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문근영] 신언니의 취향 - 은조와 개인의 만남
- 제작년도
- 2010
* < 비밀은 없다 >와 < 마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국 장르 영화에서 모성은 오랫동안 여성인물의 주요한 서사적 동기로 사용되어 왔다. 전통적으로 남성인물이 이끄는 서사에서 자원쟁탈, 권력투쟁, 우정, 가족, 직업적 소명, 공동체의 대의 등 다양한 동기가 제시되어 온 것과 대비된다. 현실에서 가부장제가 여타의 활동공간, 역할, 관계를 허용하지 않고 모성의 자리에만 여성적 가치를 할당하며 제약해온 탓일 것이다. 역으로 주류의 허구적 서사는 자식을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모성성을 강화하는 신화가 되었다. 등장인물이 서사의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행동을 할 때는 설득력 있는 그럴듯한 동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성인물에게는 모성이나 이성애 로맨스 이외의 상상력이 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잘 알다시피 그럴듯함, 핍진성, 개연성이라고 거론하는 서사적 약호들을 현실의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인과관계와 등치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핍진성은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그래서 이제는 지나치게 당연하게 여기는 장르적 관습에 의해 상당부분 정립된다. 즉 익숙한 설정은 알고 있는 정보로서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별다른 근거제시 없이도 설득력을 높인다. 하지만 핍진성은 또한 역사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어내는 요소와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고, 더 중요하게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변화시킬 수 도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것을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다. 여성인물의 주요한 서사적 동기로 모성이 아닌 완전히 다른 소재를 찾을 수 있지만, 기존의 모성서사를 구부리고 늘리고 비틀면서 스스로 균열을 내는 방법도 있다. <비밀은 없다>나 <마더>(봉준호, 2009)가 후자의 경우다. 두 영화는 자식을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한 엄마를 탐정으로 내세운 느와르 장르를 전유한다. 이 영화들은 자식을 위해 복수를 감행하는 폭력적 액션의 쾌감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모성복수극과는 다르다(< 오로라 공주 >, < 돈 크라이 마미 >, < 공정사회 > 등). 그보다는 자식을 위해 진실을 찾아 나선 탐정-엄마들이 자신이 근거해 있던 세계를 뒤집어엎을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을 대면했을 때의 윤리적 태도를 시험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일반적 탐정과 달리 그들은 피해자라고 생각되는 자식과 거리를 둘 수 없으며 그 때문에 때때로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영화들에서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그려진 격한 모성과 탐정의 진실추적의 욕망은 문자 그대로 ‘-(하이픈)’이 필요한 마찰 있는 조합이다. 두 장르적 도상의 조합은 서로를 낯설게 만들면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두 영화의 주인공인 연홍(손예진)과 엄마(김혜자) 모두 자식을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하면서 모성을 발판으로 그들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거기에는 진실에 대한 욕망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들에서 모성은 최종적 목표나 결과물이 아니라 서사의 시작점이자 욕망을 발현할 발판 정도가 된다. 여성이 강력한 욕망을 드러내고자 할 때 지배 이데올로기가 모성 내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틀 지웠던 것을 역이용한다. 한번 시동을 걸자 멈출 줄 모르는 그녀들의 폭발적인 욕망은 기반하고 있는 모성서사의 프레임을 뒤흔들어 버린다. 1970년대 활동했던 영국의 페미니스트 영화이론가 클레어 존스톤은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로라 멀비와 달리 스스로 서사에 균열을 내고 의문을 품게 만드는 진부한 도상의 사용과 여성의 집단적 판타지의 역량을 믿었다. 당시 멀비는 「시각적 쾌락과 서사영화」(1975)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주류 서사영화가 이성애 남성의 성적 응시를 통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서사적 쾌락을 만들어내는 영화구조를 비판하며 장르적 도상과 서사로부터 열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아방가르드 영화를 옹호했다. 