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
- 감독
- 서지환
- 제작년도
- 2020
- 출연
- 하윤경, 오동민, 김민엽
서지환의 < 저 ㄴ(X)을 어떻게 죽이지 >란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궁금한 것은 ‘저 제목을 어떻게 읽느냐’다. 그냥 ‘저 엑스’라고 읽어야 할까. 아니면 X가 검열한 단어를 찾아서 읽어야 할까. 후자를 따른다면 아마도 X가 검열한 단어는 ‘년’일 것 같다. ‘놈’은 아무래도 덜 검열되는 단어이고 다른 비속어 욕들은 두 글자 이상이니까. 영화의 무대는 시골 전원주택. 중년 부부가 애 없이 살고 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노동으로 돈을 버는 거 같지 않다. 영화 속에서 이들과 함께 사람들은 젊은 고용인 세 명. 여자 둘과 남자 한 명이다. 그러니까 이 부부는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격리된 공간에서 옛날 서양 유한계급 사람들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그건 이들이 ‘지나간 시대의 먼 나라’의 특정 계급 사람들이 다른 계급 사람들에게 가졌던 권력을 갈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람들이 이 역할극 안에서 선을 넘었고 다른 선도 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 집에 있는 총기다. 대부분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사용되는 페인트건이다. 하지만 아닌 것도 있다. 그리고 지겨워진 남편은 고용인들에 사냥 게임을 제안한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영화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인한다. 2021년작이다. 그라고 봉준호의 < 기생충 >은 2019년에 나왔다. 이 영화가 <기생충>의 자장 밑에서 나왔다고 짐작하는 건 타당하다. 하지만 그만큼 게으른 생각이기도 하다. <기생충>을 염두에 둔 영화라도 장 르누아르의 < 게임의 규칙 >의 영향을 더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엔 계급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이 세계 속 갈등은 익숙해보인다. 여자 고용인 1번인 하윤은 새로 들어온 여자고용인 2번인 지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윤은 저택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영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렇다면 제목의 ’저 X’는 저 년’이 맞나? 그런데 요새 세상에 이런 제목 트릭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일단 이 영화는 프라이드 영화제 상영작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역학 관계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 같은 그림을 그리다가 중반 이후에 뒤집는다. 그 뒤집음은 비교적 상식적인 생각에 기반을 둔다. 젊은 고용인에 대한 중년남자 상사의 치근거림은 불쾌한 성희롱이다. 당하는 사람도 괴롭고 옆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바라 보는 사람이 성희롱 당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불쾌함을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 영화는 그걸 지켜보는 사람, 그러니까 하윤이 성희롱을 당하는 사람, 그러니까 지영을 처음부터 사랑하고 있었다고 친다. 이렇게 하면 진부해보였던 하윤의 행동이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여기에는 다른 기능이 있는데, 지금까지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남편의 위치를 사정없이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애자 남자의 권력은 하윤이 지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겠다고 생각한 뒤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보니 남자의 권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허약했다. 앞에서 나는 이 남자가 어떤 노동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건 남자의 사회적 기능이나 가치가 시시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격리된 이 세계에서 남자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여기에 대해 깊이 고민할 사람이 별로, 또는 전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는 발랄한 코미디지만 누군가에겐 정말로 무섭게 보일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단편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출연한 신인이나 무명배우들이 발표 이후 주목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윤역의 하윤경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이고 곧 부산에서 공개될 < 딸에 대하여 >(편집자 주: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개되었다) 영화판의 레인이다. 지영역의 방효린은 < 지옥만세 >의 선우이고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에 캐스팅되었다. 두 배우의 경력이 이후에도 여성간의 관계 또는 퀴어의 주제를 품고 있다는 건 흥미롭다. 심지어 방효린은 <지옥만세> 개봉 이전인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22‘에 이미 방효린 특별전이 가능할 정도로 꾸준히 퀴어 주제 단편들을 찍어왔다는 정보를 덧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