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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순 필터
영화정보
삼총사 타임머신 001
- 감독
- 임정규
- 제작년도
- 1980
메타제트
- 감독
- 김용호, 폴 헌트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김영선, 정훈석, 배정미, 엄상현, 홍진욱, 오인성, 유동균, 전숙경, 서문석, 사성웅
수집자료
[마이 아티 필름] 더보이즈 선우: 누난 너무 예뻐
- 자료유형
- 본편
- 종류구분
- DCP
- 파일형식
- MXF
천년여우 여우비
- 자료유형
- 본편
- 종류구분
- DSM
- 파일형식
- DPX
천년여우 여우비
- 자료유형
- 본편
- 종류구분
- DSM
- 파일형식
- DPX
MBC 사랑 3 : 벌랏마을 선우네
- 매체규격
- DVD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MIX MASTER KING OF CARDS EP18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MIX MASTER KING OF CARDS EP24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선우영아-복음 성가집
- 매체유형
- CCT 콤팩트카세트
- 연주시간
- 55:15
선우영아
- 매체유형
- LP
- 연주시간
- —
선우영아의 목동의 기타, 박영철의 찾아간 고향-주성민 작곡집
- 매체유형
- LP
- 연주시간
- —
반년간에 개봉된 영화/ 우리 영화계... 제작면만은 활기/ 개봉 총수 올해 들어 64편=질의 향상/ 대기업화는 아직도 요원/ 일사일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반년간에 개봉된 영화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연예] 무제한의 의욕을 발산/ 면세 계속에 철만난 영화계
- 실물구분
-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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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다른 민주주의를 상상하며,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사진: 창비 박사학위논문 제출 기한이 약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 나는 여전히 명확한 주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남은 시간을 꾸준히 쓰기만 해도 눈사태처럼 쌓여 있는 백지를 채우기에는 준비해둔 것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가득했다. 그것은 대학원 시절 내내 또는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누적되었던 불만과 환멸, 분노와 냉소 같은 것이었다. 십여 년 동안 대학원의 골방에 묵으며 쌓인 이런 정념이 내가 가진 유일한,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자원이라고 주문처럼 되뇌면서 대학에 들어온 이래로 보고 겪어온 장면들을 수없이 복기하곤 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참여정부의 탈권위주의적인 기조와 더불어 월드컵 이후의 희망과 자신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 등 변화에 대한 기대와 전망 속에 펼쳐졌다. 사회 전반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 역시 아직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페미니즘, 장애인권, 신자유주의 비판 등 여러 진보적인 담론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유통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열린 사회’의 환상을 깨는 사건도 많았다. 이라크 파병과 노동자들의 죽음, 대학의 기업화, 한미 FTA 등. 주변에는 한나라당만큼이나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명박이 당선되던 날의 그 우울함을 기억한다. 숭례문 화재와 명박산성, 용산참사와 쌍용차, 노무현의 죽음,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의혹 등으로 점철된 5년. 그리고 이어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는 이미 무너진 사회가 물에 잠기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그런 이명박근혜 시대를 기어이 우리 손으로 끝내던 그때 그 광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만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품었었는지. 그런데 드넓은 광장에 촛불이 물결처럼 넘실대던 그 ‘스펙터클’ 이후 한국사회는 과연 얼마나 더 좋은 사회가 되었는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냈는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켜낸 공(功, merit)을 가져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의 자녀는 어떻게 대학에 가고 어떻게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가? 그들은 여성 비서에게 무슨 짓을 하는가? 이토록 ‘민주적인’ 사회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죽어가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구의역 김군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왜 죽었는가? 왜 동성애는 (심지어 ‘민주’당 대선 후보에 의해서도) 반대되는가? 왜 장애인은 아직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싸워야 하는가?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주주의의 ‘민’에 속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 민주주의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가 이대로여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학문의 언어로 던지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가능케 한 것은 하나의 은유였다. 