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
- 감독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제작년도
- 1972
- 출연
- 니콜라이 그린코, 아나토리 소로니친, 타마라 오고로드니코바
올해 리스트는 이전과 비교해도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 >(아네스 바르다/JR, 2017)은 내가 올해 보았던 영화 중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지만 분명 다른 사람들이 선정했을 것 같아서 넣지 않았다. 그리고 공개된 리스트를 보니 역시나여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중이다. < 더 포스트The post >(2017), <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과 같은 환상적인 스필버그 영화들이 나왔지만 <더 포스트>에 대해서는 분명 나보다 더 길게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레디 플레이어 원>에 대해서는 올해 지나치게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올해는 유달리 넷플릭스에서 본 작품들을 많이 뽑았다. 만약 < 로마Roma >(알폰소 쿠아론, 2018)나 < 카우보이의 노래The ballad of buster scruggs >(에단코엔/조엘코엔, 2018)을 보았다면 그것들을 추가하느라 애를 먹었을 수도 있다. 이들 영화를 뽑은 건, 극장에서 본 영화들과 경쟁할한 작품들이어서이기도 했지만, 이 리스트를 통해 이들에게 극장 상영의 가능성을 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능하려나. 레이디 버드 우선 나는 < 레이디버드Lady bird >(그레타 거윅, 2017)와 < 패딩턴 2Paddington 2 >(폴 킹, 2017)을 뽑았다.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으니 둘 다 놀랄 만큼 영리한데도 불구하고 선량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대부분 영화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이 두 특성이 함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 영화들은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선의와 품위를 지키면서도 좋은 게 좋다는 흔해빠진 자세 따위는 취하지 않는다. <레이디버드>는 사내아이들의 독백과 불평으로 도배된 영화판에 정면 도전한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이고, <패딩턴 2>는 현대 영국 사회의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꽂는다. 거의 전쟁터에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는데, 두 영화는 끝까지 냉소나 경멸 없이 선하다. 이야기꾼들은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진지하게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원래 사적인 리스트이긴 하지만 < 델마Thelma >(요아킴 트리에, 2017)은 그 중에서도 유달리 사적인 이유로 뽑힌 작품이다. 아, 물론 좋은 영화다. 재미있기도 하고. 하지만 이 영화를 뽑은 건 종교와 초능력을 다루는 영화의 태도와 그 가차 없는 해법이, 한참 이야기 길이 막혀 고민이었던 나에게 하나 이상의 해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꾼의 자존심이 있으니 이 영화의 해법들을 그대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배은망덕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뉴욕 라이브러리에서Ex libris: New york public library >(프레더릭 와이즈먼, 2017)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몸이 러닝타임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 사령혼: 죽은 넋Dead souls >(2018, 왕 빙) 대신 넣은 다큐멘터리는 에롤 모리스의 < 어느 세균학자의 죽음Wormwood >(2017)이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애매하다. 상당히 긴 재현 장면이 들어간 다큐멘터리이고 넷플릭스 미니 시리즈이다. 심지어 우리에게 익숙한 에롤 모리스의 스타일에서도 조금 벗어나 있다. 과연 이게 얼마나 도전적인지도 잘 모르겠다. 텔레비전 세계에서는 꽤 흔한 형식이니까. 하지만 형식이 어떻건, 에롤 모리스는 여전히 영화계에서 가장 뛰어난 명탐정이며 기가 막힌 이야기꾼이다. <어느 세균학자의 죽음>에는 일급 추리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근사한 서스펜스와 발견의 쾌락이 있다. 그렇다고 영화의 주제가 그 쾌락에 묻히는 것도 아니다. 소공녀 < 소공녀 >(전고운, 2017)는 이 리스트에 오른 유일한 한국 영화이다. 