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셰프
- 감독
- 존 파브로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존 파브로, 존 레귀자모, 바비 카나베일, 엠제이 안소니, 스칼렛 요한슨, 더스틴 호프만, 소피아 베르가라, 올리버 플랫, 에이미 세다리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러셀 피터스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이제 뻔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일은 그만하고, 진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속 먹방 장면이나 감상해보자. 사실 애니메이션 속 먹방은 그 가짓수가 일만 오천육십 개까지나 되니(세어 보진 않았지만 하여튼 엄청 많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밀가루’에 관련된 먹방만 감상해보겠다. 첫 번째 이야기해 볼 애니메이션은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이다. 나는 사석에서 지브리 스튜디오를 ‘셰프 지브리’라고 부르곤 한다. 마치 감각 있는 셰프가 그날 날씨와 제철재료들을 고려하여 선보이는 ‘오늘의 추천 요리’ 메뉴처럼,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의 먹방에서는 작 중 분위기와 상황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요리 메뉴를 선보인다. 먼저, 밀가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애니메이션인 < 마녀배달부 키키 >를 감상해보자. <마녀배달부 키키>는 꼬마 마녀 키키가 빵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소동을 담은 따뜻하고 귀여운 성장 드라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키키가 화덕에서 파이를 굽는 부분인데, 그 파이의 모양이 적잖이 낯설었다. 생선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청어 파이’였기 때문이다. 이 청어 파이는 모두에게 몹시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는지, 지금도 청어파이, 즉 생선 파이는 영국의 괴랄한 미식 문화를 조롱하는 의미로 통한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셰프 지브리의 탁월한 센스를 엿볼 수가 있다. 생선 파이는 사실 역사가 오래된 영국 전통 요리다.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어려운 영국의 서민층들이 조리해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여하튼 영국 서민들의 전통 홈 푸드인데, 현재는 여기저기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마녀배달부 키키>의 청어 파이 역시 마찬가지 신세다. 손녀의 파티에 따뜻한 파이를 보내주고자 했던 할머니가 오븐이 고장 난 상황에서, 오래된 화덕을 수리하는 고생(물론 고생은 키키가 다 하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키키에게 넉넉한 금전적 보상을 해주었지 않은가?)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껏 구워낸 것이지만, 신세대 손녀에게는 문전박대를 당한다. 셰프 지브리의 특기인 ‘상징’이 빛나는 대목이다. 키키의 눈빛을 보면 맛있게 먹겠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움직이는 성안, 하울의 식사는 어떨까? 베이컨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개척자들의 필수아이템이었다. 여행 작가이자, 개척자인 랜스포드 헤이스팅스는 1845년, 오리건을 향하는 이민자들에게 150파운드(약 68kg)의 베이컨을 필수적으로 챙겨가라고 조언했다. 개척자들은 매일 아침으로 커피와 베이컨을 먹고, 저녁엔 베이컨 기름을 빵이나 비스킷에다 발라 먹었다. 1) 그 유명한 베이컨&달걀의 유행은 사실 하울이 원조가 아니다. 그 역사는 19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이어트가 필수덕목인 이 시대에야 고열량인 이 조합은 사실 죄책감까지 불러일으키지만, 1920년대에 ‘베이컨&달걀’은 아주 ‘건강하고 가성비 좋은’ 아침식사였다. 그야말로 피로와 긴장에 찌든 여행자들에게 걸맞은 고영양 메뉴인 것이다. 게다가 셰프 지브리는 베이컨 기름으로 모든 조리를 해결한다. 올리브유나 향료같은 많은 부재료들을 챙겨 다니기 어려운 여행자들에게 아주 요긴한 재료다. 다만 계란 후라이를 저렇게 예쁜 ‘써니 사이드 업’으로 만들려면 약불로 인내심있게 구어야 하는데, 저렇게 화력이 센 불에 조리하니 타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뭐, 보기 좋기는 했다. 이 부분에서 서론에서 말했던 애니메이션 속 먹방 장면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왜 밀가루 이야기를 하다말고, 고지방 고단백 메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겠지만, 사실 내가 정말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베이컨과 달걀과 함께 식탁 위에 나란히 놓여있던 빵, 깜빠뉴다. 절대 사심으로 베이컨&에그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약간 그래요. 