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유혹
- 감독
- 김수형
- 제작년도
- 1985
- 출연
- 선우일란, 유장현, 강태기, 정한헌, 최성호, 김기종, 박용팔, 전숙, 문미봉, 김기범, 박예숙, 안진수, 노경태
충무로는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장르적 지형도의 변화를 겪는다. 크진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는 기록할 만하다. 먼저 여전한 장르는 멜로드라마와 액션이었다. < 미워도 다시 한번 >( 정소영 , 1968) 류의 신파 멜로는 꾸준히 만들어졌다. 합작(혹은 위장 합작)을 통한 무협 액션 영화도 왕성했다. 합작과는 무관하면서도 ‘중국식 제목’을 단 한국영화들, 그러니까 < 무림오걸 >( 김시현 , 1979) < 애권 >( 이형표 , 1980) < 소림사 주방장 >( 김정용 , 1981) 같은 영화들의 러시가 이뤄졌고, < 협객 시라소니 >( 이혁수 , 1980) 같은 전통적인 ‘따찌마리’ 액션도 이어졌다. 사라진 장르도 있었다. 호러가 대표적이다. 메이저 장르는 아니었지만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한국 공포 영화는 1980년대 중반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부활을 목격하기 위해선 1998년 < 여고괴담 >( 박기형 )까지 10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새로 생긴 장르도 있었다. 아동용 SF 액션이다. 지금 보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특수효과로 점철된, ‘우뢰매’ 시리즈(1986~93)나 ‘별똥왕자’ 시리즈(1987~88)는 1980년대의 발명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변형된 장르가 있다. 일종의 진화라고 해도 좋을 거다. 1970년대 ‘얄개 영화’는 1980년대에 연령대를 조금 높여서 < 대학얄개 >( 김응천 , 1982)로 다시 태어났고, < 오성군 한음군 >( 박호태 , 1988) 같은 영화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1989년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강우석 ) 이후엔 사회적 이슈와 결합되어 1990년대 초를 장식했다. 1. 토속 영화의 조짐이 보였던 < 심봤다 > 2. 1985년에 나온 < 뽕 >은 토속 영화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으로, 이후 컬트로서 추앙받는다. 3-4. 정윤희 가 주연을 맡았던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왼쪽)와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오른쪽). 자연 속에서 파라다이스를 즐기던 순수한 남녀는 외부자에 의해 그곳을 침범 당하고, 결국 여자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한다. 1980년대에 또 하나의 ‘변종’이 있다면 흔히 ‘토속물’ 혹은 ‘향토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제목으로 지칭되던 그 영화들이다. 이 글에선 ‘토속 영화’라는 명칭으로 통일할 이 영화들은, 거칠게 정의 내리면 이른바 ‘문예영화’가 에로티시즘을 만난 결과다. 1970년대까지 검열의 수위 안에서 원작 소설을 표현했다면, 1980년대엔 과감해졌다. 과거 이미 만들어졌던 정비석 의 『성황당』, 이효석 의 『분녀』, 나도향의 『물레방아』 등은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정진우 , 1981) < 산딸기 >( 김수형 , 1982) < 물레방아 >( 조명화 , 1986) 등으로 좀 더 에로틱하게 재등장했고, 김유정 의 『땡볕』 『떡』 등도 소환되었다. 그러면서 문예영화의 범주를 벗어난, 다소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소설을 각색하거나 창작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토속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은 (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에로티시즘 사극과 구분되어야 한다. 토속 영화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토속 에로티시즘 멜로드라마는 사극이 지니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며, 시대 배경은 식민지 시기 농촌이나 어촌이다. 공통점도 있다. 1980년대 토속 영화와 사극은 한국영화에서 여성에게 가장 가혹했던 장르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며 죽음에 이르는 여성들의 영화. 그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모순을 떠안아야 하는 것처럼 보였고, 당시 외국에서 한국영화 특별전이 열리면 서구 관객들은 “한국영화는 왜 그렇게 여자를 때리느냐”고 항의성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1. < 산딸기 >의 한 장면. 