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종합병원
- 감독
- 박광우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이경영, 이혜진, 조용원, 트위스트 김, 양택조, 정선우, 이기열, 조선묵, 전만배, 임수택, 홍윤정, 하영은, 한명환, 박영훈, 이은양, 남정아, 김은숙, MANIA, M.T.M
야심한 밤의 주유소, 프레임 오른쪽에 도열한 급유기들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흰색의 사각형, 후경의 도로 뒤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프레임을 수직으로 가르며 달려와 카메라 앞에서 멈춘다. 프레임 왼쪽에서 주유원이 프레임 인하여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이 깊은 공간의 가장 앞쪽에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을 주는 긴 쇼트가 지속되는 동안 주유가 끝나고 오토바이의 라이더가 시동을 걸자 카메라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넓어진 화각의 카메라는 축축하고 어두운 도로, 전반적으로 컴컴하고 듬성듬성 불이 켜진 건물들, 황녹색 신호등 사이를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인도하는 것 같다. 하나의 쇼트로 서술되는 이 신에서 영화의 주인공 태훈(서준영)이 막 도착했고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될 것임을 짐작한다. < 회오리 바람 >(2009)은 기대감을 형성하는 설정의 기능을 통해 서사의 심부(深部)로 관객을 끌고 가는 인상적인 프롤로그를 제시한다. 플롯을 주재하는 모티프는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구조이다. 태훈과 그의 동급생 여자 친구 미정(이민지)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속초여행을 다녀오는데, 이 일탈적 여행이 초래한 여파, 악화하는 관계의 추이가 내러티브의 골간을 이룬다. 서로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실현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소년 소녀에 관한 이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이다. 이와 같은 유서 깊은 스토리 유형의 장점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내러티브를 파악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은 모두 그런 장면들이다. 장건재 감독의 성취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부유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요동하는 존재의 상태를 시청각적인 기술(記述)을 통해 서술해낸 것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 이후 ‘3개월 전, 고2 겨울방학’으로 시간이 점핑하여 속초여행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플롯은 저들의 존재와 앞날을 암시하는 한 신을 제시한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태훈과 미정은 각각 흰색 콘크리트 기둥과 쇠기둥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쓰레기통에 담배를 비벼 끄고 프레임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태훈을 카메라가 따르는 동안 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외면하는 자세로 선다. 짙은 그림자가 잠식한 프레임 뒤편에서, 숨겨져 있던 쇠기둥들을 걸치고 태훈은 한 사내에게 “서울에서 올라왔는데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여비를 구걸한다. 태훈은 서울로 돌아가 계좌로 빌린 돈을 붙여드리겠다고 청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 사내는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곤란한 표정의 태훈이 대합실 입구에서 안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미정은 그가 다음 상대를 골라 프레임 왼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태훈은 일군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같은 요청을 하지만 용건이 끝나기도 전에 냉랭한 거절의 답을 듣는다. 다시 프레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대합실에서 나오는 중년의 여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때 상황이 반전된다. 태훈의 기색을 살피던 여인은 “얼굴이 아주 심각하구만”이라고 관심을 보이더니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는 듯, “붙여준단 소리 하는 학생은 또 처음 보네, 인상이 좋아서 꿔주는 거야”라며 지갑을 연다. 구제의 가능성이 보이자 “도착하는 대로 꼭 붙여드릴게요”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태훈에게 이 구원자는 “믿어보는 거지 뭐, 진짜 줄래나 안 줄래나”라고 혼잣말을 한다. 태훈의 이동 경로를 따라 프레임 앞으로 슬그머니 이동한 미정은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태훈과 여인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관객의 관점을 공유한다. 