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 감독
- 시성욱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영화감독의 투신자살 시퀀스로 담긴 충격적인 영화가 있다. 심지어 연기한 사람은 해당 영화의 감독( 이장호 ) 본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들이 웃통을 벗어 던지고 국회의사당에서 기괴한 춤을 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바로 1984년 개봉작, 영화 < 바보선언 >의 도입부와 결말이다. 개봉 연도를 보면 금세 눈치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제5공화국 전두환 독재 정권의 악행이 가장 극에 치달을 때 제작되고 개봉된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한 비평을 검색해 보면, 이 영화는 서슬 퍼런 정부의 검열을 피하여 어떻게든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자포자기한 상태(김동원, 2008)’에서 만들어진 괴작이자 걸작이라는 평이 대다수이다. 검열을 피하고자 극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행으로 채워놓고, 촬영조차도 기행 그 자체였던 사실 덕분에 역설적으로 1980년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초현대적인 함의와 시사점을 주는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신군부 검열 당국이 풍자와 해학에 조예가 깊었거나, 혹은 영화를 보는 눈(교양)을 더욱 갖췄더라면 이 영화 또한 가위질을 당했을 수 있었겠으나 천만다행으로 그러지 못했던 듯 하다. 덕분에 우리는 1980년대 초반 서울을 중심으로, 비인간적인 현대사회(혹은 정치 환경)에서 소외당한 이들이 거니는 한국의 도시공간을 ‘괴상한 시각’으로 2024년 지금 이 시점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어떤 공간이 어떤 시각으로 담겨져 있는지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하월곡동 빈민가 영화의 인트로는 주인공인 동칠( 김명곤 )이 하월곡동 빈민촌 주거지를 걸어 내려오는 시퀀스로부터 시작된다. 수 초 동안 마을 주민들이 마치 축제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노는 모습을 카메라는 잠시 비추는데, 이 영화에서 ‘인간적인 도시공동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사실상 마지막 장면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다리가 불편한 동칠이지만, 수많은 자동차가 오고가는 큰길에는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에 육교를 지나가야만 한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 지역들에서는 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영화 속에 담긴 야트막한 서민 주거지의 모습은 머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지도 모른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하월곡동 빈민가.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하월곡동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한데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일지도 모른다. 명동과 을지로입구 아마 동칠은 영화 속에서도 잠시 비춰진 8번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일까, 다음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명동과 을지로입구 일대를 비춘다. 깔끔하게 정리된 길가, 산뜻한 중형차(현대 그라나다), 고동빛깔의 미도파 백화점과 갓 개업한 롯데백화점 본점과 누가 봐도 썩 세련되지 못한 모습의 동칠은 내내 부조화를 이룬다. 카메라가 미도파와 롯데백화점을 올려다보는 씬은 영화 < 오발탄 >(유현목, 1961)에서 주인공 철호( 김진규 )가 이 부근을 걷는 씬을 연상케한다. 촬영 각도와 흑백·컬러 여부가 다르긴 하지만, 소외되었거나 불쌍한 시민과 화려한 서울 속 백화점 간의 대비만한 극적인 표현 수단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끊임없는 자동차의 행렬과 미도파 백화점(좌측), 롯데백화점 명동본점(우측)이 추레한 차림의 동칠 뒤편을 장식한다. 당대 최고급 승용차였던 현대 그라나다와, 명동 거리를 정처없이 누비는 동칠의 조우. 이대 앞과 신촌 이윽고 동칠은 청계5가 부근의 어느 빌딩에서 투신한 의문의 영화감독의 옷가지와 장신구 등을 탈취한다. 카메라는 빌딩의 옥상에서 청계고가도로와 그 인근 평화시장을 훑다가, 이화여대 정문 앞 번화가를 타임랩스로 추적한다. 장장 1분 동안 이어지는 이 시퀀스는 4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감탄을 절로 자아낼 정도로 지극히 현대적이다. 일부러 간판과 옷차림과 자동차만을 옛날 것을 가져다가 요즘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1983년의 이대 앞은 40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건너뛰어 2024년 시청자의 눈동자에 내리꽂힌다. 나아가 이대 앞의 상권은 육교에서 동칠이 한눈에 반한 ‘가짜 여대생’ 혜영( 이보희 )이 도시적인 소비를 마음껏 누리는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부족함 없이 해낸다. 