반면 클레어 존스톤은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하는, 말하자면 관습이 굳을 대로 굳어져 사유가 제거된 이미지는 스스로 균열을 만들어 내고 의심을 품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존슨톤은 멀비와 달리 대중장르영화를 옹호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에서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것에 반대하기 위하여, 우리의 집단 판타지들은 공개되어야 한다. 여성영화는 욕망의 작용을 구체화해야 하며, 그 목적을 위해 오락영화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오락영화의 아이디어들은 정치적인 영화를 풍요롭게 해야 하며, 정치적 아이디어들은 오락영화를 풍요롭게 해야 한다. 즉 상호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대항영화로서의 여성영화」, 1973) 흥미롭게도 <그녀의 이름은 베트남>을 만든 실험영화 감독 트린 민하도 진부한 도상, 즉 스테레오타입과 관련해 유사하게 말한다. “스트레오타입은 거짓된 재현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하는 현실의 포획된 재현”(「근처에서 말하기」, 1992)이기에 시적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트레오타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해체과정, 균열, 위치바꿈, 미끄러짐, 멈춤 그 자체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러한 태도 속에서 창작자는 번역가의 위치를 자처하며 의미의 종착지를 만들지 않고 스테레오타입과 아직 말해지지 않은 실재 사이에 무언가 있음을 지시할 수 있다. <비밀은 없다>와 <마더>는 존스톤이나 트린이 말한 낡고 낡은 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럼에도 두 영화가 동일한 도착점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모성의 도상과 관련해 <비밀은 없다>가 궤도를 뚫고 이질적인 공간으로 튕겨져 나간다면, <마더>는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회귀해 심연에 재침잠하는 운동을 보여준다. <비밀은 없다>의 오프닝 씬에서 연홍은 관습적으로 장르영화가 그려온 모성의 과잉된 양상을 연기한다. 그녀는 기존 사회가 원하는 모성의 텅 빈 기표를 말 그대로 뒤집어쓴다. 연홍은 그 기표가 자신이 욕망하는 곳에 데려다줄 운반체라고 믿는다. 연홍은 유력한 지역 정치인 종찬(김주혁)의 아내로 남편을 성공시켜 영부인이 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연홍은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남편 선거를 도우며 내조를 한다. 딸 민진도 그 기표가 얼마나 텅 비어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비밀이 아니다. 민진은 너무 비밀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엄마를 가엾게 여기고 자신의 가상친구 ‘자혜’를 연홍의 어린 시절 정보를 모아 몽타주한다. 또한 어떤 비밀들은 연홍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감춰야 하는 어두운 비밀이 되고 폭력으로 변질된다. 모두가 거리낌 없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지역에서 연홍 혼자만 표준어를 사용한다. 광주출신인 그녀가 자신의 출신지를 말하지 않고 사투리를 쓰지 않는 방식으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더러운 것을 감추고 숨기는 비밀이 된다. 차이는 차별과 혐오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상대방 후보뿐 아니라 종찬의 선거운동원들도 연홍의 지역출신이 당연히 혐오해도 괜찮은 것처럼 말한다. 실상은 혐오의 낙인인 공공연한 비밀과 텅 빈 모성의 기표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연홍은 민진의 죽음 이후 달라진다. 선거가 우선인 종찬과 달리 민진을 죽인 자를 찾아내려는 연홍은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덮인 기표들을 벗어낸다. 그 자리에는 각성하는 모성이 있다. 각성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연홍의 모습은 집착과 광기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푸라기 잡듯 굿을 하고, 자신의 손등을 찔러 자해하고, 민진의 이메일 비밀번호와 노트에 적힌 암호를 풀기 위해 몇날 며칠 밤을 샌다. 그러나 모두 민진의 실종과 죽음에 눈 감으려할 때 연홍은 고립되어 유일하게 진실을 찾으려는 자다. 그녀의 광기와 집착은 오히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연홍은 남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비밀을 폭로한다. 자신의 애초의 욕망이 얼마나 스스로와 딸을 해하는 기반에 근거했는지를 연홍은 깨닫는다.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들은 기존 사회로부터 더러운 비밀이 있는 자들로 분류되어 왔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그들을 배제하고 주변화하기 위해 ‘더러운 비밀’을 폭로해 ‘추문’을 만드는 방식을 자주 사용해왔다. 연홍은 남편 종찬에게 동일한 방식을 돌려준다. 연홍은 딸의 복수를 위해 종찬이 선거에서 이겨 목적을 달성한 순간 비밀을 폭로하고 추문에 휩싸이게 만든다. 