아마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 장편 중 가장 자기만의 분명한 목소리를 가진 작품일 것이다. <소공녀>는 요새 한국 독립영화계의 분노와 억울함도, 보이지 않는 형님 앞에서 굽신거리는 주류영화의 비굴하고 밋밋한 분위기도 없다. <소공녀>는 그냥 차갑고 정확하게 세상을 보고 말없이 자기 길을 가며 그 때문에 올해의 한국 영화가 아주 드물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아름답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 < 서던 리치: 소멸의 땅Annihilation >(앨릭스 갈런드, 2018)은 올해 나온 미국 주류 SF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일 것이다. 많이들 타르코프스키의 두 영화 < 솔라리스Solaris >(1972), < 잠입자Stalker >(1979)와 비교하는데,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예술적 자의식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크다. 무심하게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영역을 넓힌 작품인 것이다. 미국 외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고 생각한 배급업자들의 소심함이 아쉬울 뿐이다. 다들 호러 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시절이고, 『보그』지의 모 평론가 의견과는 상관없이 올해의 성취도 만만치 않았다. 올해는 두 편을 뽑았다. < 유전Hereditary >(아리 에스터, 2017)은 가족이라는 소재를 가장 악랄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영화였고, 토니 콜렛이 이 영화로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한다면 세상엔 정의는 없다. < 힐 하우스의 유령The huanting of hill house >(마이크 플러너건, 2018)은 스트리밍에서나 가능한 10부작 미니시리즈의 형식을 최대한 살린 작품으로 귀신 들린 집 소재의 온갖 테마를 총동원한 장대한 오라토리오와 같았다. 올해 부천영화제 최고 히트작인 < 호랑이는 겁이 없지Tigers are not afraid >(이사 로페즈, 2017)는 눈높이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멕시코 마약 전쟁 속에서 희생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는 대신,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의 열망과 상상을 반영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정곡을 찌른다. 마지막으로 다룰 영화가 바로 < 바람의 저편The other side of the wind >(오슨 웰스, 2018)이다. 아마 이 영화는 열성 시네필에게 넘겨주고 나는 보다 장르적인 작품들을 다루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바람의 저편>이다. 독립적인 영화로 보는 건 큰 의미가 없는 작품이다. 물론 그렇게 보아도 재미있는 작품이긴 한데, 그래도 결국 영화의 제작과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생각해보라. 내레이터가 현대 디지털 모바일 환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작되는 오슨 웰스의 영화이고, 존 휴스턴, 수잔 스트라스버그, 머시디스 매케임브리지, 릴리 팔머와 같은 고인들이 출연하는 신작이다. 2018년에 완성된 작품이지만 시네필들은 몇십 년 동안 제목을 알고 있었던 영화이다. <바람의 저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SF의 언어를 쓰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 그래서 내가 이 영화를 골라잡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의 저편>은 암만 봐도 고전적인 20세기 SF 소설의 설정에서 튀어나온 영화처럼 보인다. 초현실적인 정체성 혼란을 겪는 존재가 주인공인 시간여행 이야기인 것이다. 정리를 해보자. 유럽에서 돌아온 오슨 웰스는 그의 경력을 마무리 지을 마지막 걸작 <바람의 저편>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만들다 만 수많은 미완성 영화들처럼 이 작품도 수많은 암초를 만나고 결국 웰스가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못한다. 이 영화는 그 뒤 수십 년 동안 제목과 클립들만 떠돌다가 그의 후배였던 피터 보그다노비치에 의해 완성된다. 월터 머치가 < 악의 손길Touch of evil >(1958) 때 그랬던 것처럼 편집자 수준에서 마무리 지은 게 아니라 최첨단 인공지능까지 동원해 의미도, 맥락도 알 수 없는 수백 시간의 푸티지를 가까스로 정리해 그럴싸하게 말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영화의 내용이란 것이 주변 사람들과 제작자를 괴롭히면서 찍던 마지막 영화 <바람의 저편>을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죽은 천재 영화감독의 마지막 나날을 모큐멘터리로 보여주며 중간중간에 그 미완성 영화를 끼워 넣는 식이다. 이 영화를 완성한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실제로 영화에서도 그를 모델로 한 인물로 출연했기 때문에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건 더 힘들어진다. 