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선미와 함께한 마지막 기념파티 영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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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2021년 10월 15일 정연씨에게, 정연씨, 한국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얼마 전 물으셨지요. 평소 그랬듯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싫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싫은 까닭을 설명하려면 밝힐 일이 너무 많아 말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글로 대답을 드리려 하지만, 이것도 매우 어중간한 대답으로 그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싫음과 그 여파가 한국 영화와 제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이 주제의 중대성이 제 기억과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1) 그렇습니다, 정연씨. 제가 지금 정연씨에게 쓰고 있는 건 편지입니다. 공교롭게도 정연씨에게 처음 편지를 쓴 날이 2015년 10월 15일이더군요.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7년 만에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7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해 그전과 지금을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솔직히 말하면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연씨는 그동안 아기를 낳고 일산으로 이사 갔으며 네 권의 책을 내고 한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백스물두번의 토크 사회를 봤으며 담배를 끊고 살이 쪘지만 여전히 브릿팝을 듣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LP판으로 브릿팝을 듣는다는 사실이겠지요. 정연씨가 휴대용 턴테이블을 문보영 시인에게 선물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정연씨는 그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걸까요. 문보영씨의 인상적인 에세이 <일기 시대>에는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영씨의 성격 유형은 INFP로 ‘열정적인 중재자’였는데 어느 날 INFJ ‘선의의 옹호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연씨는 INTP ‘논리적인 사색가’이지요. 두 유형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때문에 잘 맞다고 합니다.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로 찰떡궁합이라는군요(참고로 저는 MBTI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만해서일까요, 너무 겁쟁이라서일까요. 어쩌면 이 둘은 같은 거 아닐까요). 아무튼, 정연씨는 턴테이블이 아까우니 LP를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시험 삼아 LP를 샀다지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수십년 간 들어온 브릿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제프 베조스는 정연씨가 주문한 New Order의 네 장의 LP판 중 두 장을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상태로 배송했지요. 그럼에도 당신의 못말리는 구매욕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ROOM29”를 주문했으니까요. “ROOM29”는 선셋대로의 전설적인 호텔 샤또 마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앨범이라고 하더군요. 자비스 코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레코드는 영화가 인간 존재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지점에 완전 푹 빠져 있어요. 2) 자비스와 칠리가 2017년에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정연씨, 상우씨와 바비컨 센터를 걷던 2019년의 어느 가을 날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은 점심 대신 칠리 페퍼 아이스크림을 먹었지요. “ROO29”에도 이런 제목의 곡이 있네요. “Ice Cream as Main Course.”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 모든 것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말이지요. 