첫 유세가 있는 남편과 친구 자혜와 함께 과제를 하다 늦게 들어오겠다고 하는 딸 민진(신지훈)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첫 장면 바로 직전에 충혈되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연홍의 얼굴 클로즈업이 붙는다. 이 쇼트는 <마더>에서 석양이 내리쬐는 갈대밭에서 정신을 놓은 듯 춤을 추는 엄마의 첫 쇼트와 상응한다. 기존의 많은 영화들에서 충격을 받아 초점을 잃은 여자의 얼굴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녀의 존재와 이미지는 그 자체로 그 충격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할 미스터리가 된다. 그러나 연홍과 엄마는 모두 스스로 미스터리이자 사회의 미스터리를 푸는 탐정이 된다. 미스터리로서의 모성을 만들어낸 사회적 구조는 자신 스스로를 포함하고 있기에 미스터리를 풀고 진실을 대면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세계를 뒤집어엎을 각성이 수반한다. 연홍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남편이 딸을 죽였다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이 추구해왔던 것이 다 무너지더라도 그녀의 모성은 그 진실을 뚫고 지나간다. 스스로가 그 비루한 체제의 일부였기 때문에 기존의 자신도 해체된다. 그렇게 연홍은 무지한 자에서 깨달은 자로 변모해 나간다. 가족을 해체시킬 비밀의 폭로와 진실의 대면에서 <마더>의 엄마는 자신이 아들 도준(원빈)을 죽이려했다는 사실을 도준이 알고 있다는 진실과 도준이 살인범이라는 진실 두 가지를 모두 몰랐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에 침을 찌르고 정신없이 춤을 춘다. 한편 < 올드보이 >(박찬욱, 2003)에서 아버지 오대수(최민식)는 미도(강혜정)가 딸이라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본인만 고통스럽게 진실을 품은 채 미도에게 최면을 걸어 그녀를 무지의 상태로 돌리려 한다. 여기서 미도는 알지 못한 채 근친상간을 저지른 오이디푸스, 비극의 주체인 오대수와 비교해, 진실을 모두 알고도 타인에 대한 애도를 포기하지 않는 안티고네가 될 수 있었음에도 아버지 오대수는 미도에게 아예 그러한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더>의 모자서사와 <올드보이>의 부녀서사에서 여성들은 진실에 대면했을 때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감당하거나 이용하려는 남성들과 달리 무지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반면 <비밀은 없다>는 죽은 딸을 대체한 미옥과 함께 아직도 풀어야 할 암호가 가득 찬 ‘와일드 로즈 힐’에서 대항적 판타지의 세계를 구성하며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튕겨져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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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 본 글에는 < 연애소설 >과 < 텔 미 썸딩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장르영화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성소수자들의 가시화가 갑작스럽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한정된 시공간에 허용된 젊은 여성들의 낭만적 동성애는 대중적 정서를 크게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가미해줄 수 있는 장르적 도구로 종종 사용되었다.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와 <텔 미 썸딩>(장윤현, 1999)이 그 시작이었다. 두 영화는 2000년대 장르영화에 등장한 레즈비언 캐릭터들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학교라는 억압적 시스템과 어린 여성들의 사랑, 우정, 질투, 불안, 분노 등의 복잡한 감정을 공포영화의 장르적 약호로 그려내 컬트팬을 양산했다. 이 영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그들 관계의 주 무대가 되는 학교 옥상이라는 열려 있지만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불안정하고 비규범적인 저항 가능성의 지점이 된다. 그러나 십대와 학교라는 특정 시공간에 한정된 여성 동성애의 초상이 ‘여고괴담 시리즈’와 이후 유사 영화들에서 반복되면서 역설적으로 여성 동성애에 대한 상상력이 제한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반복된 재현은 여성 동성애가 강력한 규범 체제에 대한 십대 사춘기의 반항이자 안정된 이성애 체제로 편입되기 위한 일시적 통과의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여성 동성애는 학교 밖에서는 불가능하거나 허용되지 못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시은(이영진)과 동성애 관계에 있던 효신(박예진)의 자살 후 아이들은 전염병처럼 귀신에 들린다. 여기서 동성애 욕망은 쉽게 감염되고 임시적이고 제의적인 것이며 그래서 정체성으로는 기입할 수 없다. 엔딩에 등장하는 학교 지붕을 덮칠 정도로 거대해진 효신의 유령은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아니면 효신은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지속하기 위해선 유령이라는 형상으로라도 학교에 남아야 하는 것일까?