물경 2분 20여 초 간 지속하는 기나긴 이동 쇼트는 불안한 구도와 기우뚱한 자세로 선 소년 소녀의 현재와 앞날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호의를 보인 구원자의 바람과 달리 태훈이 빌린 돈을 돌려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태훈에게는 서울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여비가 있었으나 다만 초코바와 우동을 사 먹을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가벼운 배신의 삽화는 다소간 약삭빠른 태훈의 성격을 암시하는데, 이와 같은 캐릭터의 일관성은 PC방에서 마주친 건달들을 속이려다 숨겨둔 돈과 신발을 모두 빼앗기고 린치까지 당하는 장면(이 신은 마치 선의의 구원자를 배신한 이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섬세하게 유지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태훈의 움직임과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가담하지도 못하는 미정의 제스처를 한 호흡으로 담아낸 롱테이크 쇼트는 이후에 진행될 서사의 궤적을 지시한다. 저들은 이 즉흥적인 바다 여행을 빌미로 강제로 이별하게 될 운명이다. 소년은 변덕이 있고, 즉흥적이며, 괴팍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비해 소녀는 주변을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소년은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을 보이지만 소녀는 이미 결단을 내리고 그를 외면한다. 태훈은 새로운 관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미정의 침실 창문을 두드리거나 은밀하게 뒤를 밟아 알아둔 학원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태훈의 불쾌한 행동과 그를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미정의 절교 선언은 겨울 바다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예견된 바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두 사람의 선택은 미세하게 갈라지게 된다. 표면적인 이야기 너머를 향하면서 영화의 의미맥락을 풍부하게 하는 영화적 묘사의 힘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보여주는 후속 신에서도 드러난다. 자식들의 일탈을 눈치챈 미정의 부모가 태훈과 그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얼마간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가진 미정의 아버지(최효상)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두 아이에게 각자의 행적을 적게 하고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확인하려 한다. 범죄 조서를 꾸미듯 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저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스토리를 적어 냈을 때 미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발목에서 칼을 꺼내 나무 탁자 위에 꽂는다. 핸드헬드 쇼트는 극도의 혼란을 전달하고, 점프 컷은 미정의 뺨을 때리고 골프채로 장식장 유리를 부수는 아버지의 광란의 퍼포먼스를 단속적으로 보여준다. 태훈을 향한 아버지의 욕지기는 별안간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텔레비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결된 것임이 밝혀진다. 상이한 타임 라인을 잇는 사운드의 연결 패턴은 이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회오리 바람>의 특이점은 소년, 소녀가 그해 겨울의 체험을 겪어야 했던 이전의 상황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회귀적인 지향성에 근거하여 그들을 둘러싼 주변이나 세계와의 접점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로 표랑하는 열여덟의 특성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 상황, 캐릭터,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의 스타일 전략, 디테일은 잘 조율되어 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의 가능성이 만개하던 시절 DV 캠으로 촬영한 이미지의 생생함, 시간과 주의를 낭비하지 않는 촬영, 섬세한 연기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빈번한 롱테이크는 나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기여하고 상당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부 묘사는 반항심에 찌든 십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바람의 이미지, 텍스처는 거칠지만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미성숙한 시절에 관한 이 가슴 아픈 이야기의 무드와 잘 어울린다.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훈의 오토바이가 행인을 친 뒤 급격히 암울해지는 분위기는 텅 빈 겨울 바다를 무대로 들려오는 태훈과 미정의 화면 바깥 대화와 대비를 이룬다. 지나 버린 시절의 격정 안에 영화가 포괄하고자 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실해진다. 험준한 산길과 사막을 걷는 태훈이 모습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방황이 오래 지속될 것임을 말한다. 시간이 다시 점핑하여 ‘3개월 후, 열아홉’이 된 미정은 진즉에 상실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체육관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목엔 태훈이 준 목걸이가 매달려 있다. 