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
- 감독
- 소마이 신지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코이즈미 쿄코, 아사노 타다노부, 아소 구미코, 에모토 아키라, 츠루미 신고
<희생>(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86) 중 1년간 관객을 찾은 영화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돌아보며, 올 한 해 영화가 불러온 고민들을 정리합니다. 스크린 앞에 앉은 이들이 이미지 속에서 그들의 욕망을, 그들이 욕망하는 것을 찾는다는 말은 꽤 미심쩍은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앞에, 뒤에 그리고 곁에 앉은 이들이 보고 있는 이미지와 자신이 보고 있는 그것과의 차이를, 즉 간극을 향유하기 위해 영화관에 간다. 이 경우에, 그리고 오직 이 경우에만 영화관은 우정의 장소가 된다. 그런데 “뤼미에르에 대한 에디슨의 승리”(장-뤽 고다르)가 전면화된 곳에서, 관객들은 그저 “자신들이 찾은 것만을 욕망”(기 드보르)하게 될 것이다. - 유운성, 「우정의 이미지들」, 『인문예술잡지 F』 제10호 이 글은 2024년 12월 중순에 쓰이고 있다. 12월 3일의 계엄령 선포 이후라는 뜻이다. 연말의 나는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해의 영화들을 순위 매기거나 놓친 영화를 돌아보며 다가올 새해를 맞이했다. 지나간 이미지들을 되짚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는 했었던 것인데, 반대로 요즘의 나는 유튜브에 들어가 생중계되는 담화와 현안 질의 영상 같은 것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와중에 마감 일자는 다가왔고 글을 써야 할 때가 되었는데, 청탁을 받았을 때와는 무언가 달라진 기분 같은 것을 느꼈고, 그것을 외면하기에는 원래 준비했던 글의 주제와 지금의 내 상태가 관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꽤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준비하던 글을 버릴 수는 없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준비했던 대로만 쓰면 왠지 그건 평정심이라기보다는 뻔뻔함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 섞인 걱정을 하고, 그럼 준비했던 대로만 쓰는 건 뭔가 아니다 싶고, 굳이 올해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관련지을 수 있을 만한 사례를 가져와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그와 관련된 옛날 얘기로 글을 시작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편의 영화에 대한 단일한 감상이란 있을 수 없다. 비평이란 이름의 탈을 쓰고 유의미한 의견으로 정교히 언어화되어 세상에 나오지 않을지라도, 언제나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것에는 각자의 개별적 경험이 스며들며 그 분리 불가능한 총합은 또 하나의 경험이 되어 각자의 마음에 남기 마련이다. 김대환 의 장편 데뷔작 < 초행 >(2017)이 내게 그런 영화 중 한 편이다. 2017년 겨울에 개봉한 이 영화는 당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당시 이 영화를 본 친구들은 개봉하게 되면 꼭 보라는 말을 해주면서도, 어떤 내용인지 묻자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편이 좋고 결말이 참 인상적이라는 말을 더해 주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포스터나 시놉시스를 보건대 장르적이거나 플롯 운영에 있어 반전을 꾀하는 영화는 아닌 것임이 확실할 텐데,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초행> 포스터와 스틸 <초행>이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결말부는 2016년 가을 무렵부터 2017년 중순까지 이어졌던 광화문 촛불 집회를 로케이션으로 삼는다. 양쪽 집안을 오가며 고군분투하던 7년 차 청년 커플을 따라가던 픽션의 세계에 돌연하게 쏟아지는 저 리얼리티의 막대함에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이 선택이 단순히 허구와 현실의 구별이라는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린다는 개념적 차원 그 이상의 가치로 빛난다고 느꼈는데, 서둘러 말하자면 이 영화가 너무 빨리 도착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KOBIS에 따르면 이 영화는 내가 열심히 광화문 광장을 오가던 2016년 11월 26일부터 2016년 12월 20일까지 촬영되었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고, 이 영화는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으로 공개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당시 촛불 집회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와 시간은 이 현실을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망각하기 어려운 적잖은 충격이었을 테다. 물론 나는 이 영화를 개봉하고 보았지만, 그 물리적 간극을 상쇄시킬 정도로 <초행>의 끝이 주는 감흥은 생생하면서도 생경했다. <초행>에 기입된 광화문 광장의 생생한 이미지가 한편으로 생경했던 이유는, 영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다는 모종의 관습을 깨부수었기 때문이다. 거의 생중계에 가깝다고 느끼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은 환기되는 이상야릇함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사실 이 장면이 인상 깊은 건, 작품 내에서 세계를 뒤집어놓는 급속한 반전처럼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지난히 이어지던 이 커플이 광장으로 향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는 상황은, 이야기와 멀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끈끈히 달라붙으며 세계를 입체화하기 때문이다. 수현과 지영은 그 역할을 맡은 조현철 과 김새벽 으로 존재를 전환하지 않고, 광화문 광장은 이 영화의 주된 무대인 삼척, 인천과 특별한 위계서열을 형성하지 않는다. 나의 사적인 경험, 역사적 현실, 영화적 허구가 한 데 섞여 용광로처럼 들끓었던 이 기묘한 감각을 여전히 잊기 힘들다. <태풍클럽> 일본어 포스터(일부)와 국내 개봉 포스터 그 ‘너무 이른’ 경험으로부터 7년이 지나 2024년이 되었다. 올해는 정반대로 ‘너무 늦은’ 경험을 했다. 소마이 신지의 < 태풍클럽 >(1985)이 정식으로 개봉한 것이다. 처음 본 것이 중학생 때인지 고등학생 때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둠의 경로를 통해 이 영화의 영상과 자막을 구했으며 이불에 들어가 스마트폰으로 보았던 기억, 예상치 못한 영화 속의 거친 면모에 받았던 충격만큼은 선명하다. <태풍클럽>은 1985년 작이니 거의 30년이 되어서야 한국에 정식으로 공개된 것이다. CGV 아트하우스관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객석이 의외로 꽉 차 있어 놀랐고, 영화가 끝난 뒤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내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태풍클럽>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청춘물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소마이 신지의 다른 영화들과 그의 연출 스타일을 경험해 보았다는 차이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시네필 꼰대처럼 우쭐대는 것은 아닐까? 상영관에 함께 있던 이들과 나는 동등한 입장에서 영화를 본 것이 맞는 걸까? 너무 늦게 도착한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이다. 영화 감상은 반드시 시차의 문제를 동반한다. 스크린 속 세계가 내게 익숙한지 생소한지에 따라 감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태풍클럽>은 개봉하기까지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통과하며 몇몇 평자들에 의해 걸작으로 이야기되어 왔던 작품이었고, 이미 대다수의 시네필들이 시네마테크와 어둠의 경로를 통해 그 감각을 수용한 상태에서 너무 늦게 도착했다. 물론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생각을 바꿀 수도 있고, 처음 본다 해도 기존의 맥락을 신경 쓰지 않고 감상할 수 있으니 이 모든 것은 쓸 데 없는 우려일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하나의 유물을 목격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2024 월별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20위까지의 목록 중 재개봉 영화 목록 (출처: KOBIS / 회색 음영: 한국 최초 개봉 연도, 주황 음영: 당월 순위) 그 인상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올해 개봉한 수많은 재개봉작들 때문이다. KOBIS를 참고해 보면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재개봉작들이 많이 출현했던 해다. 