사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음악: 브릿팝(25년째) 좋아하는 뮤지션: 뉴오더(25년째) 기록 시스템: 미니컴포넌트 -> CD플레이어 -> 아이팟 -> 스포티파이 -> 턴테이블 본질은 그대론데 실존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턴테이블로까지 브릿팝을 듣는 정연씨가 조금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영화를 향유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하는 시즌제 드라마가 저에게는 루이 푀이야드 같은 감독의 연속영화(serial film)를 연상시키기도 하니까요. 참고로 정종화 연구원은 연속영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편 극영화가 정착되기 이전인 191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제작되고 유행했다. 주로 활극적인 내용을 2권(롤) 1편으로 구성하고 그 편의 마지막에 위기일발의 장면(cliffhanger)을 넣어, 최종편이 끝나는 12, 13주부터 24, 25주 동안 관객들이 매주 영화관을 다니도록 만드는 형태다.” 3) 어쩐지 욕하면서도 < 오징어게임 > 다음화를 클릭하는 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설명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정말 다를까요? 뭐가, 얼마나?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일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시스템의 동적평형 때문이지요.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변화란 어쩌면 이런 것 아닐까요.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4) 여기 질서/파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2015년 10월, 저는 고다르가 남가주 대학에서 토론 중 한 말을 인용하며 편지의 끝을 맺었습니다. 2015년 10월 31일이 보낸 편지였지요. 그리고 7년이 지난 2021년 10월 30일, 정연씨와 저는 강릉영화제에서 “한국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사람들”을 주제로 토크를 할 예정이지요. 정연씨가 보내온 대본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지돈: 그러나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지 않나요? 정연: 그런 점을 바꾸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을 보러 올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 에세이-필름을 보러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뀌어야한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그것은 단지 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돈: 관객을 바꾸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정연: (관객을 바라보며) 세계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 5) 저는 정연씨의 이 대본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과거에 우리가 나눈 원고-편지에 대한 단순한 패러디인지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희에게는 몇 가지 논쟁점이 더 있지요. 정연씨는 최근 홍상수의 영화에 빠졌고 21세기 한국영화는 홍상수다 , 라고 주장하는 꿈을 종종 꾸기도 합니다. 저로 말할 거 같으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홍상수(또는 김기덕)이며 그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집니다. 제가 한국 영화로 진입한 첫번째 입구였던 봉준호와 박찬욱이 지금까지 든든한 이정표가 되었다면 아마 저는 길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보며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대의 사람이 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어떤 별은 너무 환하게 불타 쳐다 볼 수 없을 정도고 어떤 별은 블랙홀에 흡수됐으며 어떤 별은 낙하해서 코앞을 스쳐지나기도 합니다. 길을 알려주기는커녕 우리의 행성을 박살내려는 양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홍상수고 그러므로 저와 정연씨가 10월 말에 강릉에 가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강릉이 어떤 장소인지 기억하시나요? < 강원도의 힘 >이 20세기 영화라는 이유로 우리의 에세이 필름에서 제외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에도 강릉이 나오니까요. 저는 정연씨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스트리밍 사이트에 있는 모든 홍상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송선미 분이 김민희 분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네요. “꼭 읽을 책을 사. 