뭐 어쨌든… 이 고열량, 고단백의 조합의 목 멜 듯한 기분은 탄수화물이 녹여준다. 깜빠뉴는 오래 보관하기 쉽고, 재료가 단순하고 맛이 담백하여 어느 메뉴와도 잘 어울린다. 식사빵이라는 카테고리답게 묵직하고 든든하다. 여러모로 먼 길을 떠날 때 아주 적합한 메뉴다. 사실 ‘베이컨과 에그 게다가 단순 탄수화물인 빵’은 비만 인구 상승에 힘을 실어줄 조합이기는 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막강한 적과 싸워야하는 하울 무리에게는 더없이 걸맞은 메뉴였다. 이번엔 일본을 벗어나, 영국의 훌륭한 스튜디오로 넘어가 보자. 아드만 애니메이션은 <월레스와 그로밋> < 치킨 런 > < 플러쉬 > < 아더 크리스마스 > < 허당 해적단 > < 숀더쉽 > 등 정말 재미있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대거 제작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아드만의 애니메이션들은 진짜로 웃기고, 재밌다. 그리고 먹음직스럽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먹방으로써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장점들을 고루 갖출 수 있다.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오버액션도 ok. 멋진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월레스와 그로밋>을 살펴보자. 월레스는 발명가이자 빵집사장이다. 그로밋은 그가 기르는 강아지. 하지만 이 강아지 그로밋이 월레스보다 약 두 배가량 현명하다. (하긴 역마살 붙은 것 마냥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동네를 휘젓는 이웃집 개도 집만 잘 찾던데, 10년 산 동네에서 한번 낯선 길로 가보자고 했다가 돌아오는 길을 한참 헤맸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둘은 아무리 바빠도(사실 별로 바빠 보이지도 않지만) 늘 시간을 내어 치즈&크래커와 홍차를 즐긴다. ‘빵이냐 죽음이냐’ 편에서, 파이엘라는 늘 정시에 티타임을 즐기는 월레스의 습관을 이용하여 살인을 계획할 정도로 그들에게 티타임은 무척 중요한 의식이다. 사실 이런 문화는 영국인이라면 아주 익숙하다. 영국인들의 티타임 사랑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도버해협을 건너는 기차 안에서도 전용 도기로 애프터 눈 티를 즐겼다고 하며, 영국의 유명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환상의 세계에서도 티타임은 빠지지 않는다. 이런 영국인의 홍차사랑에 대한 결실은 현재 티타임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찻잎들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찰스 그레이 백작의 이름을 딴 ‘얼그레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같이. 영국이 구움 과자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 ‘차사랑’에 원인이 있다. 음식문화가 취약하다고 정평이 난 영국도 비스킷, 스콘 등 티타임에 곁들일 메뉴를 개발하는 데에는 꽤나 열정적이었던 모양이다. 역시 인류 최고의 발명가는 사랑이라고 했던가. 월레스와 그로밋이 여기에 곁들이는 비스킷 역시 지극히 영국적인 과자다. 비스킷은 1588년 스페인과 영국이 영불해협에서 맞붙었던 전투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이었다. 해전 시 배에 실을 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어 칼로리가 높지만 가볍고 부피가 작아야 했는데, 비스킷이 그에 딱 걸 맞는 메뉴였다. 영국군은 최대한으로 수분을 없앤 딱딱한 비스킷을 있는 대로 보관해 둔 덕에 굶주릴 일없이 전쟁에 임할 수 있었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세계최강이라 자부하던 스페인 함대는 몰락했고, 영국은 세계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2) 어쨌거나 월레스와 그로밋의 티타임은 달로 향하는 우주 비행선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이 용감한 개척자들은 출발하기 직전까지 티타임 도구들을 챙기기 바쁘다. 바삭하고 퍽퍽한 비스킷에 부드러운 치즈를 곁들인 티푸드에 맛있는 홍차, 그리고 오래된 친구와 즐기는 티타임이라니, 우주 한가운데 더없이 영국적인 풍경이다. 위 거론한 예시들 말고도 애니메이션 속 먹방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다. 언젠가 또 기회가 닿는다면 < 너의 이름은. >의 팬케이크 이야기나, < 검정고무신 >의 크림빵에는 생크림이 없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크림의 비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애니메이션 속에도 현실 세계 만큼이나 먹음직스러운 이야기들이 가득 숨어있다. 행복한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답게 나의 첫 데뷔작도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했던 음식 만화(<삶은 토마토>)였다. 주로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나 상황들이 스토리의 전부다. 