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프리퀄
- 감독
- 손태겸, 김태희
- 제작년도
- 2013
- 출연
- 임시완, 이창민, 김보라, 바로, 조희봉, 임현식, 문세윤, 박희본, 이상희, 최로운
사진: “ 졸업 ”, tvN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이 글을 구상할 즈음 ‘비상계엄’이 도둑처럼 선포됐다. 용감하게 국회로 달려간 많은 시민들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투를 벌인 공직자들 덕분에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한국사회의 시간은 ‘12.3 내란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 모든 상황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지난 여름에 본 < 돌풍 >(김용완, 2024)이 떠올랐다. 한국 정치사를 압축한 것 같은 <돌풍>이 재현한 한국사회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음모와 폭로가 난무하는 세계였다. 당시 나는 이 드라마의 위험한 상상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상상은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참으로 유해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비상계엄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는 이미 비상시국이다. 먼 곳에서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기후위기가 코앞까지 도달했음을 절감했고, 경기침체로 인해 온갖 사회 지수는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사회적 갈등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민자,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지긋지긋하게 반복됐다. 마치 지구 종말 200일을 앞둔 < 종말의 바보 >(김진민, 2024) 풍경처럼. 이런 유해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자극적인 맛, 즉 도파민을 상승시킬 무언가를 찾고 또 찾았다. 드라마 세계도 마찬가지다. 사적 복수극, 고자극 장르물, 이번 생은 망했으니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욕망을 실현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서사가 줄을 이었다.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바로 세우며 남편에게 복수하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원국, 한진선, 2024)가 주목을 받았고, <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2024), < 더 에이트 쇼 >(한재림, 2023),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2024) 등 사적 복수물이나 고자극 장르물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들이 예전처럼 큰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생산되던 고자극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게 된 탓이다. <돌풍>, <종말의 바보>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뜻밖에도(!) 올해 가장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는 <눈물의 여왕>(장영우, 김희원, 2024)이다. 이 드라마는 ‘너무 늦게 도착한 과거’와 같은 드라마이다. ‘퀸즈’로 대표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재벌가(가부장제)를 선하고 무해한 집단으로 재현하며 무너진 퀸즈 일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여기에 불치병과 기억상실증 등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가 빠지지 않았다. 위기를 통해 부부 관계와 가족애를 회복한다는 방향성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혈연·혼인 중심 가족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일상의 피로감이 높아질수록 단순한 맛을 찾기 마련이다. 맵거나 달거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자극 드라마에 피로감을 느낀 우리는 순하고 달달한 드라마를 도피처 삼아 그 세계에 몰입하여 울고 웃었다. <눈물의 여왕>은 그런 우리의 필요를 잘 반영했기에 진부한 설정에도 선택을 받은 것이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마니아층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선재 업고 튀어>(윤종호, 김태엽, 2024)나 시원하고 무해한 제주도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웰컴 투 삼달리>(차영훈, 김형준, 2023~2024) 등도 비슷한 이유로 관심을 모았다. 사진: “ 눈물의 여왕 ”, “ 선재 업고 튀어 ”, tvN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 곁에는 서로를 구원함으로써(쌍방구원) 위로를 전하며 치유적 기능을 한 드라마들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먼치킨’ 주인공이 위험으로부터 인간-사회를 구하거나 악을 제대로 응징하여 ‘사이다맛‘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물이 인기를 모았으나 그 히어로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히어로’가 사라진 자리에 ‘힐러(healer)’가 찾아왔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조현탁, 2024)은 우울증, 불면증, 비만이라는 ‘현대인의 질병’에 걸려 초능력을 상실한 가족 이야기다. 이들이 초능력을 상실한 이유는 화재 참사로 인한 상실감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디 드라마 속 인물들뿐일까?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한국사회 속 우리들 또한 같은 이유로 현대인의 질병에 걸린 게 아닐까? 드라마는 상처로 인해 무기력에 빠졌던 인물들이 “히어로는 아니지만”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구원하고자 애쓰는 것에서 희망은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 Mr. 플랑크톤 >(홍종찬, 2024)은 뿌리를 모른 채 딛고 설 땅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모든 물고기들의 밥”이자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인 플랑크톤과 같은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구원했다. 