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
- 감독
- 박배일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김의선, 도금연, 임순분, 강형구, 강현욱, 고춘자, 권정술, 김태환, 노옥, 도경임, 도수덕, 문영희, 박규란, 성영락, 여상돌, 유선님, 이상자, 이상희, 이석주, 이채구, 이호귀, 장정순, 정수태, 정조자, 정진석, 차옥자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김천/성주’ 영화 < 소성리 >가 상영되는 극장의 불이 꺼지면, 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통해 가장 먼저 스크린에 맺히는 상이 바로 위의 문구다. 5초 동안 유지되는 그 화면을 보고 있으면 두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하나의 마침표를 찍은 감흥보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행동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책임감’이란 말속에 숨어 있는 찐득한 피로감을 떨치기 위한 안간힘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미디어를 활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카메라를 다루는 건 기본이고 제작한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건 옵션, 생방송으로 자신의 현재를 손쉽게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각 지역에 미디어 센터와 영상위원회가 생겨 마음만 먹으면 미디어를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을 지키는 미디어 활동가와 영화감독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디어로 행동하라!’(이하 미행)는 더 많은 시민들이 현장과 결합할 수 있도록 제작 경험을 나누고,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세상에 알릴지 고민하며, 그러면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모이게 되었다. 2014년 10월 9일, 삼척의 작은 마을에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미행팀은 투표 방해를 감시하고, 삼척 주민들의 속마음을 듣고, 주민투표의 의미를 담기 위해 삼척으로 향했다. 다음 해 6월 11일은 밀양 765kV송전탑을 건설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행정대집행을 강행한 지 1년이 지난날이었다. 미행팀은 지옥 같았던 행정대집행을 기억하기 위해 괴물 같이 솟아 있는 송전탑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할매들의 주름을 담고 송전탑을 뽑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도리어 큰 힘을 얻고 돌아왔다. 미행이 세 번째로 ‘in’한 곳은 충북 지역이었다. 충북에는 노조파괴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유성기업’을 비롯해 ‘보쉬전장’,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청주시노인전문병원’, ‘PLA’ 등이 있었고,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이어진 회사의 탄압으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시간을 공유하며 함께 분노했다. 그리고 올해, 2017년 평화를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불법적으로 배치된 사드를 온몸으로 막으며 평화의 본질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성주와 김천으로 향했다. 미행 미행은 4박 5일 동안 동거동락하며 활동한다.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모여 현장의 상황을 주민과 활동가에게 듣고, 자신이 관심 있는 미디어를 선택한다. 영상이나 소리(음악 및 라디오), 잡지 중 하나의 미디어를 선택한 사람들은 각자 주제를 정한 후 함께 나눈다. 서먹하지만 의지 충만하고 웃음 가득한 하루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다. 낮 동안 촬영과 녹음을 진행하고, 밤에는 작업실에 돌아와 모니터를 하며 녹취를 푼다. 다음 날도 같은 일정이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의 입가에서 점점 웃음기가 빠지고, 한숨이 늘어난다는 것뿐. 날이 갈수록 잠자리가 마련된 숙소는 무용지물이 된다. 촬영과 녹음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 몇몇은 작업실에 남아 편집을 시작하고 몇몇은 보충 녹음 및 촬영을 하러 현장으로 향한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어떤 분노와 짜증이 뿜어져 나오는 건, 부디 나의 착각이길 바랄 뿐이다. 발표회 전날 밤 작업실은 마치 전쟁터와 같다. 마지막 내부 시사회를 한숨으로 마치고 나면 여기저기서 싫은 소리가 커지고, 잠을 못 이긴 이들이 작업실 구석을 메운다. 겨우 잠을 이겨낸 이들은 다음날 발표회에서 발표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서로를 부축해가며 작업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3년, 네 번에 걸친 현장의 이야기가 영상 19편, 라디오 9편, 음악 9곡, 잡지 2권에 담겨있다. 어쩌면 미행을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는 큰 원동력 중 하나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모셔놓고 결과물을 나누는 발표회 때 느끼는 충만함 때문일 것이다. 한 미디어 활동가는 발표회가 끝나고 내게 다가와 속된 말로 “현장 뽕을 맞는다는 게 이런 거군요~”라고 속삭이며 눈물을 훔쳤다. 