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막스 원
- 감독
- 엄종선
- 제작년도
- 1989
- 출연
- 강리나, 이대근, 김하림, 정선우, 남성훈, 최성관, 국정환, 홍윤정, 김애라, 김애경, 엄용수, 오도규, 석인수, 김현진, 김신명, 김유행, 손전, 주상호, 박동룡, 박용팔, 박예숙, 길달호, 남수정, 김영자, 김진선, 박진희, 강성아, 박경자, 이난선, 김현아, 신명정, 신상호, 황문순, 나현식
이강천 의 < 피아골 >(1955)은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이 금지되었던 최초의 영화다. 더불어 반공법을 위반한 최초의 반공영화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형용모순의 수사는 <피아골>을 설명하는 데 있어 턱없이 모자란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흥미로운 면모를 살피는 데 있어서는 얼마간 유효해 보인다. 당시 이 영화는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논란이 되었는데, 주인공 애란( 노경희 )이 지리산을 내려와 공허한 몸짓으로 백사장을 걸을 때, 그녀가 남한사회로 귀순할지 피아골로 다시 오를지 목적이 불분명해 보인다는 이유서였다. 제작자는 이후 영화 마지막에 태극기 장면을 삽입했고, 개봉된 영화에선 지친 애란의 모습 위로 휘날리는 태극기가 디졸브 되며 이야기가 끝난다. 위풍당당하게 휘날리는 태극기가 당대에는 중요한 표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마지막 태극기만큼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없다. 내막을 모른 채 마지막 장면을 맞더라도, 이물감이 강하게 느껴져 억지로 끌어온 장면이라는 걸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피아골>은 반공영화이기 이전에, 휴전 후 지리산 피아골에 잔류한 소수 빨치산을 세밀하게 그린 탁월한 인물화다. 여는 반공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엔 남한군이나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관념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서사를 할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영화가 관심을 두는 건 피아골에 갇힌 빨치산의 생태계와 죽음에 가까워 가는 인물들의 절박한 생존기, 무너져 가는 이념 속에서 얼룩져 가는 인물들의 초상에 있다. 멀리서 날아오는 총탄과 포탄의 피해로 아가리( 이예춘 ) 부대의 대원들은 쓰러져 가지만, 그들에게 더 큰 공포는 지리산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나약한 인물들을 지탱하고 있던 이데올로기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각자의 신념은 견지한 당성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무너져 가며, 인물들을 저마다의 회의와 모순과 광기 속으로 빠져든다. 이를테면 대장 아가리는 부대의 규율을 어긴 자들을 잔혹하게 처치하면서도 스스로는 비밀스럽게 규율을 어기며 자기모순에 빠져있고, 부대원들이 보급투쟁을 하러 부락에 내려간 사이 고요한 사찰에 홀로 남아 과오에 대한 죄의식으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의 비서인 애란 역시 당성이 강한 인물로 그들이 반동분자로 명명한 이들에게 잔혹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녀를 지지하고 있는 건 신념과 함께 빨치산의 규율을 지킴으로써 돌아갈 고향도 없는 자신의 운명을 피아골에 결부시키는 일이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대의 간부이지만, 영화 시작부터 혁명투쟁에 회의하고 있는 철수( 김진규 )는 부대의 잔혹한 행위들을 은밀하게 거부하면서도 무력하기 그지없는 표정들로 얼룩져 가는 인물이다. 외에도 부대원들은 서로 짝을 이뤘다 배신하기를 거듭하며 불안한 공동체의 마지막 모습을 아로새긴다. 사실 그들의 초상 속에 반공메시지가 스며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초상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그리며 이데올로기의 작동 시스템에 잠식당한 인물들의 항변에 이처럼 귀 기울이는 작품도 영화사에 흔치 않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피아골>은 탁월한 인물화기도 하지만, 심리의 풍경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간혹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유려한 움직임과 리듬으로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세밀히 묘사한다. 또한 지리산의 견고한 바위와 유약한 풀잎들 사이, 그리고 사물들이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 인물들을 배치시키며 그들의 복잡한 심리를 형상하고 있다. 이를테면 영화는 철수와 마음을 나누는 소주( 김영희 )가 지대 본부로 소환되기 전까지 철수와 소주 그리고 철수를 연모하는 애란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세심히 어루만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세 인물 사이의 감정적 기류를 아리고도 아름답게 표현한 장면이 있다. 소주가 대장 아가리에게 겁탈 당한 후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다. 숙소 안의 상황을 모르는 철수는 대장에게 보고할 사항이 있어 아가리의 숙소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던 애란은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대장의 명령을 받은 철수는 먼저 자리를 뜨고, 숙소 앞에 남아있던 애란은 시간차를 두고 나오는 대장과 소주의 매무새를 보고선 소주가 당한 일을 얼핏 눈치 챈다. 그러나 그녀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않는다. 다만 숙소의 모퉁이를 지나가는 소주를 애란이 조용히 따르고 카메라 역시 둘의 움직임을 유유히 따를 뿐이다. 철수와 소주와 애란이 차례로 숙소 모퉁이를 지나갈 때 세 인물 사이에 흐르는 애정과 질투와 환멸과 연민의 감정은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표정과 고요한 움직임 사이에서 아릿하게 미동한다. 그리고 소주가 떠난 밤, 부락으로 보급투쟁을 나서는 대원들의 모습은 나뭇잎들이 드리운 그림자로 인해 얼룩지거나 건물들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 속에 묻히곤 한다. 출구 없는 암담한 운명이 그들을 자꾸만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영화는 그들의 불안과 회의와 광기의 현장을 무섭도록 고요하게 비춘다. 이 영화를 반공영화로 보아야 한다면, 이들의 잔혹함과 광기를 치밀하게 그려서가 아니라, 이들의 침묵 속에서 저 홀로 청명한 소리를 내고 있는 계곡의 물소리가 더 깊이 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대립된 이념에 아우성치지 않고 침묵 속에 새어나오는 신음을 첨예하게 그린 <피아골>은 어느 한 범주에 몰아넣기에는 품이 넓은 영화다. >> 피아골 VOD 보러가기 <<