심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는 게 별건가 싶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밥먹기’를 원하며,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들이 ‘식사자리’에서 거론된다. 나는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들이 먹고 마시는 게 좋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진중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허기짐을 느껴, 혹은 기운이 달려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순간 거리를 두고 감상하던 이야기들이 삶의 차원으로 넘어온다. 게다가 음식 만화를 연재하며 먹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 즐겁지만, 번거로운 일임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빼버려도 상관없는 먹방 장면을 굳이 삽입한 애니메이션 감독에게는 인간적인 애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이 더 먹고 마셨으면 좋겠다. 더 많이, 더 맛있게, 더 오버액션으로 먹어주면 좋겠다. 언젠가 여러분, 제가 엄청나게 맛있게 먹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거 거든요? 얼마나 맛있게 먹나 한번 보러와 주세요. 어설픈 글을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어쨌든, 나도 난생처음 칼럼이라는 걸 써본 기념으로 오늘은 맛있는 걸 좀 먹어야겠다. 1)『아침식사의 문화사(Breakfast: A history-Heather)』 (헤더 안트 앤더슨 저, 니케북스, 2016) 참조 2)『양과자 세계사』(요시다 기쿠지로 저, 비앤씨월드, 2011) 참조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영화 속의 푸드팀에 대한 글 문의를 받고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이런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을 만큼 그간 영화 속의 음식을 많이 진행했었구나, 두 번째는 수많은 영화에서의 음식을 선보였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쓰면 좀 더 맛깔나고 재미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2017년도 개봉 예정작에 선보일 음식 촬영 진행을 하며 작업할 영화들이 추가되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리에 앉아 고민하며 글을 써본다. 푸드팀이라는 단어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지만 아직도 푸드팀과 한 번도 작업을 해보지 않았거나 아예 인지를 못 하고 있는 영화인들도 많다. 영화에서 푸드팀이라는 타이틀로 처음 일을 하게 된 것은 시간을 거슬러 2005년으로 올라간다. 영화 쪽에 먼저 발을 들여 일하고 있던 남동생이 우리를 영화의 세계로 입문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침 남동생이 작업하던 이준익 감독님의 < 왕의 남자 >(2005)에 연회 씬이 아주 크게 나오는데, 미술과 소품의 영역으로 음식을 차리면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요리 전문가를 모시고 세팅을 하길 원하신다는 감독님의 요청이 있었다며 연락이 왔다. 그땐 우리에게도 영화 속 음식이란 것이 너무도 생소해서 연출 제작팀과 끝없는 회의를 했음에도 지금 돌이켜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실수들이 잦았다. 팔팔 끓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출을 원해서 닭백숙을 정말 뜨겁게 끓여 놓았는데 광대역의 배우들이 닭을 손으로 막 찢어 먹다가 입천장을 데어 다시 식혀 놓기도 하고, 모든 음식을 먹는 거라 이해하고 한 음식마다 정성을 다해 맛있게 간을 하여 세팅했지만 연출상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두 가지로 정해져 있어 수 시간 준비한 음식들을 맛도 보지 못하고 버리는 아픔이 있었다. <왕의 남자>의 한 장면 <왕의 남자> 촬영현장의 음식 세팅 < 왕의 남자 > 이후로 < 식객 >(2007)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요리 만화 「식객」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벅차올랐었는데, 이런 큰 음식 영화가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해오다니! <식객>은 국내 최초로 본격적인 음식 영화이기도 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했던 셰프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라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갖고 도전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말 공부를 많이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십 편의 영화에서 음식을 담아냈지만 <식객> 때만큼은 우리가 미술 소품에 포함되는 푸드팀이 아닌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있는 푸드팀이었다. 