심지어 몇몇은 동시대에 만들어지고 개봉하는 영화와 경쟁해 당당히 1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나는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고, 어쨌거나 이 통계는 한국의 사례이기에 동일한 현상이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까지 고려하며 이 흥행에 대한 인과론적 분석을 할 수는 없다. 그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영화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특히 독립예술영화를 배급하는 입장에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테니, 새로운 영화를 가져오는 것보다는 이미 지나간 영화를 고르는 쪽이 경제적으로 나은 선택지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그 선택들이 일으키는 변화다. 영화 홍보에 있어 언제부터 ‘개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봉하여 두었던 것을 떼거나 엶”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그 선택의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요컨대 영화가 개봉한다는 건 무언가 기대할 만한 것이 빵 하고 튀어나오는 그런 종류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개봉박두’ 나 ‘대개봉’ 같은 한때의 표현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제 우리네 관객이 마주하는 표현은 ‘개봉’ 대신 ‘공개’라는 심심한 표현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지원 사격으로 부상한 OTT와 유튜브를 통과하며 우리는 이미지에 너무나도 익숙해졌고, 더 이상 이미지가 이전과 같은 환상성이나 신비로움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지독할 정도로 체감하다 못해 익숙해졌다. 내 손안의 영화관인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속 릴스와 쇼츠로 맥락이 탈구된 수많은 밈(meme) 이미지들을 나의 취향에 맞는 알고리즘의 설계 아래 부지런히 스크롤링하며 갱신하는 것이 일상화된 우리의 감상 환경에서, 미지의 세계를 마주하는 구속적 방식의 영화 감상은 그 자체로 만족을 주지 못하는 20세기의 시대착오적 산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올해는 그것을 직접 몸으로 체감했던 해였다. 올해 나는 “무슨 무슨 영화가 재개봉한대” 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했다. “아니, 그게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재개봉이냐?” 가령 표의 4월부터 5월을 보면 < 남은 인생 10년 >(후지이 미치히토, 2022)이 1위를 차지했는데, 이 영화는 고작 1년 전에 개봉한 영화다. 차라리 재개봉 대신 재상영 내지 스크리닝이라는 심심하고 객관적인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아니면 재개봉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는 너무 빨라서 그 사이 옛날 영화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 ‘재개봉’에 대해 느끼는 어색함은 그 자체로 동시대 영화가 놓인 위치를 설명해 주는 것만 같다. 사실 나는 10년이 넘기는 했지만 < 비긴 어게인 >(존 카니, 2013) 같은 경우에도 ‘옛날 영화’라고 감각하지 않는 쪽인데, 이 영화도 ‘재개봉’을 해서 9월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20년이 넘었는데도 1등을 한다. 10월의 1등, 닉 카사베츠의 < 노트북 >(2004)이다. 이렇게 ‘재개봉’으로 소환되는 (너무 이른) 과거는 추억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5년에는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나카야마 미호의 출연작, 이와이 슌지의 < 러브 레터 >(1995)가 작품 탄생 3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을 예정 중이라고 한다. 심지어 세로 자막 버전이라고 한다. 아! 그때 그 시절 …… 농담이다. 나는 극장에서 세로 자막으로 영화 본 기억이 없다. 좌우지간, 그런 점에서 올해의 극장은 추억의 공간이다. 다른 한편, 올해는 과거의 수많은 걸작들이 극장에 소환된 해다. 이들은 박스오피스권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시네필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사례다. 앞서 말한 소마이 신지의 <태풍클럽>, 오시마 나기사의 < 전장의 크리스마스 >(1983), 이마무라 쇼헤이의 < 복수는 나의 것 >(1979), < 우나기 >(1997), 다시 한 번 ‘재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 큐어 >(1997), 무엇보다 90년대 한국에 뒤늦게 개봉하여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 희생 >(1986) 4K 리마스터 재개봉까지 …… 물론 이들의 방문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걸작’으로 소환되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영화가 더 이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문제와 결부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역사적 덩어리 내지 가치 있는 유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들에 익숙한 시네필들은 기꺼이 극장에 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관객들이라도 걸작이라는 은근한 압박에 둘러싸여 작품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상) <전장의 크리스마스>, <복수는 나의 것> / (하) <큐어>, <희생> 그런 감각을 더 강하게 느끼는 이유가 있다면, 이 영화들이 시네마테크의 기획과 같은 대안적인 방식으로 상영되지 않고, 정식 개봉 절차를 거치는 방식으로 CGV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몇 년 전만 해도, 최신 개봉작은 멀티플렉스에서 보고 독립영화와 과거의 영화들은 시네마테크에서 보는 이분법적 감상 환경이 일반적이었다. 나 역시 2016년에 처음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고바야시 마사키의 < 할복 >(1962)을 보고, 노인이 된 나카다이 다츠야와 이준익 감독의 대담 상영을 경험하며 그 시간의 아득함을 체감한 바가 있다. (적고 보니 거의 10년이나 지난 일이다. 미안하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예술영화 시장에는 큐레이팅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되었고 ‘홍길동 특별전,’ ‘임꺽정 배우전,’ ‘장길산 기획전’ 같은 문구는 굳이 대안적 상영 공간을 찾지 않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브랜딩 상품이 되었다. 알리체 로르바케르와 JR의 단편 < 알레고리 >(2024)와 레오 까락스의 단편 < 잇츠 낫 미 >(2024)가 동시대 영화 이미지의 존재론적 탐구라는 주제의식과 레오 까락스라는 공유점으로 매끄럽게 묶여 개봉하는 상황은 시네필을 위한 친절한 배려이자 선물이지만, 아무래도 이런 호의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잇츠 낫 미> 중 그러니 이와 같은 유물의 소환을 다른 말로 ‘교양’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던 또 하나의 사례가 떠오르는데, 다름 아닌 <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3), < 추락의 해부 >(쥐스틴 트리에, 2023),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단 글레이저, 2023)와 같은 작품의 예상치 못한(?) 흥행이 그것이다. 솔직히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는 자신이 없지만, 일개 관객으로서의 경험을 떠올려볼 수는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세 작품의 흥행은 작품들이 그 자체로 특별한 자질을 품고 있다는 항구적인 특징 때문이 아니라, 어떤 시대적인 요구에 의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저 세 편의 영화를 보고 사회적이든 미학적이든 정치적이든, 영화를 통해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접했지만, 그 수많은 말들 속에는 왜인지 ‘나’의 시선이나 감상보다는 대체로 객관과 분석의 언어로 가득했다. 