그래서 그 책을 깊이 만나. 정말 싸우듯이 그렇게 만나야 돼, 책하고.” 알겠죠, 정연씨? 꼭 읽을 책을 사세요. 샀던 책은 그만 사시구요. 2021년 10월 24일 정연씨에게 어제 정연씨와 리들리 스콧의 신작 < 라스트 듀얼 > GV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 걸까요?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 추위 때문에 온몸이 떨려서 그런 걸까요? 저는 오늘 검색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좋은 작품에 비해 GV는 좀 아쉽더군요. 오른쪽에 계신 작가님이 이야기를 벌여놓으면 왼쪽에 계신 평론가님이 수습하고 정리하는 진행이 다소 매끄럽지 않아 그렇지 전 꽤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 네영카 및 익스트림 무비 자유게시판에서 발췌 보시다시피 정연씨가 또 한번 저를 구원했습니다. 정연씨가 아니었다면 GV는 수렁에 빠졌을 게 분명합니다. 저희가 처음했던 GV 기억하시나요? 빔 벤더스의 영화 <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이었죠. 저희의 GV는 어느 네티즌에 의해 “올해 최악의 GV”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더 이상의 GV 섭외는 없었죠(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영화 관계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저희는 운좋게 GV 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정연씨는 과거의 오욕을 극복하고 이동진-되기를 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감미로운 목소리, 아담 드라이버의 잘생김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의사-페미니즘에 대한 시의적절한 논평… 거리두기로 인해 구 아이맥스 관이었던 용산 CGV 4관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접한 정연씨의 모습은 새로운 평론가의 탄생을 보는 듯했다고, 어느 관객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또 한번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2015년 10월을 가로질렀던 저희의 편지에 리들리 스콧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오늘과 같은 날인 10월 24일, 제가 정연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말입니다. 저는 < 마션 >을 보고 난 뒤 이렇게 씁니다. <마션>을 보니 리들리 스콧은 하수라는 저의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는 쓸개 빠진 곰처럼 굴더군요. 꼬리를 흔드는 곰이란! 과거란 대체 무엇인가요. 정연씨. GV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 속에 울리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은 언제나 지금도 일어납니다. 그 일치가 너무 놀라워서 손에 쥔 상상 속의 펜을 바닥에 떨어뜨릴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편지 따위를 쓰지 말았어야 했나 봅니다. 자기 자신한테서 벗어나질 못하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편지를 혐오합니다. 과거의 편지에서도 내내 투덜대더군요. 편지는 21세기 최대의 가식이다, 편지를 쓰느니 돼지를 잡겠다…(이건 앨프레드 테니슨의 말입니다). 그러나 가끔 편지가 위대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령작가 리 이스라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녀는 1967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를 다룬 에스콰이어지 기사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비타협적이고 시니컬한 브룩클린 출신 유대계 레즈비언이었던 리 이스라엘은 이후 탈룰라 뱅크헤드와 도로시 킬갈렌 같은 여성들의 전기를 쓰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그러나 운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작업한 화장품 업계의 대부 에스티 로더의 책이 처참한 평가를 받게 되거든요. 그녀는 이후 긴 슬럼프와 가난, 정신적인 궁핍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리 이스라엘을 구한 건 편지였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해도 유명인들의 편지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고서적 같은 물품이었습니다. 뉴욕의 서점들은 낡은 서랍에서 나온 편지를 구매하고 수집가들에게 되팔았지요. 