세상은 유해한 것들로 가득하지만, 인간은 끝까지 ‘선함’의 본능을 잃지 않고 서로를 구원하고야 만다는 단단한 신뢰를 이런 드라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Mr. 플랑크톤> (사진: “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 JTBC /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드라마가 단지 도피처, 위로와 치유적 경험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장르를 망라하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늘’을 구현함과 동시에 ‘내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해 드라마가 담은 오늘과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물의 여왕>이 절절하게 보여주었듯 기성사회와 미디어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혈연·혼인 중심 가족을 대표적 가족 모델로 반복재생 하지만, 한국사회의 전통 가족 모델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전통 가족의 모순성을 보여주거나 가족의 경계를 허물어 확장하는 지향성을 가진 드라마들을 통해 구현됐다.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 2024)나 <가족X멜로>(김다예, 2024) 등에서는 가부장 중심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었고, <우리, 집>(이동현, 위득규, 2024)이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송연화, 2024)를 통해서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신뢰와 애정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의심과 오해로 조각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이 드라마들을 통해 씁쓸하고 서늘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 당연하지도 않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도 있었다. < 트렁크 >(김규태, 2024)는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적 설정을 통해 가족과 부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결혼이나 혈연을 넘어선 가족들도 등장했다. <조립식 가족>(김승호, 2024)과 <손해 보기 싫어서>(김정식, 2024)와 <Mr. 플랑크톤>은 ‘정상’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인간들이 혈연·혼인이라는 관습과 제도를 넘어 서로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족일 수 있을까? 가족의 재구성의 문제는 관계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생활고 때문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젊은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을 협박한다는 신박한 설정의 < LTNS >(전고운, 임대형, 2023)는 ‘불륜’이라는 키워드로 (부부) 관계의 복잡성을 상기시켰다. 부부, 가족, 인간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이토록 친밀’한데 ‘배신자’ 일수도 있는 법이다. 드라마는 이런 인간의 복잡성을 흔들리거나, 해체되거나,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가족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상) <우리, 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진: “ 우리, 집 ”,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MBC) (하) <트렁크>, <LTNS>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 유튜브 CJ ENM 글로벌)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늘어난 여성서사가 올해도 다양한 얼굴로 우리와 만났다. 여성서사는 주인공 혹은 중심인물 다수가 ‘여성’인 경우를 의미하지만, 그 여성‘서사’에 무엇을 담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올해도 드라마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얼굴을 응시했고, 용감하고, 슬기롭고, 끈질기게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통해 새로운 인간-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이형민, 최선민, 2024)는 뜻밖의 사건으로 낮에는 ‘아줌마’로 호명되는 50대 여성으로, 밤에는 ‘취준생’ 20대 여성인 본래 몸으로 살게 된 이미진/임순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졸업>(안판석, 2024)에서는 대치동 학원가 1타 강사, 서혜진( 정려원 )이 퍽퍽하고 고단한 30대 여성 직장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밤에 피는 꽃>(장태유, 최정인, 이창우, 2024)은 사별한 여성에게 자결하여 열녀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의적으로 활동한 조여화( 이하늬 )의 액션 활극을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생계를 위해 성인용품 방문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을 통해 여성들이 ‘정숙’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또한 무능하고 유해한 가부장들과 능동적이고 협력적인 여성들의 연대를 대비시켰다. 199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낡은 서사로 여겨질 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지향은 오늘날의 여성들과 공명하기에 충분했다. <굿파트너>(김가람, 2024)는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 장나라 )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며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 서사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손해 보기 싫어서>는 ‘위탁모’로 봉사한 어머니를 둔 손해영( 신민아 )과 ‘위탁아동’으로 연결된 또 다른 ‘딸들’의 자매애를 보여주었다. <피라미드 게임>(박소연, 2024)은 한 달에 한 번씩 비밀 투표로 왕따를 정하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의 문제를 환기하고 여성 청소년들이 연대하여 힘의 세계관에 저항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 정년이 >(정지인, 2024)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후반까지 유행한 ‘여성국극’을 재현하여 남성중심 사회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과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여성국극’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라는 대안적 상상을 해보게 하는 담대한 시도였다. 