차이밍량은 “상업영화는 세상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이고, 예술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이 ‘예술영화’들을 보고 나는 세상의 내일을 걱정했던 것 같다. <괴물>, <추락의 해부> 중 이제 영화관은 문자 그대로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라는 무맥락적인 성격이 아니라, 지나간 걸작을 만날 수 있는 시네마테크, 혹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네마천국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 속에서 오래된 영화들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나’와 무관한 역사로 간주되거나, 반대로 ‘나’의 그때 그 시절 향수에 젖어드는 정서적 힐링 콘텐츠가 되어버린 것일까? ‘재개봉’이라는 말로 너무 이르게, 혹은 ‘걸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늦게 찾아온 과거의 영화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례를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비단 올해만 그렇지는 않지만, 영화관에는 전통적 의미의 영화 대신 다른 영상물이 걸린 경우가 많았다. 구체적으로 제목을 짚지 않더라도, 가령 다큐멘터리로 분류되는 아이돌 콘서트 실황 영상이나 스포츠 중계 등은 코로나 이후 극장 수입에 있어 효자 상품이었다. 그런데 누가 보러 가는가? 당연히 해당 작품이 다루는 대상의 팬들이 보러 간다. 그러니 팬들이 아니면 보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지인들 중에서 같은 종류의 영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팬덤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 타겟팅 기획물 중 올해 가장 성과가 좋았던 작품은 김덕영 의 < 건국전쟁 >(2023)이다. KOBIS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117만 관객을 동원하며 2024년 한국에서 상영된 독립예술영화 분류 작품 중 관객 수 1위를 기록했다. 이승만이라는 아이돌과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한 팬덤 문화가 만들어낸 기념비적 성과라고 불러야 하겠다. 불현듯 “태극기 부대 속에 들어가서 <건국전쟁> 보기”라는 기획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바로 그런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은 볼 사람과 보지 않을 사람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상품이다. 말하자면 죽음의 이지선다! 바이로이트 극장의 내부를 그린 삽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 19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기존의 오페라를 상연하던 극장을 완전히 탈바꿈하며 바이로이트라는 이름의 극장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는 호화로운 장식이나 발코니석 같은 부수적 기물을 전부 떼어버리고, 바닥을 깊게 파서 오케스트라를 안쪽으로 은폐하여 관객들이 오로지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그곳에서 관객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바그너의 이 미학적 파시즘의 설계는 이후 영화관의 메인 모델로 채택되었고, 그를 총애했던 히틀러의 정치적 파시즘과 짝꿍을 이루며 < 의지의 승리 >(레니 리펜슈탈, 1934)와 같은 걸작으로 당시 독일 인민들의 정신을 통합해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자장 속에서, 쉽게 ‘우리’라는 말을 꺼내고 싶게 하는 환경 속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OTT 플랫폼에 둘러싸인 우리는 각자가 각자의 작품을 보는 식이었던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식 관람 환경 안에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옆 사람이 무얼 보든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2024년을 돌아보면서 불현듯 영화관 모델의 역사를 떠올린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죽음, 극장의 죽음, 무엇보다 우리와 각자의 문제. 혼란스러운 연말 시국 속에서 그 말들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그렇다. 이것은 결산이 아니라 진행이다. 이광호(영화평론가) l 1996년생,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 주변을 오가고 싶다. 2018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 당선. 반연간지 《크리틱b》, 월간 서비스 '비평의 편지' 필진.
※ 이 글은 2022년 10월 11일(화)부터 19일(수)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되는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미완의 사가: 아오야마 신지(1964-2022) 추모전’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기획전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42 ) 언제나 많은 이해자들에게 둘러싸여 일찍이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 신지는 불우한 작가였다. 신작이 발표될 때마다 적지 않은 리뷰가 나오기는 했지만 정리된 작가론이라면 지금도 결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동서고금의 영화, 음악, 문학에 정통했던 예민한 비평가였기 때문에 아오야마 신지를 논하는 것은 비평가에게는 그 대상에 필적할 만큼의 지성과 감성을 요구하는 골치 아픈 도전이었던 것이다. 아오야마는 소설가나 연극 연출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음악가로서의 활동도 단순한 취미로서 정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다재다능함이 아오야마가 하는 일의 전모를 한층 보이기 어렵게 한 면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아오야마와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 끝내 아오야마론을 쓰지 않은 태만한 영화비평가 중 한 명이었으며, 너무나도 이른 그의 죽음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을 씻어낼 수가 없다. 구로사와 기요시, 만다 구니토시, 시오타 아키히코와 같은 현대 일본영화의 이름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릿쿄대학 출신이었지만 세대적으로 가장 아래 세대였던 아오야마는 일찍부터 학생영화계에서 명성을 얻었던 ‘릿쿄 누벨바그’ 선배들과는 조금 다른 경로를 거쳐 영화계에 진입하게 된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1990년대의 일본영화 산업은 크게 침체되었고, 신인 감독이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일자리를 얻는 길은 이미 완전히 막혀 있었다. 기타노 다케시 같은 반전통적인 작가가 영화계 밖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혼란을 틈탄 것이었다. 이처럼 혼미한 시대에 새롭게 등장해 성행한 것이 OV(오리지널 비디오)라고 불리는, 처음부터 렌탈 비디오용으로 양산된 저예산 영화였으며, 또 시장 확대를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필요로 하기 시작한 BS(위성방송)였다. 그리고 아오야마는 실로 OV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감독을 경험한 후,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유료 BS 방송국 WOWOW에서 < 헬프리스 >(1996)를 찍으며 본격적인 데뷔를 장식했다. 이런 형태로 시작된 아오야마의 행보는 영화의 정의가 점점 모호해져가는 와중에 영화란 무엇인가를 매번 되묻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헬프리스>는 현장에 결집한 인재들의 면모에서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이후의 아오야마의 작품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첫걸음이었다. 일단 당시 WOWOW 소속이었던 프로듀서 센토 다케노리가 있다. <헬프리스>는 센토가 시작한 프로젝트 'J·MOVIE·WARS'의 하나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매년 비교적 저예산인 영화 4, 5편을 한데 모아 제작, WOWOW에서 프리미어 방영 후 극장 개봉하는 프로젝트로 해를 거듭할수록 신인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데뷔의 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여러 편의 묶음 제작은 손익의 상쇄에도 용이했기에, 스튜디오 시스템이 없는 시대에 이를 대체하는 시스템의 구축을 의식했다는 점에 센토의 비범함이 있었다. 