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레즈비언 유령은 이후 ‘여고괴담 시리즈’에서 반복된다. 동성애 관계가 2세대에 걸쳐 등장하는 < 여고괴담 4-목소리 >(최익환, 2005)처럼 말이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동성애 욕망을 재자각하기 위해서는 교사로서 학교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들은 레즈비언이 되기 위해 그 공간을 떠나지 못한다. 한편 스릴러 장르인 <텔 미 썸딩>은 캐릭터와 서사에 여성 동성애가 기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비밀로 꽁꽁 숨겨놓다가 연쇄살인의 전모가 마침내 밝혀질 때 핵심적 실마리로서 폭로된다. 사실 남자 주인공인 조형사(한석규) 입장에서나 폭로이지 채수연(심은하)과 그녀를 사랑해 남자연쇄살인을 도운 오승민(염정아)은 영화 내내 진실을 말한다. 여기서 관객들은 그 관계를 진작 상상할 수 있었던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뉘게 된다. 영화는 분명 타겟 관객을 조형사에 동일시되어 동성애 관계를 알아채지 못한 이들로 상정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성애가 반전으로 작동할 수 없다. 냉철한 추리력으로 정평이 난 조형사도 여성 동성애는 상상력 밖에 있다. 채수연은 승민과의 동성애 관계를 조형사에게 여러 번 흘린다. 심지어 수연은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던 자신의 집에서 승민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자세하게 진술한다. 그 아이가 승민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여기서 플래시백이 삽입되고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 것처럼 묘사되면서 의도적 오인을 유도한다. 그래서 그 주관적 플래시백이 수연의 것인지, 아니면 수연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조형사(와 동일시된 관객)의 것인지 모호하다. 여자 둘과 남자 한명의 관계 속에서 여성 동성애 관계를 숨겨놓았다가 뒤늦게 폭로하는, 그래서 동성애는 과거의 비밀이 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서사구도는 2000년대 영화들에서 종종 발견된다. <연애소설>(이한, 2002),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이무영, 2002), < 주홍글씨 >(변혁, 2004), < 끝과 시작 >(민규동, 2009)이 그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 역시 결국은 이성애 관계가 서사를 추동시키는 큰 틀이 되면서 ‘여고괴담 시리즈’처럼 여성 동성애를 한 때의 ‘순수한 감정’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대상화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들에서 여성 동성애는 과거의 것이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의 결정체로서 대상화 되지만 그래서 궁극의 진정성을 갖게 되고 언제든 내부로부터 서사를 불안정하게 만들 잠재성을 갖는다. 위의 영화들 중 이십대 초반의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명이 주인공인 <연애소설>은 오랜 투병생활로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십대들을 보는 것 같은 풋풋함을 그리고 여성 동성애라는 비밀의 폭로가 영화 전체의 서사구조를 뒤흔드는 측면에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와 <텔 미 썸딩> 모두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프닝부터 프레임 속 프레임으로 창문 밖 풍경을 비춰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사진을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적 메타포로 사용한다. 사진은 순수했던 순간을 결정화하는 동시에 그 프레임 바깥에 있는 맥락이나 다른 진실을 지워버린다. 서사구조에 있어서도 프레이밍은 중요한 장치가 된다. <연애소설>은 영화 전체가 지환(차태현)의 지속적인 플래시백, 즉 지환의 주관적 프레이밍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20대 후반인 지환은 택시기사를 하며 등록금을 벌어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순수하게 좋아했던 사진도 그만두었다. 그러던 중 직접 찍은 흑백사진에 하얀색 물감으로 쓰인 편지 한 장을 받는다. 주소도 이름도 없지만 짐작 가는 이가 있다. 사진은 과거를 상기시키고 이때부터 지환의 플래시백이 시작되며 영화는 현재와 5년 전을 오고간다. 5년 전 지환은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수인(손예진)을 보고 한 눈에 반해 뒤따라가 고백하지만 곧 거절당한다. 이후 수인과 늘 함께 다니는 경희(이은주) 그리고 지환은 절친한 친구가 된다. 