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3
- 감독
- 송능한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한석규, 이미연, 최민식, 안석환, 박광정, 방은희, 박상면, 송강호, 이종상, 남효성, 민도기, 손민석, 김진영, 김호진, 전진태, 전홍렬, 강승용, 송영탁, 배중식, 박길수, 정성갑, 이성호, 이형수, 권오진, 신순식, 광복동, 이정욱, 서우식, 류현철, 홍석천, 문경희, 김동일, 정은주, 김석, 고진명, 권진원, 장대윤, 권재원, 한상욱, 박성웅
작년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안진수 교수 는 영화이론 전공으로 학계에 입문한 후 한국학의 관점에서 한국영화를 연구해왔다. 한국의 언어와 사회, 문화가 영화와 맺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언어의 사용을 통해 발휘되는 표현력을 중심으로 한국영화를 분석하고 있다. 현재 UC 버클리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한국영화에서의 일제강점기 재현 방식을 분석한 Parameters of Disavowal: Colonial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n Cinema(2018)가 있다. 영화학자에서,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한국학자로 강연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 한국영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크게 세 가지 변곡점을 떠올렸는데, 첫 번째로는, <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스티븐 스필버그, 1981)를 중앙극장에서 처음 관람했던 시점을 들 수 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였고, 극중 트럭 추격씬에서 8분간 이어지는 존 윌리엄스(John Towner Williams)의 장엄한 음악이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후에 동일한 제작자 조지 루카스(George Walton Lucas, Jr.)의 <스타워즈> 시리즈에 매료되었다.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를 책방에서 구입해, 조지 루카스에게 쓴 영문 편지를 루카스 필름의 주소로 발송해보기도 했다(지금의 K-POP 팬들처럼). 그때 형성된 영화적 취향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역동적인 액션영화들에 이끌리는 것 같다. <레이더스> 중 / < 스타워즈 >(조지 루카스, 1977) 중 사진: " Raiders of the Lost Ark ", " Star Wars ", IMDb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하였고, 그곳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지역 내 도서관이나 예술영화 상영관에서 꾸준히 영화를 봤다. 같은 시기 영화문화가 융성했던 1990년대 한국을 살아간 시네필들과는 다른 경로로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간 것이다. 그리고 UC 버클리에 영화 전공으로 입학해, 잡지나 책으로만 접했던 영화이론을 공부하였다. 특히 영문학 또는 영화학과의 교수님들로부터 ‘장르영화’를 분석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배움의 범위를 대중적 영화의 영역으로 넓혔던 경험이 유익했다. 완성도는 떨어지는 작품이더라도 이를 문화 안에서 읽어내려는 시도를 이어간 ‘지성’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 시기였다. 학부를 마친 후, 영화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UCLA 영화이론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이때 서구의 영화이론과 한국영화 사이에 모종의 괴리가 존재함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UCLA에는 지금까지 왕성히 활동 중인 한국학 연구자들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들과 함께 민족주의에 관한 세미나에 참여하고 관련 강연을 들으며 동아시아학과 한국학 담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박사논문의 주제로 ‘1950~60년대 한국 멜로드라마의 대중 논리’를 설정했다. 박사논문을 위한 자료 조사를 위해 1년 여간 한국에 머물렀는데, 이때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을 자주 방문하여 한국고전영화를 보았다. 당시에는 연구자들이 한국고전영화를 보려면 영자원이 개최하는 ‘좋은 영화 보기’ 행사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개인이 영화를 선택하여 볼 수 있는 영상도서관을 아직 영자원에서 개관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옛날 작품을 무작위로 보면서 오히려 한국고전영화에 대한 일종의 ‘감각’을 얻게 되었다. 영화 역사가나 평론가에 의해 비중 있게 거론된 적이 없었던 좋은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상당했다(예를 들어, 인공적 세트를 너무나 아름답게 활용한 < 그 여자의 일생 >(김한일, 1957)을 꼽고 싶다). <그 여자의 일생> 중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뉴욕대학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고, 이후 한국어 강사로 1년간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한국영화와 관련하여 오늘 말씀드릴 주제(영화 속 일상언어와 언술행위)를 연구하게 된 데도 당시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듯 싶다. 2007년부터는 홍익대 조치원 캠퍼스에서 영상영화전공 교수로 영화이론과 영화사, 그리고 게임을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에 대해 강의했고, 2012년부터는 UC 버클리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학과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현재 미국 학계 안에서 한국영화는 한국학과 영화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해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학 전반이 그렇듯이 한국학에서도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한국영화는 앞으로 영화학보다 한국학 의 범주 내에서 더욱 활발히 연구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학에서는 언어, 즉 소통의 수단을 넘어 특정 지역민들의 삶의 형태 전체를 배운다. 