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사탕
- 감독
- 부성철, 신한솔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장현미, 박화준, 김미경
< 돌아이 >(1985)는 전영록 의 영화다. 이두용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만, 이 영화는 전영록을 논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전영록 그는 누구인가?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걸그룹 ‘티아라’ 멤버 전보라의 아버지로 알려졌지만, 19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의 세대에게는 ‘하이틴 스타’,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이었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종이학’,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불티’ 등이 대표곡이었다. 그는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작사와 작곡 능력도 출중한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니까, 글솜씨도 좋았다.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지금은 지나버린 바람이 쓸쓸하게 나를 감싸주네”(‘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중),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중) 감성 돋는 가사가 솜사탕으로 귀를 간질이듯 다가온다. 그와 다르게 음악은 록 기반이 많았다. 전영록의 외모 또한 이웃집 오빠 같은 인상과 다르게 합기도와 무술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자랑했다. 실제로 그의 별명은 ‘영원한 오빠’이면서 동시에 ‘돌아이’이었다. ‘돌아이’는 전영록 이 군 복무 중 가수 출신 주제(?)에 고참들이 노래를 시키면 가요는 안 부르고 군가를 불러서 얻은 별명이다. 바로 그때 전영록은 < 돌아이 >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인공 이름은 ‘석아’다. 돌 석(石) 자에 아이 아(兒) 자를 결합했다. 다시 말해, 돌아이다. 돌아이, 아니 석아는 걸그룹 ‘드릴러’의 매니저다. 밤업소 스케줄을 정리하고 늦은 시간 귀가하는 멤버들의 택시도 잡아주고 무엇보다 드릴러 멤버를 노리는 늑대들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근데 드릴러의 멤버들, 석아에게는 누나뻘인데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 석아의 눈을 피해 이리 도망, 저리 잠적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극한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일까. 석아에게는 이상(?) 증세가 있다. 평상시에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클라크처럼 어리바리하다가도 불의만 보면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는 슈퍼맨으로 뿅~ 변모한다. 그때 주변에서 보이는 반응이 재밌다. 이런 ‘똘’아이를 봤나. 그런 돌아이의 슈퍼히어로 본능을 깨우는 사건이 발생한다. 드릴러의 베이시스트 미옥이 재벌 2세와 사귀던 중 폭행을 당하자 석아는 이에 분노한다. < 돌아이 >는 서울에서만 9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에 힘입어 4편까지 만들어졌다. (4편의 돌아이는 최재성!) 그만큼 오락성이 뛰어난 영화이었다. 전영록 을 전면에 내세운 <돌아이>는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라는 수식이 무색하게 액션 스타의 면모를 극대화했다. 영화 후반 친누나이자 드릴러의 보컬이 공연을 앞두고 사라지자 대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설정을 제외하면 전영록은 성룡을 연상시키는 맨몸 액션을 영화 내내 선보인다. 이두용 감독은 < 돌아이 >의 액션 콘셉트를 ‘막싸움’이라고 정의했지만, 극 중 석아가 상대 배우와 벌이는 액션은 합이 척척 들어맞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개 이런 종류의 액션은 편집을 잘게 가져가 박진감을 더하는 것에 반해 <돌아이>는 길게 찍는 방식으로 해당 배우의 진짜 실력과 기술을 최대한 노출한다. 그 과정에서 액션의 사실성이 확보될 뿐 아니라 대역을 쓰지 않는 전영록 의 극 중 돌아이적인 면모가 강화된다. 여기에 통쾌감까지 덤으로 주어지는 건 악인들이 이른바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인 까닭이다. 요즘 열정페이다, 갑질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 돌아이 >가 묘사하는 1980년대 당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드릴러의 열정에 업소 영업부장은 한 달 무료 출연을 제안하고 그나마 쥐꼬리 같은 출연료를 지급하는 곳의 사장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멤버 중 한 명을 콕 집어 스폰서를 제안하는 식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꽃(?) 같은 상황에서 돌아이는 악인 척결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구원자 같은 존재다. < 베테랑 >의 또 한 명의 돌아이 서도철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실제로 <베테랑>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 돌아이 >의 팬이었다. 류승완은 책 「류승완의 본색」에서 ‘10대 시절 마지막으로 본 액션영화다운 액션영화는 진유영 주연의 < 인간시장 >(1983)과 전영록 주연의 ‘돌아이 시리즈’ 정도가 아닌가 한다’고 썼을 정도다. 확실히 < 베테랑 >은 < 돌아이 >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에두를 것 없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이두용 의 남성적인 연출이 엿보이고, ‘지옥의 영웅’이라 칭할 만한 서도철의 계보를 훑다 보면 ‘무대뽀’ 정신의 석아가 윗자리 어딘가를 차지하며, 사회 비판적인 모험 활극으로서의 면모는 장르적으로 공유하는 지점이 많다. 요컨대, 돌아이가 남긴 시대정신은 유효하다. 리메이크하여 5편으로 이어가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3대 돌아이는 누가 적역일까. 그에 앞서 전영록은 어떤 역할로 카메오 출연할지가 더 궁금하다.