실은 매춘부이지만 그림 같은 대학생의 생활을 동경하는 혜영과, 그 뒤를 쫓는 동칠, 그리고 이 둘을 포착하는 카메라를 통해 우리는 1983년의 대학가 상권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된다. 번화하기 그지 없는 이화여대 정문 앞의 풍경. 지금도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대 앞 골목을 누비는 여대생들과 차량의 행렬. 4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이 씬을 재현하면 어떨까. 이런 혜영을 어떻게든 납치하고자 하는 동칠은 우연히 마주친 자동차 정비공인 육덕( 이희성 )의 택시에 올라타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포니 택시가 이대 앞과 신촌 기차역 앞을 위험천만하게 종횡무진하며 사실상 카 체이스와 비슷한 활약을 펼치는 점도 볼 만한 부분이다. 16분 언저리에 누가봐도 교통 통제라곤 없이 이대 정문으로 포니 택시가 돌진하는 씬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거 무슨 짓인가?” 싶을 정도로 제법 긴박한 느낌을 준다. 이대 정문으로 돌진하는 육덕의 택시. 깜짝 놀란 학생들과 달려나온 경비원의 모습이 뚜렷하게 담겼다. 청량리역 앞 광장 40분부터 45분까지 장장 5분 동안, 이번에는 청량리역 앞 광장에서의 시퀀스가 이어진다. 이대 앞 시퀀스가 그랬듯이, 제법 멀리서 망원렌즈로 인파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주인공들을 담아내는 데에 여념이 없다. 어떻게든 ‘장사’를 하려고 남자에게 접근하는 혜영,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고군분투하는 동칠과 육덕의 씬이 교차되는 와중에,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인파의 모습은 한 편의 역전 광장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화 속 모습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지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 롯데백화점과 코앞에 들어선 200미터급 초고층 주상복합, 현대적인 버스 승강장으로 인해 이 시절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당시에 갓 등장했던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롯데리아의 광고, 청량리역 맞은편의 미주아파트와 그 상가건물의 모습만이 40년 전과 지금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망원으로 담아낸 청량리역 앞 광장 씬. '장사' 대상을 물색하는 화면 정가운데의 혜영 너머로 지하철 출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의 고급 유행 식품이었던 롯데리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육덕과 동칠의 뒷모습. 태안군 연포해수욕장 동칠과 육덕, 그리고 혜영은 매춘부의 거주지에서 도망쳐 나와 충남 태안군의 연포해수욕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아마도 이 셋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사이 좋게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향했을 것이다. 54분경, 즐겁게 뛰노는 세 사람의 머리 위로 큼지막하게 비춰지는 ‘연포해변무대’라는 여섯 글자는 이 곳을 찾지 않았던 이라 할지라도 단박에 촬영장소를 캐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금도 야외 무대는 리뉴얼을 거쳐서 그대로 존속하고 있으며, 부근에는 이 영화의 촬영 기념비까지 세워져 있다고 하니, <바보선언>의 ‘성지순례’ 코스로서 안성맞춤아라 할 수 있겠다. 연포해수욕장의 야외무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세 사람.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혜영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후, 동칠과 육덕은 대관령의 목장에서 그들의 방법으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장례’ 의식을 치러준다. 그리고 이 둘은 비가 쏟아지는 국회의사당 앞, 여의도 광장에서 또다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막판에 이르러서는 웃통까지 벗어 던진다. 이대 앞과 청량리역 앞 광장에서 그랬듯이, 이 장면도 사전에 촬영 허가 없이 기습적으로 찍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런 장면을 찍겠다고 사전에 촬영 허가를 낸다고 해서, 수리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할 것이다. 이 시퀀스는 사전 지식 없이 보더라도, 동칠과 육덕이 작중에서 겪어 온 부조리함과 그에 기인한 울분을 국회의사당으로 대표되는 ‘국가’를 향해서 남김없이 토해내는 의미로 단박에 이해될 수 있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의 제11대 국회에는 야당다운 야당이라곤 일절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두환이 속한 여당 민주정의당과, 국가가 개입한 ‘관제 야당’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만큼 이 시퀀스는 더더욱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군사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하던 제11대 '괴뢰 국회' 앞에서 반라의 광기를 보여주는 동칠과 육덕의 뒷모습. 