리 이스라엘은 편지를 위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타자기를 사용해 작가나 코미디언, 배우의 문체를 흉내낸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끝에 어설프게 위조한 서명만 하면 작업 끝! 아무도 그녀의 위조 편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죠. “도로시 파커는 역시 너무 유머러스해! 그녀의 성격이 편지에 묻어나네요.” 그러나 결국 리 이스라엘의 사기 행각은 FBI에게 적발됩니다. 리 이스라엘은 죽는 날까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을 썼고 그 이야기는 영화화가 되었지요. 자서전과 영화 모두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히 울립니다. 편지는 내 최고 걸작이고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리 이스라엘의 편지 쓰기를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신: 되기”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리 이스라엘이 도로시 파커나 헤밍웨이, 노엘 카워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편지가 되었지요. 이른바 편지-되기. 그리고 그녀의 편지는 수신자에게 배달되지 않습니다. 편지 속의 수신자는 처음부터 위조된, 가짜 수신자일 뿐이지요. 진짜 수신자는 익명의 군중이며 이 편지는 시작부터 오배의 가능성 위에서 쓰였습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썼지요. “’유령’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모든 시니피앙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확률적 오배가능성, 오배될 가능성(약속)과 오배되었을지 모르는 가능성의 조합에 다름아니다.” 6) 리 이스라엘이 고스트라이터였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제가 한국영화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과도 관련이 없구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아주 간명한 하나의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한국 영화의 얼굴과 언어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나”를 대체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로지 브라이도티를 인용할 차례입니다. 되기들은 외부의 다른 타자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주체를 그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비통일적 실재로서의 유목 주체는 자기 추진적인 동시에 이질적으로 정의되거나 외부를 향한다. 모든 되기는 소수자로, 다시 말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고전적인 이원론의 ‘타자들’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그 과정에서 이 타자들을 대체하고 재영토화하지만 항상 일시적인 기준으로만 그렇게 한다. 7) 김홍준의 < 나의 한국 영화 >를 보라고 했던 제 말을 기억하시나요? 임재철 평론가는 폴 발레리가 “비평이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식한 사람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와 자기 자신 너머로, 포스트-미Post-Me, 포스트-(내)얼굴… 임재철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오르네요. “금정연은 영화 감독을 해야돼. 근데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려. 너무 착해보이잖아.” 부디 무사히 강릉에서 뵙길 바라며. *** 1) <작가의 편지>(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황종민 옮길, 예술문화, 2021) 2) "How a mythical Hollywood hotel inspired Jarvis Cocker's and Chilly Gonzales' project about the magic of cinema", <Loud and Quiet> 3) " 연속영화와 연쇄극, 극영화의 등장 ", 정종화, KMDb 4) <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8) 5) <고다르 X 고다르>(데이비드 스테릿 엮음, 박시찬 옮김, 이모션북스, 2010) 6) <존재론적 우편적>(아즈마 히로키,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5) 7)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딩동. 문이 열리자마자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은 다짜고짜 총을 겨눈다. 헝클어진 머리,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복잡한 얼굴로 총을 든 그녀의 손이 덜덜덜 떨린다. 그녀는 왜, 누구를 향해 총을 겨눈 것일까. 