또 하나 센토가 일본영화 프로듀서로서 선구적이었던 것은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시야에 넣고 있었던 점이었다. 가와세 나오미의 < 수자쿠 >(1997)가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그 가장 두드러진 성과였다. 아오야마가 센토가 프로듀싱한 < 유레카 >(2000)로 칸 국제비평가연맹상과 에큐메닉상을 수상하는 등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 센토의 전략에 힘입은 바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아오야마에게 있어서 센토와 함께 결정적이었던 것은 촬영감독 다무라 마사키와의 만남이다. 다무라는 <산리즈카> 시리즈로 알려진 급진적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집단 오가와 프로덕션 출신으로, 극영화에 진출하고 난 후에도 파격적인 롱테이크로 세간에 놀라움을 안겨준 소마이 신지의 < 숀벤 라이더 >(1983) 등에서 특이한 개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특징으로는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비정상적일 정도의 높은 감응력과, 살아있는 공간을 포착하는 카메라 시선의 철저한 비인칭성을 들 수 있다. <헬프리스>의 시작 부분에서 기타큐슈의 거리 풍경을 위에서 포착하고 이윽고 위태로운 진자운동을 시작하는 공중 촬영이라고 하는, 그 어떤 자의 시점으로도 결코 환원될 수 없는 마이클 스노우의 구조영화마저 연상시키는 카메라워크를 보면 그것은 명백해진다. 아오야마와 다무라는 이후에도 < 새드 배케이션 >(2007)까지 오랫동안 콤비를 이루게 되지만, 그 관계가 일관성 있게 서로 익숙한 채로 의존하는 종류의 것과는 거리가 먼, 더없이 긴장 가득한 것이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유레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웅대한 환경 속에 인물을 던져놓은 다음 시간을 두고 그 생태를 쫓는다는 방향성을 정한 뒤, <달의 사막>(2001)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스탠다드 사이즈를 통해 의도적으로 공간을 한정하고, <호숫가 살인사건>(2005)에서는 멀티카메라 시스템을 채택했을 뿐 아니라 다무라를 굳이 세컨드로 돌린 것이다. 다무라와의 결별 후에 찍은 < 도쿄공원 >(2011)과 마지막 감독작 < 구름 위에 살다 >(2020)에서 나타나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로의 현저한 관심의 이동은, 결코 스타일적인 후퇴 같은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단한 자기 혁신 끝에 처음으로 획득한 것, 더할 수 없는 복잡함을 경험해봤던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단순함의 경지였다. 아오야마는 다니엘 슈미트가 일본에서 찍은 걸작 <쓰여진 얼굴>(1995)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 가까이서 관찰한 슈미트와 촬영감독 르나토 베르타와의 관계성으로부터 다무라와의 공동작업으로 연결되는 무언가를 배웠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서, <유레카> 이후 거의 모든 아오야마 작품에서 녹음을 담당하고 있는 기쿠치 노부유키 또한 다무라와 마찬가지로 오가와 프로 출신이다. 사람들에게 만연해 있는 자살 충동 바이러스를 음악으로 치유하는 SF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005)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아오야마 작품에서의 음향은 종종 시각적인 영상과 길항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건 소리의 공간성을 중시하는 기쿠치의 공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헬프리스>는 내용 측면에서도 아오야마에게 있어 결정적이었다. 이 작품은 나중에 만든 <유레카>, <새드 배케이션>과 함께 ‘기타큐슈 사가’를 구성하게 된다. 개개의 작품 테두리를 넘어 공통적인 캐릭터가 오고 가면서 전체로서 큰 강과 같은 거대한 서사의 너울을 형성하는 사가라는 형식은 근대소설사에 있어서는 포크너의 것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오야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포크너의 영향을 받은 나카가미 겐지이다(아사노 타다노부가 연기하는 주인공의 이름인 겐지는 그에게서 유래한다). 고대로 이어지는 신화적인 땅 기슈에서 살아온 나카가미는 스스로가 피차별 부락 출신이라는 사실에 마주하여, 그 장소를 ‘골목(路地, Roji)’이라고 이름 붙이고 활황일 때부터 소멸 후까지를 사가로 그렸다. 아오야마에게 있어서 나카가미의 영향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는 <로지예: 나카가미 겐지가 남긴 필름>(2000)을 보면 분명히 나타나지만, 아오야마는 나카가미의 기슈를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기타큐슈로 단순히 대체하지는 않았다. < 로지예 >에서 역시 기슈 태생의 영화작가 이즈치 기슈가 나카가미의 텍스트를 낭독할 때 과장된 기슈 사투리가 특징적이었던 것처럼, 기타큐슈 사투리의 거의 음악적일 정도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이 아오야마에게는 중요했다.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규슈 이외의 사람이라면 전부를 알아듣는 것이 쉽지 않은, 조야함과 순정을 겸비한 듯한 기타큐슈 사투리의 독특한 가락은 들으면 들을수록 ‘일본어’라는 통합된 개념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꾸어 간다. 그리하여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에도 인접한 기타큐슈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말이 폴리포닉하게 교차하는 다의성을 가진 공간으로서 재정의되게 되었다. 그리고 <새드 배케이션>에서 가장 깊이 탐구된 이 성격이야말로, 나카가미가 ‘골목’이라는 허구에 진정으로 기대했던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오야마는 또한 나카가미로부터 물려받은 짙은 정치성, 특히 천황제나 국가라고 하는 대문자 정치에 대한 강한 관심에 있어서는 동시대 작가들보다 오시마 나기사 같은 작가와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 이미 늙어버린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하지 않기 위하여 >(2001)에는 그러한 아오야마의 정치성이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표출돼 있다. 애초에 <헬프리스>에서도 남자들을 괴롭히는 아버지의 부재라는 상황이 쇼와 천황의 죽음과 겹쳐져 있었다. 죽여야 할 아버지가 이미 없어졌다는 사실이 남자들을 기댈 곳 없는(helpless) 고아로 변모시킨 것이다. 이처럼 아오야마의 정치적 측면에서의 독창성은 천황제나 국가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이 자신의 육체를 흐르는 피의 문제로 여긴 점에 있었다(전전의 국가이데올로기에서 일본 국민은 천황의 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후 아오야마의 관심이 아버지 죽이기에서 여성적인 것의 탐구, 모성이라는 헤어날 수 없는 굴레의 속박으로 옮겨갔다는 점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새드 배케이션>에서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아무리 아이가 발버둥질해도 모든 것을 미소와 함께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사랑임에 틀림 없다. 온갖 저항이 모성으로 인해 무력화되는 개미지옥 같은 나라, 일본――절망적으로 여겨지는 한편, 그 끝없는 포용력에 희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서게 되는 그 지점에서 ‘기타큐슈 사가’는 닫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오야마의 미국문화에 대한 경도도 그 자신을 흐르는 피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성여성>(1966)의 고다르는 당시 파리 젊은이들을 ‘마르크스와 코카콜라의 아이들’이라고 불렀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아오야마는 자신에게 흐르는 피의 절반이 코카콜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평생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국영화와 음악, 문학 속에서 자라나면서 현실 국가로서의 미국에게는 환멸할 수밖에 없었던 빔 벤더스를 ‘그를 논하는 것은 나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동지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1) 아오야마가 보기에 전후 일본에게 있어서 미국은 아무리 그곳으로부터 독립하려고 발버둥질해도 본질적인 종속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전술한 천황제와 같은 형식의 문제였다. 