이상으로 꼭 40년 전에 개봉한 영화, <바보선언>의 주요 공간을 짧게나마 돌아보았다. <바보선언>은 감독 스스로가 평했듯이 제대로 ‘각을 잡고’ 찍은 것이 아니라 군부독재와 검열이라는 사회적 한계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면서 제작된 덕분에, 당대의 공간적 배경이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꾸밈없이 담겨진 영화가 되었다. 40년 전과 비교하여 물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도시 곳곳이 말끔하게 새단장을 거친 지금이지만, 영자원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 에 올라온 이 영화의 덧글란에 ‘걸작’이라는 상찬이 계속해서 달리는 것은 분명 이 영화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는 뜻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동원, “ 사전검열이 만들어낸 명작 <바보선언>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2008. 9. 2. 김성욱, “ [한국영화걸작선]바보선언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홈페이지, 2012. 11. 28.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엄청난 수의 영화들을 소비하며 살고 있었다. 그 정점은 2019년이었다. 2019년 한국 영화 및 해외영화 제작/수입 편수는 총 2,207편, 이 중 1,740편이 개봉했고, 다시 이 중에서 647편이 실제 극장에 걸렸다. 대략 하루에 5편의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공개되고 매일 1.8편의 영화가 실제로 극장에서 개봉한 셈이다. 여기에 프리미어 상영 원칙을 가지고 있는 국고 지원 7대 국제영화제에서 2019년 한 해 동안 상영한 영화는 장편, 단편 합쳐 총 1,432편. 이외의 상당수의 작은 영화제들과 다양한 상영회들도 프리미어 영화나 국내 미개봉작들을 상영하곤 하니 이런 식으로 공개된 새로운 영화까지 다 합하면 이미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더구나 넷플릭스, 와챠 등의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오리지널 영화들과 독점 공개작까지 더하면 우리는 이미 평생을 봐도 다 볼 수 없는 영화 더미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올해 2월부터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는 영화산업과 극장, 극장과 관객이 만나는 길목을 틀어막고 누구도 쉽게 오갈 수 없게 만들었다. 관객은 극장에 가는 걸 꺼리고, 관객이 없으니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개봉 영화가 없어서 관객이 극장을 찾질 않은 악순환은 수개월째 반복되고 있다. 영화제 역시 대부분 축소 또는 온라인으로 운영되면서 상영작 수도, 참여 관객 수도 확연히 줄었다. 산업 구석구석에 이익을 분배하며 순환하던 영화산업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고, 겨울과 함께 3번째 대유행이 시작되자 산업은 거의 멈출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고통 섞인 신음소리는 더 커졌다. 그러나 IT 기술과 자본을 기반으로 전통의 극장산업과 경쟁하던 OTT 플랫폼만은 이 와중에도 홀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순환이 멈추고 산업과 극장이 위험에 처하자 사람들은 갑자기 그동안 별로 상상해본 적 없었던 극장의 죽음에 대해, 극장과 영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그리고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가 영화산업과 영화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지금은 명백히 극장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산업의 위기다. 그러나 지금이 영화의 위기인가? 지난 10년간 영화산업은 일정한 틀에 맞춘 비슷비슷한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고, 극장은 모든 영화를 똑같이 대한 적이 없었다. 독립예술영화는 스스로 순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화계 전반에 걸친 불평등의 문제는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간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2월 이후 코로나19로 초토화되어버린 극장을 지킨 태반의 영화는 산업과 자본이 만든 상업 영화들이 아니라 극장이 평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립예술영화들이었다. 코로나19가 촉발시킨 산업의 위기는 손해 보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산업이 자초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다시 떠오른 질문. 지금이 영화의 위기인가? 다큐멘터리 전문 계간 웹진 <DOCKING>의 2020년 겨울호에는 지난 11월 6일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영화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를 기억하는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씨의 글이 실렸다.