그 날은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자넷의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을 자축하기 위해 자넷 부부는 친구들을 초대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자넷의 절친인 에이프릴(패트리시아 클락슨 분)과 그녀의 남자친구 고프리드(브루노 강쯔 분). 뒤이어 차례로 들어오는 마사(체리 존스 분) 그리고 지니(에밀리 모티머 분). 마지막 손님은 톰(킬리언 머피 분)이다. 톰의 부인인 메리앤은 늦는다는 전언, 이로써 메리앤을 제외하고 올 손님은 다 왔다. 파티는 시작도 전에 불길했다. 손님 맞을 생각은 않고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자넷의 남편 빌(티모시 스폴 분)을 필두로 에이프릴과 고프리드는 티격태격 작은 말다툼을 멈추지 않고, 톰은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콧속에 마약을 잔뜩 넣더니 권총을 품에 쑤셔 넣는다. 에이프릴이 축배사를 시작하려는 찰나 레즈비언 커플인 마사와 지니가 자신들의 세쌍둥이 임신소식을 먼저 발표하며 초를 치고, 에이프릴이 이 불길함에 화룡점정을 찍으니, 샴페인이 터지는 순간 날아간 뚜껑에 거실유리창이 와장창 박살난 것! 이 요란스런 시작은 그 날의 파티가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것을 현현한 것이었다. 출발테이프를 끊은 건 빌이었다. “내 상태가 안 좋다는군. 진단을 받았는데 결과가 별로야. 시한부라네.” 다들 놀라 할 말을 잃은 가운데 정적을 깨는 사람은 톰. “망할 놈!” 위로는커녕 그 와중에 빌에게 욕을 하는 시츄에이션이라니! 하지만 빌이 욕을 얻어먹을 만했다. 그의 자백에 의하면 지난 2년간 그는 톰의 부인인 메리앤과 불륜관계였단다. 갈수록 태산인 건, 그 둘의 밀회를 도운 건 다름 아닌 빌의 친구인 마사이고, 대학시절 빌과 마사는 또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일이 이 지경이라 톰이 연신 외쳐대는 ‘씨발’이 매우 적절한 리액션으로 느껴질 정도다. 감독인 샐리 포터는 이 영화를 ‘비극을 둘러싼 희극’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유머와 위트를 통해 인간이 받는 고통의 모순을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인 걸 보면 결국 방점은 희극에 있지 않고 비극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모두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대입한다면, 이 영화를 우리는 가까이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일 게다. 거실과 부엌, 화장실과 앞마당이 전부인 좁고 한정된 공간은 그래서 매우 적절하다. 갇힌 공간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때문. 공간의 협소함으로 촉발되는 지루함은 7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한 방에 해결했고, 모든 컬러가 배제된 흑백화면은 인물에 대한 편견을 제거시킴으로써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이 완벽한 삼합으로 우리는 감독의 완벽한 인질이 된다. 인간의 삶은 세 가지로 나뉜다. 공적인 삶, 사적인 삶, 그리고 비밀의 삶. 이 영화는 비밀의 삶이 어떻게 공적이고 사적인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통쾌하게 까발리며 진실과 진리(眞)은 항상 선(善)이 되는지, 선(善)은 늘 아름다울(美) 수 있는지를 대놓고 묻는다. “난 진실과 화해를 믿어. 난 전 세계를 향해 연설했어! 우리나라를 부당착취의 도살장에서 건져 내느라 헌신했다고!” 라고 사자후를 토해낸다고 해서 진(眞)에 가까운 자넷의 공적인 삶이 마냥 사적인 삶과 일치했던 건 아니다. 개인의 삶의 모습과 사회적 정의감은 별개의 층위를 갖는다. “가끔 이기기 위해선 확신에 가득한 ‘척’도 해야 한다”는 자넷 본인의 말마따나 그녀의 진(眞)은 선(善)이 아니라 위선(僞善)에 가까웠다. 아니, 딱 위선이었다. 사적인 삶에서는 외조를 하느라 자신을 희생했던 남편 빌에게 무심한 아내였고, 심지어 계속 울려대는 문자메시지 알림음은 그녀에게 비밀의 삶까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니 말 다했다. 진이 위선으로 연결되는 순간 이미 미는 존재할 수 없다. 미(美)가 실종된 자리엔 추(醜)가 남는다. 다른 사람들의 사정은 나을까. 그럴 리가! 지식인의 대명사인 대학교수 빌과 마사는 입으로는 온갖 격률을 다 쏟아내며 번지르르한 레토릭을 자랑하지만, 실상은 본심을 호도하느라 바쁘다. 정당정치, 합리주의, 페미니즘, 의료정책 등 각종 정치·사회 이슈들을 꺼내며 자신들이 정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굴지만, 그것들이 메리앤을 둘러싼 불륜과 적절히 조합되는 순간 그들 역시 위선자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함을 증명한다. 왜 너의 신념이 바뀌었냐고 추궁당하면 이 한 마디로 자신을 변명하는 그들. “모든 건 변해. 늘 변한다고!” 상황이 이쯤 되니 성공한 금융맨으로 비싼 양복이나 처입는 속물 중의 속물 톰이 가장 순수해 보일 지경이다. 등장부터 고프리드와 옥신각신하던 에이프릴이 이 하극상의 끝에서 “우리사이가 여기서 젤 낫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美)가 아름다움인 것은 미가 바로 각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은 곧 ‘앎’이므로. 