얼마 후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리더니 바닷바람을 맞은 듯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두 사람의 미래가 완전히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간은 겨울 바닷가 여행이 시작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바람의 이미지는 백사장을 덮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내며 태훈이 움직일 때 매섭게 부는 바람의 사운드로 이어진다. 미정 역시 태훈과 마찬가지로 잘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주유소, 터미널, 미정의 집, 바닷가 눈밭에서의 움직임과 정지, 동요는 영화가 묘사하고자 한 ‘바람’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바람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광기를 부리고, 차분하고, 들떠 있고, 안정을 주고, 불안하고, 차갑고, 따스하다. 정제되지 않은 시간과 존재를 흔드는 바람의 색깔은 열여덟의 고뇌와 황홀경, 삶의 혹독함을 이기는 기억을 생생하게 회상하는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6.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초점이 맞지 않은 침침한 화면으로 치도곤을 당하는 한 소년이 보인다. 폭행을 가하는 패거리들 가운데에서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두들기는 가해자의 얼굴도 희미하게 드러난다. 폭행에 가담하진 않고 있지만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가해자로 보이는 두 소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피아 구분이 불분명한 혼란 상(像)은 앞으로 우리들에게 제시될 사건의 성격을 말해준다. 내레이션(Narration)이라는 관점에서 < 파수꾼 >(2011)은 복합적 서사 라인의 겹침과 교차, 미궁에 빠지는 인과율, 내레이션의 시간 조작이라는 현대적인 스토리텔링 장치들에 의해 운항된다. 다성적인 기원을 갖는 인간 행위의 본질에 가까이 가기 위해 이 영화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캐릭터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갖도록 자율성을 부여한다. 앞과 뒤의 서술 내용이 서로를 배반하는 플롯은 서술 주체들의 입장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삽화들을 교차하면서, 부딪히고, 순환하는 관계를 묘사한다. 간단하게 정의될 수 없는 인간관계의 복잡성이 인물들의 삶에 비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연출자 윤성현은 단일하게 정의할 수 없는 인간 행위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무질서하게 배치된 것처럼 보이는 쇼트와 신, 시퀀스들의 관계를 유기적인 사슬로 엮는다. 한국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십대 드라마는 외부인이나 교사의 관점을 포함하여 청소년의 행태를 극화함으로써 국가 시스템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관찰은 정형화된 스토리 패턴에 종속되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십대 캐릭터를 앞세우는데 모든 사건에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다. 주인공은 대개 결손 가정 출신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쉼터이자 사춘기 이후 악몽의 온상인 학교와 가정의 중층적인 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파수꾼>은 십대 드라마의 클리셰를 부분적으로 차용하면서 이와 본질적으로 갈라선다. 장르의 전형을 뛰어넘는 성취는 명백한 인과관계에 의해 성립되는 십대 드라마의 서사 관습에 도전하는 것이다. <파수꾼>은 한 명의 프로타고니스트에 의해 주관(主管)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복수(複數)의 인물들이 교대로 플롯을 끌고 가며, 시간은 선형성을 도외시한 채 과거와 현재를 어지럽게 오가고, 연대기적 인과관계의 전복을 통해 전통적 스토리텔링의 유습으로부터 탈피하고 있다. 요컨대 플롯이 추구하는 목표 내지는 관객들이 던지는 질문은 국면에 따라 종류를 달리 하고 그때마다 화자가 교체되면서 목표와 질문의 깊이도 달라진다. 서술 주체가 변경될 때마다 내레이션은 미스터리를 해소하고 이야기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기차 선로 마냥 미스터리의 해결은 단일한 결과로 귀결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야심찬 <파수꾼>의 서사는 세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주인공 기태(이제훈)의 죽음을 추적하는 일종의 탐정 스토리에서 최초로 탐정 역할을 맡은 인물은 희생자의 아버지(조성하)이다. 도입부에 관객들은 미스터리 장르의 관습과 규범에 따라 기태의 아버지가 죽음의 비밀을 밝혀 갈 탐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희준(박정민)을 만난 이후부터 그의 소임은 끝난다. 현재의 탐사자이자 질문자인 아버지는 기태의 죽음과 관련한 피상적인 사실만을 제공할 뿐이다. 누가 죽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이 내려진 이후 그는 서사의 동력을 상실한다. 그때까지 가해자로 보였던 기태가 죽었다는 사실로부터 가해자는 왜 죽음에 이르렀고, 피해자는 그로부터 도피하였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행한다. 덩달아 죽음의 미스터리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희준, 동윤(서준영)에게 초점이 이동한다. 플롯의 효과가 랜덤의 배열이 아니라 치밀한 내레이션의 작용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 질서와 논리에 주목해야만 한다. 기태를 가학적인 악마와 속 깊은 친구로 번갈아 보여주는 도입부의 플래시백은 이 장면이 누구의 관점에서 전달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간 혼란스럽다. 