< 아파트 생태계 >는 작년에 고인이 되신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5권짜리 책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는 무척 쉽게 읽히면서도 애잔한 감정을 전해주는 책이다. 선생의 거리낌 없는 주변에 대한 디스와 도시 덕후로서의 면모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특히 본인이 서울시의 도시계획국장으로 일했던 1970년대에 대한 서술은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일 듯 생생했다. 2014년 봄에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섯 번의 인터뷰 촬영을 진행했고 일상의 모습도 촬영해 두었다. 당시 선생은 자신의 도시계획에 대한 모든 자료를 서울시립대학교에 기증하고 그 기증자료실에 매일 출근해서 새로운 책을 집필 중이셨다. 이때만 해도 이 인터뷰가 어떻게 영화에 쓰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손정목 선생은 인터뷰 당시 혼자 거주하던 전농동 래미안아파트 내부까지 촬영을 허락하셨고 솔직담백한 말로 자신이 속한 한 세대의 종언을 예고하셨다. 나는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구상을 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손정목 선생에게 작품의 완성 시기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했다. 손정목 선생은 자신도 쓰다가 나중에 완성하려고 쌓아둔 원고 뭉치들이 많다고 했다. 그 비슷한 거냐고 했다. 나는 딱 알맞은 비유라고 답했다. 2015년에 건축가 조성룡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올해의 건축가로 선정된 건축가에게 제공하는 작은 전시 기회가 있다고 했다. 그 전시에 본인이 설계한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하고 싶다고 하셨다. 1986년에 완공된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건축가에게 아파트 설계를 맡긴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나는 아파트 단지 곳곳을 둘러보았다. 정말 좋은 아파트였다. 그리고 무지하게 비싼 아파트였다. 다양한 나무들과 다채로운 길들이 공원으로 이어진다. 아파트 단지 안을 거닐면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인간과 인간의 적절한 거리 감각을 아파트에서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고급 아파트들과 달리 공간들은 열려있으면서도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존중되었다. 진짜 고급아파트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일주일 정도 촬영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목적으로 촬영된 푸티지들로 올해 봄부터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구성해보기 시작했다. 서울 아파트 역사를 개인들의 삶과 기억을 통해 전개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방식이나 서사에 좀 변화를 추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장기간 지속되는 다큐 촬영에 지쳤던지라 제작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 스토리텔링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구성해 보고자 했다. 먼저 아파트 전문학자들의 자문과 자료조사를 통해 촬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파트들을 리스트업 했다. 배우를 캐스팅하는 심정으로 아파트 헌팅을 다녔다. 그렇게 세운상가아파트, 여의도시범아파트, 남산제2회현아파트, 서소문아파트, 반포주공아파트, 상계동아파트단지, 목동아파트단지 등을 영화에 담았다. 시민아파트로 시작된 아파트가 어떻게 중산층을 위한 단지형 아파트로 변화했는지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주거의 의미에 대해서도 표현해보려 시도했다. 아파트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과, 경제 가치를 위해 그저 아파트를 사고팔고 재건축하기에 급급한 삐뚤어진 사랑 사이에서, 우리가 잊은 것은 없는지 질문해 보고 싶었다. 아파트에도 우리의 역사, 우리의 기억이 있다. 도시의 역사와 함께 형성된 다양한 생태계가 있다. 무책임한 주거정책과 건설자본의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도시가 애정과 관심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주거 공간에 대한 투쟁을 기록하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만들어진 김동원 감독의 < 상계동 올림픽 >에서처럼 하루아침에 재개발로 삶의 공간에서 내몰리던 사람들을 기록하며 시작된 것이 한국 다큐멘터리였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무단 점유해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던 구도심의 산동네와 개천변을 공유지라는 이유로 철거하던 시대를 경유해 이제 그 공간들은 아파트로 빽빽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파트들이 이제는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직면해 있다. 