영화를 깊이 있게 연구하려면 영자원과 같은 아카이브에서 1차 자료를 접해야 하고, 이외에도 그 지역의 언어로 작성된 수많은 연구 성과를 익혀야 하므로, ‘언어’를 다루는 한국학은 한국영화 연구를 위한 유용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영화에 관한 학술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주체는 여전히 대부분 한국학 관련 기관이며,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학과에서 ‘한국어’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한국영화’로 옮겨가는 현상도 자주 관찰된다. 다만 한국학과 같은 지역학의 관점에서 영화를 연구할 때 발생하는 한계도 있다. 한국영화를 한국사회와 역사의 단순한 반영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지역학 전공 학생들은 영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강의 전에 이에 관한 개념을 먼저 교육할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에 관한 최근의 연구 주제 역시 다양한데, ‘감응’과 ‘정동,’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집중한 (OTT와 같은) ‘플랫폼’의 문제, ‘재현의 정치,’ 요즘 들어 더욱 주목받고 있는 ‘포스트 휴머니즘’과 ‘신유물론’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또한 특정 지역의 영화를 보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간(間)국가적 영화제작 및 문화 연구도 이뤄진다. 나의 한국영화 연구 이력을 소개하자면, 먼저 한국영화에서 일제강점기가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분석한 적이 있다( Parameters of Disavowal ). 그리고 지금은 영원히 매료될 만한 소재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연구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이상한 느낌의 문어체 대사는 무척 흥미롭고,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그 생각이 번져 다른 한국영화들의 언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Parameters of Disavowal: Colonial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n Cinema (2018) 말문이 트인 한국영화, 대중을 만나다 < 기생충 >(봉준호, 2019)이 보여줬듯이, 2000년대 이후 많은 한국영화들이 대중성과 예술성의 동시 달성이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요즘 주목받는 감독들의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확인되고 있는 이러한 한국영화의 특성은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지난 20~30년간 한국사회는 전면적이고도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정치적으로는 독재정권의 권위주의 체제를 탈피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시장 주도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되거나 분출될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 환경 역시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했으며, 영화산업의 구조와 기술 또한 크게 바뀌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와 함께 한국영화를 주도하는 세대 또한 교체되었다. 그간 많은 영화학자들이 이와 같은 한국영화의 변화에 대해서 두터운 지식과 논의를 생산해왔다. 예컨대, 1970~80년대 청춘영화에서 체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 정신을 읽는다거나 1990년대 뉴 코리안 시네마를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리얼리즘과 연관지어 분석하는 경향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 변화의 주된 양상 200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이 형성된 계기는 앞선 시대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당시 한국영화에게는 ‘ 대중성 ’ 확보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는데, 동시에 새로운 표현력까지 갖추고자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나는 이 대중성과 표현력을 모두 아우르는 변화의 단초를 신체와 언어의 표현 방식 에서 찾는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시간적 흐름에 따라 한국영화에서 차츰 다르게 반영되어왔다. 가령 < 바보선언 >(이장호, 1983)과 같은 작품은 무성영화와 흡사할 정도로 대사가 적다. 대신 관객은 <바보선언>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듯, 인물들의 억압된 몸짓에 응축되어 있는 상징적 의미를 두텁게 읽을 수 있다. 영화 속 언술을 감시하는 ‘검열’이 강력했던 시기인 만큼 영화에서 의미심장한 ‘말하기’가 진행되기 어려웠다는 점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 파업전야 >(이은기, 이재구, 장동홍, 장윤현, 1990), < 그들도 우리처럼 >(박광수, 1990), < 이재수의 난 >(박광수, 1998) 등 말수가 적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선을 보였다. 영화를 이미지의 매체로 보려는 경향, 즉, 말이 없더라도 심도 깊은 주제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공유되었던 시대였다고 본다. 