하지만 기태의 죽음을 둘러싸고 희준과 동윤이 용의자로 좁혀지는 순간, 진실이 밝혀지는 것 같다. 죽은 친구의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소년들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일치된 행동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비난을 피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두 소년은 기태와 친했던 적이 없다고 부인하거나 다른 친구들이 기태를 더 잘 안다고 질문을 회피한다. 영화의 서사 전개, 갈등과 대단원은 도입부에 제기된 쟁점에 종속된다. 즉, 도입부에서 결과(기태의 죽음)를 먼저 제시함으로써 이것이 내러티브의 모든 국면을 관장하도록 설정하였다. 기태가 희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걸 먼저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기태에게 마음을 주기 어렵다. 그러나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전환되면서 보다 진실에 가까운 기태의 입장(폭력의 원인과 그 내면)이 드러나는 식인데 이 대목에 이르러 관객은 그를 동정하고 깊이 이입하게 된다. 이 순간부터 화자의 교체와 더불어 오인의 매설, 수정은 이 구조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다. 고전적 내레이션의 경우 단선적인 갈등의 유도와 해결이 일반화된 반면, <파수꾼>은 핵심 사건과 갈등이 다중적인 흐름으로 유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내레이션 전략은 사소한 오해와 차이가 누적되어 붕괴하는 관계라는 주제를 견인한다. 질문의 이행과정에서 정보, 심리의 전개 방향을 분명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고전적 내러티브 구조와 달리 이 영화는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지점을 그윽하게 감춘다. 기태의 죽음과 연관된 인물들이 서로 공유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정보는 관객에게 공유됨으로써 누적된다. 그러나 관객들 역시 죽음의 원인을 완벽하게 알았다고 하기는 힘들다. 이는 기태와 희준, 동윤의 스토리를 거의 균등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들의 관계가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설득력 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희준과 동윤은 기태의 아버지를 매개로 하여 기태와의 과거를 회상하지만 이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내용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경험이 자신의 입장에서 나열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서사의 끝에는 말끔한 미스터리의 해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희준이 기태와 함께 보낸 시간을 회상할 때 카메라는 소년들이 공유하는 유쾌함과 웃음을 가까이에서 포착하지만 그들 사이에 심연이 형성됨에 따라 점차 정적인 제스처로 변한다. 친구의 얼굴 사이에서 카메라의 이동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서로 마주보고 위치할 때 멈춘다. 멈춤과 경직은 지속되고 곧 메울 수 없게 된다.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 희준과 재호(배제기)가 기태의 콤플렉스인 모성의 부재를 입에 올렸기 때문인지, 짝사랑하는 보경이 기태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아 희준이 질투하는 것인지, 세정(이초희)에 대한 풍문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든 것이 묘연하다. 기태는 회피하는 희준에게 짜증을 내고 절친을 때리는 것으로 좌절감을 표출한다. 또는 희준은 기태가 자신을 위협하는 방식을 싫어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친구인 척한다. 희준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동안에도 기태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소년들은 어른, 작중 인물, 관객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세계 안에서 말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미묘하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소년들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정신분석적, 사회학적, 전지적 관점을 지양한다. 여러 갈래의 관점이 교차하는 이 영화의 구조는 만족할만한 결말, 명쾌한 진실을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 해석하는 것이 기껏해야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은 퍼즐 조각의 조각난 그림들일 때 더욱 그렇다. 윤성현은 십대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영화적 언어로 효과적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욕설 외에 1분 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완전히 남이 된다. 흔해빠진 십대 성장드라마에 독창성을 부여한 것은 이야기의 형식이 이야기의 성격을 결정하도록 한 스토리텔링의 효과이다. 탐색의 주체가 봉착한 딜레마를 강조하는 조각난 비선형 구조는 악마의 모습으로 등장한 소년이 수줍고 연약한 아이로 귀환하여 위력적으로 마음을 휩쓸고 가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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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영화’라고 하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보편적인 스토리 진행 방식이 있다. 