물레방앗간은 토속 영화에서 반복되는 핵심적 공간이다. 주로 비밀스러운 정사가 이뤄지는 그곳에선 종종 여성의 운명이 결정된다. 2. < 산딸기 >의 엔딩. 명준과 분녀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명준은 말한다. “그래 저 학들처럼 천년만년 살자.” 토속 영화는 ‘새’의 상징을 자주 사용한다. 정진우 감독은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를 만들었고(<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1983)까지 묶어 ‘새 3부작’), < 여자의 성 >에서 별녀는 어릴 적 숲에서 죽어가는 새를 데리고 와 살리는데, 그 가련한 새는 이후 별녀의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산딸기 2 > <여자의 성>은 모두 새 소리를 섹스의 신호로 사용한다. 3. < 숲속의 바보 >는 토속 장르에 ‘백치 여인’ 캐릭터를 끌어왔다. 4. 문예 영화는 1980년대에 토속 영화의 방식으로 변형되어 지속된다. 사진은 김동인 원작의 < 감자 > 그 시작을 살펴보면 1970년대 말에 조짐이 있었다. 선두 주자는 정진우 감독이었다. 이은성 작가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 심봤다 >(1979)는, 문예 영화의 톤이 짙긴 했지만 이후 등장할 토속 영화 트렌드를 예견케 했고,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가 이어졌다. 결정타는 김수형 감독의 1982년 작 < 산딸기 >였다. 안소영 - 선우일란 - 강혜지 - 소비아 로 주연 여배우의 변화를 겪으며 1994년 6편까지 이어진 이 토종 프랜차이즈는 토속 영화의 얼개를 만들었다. < 산딸기 > 1편을 보자. 화전민 마을에 분녀( 안소영 )가 산다. 한가위 마을 잔치 때 취바리 탈을 쓴 누군가에게 겁탈당한 분녀는, 그 주인공이 마을 청년 명준( 임동진 )이라는 걸 알게 된다. 노다지를 찾아 만주로 떠난 명준을 분녀는 기다린다(안소영과 임동진은 같은 해 < 애마부인 >( 정인엽 , 1982)에서도 공연했고, 여기서도 안소영은 (감옥에 간 남편) 임동진을 기다렸다). 마을 남자들은 호시탐탐 분녀를 노리고, 급기야 자기들끼리 싸우다 두 명이 죽는다. 이에 ‘남자 잡아먹는 X’라며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분녀는 가마 주인(남궁원)을 따라 읍내로 가 술집 작부가 된다. < 산딸기 >는 토속 영화의 핵심 구조를 제시한다. 바로 이분법이다. ‘시골 vs. 도시’라는 구도 속에서 토속 영화는 여러 대립항들을 만들어낸다. 아직 물물교환이 익숙한 ‘촌’이 있다면, 그 반대편엔 ‘장터’라는 공간으로 상징되는 ‘돈’의 세계가 있다. 마치 서부극의 ‘자연 vs. 문명’ 구도처럼 토속 영화는 두 세계의 충돌 속에서 전자의 붕괴를 보여준다. 산속이나 섬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거나 약초를 캐며 살아간다면, 양복을 입은 외부인들(여기엔 종종 일본 순사가 가세한다)은 그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여기서 위협의 대상은, 그 마을에서 가장 아리따운 젊은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수많은 남자들에게 음험한 욕정의 대상이 되고, 결국 도시로 끌려가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한 채 술과 몸을 팔게 된다. 이 구도는 < 여자의 성 >( 문여송 , 1985) < 산딸기 3 >( 김수형 , 1987) < 옹기골 뽕녀 >(김수형, 1987) 등에서도 정확히 반복되는, 토속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여기서 같은 해에 나온 또 한 편의 영화를 주목해야 한다. 장미희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 숲속의 바보 >( 박용준 , 1982) 다. 이 영화는 토속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완성한다. 바로 ‘백치 여성’의 등장이다. 복희( 장미희 )는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영화 제목 그대로 ‘숲속의 바보’인데, 이후 수많은 토속 영화들은 핸디캡을 지닌 여성 캐릭터를 통해 이 장르가 지닌 ‘원시성’ ‘본능성’ ‘순수성’ 등을 드러낸다(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진 않지만, 그런 점에서 말 못 하는 수련( 정윤희 )이 등장하는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정진우 , 1981)도 토속 영화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캐릭터의 계보는 < 불새의 늪 >( 고응호 , 1984)의 봉은( 원미경 ), < 여자의 성 >의 별녀( 최선아 ), < 소금장수 >( 김대진 , 1988)의 냉이(천은경) 등으로 이어지며, 그들은 섹스에 대한 ‘원초적 본능’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불새의 늪 >에서 화가 종훈( 마흥식 )은 봉은에게 ‘수성’(獸性), 즉 ‘짐승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며, <여자의 성>의 뭍에서 온 침입자 억수( 독고영재 )는 “잠자리가 뛰어난 여자거든!”