음식 영화의 푸드팀장이라는 타이틀은 부담감도 매우 클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가. 그때 참 날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며, 그간의 영화 경력을 다시 찾아보니 정말 많은 영화에서 음식을 선보였다. < 왕의 남자 >(2005) < 식객 >(2007) < 미인도 >(2008) < 쌍화점 >(2008) < 폭풍전야 >(2009) < 식객-김치전쟁 >(2010) < 방자전 >(2010) < 미스터 아이돌 >(2011) < 후궁 >(2011) < 기술자들 >(2014) < 나는 왕이로소이다 >(2012) < 톱스타 >(2013) < 협녀, 칼의 기억 >(2013) < 군도: 민란의 시대 >(2014) < 상의원 >(2014) <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4) < 허삼관 >(2014) < 궁합 >(2015) < 검사외전 >(2015) < 봉이 김선달 >(2016) < 미쓰 와이프 >(2015) < 뷰티 인사이드 >(2015) < 고산자, 대동여지도 >(2016) < 침묵 >(2016) < 보통사람 >(2017) < 군함도 >(2017) < 공작 > (2017) < 남한산성 > (2017)까지 약 17편의 크고 작은 영화에서 우리의 역할을 드러냈고, 또 드러낼 예정이다. <식객-김치전쟁> 음식 세팅 <뷰티 인사이드> 음식 세팅 영화마다 남아있는 기억도 다양하다. 영화를 통해 평소에 전혀 접하지 않는 식재료들을 다루는데, < 후궁 > 때는 자라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대승 감독님은 촬영 내내 음식에 대해 매우 세심하게 하나하나 신경을 쓰셨는데, 극 중 자라탕이 매우 혐오스럽게 보이길 원해 목이 나와 있는 상태로 탕을 끓이기도 했다. < 검사외전 > 촬영 때는 < 군도 > < 허삼관 > 때 함께 했던 연출, 제작, 미술, 소품팀을 다 같이 만나 매우 반갑게 촬영했다. 현재 촬영 중인 < 공작 >에서는 위의 세 개 영화를 함께 했던 팀들과 또다시 호흡을 맞춰서 정말 즐겁게 찍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고증에 입각한 음식을 선보이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다. < 쌍화점 >은 고려 시대가 배경이었으나 음식에 대한 고증은 기본만 따라가고 가장 화려하고 멋있게 세팅해달라는 연출과 미술팀의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시대극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색감의 음식들을 준비해 23회차씩이나 현장에 나가 음식을 세팅했는데 정작 영화 속 음식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아직 개봉 전인 영화 < 궁합 >은 < 식객 > 때 조감독님의 입봉작으로 확실히 음식 영화를 경험하셨던 분이라 영화 속 음식 연출에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시고 (고증을 철저히 따랐다) 앵글에도 음식이 많이 보였다. 음식을 세팅하는 우리로선 화면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 가장 뿌듯하기에 신바람 나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후궁>의 자라탕 <쌍화점>의 화려한 음식 영화 < 식객 >의 인연으로 배우 임원희 와는 지금까지도 매우 친하게 지낸다. 역할은 악역 봉주였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좋고 너무도 친절했다. 그는 왼손잡이여서 칼 사용을 왼손으로 시작했었는데 2007년 촬영 당시 왼손잡이 요리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칼질을 오른손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대다수의 의견으로 피나는 연습을 통해 오른손 칼질을 앵글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때 그 연습 이후로 아직도 칼질 하나 만큼은 오른손으로 한다고 한다. 그가 예능 방송에 출연할 때 야간 매점 음식을 뭘 할지 고민하며 연락왔을 때도 내가 자주 해 먹는 야식 하나를 알려주었는데 예상치도 않게 1등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연락하며 안부 물으며 지내는 친한 지기이다. <식객>의 배우 임원희 때로는 손 대역도 자처한다. 그간 다양한 영화에서 내 손이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이 비치기도 했다. < 식객-김치전쟁 >을 촬영할 때는 배우들의 조리 동선, 완성된 음식의 형태, 조리과정에 있어 NG 후 필요한 재료들에 대한 조치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요리사 8’의 보조역할로 극 중에 투입되어 촬영하기도 했고, < 허삼관 >을 촬영할 때는 허삼관이 자주 가는 만두집의 만두를 직접 빚는 조리 장면, 피순대와 생고기를 투박하게 써는 장면, 붕어찜의 식재료를 전문적으로 써는 장면 등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이기도 했다. 내 손이 가녀리진 않지만 날씬하다고 알고 있었으나 화면에 비친 내 손은 아주 통통한 손이었다! <허삼관>을 촬영할 때는 내 평생 그렇게 피순대를 많이 썰어보기도 처음이었다. 아무리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지만 피순대를 좋아하지 않는 이상 많이 먹어볼 일도 접할 일도 없는데, 촬영을 위해 엄청난 양이 필요했고 또 의외로 정말 맛있어서 촬영을 마치고 촬영 스텝들과 다 같이 나눠 먹기도 했다. <식객-김치전쟁> 촬영현장 <허삼관>의 피순대 푸드팀의 역할이 무얼까. 