역사는 극(劇, drama)이라는 것. 가깝게는 지난 2024년 12월 하룻밤 사이에 계엄 선포와 해제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국내외 언론에서는 K-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지만, 그 이전부터도 한국 현대사에는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그리고 이미 만들어져 관객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내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영화 같은 역사, 드라마틱한 역사를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 중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한 편의 드라마라는 이 은유를 단순한 수사로서가 아니라 진지한 발판으로 삼았다. 만일 역사가 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러하듯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은 좋은 극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이런 극을 보며 감동해도 좋은가? 계속해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자랑스러워해도 되는가? (상) <오! 꿈의 나라>, <명성, 그 6일의 기록> 중 / (하) <꽃잎> 중 / © 이은, 푸른영상,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이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먼저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 혹은 드라마가 어떤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봤다. 역사라는 극을 구상하는 작가로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장면을 기억하고 기대하는지, 그리고 극에 참여하여 연기하는 배우로서 우리가 어떤 장면을 상연해왔는지 살펴봤다. 1980년대를 한국 민주주의의 가까운 기원으로 설정하고, 이 시기에 생산되었거나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사진, 소설, 시, 그림, 노래, 수기 등을 되는대로 수집하여 보고 읽고 들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와 5․18기념재단 사진아카이브 를 매일 들락거렸고, 대학 도서관과 국회도서관, 유튜브,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등을 뒤져서 < 오! 꿈의 나라 >(이은, 장동홍, 장윤현, 1989)나 < 꽃잎 >(장선우, 1996), < 명성, 그 6일의 기록 >(김동원, 1997) 등을 보았다. 임철우, 공선옥, 김영현, 공지영, 권여선 등의 소설을 읽었고, 각종 도록과 온라인 갤러리에서 오윤, 신학철, 홍성담, 강요배, 임옥상 등의 민중미술 작품을 찾아서 보았다. 1980년대의 여러 일간지를 교차하여 훑어보고 나무위키까지도 활용하면서 각종 사건을 연도별·월별로 숙지했고, 사건의 장소를 지도와 영상에서 찾아보거나 직접 가보기도 했다. 길을 오갈 때는 꽃다지부터 안치환, 윤선애, 이성지, 그리고 김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온갖 민중가요를 들었다. 인용을 위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2017)나 『소년이 온다』(2014)를 다시 들춰볼 때면 책을 덮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일쑤였고 영락없이 눈물을 쏟곤 했다. 낮에는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돌보며 그 생명력에 감격하다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는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훼손된 주검 사진을 보며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는 일은 연구를 위해 각종 표와 숫자로 이루어진 자료(data) 속에 파묻히는 작업과는 달랐다. 그것은 연구이기 이전에 한국에서 사회학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역사적 교양을 뒤늦게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나보다 앞서 세상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 역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화적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간혹 주변에서 나의 근황을 물을 때면 나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다면서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볍게 답하곤 했지만, 그것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망(webs of significance)”에 동참한다는, 진지한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었다. [1]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나아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신념처럼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보았거나 기억하는 장면들, 그리고 내가 본 다양한 자료의 페이지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마다 등장하는 것은 어떤 몸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때로는 곤봉과 개머리판에 맞아 터지고 덜렁거리는 몸, 벌벌 떨며 밀실의 욕조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몸, 해체되고 허물어진 채 부패해가는 몸이었고, 때로는 뒷사람에 밀려 앞으로 앞으로 넘실대며 나아가는 몸, 주변의 건물을 울림통 삼아 웅장한 구호와 노래를 뿜어내는 인파의 거대한 몸집이었다. 