이라며 별녀에게 집착한다). 1-2. < 산딸기 2 >(왼쪽)와 < 물레방아 >(오른쪽)의 선우일란 과 마흥식 . 두 배우는 토속 영화의 간판스타였다. 3. 문여송 감독의 히로인이었던 < 여자의 성 >의 최선아 . 4. < 산딸기 >의 김애경. 무당 캐릭터는 토속 영화의 핵심적 조연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테마는 바로 ‘근친적 설정’이다. 문명 이전의 상태에 대한 메타포일까? 심의 때문에 진짜 혈연적 근친 관계를 내세우진 못하고 유사 근친 관계를 설정하긴 하지만, 많은 토속 영화들이 근친적 관계를 내세운다. < 숲속의 바보 >의 복희는 남매처럼 함께 사는 머슴 만복( 김동현 )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는다.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에서 최 영감( 황해 )은 고아인 수련과 문영( 최윤석 )을 키우는데, 혈연은 아니지만 남매처럼 자란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 여자의 성 >의 별녀는 데릴사위로 온 거무( 이구순 )와 남매처럼 지내다가 결혼한다. < 소금장수 >의 덕만( 김추련 )도 엉겁결에 맡아 딸처럼 데리고 다니는 냉이와 부부적 관계를 맺게 된다. < 화녀촌 >( 김기 , 1985)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종섭( 이영하 )은 상처한 후 산에서 어머니( 김지영 ), 처제 정분( 최현미 ) 그리고 딸과 살아간다. 그는 형제나 마찬가지인 옆집 친구 덕만( 나기수 )의 아내( 이상숙 )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는데, 덕만 내외가 갓난아이를 남긴 채 마을을 떠나자 처제를 아내처럼 받아들여 그 아이를 키우며 산다. 근친적 관계 이외에도 토속 영화는, 도시와 문명이 반대편에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본능적인 모습들을 클리셰로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만 간추려 보겠다. 1. 수시로 목욕을 한다 모든 토속 영화엔 꼭 이 장면이 있다. 여성 캐릭터들은 숲속의 계곡이든 강가든 폭포 아래든 수시로 목욕을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들을 엿보는 남성의 시선이 있다. 많은 사건들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 언제 어디서든 정사를 한다 낮이든 밤이든, 집이든 물레방앗간이든 들판이든 숲이든 개울가든 옥수수밭이든, 그들은 정사를 한다. 그리고 이 광경 역시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들킨다. 3. 껄떡대는 건 죄가 아니다 욕정의 도덕률이 무너진 상태에서, 마을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가운데 놓고 많은 남정네들이 치근대는 건 토속 영화에서 전혀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다. 그들은 겁탈을 해서라도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유부남/유부녀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이것은 < 뽕 >( 이두용 , 1986)과 <떡>( 김수형 , 1988)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4. 무당을 조심하라 무당이든 박수든, 토속 영화에서 ‘무속인’은 빠지지 않는다(< 불새의 늪 >에서 봉은은 아예 무당의 딸로 그녀와 관계를 맺으면 급살 맞아 죽는다).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성적으로 문란한 존재이며, 권위를 내세워 음모를 꾸민다. 5. 여성은 거래된다 사극이 여성을 대 잇기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정절을 강조하며 억압했다면, 토속 영화는 상품처럼 거래한다. 그 배경엔 남성의 어리석은 물욕이 도사리고 있는데, 서너 명 만 모이면 반드시 투전판을 벌이는 그들은 노름빚을 갚기 위해 딸을 팔아 먹고(< 산딸기 3 >), 여자는 몰래 몸을 판다(< 물레방아 >). 여기서 자연 속에서 사는 여성 캐릭터들은 장터를 통해 문명을 접하고, 동동 구리무와 박하 분과 손거울의 유혹 앞에 종종 마음을 연다.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에서 김 주사( 최봉 )도 그렇게 순이( 정윤희 )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유혹에 넘어간 여자들은 결국 유린당한다. 1 . < 화녀촌 >의 근친적 결말. 2. 토속 에로에선 그 어떤 곳에서도 정사가 벌어진다. 사진은 < 소금장수 >의 옥수수밭 3. 남자들이 셋 이상 모이면 투전판이 벌어진다. 사진은 < 산딸기 2 > 4. 여성은 결국 술집 작부가 되며, 그곳에서 번 돈은 남자의 노름 밑천이 된다. 