고난과 역경을 겪는 등장인물이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한 후에, 무사히 다음 생애 주기로 진입하여 비로소 예전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성장영화의 한 기준점으로 자리 잡은 이 독립영화는 어떨까. 어느새 개봉 10주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영화 < 파수꾼 >( 윤성현 , 2011)에 대한 비평과 담론은 꾸준히 생성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성장을 다루는 영화가 등장하면 <파수꾼>과 비교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절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어느덧 우리나라 청소년 성장영화의 대표작이 되어버린 이 영화가 사실 우리가 익히 알던 성장영화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구타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파수꾼>은 곧이어 삭막한 아파트가 늘어선 전경을 비추며 영화의 진행이 밝지만은 않을 것을 암시한다. 아들 기태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아버지의 시점에서 희준, 동윤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플래시백 구조를 통해 영화는 등장인물 각각의 미세한 심리 변화에 주목한다. 지금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젊은 피들이지만 당시에는 풋풋한 신인이었던 배우들의 날 것 그대로의 연기는 모두가 거쳐왔으나 망각하고 있었던 그때 그 시절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기존 성장영화의 철칙과 달리, <파수꾼>의 아이들은 상처는 단지 상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온몸으로 역설한다. 한 소년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추적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영화는 결국 명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채로 끝이 난다. 세 소년이 어긋난 소통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 입고, 또 상처 입힌 자국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나의 성장기는 본의 아니게 <파수꾼>과 함께였다. 기태, 동윤, 희준 세 친구보다 어렸던 중학교 3학년, 그들과 같은 나이였던 고등학교 2학년,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거쳐 비로소 성인이 된 지금. 같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람 시기에 따라 <파수꾼>은 변해왔던 내 나이만큼이나 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다. 열여섯 살의 나는 교실 내부의 보이지 않는 서열화를 매우 싫어하였기 때문에 반 친구들 위에서 군림하려 드는 아이들을 기피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의 내가 기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희준에게 이입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열여덟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중재자’ 역할을 하던 아이였다. 그러므로 기태와 희준의 갈등으로 걱정하는 동윤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희준 같은 중학생이자 동윤 같은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두 인물처럼 당시에는 기태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다시 본 <파수꾼>의 소년들은 학창 시절의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생각보다 희준은 강인했고, 동윤은 위태로웠으며, 기태는 여렸다.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이입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나와 달리, ‘어른’의 문턱을 넘은 현재의 나는 비교적 넓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지러운 핸드헬드의 화면 속에서 기태와 희준, 희준과 동윤, 그리고 동윤과 기태는 야구공을 통해 이미 색이 바래버린 서로의 마음을 뒤늦게 전하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 관객들은 자살한 인물이 당연히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인 희준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영화는 가해자인 기태를 자살의 주체로 제시하며 관객을 혼돈에 빠뜨린다.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서열의 최상위권 기태에 비해 희준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기태의 눈빛은 흔들리는 반면 희준의 눈빛에는 강단이 서려 있다. 뺨을 맞고 머리채가 잡히는 인물은 희준이지만 어째서인지 기태가 아파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희준은 자신의 ‘자존심’을 알음알음 건드리는 기태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고, 소통을 일방적으로 단절함으로써 기태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기태는 희준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유도, 그 상처를 치유할 방법도 몰랐기 때문에 결국 신체적 폭행을 통해 희준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를 입힌다. 