지환은 처음에는 청순하고 조용한 스타일의 수인에게 반하지만 이내 활발하고 명랑한 경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경희는 처음부터 지환을 좋아했기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일만 남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내내 몸이 아파 늘 조심하며 살았던 수인과 경희가 일생의 일탈처럼 지환과 여행을 갔다 온 이후 수인과 경희는 연락이 끊기고 지환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채로 홀로 남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요약된 서사는 지환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이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비밀과 폭로가 등장한다. 하나는 수인의 첫 사랑이 경희로 첫 만남부터 죽을 때까지 경희를 사랑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인과 경희가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불러왔다는 것이다. 즉 수인의 본명은 경희이고, 경희의 본명은 수인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지환은 현재 시점에서 수인과 경희를 수소문할 때 경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게 된다. 그러나 곧 (경희가 본명인) 수인(손예진)이 죽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상상 가능한 일부 관객들은 여성 동성애의 비밀을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게 하면서도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비밀이 폭로되지 않도록 의도적인 오인 장치들을 흩뿌린다. 그것은 스테레오타입을 뒤집는 것이다. 긴 생머리, 프릴 달린 흰색 블라우스와 치마, 기운 없는 목소리, 얌전하고 의존적인 태도를 가진 수인은 겉보기에는 이성애 남성의 관습적인 이상형을 구현해 놓은 모습을 갖고 있다. 반면 짧은 머리에 늘 바지를 입고 히피 스타일의 장신구를 착용하며 직설적이고 크게 웃는 경희는 상대적으로 더 병약한 수인을 챙긴다. 경희는 전형적인 톰보이다.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에 따르면 수인은 이성애자이고 경희는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작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수인이고 경희는 지환을 사랑하는 이성애자(혹은 양성애자)이다. 영화는 수인과 경희가 이름을 바꿔 부르고 지환의 사랑이 수인에서 경희로 바뀌는 것처럼 관계와 욕망을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지환의 주관적인 플래시백으로 구성되지만 유일하게 지환의 것이 아닌 플래시백 장면이 있다. 수인과 지환이 단둘이서 각자의 첫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수인은 경희와의 첫 만남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 아이가 경희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 플래시백에서 경희는, 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머리가 긴 수인과 비교해 파란색 환자복을 입고 민머리를 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남자아이로 오인되게 만든 이 장면에서 <텔 미 썸딩>의 조형사처럼 지환에게 동일시된 관객은 수인의 플래시백을 관람하게 된다. 이 플래시백 역시 수인의 주관적 플래시백인지 지환이 수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각화한 것인지는 모호하다. 하지만 여기서 지환이 그 아이를 남자아이로 오인하고 있으며 수인의 첫 사랑이 경희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로맨스 이야기는 대부분 둘 다 사랑하는 여자를 교환하는 것으로 남성 동성관계를 공고히 한다. 그러나 지환은 교환되지 않는다. 수인은 지환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인과 지환 모두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경희가 교환되는 것도 아니다. 경희는 초반에는 수인과 지환이 서로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지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은 오인의 과정에 놓이고 결국은 실패로 끝난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발화하는 유일한 관계는 수인과 경희다. 수인은 경희에게 죽기 전 분명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경희도 수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결부되고 서로의 이름을 바꿔가며 생존을 격려했던 둘의 사랑은 이성애적 사랑을 초과한다. 심지어 수인은 지환에게 자신의 사랑인 경희를 부탁하는 러브레터를 보낸다. 그 편지엔 경희가 좋아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아마도 잡지에 나와 있는 성격운세가 말했던 것처럼 수인은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시한부가 아니라면 경희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수인과 경희를 시한부로 만들면서 여성 동성애 관계의 가능성을 한정시키는 한편, 시한부로 인해 역설적으로 그 욕망을 단단하고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오히려 가장 실패하고 가능성 없고 끝까지 무지에 빠져있는 것은 지환의 이성애적 욕망이다. 