사진은 < 산딸기 2 > 토속 영화는 1980년대 중반을 넘어가며 서서히 변주되고 확장된다. 하명중 감독의 리얼리즘적 접근이 두드러지는 < 땡볕 >(1985)과 < 태 >(1986)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며, 변장호 감독의 < 감자 >(1988)나 임권택 감독의 < 아다다 >(1988)는 문예 영화에 좀 더 가까운 케이스일 것이다. 여기서 이두용 감독의 < 뽕 >(1986)은 토속 영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원작이 나도향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문예 영화의 전통을 잇고 있으면서, <뽕>은 기존 토속 영화가 지녔던 신파적이며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멜로드라마의 톤을 걷어낸다. 베테랑 이두용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영화를 조절하며 끌고 가는데,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은 톤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에로티시즘을 표현할 때도, 절박하거나 경직되지 않은, 여유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유머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 뽕 >의 꽤 논쟁 지점이 있는 영화다. 안협네( 이미숙 )는 마을의 매춘부이며, 그녀에 대한 동네 남정네들의 음험한 시선을 영화는 자연스레 합리화한다. 여기서 안협네라는 캐릭터가 다른 건 육체관계에서 일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토속 영화들이 ‘겁탈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면, <뽕>의 안협네는 철저히 거래하는 여성이며 원치 않는 남자는 거절한다. 같은 해에 나온 < 변강쇠 >( 엄종선 , 1986)의 ‘옹녀’( 원미경 )가 강한 성적 능력으로 위협적 존재가 된다면, 안협네는 유혹적이면서도 주체적이며 현실적이다. < 뽕 > 이후 토속 영화는 약간 변화를 겪는다. < 옹기골 뽕녀 > 같은 유사 제목 영화가 나왔고, 나도향을 비롯해 김유정 , 계용묵, 김동인 등 토속 영화의 재료로 삼기 좋은 작가들의 소설이 대거 각색되었다. 흥미로운 건 김수형 감독의 < 떡 >이다. 김유정 의 원작을 옮긴 이 영화는 <뽕> 이후 토속 영화(와 사극)의 트렌드가 변했음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떡>은 ‘<뽕>+< 변강쇠 >’이다. 마을 남자들은 (그녀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점례( 선우일란 )를 넘본다. <뽕>의 안협네 같은 존재인 셈. 그런데 점례와 관계를 맺는 남자들은 에너지를 완전히 빨려 버린다. ‘옹녀’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결말인데, <뽕>에서 안협네의 남편 삼보(이무정)를 통해 암시만 되었던 독립운동가 콘셉트가 <떡>에선 명확하게 제시된다. < 산딸기 >나 < 뽕 >은 이후 프랜차이즈를 이루며 1990년대까지 이어졌지만(<뽕>은 최근 < 뽕 2014 >( 공자관 )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토속 에로는 대체적으로 1980년대 말에 수명을 다하고 만다. 이것은 에로 영화가 1988년 올림픽 이후 수그러들었던 것과 궤를 같이하며, 이 시기 한국의 에로틱한 영상 콘텐츠는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급속하게 중심 이동을 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토속 에로의 흐름.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와 기획영화가 등장했던 1990년대에 살아남기엔, 그 정서의 우울함과 여성관의 한계는 너무 치명적이었다. 그 한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뽕>이 최근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는 건, 어쩌면 그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어려서 본 에로영화 중 가장 충격적인 영화는 단연 < 사방지 >다. ‘그들에겐 남자가 필요 없었다!’는 도발적인 카피와 함께 입을 반쯤 벌린 배우 방희의 뇌쇄적인 표정이 꽉 찬 포스터도 무척 야했고, ‘퀴어’라는 개념 자체도 없던 시기에 ‘반남반녀’ 사방지라는 캐릭터 자체가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선우일란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큰 가슴을 억지로 가리고 있던, 그러니까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를 널빤지로 막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의 < 이조춘화도 >(1988) 포스터와 더불어, 그저 한참을 서서 봤던 당시 포스터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사방지> 제작사인 인창영화사의 정준규 대표는 공연윤리위원회의 불가판정에도 불구하고 <사방지> 포스터를 배포, 부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나이아가라를 널빤지로 막는 < 이조춘화도 > 포스터 영화가 시작하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외딴 초가에서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 죽는다. 