그리고 이런 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이런 몸의 이미지를 보는 나의 몸 역시 차분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언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는 온몸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를 계속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드라마이지만,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과연 살만한 것이었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김대중, 2009년 1월 7일 일기)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진: 네이버 영화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박하사탕 >(이창동, 1999) 중 김영호( 설경구 )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몸과 마음에 회복될 수 없는 흔적을 가진 이들이 부지기수이며,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도 허다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찬란한 역사였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 역시 축복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이런 민주주의를 계속할 순 없을 것이다. 마냥 자랑스러워하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물론 무대에서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객석을 박차고 나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주역’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대단한 감동을 주는 자랑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영화 < 1987 >(장준환, 2017)에서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져요?” 하고 냉소하던 연희( 김태리 )가 선배 이한열( 강동원 )의 죽음을 보고 회심하여 광장으로 달려나가면서 민주주의라는 극의 국면 역시 결정적으로 전환되었음을 현실에서 경험한 이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라는 극에 배우로서 참여하지도 않았고, 객석에서 이러한 극을 보며 감격하지도 않았던, 민주주의의 극장 밖에서 살아온 이들도 있다. 민주주의의 주역들이 민주화된 사회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낯선 것이었고 남의 것이었다. 이들의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부정하기까지 했던 자들이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의 주인공 아니냐’며 함께 무대로 올라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자고 호소한다면 극장 밖에선 아마 이런 목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1987>, <극장전> 중 / 사진: 네이버 영화 , ㈜영화제작전원사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자긴 이제 재미 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 < 극장전 >(홍상수, 2005) 중 영실( 엄지원 )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런 민주주의를 계속해나갈 수도,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의 작가이자 배우로서 우리는 죽음-결집의 레퍼토리와 함께 몸과 마음이 쪼개졌다가 커지기를 반복했다. 스펙터클로 점철된 이러한 영화가 주는 극적 쾌감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우리 삶의 보금자리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덜 자랑스럽고 덜 극적이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희망하며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내란과 탄핵을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수호의 이력을 다시 한 줄 추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이 최근의 역사를 완전무장 하고서 국회로 쳐들어온 계엄군이나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은 시민들이라는 스펙터클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은 소수자와의 연대, 성평등, 노동 있는 민주주의, 평화와 안전, 기억과 애도 등을 외쳤다. [2] 이러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거기에 힘이 보태진다면, 크고 대단한 장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모두가 아끼는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다른 민주주의를 향한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 [1] 막스 베버,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 김덕영 옮김, 길, 2021, 293쪽; 클리퍼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 문옥표 옮김, 까치, 1998, 13쪽. [2] 유현미․김이선․김정환․박상은․장진범, 「광장에서 만난 세계: 윤석열 퇴진 집회 시민발언문 분석」, 『경제와 사회』 146.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김정환(사회학자) l 문화사회학, 사회이론을 전공 분야로 삼고 있다. 『연구자의 탄생』(2022, 공저),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2020, 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신자유주의적 상상』(2026, 공역), 『사회론』(2015) 등의 책을 옮겼다. 