서로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던 그들의 관계는 각자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어그러져버렸다. 기태는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 했지만 사과에 미숙했고, 희준은 이미 지나간 인연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않는 아이였다. 완고한 희준에게 기태가 자신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중한 자신의 야구공을 던져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기태의 자살 이후, 희준은 ‘무슨 일인지 나한테 얘기 안 해도 돼. 그래도 네가 기태 아버님은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동윤에게 기태의 야구공을 건넨다. 기태가 자살한 것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기태 아버지께 사건의 전말을 말씀드리는 책임을 동윤에게 전가함으로써 희준은 기태의 진심을 결국 외면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마음을 닫아버리는 방식은 희준이 아픔으로부터 본인을 보호하는 행위이기에, 우리는 동윤에게 야구공을 내미는 희준을 함부로 비난하지 못한다. 기태나 동윤과 달리, 희준은 적어도 자기 자신은 지킬 줄 알았던 파수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윤은 기태와 이야기를 나눴던 식탁에서 희준이 ‘회피’한 기태의 진심을 집어 들게 된다. 동윤과 기태 사이의 틈이 점점 더 벌어지게 된 이유에는 그들의 대화 방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소년은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처럼 말을 주고받는다. ‘야, 네가 뭘 아냐?/ 모르니까 물어보잖아.’, ‘그냥 좀 넘어가. 설명 못 하는 일도 있잖아.’와 같은 모호하고 불완전한 문장을 남발하며 그들은 소통 없는 대화를 반복한다. 이는 동윤의 회상 장면에서 볼 수 있는 동윤과 기태의 대화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없어질 것에 목매지 마라’라는 충고를 해주는 동윤에게 기태는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비참해져도, 너만 알아주면 돼’라는 신뢰의 말을 건넨다. 서로가 진실한 말로써 소통할 수 있는 사이였다는 것을 동윤은 조금 늦게 깨닫는다. 세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담긴 유일한 공간이었던 기찻길에서 동윤은 기태를 회상(어쩌면 상상)하며 ‘누가 최고야?’라고 묻는 기태에게 ‘그래. 네가 최고다, 친구야.’라는 늦은 대답을 전한다. 희준이 애써 회피한 기태의 진심을 간직하고 있던 동윤은, 그것을 다시 기태에게 건네주며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을 ‘후회’한다. 영화는 아이들이 성장의 다음 단계로 무사히 진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그렇게 끝을 맺는다. 한 아이는 죽었고, 한 아이는 회피하고, 한 아이는 후회하는 모습만을 남겨둔 채로 엔딩 크레딧은 무심히 올라간다. 한 인터뷰에서 기태가 죽은 결정적인 이유에 관한 질문에 기태 역의 이제훈 배우, 동윤 역의 서준영 배우, 희준 역의 박정민 배우 모두 ‘나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전부 충분히 이해되는 대답이다. 기태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잘못된 방식으로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 죄가 있고, 동윤은 ‘너만 없었으면 돼’라는 말로 기태를 무너뜨린 죄가 있으며, 희준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너무 일찍 마음을 닫아버린 죄가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라는 기태의 질문은 애초에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년들보다 더 성숙하고 완전한 존재라고 자부했던 성인 관객들은 기태의 물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유일한 어른이자 진실을 알고 싶어했던 기태의 아버지가 결국 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로 남은 것처럼, 아이들이 파국에 이를 때까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관객에게 <파수꾼>은 ‘어른’과 ‘성장’은 동의어가 아니라고 말하며 우리의 가슴을 후벼판다. 고통과 성장이 필수 불가결한 관계가 아님을 역설(力說)하는 이 영화는 역설(逆說)적이게도 한국 성장영화의 분수령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매체에 등장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어른이 되기 전 단계’로서의 어리숙한 이미지로 소비되었지만, <파수꾼>은 ‘청소년기’를 아동기에서 성인기 사이의 순간적인 이행기로 보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시기로서 세밀하게 다룬다.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성인으로 무사히 자라기 위해 도약을 꿈꾸는 미성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수꾼>은 모두가 충분히 아팠지만 세월 앞에서 잠시 잊어버린 그 시절을 생생히 돌이켜보는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상처는 그저 상처일 뿐이라며 아프고도 성장하지 못했던 희준, 동윤, 혹은 기태였을 우리를 덤덤히 위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