이 영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가장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이성애가 도달하지 못한 혹은 개발해야 할 (영화학자 레이 초우가 개념화한) ‘원시적 열정’의 장소가 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가시화될 수 있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겨루거나 혹은 우정 때문에 양보하는 삼각 구도로 보였던 영화는 수인의 사랑의 대상이 경희라는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서사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언제 서사를 재구성하게 되느냐는 관객마다 다를 수 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서 지환의 주관적인 플래시백으로 점철되어 있는 이 영화를 관객들 역시 다시 쓰게 된다. 지환은 그 새로운 정보를 끝까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지환에게서 벗어나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레즈비언인 수인의 시점을 갖게 된다. 관객들은 수인의 레즈비언 편집술에 동화된다. 이 영화에는 시계바늘을 돌리는 행위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지환은 첫 눈에 반한 수인에게 고백 후 거절당하고 관계를 우정으로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경희는 수인이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후회와 슬픔에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을 되돌린다. 수인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시계바늘을 되돌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수인이 분명하게 자기 욕망을 발화하고 응답을 들은 인물로 후회 없는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 그 자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성애 지배적인 사회에서 늘 자기만의 편집술을 육화할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주변의 서사와 이미지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수인은 이 삼각관계에서 가장 많이 아는 자로(지환과 경희의 욕망, 그리고 자신의 욕망) 주어진 것들을 재편집해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수인은 지환의 플래시백으로 구성된 이 영화에 오인의 가능성을 품은 채로 자신만의 플래시백을 트로이 목마처럼 침투시킨다. 어떤 면에선 자기만의 (레즈비언) 편집술을 일상화하고 육화한 수인은 시계 그 자체가 되어 있기에 물리적으로 시계바늘을 돌릴 필요가 없다. <연애소설>은 결말에서 지환과 경희의 재회를 서사화하면서 뒤늦게 이성애 프레임으로의 봉합을 시도하지만, 이미 레즈비언 편집술의 역량을 경험하게 한 작은 플래시백의 침투는 의심과 실패 속에서 서사의 솔기가 끊임없이 뜯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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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2004년 | 컬쳐캡미디어 감독: 김호준 | 각본: 유순일 | 각색: 조중훈 김요석 | 제작: 최순식 | 촬영: 서정민 | 미술: 윤도환 | 음악: 히드라 CAST 박상민: 김래원 | 서보은: 문근영 | 보은 조부: 김인문 | 상민 부: 한진희 | 상민 모: 김혜옥 | 보은 부: 송기윤 | 보은 모: 선우은숙 | 혜원: 신세경 | 동구: 류덕환 2004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무엇이었을까요? < 실미도 >( 강우석 , 2003)에 이은 두 번째 ‘천만 영화’ < 태극기 휘날리며 >( 강제규 , 2004)였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1위였죠. 당시 충무로가 만들 수 있는, 아니 당시 충무로의 수준을 뛰어넘는 대단한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2위는 어떤 영화였을까요? 놀랍게도 < 어린 신부 >였습니다. 비수기인 4월 초에 개봉한 이 영화는 전국 관객 315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권상우 를 스타덤에 올린 < 말죽거리 잔혹사 >( 유하 , 2004), 정우성 손예진 의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이재한 , 2004),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 범죄의 재구성 >(2004), 류승완 감독의 액션 판타지 < 아라한 장풍 대작전 >(2004), 원빈 신하균 의 < 우리 형 >( 안권태 , 2004), 강동원 조한선 의 < 늑대의 유혹 >( 김태균 , 2004)... 이 모든 영화들을 <어린 신부>가 제쳤고, 당시 대한민국은 ‘국민 여동생’ 문근영 신드롬으로 들끓었습니다. <어린 신부>는 24살 대학생 상민과 16살 여고생 보은의 결혼 이야기입니다. 