사회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문화 현상의 해석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전개와 변화를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안성기를 기억하며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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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해미( 전종서 )는 조금 뜻밖의 말을 한다. 팬터마임으로 눈앞에 없는 귤을 먹던 그는 종수( 유아인 )에게 마임의 원리를 설명한다.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이 말은 < 버닝 >(2018)의 초반부에 불쑥 건네지고 나서 영화 전체를 실종과 부재의 미스터리로 물들인다. 해미는 갑작스럽게 사라지지만 종수는 해미가 여기에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종수에게 남겨지는 이 말이 뜻밖인 이유는 이창동 영화 속 인물들이 갈구하던 질문과 정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 밀양 >(2007)에서의 신애( 전도연 )의 비명. “신이 어디에 있어요?” < 시 >(2010)에서의 미자( 윤정희 )의 외침. “시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를 찾아 헤매던 질문들과 다르게, 해미는 세계를 관통하는 자명한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해미의 방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껍질 벗겨진 귤이, 함께 사는 고양이가, 마침내 해미 자신마저도 그곳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다. 하루에 한 번 남산타워 전망대 유리에 햇빛이 반사돼서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곳엔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지만 딱 한 번의 햇빛이 종수의 눈에 보인다. 무언가는 보이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진다. 다른 어떤 것은 잊히지 않고 남겨진다. <버닝>이라는 이 거대한 야심의 영화 속 해미의 작은 방이 한국영화 비평을 말하기 위한 실마리일 수 있다면, 비평은 언제나 특정한 좌표 위에 놓인 공간에 거주하는 일이며 그 안에서 잔존하는 것과 지워지는 것들을 오가며 수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찬욱 은 정성일 , 허문영 평론가와 나눈 긴 대담에서 < 박쥐 >(박찬욱, 2009)와 <밀양>과 < 마더 >(봉준호, 2009)의 주인공들이 모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을 겪은 이후로 망각을 선택한다는 공통점을 지적하는 두 평론가의 말에 “이래서 평론가들이 필요한 거구나!”라고 웃으며 반긴다(언급된 영화의 세 연출자는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버닝>과 < 기생충 >과 < 헤어질 결심 >으로 다시 한번 망각과 기억을 둘러싼 공통의 우화를 작성한다). 이 일화엔 영화와 비평, 망각과 기억을 둘러싼 근접조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박찬욱의 농담 섞인 감탄과는 반대로 비평은 망각된 것들을 기억하고 흩어진 기억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 아니라 망각 자체에 속하는 일이다.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행위다. 최근 영화잡지 《씨네21》은 잡지의 30주년을 기념해 1995년에서 2024년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한국영화/해외영화 10편의 베스트 목록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허한 목록의 재생산이 아니라 눈앞에 존재하는 영화문화에 과도하게 채워져 있는 목록과 관점을 망각하는 것이다. 영화는 조우가 아니라 사라짐의 체험이고 따라서 비평은 그 사라짐에 관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버닝>은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그리고 한국영화를 둘러싼 비평의 관습을 정조준한다. 태양이라는 선명한 광원 아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팬터마임으로. 태양을 바라본다는 행위는 21세기 한국영화가 설정한 특별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란 태양에 반응하는 신체의 부작용을 포착해 온 영화적 관찰기의 다른 말이다. 이는 <밀양>과 <버닝>에서 우리가 머무는 세계 안으로 간신히 전해지는 미세한 빛을 프레임에 담아낸 이창동만의 화두는 아니다. 도망칠 수 없는 두 뱀파이어를 태양에 불태워버리는 <박쥐>, 햇빛을 바라보며 시큰거리는 눈에 안약을 넣는 남자의 비극(<헤어질 결심>)과 태양의 과도한 빛을 피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자의 희극(< 어쩔수가없다 >)을 오가며 끊임없이 태양에 반응하는 신체를 불러들이는 박찬욱의 영화들. 봉준호 의 <마더>는 오후의 도로를 통과하는 관광버스 사이로 들어오는 태양광선을 포착해 그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어두운 실루엣으로 덮어버린다. 투명한 유리 사이로 쏟아지는 빛, 어찌할 수 없는 열기. <기생충>은 간신히 빛이 들어오는 반지하의 어둠에서 통유리로 태양을 반사하는 거대한 저택으로 이동한 뒤 더 아래에 있는 어둠으로 내려간다. 한국영화의 불길을 통과한 뒤 경력을 중단한 장선우 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짧은 단편은 이장호의 영화 제목을 빌린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2019>였다. 그는 한국영화 100년을 기쁨으로 회고하는 대신 검열과 금기라는 역사의 태양을 공격하고 야유한다. 태양 아래 있는 21세기 한국영화는 언제나 한 가지 특별한 장소와 결부되어왔다. 번쩍이는 태양의 가시광선을 피해 시선을 숨길 수 있는 어둠 속의 터널이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빛을 피해 숨을 수 있지만 그곳을 통과해 나오는 순간 눈에 날카롭게 베인 듯한 상처를 입는다. 