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21/177/) 이 글의 일부를 공유한다. 1970년 글라우버 로샤, 장 마리 스트라우브, 미클로스 얀초, 사이먼 하르톡이 로마에서 만나 정치 영화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하르톡은 로셀리니가 '영화는 죽었다'는 말에 동의하는지를 물었고, 장 마리 스트라우브는 이렇게 대답한다. “산업이 사라지면 영화가 시작됩니다.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2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이어지는 글라우버 로샤의 대답: “내 생각에 위험한 것은 바로 산업의 원리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생산과 소비의 시스템에 의존하는 유일한 예술 활동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들기 때문에, 시나 소설을 인쇄하기 위해 편집자가 필요하더라도, 반면에, 각본은 출판될 수 없기 때문에, 회전하지 않으면 시장 가치가 없습니다. 오늘날 영화제작자가 겪는 어려움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1970년 혈기 넘치던 최고의 청년 감독들이 통찰한 영화와 영화산업 사이의 모순은 20년 하고도 30년을 더 기다렸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코로나19는 지금 영화산업이 처한 위기의 결정적 요인이 분명하지만, 근본적인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누군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 상업 영화 만이 살아남지 않겠냐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189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후 지난 125년간 끊임없이 위기를 겪어왔다. 그 위기는 대부분 신기술과 자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지만 창작자들은 매번 실패를 반복하며 그 위기를 극복했다. 지금의 이 위기 역시 누군가에겐 절망의 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시간일 것이다. 산업의 지형도가 달라질 순 있겠지만 영악한 지금의 산업이 쉽게 폐허가 될 리 없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영화든 예외 없이 산업일 뿐 아니라 창작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떤 영화는 폐허 속에 묻히겠지만, 어떤 영화는 살아남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위기라고 생각하는 지금, 우리는 산업이 아니라 창작자들을 지켜내는 데에 더 집중해야 한다. 올해의 사사로운 리스트에는 일 년 내내 머리 속에 가득했던 이런 생각들과 함께 골라낸 영화들을 담았다. < 공포분자 >(1986),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020), < 라이트 하우스 >(2019), < 바쿠라우 >(2019), < 분화구의 두 사람 >(2019), < 애틀란틱스 >(2019), < 언컷 젬스 >(2019), < 트랜짓 >(2018), < 퍼스트 카우 >(2019), < 휴가 >(2020).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들의 리스트이며, 산업의 징후 같은 영화이거나 산업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이거나 산업 같은 거 없어도 얼마든지 생명력을 이어갈 영화의 이름들이다. 리스트를 만들다가 다른 분들이 소개하지 않을 것 같아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어진 영화가 두 편 있었다. 첫 영화는 아라이 하루히코의 <분화구의 두 사람>. 이상한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인간의 육체와 사랑을 말랑말랑하고 끈적이게 담아내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묘하게 자유로웠고, 기묘하게 공허했으며, 기묘하게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언젠가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할 기회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또 하나의 영화는 클레버 멘도사 필루와 줄리아노 도르넬레스가 공동으로 연출한 브라질 영화 <바쿠라우 Bacurau>다. 이 기묘한 영화에 처음 관심이 갔던 건 클레버 감독이 연출한 두 편의 전작 < 네이버링 사운즈 >(2012)와 < 아쿠아리우스 >(2016) 때문이었다. 사실 <바쿠라우>는 클레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자, 줄리아노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영화적 동료로서의 두 감독의 관계(줄리아노는 클레버 감독의 전작들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은 전담했다)와 클레버 감독의 전작들과 연결되는 영화의 세계관을 고려하면 <바쿠라우>는 실질적으론 클레버 감독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영화는 내 예상과 달랐지만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진 건, 피칠갑을 한 이 영화가 지난 몇 년간 봤던 몇몇 중요한 장르 영화에서 발견한 징후와도 같은 특징-가장 파괴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장르 영화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쿠라우>는 <기생충>이 작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레 미제라블>과 함께 공동으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브라질의 정치적 이슈 때문에 칸영화제 기간 꽤 화제가 되었고,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결국 큰 상을 받았기 때문에 <기생충>과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작년과 올해 훨씬 더 화제를 되었을 영화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올해의 베스트 영화 리스트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요즘, <바쿠라우>는 각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회자되고 있다. <바쿠라우>를 연출한 클레버 멘돈사 필루는 최근 10년간 등장한 남미 출신의 가장 주목할만한 감독 리스트를 만들 때 가장 위쪽에 놓을 수 있는 몇 개의 이름 중 하나다. 남미 출신 감독으로는 2016년 이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1968년생. 올해로 53세다. 20대 중반부터 단편 작업을 하며 영화평론가와 영화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모든 장편영화의 오프닝에서 볼 수 있는 CinemaScopio는 자신의 제작사 이름이지만 평론가 시절 만든 자신의 홈페이지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45세가 되던 2012년, 첫 장편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를 연출했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 영화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후에 완성한 두 번째 장편영화 <아쿠아리우스>는 2016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직행했다.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였지만 수상의 기쁨을 누리진 못했다. 그러나 2016년 전 세계 거의 모든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정식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지 4년 만에 전 세계 영화계와 평단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다시 3년 후 세 번째 장편영화 <바쿠라우>를 완성했고, 다시 한번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받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바쿠라우’는 브라질의 오지에 있는 가상의 지명이자 마을의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다양한 인종, 연령, 성향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이 공동체를 이끌던 고령의 흑인 여성 리더 카르멜리타가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은 함께 장례식을 치른다. 식이 끝나자 마을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지역 정치인의 무능으로 진작에 수도가 끊긴 바쿠라우에 물을 나르던 물탱크 트럭이 총격을 받고, 통신 장애가 발생하고, 인터넷 지도에서 바쿠라우가 사라지더니, 느닷없이 낯선 외지인들과 함께 원반 형태의 드론이 목격된다. 이 모든 일은 지역 정치인의 사주를 받고 중무장한 미스터리한 백인 일당이 저지른 일이다. 이들은 마치 사파리에 가서 돈을 주고 사냥을 즐기는 관광객처럼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이 사냥의 대상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선발대를 보내 마을을 살펴본 이들은 별 죄책감 없이 게임을 즐기듯 바쿠라우를 습격하여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려 한다. 위기를 감지한 바쿠라우 주민들은 도망자인 트랜스젠더 룽가를 중심으로 함께 힘을 모아 외부에서 온 잔인한 이방인들을 처단하고 결국 삶의 터전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사실 ‘바쿠라우’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17세기 브라질, 농장에서 도주한 노예(시마론 Cimarron)들이 건설한 공동체 마을 ‘낄롱부 Quilombo’를 연상시킨다. 낄롱부를 건설한 시마론들은 생존을 위해 외부와 단절하고, 내부를 결속시켰다. 때때로 노예들의 도주를 돕거나 농장을 습격하기도 했다. 현재 브라질에는 2천 개가 넘는 낄롱부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영화 속의 ‘바쿠라우’는 ‘리믹스된 낄롱부 remixed quilombo’라고 할 수 있다. ‘바쿠라우’가 낄롱부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된 공간이라는 건 주민들이 밤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며 브라질의 전통 무예인 카포에이라를 추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백인, 원주민, 흑인, 트랜스젠더 등으로 이루어진 주민들은 이 의식을 통해 저항의 역사를 공유하고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 그렇게 ‘바쿠라우’는 가난하지만 존엄한 공동체, 저항의 역사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클레버 감독은 이 장면에서 <더 워드>(2010) 이후 음악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존 카펜터의 인더스트리얼 뮤직 ‘Night’를 그대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 음악의 뮤직비디오에서 백인 일당의 시각적 이미지를 차용한다. 