그런고로, 패전 직후 도쿄를 무대로 젊은 자매가 자신들이 사는 집을 미군 상대의 위안소로 하여 살아가는 <퇴폐자매>의 영화화가 실현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애석하다. 시마다 마사히코의 원작을 아라이 하루히코 등이 각색한 그 각본에는 “일본은 미국에 점령당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미국인의 몸을 점령해 주겠어”라는 대사가 포함돼 있었다. 2) 지금 와서 새삼 생각하는 것은, ‘기타큐슈 사가’뿐만 아니라 아오야마가 남긴 모든 일들이 열린 채로 있는 거대한 사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뒤에 남은 우리는 끝내 완결되지 않고 중단되어 버린 그것들을 양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거기서 다뤄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라도 상관없이 자신의 피에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이 사가의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필자 - 후지이 진시: 일본의 영화평론가이며, 현재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입문: 현대 할리우드 영화 강의』(2008), 『되살아나는 소마이 신지』(2011), 『모리사키 아즈마 당 선언!』(2013) 등에 편저자로 관여했으며 『이와나미영화의 1억개의 프레임』(2012), 『에드워드 양 재고/재견』(2017),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2017),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2022) 등에 필자로 참여했다. 번역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박진희 *** 1) 아오야마 신지, 『나의 영화를 발견했다』(われ映画を発見せり), 세이도샤, 2001, 142쪽. 2) <퇴폐자매>의 시나리오는 《영화예술》 480호(2022년)에 실려있다(96-121쪽). (원문) 青山真治、未完のサーガ 藤井仁子 常に多くの理解者に囲まれ、早くから国内外で高い評価を獲得し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青山真治は不遇の作家だった。新作が発表されるたびに少なくないレビューが書かれはしたが、まとまった作家論となると決定的なものは今も存在しない。彼自身が古今東西の映画、音楽、文学に精通した鋭敏な批評家であったために、青山真治を論じることは、批評家にとっては対象と匹敵するだけの知性と感性を求められる厄介な挑戦だったのである。青山はまた小説家、舞台の演出家としても成功をおさめ、音楽家としての活動もたんなる趣味として片づけられるようなものではなかった。そうした多才さが、青山の仕事の全貌をいっそう見えづらくした面もあろう。かくいう私も、青山といつでも連絡がとれる距離にいながらとうとう青山論を書かなかった怠惰な映画批評家の一人であり、あまりにも早すぎる彼の死を前に、忸怩たる思いを拭い去ることができない。 青山は黒沢清、万田邦敏、塩田明彦といった現代日本映画の名だたる作家たちと同じ立教大学の出身だったが、世代的にいちばん下だった青山は、早くから学生映画の世界で評判をとっていた「立教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先輩たちとはいささか異なる経路をたどって映画界に参入することになる。バブル経済の崩壊後にあたる1990年代の日本映画は産業としては大いに低迷し、新人監督がメジャー・スタジオで仕事を得る道はもはや完全に閉ざされていた。北野武のような反伝統的な作家が映画界の外から突然出現することができたのは、そうした混乱に乗じてのことにすぎない。この混迷の時代に新しく登場して盛んになったのが、OV(オリジナル・ビデオ)と呼ばれる初めからレンタル・ビデオ用に量産された低予算映画であり、また、市場拡大のためにオリジナル・コンテンツを必要としはじめていたBS(衛星放送)であった。そして青山は、まさにOVの世界で初めて監督を経験した後、開局間もない有料BS放送局WOWOWで『Helpless』(1996)を撮り、本格的なデビューを飾ったのである。このようなかたちで開始された青山の歩みは、映画の定義がますますあいまいになっていくなかで、映画とは何かをそのつど問いなおすものにならざるをえなかった。 『Helpless』は、現場に結集した人材の点でも内容の点でも、その後の青山作品を規定する決定的な第一歩であった。まず、当時はWOWOWに所属していたプロデューサーの仙頭武則。『Helpless』は仙頭が立ちあげたプロジェクト、「J・MOVIE・WARS」の一本として製作されたが、これは毎年、比較的低予算の映画を4、5本まとめて製作し、WOWOWでのプレミア放映後に劇場公開するというもので、年を追うごとに新人監督に積極的にデビューの場を提供するようになっていった。数本を束ねての製作は損益の相殺を容易にするもので、スタジオ・システムなき時代にそれに代わるシステムを構築しようと意識していた点に仙頭の非凡さがあった。もう一つ、仙頭が日本映画のプロデューサーとして先駆的だったのは、早くから海外進出を視野に入れていたことだ。河瀬直美の『萌の朱雀』(1997)がカンヌ国際映画祭で受賞したのはそのもっとも目立った成果だった。青山が仙頭のプロデュースした『EUREKA』(2000)でカンヌの国際批評家連盟賞とエキュメニック賞を受賞するなど、フランスを中心に世界的な名声を得ていくことになるのは、この仙頭の戦略によるところが大きかったといえる。 青山にとって仙頭と並んで決定的だったのは、撮影の田村正毅(のちに改名してたむらまさき)との出逢いである。田村は『三里塚』シリーズで知られる先鋭的な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製作集団、小川プロダクションの出身で、劇映画に進出してからも、型破りな長回しで世間の度肝を抜いた相米慎二の『ションベン・ライダー』(1983)などで特異な個性を発揮していた。その特徴としては、キャメラの前で生起しつつある出来事に対する異常なまでの感応力の高さと、生きた空間を捉えるキャメラの視線の徹底的な非人称性を挙げることができる。『Helpless』の冒頭で北九州の街並みを真上から捉え、やがて危うい振り子運動を始める空撮の、何者の視点にも決して還元することのできないマイケル・スノウの構造映画さえ思わせるキャメラワークを見れば、そのことはあきらかだろう。青山と田村はその後も『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2007)まで長くコンビを組むことになるが、その関係が一貫して馴れあいからはほど遠い、きわめて緊張に富むものだった点に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シネマスコープの『EUREKA』で人間を圧倒する雄大な環境のなかに人物を放ち、その生態を時間をかけて追うという方向性を極めた後、『月の砂漠』(2001)ではすでに滅びかけていたスタンダード・サイズに空間を意図的に限定し、『レイクサイド マーダーケース』(2005)ではマルチキャメラを採用したばかりか、たむらをあえてセカンドに回したのである。たむらとの訣別後に撮られた『東京公園』(2011)と最後の監督作『空に住む』(2020)に顕著な俳優たちの演技アンサンブルへの関心の移動は、断じてスタイル的な後退などではなく、こうした絶えざる自己革新の末に初めて獲得されたもの、複雑さを極めた者だけが到達することのできる単純さの境地であった。青山はダニエル・シュミットが日本で撮った傑作『書かれた顔』(The Written Face、1995)で助監督をつとめた経験を持つが、このとき間近で観察したシュミットと撮影監督レナート・ベルタとの関係性から、たむらとの共同作業に通ずる何かを学びとったように思えてならない。ちなみに、『EUREKA』以降のほぼすべての青山作品で録音を担当している菊池信之は、たむらと同様、小川プロの出身である。人を自殺させるウイルスの蔓延を音楽によって癒すSF『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2005)にあきらかなように、青山作品にとって音響はしばしば視覚的な映像と拮抗するほど重要なものだったが、それも音の空間性を重視する菊池の貢献あってのことだっただろう。 先述したように、『Helpless』は内容の点でも青山にとっては決定的だった。この作品は、のちに撮られる『EUREKA』、『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とともに「北九州サーガ」を構成することになる。個々の作品の枠を超えて共通するキャラクターが行きかい、全体として大河のような巨大な物語のうねりをかたちづくるサーガの形式は、近代小説史にあってはフォークナーによるものが広く知られているが、青山への直接の影響源となったのは、そのフォークナーの影響を受けた中上健次である(浅野忠信演じる主人公の役名、健次は彼に由来する)。古代につながる神話的な土地、紀州に生を享けた中上は、自らが被差別部落の出身である事実と向きあい、その場所を「路地」と名づけて活況から消滅後までをサーガとして描きつづけた。青山にとって中上の影響がいかに絶大であったかは『路地へ 中上健次が残したフィルム』(2000)を見ればあきらかだろうが、青山は中上にとっての紀州をただたんに自分の生まれ故郷である北九州に置き換えたわけではない。『路地へ』でやはり紀州生まれの映画作家、井土紀州が中上のテクストを朗読する際の誇張された紀州訛りが特徴的であったように、北九州弁のほとんど音楽的な魅力を再発見することにつながった点が青山にとっては重要だった。九州以外の者には日本人観客でもそのすべてを聴きと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ものの、北九州弁の粗野と純情を兼ね備えたような独特な調子は、聴くほどに「日本語」という統合された概念を不確かなものへと変えていく。こうして、海を挟んで朝鮮半島にも面する北九州の土地は、多様な人と言葉がポリフォニックに交差する、多義性の空間として再定義されることとなった。そして、『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でもっとも深く探究されたこの性格こそは、中上が「路地」という虚構に真に期待していたものでもあったのである。 青山はまた中上譲りの深い政治性、ことに天皇制や国家といった大文字の政治への強い関心において、同時代の作家よりも大島渚のような作家とはるかに近い場所にいた。『すでに老いた彼女のすべてについては語らぬために』(2001)には、そうした青山の政治性がもっとも直接的なかたちで表出されている。そもそも『Helpless』では、男たちをさいなむ父の不在という状況が昭和天皇の死と重ねられていた。殺すべき父はもはやいなく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事実が、男たちを寄る辺のない(helpless)孤児へと変貌させたのである。このように、青山の政治面での独創性は、天皇制や国家権力というものを、自らの肉体を否定しようもなく流れる血の問題として考えた点にあった(戦前の国家イデオロギーにおいて日本国民は天皇の赤子と位置づけられていた)。