비극이 미가 된다는 것은 비극이야말로 우리를 통절하게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비극의 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내가 앞서 진선미를 끌어들인 이유이자, 포터 감독이 희극을 가장한 ‘비극’을 연출한 이유일 것이다. ‘앎’을 전하기 위해서. 대체 어떤 앎이기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비밀의 속성에 대해 짚어야 한다. 외부에 당당히 드러낼 수 없는 욕망을 행위했을 때 그것은 곧 비밀이 된다. 또한 비밀은 대개 선의 반대를 품는다. 위선 혹은 악. 그래서 위선 혹은 악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 된다. 원래 이 모임의 목적은 ‘파티’였다. 우리가 쓰는 가장 화려한 가면의 향연인 파티. 욕망의 실체를 감춰주는 게 가면의 역할일 텐데, 그 거창하고도 눈부신 가면을 벗기면서 느끼는 쾌감이 감독이 지향한 길티 플레져였다. 그러나 남의 비밀을 아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진짜 비극은 내 가면이 벗겨져 보이기 싫었던 완연한 민낯이 드러나는 것. 나의 위선, 나의 악, 나의 욕망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저들을 비웃기 위해 가리켰던 손가락을 내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 “아리따운 메리앤! 그녀는 태풍의 눈이지. 늘 태풍의 눈이야.” 영화 초반 에이프릴은 메리앤을 두고 이렇게 말했었다. 태풍은 주변을 초토화시키지만 사실상 태풍의 중심 즉, 태풍의 눈에서는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고요한 상태가 유지된다. 이것이 태풍이 가진 모순이다. 파티의 모든 사람들은 메리앤으로 인해 갈기갈기 찢기고 부서졌다. 그러나 정작 메리앤 본인은 영화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지막 ‘딩동’ 소리에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등장하도록 되어 있지만 역시 그녀의 모습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대체 그녀는 실재하는가 아닌가. 그녀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왜 ‘메리앤 없는, 그러나 메리앤이 중심이 된’ 스토리가 탄생했는가. 영화 내내 썅년 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녀는 과연 누구이기에. 자넷의 손에는 여전히 총이 있고, 그녀는 정면으로 총구를 겨눈다. 자, 이제 다시 대답해보자. 그 총구는 누구를 향해 겨눈 것일까? 여전히 메리앤을 향해서인가? 만약 아니라면? 그럼 그 사람은, 총을 맞을 그 사람은, 총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사람, 바로 너다!
‘문예영화’ 표방한 <해연>의 여학생 극장 정원제(5월 1일)가 실시되고 입장료 제한(8월 1일)이 폐지된 1948년 11월 21일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해연(海燕: 일명 갈매기)>(예술영화사 제작)은 해방 후 <똘똘이의 모험>(1946), <민족의 새벽>(1947), <그들의 행복>(1947)에 이어 이규환 감독이 내놓은 네 번째 작품이다. 문예영화를 표방한 해방 이후 첫 문교부 추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당초 일제 말기에 <처의 윤리>(1941)와 <우러르라 창공>(1943) 두 편을 만든 김영화 감독이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이철혁과 손잡고 만들게 돼있었다. 그런데 과도정부의 초대 공보처 영화과장 제의를 받은 김영화 감독이 연출을 사양하였고, 김영화의 추천에 의해 이규환 감독이 대신 연출을 맡게 되었다. (이규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 60년(44) : 황금기」, 『중앙일보』, 1980.02.15) [사진] <해연>(이규환, 1948)에서 조미령(오른쪽) <해연>은 계모의 구박을 피해 언니 정애(남미림)가 일하는 동해안의 소년원을 찾아온 여학생(정숙)이 말썽을 부리는 문제아들을 보고 그곳에 남아 봉사하며 계도한다는 얘기다. 그 여주인공 정숙 역을 20세의 조미령이 맡았다, 서울관현악단의 연주와 남성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를 배경으로 소년원생들이 여선생과 함께 곡괭이질 하는 마지막 장면이 뜻하듯이, <해연>은 국가건설기의 과업이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해 준다. 이 영화의 언니 애인 역으로 등장하여 서울에 올라가도록 만든 박학은 그 뒤 월북한 후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극영화) <내 고향>(1949)에 출연했다. 춘향 역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르다 한동안 영화계와 멀어져 있던 조미령이 다시 은막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7년 만인 19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부터였다. 