쫓겨나면 갈 데가 없었기에 절박했던 폭력적인 재개발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그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공간들이, 이제 재건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공간 파괴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아파트에 살던 세입자들은 재건축이 결정되면 그냥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이주비를 받아서 떠나는 세입자들에게 재건축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공적인 녹지공간을 줄이고 최대한의 사적 공간 확보와 고층화를 원하는 것이 이전처럼 정부나 서울시가 아니라 아파트 소유자들이 주축이 된 재조합이라는 것이다. 현재 강남3구의 아파트 재조합들과 서울시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는 과거 국가권력의 폭력적인 철거를 탓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편에 속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 안에 아우성치는 아파트 재건축을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통제 불능의 끝없는 욕망은 정말 알아갈수록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공공성의 잣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내 이웃의 이기적인 탐욕과 욕망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찾기가 힘들다. 재건축을 통해 불로소득의 맛을 본 노령세대의 부동산 사랑은 이제 우리 모두의 열망으로 자리 잡았다. 다들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재건축을 통해 한 번 더 뻥튀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서울은 다시 아파트 재건축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 아파트 생태계 >를 촬영하며 그 욕망을 비교적 가깝게 볼 수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를 보여줄 수 있다. 대기업의 불법성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 내부의 부동산 열정을 각성하게 하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집과 거주가 본연의 의미를 찾게 될 수 있을까. < 아파트 생태계 >를 완성해 몇 개의 영화제를 통해 공개했다. < 말하는 건축가 >와 < 말하는 건축 시티:홀 >에 이어지는 건축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주변에서 언제 극장에서 개봉하는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묻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개봉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다큐멘터리의 개봉이란 나에게 100번의 관객과의 대화를 의미하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각종 민폐성 부탁을 해야 하는 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배급이 결정되지 않은 영화의 창작 활동이 피해갈 수 없는 그! 예정된 가시밭 길을, 이번에는 왠지 피하고만 싶다.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배급이 아니라면, 어떤 경로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 중에 있다. 그 모색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피력하며, 이번 연재분을 마치고자 한다. 많은 개인들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의뢰를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풍덩 뛰어들어 일단 촬영을 시작한다. 만들고 나면 배급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촬영을 하고, 마침내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나 배급의 방법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공적 매체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다양한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의 질적, 양적 성장을 지켜보노라면 놀랍기만 하다. 혼자만의 기대일 수도 있겠지만, 곧 다큐멘터리가 한국영화를 이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방송 쪽에서 창작의 자유를 위해 넘어온 다큐멘터리스트,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려고 미술의 영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시도하고 있는 아티스트들, 데뷔작으로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신인 감독들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른 목표로 다큐멘터리에 입문하고 있다. 그러나 배급에 있어서는 그저 극장용 예술영화 배급시장에서의 개봉만을 바라보고 있다. 독립적인 시선과 개인적인 접근을 허용하는 방송 다큐멘터리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다큐들이 방송 편성권에 들어갔을 때 언제나 완성도 문제를 지적받는다. 매끄러운 전개와 친절한 방송어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되기가 힘들다. 다큐멘터리의 영화적, 개인적 표현을 인정하고 ‘KBS 독립영화관’ 같은 프로그램으로 독립다큐들을 정기적으로 방송해 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는 지식이나 정보의 입체적 전달이 가능한, 교양을 쌓는 데 무척 우월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정보나 보도 중심의 다큐가 아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에 포착된 이야기들로도 충분히 새로운 교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공영 방송국이 시민 교양의 향상을 위해 제 기능을 다 하기를 바라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대략 10부작 정도의 시리즈로 만들어 보고 싶다.(계속) #1. 아파트 생태계(Ecology in Concrete) -재개발에서 재건축으로 #2. 말하는 건축 시티:홀(Talking Architect City:Hall) -우리가 공간에 대한 결정에 직면했을 때 #3. 말하는 건축가(Talking Architect)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일