우연히 옆을 지나던 한 스님이 그 아이를 거둬 절로 데리고 들어가고, 그렇게 사방지( 이혜영 )는 절에서 성장한다. 한편, 절에 남편의 탈상제를 지내러 왔던 청상과부 이소사( 방희 )는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사방지를 눈여겨 본다. 폭포에서 몸을 씻던 그녀 앞에 또아리를 튼 뱀이 등장하자, 그것을 나뭇가지로 건져 올려 무심히 던져 버리는 사방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뱀의 클로즈업과 사방지의 등장은, 이후 이소사가 사방지의 ‘물건’을 처음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소사는 스님에게 얘기해 사방지를 자신의 몸종으로 데리고 내려온다. 사방지의 등장 한창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이소사는 밤마다 마구 몸을 뒤척이며 괴로워한다. 급기야 남근 모양의 나무로 만든 성기구를 꺼내 욕구를 해소한다. 그러고 보면 방희 는 임권택 의 < 씨받이 >(1986)에서도 비슷한 역할이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씨받이 옥녀( 강수연 )에게 밀려난 윤씨 부인(방희)의 처지도 그러했다. 유현목 감독의 < 문 >(1977), 임권택 감독의 < 만다라 >(1981), 박호태 감독의 < 빨간 앵두 >(1982) 등에 출연한 1973년 TBC 특채 탤런트 출신의 방희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배우였다. 특히 < 신궁 >(1979), < 짝코 >(1980), < 오염된 자식들 >(1982), < 불의 딸 >(1983),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 등 임권택 감독 영화에서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중요한 역할을 해냈는데(아마도 출연 편수로만 보자면 김지영 아주머니와 함께 가장 많은 임권택 영화에 출연했을 것이다), 바로 <씨받이>가 일종의 세대교체의 순간이었던 것. 임권택 감독의 이전 영화들에서 방희가 맡은 역할이 ‘욕’(欲)이었다면 언제부턴가 그의 영화에서 그것이 사라졌고, 그것을 임권택 영화에서 방희의 퇴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오염된 자식들>에서 병구( 안성기 )는 명희(방희)의 과도한 자식욕으로 인해 성적 공포심에 시달리는 남자였다. 별당에서 혼자 지내는 이소사는 이제 대놓고 사방지를 방으로 불러들인다. 천자문을 읽고 수를 놓을 줄도 아는 사방지를 보고는 “절에서 밥이나 짓는 애인 줄 알았는데 이런 재주가 있다니. 날마다 너를 새롭게 보는구나.”라며 작업을 걸고 결국 야심한 시각에 이르자,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소사가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사방지에게서 어딘가 사내다운 중성적 매력을 느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소사의 손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사방지는 방을 박차고 나온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이소사가 사방지의 특별한 육체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 기어이 찾아온다. 그때 사방지의 ‘아래’를 손맛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거의 0.1초 정도 막대기 모양의 물체가 몽타주로 끼어든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정사신이 < 쌍화점 >(2008) 못지않은 농도로 진행된다.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 이소사는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먹방’을 시연하며 기존의 별당 담당 사월이에게 명령을 내린다. “앞으로 별당 일은 사방지가 다 혼자서 할 수 있으니, 이제 넌 그만 가 보거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 얼마 전 900만 관객을 동원한 < 관상 >처럼 ‘사방지 사건’ 역시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계유정난으로 왕권을 찬탈한, 바로 그 세조 때의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생생하게 기록돼 있는데 세조 집권 후기인 1462년, 괴이한 사건으로 대신들과 사법기관이 떠들썩했다. 