여성서사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 여성들은 꾸준하게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속 여성서사는 장르도, 시대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지금-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적 지향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흐름이다. 사진: “ 밤에 피는 꽃 ”, MBC / “ 굿파트너 ”, SBS 드라마에서 여성서사의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퀴어서사의 공간도 함께 늘어나게 됨을 의미한다. <피라미드 게임>, <웨딩 임파서블>(권영일, 2024), <엄마친구아들>(유제원, 2024)과 같이 퀴어 캐릭터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퀴어프렌들리’ 드라마들이 있었고, <정년이>, < 대도시의 사랑법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2024), <옥씨부인전>(진혁, 2024) 등 퀴어가 중심이 된 드라마도 제작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가 박상영의 소설을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하여 호응을 얻었는데 게이 남성 고영( 남윤수 )을 통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도 당연하고 보편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옥씨부인전>은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바뀐 여성, 구덕( 임지연 )을 중심으로 여성, 노비,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정년이>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퀴어서사에 관해 고민하게 했다. 동명의 웹툰 원작에서 정년이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인 ‘부용’이 드라마에는 삭제됐다는 면에서 그렇다. 부용은 페미니즘과 퀴어서사를 담당한 중요한 캐릭터였기에 타협적이고도 퇴행적 각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거센 항의에 예고편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두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드라마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절감하게 했다. 이화여대 퇴임교수 김훈순의 진단처럼 드라마는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문화적 생산물”임과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문화적 공론장”이자 “시대 흐름 속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을 담아내는 역동적인 텍스트”이다. 그렇기에 순응하거나 퇴행하는 면도 있지만, 관습의 저항을 피하기는 어려운 순간도 있다. <정년이>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충돌하는 가치들을 ‘뚫고’ 나아가는 서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사진: “ 정년이 ”, tvN / “ 옥씨부인전 ”, JTBC 한 해 동안 우리가 주목했던 드라마들의 흐름을 톺아봤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유해한 현실의 도피처로서 무해한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다가 위로를 받았다.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의 말처럼 드라마가 “하루하루 수고한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고 “시름을 잊게” 한 것이다. 또한 드라마가 구현한 작은 세계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돌아볼 수 있었다. 드라마라는 거울은 우리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로 나아갈 길을 발견케 했다. 드라마가 비춘 현실은 자주 절망적이었지만, 관습을 깨고,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꾸준하게 성장하는 여성서사와 꿋꿋하게 등장하는 퀴어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다양하게 넓어지고 있다는 희망적 생각을 해보게 됐다. <정숙한 세일즈>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처럼 어떤 시도는 “시대를 앞서간 느낌” 때문에 저항에 부딪히지만 곧 그 시차를 극복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질문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움’과 ‘가족’으로 상상된 사회공동체다(그렇기에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이 반갑다). 올해 본 드라마 중 가장 좋아한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졸업>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졸업>은 한국사회의 욕망이 집약된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정답’이 아닌 ‘지문 바깥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역량과 ‘인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자신의 삶과 연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실하고 윤리적인 직업인 혜진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다. 혜진은 수업 시간에 에리히 프롬의 글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것은 나와 우리, 그리고 ‘유해한’ 세상을 향한 조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소명과도 같다. 