오슨 웰스의 스타일이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이 영화가 촬영되었던 70년대엔 극히 드물었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더 당황스럽다. <바람의 저편>은 <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지만 놀랄 정도로 21세기스럽다. 21세기 모바일 환경에 대한 대사는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추가한 것이지만 영화의 스타일 자체는 그냥 21세기의 것이다. 만약 이 영화가 온전한 모습으로 70년대에 개봉되었다면 미국 영화의 흐름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바람의 저편 훌륭한 SF 서사가 대부분 그런 것처럼 <바람의 저편>은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영화가 21세기 오슨 웰스가 만든 영화처럼 보이는 건 진짜로 오슨 웰스의 개성 때문인가, 아니면 영화를 완성한 사람들이 그들의 머릿속에 담고 있는 오슨 웰스의 스타일을 모방했기 때문인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이 영화의 시대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모든 것들이 뛰어난 마술사였던 오슨 웰스 자신의 깜짝쇼일 가능성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겠다. 그 자체로도 한 편의 완벽한 마술쇼였던 < 거짓의 F F for fake >(1973)를 본 관객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근래 전 세계 영화제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은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콘스탄틴 브론지트 감독의 <우주 없이 못살아 We Can’t Live without Cosmos>이다. 2008년 <화장실 러브스토리>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랐던 감독이 그 후 6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우주 없이 못살아>는 2015년 5월에 열린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단편 우수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받으며 한국 관객의 마음을 얻었고, 같은 해 6월에 열린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와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세계 관객의 마음을 재차 확인했다.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을 사로잡은 <우주 없이 못살아>의 주인공은 우주인 훈련생들이다. 작품은 건장한 청년들이 마주 서 침대 위를 뛰는 장면으 로 시작한다. 바깥은 별이 가득한 밤. 성긴 눈발이 사선으로 날리는 매서운 계절이다. 1203, 1204 나란히 이어진 번호를 받고 같은 방을 쓰는 두 사람은 유모차 타던 시절부터 단짝이다. 그러니까 우주인 흉내를 내며 침대 위를 뛴 것도 하루 이틀은 아닐 것이다. 2015년 3월, 나는 모스크바에서 하룻밤 묵었다. 러시아 작가들이 휴양처럼 생각한다는 오픈애니메이션페스티벌 행 버스가 다음날 출발할 예정이었다. 페스티벌이 제공한 호텔 이름은 코스모스(호텔 클럽 이름은 솔라리스)였다. 3,6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객실은 소박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대비해 세운 건물인데 내부 장식도 그때 그대로가 아닌가 싶었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에는 은빛 탑이 예리하게 솟아 있었다. 거대한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하늘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새파랬고 눈이 부실만큼 번쩍이는 탑 꼭대기에는 로켓이 놓여있었다. 거기서 유리 가가린의 조각상을 발견했다. 인류 최초로 우주 궤도 비행에 성공했다는 사람. 그곳은 모스크바 우주 박물관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훈련받은 가가린훈련센터도 모스크바에서 멀지 않다. 러시아 어린이라면 장래희망으로 우주인 정도는 한 번쯤 쓰겠구나 싶었다. 밤마다 함께 우주를 나는 꿈을 꾸던 두 친구는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일상적인 체력단련과 수영, 구토를 유발하는 원심력 훈련까지 해낸 끝에 우주인과 예비 우주인으로 선발된다. 1203을 태운 로켓이 흐린 하늘을 지나 별이 빛나는 우주에 다다르자 센터 사람들과 모니터로 지켜보던 1204는 박수치며 환호한다. 그러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만 교신이 끊긴다. 1990년 일본 최초 우주인의 통역사로 소련을 찾은 요네하라 마리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이카로스들의 묘”를 만난다. 1) 그녀의 기억에 언론은 1961년 우주 비행에 성공한 가가린을 소비에트의 이카로스라고 불렀다. 