터널 속에서 영화는 눈빛을 숨기고 시선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좌표를 망각한다. 2000년대를 여는 첫 번째 한국영화로 이창동의 < 박하사탕 >(1999)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영화가 새로운 세기 초입에 새겨둔 터널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에서 공간과 시간을 이행하는 데는 어둠을 통과해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박하사탕>의 기차는 무심한 기계장치처럼 역방향으로 터널을 통과해 나간다. 거기엔 숨겨진 빛이 있고 우리는 그 빛을 잊어버린다. 태양이 가려졌으므로, 영화는 세계를 정확히 보는 것에 실패한다. <박하사탕>,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중 (사진: ㈜이스트필름, ㈜싸이더스, 디씨어터) 21세기 한국영화 전성기의 정점으로 회고되는 2003년에 ‘한국영화’의 외형과 속성을 상징적으로 각인한 두 편의 영화에서 솟아난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너무 깊은 어둠으로 인해 보는 것에 실패하는 터널 이미지다. 봉준호의 < 살인의 추억 >(2003)에선 영화의 마지막에 빈 농수로를 보여준다. 전직 형사 박두만( 송강호 )은 과거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시골을 찾아 농수로 안을 들여다본다. 그의 눈앞에 있는 텅 빈 공간은 마치 터널처럼 가을의 태양을 가로막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가 고개를 숙여 농수로 깊숙한 곳에 놓인 여성의 시체를 쳐다볼 때, 어두운 수로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근처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주워 빛을 반사해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저편에 있던 어둠은 우리가 있던 곳을 잠식하고 만다. 그리하여 영화의 결말은 살인 용의자가 어두운 터널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터널을 들여다볼 수 없는, 본다는 것의 실패다. 박두만이 다시 용수로를 찾았을 때, 터널은 어둠으로 닫힌 모든 것이 투명하게 열려 있다. 우리는 그 명확하게 빛나는 어둠 앞에서 무엇도 제대로 볼 수 없다. < 올드보이 >(2003)에서 오늘만 대충 살아간다고 다짐하던 오대수( 최민식 )가 감금된 밀실의 복도는 기나긴 터널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곳의 작은 방 한 칸에 갇혀 있던 이 남자가 15년 만에 석방될 때도 그는 조그마한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다. 실은 풀려나는 시점조차 정확히 통제된 것이므로 제대로 풀려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히 시간의 터널 속을 맴돌고 있다. 밀실에 되돌아온 오대수는 장도리를 들고 수많은 적을 넘어서 터널을 통과하지만, 그 어떤 것도 통과한 적이 없다. 이 영화에서 오대수는 시종일관 태양의 빛과 열기를 피하는 검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다. 그는 영원히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 마주하더라도 회피와 망각을 선택하려 든다. 다시 몇 년이 지나고, 한국영화가 직면하고 응답했던 이 치명적인 곤경은 이창동의 <시>(2010)에서 시인의 말을 빌려 울려 퍼진다. “틀렸어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한국영화비평에 대해 말할 것들이 남았다면, 여기에 제도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는 비판이 아니다. 무언가 있어야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는 촉구와 반성 역시 아니다. 그 반대다. 해미의 조언처럼 우리는 여기에 무언가 없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을 잊어버리고,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는 영화감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을 잊어야 하며, 새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분류하는 영화제와 개봉 체계의 시각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인식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평의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전개해야 한다. 이창동과 박찬욱과 봉준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남긴 걸작들로 비루한 목록을 채우는 대신, 변함없는 명사로 자리 잡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그들이 직면해야 했던 곤경의 장소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들의 곤경을 들여다보는 질문을 통과하지 않고 그저 걸작으로 남아 있는 영화를 숭배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또 다른 모욕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팬데믹이 초래한 대규모 봉쇄의 기억을 뒤로하고 2020년대의 절반을 지나친 지금 시점에 우리는 한국영화의 ‘장소’가 어디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터널을 지나친 한국영화의 흔적 뒤편에서 우리는 또 어떤 장소를 발명할 수 있을까? 한국영화 비평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 하락에 있지도 한국 작가주의의 위기라는 문제에 있지도 한국영화 산업의 붕괴에 있지도 않다. 손쉽게 영화산업 일부분에 기생해버린 비평이 한국영화가 곤경을 투사하고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는 특정한 장소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한밤에 태양을 관측하는 행위에 빗댄 피에르 파울로 파솔리니는 두 가지 종류의 세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강력한 아버지의 규율과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세대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도 지시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버지를 마주해야 하는 세대다. 90년대 후반에 촉발되어 21세기의 새로운 감수성을 공유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단절된 아버지의 강력한 규율에 저항함으로써 그와 연결되려는 절차였다. 