다만 200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가 이룬 성취를 보았을 때, 더 이상 이러한 믿음이 통용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수가 적은' 한국영화 <바보선언>, <파업전야>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1990년대에 들어서며 나타난 < 서편제 >(임권택, 1993)나 < 꽃잎 >(장선우, 1996)과 같은 진지한 예술영화들은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주변화하고 착취하며,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몇몇 작품들을 시작으로 한국영화에서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 개같은 날의 오후 >(이민용, 1995), < 처녀들의 저녁식사 >(임상수, 1998), < 주유소 습격사건 >(김상진, 1999) 등이 그것이다. 독특한 말과 함께 욕설도 등장하는 < 넘버 3 >(송능한, 1997/이상한 말투로 화제가 된 송강호가 이 작품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양한 욕설을 십분 활용한 < 황산벌 >(이준익, 2003) 역시 인상적이었다. 극중 대사와 욕설의 비중을 늘린 대표적 한국영화 <넘버 3>와 <황산벌> 대사가 급증한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대중성을 ‘언어’의 사용에 초점을 맞춰, ‘ 말문이 트인 영화 ’라는 개념으로 분석하고 싶다. 먼저, 영화 속 언어와 관련된 몇 가지 전제를 언급하려고 한다. 영화는 문어가 아닌 구어, 즉 일상어 에 의해 진행된다. 언어의 의미는 실제로 ‘사용됨’으로써 습득된다는 일상언어철학의 관점을 따른다면, 언어의 특유한 의미는 인물들이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맥락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발화자의 ‘신체’를 볼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영화의 언어는 신체와 결합 된 채 지각된다. 신체유물론을 주장한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에는 외부와 관계를 맺고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가 집합되어 있다. *주1 삶을 통해, 혹은 노동 및 관계의 형성과 마찰을 통해 얻은 감각은 이 복합적인 물질 덩어리인 신체에 매번 아로새겨진다. 영화는 인물의 신체와 결부된 언술 행위의 직접적인 의미작용을 통해 그와 같은 중층적인 신체의 의미를 강렬하게 환기시킨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신체의 의미를 알레고리와 같은 좁은 경로로 한정하여 표현했던 것과 달리, 2000년대 이후에 나온 한국영화는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언어와 신체라는 두 가지 표현의 축을 비비고 충돌시키며 고유한 사실감각과 공감, 정서 를 일구어냈다. 또 다른 전제는 언어와 세상이 접착 되어있다는 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철학에서 언어와 세상이 ‘직조’되어있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둘의 긴밀한 관계를 더 강조하고자 ‘접착’이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 더불어, 역시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했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어의 의미는 문자화된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사용’을 통해서만 파악 될 수 있는 것이다. 2000년대 한국영화와 대사: 보고 듣는 재미의 본격화 나는 지금까지 나열한 이 전제들이 영화에서 자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는, 명민한 작가들에 의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언어가 사용되며 표현력이 극대화되었고, 그로 인해 한국영화 고유의 현실감각과 주제적 심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언어의 기발한 사용 방법이 한국영화에서 빛을 발한 몇 가지 순간을 소개하려고 한다. 각 작품 속 개별 장면들에 나타난 개성 가득한 언술이 얼마나 재치 있게 또는 날카롭게 현실감각을 끌어내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당거래> 중 먼저 < 부당거래 >(류승완, 2010)의 그 유명한 명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를 보자. 극중 주양( 류승범 )은 타인에게 그리 호의적인 인물이 아님에도 이 대사 한 줄만은 유독 큰 관심을 받아왔다. 해당 언술이 사회 현실의 어떠한 측면을 덩어리째 노출했기에 관객이 그 사실성에 깊이 공감했다고 본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내재된 근본적인 문제, 즉 예의와 선의를 다하면서도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에서 생생한 현실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영화의 대사에 당대 한국의 체험적 현실이 접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베테랑> 중 류승완 감독은 액션들 사이에 묻어나오는 간결한 대사로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관한 문제를 손쉽고도 재치 있게 해석한다. < 베테랑 >(2014)에서 범죄 현장에 나타난 서도철( 황정민 )을 본 중고차 매장 업주( 배성우 )가 “아까 낮에, 저기... 사장님?” 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아주 유쾌하다. ‘사장님’을 명칭이 아닌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전 소장( 정만식 )은 경찰의 눈을 피해 도피하라고 권하는 최 상무( 유해진 )에게 “나도 듣는 귀가 있어요, 상무님아. 여기 배고프고 성실한데 겁 없는 애들 많아” 라고 받아친다. 상무님이라는 호칭에는 ‘님’이 붙어 존대의 의미가 있지만, 그 뒤에 손아랫사람이나 짐승 따위를 낮춰 부를 때 쓰는 ‘아’라는 호격조사가 붙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호칭과 개인의 폄하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처럼 위계상 낮은 위치에 있는 인물의 말문이 트이도록 설정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 중 인물의 특성이 명확히 나타나는 대사와 행동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에서 박두만( 송강호 )의 공중 발차기와 함께 들리는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도 인상적이다. 