그녀는 넓은 기지 한구석의 비석을 보며 야심 찬 성공의 그늘에 가려 적막한 죽음을 맞은 이카로스가 한둘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친구가 떠난 까만 하늘, 가만히 가득한 별들이 흰 눈이 되어 쏟아진다. 지상에 슬픔이 두껍게 쌓여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훈련센터 관리자는 곧장 1203의 기록에 줄을 긋는다. 1204는 이제 다음 차례 우주인이다. 하지만 혼자 남은 그에게 꿈은 더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기 전 이 영상 편지의 수신인이 뜬다. TO OUR FRIENDS <우주 없이 못살아>는 별이 가득한 우주와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두 친구 이야기다. 둘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함께 우주를 이야기하며 자랐을 것이다. 우주 없이는 못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꿈을 나눈 친구가 아닐까. ‘우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소중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감독의 메시지를 부디 확인하시길 바란다. 주1. 요네하라 마리, 「이카로스와 가가린」, 『교양 노트』, 마음산책, 2010
내가 시나리오 작가로서 극장 스크린에 처음 크레디트를 올린 영화는 SF 옴니버스 < 인류멸망보고서 >(2010) 다. 각본은 아니고, 세 번째 세그먼트 <해피 버스데이>의 원안을 썼다. 영화는 제작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매우 야심적인 프로젝트였지만 에피소드 두 편을 완성한 상태에서 나머지 에피소드를 만들 예산과 기획이 실종되어 수년간 답보 상태였다가 어떻게든 작품을 마무리하려 안간힘을 쓰던 중이었다. 회사에서 제시한 기본 콘셉트는 ‘지구와 소행성이 충돌해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의 하루’였고 ‘저예산으로 가능하게’, 라는 조건이 달렸다. 나는 한 소녀가 인터넷에 뭔가를 주문했다가 은하계 저편에서 배달되는 바람에 온 가족이 반지하 방을 방공호 삼아 숨는다는 이야기에, 우주에서 날아오는 소행성이 알고 보니 초거대한 8번 당구공이라거나, TV 홈쇼핑에서 개인용 방공관(棺)을 판다거나, 죽게 된 마당에 뉴스 앵커가 생방송 중에 불륜을 고백하는 등등의 아이디어를 더했다. 신출내기 작가였던 나는(물론 지금도!) 무려 SF 옴니버스 영화에 참여해 마지막 에피소드의 스토리를 맡은 일이 마냥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작업하는 내내 속으로 한 작품을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한낱 평범한 개인의 쓸데없는 추억들을 조금 더 되돌아보는 것을 용서하시길. 전형적인 90년대 틴에이저로서 일본 서브컬처 개방 1세대의 퍼스트 임팩트가 일어나기 직전 무렵의 어느 날, 나는 시내의 외국어 학원에서 열린 해외 애니메이션 상영회를 찾아갔다. 어학 연구를 명분으로 옆 나라 영상문화의 숨은 애호가들이 모인 자리, 주최자로 추측되는 장발의 안경 낀 미남자가 나타나 본인이 소장한 LD(레이저디스크)에다 직접 한글 자막을 올린 영상을 프로젝터로 쏘기 시작했다. 이미 PC 통신을 통해 온갖 외국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불법 복제 비디오를 구해보고 있었기에 상영 자체는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구한 VHS 비디오들이 복사를 몇 번이나 한 까닭에 거의 포르노 화질에다가 자막 같은 건 좀체 없었던 반면, LD에서 바로 떠낸 화질은 매우 훌륭했고, 한글 자막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렇게 본 것이 오시이 마모루의 < 공각기동대 >(1995)와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 >(1993), 그리고 린 타로가 연출한 CLAMP의 < X >(1996) 였다. 특히 < X >의 상영을 다른 이유로 잊을 수 없는데, 이상하게 나 말고는 거의 누나들뿐이었던 강의실이 작품 결말부에서 비명과 눈물바다가 되더니 엔드 크레딧에선 X-JAPAN의 노래를 모두가 합창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아무튼 상영이 끝나자 다시 나타난 주최 측 남자는 상영작 외에도 찾는 작품이 있다면 자신의 LD 라이브러리에서 비디오로 떠주겠다며 소정의 작업비만 선불로 요구하는 리스트를 돌렸고, 나는 그가 애초에 이 영업이 주목적이었던 장사치가 아닐까 돈을 떼먹지 않을까 의심하면서도 좋은 화질로 다시 보고픈 < 아키라 >(1988)와 < 미궁물어(미궁 이야기) >(1987)와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 수병위인풍첩(무사 쥬베이) >(1993) 등을 체크하고 리스트에 없는 제목 하나를 대며 혹시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나를 보며 ‘이 녀석 봐라?’ 하는 미소를 짓더니 그건 시간이 좀 걸린다고 답했다. 그는 다행히 먹튀는 아니었고, 얼마 후 나는 마침내 손에 넣은 작품의 VHS 테이프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VCR에 넣었다. 