로우대, 장애인, 국가유공자 주중 6,000원, 주말 6,000원, 문화가 있는 날 6,000원 - 어린이 주중 5,000원, 주말 5,000원, 문화가 있는 날 6,000원 8) 조직 구성 : 대표 1명 상근 9) 구성원 : 고재서 대표 1인 10) 주요 장비 (영사 장비, 음향): 디지털 영사기, 돌비 음향 시스템, 상영관 입구에 작동 가능한 필름영사기 취재 일자 : 2024년 6월 17일 글/인터뷰 진행 : 김문경 사진 : 허 성
올해도 열 편을 뽑았는데, 한국 영화가 다섯 편, 외국 영화가 다섯 편이다. 아홉 편이 극영화이고 한 편은 다큐멘터리다. SF는 세 편,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작품이 세 편 또는 네 편이다. (< 수라 >의 주인공을 누구로 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다큐멘터리인 <수라>를 뽑았다. 좋은 영화이기도 했지만 의무감을 느낀다. 올해 나온 영화 중 더 이상 우리가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는 걸 <수라>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있을까. < 당나귀 EO >와 < 다섯번째 흉추 >는 모두 비인간 주인공이 인간사회를 떠돌며 겪는 여정을 그린다. <당나귀 EO>가 < 당나귀 발타자르 >의 보다 발랄하고 화려한 버전이라면 (그렇다고 결말의 가차없음과 서글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다섯번째 흉추>는 매트리스에 붙어 살면서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뽑아 먹으며 결국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변신해가는 곰팡이가 주인공이다. 두 작품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데, 나로서는 <다섯번째 흉추>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장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가장 많이 본 영화이기 때문일까. OTT에 들어온 뒤로 거의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은 영화이다. < 아니말리아 >도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계 종족의 접촉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임산부 주인공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정 중 인간이 당연시하는 모든 것들의 우선순위가 파괴되는데, 정말 내 취향의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다. < A.I. 소녀 >는 아슬아슬하지만 단단하기 짝이 없는 하드 SF다. 인터넷에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서서히 인격을 갖고 성장해간다. 이 장르 특유의 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압도적인 치밀함과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름다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 플라워 킬링 문 >은 스콜세지의 첫 서부극이다. 아마도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미국 영화사에 대해 빠삭한 이 노장이 이 장르에 대한 존경과 원죄의식이 빽빽하게 차 있는 이 네 시간에 가까운 영화를 보며 압도되지 않기는 힘들다. 단지 미국 선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거칠 수밖에 없는 당사자성에 대한 논의를 피해가기는 어렵다. < 지옥만세 >는 올해 내가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신나는 모험담이다. 그리고 이 모험담의 재료는 내가 질색하는 것들, 그러니까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 그리고 종교와 같은 재료를 갖고 만들어졌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발랄한 결과물이 나왔다니, 볼 때마다 신기하기 그지 없다. < 너와 나 >는 올해 한국 영화 중 최고의 로맨스다. 화사한 청춘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기만적일 정도로 소박하고 단순한 재료들로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처럼 교묘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작품도 많지 않다. 나머지 두 편은 창작자에 대한 영화다. < 어파이어 >와 < 비밀의 언덕 >. 두 편 모두 창작자라는 인간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이기적이고 치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둘 다 재미있는데, 비교해 보면 <어파이어> 쪽이 훨씬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독일인 백인 남자 작가에게는 충분한 거리두기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비밀의 언덕>을 볼 때는 그게 좀 어렵다. 이지은의 <비밀의 언덕>은 내가 올해 본 한국 영화 중 두 번째로 힘들게 본 작품이다. 첫번째는 < 서울의 봄 >이고 이 영화를 보면서 왜 괴로워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다행히도 <서울의 봄>의 고통스러움과는 달리 <비밀의 언덕>의 고통스러움은 재감상 때는 많이 사라지는 종류다. 초등학교 5학년생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하지만 주인공 명은은 결코 안전한 아이가 아니다. 일단 이 아이를 따라가기 시작한 관객들은 러닝타임이 10분을 넘기기도 전에 ’큰일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시작부터 경고음이 들린다. 명은은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쟁이에도 종류가 있고 등급이 있는데, 명은은 그 중 가장 까다로운 부류이다. 일단 이 아이는 영화 시작부터 부모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시장에서 일하는 부모가 부끄러워 가상의 중산층 부모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냥 거짓말만 하는 게 아니라 스파이처럼 가짜 가족 앨범까지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명은이 다니는 1996년 수도권 소도시 초등학교라는 시공간에서 부모의 계급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명은에겐 가족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이 아이에겐 현실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현실을 고치는 것이 당연하다. 