その後の青山の関心が、父殺しから女性的なものの探究、母性による骨がらみの呪縛へと移っていったことは、この文脈において捉える必要がある。『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で真に恐ろしいのは、どれほど子があがいてもいっさいを微笑みとともに受けとめてしまう母の「愛」にほかならない。あらゆる抵抗が母性によってすべて骨抜きにされてしまう蟻地獄のような国、日本――絶望的に思える一方で、その底なしの包容力に希望を探りあてるしかないという認識に立ったところで「北九州サーガ」は閉じられるのだ。 このように考えることで、青山によるアメリカ文化への傾倒ぶりも、彼自身を流れる血の問題であったとわかるだろう。『男性・女性』(Masculin, féminin、1966)のゴダールは、当時のパリの若者たちを「マルクスとコカ・コーラの子供たち」と呼んだが、その伝に倣えば、青山は自分に流れる血の半分がコカ・コーラでできているという事実から生涯眼をそむけることがなかった。だからこそ、自分と同じようにアメリカの映画と音楽と文学で育ちながら、現実の国としてのアメリカには幻滅するしかなかったヴィム・ヴェンダースのことを、「その人を論じることが自分について語ることに等しい」ほど重要な同志と感じていたのである 。青山の見るところ、戦後日本にとってのアメリカは、どれほどそこから独立しようともがいても本質的な従属関係からは脱け出せないという意味で、先述した天皇制と同型の問題であった。それゆえに、敗戦直後の東京を舞台に若い姉妹が自宅を米兵相手の慰安所にして生きぬく『退廃姉妹』の映画化が実現しなかったことが惜しまれてならないのだ。島田雅彦の原作を荒井晴彦らが脚色したその脚本には、「日本はアメリカに占領されたけど、これからはあたしたちがアメリカ人の体を占領してやるのよ」という台詞が含まれていた 。 今、あらためて思うのは、「北九州サーガ」のみならず、青山の遺したすべての仕事が開かれた巨大なサーガをな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それがついに完結することなく中断されてしまったことを、後に残されたわれわれは糧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そこで扱われている事柄がいくらかでも自分自身の血に流れていると感じる者なら誰一人、このサーガの登場人物である事実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
이번 <영화천국>이 주목하는 영화는 이해영 감독의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다. 2015년 6월 18일 개봉한 이 작품은 ‘1930년대’ ‘소녀’ ‘미스터리’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베일을 벗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공포영화의 정석을 기대했던 관객의 예상과는 꽤나 달랐다. 낯익은 상징들로부터 출발한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예상을 훌쩍 넘어서버렸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일조했다는 평을 받으며 웰메이드 미스터리의 탄생을 알렸다. 익숙하지만 생경한, 비밀스럽고 강렬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세계에 대해 이해영 감독과 김성욱 평론가가 긴 이야기를 나눴다. 일시: 2015년 6월 29일(수)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기록 및 정리: 민병현 전략기획팀 min@koreafilm.or.kr 사진: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성욱(이하 ‘김’) : 개인적으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잘 보는 편인데, 공포영화는 안보는 편이다. 군 시절 의무대 행정기록병으로 근무했는데, 당시 시신을 많이 봐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고(웃음), 이후 공포영화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하 ‘경성학교’)은 보통 공포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사실 감독 본인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모험적인 시도이기도 했다. 우선, 두 편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 > < 페스티발 >)이 모두 동시대적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역사극이다. 그리고 전작들은 ‘장르적 컨벤션’이 익숙한 영화가 아니었지만 <경성학교>는 장르가 명확한 영화다. 먼저 이렇게 <경성학교>의 시대적, 장르적 설정을 한 계기를 묻고 싶다. 이해영 (이하 ‘이’) : 일단 < 경성학교 >는 결과적으로 공포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사실 시나리오 작가 시절부터 전작 두 편을 연출할 때까지, 장르 컨벤션 자체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거친 적이 없다. 이거야말로 창작자로서 성실하지 못한 거구나, 반성이 들었다. 방법을 달리해야 영화를 더 오래, 더 내공 있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장르라는 것을 직면하자. <경성학교>의 시작은 그랬다. 본격적인 호러영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장르가 조금씩 달라지고 다른 장르들이 더해졌다. 결국 장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장르를 비틀고 뒤트는 복합장르물로 탄생한 셈이다. 그러나 이 장르적이면서도 탈장르적인 결과물이 장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영화 속에 반영되어 있다고 믿는다. 1930년대라는 시대는 기획 단계에서 매우 중요했다. ‘여자기숙학교, 미스터리한 일들’만으로는 기획 자체가 규정되지 않으니까. 심지어 ‘여고괴담’이라는 거대한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찾기조차 어려우니까. 이 모호한 설정은, 1930년대라는 시대 위에 두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영화로서의 틀을 갖출 수 있었다. 지금이야 < 암살 >도 있고 < 아가씨 >도 있지만, 이전까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편수도 적었고, 성공한 적도 없었다.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섦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오히려 기존 영화들과 차별되는, 새로운 색깔을 보여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1930년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을 움직인 직접적인 도화선이기도 했다. 김 : < 경성학교 >와 관련해서, 예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두 편의 추천작을 생각하게 됐다. 그 하나가 < 이블 데드 >(샘 레이미, 1981)이고, 다른 하나가 < 세일러복과 기관총 >(소마이 신지, 1981)이다. <이블 데드>는 호러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잘 만든 솔직한 호러일까, 라는 궁금증에 선택했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호러가 자신에게는 미지의 장르라 말했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소녀가 주인공인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면서 선택했다고 했는데(이: 맞다. 그때 <경성학교> 시놉시스를 쓰는 중이었다.), 교복 외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어 보이지만(웃음), 후반부의 복수를 감행하는 그러한 쾌감의 순간이랄까, 이런 정서는 약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 < 세일러복과 기관총 >은 기관총을 난사하는 소녀가 마침내 느끼게 되는 쾌감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실제로 ‘쾌감’이라는 대사도 결코 잊히지 않는 방식으로 묘사되고. < 경성학교 >는 그와 정반대여야만 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무게감과, 생체실험이라는 다소 예민한 소재를 다룬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관객에게 통쾌한 복수극을 경험하게 하면 안 되고, 주인공 소녀 ‘주란’ 스스로도 후련하게 해소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란은 끔찍한 실험의 피해자고, 그녀가 벌이는 일련의 사건은 비극적인 폭주여야 했다. 결국 죽음으로 끝날 이야기였다. 금욕적이랄까. 폭주하는 액션을 연출하면서도 절제에 대한 강박이 많았다. 김 : 공포영화의 공포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어떤 끔찍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 경성학교 > 역시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바로 ‘물’이다. 