보은의 할아버지는 꾀병을 부려, 죽기 전에 보은이 상민과 결혼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죠. 그렇게 ‘어린 신부’는 탄생합니다. 촬영 공개는 바로 그 결혼식 신이었습니다. 촬영이 공개된 날은 2003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청담동에 있는 어느 결혼식장이었는데요, 날씨가 엄청 추웠습니다. 배우들은 촬영이 없을 땐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죠. \ 현장에서 짬이 날 때 전화 통화를 하는 문근영의 모습입니다. 당시 문근영은 실제로 극중 나이와 같은 16세였고, <어린 신부>의 리얼리티는 배우와 캐릭터의 연령대 일치에서 생겨난 셈입니다. 김래원도 캐릭터와 같은 연령대였고요. 문근영이 주로 부각되었지만, <어린 신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토대엔 분명 김래원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있습니다. 당시 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승승장구 하던 김래원은 <어린 신부>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남자 주인공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게 되죠.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문근영의 모습입니다. 영화 속에서 하객들이 “예쁘다, 정말 예쁘다”라며 감탄하던 그 장면이죠. 당시 문근영은 TV에서 영화로 옮겨 오면서 < 장화, 홍련 >( 김지운 , 2003)으로 영화배우로서 자리를 굳히던 시절이죠. 그리고 <어린 신부>가 이어집니다. 사실 <장화, 홍련>의 수연과 <어린 신부>의 보은은, 극과 극의 감정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죠. 1년 사이에 그 극단을 오가는 건 10대 중반의 배우에겐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문근영은……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은 바로 보은의 할아버지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인문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정다운 연기가 이 영화에서도 관객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죠. 이 영화에서 양가 부모 캐릭터는, 주로 TV에서 활동하시는 중견 연기자들이 맡았습니다. 상민의 아버지는 한진희 씨, 어머니는 김혜옥 씨가 맡았습니다. 곧 있으면 신혼 여행을 떠날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충고를 하지만,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네요. 보은의 엄마 역은 선우은숙 씨가 맡았습니다. 아직 어린 딸이 안쓰럽기만 한 표정입니다. 대신 상민의 엄마는 며느리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어린 신부>는 김호준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한 김 감독은 1990년대 초부터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 축제 >(1996), 이정국 감독의 < 편지 >(1997) 등을 거쳐 10여 년의 도제 시스템 끝에 자신의 첫 영화를 만들게 되었죠. 한편 카메라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지난 번 < 몽정기 >( 정초신 , 20002) 포스팅 에서 자세히 설명 드렸던, 바로 그 분입니다. 촬영 당시 70세셨고, 2015년에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영화 속에서 결혼식은 보은의 수학여행 날에 치러집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보은의 결혼 사실을 모르죠. 단, ‘베프’인 혜원은 예외였는데요, 당시 14세였던 신세경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문근영보다 어린 유일한 배우? 당시 두 사람은 같은 소속사(나무 액터스)였는데요, 지금도 그곳에 함께 있네요. 상민의 선배인 지수 역은 김보경 이 맡았습니다. < 친구 >( 곽경택 , 2001)의 진숙 역으로 떠오른 그녀는 이 영화에 특별 출연을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양가 부모가 딸과 아들을, 며느리와 사위를, 배웅합니다. 보은 아빠 역은 탤런트 송기윤 씨가 맡았습니다. 선우은숙 씨 옆에 보은의 동생 동구 역을 맡은 류덕환이 보이네요. 실제로는 문근영보다 한 살 많은 오빠지만 영화에선 동생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담한 웨딩 카. 그리고 그 안의 신혼 부부입니다. 실제 촬영 때는 아니고 차 안에서 대기하는 모습입니다. 결혼식 신에 대해, 김래원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거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신”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문근영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편하게 촬영한 신”이라고 말합니다. 호기심 많은 성격인 보은이 ‘결혼 그 자체’만 생각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고 하네요.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