대부분 관객들은 명은과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심각한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된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작은 동네에서 거짓말은 쉽게 숨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명은은 여러 면에서 우등생이다. 그건 기준을 세워놓으면 최선을 다하는 아이의 성격과도 연결되어 있다. 아이는 여러 모로 좋은 반장이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추진력 있고 부지런하며 무엇보다 리더 자질이다. 아이는 좋은 작가이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열심히 준비를 하고 열심히 글을 쓴다. 통일에 대한 글을 쓰라는 과제가 주어지면 명은은 혼자 판문점까지 가서 직접 견학을 한다. 후반에 가면 아이가 표절을 한 것이 아니냐고 몇 초 동안 의심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짓말을 했다면 모를까, 표절은 명은이 절대로 하지 않을 일 중 하나다. 단지 아이에겐 상한선이 있다. 아주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 불안불안 위태롭게 유지되던 명은의 우주는 학교에 혜진과 하얀이라는 학생들이 전학오면서 흔들린다. 교장선생님은 이 아이들에게 될 수 있는 한 평범한 배경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들은 그 주어진 허구를 가볍게 하나씩 깨트린다. 평범한 집안의 이란성쌍둥이로 소개되었지만, 아이들의 엄마는 유흥업소 사장이고 하얀은 업소 직원의 딸이다. 명은이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숨겼을 사실인데, 혜진과 하얀은 이를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네 삶을 소재로 글짓기를 하는데, 이들이 별 노력없이 쓴 글은 명은이 판문점까지 가서 취재한 글을 가볍게 넘어선다. 명은의 질투심은 하늘을 찌른다. 자연스럽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대한 오래된 전설이 떠오른다. 전설이라고 한 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 아마데우스 >는 옛 헛소문에 기반을 둔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천재와 범재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단순한 세계의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명은과 혜진 & 하얀의 관계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명은이 은근슬쩍 혜진을 사보타지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 아이는 곧 친구가 된다. 무엇보다 명은은 두 아이의 작가로서의 능력과 인간적 매력을 알아보는 소수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이야기가 아니냐고? 아니라니까 그러네. 여기서부터 영화는 명은의 작가로서의 성장을 보여준다. 아이가 엄청나게 정신적으로 성장했다는 게 아니다. 단지 아이의 세계관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추구해왔던 전략과 목표 상당수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좋은 글에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대범함과 솔직함도 필요하다. 그리고 영화가 배경인 1990년대 중반은 정말로 이런 글이 먹힐 수 있는 시기이다.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명은은 혜진 & 하얀 콤비와 같은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다. 이미 작가로서 꾸준한 훈련을 해왔던 것이다. 단지 전략만 수정하면 된다. <비밀의 언덕>에는 천재와 범재를 구분하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없으며, 평범한 작가의 노력도 인정을 받는다. 아니, 명은도 평범한 작가는 아니다. 학교 글짓기를 위해 판문점까지 가는 부지런함,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글을 쓰는 집요함도 재능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하면서도 특별한 지점은 명은의 정신적 성숙이 좋은 작가가 된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창작자에 대한 이야기는 반대의 순서를 따르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그런 판타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훌륭한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기술이며 아무리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만든 창작자라도 여전히 그냥 개*#₩일 수 있다. 아니, 그 개*#₩는 사람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개*#₩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개*#₩다. 하지만 명은은 성장한다. 갑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경멸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랬다면 좋은 작가도 못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쓴 글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 자신의 기술적/예술적 성취가 늘 우선순위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주변의 결점있는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명은은 작가가 되었을까. 명은을 연기한 주연배우 문승아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려고 한 것부터가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혜진을 따라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이 단계를 거쳐 성장했으니 더 이상 글을 쓸 이유가 있을까? 멋진 캐릭터 해석인데, 나는 다른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글쟁이인 혜진과 하얀은 자신의 삶에서 밑천이 떨어지면 그냥 글을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명은과 같은 작가는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