그리하여 그날 밤 나는 우주를 보았고, 새벽에 홀로 TV 앞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방금 본 엄청난 무엇에 대한 여운을 붙들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바로 <아키라>의 오토모 가츠히로가 원작, 기획하고 총감독한 SF 옴니버스 < 메모리즈 >(1995) 다. 에피소드1: 그녀의 추억Magnetic Rose 모리모토 코지 연출의 첫 번째 에피소드 ‘그녀의 추억Magnetic Rose’은 세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작품처럼 여겨진다. 요절한 천재 애니메이터 콘 사토시의 흔적이 각본과 그림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이 애니메이션 판 <솔라리스>는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이 우주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문자 그대로의 ‘스페이스 오페라’다. 불멸의 명성과 사랑을 원했던 어느 프리마돈나의 욕망이 우주 한가운데 버려진 거대한 장미꽃 모양의 우주선에 담겨 있다. 우주 고철, 그러니까 쓰레기를 수거하던 일꾼들이 SOS 신호를 보내오는 이 우주 고성(古城)을 발견한다. 반복 재현되는 그녀의 추억 속으로 진입한 두 남자는 각자 자신의 기억 혹은 욕망과 마주한다. 한 명은 남아 기꺼이 그녀의 추억에 일부가 되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의 비극을 인정함으로써 도망친다.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남자가 헬멧 속에 담긴 장미꽃잎을 후우, 하고 불어보는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는 아름답고 쓸쓸하다. 에피소드2: 체취병기Stink Bomb 오카무라 텐사이 연출의 두 번째 에피소드 ‘체취병기Stink Bomb’는 배경을 현재 대한민국으로 바꾼 장편 실사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싶은 욕망이 돋는 작품이다. 공권력과 사기업의 음흉한 거래로 이루어진 비밀 실험, 재난 상황에서 국가 시스템의 무능력, 이 모든 상황의 한가운데 방치된 소시민 등 아포칼립스 재난물의 대표적 요소들로 능수능란한 전개를 한다. 평화로운 지방 도시 외곽에 위치한 제약회사 연구소, 한 직원이 감기약을 잘못 집어먹은 탓으로 한순간에 화학전(戰)용 생물병기가 된다. 그가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이 코를 붙잡고 쓰러지는 대신, 계절에 상관없이 모든 식물의 꽃이 만개한다. 그가 재난의 원인임을 인지하지 못한 본사 수뇌부는 은폐할 서류를 반드시 챙겨오라고 지시하고, 명령에 충실한 남자는 자위대의 필사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수도 도쿄로 향한다. 파국 직전에 미국이 끼어들자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곧 의존하는 군 장성들의 모습은 이 블랙코미디의 정점이다. 에피소드3: 대포의 거리Cannon Fodder 오토모 가츠히로 연출의 마지막 에피소드 ‘대포의 거리Cannon Fodder’는 대체 누구와 전쟁 중인지, 실제로 전쟁 중이긴 한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오로지 적국으로 포를 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전체주의 국가(어라? 가까운 곳에 비슷한 나라가 있는 거 같다)에서 한 가족의 하루를 컷 없이 연속적인 하나의 롱 테이크로 ‘펼쳐서’ 보여준다. 인간의 가치가 전복되어 수단이 곧 목적이 된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작가의 야심은 형식의 실험을 시도한다. 영화적 양식의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는 연결된 거대한 그림. 애니메이션에서 다시 만화로, 만화에서 다시 회화로의 복귀. 이러한 펼침의 미학은 일본식 만화 스토리텔링의 근원으로 추정되곤 하는 두루마기 회화 ‘에마키’에 대한 오토모의 관심을 구현한 일련의 시도이다.(이후 < 쇼트피스 >(2013)의 에피소드 ‘화요진’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들여다본 그림의 끝, 대포의 거리에 사는 소년은 압제자의 초상화 앞에서 경례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축 쳐진 어깨의 아버지 같은 탄약수 대신, 어깨에 견장을 단 포수가 되는 꿈을 꾼다. < 메모리즈 >는 이제 애니메이션의 고전을 넘어 SF의 고전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전(Classic)의 생명력이 그러하듯이, <메모리즈>의 세 이야기는 언제 다시 봐도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추억보정 때문인지, 그 시절 불법 복제 비디오로 보았던 LD 추출 화질이 지금의 정품 블루레이 화질보다 좋았던 것으로 느껴질 뿐. 세월이 더해갈수록 작품의 테마는 개인과 현실 세계와 맞닿으며 더욱 견고한 상징을 담은 이야기가 된다. 그 주제란 내 생각에 이렇다. 개인과 세계의 충돌. 개인을 삼키는 세계. 세계를 삼키는 개인. ‘세계’를 ‘테크놀로지’나 ‘기술 문명’으로 바꿔 써도 될 것이다. 그래서 남는 건 결국, 인간의 한 줌 기억 혹은 추억(들)뿐. 내게 <메모리즈>는 추억이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영감을 주는 레퍼런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