사진: “ 졸업 ”, tvN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2024년 하반기 대중 영상문화는 퀴어 가시화 측면에서 큰 성과를 낸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을 원작으로 장편영화 가 제작되어 10월 1일 극장개봉 됐으며 10월 21일에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에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가 독점 공개되었다. 또한 웹툰 『정년이』(서이레, 나몬, 2019. 4.~2022. 5. 네이버웹툰 연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 정년이 >(정지인, 2024)가 tvN에서 12부작으로 제작되어 텔레비전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동시 제공되었다. 두 원작의 주인공 고영과 정년이 모두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주요 인물들도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서 벗어난 퀴어적 존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두 원작은 단순히 선정적 소재로 성적 정체성을 전유하는 방식을 넘어, 퀴어 인물들의 고유한 관점으로 시대성, 젊은 세대의 성장과 다양한 관계성,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수행성, 하위문화 혹은 특정 공동체의 민족지적 기술 등과 같은 주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비평적 평가를 받았다. 또한 둘 모두 베스트셀러로서 그 흥행성과 대중성을 입증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례 모두 원작이 발표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매체와 장르로 파생·변환되었다. 물론 트랜스미디어 현상, 특히 이미 대중성을 증명한 원작이 다른 매체와 장르의 콘텐츠가 되는 것은 디지털 환경 속에 놓인 동시대 대중문화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례에서 보여준 트랜스미디어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의 퀴어적 정동을 드러내 줄뿐 아니라 각 매체 혹은 장르(의 제작자)들이 공개되는 플랫폼마다 현재 수용자를 어떻게 특징짓고 가정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하면, 이제 매체특정성이 아닌 플랫폼 특정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이 사례들이 보여준다. 우선 각 사례의 트랜스미디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례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장편영화와 8부작 드라마로 함께 공개되었다. 둘은 원작은 같지만 각색·연출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도 판이했다. 고래와유기농과 쇼박스가 제작하고 이언희 감독이 기획·연출·각색한 극장용 장편영화는 김나들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이 영화는 소설의 4개 에피소드 중 주로 ‘재희’를 가져오고 흥수의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가져와 영화화 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위치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원작 소설에서 4개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화자이자 사연·사건에 연루되는 인물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고영은 흔들림 없는 유일한 주인공이다. 반면 영화에서 고영은 흥수( 노상현 )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름을 유지한 재희( 김고은 )와 주인공 자리를 동등하게 나눠 갖는다. 소설이 다분히 고영의 20대를 함께 하고 목격한 고영‘의’ 친구 재희에 대한 이야기라면, 영화는 소설가 흥수가 내레이션을 도맡고 있음에도 재희 ‘그리고’ 흥수의 20대와 그들의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즉 전자가 고영에 동일시된다면, 후자는 재희와 흥수 모두에 동일시된다. 극중 흥수와 재희 이언희 감독과 김나들 작가는 흥수의 주관적 시점을 벗어나 재희가 디지털 성폭력, 데이트 폭력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응하는 당참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한편, 개성 강한 대학생에서 회사원이 되며 규격화된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개인적 쓸쓸함을 묘사하며 그를 보다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재희는 이성애 여성 청년으로서 동성애자인 흥수보다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취직과 결혼)을 잘 받아들이고 주류에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차별을 겪는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어하고 벽장 속에 숨는 흥수에게 재희가 던지는 대사 “니가 너인게 어떻게 니 약점이 될 수 있어?”는 각기 다른 낙인과 차별을 겪는 이성애 여성과 동성애 남성의 우정을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이성애 여성과 게이 남성 간의 우정을 다루면서 게이 남성을 이성애 여성의 사랑을 상담하는 액세서리 혹은 드라마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코믹 릴리프 같은 클리셰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작과 비교할 때 이러한 주인공의 위치 변화는 극장의 주요 타겟인 2030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더 이끌어 내고 확장성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2종 창작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케팅은 단순 공감을 넘어서 그러한 전략을 더 공격적으로 밀어 붙인다. 홍보용 트레일러와 포스터는 침대 위에 함께 누워있는 재희와 흥수를 보여주고 흥수의 게이 정체성이나 퀴어 등의 단어는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원작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이들로 하여금 해당 영화를 재희와 흥수의 이성애 로맨틱 코미디로 착각하게 만든다. 포스터와 트레일러 카피에 “사랑은 노터치 우정은 포에버. 순도 100% 찐사친 리얼 라이프”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둘의 로맨스를 가장하기에 이러한 착각은 상당히 고의적이다. 