극중 박두만이라는 인물의 특성을 대사와 행동으로 간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으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물음’만을 던지는 폭력적인 공권력의 현실을 한꺼번에 품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포착해 낸 1980년대 삶의 형태는 이 짧은 언술로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영화 속 언어의 사용 방식을 관찰하면서 참고할 만한 개념으로 ‘ 교감적 소통 (Phatic communication)’도 소개하고자 한다. 교감적 소통은 자신의 물음에 대해 상대가 실질적인 답을 전해주기를 요구하지 않고, 서로가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진행하는 소통을 가리킨다. 상대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자신 역시 동일하게 대답하는 상황, 사실 그가 정말 안녕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만 서로가 소통하고 있음을 인지하고자 행하는 언술이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소통은 사회에 깊이 스며든 관습이기도 한데, 이를 영화에서 평상시와는 다른 맥락으로 사용하여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2005)에서 출소한 금자( 이영애 )에게 전도사( 김병옥 )는 두부를 건넨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금자 씨는 자신을 맞아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금자 씨는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도발적 언술로 교감적 소통의 암묵적 규칙을 위반한다. 두부가 떨어지자마자 이어지는 심벌즈 소리와 전도사의 리액션 숏, 그리고 금자의 대사 직전에 트래킹되어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는 “너나 잘 하세요”의 위반적 함의를 충격적인 반응으로 담아내었다. 금자의 언술 앞에서 전도사는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른다. 비틀어진 언어가 인물 간의 관계에 얼마나 깊은 자장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친절한 금자씨> 중 2003년 개봉작인 < 올드보이 >와 < 살인의 추억 >에 나타난 언어에 대한 사유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자. 일단 두 작품 모두 ‘ 소문 ’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언어가 사회적 산물이듯, 소문은 제한된 정보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구획 짓는다. <올드보이>에서의 소문은 수아( 윤진서 )의 상상 임신으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복수로 우진( 유지태 )은 언어를 사용한 ‘최면’을 택한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소문은 수사 진행의 직접적인 단서로 작용하며, 의문이 들더라도 믿지 않을 수 없는 모종의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두 편 모두에서 ‘ 매체 ’를 경유한 언술이 등장한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 최민식 )는 오랜 기간 투옥되었다보니 신조어를 잘 모른다며 텔레비전은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오대수에 대한 최면술이 끝날 때는 오디오 매체가 작동하는데, 이는 최면술사 형자( 이승신 )의 태도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형자는 우진과 오대수의 감금을 모의한 자임에도 그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솔직히 내가 선생을 도울 이유는 없죠” 라며 자신은 이 사건과 무관한 독립적 주체임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대수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그녀의 최면술이 그런 인간적인 배려 이면의 ‘기계적’인 과정이라는 감독의 인식이, 음성 기록 매체가 작동하는 모습과 연결되어 제시되고 있다. 오디오 기록 매체는 <살인의 추억>에서도 중요한 소재이다. 범행 목격 사실을 진술하는 백광호( 박노식 )의 녹음된 육성은 그대로이지만, 추후에 이를 다시금 들어본 형사들의 해석은 변화했다. 이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목격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자백을 강요했지만, 결국 다시 ‘듣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그 언술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영화는 타자의 언술을 듣는 행위가 지닌 두터운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살인의 추억> 중 오디오로 녹음되는 백광호의 음성, 이를 다시 듣는 박두만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술 장면을 보여드리며 발표를 마치고 싶다. < 우리들 >(윤가은, 2016)에서 친구와 다투다가 상처를 입은 동생 윤( 강민준 )에게 누나 선( 최수인 )은 맞은 만큼 다시 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서 말한다. 하지만 윤은 “또 때렸어야지”라고 나무라는 누이 선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언제 놀아?” 그에게는 보복보다 ‘놀기’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 간명한 언술은 그 화자가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계에서 놀이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는 별다른 해석이 요구되지 않는데,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즉 그의 삶의 형태가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청자인 선의 당황스런 그러나 진지한 반응을 통해, 영화는 노는 것이 실존적인 행위임을 강조한다. 