나 역시 발표회 때마다 ‘이런 순간을 위해서 영화 만들고 활동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기쁨을 만끽한다. 현장에서 하는 발표회는 주민들이 지나온 시간들을 함께 살아내는 것이고, 낯설고 어색했던 이곳이 나의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삼척에선 주민투표의 결과를 기다리며, 밀양에서는 송전탑을 뒤로하고 잔치를 벌이며, 청주에서는 작은 극장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성주에서는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마을회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미행의 결과물을 나눴다. 발표회는 미디어가 연결해주는 연대의 힘을 서로서로 주고받는 빛나는 순간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성주와 김천에서 5일간의 미행을 마치고 내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있었다. 올해 초 미행을 기획할 단계부터 미행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 힘을 연장해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중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미행의 강점이자 약점은 느슨한 네트워크 형식의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함께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을 배급 유통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형태이다. 그래서 매해 평가 회의에서 우리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했던 한계가 지적되었다. 마침 이전에 미행이 찾았던 지역의 이야기는 다른 콘텐츠로 대신할 수 있었지만, 성주의 경우 지금 당장 해야 할 이야기들이 충분히 외연화 되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에 완결성이 있는 다큐멘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심 영화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의 미행을 실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3개월간의 짧은 제작 기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힘겹고 버거웠던 제작기는 이 지면에서 삼간다. 아무튼 영화 <소성리>는 완성되었고 다행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소성리>를 고리로 한 미행의 출발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불법적 사드 배치에 대한 사과와 무용지물인 사드 철회를 요구’하는 연명을 받아 255인의 영화인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영화제 기간 중 1인 시위를 통해 시민들에게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극장에서는 매회 상영이 끝날 때마다 관객과 함께 피켓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소성리 주민들 역시 영화제를 찾아 ‘사드 뽑고 평화 심자’는 퍼포먼스를 레드카펫에서 우아하게 펼쳤다. 앞으로 영화 < 소성리 >를 매개로 극장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올해 미행을 준비하는 동안 정권이 교체되었고,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지난 9월 7일 소성리에 전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드가 배치되었고, 그 참혹한 현장을 지켜본 조영삼 씨가 사드 철회의 마중물이 되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언론 보도는 거의 없었다. 우리 곁에는 여전히 국가 폭력으로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크게 닿지 않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국가 폭력에 저항하고, 우리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결과적으로 세상이 조금씩 변할 수 있게끔 역할을 해내고 있는 현장이 있는 한 미행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미행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이 미행의 역할을 잘 알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의 부족으로 다음을 이야기는 게 쉽지 않다. 지난 3년 동안 몇몇 활동가들이 힘겨운 여건을 딛고 미행을 이끌어왔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등에 업고 개인이 희생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우리들은 미디어로 행동하는 가치를 함께 이야기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우리가 제작하는 영화와 음악으로, 영상과 팟캐스트로, 수많은 미디어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우리 함께 미디어로 행동하자! *미디어로 행동하라! https://www.facebook.com/mihaeng/?ref=bookmarks *영화인 성명서 http://ozifilm.tistory.com/333 *소성리 주민들 부산에서 평화를 심다 https://vimeo.com/239768367 *소성리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RktoH8Jc1HA (소성리 뮤직비디오는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의 결과물인 영화 < 소성리 >와 음반 <새 민중음악 선곡집 - 소성리의 노래들>의 콜라보 작업이다.)