개봉 초반 관객몰이가 매우 중요한 극장 플랫폼이기에 퀴어 소재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이성애 로맨스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까지도 모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군대 내에서 사용했던 성소수자 정책(1994-2011),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와 유사하다. 이 정책은 군대 내 성소수자가 혐오공격의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성소수자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심기를 달래고 성소수자가 그 정체성을 드러낼 경우 복무에서 배제함으로써 되레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해당 마케팅은 어쩌면 극장용 상업영화의 개방성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퀴어는 극장 안까지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 이것은 영화 본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검열 중인 극장 플랫폼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기서 상업영화 극장 플랫폼에 재희의 말을 되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보호 필름 떼고 하는 거야 사랑은, 이 겁쟁아” (좌)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중 / (우)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티빙의 8부작 드라마는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영화와 달리 박상영 작가가 직접 각본을 맡고 소설에 담긴 4편(‘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모두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주년 기념으로 기획해 동학교 출신인 허진호 (< 봄날은 간다 >), 홍지영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손태겸 (< 아기와 나 >), 김세인 (<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감독이 각각 2부씩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고영의 시점을 따라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하위문화나 섹스씬도 영화보다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에이즈 문제도 다룬다. 드라마 시리즈가 온라인 스트리밍 독점으로 공개되어 티빙 구독자만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할 전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동성애 정체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삶을 그려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티빙은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에 동성애 혐오 세력의 민원성 공격을 받았다. 드라마 시리즈는 그러한 공격과 상관없이 성공적으로 방영되었지만 아무래도 홍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텔레비전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에 공개되었던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을 소재로 여성들의 경쟁과 성장,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뛰어난 영상미로 재연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역시 약 1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웹툰 <정년이>의 중요한 인물이 드라마에서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사라진 인물들이 퀴어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준 이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주인공 정년이( 김태리 )에게 남성성을 체화하는 방식을 가르쳐주고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라는 대사를 통해 퀴어한 젠더 수행성의 주제를 날카롭게 전달했던 남장여자 캐릭터 고사장, 그리고 주인공 정년이의 1호 팬이며 극작가이자 정년이와 동성애 관계에 있는 캐릭터 부용이가 사라진 것이다. 부용이와의 관계성 일부는 국극단원인 주란(우다비)과 영서( 신예은 )에게로 나눠진 것처럼 보인다. 즉 웹툰에서 드라마로 트랜스미디어되는 과정에서 가장 퀴어한 인물들은 삭제 또는 용해를 겪은 것이다. 그 과정에는 투자자나 회사 관계자들의 압력, 혹은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 같은 각각의 사정들이 존재할 것이다. 드라마 <정년이> 중 위의 사례들에서 퀴어 캐릭터와 그들의 문화가 얼마나 가시화되는지에 따라 비교 평가할 수는 없다. 작품의 비평적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퀴어는 분명 트랜스미디어 과정에서 광산의 카나리아 혹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디까지 있는지 실험적으로 날려 보내는 카나리아. 어느 장르와 플랫폼이 퀴어를 살려둘지 아니면 삭제할지 혹은 그 고유한 존재들을 축소하거나 용해시키는지. 소설, 웹툰, 극장, 텔레비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홍보물들 사이에서, 퀴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중첩된 채로 존재한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영화 촬영 감독. 써놓고 보니 그야말로 멋진 단어가 아닌가. 아마도 그 멋의 대부분은 영화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사람의 경우 보통은, 이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액션”이라든가 “컷”이라든가 하는 말들을 외치면서 배우를 감독하는 사람이 아마도 감독일 터인데, 촬영 감독이란 사람은 무엇을 감독한단 말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뭐라도 감독한다니 멋이 나는구나! ...그러니까 촬영 감독이란, 말하자면... 카메라를 감독하는 사람이리라. 