영화 속 언술이 지닌 위력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우리들> 중 영자원의 기관지 《아카이브 프리즘》의 2023년 12호 의 주제는 ‘대사’였다. 현재(2024년 7월 당시) 한국영화박물관의 기획 전시 역시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과도 맞닿는, 한국영화를 수식하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강연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 질문과 답변 * (질문1) <살인의 추억> 속 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 를, 개인적으로는 “그런 짓을 하고도 감히 밥이 넘어가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해석을 듣고 나니 교감적 소통의 일부로서 인물의 특성과 한국사회의 관습성을 암시하는 매개체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 아가씨 >(박찬욱, 2016)나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과 같은 최신 한국영화의 대사에 외국어가 사용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 중 한 장면을 예로 들자면, 송서래( 탕웨이 )의 중국어 대사가 통역기에 의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로 변모한다. 그가 사용한 중국어 단어는 ‘마음’을 의미하는데도 통역기에 의해 ‘심장’으로 오역되었는데,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이러한 언어의 미끄러짐을 포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한국영화이므로, 외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 이러한 한국영화들 속 외국어 대사의 함의 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워싱턴대학교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김응산) <살인의 추억> 중 / <헤어질 결심> 중 (답변) 10여 년 전부터, 관객들은 한국영화의 ‘명대사’를 열렬히 기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이 적극적으로 뒤따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밥은 먹고 다니냐?”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인데, 나는 그러한 노력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흥미로운 해석을 덧붙여 주셔서 감사드린다. 두 번째 질문의 경우,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언어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번역 작업 을 진행하시는 분들의 각별한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 강연의 내용과 연관 지어서는 섣불리 답을 드리기 어려울 듯하며, 관련 주제로 지속적으로 고민해보야아 할 것 같다. (질문2) 언어가 내러티브 진행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만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라는 대사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렇게 되면 특정 대사가 한국사회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납작한 논의가 발생할 우려도 있어 보인다. (답변) <부당거래> 속 대사는 한 가지 공통의 삶의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기보다, 관객 각자가 개별적으로 현실을 경험하며 느낀 무언가 를 포착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 경제와 같은 거시적인 틀로 논의될 수 있는 한국사회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관객 각자의 경험적인 요소들이 위 대사를 통해 건드려진 것 아닐까 싶다. 아마 인류학 연구가 이러한 요소를 조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코멘트1) 선생님께서 분석해주신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속 대사는, 매체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며 대사가 영화에서 분리되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변화 할 수 있게 된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 지어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대사가 영화 바깥에서 활발히 유통되는 양상에서 어떠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이렇게 재생산되는 언술들은 ‘영화’의 대사라고만 인식할 수 있을지 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코멘트2) 2000년대 초반, 장르적 특색을 띤 채 대중성을 얻은 한국영화에서 언어적 사실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알려주셨다. 이때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언어적 표현 중 하나가 ‘욕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욕설은 말씀해주신 것처럼 경험적 현실을 포착하는 대사로 기능하다가도, 어떤 장르(조폭 코미디 등)에서는 단순히 장르적 클리셰의 일환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욕설이 아닌 다른 종류의 언어적 표현도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특정한 언술이 장르적 관습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현상 도 눈여겨 볼만 하다.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답변) 좋은 지적 감사드린다. 