<아파트 생태계>는 작년에 고인이 되신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5권짜리 책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는 무척 쉽게 읽히면서도 애잔한 감정을 전해주는 책이다. 선생의 거리낌 없는 주변에 대한 디스와 도시 덕후로서의 면모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특히 본인이 서울시의 도시계획국장으로 일했던 1970년대에 대한 서술은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일 듯 생생했다. 2014년 봄에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섯 번의 인터뷰 촬영을 진행했고 일상의 모습도 촬영해 두었다. 당시 선생은 자신의 도시계획에 대한 모든 자료를 서울시립대학교에 기증하고 그 기증자료실에 매일 출근해서 새로운 책을 집필 중이셨다. 이때만 해도 이 인터뷰가 어떻게 영화에 쓰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손정목 선생은 인터뷰 당시 혼자 거주하던 전농동 래미안아파트 내부까지 촬영을 허락하셨고 솔직담백한 말로 자신이 속한 한 세대의 종언을 예고하셨다. 나는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구상을 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손정목 선생에게 작품의 완성 시기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했다. 손정목 선생은 자신도 쓰다가 나중에 완성하려고 쌓아둔 원고 뭉치들이 많다고 했다. 그 비슷한 거냐고 했다. 나는 딱 알맞은 비유라고 답했다. 2015년에 건축가 조성룡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올해의 건축가로 선정된 건축가에게 제공하는 작은 전시 기회가 있다고 했다. 그 전시에 본인이 설계한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하고 싶다고 하셨다. 1986년에 완공된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건축가에게 아파트 설계를 맡긴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나는 아파트 단지 곳곳을 둘러보았다. 정말 좋은 아파트였다. 그리고 무지하게 비싼 아파트였다. 다양한 나무들과 다채로운 길들이 공원으로 이어진다. 아파트 단지 안을 거닐면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인간과 인간의 적절한 거리 감각을 아파트에서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고급 아파트들과 달리 공간들은 열려있으면서도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존중되었다. 진짜 고급아파트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일주일 정도 촬영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목적으로 촬영된 푸티지들로 올해 봄부터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구성해보기 시작했다. 서울 아파트 역사를 개인들의 삶과 기억을 통해 전개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방식이나 서사에 좀 변화를 추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장기간 지속되는 다큐 촬영에 지쳤던지라 제작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 스토리텔링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구성해 보고자 했다. 먼저 아파트 전문학자들의 자문과 자료조사를 통해 촬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파트들을 리스트업 했다. 배우를 캐스팅하는 심정으로 아파트 헌팅을 다녔다. 그렇게 세운상가아파트, 여의도시범아파트, 남산제2회현아파트, 서소문아파트, 반포주공아파트, 상계동아파트단지, 목동아파트단지 등을 영화에 담았다. 시민아파트로 시작된 아파트가 어떻게 중산층을 위한 단지형 아파트로 변화했는지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주거의 의미에 대해서도 표현해보려 시도했다. 아파트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과, 경제 가치를 위해 그저 아파트를 사고팔고 재건축하기에 급급한 삐뚤어진 사랑 사이에서, 우리가 잊은 것은 없는지 질문해 보고 싶었다. 아파트에도 우리의 역사, 우리의 기억이 있다. 도시의 역사와 함께 형성된 다양한 생태계가 있다. 무책임한 주거정책과 건설자본의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도시가 애정과 관심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주거 공간에 대한 투쟁을 기록하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만들어진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에서처럼 하루아침에 재개발로 삶의 공간에서 내몰리던 사람들을 기록하며 시작된 것이 한국 다큐멘터리였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무단 점유해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던 구도심의 산동네와 개천변을 공유지라는 이유로 철거하던 시대를 경유해 이제 그 공간들은 아파트로 빽빽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파트들이 이제는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직면해 있다. 쫓겨나면 갈 데가 없었기에 절박했던 폭력적인 재개발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그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공간들이, 이제 재건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공간 파괴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아파트에 살던 세입자들은 재건축이 결정되면 그냥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이주비를 받아서 떠나는 세입자들에게 재건축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공적인 녹지공간을 줄이고 최대한의 사적 공간 확보와 고층화를 원하는 것이 이전처럼 정부나 서울시가 아니라 아파트 소유자들이 주축이 된 재조합이라는 것이다. 