영화란 매우 당연하게도, 카메라로 찍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작가가 기가 막힌 시나리오를 쓰고 명감독이 액션과 컷을 멋들어지게 외치고 명배우가 울고 웃어도, 그 촬영장 어딘가에 카메라가 서 있지 않으면, 좀 더 생색을 내자면 촬영 감독이(엣헴) 카메라의 REC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그 순간들이 영화로 기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렇다면 촬영 감독이란 인간은 고작 버튼 정도를 감독하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터인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게 이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카메라가 그냥 서 있을 것인지, 움직일 것인지, 혹은 움직이기로 사전에 결정을 해 두었는데 막상 움직여보니 그냥 서 있는 편이 나은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해는 져 가는데 접고 내일 다시 찍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이 꼭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엔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누군가는 그것들을 조율하고 결정을 내려서 어느 순간에는 계속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촬영 감독이란, 촬영장에서 생기는 기술적인 문제를 감독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하면 촬영 감독이란 직업을 가지게 되는가. 소싯적부터 카메라에 숨길 수 없는 재능을 보여 빨간 버튼만 보면 누르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든지 왠지 모르게 팀 버튼 영화가 취향이라든지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본인의 경우는 아닌 듯하고, 무언가 영화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일을 하고 싶어 어찌어찌 영화학교에 들어갔으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건 어째 내 길이 아닌 듯한 와중에, 이것 봐라 카메라맨이란 직업이 꽤 나쁘지 않은 것이다. 촬영장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도 척척 나르고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무언가 척척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졸업 작품으로 촬영한 단편 영화가 프랑스의 썩 유명한 영화제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상을 받는 바람에, 또 그런 마음이 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어쩌다 보니, 덜컥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가 촬영을 전공하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빼도 박도 못하게 카메라맨의 삶을 선택한 거지. 카메라 뒤에 계속 있기로 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졸업 후 통장의 잔고를 돌아보니 매우 슬퍼져서 이런저런 촬영 일들을 하면서 버티던 차에, 손태겸 감독이 영화 아카데미 장편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 친구와는 영화학교 동기이자 문제의 그 졸업 영화를 함께 만드는 바람에 영화 아카데미에서까지 동기가 되고 마는 불행한 인연을 계속 이어온 사이었으며, 언젠가는 장편 영화라는 걸 한 번쯤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꿈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이자 무엇보다 개그 코드가 서로 잘 맞는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다. < 아기와 나 >는 그가 예전부터 장편으로 해보고 싶다 말하던 이야기로, 큰 파고의 감정을 다루는 걸 피해가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때는 2015년 여름, 본격적인 < 아기와 나 >의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장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우선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이어서, 홍대 모처의 냉방이 좀처럼 되지 않는 사무실에 스태프들과 모여앉아 여러 가지 촬영 계획을 짜야 했다. 처음으로 장편 영화의 촬영을 맡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제작비 통장을 볼 때마다 문득 슬퍼지곤 해서, 이런 돈으로 사람을 쓰려 하면 안 된다고 훈계하신 미술 감독님도 계셨고, 미팅을 하러 왔다가 페이를 듣고 허허 웃으면서 사라져 가신 녹음 감독님도 계셨더랬다. 어찌 되었든 영화는 찍어야 되지 않겠는가. 연출부는 손태겸 감독의 지인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처참한 상황에도 쉽지 않은 준비 기간 동안 쉽지 않은 일들을 함께해 주었다. 보통은 영화 준비 기간에 본 촬영에 들어가면 이러이러한 동선과 화면으로 이래이래 찍자 하고 계획을 짤 때면 콘티 작가가 붙어 그림을 그려서 계획을 세우고는 하는데, 우리는 대신 감독과 연출부들이 사무실 근처 공간들을 오가며 촬영 현장을 가정하고 연기하면서 실제 사진을 찍어 콘티 작업을 대신했다. 이런 작업 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퇴근을 하지 못하고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아픔이 많은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영화에 관한 열정이 있었으니까...!! 라고 말한다면 적잖이 간지러운 이야기이고, 사실은 우리 모두 이 과정이 꽤 즐거웠었으니까. 라는 생각이다.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실은 그런 종류의 일들이 연속되는 나날들이다. 어쨌거나 영화를 만드는 일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우리가 만들 영화는 이런 모습이 될 거야, 라고, 준비하는 시간이나마 낙관하는 일. 화이트보드 언제나 실제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주연으로 결정된 이이경 배우는 한창 떠오르는 스타로 TV 프로그램과 드라마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빴고, 정연주 배우는 실제 촬영 회차는 많지 않았음에도 TV 쇼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어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영화의 수없이 많은 변수들 덕분에 프로덕션을 앞둔 우리는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 스케줄을 작성해놓고는 가안과 수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끼리는 ‘강 건너기 게임’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왜 있잖는가, 양치기가 늑대와 양과 양배추를 강 건너까지 보내야 하는데 늑대와 양을 두고 가면 늑대가 양을 잡아먹고 양과 양배추를 두고 가면 양이 양배추를 먹어치우고 하는 문제들. 