공포 영화의 거장에 대한 이같은 오마주는 이 영화가 어떤 장르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바쿠라우>는 마치 민족지 영화처럼 가상의 역사적 공동체가 놓인 지리적 환경과 주민들의 일상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의 1/3지점부터 장르 영화의 조짐을 보이더니 중반에 접어들면서 SF, 스릴러, 호러, 웨스턴 등 온갖 장르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스파게티 웨스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적 배경(선인장, 말, 총, 인종차별적 악당) 속에서 마지막까지 긴장과 힘을 유지하며 정부의 무능과 부패, 식민주의의 모순 같은 정치적 주제까지 그 세계를 점차 확장해 나간다. 점점 피범벅으로 변해가는 이 영화에서, 잔혹한 폭력은 약자의 생존과 권리가 위협받을 때 권력과 힘에 저항하여 공동체를 지켜내는 필수 도구로 묘사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장르 영화는 기본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고, 평론가 출신의 클레버 감독은 이런 장르의 관습과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종종 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디스토피아적 웨스턴’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유사한 장르 영화나 타란티노의 몇몇 영화들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그러나 <바쿠라우>는 물론 장르적 쾌감으로 가득한 장르 영화지만 오히려 장르의 전통과 관습을 최대한 활용하여 완성한 강력한 정치 영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영화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2019년 브라질의 남동부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지사는 범죄자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무장 요원과 스나이퍼들을 시내 빈민가에 은밀하게 배치하여 비판을 받았다. 2018년 10월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된,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자이루 보우소나루는 경찰이 더 많은 범죄자를 사살해야 한다면서 범죄자들을 재판 회부보다는 약식 처형(총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시민들의 숫자는 2019년 한해에만 하루 평균 5명, 총 1,81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쿠라우>가 담으려고 하는 건 동시대 브라질의 이러한 현실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면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시점을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로 설정하여 ‘영화 속 현실이 곧 다가올 실제 현실과 별다를 게 없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아내는가 하면, 무능하고 부패한 지역 정치인 토니 주니어와 그의 사주를 받은 잔인한 백인 그룹을 통해 브라질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혹한 복수극으로 영화를 끝낸 다음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검은 화면 위로 3줄로 된 자막이 뜨는데,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이 영화는 800개 이상의 일자리와 함께 국가와 문화, 산업의 정체성을 직간접적으로 창출했습니다.” 과거 국책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낯선 문구는 건조하고 단정하게 씌여있지만 칸영화제가 개최되기 약 4개월 전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한 연설에 대한 감독의 답변이자 풍자이며 냉소의 표현이다. 그렇다고 <바쿠라우>가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프로파간다식의 정치영화는 아니다. 클레버와 줄리아노의 방식은 훨씬 정교하고 유희적이며 영화적이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축된 영화적 서사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장치를 통해 정치적 의미를 창조해낸다. 특히 클레버 감독은 과거의 시간이 축적되고 압축된 공간을 영화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데 능하다. 장편 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는 감독의 고향인 헤시피의 한 중산층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동네 건물의 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 프란치스코와 그의 조카 주앙을 중심에 두고 동네의 안전을 위해 사설 경비 업체가 들어오면서 생기는 마을의 미세한 변화를 담는다. 