이른바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사건이다. 사방지 사건이 처음 제기된 것은 세조에게 올려진 한 상소 때문이었다. “김구석의 처 이씨의 여자 종인 사방지가 여복을 하며 종적이 괴이하다고 하여 관가에서 잡아다가 이를 보았더니, 과연 여복을 하였는데 음경과 음낭이 곧 남자였더라.” 물론 여자의 성기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방지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던 세조는 그 일을 거론하지 말라는 영을 내렸다(이씨의 아버지 이순지는 세종이 아끼던 공신이었고, 또 이씨의 외아들 김유악의 아내가 바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와 영의정이 된 정인지의 딸이었다). 나중에 사방지가 다시 이씨의 집에 들어가 이전과 같은 행각을 벌이자, 우의정 한명회도 나서서 먼 지방으로 유배하라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세조는 “전에도 이미 국문(조선 시대, 국청에서 역적이나 강상죄인 등의 나라의 큰 죄인을 형장을 가하여 신문하던 일)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또한 용서하라”고 했다. 하지만 신숙주를 포함한 대신들의 반대가 이어지니, 세조도 어쩔 수 없이 “사방지는 인류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먼 지방으로 보내 노비로 삼게 했다. 사방지 이소사 집안의 어르신들에게 발각된 이후, 문제가 된 사방지를 데리고 간 무당 모화는 ‘뚜쟁이’처럼 사방지를 사대부 부인들에게 보낸다. 수많은 부인들을 만족시켜주고 농락하는 사방지의 행각은 당시 1980년대 에로영화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걸 통해 양반사회를 뒤틀고자 했던 무당의 욕망은 당시 산업화사회 한국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것. 사방지의 물건을 향해 달려드는 사대부 부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고속촬영은 당시 룸살롱을 가득 메운 사내들의 탐욕과 다를 바 없다. 그 매춘 생활에 질린 사방지가 “전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만 짐승도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며 달아나려 하자, 무당은 “넌 달팽이의 혼을 타고 나서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달팽이의 몽타주가 끼어든다. 그렇게 무당은 사방지를 ‘악마의 씨’라 여기고, 급기야 사방지는 “부처님이 계시다면, 왜 저 같은 저주받은 생명을 만드셨습니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병신을 말입니다.”라며 울부짖는다. (잘 안보이지만) 욕망의 사대부 부인들 고속촬영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이수광 지음)을 보면, 당시 사방지 사건과 비교해 영화 < 사방지 >의 ‘격정 멜로’스러운 스타일이 눈에 띈다. 먼저 실제 노비 출신 사방지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어머니가 죽으면서 낳은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지냈다. 살결이 곱고 입술이 붉어 다들 ‘계집애가 사내로 잘못 태어난 것’이라는 얘기를 듣던 사방지를 보면서 그 어머니는 늘 수심에 잠겼다. 그러니까 영화의 첫 장면은 뭔가 사방지에게 ‘몹쓸 운명’이라는 숙명을 부여한다. 또한 장성해서는 벼슬한 선비의 집안에 꽤나 드나들며 많은 여종들과 정을 통했다. 그와 달리 이소사에게 일편단심을 바친 것으로 묘사되는 영화는 사방지의 가슴 아픈 사랑을 더욱 강조하는 것. 그러니까 사실과 달리 두 사람의 자살로 끝맺는 <사방지>는 조선왕조실록의 사방지 사건을 ‘첫사랑의 멜로’로 완성했다. 이쯤에서 실제 사방지의 ‘그것’이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사헌부가 사방지를 잡아들여 심문하면서 여자아이를 시켜 직접 만지게 했는데, 그 아이는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아주 장대하다’고 했단다. 왜소한 수많은 남자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릴 얘기다. 이혜영 방희 감독: 송경식 각본: 지상학 , 안태근 개봉극장: 아세아 관람인원: 40,221(서울)명