이름에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우리는 영화 속 음식을 세팅하는 사람들이다. 시대극을 찍을 때는 시대적 배경에 맞아야 하며,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 감동이 느껴지거나 정치성이 보이거나 등등 음식만 보고서도 그 느낌이 전달될 수 있게 구성하고 세팅해야 한다. 푸드팀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제작, 연출, 미술, 소품팀과의 호흡도 중요하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게 되면 전체적인 배경색과 톤앤매너 협의, 소품팀과의 소품 정리, 감독님과 함께 논의하는 연출팀과의 다자간 미팅이 진행된다. 대화를 통해 음식 시안을 공유하며 메뉴 구성을 마치면 영화 촬영장에서는 푸드팀의 요리 마술이 시작된다. 현장에서 음식을 준비할 때는 조리 공간이 충분치 않아 이미 만들어 온 음식에서 살짝 손보는 정도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날이 더 많다. 또한 다른 팀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준비를 마쳐야 한다. 배우가 음식을 먹는 장면이면 NG 장면을 대비해 미리 음식을 준비하거나, 김이 나야 하는 장면은 슛 들어갈 때 그 김이 바로 보일 수 있게 사전 준비를 꼼꼼히 해야 하는 등 촬영하는 동안 푸드팀 일원들은 정말 바쁘게 움직인다. 영화 속 음식이라 대부분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만든다고 해서 요리를 못 해도 푸드팀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큰 오산이다. 음식을 누구보다도 전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게 푸드팀이다. 역사적 배경과 시대에 따라, 또 상황과 극 역할에 따라 수많은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가 바뀌고 이 부분을 이해, 설명, 그리고 조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푸드팀의 또 다른 역할. 영화 촬영장에 푸드팀이 함께하면 현장 분위기가 매우 훈훈해진다. 예전엔 음식 소품이라 해서 영화 속 음식을 먹지 않고 기피하였으나 정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눈에 보이면 스텝들 눈에도 소품이 아닌 일용할 양식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온다. 현장이 정말 바쁜 날이 아니면 우리가 별도의 조리를 하여 스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곤 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고된 촬영에 지친 스텝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된다.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길 때면 언제나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스텝들, 음식 옆을 지나가며 차마 먹을 수 없는 상황의 스텝들의 그렁그렁한 소 같은 눈. 감독님, 피디님부터 배우들, 각 팀의 막내까지 모두가 평등해지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일을 두 배로 만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눠먹으며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은 그 이상이 된다. 벌써 약 10년이 넘게 영화 쪽 음식을 진행하다 보니, 현장에 아는 사람들도 많고 함께 같이 여러 작품을 한 사람들도 많다. 10년 넘게 시간이 흐르니 영화 입문 초창기부터 봐 왔던 사람들이 어느덧 영화팀의 고참이 되어 현장에서 만나면 함께 예전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남동생의 영화 쪽 지인들을 내가 하는 영화에서 만나 같이 작업하며 친분도 쌓게 되고, 또 최근에 알게 되는 신참 팀원들의 열정적인 패기를 보며 때로는 그들의 열정에 자극을 받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곧 크랭크인 하는 큰 규모의 영화 속 음식 예시 안을 준비하고 있는데, 글을 쓰며 나 자신에게 동기부여 하는 시간이 된 것 같이 뿌듯하다. 약 10년차가 넘게 이쪽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 음식이 정말 맛있고 따뜻하게 보이는 마음, 훈훈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영화 < 식객 > 이후로 음식영화가 제작이 되지 않고 있는데, 그간 음식에 관련한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며 얻은 좋은 아이디어들을 토대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이번에 작업하게 되는 영화에서도 음식이 중요하게 보일 예정인데,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푸드팀으로써 더 맛있게 그리고 멋있게 음식을 세팅 해보려한다. 마지막으로 맹렬한 더위와 추위에도,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지금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모든 영화인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