이 영화에서 쇠창살과 철제 대문, 감시 카메라와 사설 경비원 같은 현대적 안전장치들로 대표되는 기술적 모더니티는 이웃의 접근을 차단하고 중산층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동네는 피로 물든 식민주의 역사의 산물이다. 폐허가 되어버린 과거의 공간, 피로 물든 폭포 속에 선 지주의 후예인 주앙의 모습, 그리고 역사적 피해자의 후손과 지주와의 직접 대면하는 장면은 감독이 담아내고 싶었던 정치적 의미를 극적으로 창조해낸다. <아쿠아리우스>의 핵심 공간인 주인공의 오래된 빌라도 마찬가지다. 음악 평론가 클라라는 지속적인 철거의 위협 속에서도 과거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집을 자본가에게 내주지 않기 위해 싸운다. 문화와 역사의 아이콘인 클라라의 고집과 싸움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역사를 지키려는 저항과 투쟁의 몸짓인 셈이다. 영화는 유려하게 과거와 현재, 클라라의 집과 외부를 오가며 이 모든 걸 담아낸다. 클레버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영화의 핵심이 되는 공간의 실제 과거 사진을 활용하여 자신의 영화적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네이버링 사운즈>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헤시피의 옛 지명 페르남부쿠에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연달아 보여주는 시퀀스로 시작하고, <아쿠아리우스>는 오버헤드숏으로 찍힌 해변 도시 헤시피의 과거의 모습 - 보아비아젱 해변의 모습과 오래된 차들로 가득한 길게 뻗은 거리, 거대한 고층 건물이 슬럼가를 대체하는 부감 쇼트의 흑백사진들을 연달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바쿠라우>에서는 마을의 작은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과거 사진들과 리더 카르멜리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준다. 특히 <바쿠라우>는 공간의 지리적인 면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우주의 인공위성에서 남미, 브라질, 바쿠라우로 하강하며 좁혀들어오는 오프닝숏은 로컬리티가 고스란히 담긴 공동체를 세계의 중심, 서사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네이버링 사운즈>에서 시작되어 <아쿠아리우스>를 경유한 다음 <바쿠라우>로 수렴된 클레버 멘돈사 필루와 줄리아노 도르넬레스의 세계는 시간이 축적된 영화적 공간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과 함께 역사를 소환한 다음, 강력한 저항을 촉구한다. 이 세계는 영화적 전통과 관습, 현실의 로컬리티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정교하게 뒤섞여 있으며,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기존 부조리한 질서에 대한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 세계는 1970년 브라질의 선배 감독 글라우버 로샤가 가졌던 영화산업의 모순과 산업 논리가 가진 위험성, 이를 극복해야 하는 영화제작자의 숙명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으며, 코로나 시대가 영화산업과 영화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그 맥이 닿아있다. 저항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으면 세상은 어떤 답변도 알아서 내놓지 않는다. 따라서 장르 영화의 전통 속에서 저항과 투쟁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을 담아낸 <바쿠라우>는 다시 한번,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선언과도 같은 이 문장이 명제가 아니라 믿음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삶은 그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허리께까지 물에 잠긴 남자의 뒷모습. 그는 곧 물속으로 가라앉고 그 자리엔 파문만 일렁인다. < 보희와 녹양 >( 안주영 , 2018)은 이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곧 소년 보희( 안지호 )와 소녀 녹양( 김주아 )이 극장에서 보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인 것으로 드러난다. 객석에 불이 들어오고 그때야 잠에서 깬 녹양이 묻는다. “그래서 영화 끝에 어떻게 되는데?” 보희는 어디까지 봤느냐고 되묻는다. “주인공 남자애가 갑자기 죽잖아.” 위의 장면은 아마 이 순간인 듯하다. 강물 속으로 사라진 소년의 풍경. <보희와 녹양>은 죽은 줄 알았던 아빠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보희가 단짝 녹양과 함께 아빠를 찾아가는 길을 담은 로드무비다. 아빠의 행방을 쫓는 둘의 걸음은 서울 구석구석으로 이어지고, 행적을 수소문하는 중에 둘은 다양한 사람과 마주한다. <보희와 녹양>을 ‘아빠를 찾아 나선 여정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라 정리한다면, 이 영화는 언뜻 보통의 성장영화 혹은 흔히 봐온 드라마와 다름없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희와 녹양>은 오히려 조용하게 통념을 뒤집는 영화에 가깝다. 우선 <보희와 녹양>은 캐릭터 성별에서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난다. 