현재 강남3구의 아파트 재조합들과 서울시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는 과거 국가권력의 폭력적인 철거를 탓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편에 속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 안에 아우성치는 아파트 재건축을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통제 불능의 끝없는 욕망은 정말 알아갈수록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공공성의 잣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내 이웃의 이기적인 탐욕과 욕망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찾기가 힘들다. 재건축을 통해 불로소득의 맛을 본 노령세대의 부동산 사랑은 이제 우리 모두의 열망으로 자리 잡았다. 다들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재건축을 통해 한 번 더 뻥튀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서울은 다시 아파트 재건축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아파트 생태계>를 촬영하며 그 욕망을 비교적 가깝게 볼 수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를 보여줄 수 있다. 대기업의 불법성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 내부의 부동산 열정을 각성하게 하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집과 거주가 본연의 의미를 찾게 될 수 있을까. <아파트 생태계>를 완성해 몇 개의 영화제를 통해 공개했다. <말하는 건축가>와 <말하는 건축 시티:홀>에 이어지는 건축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주변에서 언제 극장에서 개봉하는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묻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개봉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다큐멘터리의 개봉이란 나에게 100번의 관객과의 대화를 의미하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각종 민폐성 부탁을 해야 하는 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배급이 결정되지 않은 영화의 창작 활동이 피해갈 수 없는 그! 예정된 가시밭 길을, 이번에는 왠지 피하고만 싶다.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배급이 아니라면, 어떤 경로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 중에 있다. 그 모색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피력하며, 이번 연재분을 마치고자 한다. 많은 개인들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의뢰를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풍덩 뛰어들어 일단 촬영을 시작한다. 만들고 나면 배급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촬영을 하고, 마침내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나 배급의 방법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공적 매체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다양한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의 질적, 양적 성장을 지켜보노라면 놀랍기만 하다. 혼자만의 기대일 수도 있겠지만, 곧 다큐멘터리가 한국영화를 이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방송 쪽에서 창작의 자유를 위해 넘어온 다큐멘터리스트,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려고 미술의 영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시도하고 있는 아티스트들, 데뷔작으로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신인 감독들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른 목표로 다큐멘터리에 입문하고 있다. 그러나 배급에 있어서는 그저 극장용 예술영화 배급시장에서의 개봉만을 바라보고 있다. 독립적인 시선과 개인적인 접근을 허용하는 방송 다큐멘터리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다큐들이 방송 편성권에 들어갔을 때 언제나 완성도 문제를 지적받는다. 매끄러운 전개와 친절한 방송어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되기가 힘들다. 다큐멘터리의 영화적, 개인적 표현을 인정하고 ‘KBS 독립영화관’ 같은 프로그램으로 독립다큐들을 정기적으로 방송해 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는 지식이나 정보의 입체적 전달이 가능한, 교양을 쌓는 데 무척 우월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정보나 보도 중심의 다큐가 아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에 포착된 이야기들로도 충분히 새로운 교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공영 방송국이 시민 교양의 향상을 위해 제 기능을 다 하기를 바라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대략 10부작 정도의 시리즈로 만들어 보고 싶다.(계속) #1. 아파트 생태계(Ecology in Concrete) -재개발에서 재건축으로 #2. 말하는 건축 시티:홀(Talking Architect City:Hall) -우리가 공간에 대한 결정에 직면했을 때 #3. 말하는 건축가(Talking Architect)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