1980년대 이른바 ‘에로영화’의 전성기, 오직 힘 하나 뿐인 강한 남자의 대명사가 이대근 이었다면 서구 에로영화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남자는 바로 짙은 눈썹의 마흥식 이었다. 임성민 이나 이영하 처럼 종종 대종상도 수상하는 주류영화계의 미남자는 아니었지만, 일단 에로영화에 출연하는 횟수가 훨씬 많았고 ‘고개 숙인 남자’로서의 연기력 또한 뛰어났다. 임성민과는 < 탄드라의 불 >(1984), 이영하와는 < 여자가 두 번 화장할 때 >(1984)에 함께 출연한 적 있다. 아무튼 그들과 비교해 감독이나 선배들로부터 ‘마군’이라 불렸던 그는 그 성 때문인지 어딘가 ‘마성’의 매력을 지닌 배우처럼 다가왔다. 1988년 88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동아일보>에서 ‘국산영화 포르노화 너무 한다’는 제목으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규제가 완화된 기회를 틈타 국산영화의 성적 표현이 대담하다못해 포르노영화에 가깝게 되어가고 있다. 이런 경향에 맞춰 연기자들 중에서도 에로물을 전담하는 배우들까지 생겨나고 있다”며 이대근 과 함께 에로영화를 ‘전담’하는 단골 배우로 지목된 이가 바로 마흥식 이었다. 실제로 1987년 임권택 감독의 < 씨받이 >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강수연 )을 수상하고 이규형 감독의 <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가 놀라운 흥행성적을 기록하면서 한창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기운이 숨쉬던 때 마흥식은 이대근, 강수연에 이어 당시 세 번째로 작품 편수가 많은 한국영화계의 대표 남자배우였다. 그해 < 풍녀 >(1987), < 웅담부인 >(1987) 등 총 5편에 출연해 신성일 , 나영희 , 이보희 보다 많은 작품 편수를 자랑했다. 마흥식 의 시작은 TV 탤런트였다. 194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TBC TV 7기생 탤런트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는 1969년 MBC TV가 개국하자마자 이적했고, 연달아 주인공을 맡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김자옥 과 함께 드라마 <얼굴>(1974)의 주인공을 맡는 등 당시 최불암 , 김자옥, 김영애 , 조경환 , 박원숙 , 김용건 등과 함께 MBC TV를 대표하는 젊은 탤런트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마성의 매력 때문인지 1977년에는 여자관계가 복잡해 이런저런 이유로 구속까지 됐다가 피해자와의 합의로 풀려나는 일도 겪었고, 방송윤리위원회는 그런 이유로 1년간 출연 정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 그런 바람둥이 혹은 호색한 이미지 때문인지 드라마 <꽃사슴>(1977)에 극중 김윤경 의 약혼자 역으로 출연할 때는 ‘극중이지만 그녀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요지의 팬들의 극성스런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후 영화에 뜻을 둔 마흥식 은 이영실 감독의 < 반노 >(1982)에 출연하게 되는데, 어쩌면 이 영화가 그의 이후 이미지와 운명을 결정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재만 원작의 소설 <반노>는 1969년 ‘음란문서제조’ 혐의로 기소돼 1975년이 되서야 무죄확정판결을 받았고 너무나 오랜 기간 험난한 영화화 과정을 거쳤다. 진두(마흥식)와 홍아( 원미경 )의 동물적인 성생활을 대담하게 묘사한 <반노>는 아마도 한국영화계에서 ‘예술과 외설’ 논란에 휩싸였던 첫 번째 작품이라 할 것이다. 당시 이영실 감독은 마흥식에 대해 “맡겨진 배역의 이미지에 보다 접근하기 위해 보름 이상 굶어가며 연기에 몰두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렇게 < 반노 >를 시작으로 마흥식 은 본격적인 에로배우의 길을 걷게 되는데 < 반노2 >(1984)는 물론 < 산딸기2 >(1984), < 훔친 사과가 맛있다 >(1984), < 탄드라의 불 >(1984), < 길고 깊은 입맞춤 >(1985), < 물레방아 >(1986), < 옹기골 뽕녀 >(1987), < 야누스의 불꽃 여자 >(1987), < 매춘 >(1988) 등 제목만으로도 그 필모그래피는 현대물과 사극을 가리지 않고 에로영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대근 에게 < 변강쇠 > 시리즈가 있다면 그에게는 선우일란 과 함께 했던 < 산딸기 > 시리즈가 있었다. 고개 숙인 남자로 나오건 호색한으로 나오건 당시 에로영화를 기획하는 영화사들은 일단 그의 스케줄부터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는 당시 3D 입체영화를 표방했던 < 공포의 축제 >(1986)도 있다. 그로도 채워지지 않는 배우로서의 허기는 종종 연극 무대로도 옮아갔는데 추송웅과 함께 <도둑들의 무도회>, 윤소정과 함께 <올페> 무대에 오르는 등 단순히 에로배우로만 바라보기에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였다. 그렇게 그는 줄곧 이미지 변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가 원하던 한국영화의 봄날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영화배우로서는 이두용 감독의 < 애 >(1999)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 / 글: 주성철 (씨네21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