여느 시골의 한적한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산이 있고 밭이 있고 쪼그리고 앉아 모종을 심는 노인들과 다른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는 그들의 주름진 손이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모습으로 살아내기까지 그들이 지나온 시절의 켜켜이 쌓인 이야기가 그 모습 위로 조곤조곤 들려온다. 기구하고 곡절 많은 각각의 사연들은 그들 개인의 과거이자, 이곳 소성리의 역사다. 그들은 여성이고 농민이다. 영화는 찬찬히 둘러보고 진중하게 들으며 시작한다. 지금 ‘국가’의 이름으로 그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방적인 힘이 무엇을 망가뜨리고 희생시키고 있는지를 우선 보라는 듯이. 노년의 여성 농민들은 경찰 떼거리와 장갑차와 헬기 소리와 극우 단체들의 악다구니와 일방적인 여론에 포위된 소성리의 참혹한 운명에 대해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만다. 6.25 때와 같아. 우리는 겪었으니까 알제. 소성리의 역사 저 밑바닥에 묻힌 채 말없이 공유되던 불길하고 두려운 전쟁의 트라우마가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빨갱이’로 지목된 수많은 사람들이 숨고 잡히고 처참하게 살해되던 과거의 시간을 숨죽이며, 여전히 공포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은 국가의 안보에 반하는 이기적인 ‘빨갱이’ 집단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어이없고 끔찍하며 비틀린 상태로 되살아나 소성리의 일상과 자연을 다시 뒤흔드는 저 국가, 아니 이데올로기, 아니 망령의 정체를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한국전쟁과 사드 사이, 줄곧 이곳을 떠나지 않고 어떻게든 생존해온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시간들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것이 박배일 의 < 소성리 >가 품고 있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영화가 그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그가 ‘밀양’에서 했던 방식과는 좀 차이가 있다. 그의 카메라는 ‘할매’들의 일상 한가운데로 들어가 함께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싸우며 찍는 대상들과의 경계를 최대한 좁히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우선 다른 무언가로서 소성리의 현재를 바라보려고 하는 것 같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열정적인 농민운동가 순분은 남편을 떠나보낸 후, 자신의 주변 곳곳에 출몰하던 귀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이내 화면에도 귀기가 서리기 시작하는데 카메라는 마치 감독의 손을 벗어나 혼자 걸어가는 것처럼 적막한 산길을 정처 없이 휘젓고 나아간다. 그 움직임 위로 그녀의 음성이 드리워진다. “산, 거기 집적거리면 안 좋아. 골프장 거기 사람 많이 죽었다. 그래도 소문 하나 안 낸다, 그것들.” 사드 배치 부지로 결정된 골프장이 저 아래 보인다. 과감하게 흔들리고 요동치는 악몽 같은 움직임으로 이 산을 오른 카메라의 시선은 누구의 것일까. 또 다른 장면도 있다. 여성 농민들의 땅에 발을 붙이고, 그들의 투쟁을 지켜보다가 마을 하늘을 가로지르는 헬기를 바라보던 영화는 자신이 직접 그 헬기의 시점이 된 것처럼, 소성리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게 된다. 그 풍경 위로 한국전쟁에 대한 이들의 아픈 기억들이 하나씩 꺼내진다. 그때, 경찰의 헬기와 같은 방식으로 소성리의 창공을 유영하며 굽어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또 누구의 것이라고 해야 할까. 인물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기괴하게 활보하는 이 시선들의 영화적 자의식에 대해서라면, 박배일의 지난 궤적들을 경유해서, 혹은 최근 다큐멘터리들의 어떤 경향과 관련해서 분명 냉정하고 면밀하게 살펴볼 만한 지점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논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위의 두 시선을 통해 지금 이 지면에서 물을 수 있는 건, < 소성리 >가 싸움의 주체나 싸움의 현장에 앞서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다. 그것은 오랜 시간 그 땅이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역사적 상흔들, 그러니까 아직도 떠나지 못한 한 많은 죽음들, 사람들은 망각 속에 묻어두려 애썼으나 땅만은 생생히 기억해 왔을 순간들이다. 이 영화는 그 죽음의 기억들을 대면하지 않고 소성리의 현재를 말할 수는 없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니 일단은 아마도 영화는 이렇게 반문할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장면들 속) 카메라의 저 모호하고도 과감하며 무엇보다 인간에게 귀속되지 않는 것처럼 경험되는 시선들은 그 기억들을 다시 불러오려는 영화적 제의이자, 소성리의 싸움에 동참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영화적 시작점이 아니겠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