이날은 10씬을 찍고 20씬으로 이동하면 되지 않을까? 아뇨 그때 이경씨가 스케줄 때문에 이 시간 이후만 가능한데요? 그러면 10씬 대신 9씬을 집어넣으면? 그때는 그 장소가 몇 시부터만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아예 8씬과 21씬을 이날 찍으면? 그러면 7, 8씬에 나오기로 한 선배님께서 일정이 어긋나는데? ...그럼 그냥 20씬만 찍는 걸로 합시다. 감독님 연락이 왔는데 그날 20씬 찍기로 한 데가 다른 날밖에 안 될 것 같대요!! ...말을 말자. 그렇다고 한들 허허 알아서들 하시고 저는 촬영장 가서 REC 버튼만 누르겠습니다. 라고 할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만드는 영화 속 장면 장면들이 좋은 공간에서, 좋은 빛을 받게 하고 싶으니까. 어찌어찌 그 생지옥 속에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감정이, 감독이 시나리오에 묘사한 이야기가, 카메라를 통해 영화로 제대로 옮겨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개와 애와는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격언이 있는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가 어어어어어엄청나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영아치고는 몹시 수더분한 성격의 피디의 조카 예준이가 캐스팅되기는 하였으나 아니나 다를까,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영화 촬영장에서 낯선 배우의 품에 안긴 예준 배우는 얌전하다가도 액션을 외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배우들은 젊은 나이에 표현하기 쉽지 않은 감정들을 때로 카메라 뒤의 본인마저 찡해질 정도로 멋지게 표현해주곤 했다. 그런 감정들을 거칠더라도 온전히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감독과의 의논 하에 < 아기와 나 >의 촬영은 90퍼센트 이상 들고 찍기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두 달이 넘는 촬영 기간 동안 몇십 킬로그램쯤 될 카메라는 촬영의 어깨 위에 대부분 올려져 있었다. 꽤나 고생스러운 일이지만 마찬가지로,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아기와 나> 촬영 현장 그래서 영화 촬영이란 결국, 무거운 쇳덩이를 짊어지는 일이다. 영화 아카데미에는 어지간한 상업 영화들에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촬영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는데, 좋은 장비가 좋은 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만 그러한 전문적인 장비들을 사용해 화면을 어떻게 구현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관객이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좀 더 영화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고, < 소셜포비아 >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 연애담 >과 같은 아카데미 장편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뒤에서 뛰어난 촬영감독들이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비의 전문성이란 장비의 무게이기도 해서, 그것을 운용하는 데는 그 쇳덩이들이 손에 익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하다. 영화 촬영팀은 고가의 장비들이 담긴 무거운 박스들을 많이 가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보통 12인승 스타렉스를 빌려 트렁크 쪽의 의자를 두 줄쯤 떼어내고 차곡차곡 장비를 테트리스해서 다니곤 한다. 짧지 않은 프로덕션 기간 동안 그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노라면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 집보다 여기가 진짜 집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안에서 매일 만나는 촬영부 친구들은 어떻겠는가. 이 이상한 유대감의 정체는, 마찬가지로 스타렉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것 말고는 도통 재미가 없어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겠지. 영화를 찍기 위해서 어딘가에 카메라를 세우는 것. 앵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 글을 빌어 ‘아기와 나’의 촬영부인 이승현, 박찬희, 김선형과 데이터 매니저 오혜주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프로덕션 시간표는 흘러가고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 아기와 나 >는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었다.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조만간 해외 영화제에서도 상영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었다만, 뭐 그런 거지. 마틴 스콜세지쯤 되는 거장도 영화를 찍어 놓으면 칭찬도 받고 욕도 먹고 하는데 우리 같은 쪼렙들이 좋은 소리만 듣겠냐. 우리는 꿈꿔오던 장편 영화를 만들었고, 그걸 의도하던 대로 어찌어찌 완성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 장편 영화를 한 편 완성했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통장 잔고는 계속해서 줄어들기 마련이고 그 부분은 썩 기쁘지만은 않기 때문에, < 아기와 나 > 이후에도 어떻게 REC 버튼을 꾸준히 계속 눌러 보려고 한다. 장편을 하나 찍고 나니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서, 지금은 학교에서 막 카메라에에 흥미를 느끼는 젊은 친구들을 돌이킬 수 없게 부추기는 일을 하고 있다. 어차피 영화 만드는 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친구들은 놔둬도 불구덩이로 뛰어들기 때문에 그다지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진심으로, 카메라를 책임진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부족하게나마 이렇게 계속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해주고 싶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