그 사이 조미령은 변기종이 주도한 상록극회(1951)와 자유극회(1953)의 창단 동인으로 활약했다. 아울러 그녀의 신변에도 변화가 있었다. 16년의 차이가 나는 <해연>의 프로듀서 이철혁과 결혼한 것이다. 스물두 살 때였다. 그러나 조미령이 처음부터 흔쾌하게 춘향 역으로 선택된 것은 아니었다. 이규환 감독의 회고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 60년(48): ‘춘향물색’」, 『중앙일보』, 1980.02.19) 에 따르면, 이 역할은 당초 신인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땅한 얼굴을 찾기 위해 그는 유장산 촬영기사와 함께 신촌 이화여대 정문 앞으로 갔다. 몇 시간을 드나드는 학생들을 살펴봤으나 마땅한 후보가 눈에 들어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그 대안으로 키가 작아 제쳐두었던 조미령을 불러내기로 한 것이다. 이 감독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신바닥을 10센티미터 가량 높이기로 하였다. 다행히 긴 치마가 이를 가려주었다. <춘향전>의 촬영이 시작된 것은 1954년 7월부터였다. 원작에 나오는 남원의 광한루가 아닌 풍광과 촬영 조건이 좋은 경북 달성군 가창면 냉천동(冷泉洞)에서였다. 그런데 2주일 뒤 장마가 시작되면서 촬영이 중단되고 자금의 압박까지 받아 고리대금을 끌어다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9월 중순이 되어서야 촬영을 마친 <춘향전>은 2시간 15분(필름 길이 1만2천자) 분량의 편집과 명창 임방울, 박초월의 ‘춘향가’가 들어간 녹음과정을 거쳐 이듬해 1월 6일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었다. 그 결과 밀려드는 관객들로 하여 세 차례나 상영기한이 연장되며 24일까지 18만 여명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화제의 영화 춘향전, 한국영화사상 초유의 힛트」, 『한국일보』, 1955.12.06) 극장이 개관된 이래 최대 인파였다. 더욱이 <춘향전>은 이에 앞서 시행된 정부의 ‘국산영화 입장세 면세(1954년)’라는 혜택까지 누려 제작자에게 돈더미를 안겨 주었다. [사진] <춘향전>(이규환, 1955) 촬영현장에서 조미령, 왼쪽은 이규환 감독 일반적으로 춘향이라면 갸름한 얼굴에 날씬한 키를 연상하기 쉬우나 조미령이 꾸며 보인 춘향은 그저 야무진 일편단심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금주의 스타 조미령」, 『한국일보』, 1955.02.0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주인공 이민과 함께 일약 영화계의 정상급 배우로 떠올랐다. 여기에는 아역 출신 셔리 템플이 결혼 후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춘 것과는 달리 소녀시절부터 ‘극장에서 크고 화장대에서 자라난 체험’이 큰 힘이 되었다. 조미령은 뒤이어 <춘향전>의 조감독 유현목이 첫 메가폰을 잡은 <교차로>(1956)를 비롯하여 <단종애사>(전창근, 1956), <여성의 적>(김한일, 1956), <시집가는 날>(이병일, 1956) 등 4편에 출연하게 된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시집가는 날>의 하녀 입분이 역이었다. 욕심 많은 맹진사(김승호)가 딸과 혼담이 오가는 세도가의 아들(최현)이 절름발이라는 말에 속아 대리 신부로 내세우는 바람에 행운을 잡게 된 여주인공이다. 더욱이 이 풍자극이 국내 최초로 해외영화제(제4회 아시아영화제 특별 희극상)에서 수상하면서 그 후광마저 입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조미령의 연기는 무난했으나 신부다운 신선미가 없는 게 결점” (이봉래, 「희극영화의 가능성, 영화 ‘시집가는 날’에서」, 『조선일보』, 1957.02.19) 이라는 평을 듣는 수준이었다. [사진] <시집가는 날>(이병일, 1956)의 한 장면 그런데 김기영 감독의 <여성전선>과 김소동 감독의 <아리랑>(이상 1957)에 이르면서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성전선>의 주인공 옥란 역이 현대여성의 타산적인 행위를 잘 표현 (김규대, 「발전의 소지 개척, 영화 ‘여성전선’에서」, 『조선일보』, 1957.03.09) 했다면, <아리랑>의 여동생 영희 역은 ‘시달림을 받는 처녀로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빠의 친구이자 애인인 윤현구(윤일봉)에게 말하는 대사가 퍽 세련되었다는 평가가 따랐다. [사진] <아리랑>(김소동, 1957) 촬영현장에서 조미령, 왼쪽에서 두 번째는 상대역인 배우 윤일봉,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감독 김소동 이 무렵 그녀의 대중적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월간 대중지 『희망』(1957년 8월호)과 영화잡지 『국제영화』(1958년 8월호)가 독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희망』은 조미령이 주증녀와 양미희를, 『국제영화』는 주증녀와 최은희를 제치고 인기배우 제1위로 집계했다. 남배우 1위는 김동원과 최무룡이었다. 조미령이 다수표를 얻은 데는 왜소한 청순미가 관객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