지금껏 언급한 한국영화의 ‘걸작’들은 모두 부모가 되는, 혹은 되지 않으려는 방식에 관한 서로 다른 시도들이고 적잖은 이들이 불필요한 결론이라 비판한 바 있던 <기생충>의 에필로그는 그 연대기의 끝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커다란 뒷모습을 렌즈로 삼아 세계를 인식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들들의 아들은 조그마한 렌즈에 눈을 대고 있는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지켜볼 뿐이다. 우리에겐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겐 ‘한국영화’가 보이지 않는다. <기생충> 중 순환어법처럼 들리지만, 한국영화 비평이 성립하기 위해선, 한국영화를 향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언젠가 특별한 비평의 감각을 자극했던 《씨네21》의 ‘전영객잔’ 코너가 건드린 것은 ‘긴 호흡의 비평이 있어야 한다’라는 하나 마나 한 저널리즘적 진단이 아니라 ‘한국영화에 어떤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가?’라는 특수하고 역사적인 물음이었다. 그 지면에서 다뤄진 것은 넓은 의미의 비평일뿐만 아니라 임권택 , 이만희 , 김기영 , 배창호 , 강우석 , 임상수 , 박찬욱, 홍상수 , 이창동, 봉준호, 그리고 21세기에 새 영화를 만들어낸 한국영화 감독들의 시간에 대한 특수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짧은 호기심과 문답의 시간이 지나고 비평은 너무나 쉬운 관성에 안착해버렸다. 투박한 비교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지금 영화를 해설하고 의미를 발굴하는 비평은 한국영화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구현하고 싶었으며 무엇에 실패하고 어떤 곤경을 직면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단지 주어진 업무의 한 부분에서 성실하게 문장을 채우고 완성된 결론을 생산할 뿐이다. 다른 지면에 적었던 이들의 운명을 다시 빌려오자면, “비평이 테러리스트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고작해야 제작사와 수입사의 홍보문장을 작성하는 대리인이거나 이름 있는 연출자의 의도를 정제된 언어로 세공하는 복화술사거나 제도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성실한 일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동시대 한국영화에 어떤 곤경의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동시대 한국영화 비평이 영화에 드리운 특수한 곤경에 호기심을 기울이지 않고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어쩌면 한국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조차 그들 자신이 처한 곤경에 응답하지 않는 걸까?). 영화는 세계를 보이게 하는 역량이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가 카메라 바깥에 있다. 한국영화는 그것들이 동시에 거주하는 장소다. 비평가들이 이미 결정된 한국영화의 외형과 위계와 비평의 문법을 잊어버린 채로 영화와 만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를 향한 질문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영화’는 만들어지고 상영되고 평가받는 모든 영역에서 빈틈없이 완전하게 구성되어 있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그것이 위태롭고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엄습한다. 끝없이 불타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는 비평이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대신 없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지금 한국영화가 이룩한 제도에서 비평은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는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무는 무언가 부재한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망각해버리는 것이다. 비평의 역량이 약화되었고, 위대한 작가 감독이 존재하지 않고, 경이로운 영화들이 나오던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사라졌다는 자각. 그 사라짐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다. 이는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를 대상으로 하든 비평의 첫 문장이 작동하기 위해선, 어떤 한 가지 장면과 생각을 영화의 나머지 전체보다 앞서서 서술할 수 있다는 믿음, 다시 말해 영화의 나머지 전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임의적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영화는 모든 것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일을 실천할 뿐이라는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비평은 더 이상 많은 것을 유효하게 실천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영화비평을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비평이 더 이상 많은 것을 유효하게 실천할 수 없다는 그 부재를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김병규(영화평론가) l 2018년 《Filo》 신인평론가에 선정되고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만든 영화로 단편 < 늦은 산책 >(2023), < 오후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