물속에 잠긴 소녀들, 수족관에 물이 차오르는 장면 등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공포의 이미지는 금기를 넘어서게 할 정도로 강력하고, 이 이미지가 이야기에 아직 소환되지 못하고 급작스러운 직접성과 충격적인 진실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투영되는데, 이 영화에서 물에 잠긴 소녀들의 이미지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4.16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 본격적인 호러영화를 목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표성을 띠는 공포 장면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지는 않았다. 물론 관객이 무서워하거나 놀라기를 바라며 자극적인 장면들을 장치해놓기는 했지만, 영화는 결국 ‘소녀적’이라는 인상으로 남기를 바랐다. ‘물’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동원된 대표적 수단이었다. 영화에서 물은 여러 의미를 갖는데, 때로는 몽환적인 정서를 담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미스터리의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주란과 연덕 두 소녀의 내밀한 우정을 묘사할 때는 성적 긴장감을 풍성하게 표현해주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말씀하신 대로 수장된 소녀들의 끔찍한 이미지로 귀결된다. 영화 속 ‘물’의 상징과 정서들을 따르다보면 불가피하게 4.16의 이미지가 연상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4월 16일 당시 나는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프리프러덕션 단계, 그러니까 촬영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충격적인 뉴스였다. 막막했다. 그 위로 영화 속 설정이 자꾸만 오버랩되어 악몽에 시달렸다.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과도한 사회적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만큼은 막아야 했다. 일차적으로는 물 설정 자체를 빼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워낙 대수술이었고 물리적으로 불가능이었다. 대안이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4.16에 대한 상징으로 손쉽게 동시대성을 확보하려는 얄팍한 태도를 절대로 갖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에서 4.16을 읽어낸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김 : 그게 공포영화의 강점이면서 약점이다. 이미지가 불분명하기에 쉽게 장르 뒤에 숨어버리게 된다. 예전에 구로사와 기요시가 “공포영화는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다. 어떤 장르와 섞여도 공포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르 자체가 변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공포영화에 코미디가 섞이면 코미디 영화가 되고, 사회문제가 얽히면 사회성이 짙은 영화가 된다는 것이다. < 경성학교 >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공포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거기서 얻지 못하는 불만족이 컸던 것 같다. 다른 장르 안에 공포가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경성학교>를 본 관객과 연출한 감독의 이질감이기도 하고, 큰 틀에서 공포영화를 장르적으로 만들어갈 때 부딪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이 : 동의한다. 전작들은 철저히 취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는 많은 사회적 책임이 따르더라. 고심 끝에 장르를 고민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장르로 딱 떨어지는 영화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기대하고 오는 장르와 보면서 느끼는 장르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만들면서도, 마케팅을 하면서도 ‘공포’라는 장르를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김성욱 선생도 인터뷰 초반부터 공포장르를 언급하셨고, 그 안에서 이 영화를 읽어내고 계시다. 이제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숙명이라고 여기고 있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의 초반부를 두고 ‘업계 표준’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전학 온 아이, 아이들의 괴롭힘,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 익숙한 방식의 전개다. 앞부분은 의도적으로 과한 절제를 했다. 엄격하게 억압되어 있던 극의 분위기가 중반 이후 점차 사건의 본격화를 맞으며 깨지고, 비밀이 밝혀지고, 억압감이 해소되며 리듬감을 얻고, 빠른 호흡으로 마무리되는 방식으로 전체를 설계했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초반부의 갑갑함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상대적 만족도가 훨씬 높았던 것도 약간 의외의 지점이었고. 결과적으로 감독이 바란 영화와 관객이 경험한 영화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던 셈이다. 굉장히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김 : 극중 시즈코가 과거의 시즈코( 고원희 )와 현재의 시즈코( 박보영 )로 둘이다. 그리하여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반복된다. 정체성의 혼란은 둘의 반복에서, 혹은 소녀에서 몬스터로 변하는 설정에서 계속 제기된다. 불분명한 부분은 과거의 시즈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연덕이 편지를 자신에게 쓰라며 ‘네가 쓰고 보는 것도 너니까, 편지나 일기나 똑같아’라 말한다. 영화에서 일기는 중요한 설정이다. 일기 혹은 편지의 설정은 어디에서 근원했나. 이 : 애초 영화는 총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챕터 구분의 기준은 일기장이었다. 과거 시즈코에 대한 조각난 기억의 기록, 일기에 적힌 글귀 등이 각 챕터를 리드했다. 연덕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여는 프롤로그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주란 중심의 명쾌한 이야기로 정리하자는 취지로 챕터와 프롤로그 모두를 없애면서 영화 속에 남아 있는 일기라는 설정은 끝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모호한 여지를 둔 채로 존재하게 됐다. 원래 의도와 달라지면서 근거나 설명이 축소된 게 제일 큰 차이일 거다. 그럼에도 일기는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두 소녀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으로서도 존재하고, 주란이 연덕의 비밀을 풀어내는 결정적인 열쇠 역할로서도 기여하고 있다. 두 소녀의 존재를 중첩시켜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1930년대 소녀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꼭 담고 싶었던 화두였다. 타고난 태생적 정체성을 지우도록 강요받던 시절의 공기가 조금이라도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달까. 김 : 퀴어 코드보다는 감독의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버려진 아이들이다. 심지어 교장이 후반부에 내뱉는 말, “인정받고 싶었다”라는 말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느끼게 한다. 이 : 주란은 끝내 연덕에게도 버려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정 혹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더 있었을 거다. 세상에서 버려진, 그 누구에게도 손을 뻗을 수 없는 소녀가 마지막으로 찾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너만 있으면 돼”라는, 집착에 가까운 우정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주변 인물인 유카( 공예지 )와 과거의 시즈코의 존재 역시 주란이 연덕을 더욱 원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만약 내가 욕심을 좀 더 냈다면, 지금보다 훨씬 감정에 치중한 ‘소녀드라마’에 공을 들였을 거다. 실제로 완고가 되기 전의 시나리오는 소녀들의 질투와 우정, 사랑 등에 대한 드라마 비중이 높았었다. 그러나 대중성을 염두한 수정 작업이 거듭되며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현재의 수준이 됐다. 드라마가 단출해졌으므로 인물마다 명확한 키워드를 부여했다. 예컨대 주란은 나약함, 버려짐, 의존적, 그리고 맹목적인 애정에의 갈구…. 연덕은 조각난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그래서 끝내 마음을 열지 못 하는, 비밀을 가진…. 