이름 때문에 ‘이보지’란 별명을 갖게 된 보희는 영화를 보고 눈물을 곧잘 흘리는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다. 반면 일상의 순간들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게 취미인 녹양은 어떤 순간이건 스스럼없이 카메라를 들이미는 씩씩하고 담대한 소녀다. 둘은 모두 한부모를 두고 있는데(녹양은 아빠, 할머니와 살고 있다. 엄마는 녹양을 낳다 세상을 떠났다), 여타 드라마가 재현하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처럼 불행에 휩싸여 있지 않다. 또 일찍 세상의 강퍅함에 눈뜬 아이 특유의 애어른 같은 면모도 없다. 그저 열네 살만큼의 활기를 품고 있고, 또 그만큼의 사춘기 혼란을 겪는다. 둘을 둘러싼 인물들도 전형성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특히 보희의 엄마(신동미)나 녹양의 할머니(이재희)는 ‘돌봄과 보호’의 역할을 하는 여성 캐릭터에만 머물지 않는다. 둘 다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보희와 녹양>은 여느 로드무비처럼 극적인 경험에 방점을 두지도 않는다. 영화는 아빠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인물에 더 큰 관심을 갖는데, 이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다감하다. 특히 보희가 배다른 누나라고 착각한 사촌 남희(김소라)의 남자친구인 성욱(서현우)은 보희에게 형 혹은 친구 같은 존재가 된다. 영화는 보희와 녹양의 시간만큼 보희와 성욱의 시간에 집중하지만 성욱을 굳이 아빠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이로 적극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는 영화가 ‘아빠의 부재’를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기에 가능한 선택 같아 보인다. 보희에게 아빠의 부재는 꼭 채워 넣어야만 할 공백이 아니다. 대신 그가 얻고 싶은 답은 ‘부재의 이유’고, 영화 말미에 보희는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다. 아빠가 살아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럼에도 자신을 떠난 이유를 짐작하게 된 보희는 다음 순간 한강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그리고 조용히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장면이 영화 시작에 나온 풍경과 똑같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 초반 녹양의 대사처럼 주인공 남자애(보희)는 죽게 될까? 아빠가 자신과 엄마를 떠난 이유를 알게 된 후 자살을 결심한 걸까? 궁금증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화면이 바뀌는 순간 우리는 보희가 한강 가운데로 헤엄쳐 들어가 강물에 몸을 맡긴 채 평온하게 쉬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엄마와 둘이 나란히 찍힌 사진의 접힌 뒷면에 아빠의 모습이 숨어 있었던 것처럼, 어떤 사실은 이렇게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를 정하는 것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혹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따라 맥락이 달라진다. 녹양은 생일을 맞은 보희에게 그간 찍은 영상을 선물로 건네는데, 영상 속 대사를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안녕, 이보희. 내가 돈이 없어서 뭐 줄 건 없고, 재밌게 봐라. 생일 축하해.” “안녕, 보희야. 네 이름 들었을 때 내가 너무 웃겨가지고.” “보희? 보희가 누구야?” “야, 이보지.” “여자 이름도 아니고.” “생긴 건 좀 그래, 그런데.” “요리를 잘해.” “그날, 밥 먹으면서 엄마가 했던 말.” “엄마가 뻥치신 거야?” “그런 가봐.” “아니, 할머니. 내 친구 있잖아.” “내가 어릴 때 너 되게 많이 괴롭혔는데.” “많이 미안한 거 같아.” “아빠 찾는다고.” “찾아와 줘서 되게 고마웠고.” “너무 상처 안 받았으면 좋겠어.” “보희.” “우리 보희 없으면 안 되는 거.” “독특한 새끼.”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 “어쩌면 진짜 어쩌면.” “뭔데.” “아빠가 살아 있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보희입니다.” “야, 똑바로 좀 해봐.” “됐어. 치워. 이런 거 안 할래. 가자.” 이 말들은 녹양과 보희, 녹양 할머니와 보희 엄마, 남희와 성욱의 말을 뒤섞은 후 짜깁기한 것인데, 교묘하게 앞뒤의 말들이 연결되며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보희와 녹양은 ‘잃어버린 아빠 찾기’의 여행이 마무리된 후 세상의 많은 일들도 이렇게 작동함을 알게 된다. 어디까지 볼 것인지,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떤 말을 새길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많은 관계와 많은 일들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말이다. <보희와 녹양>은 수많은 한국영화 속 청소년이 경험하듯, 혹독한 시련을 온몸으로 통과해야만 제대로 된 성장담이 쓰여지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따뜻하고 친절한, 호기심 가득하고 웃음 풍성한 성장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