아침에는 동네 어귀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벚꽃처럼 ‘체리 블라썸’ 향으로 멋을 더하고, 오후에는 꽃샘추위 쌀쌀한 찬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기분 좋게 톡 쏘는 매력적인 향을 넥타이 뒤편으로부터 품어내는 ‘아티산’이 잘 어울리는, 멋쟁이의 작은 사치가 허용되는 살아있는 계절이다. 출근길, 사무실 화병에 꽂힌 청매화 달콤한 향을 맡으며 떠올리는 이란 여성 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애니메이션 < 페르세폴리스 >에서, 주인공의 할머니가 ‘아침마다 재스민 꽃을 따다가 브래지어에 담아 체취를 날리고 아름다운 향을 품어내는 것은 장관이었다.’ 라는 독특한 내러티브는 할머니만큼이나 섬세하고 예민한 작가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으로, 하이쿠 17자 함축에 넋 나가는 것과도 같이 낭만주의자들끼리 향유하는 감성적 현학의 한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따뜻한 절기를 시샘하며 찾아온 4월 봄날의 뜬금없는 눈발은 바깥나들이보다는 따뜻한 온기에 몸을 기울이게 한다. 그래서 필자도 외출보다는 실내에서의 소일거리를 만들어 집안 정리를 시작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외면받았던 책꽂이의 먼지 쌓인 헌책들을 모아서 최근 광주 충장로에 생긴 현대식 중고서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책꽂이나 창고 구석에 쌓인 물건들 중에는 추억을 담고 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법 비싼 값을 치른 음악과 영화 CD는 이제 LP처럼 영 퇴물이 되어 서점, 음반가게와 함께 생명을 다하여 존재감을 상실하는 슬픈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담고 있던 비디오테이프는 골동품 수준으로 집집마다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된지 꽤 오래다. 집안 정리에 이어 연구실의 비디오테이프와 해묵은 자료들을 디지털로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하면서 10년 전에 제작 발표되었던 <여자목욕탕>이라는 졸업작품을 골라잡아 다른 한 손에 올려놓고는 2003년 늦은 가을 저녁, 인사동 서호갤러리 담벼락을 스크린으로 영사한 야외상영회 프리미어를 회상해본다. 목욕탕에 얽힌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인디밴드 음악의 싱크에 맞추어 풀어가는 재미있는 단편애니메이션으로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의 수상실적을 가졌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 감수성은 마치 스폰지 같아서 다양한 경험과 체득들은 꿈과 희망의 나래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건강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솜사탕같이 달콤한 기억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할 각인된 추억의 편린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기억을 더듬듯이 조심스럽게 하모니카 음이 천천히 흘러나오면서, 어린 남자아이는 엄마 손에 끌려 난생처음 여자목욕탕 안으로 들어선다. 이어지는 타악기 비트와 음률에 맞추어 멋쩍은 여자목욕탕의 실내풍경이 펼쳐지고, 점증되어가는 인디밴드 특유의 경쾌한 음악에 적절한 에피소드들이 짝을 맞추어 관객에게 몰입감과 웃음을 더해준다. 여자아이와 아가씨, 아줌마 그리고 할머니까지 가릴 것 없이 다 보여주는 -그렇다고 외설은 아니다. 논픽션일 뿐- 다큐 같은 야릇한 장면들이 옅으면서도 맑은 수묵담채기법으로 신선하고 드라마틱한 한편의 뮤지컬로 연출되었다. … 어릴 적에 엄마 손에 끌려 여자목욕탕엘 갔었지 … … 심술궂은 여자아이가 나를 쳐다보고 … … 때밀이 이태리타올 마사지는 너무 싫었지 … … 미끄러운 바닥에 뛰어다니는 할머니 틀니 … … 어린 시절 냉탕 욕조는 너무 깊어서 빠져 죽을 뻔도 했었지 … 아마도 작가는 목욕탕의 뜨거운 열기와 체온을 한 통의 시원한 바나나 우유로 식히면서 엄마와의 첫 목욕을 마무리 했나 보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기억나는군. 나서는 목욕탕 입구, 찬바람을 콧구멍으로 들이키면서 시원하게 마시던 동래온천 녹천탕 콩국은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로 그 추억을 되감는다. 어린 시절 온몸에 바늘 돋는 뜨거운 열탕과 차가운 냉탕을 오가며 물장구치고 놀던 동심과 엄마에 대한 몽니를 여러분들도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떠오르는 행복으로 다시 한 번 즐겨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