유카는 명확하게, 질투. 교장 캐릭터 같은 경우는, 중반을 넘어서며 그녀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왜?’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입장을 총정리하고 압축한 단 하나의 단어가 필요했다. 1930년대 조선의 신여성, 지식인이었던 그녀의 유일한 욕망. 그녀를 끝까지 질주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이유. 결국 내가 내린 답은 ‘인정욕’이었다. 이걸 말씀대로 ‘사랑에의 갈구’라고 읽는다면 결국 교장부터 주란, 연덕, 그리고 모든 소녀까지 공통된 정서로 동일한 맥락 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식의 해석이라면, 창작자로서 만족스러운 일이다. 김 : 교장 캐릭터가 독특했던 것은 아마도 < 경성학교 >가 처음으로 악인이 등장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로 선과 악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가지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 전작들이다. 이 영화는 장르적 외피를 갖게 되면서 악인이 등장한다. 극중 박보영 이 ‘도쿄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원 씨가 ‘이끼나사이(가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특별한 캐릭터가 부각된다. 이 : 교장의 비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교장이 등장하는 신이 많지 않다. 편집 과정에서 교장의 비중이 높아지니 엄지원 의 존재감이 강해서 전체 균형이 깨지더라.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라 존재감이 너무 없어도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은 배우 엄지원의 역할이 컸다. 엄지원은 사전 준비가 무척 철저한데, 세 줄짜리 대사를 36가지 정도의 버전으로 준비해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현장에서는 본인의 준비 여부와 무관하게 감독과 대화를 하며 협의하는 것을 즐긴다. 캐릭터 자체는 등장할 때마다 인자한 얼굴 너머 뭔가 있을 것만 같은 긴장감을 주는 인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자한 가면 그 자체에도 매번 진심이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란과 눈을 마주치고 신뢰를 주는 미소를 지을 때에도, 치유를 위한 처방을 할 때에도, 혹은 소녀들을 감금하고 숨통을 끊어놓을 때조차. 모든 순간이 진심인 여자였으면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그때마다 진심인 사람, 얼마나 섬뜩한가. 김 : 많은 이가 < 경성학교 >를 브라이언 드 팔마의 < 캐리 >(1976)와 비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노의 악령>(브라이언 드 팔마, 1978)과 가깝다고 느꼈다. 물론 <캐리>의 전반적인 설정, 이를테면 사춘기 소녀의 성장, 초자연적인 능력, 그것으로 인한 파멸의 이야기가 유사하긴 하다. 하지만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분노의 악령>에 나오는 차일드리스(존 카사베츠)가 <경성학교>의 교장과 가깝다. 아이를 괴물로 키우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제하여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 하는 인물이 바로 차일드리스다. <경성학교>의 교장 역시 소녀들의 초자연적 에너지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사용하려 한다. 두 영화 모두 괴물성을 통제하려는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괴물이 된 소녀들. 하지만 두 영화의 차별점은 <경성학교>의 후반부에서 소녀의 초자연적 에너지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장르적 변화가 도리어 <경성학교>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만큼 여러 레퍼런스가 언급됐다. 그중에서도 <분노의 악령>이 어쩌면 언급된 영화 중에서 유사점을 좀 더 많이 발견할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 경성학교 >는 중후반부에 이르러 펼쳐지는 다른 색깔들로 그 모든 영화와 차별점을 갖는다.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 ‘업계 표준’이라고 부를 만큼 익숙한 것들의 조합으로 진행되지만 마침내 끝내 새로운 이야기인. 다만, 중반 이후 장르의 변이가 발생하고 종국에는 복합장르물로 끝맺음된다는 정보가 관객에게 미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걱정이었다. 대부분 ‘업계 표준’처럼 관성대로 진행될 관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 19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에서는 괴물이 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 엑소시스트 >(윌리엄 프리드킨, 1973), < 오멘 >(리처드 도너, 1976)에서 < 캐리 >와 <분노의 악령>까지. 1970년대 전쟁, 살인, 암살을 지켜보았던 아이들의 분노의 에너지가 이런 식의 ‘몬스터가 된 아이들’로 표현된다고 생각하는데, <분노의 악령>은 그런 괴물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시도에 반발하는 이야기다. < 경성학교 >도 이와 유사하게 봤다. <경성학교>는 ‘이상한 방식으로 4.16을 경험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아이들이 받아들일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했다. 교장이 주란에게 훈련을 시킨다며 헤드폰을 씌우고, 백색의 동그란 스크린을 보게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분노의 악령>에서 아이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트라우마를 통해 계발하는 장면처럼, 이 장면은 백색의 스크린과 이상한 소리들로 표상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 : 1930년대를 기준으로 생체실험을 할 때 어떤 방식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약물이나 차, 혹은 향 같은 전통적인 것과 차별되는, 이질적인 설정을 하나쯤 넣고 싶었다. 교장이 씌워준 헤드폰에서는 신호음 같은 삐- 소리가 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안에는 소녀들의 절규가 기괴하게 섞여 있다. 이게 반복적으로 주입되면 어떤 소녀는 이명과 함께 부작용을 일으켜 발작으로 이어진다. 주란도 이명과 몇 가지 부작용을 얻게 되기는 하지만 찰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개념이었다. 말하자면 뇌파를 자극한다, 같은 거다. 이 신에서의 사운드 디자인은 몇 가지 버전을 반복 시도하며 공을 들였다. 관객들도 어느 순간 넋을 놓고 ‘알 수 없는 먹먹함’에 압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 마지막에 주란과 연덕이 축음기를 고치고 함께 음악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 기본적으로 여자 보컬이길 바랐다. 꼭 1930년대 음악이 아니어도, 다소 현대적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고, 구체적인 레퍼런스도 정해놓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현하려다보니 문제는 ‘언어’였다. 가사가 한국어여도, 일본어여도, 영어, 혹은 제3국 언어여도 정확하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고민 끝에 음악을 들려주기보다 특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래서 두 소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저수지로 함께 달려가며 즐거움이 충만했던 그때 흐르던 음악을 삽입했다. 화면이 암전되는 순간 숲을 달리던 두 소녀의 밝은 웃음이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이 : < 경성학교 >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차기작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고민이 많이 된다.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이럴수록 더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정말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놓지 못하고 있던 것들, 이를테면 우아함에 대한 강박, 훌륭한 감독 코스프레(웃음) 같은 껍데기. 이번에도 그런 것들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나를 부수고 싶다. 작정하고 치열해질 거다. 괴물 같은 영화를 만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