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
- 감독
- 김상진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김주혁, 김선아, 오재무 , 전민서, 박철민, 윤현민 , 이호연, 강승완, 송율규, 고인범, 김기호, 이선호, 강예빈, 이미도, 박지연, 김우진, 이상혁, 김기성, 백길성, 김학준, 김은희, 권철, 김홍균, 전성애, 임일규, 이명진, 이윤희, 민영, 김동석, 정지호, 김민수, 김혜화, 조지훈, 신기섭, 이석호, 양원석, 곽영재, 이정준, 안태능, 전성환, 김다래, 이규섭, 손숙, 신성록, 박준면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황순원 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문예영화이자 최하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또한 이 영화는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이자 가장 데뷔작다운 데뷔작으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봉 당시 기사에 의하면 이 영화는 “네임 밸류만을 존중하는 풍토를 박차고 단역에 이르기까지 기성 영화인들을 완전 배제” 1) 한 것에서부터 주목받았다. 또한 “처녀 연출자답지 않은 뛰어난 재능”과 “전체 연기진의 호연 가운데 그들의 개성미를 부각시킨 흑백화면의 효과” 2) 가 놀랍다는 극찬과 함께 “신인군의 의욕과 저력을 보여준 역작” 3) 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가, 2015년에 발굴되면서 소문에 값하는 영화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모더니즘 영화로서의 의미, 문예영화로서의 위상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전쟁으로 파괴된 개인의 내면을 표현한 본격 염전(厭戰)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제작 신고 단계에서 ‘염전(厭戰), 반전(反戰)이 드러나지 않게 반공영화로 제작하라’는 권고를 받고 반려된다. 이에 영화의 오프닝에 “이 영화는 전쟁을 도발한 북괴에 대한 고발이다. ……”라는 자막을 명시하고, 역시 황순원 소설 원작인 < 카인의 후예 >와 함께 다시 신고하여 수리된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 북한군은 나오지 않고 전쟁터에서 비정해져 가는 국군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내용은 그들이 제대한 이후의 정신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작에서는 전반부가 동호의 이야기로, 후반부는 현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제대한 현태를 주인공으로 하여 제대 후 그의 생활을 주로 보여주는 가운데 그의 기억을 통해 전쟁 당시 동호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전후의 풍경이 나오는 대표적인 영화는 < 오발탄 >( 유현목 , 1961)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오발탄>은 4.19 덕분에 제작될 수 있었던 행운의 걸작이다. 5.16 이후 한국 사회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영화에서 그리는 것은 점점 더 규제되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다루는 영화들이 적극적으로 제작되며 전후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그러나 한국영화계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거의 나타나지 못했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개인의 내면을 다루는 전후소설은 문예영화 전성기에도 몇 편―< 잉여인간 >, < 까치소리 > 등―만 영화화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청준 의 「병신과 머저리」를 영화화한 < 시발점 >( 김수용 , 1969)과 같은 영화에서는 한국전쟁 설정을 굳이 중일전쟁으로 치환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냉전으로 인한 분단국가로서 겪은 동족상잔의 상처를 깊이 건드리는 것이 영화의 제재 차원에서나 정치적, 산업적 측면에서나 여러 모로 부담스러운 문제였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1968년을 기점으로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가 한층 강화되며 한국영화에서 우울이나 절망을 그리는 것에 대한 규제 또한 더욱 강화된다. ‘젊은이의 절망은 적을 이롭게 할 수 있으므로 용공(容共)’이라는 논리로 이만희 감독의 < 휴일 >이 상영되지 못한 것도 1968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 미워도 다시 한 번 > < 속 팔도강산 > < 춘향 > 등의 보수적 장르물이 국산영화 흥행의 수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게오르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25시 >(앙리 베르누이, 1967)가 외국영화 흥행 1위에 오르고, 28살의 클로드 를르슈 감독에게 최연소 칸 그랑프리의 영광을 안긴 < 남과 여 >(1966) 같은 영화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영감을 던진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이후 유럽 영화를 동경하며 지속적으로 갈구되었던, 참신한 형식으로 현대인의 고뇌를 구현하는 모더니즘 영화가 엘리트 집단에 의해 시도된다. 김승옥 원작의 < 안개 >( 김수용 , 1967), 홍성원 원작의 < 막차로 온 손님들 >( 유현목 , 1967), 이어령 원작의 < 장군의 수염 >( 이성구 , 1968) 등이 그러한 영화들이다.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그러한 영화들과 동궤에 놓여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근대화 드라이브 속에서의 현대인의 피로를 그리면서 현실에 대해서는 은유나 우의로 에두르고 있다면,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한국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원인과의 관계 속에서 젊은이의 비정과 고민을 묘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과 대면하는 모더니티를 구현한다. 전쟁 중 동호의 결벽성을 혐오하여 그의 순정을 파괴함으로써 그를 자살로 몰아넣은 현태가 제대 후 극도의 자기혐오 속에서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외상의 병리를 드러낸다. 또한 돈에 집착하며 이익만을 추구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 윤구( 김순철 )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석기( 김성옥 )의 모습은 전후(戰後) 증상의 유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전후 사회의 병리를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고, 숙( 문희 )의 결연한 의지와 현태의 속죄에 의해 증상에 대한 치유의 희망이 담보되며 멜로드라마적 비학으로 봉합된다.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숙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 원작보다 더 낙관적인 결말이다. 최하원 감독의 행보로 보건대 이러한 결말에서 나타나는 건전한 윤리와 희망에의 지향은 이후 최하원 영화세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영화보다도 염전(厭戰) 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 영화가 검열을 통과하여 개봉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지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이 영화에는 참신한 면모들이 많이 들어 있다. 현태 역을 맡은 이순재 의 연기는 지금 봐도 매우 인상적이며 < 오발탄 >의 김진규 를 잇는 지적 성격배우의 계보에 놓을 만하다. 또한 감각적이면서도 고민이 드러나는 카메라워크는 흑백화면 속에서 오히려 돋보이며, 현태의 심리 묘사에서 사용되는 정묘한 몽타주는 현재의 관점으로 봐도 신선하다. 아울러 지금은 한국의 어머니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 손숙 씨가 이 영화로 데뷔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1)《경향신문》, 1968.4.13. 2)《신아일보》, 1968.4.13. 3)《대한매일》, 1968.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