조폭 영화에서는 특히 언어적 코미디가 부각되는 것 같다. 또한 앞서 보여드린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유쾌한 언술들 역시 ‘대중성’ 확보의 수단 으로 작용하는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질문3) 2000년대 한국영화의 중요한 특성으로서 언어와 신체의 표현성을 강조해주셨고, 저 역시 말씀해주신 관점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이 본격화된 시점 이 언제인지, 어떠한 작품들을 보면서 이를 실감하셨는지를 여쭈어보고 싶다. 더불어, 한국영화가 그렇게 ‘말문이 트이게 된’ 원인 으로 파악하신 바가 있으신지 역시 궁금하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조준형) (질문4) 앞의 질문과 겹치는 내용이 있어 함께 문의드리고 싶다. 말씀해주신 대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한국영화가, 시나리오 작성 단계에서부터 창작자들이 여러 방면으로 공을 들여 ‘말문이 트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다만 이 변화에 기여한 요소로 사회문화적 영향, 영화를 제작하는 기술적 조건의 변화 등도 고려하실 예정이실지를 여쭈어보고자 한다. 당시 한국영화계에서는 동시녹음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감독들이 대사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창작에 관한 아이디어 역시 다방면으로 발생했는데, 듣기로는 <살인의 추억>의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대사가 봉준호 감독이 설계한 대사들 사이의 빈 공간을 송강호 배우가 애드리브로 채운 결과라고 한다. 이렇게 배우를 포함한 여러 창작자의 공동의 노력이 가능해진 환경 으로의 변화가 한국영화의 말문이 트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실 계획이 있으실지가 궁금하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 정종화) (답변) 아직 구체적으로 고려하지는 못했지만, 논의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말씀해주신 대로 이 시기에는 동시녹음과 더불어 <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 1997)의 국내 개봉과 함께 돌비 시스템이 갖춰지는 등 소리의 청량함을 더하는 기술적 변화 가 나타났다. 그보다 이전에 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연구해보고 싶다. 언어적 실험으로 한국영화의 표현력을 확장하는 최근의 감독들 , 예를 들어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기생충>에서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북한 아나운서의 흉내를 내는 언술), 나홍진 감독(< 곡성 >에서 ‘대화’가 지닌 중요성) 등의 작품으로, 영화가 지닌 가치를 ‘ 한국어 매체 ’의 측면에서 더욱 드높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 주1. 테리 이글턴, 『유물론』, 전대호 역, 갈마바람, 2018, pp. 27~28.
2001년 | 좋은영화 감독: 김상진 | 원안: 이해영 이해준 김영호 | 각본: 박정우 | 제작: 김미희 | 기획: 강우석 | 촬영: 정광석 | 미술: 조성원 | 음악: 손무현 CAST 박영준: 이성재 | 최기동: 차승원 | 민주란: 김혜수 | 민주섭: 이종수 | 천수: 이원종 | 덕섭: 성지루 | 넙치: 유해진 2000년대 전반기 한국영화의 가장 강력한 트렌드 중 하나는 이른바 ‘조폭 영화’였습니다. < 친구 >( 곽경택 , 2001)를 필두로 < 달마야 놀자 >( 박철관 , 2001) < 조폭 마누라 >( 조진규 , 2001) < 가문의 영광 >( 정흥순 , 2002) 등은 모두 이후 시리즈로 이어지는 흥행작들이었죠. <신라의 달밤>도 이 시기 나온 영화였고 큰 흥행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 주유소 습격사건 >(1999)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제작사 좋은영화와 김상진 감독이 다시 만난 이 영화는, 조폭 영화이면서 동시에 삼각관계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현장 공개는 주란(김혜수)이 경영하는 ‘주섭이네 라면’ 가게입니다. 주섭(이종수)이는 주란의 말썽쟁이 동생으로 조폭이 꿈인 고등학교 ‘짱’이죠. <신라의 달밤>에서 이 공간은 주란과 영준(이성재)과 기동(차승원)의 관계가 시작되고 변화하는 중요한 곳인데요, 영화를 위해 지은 오픈 세트입니다. 꽤나 그럴 듯해서, 촬영 기간 동안 진짜 분식집인 줄 알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신라의 달밤>의 가장 큰 갈등은 영준과 기동 사이에서 생깁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죠. 차승원이 역할을 맡은 기동은 당시 ‘짱’이었지만 이젠 모교의 체육 교사입니다. 한편 과거 ‘범생이’였던 영준은 지금 조폭이 되어 있죠. 하지만 겉모습만 보면, 기동이 조폭 같고 영준이 선생님 같습니다. 사실 차승원과 이성재는 < 자귀모 >( 이광훈 , 1999)에서 만난 적이 이었는데요, <신라의 달밤>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친해졌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이성재와 외향적인 제 성격으로 인해 껄끄러운 부분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기우였고, 두 사람은 금방 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란과 동생 주섭. 주섭은 매일 같은 싸움질에 얼굴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습니다. 코미디 이미지가 강한 배우지만, 놀랍게도 <신라의 달밤> 이전에 차승원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었습니다. < 세기말 >( 송능한 , 1999) < 리베라메 >( 양윤호 , 2000) 등에서 비열하거나 악한 캐릭터를 맡았는데요 <신라의 달밤>에서 확실하게 이미지가 변하죠. 이후 < 광복절 특사 >(김상진, 2002) < 라이터를 켜라 >( 장항준 , 2002) < 선생 김봉두 >( 장규성 , 2003) < 귀신이 산다 >(김상진, 2004) 등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200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 배우가 됩니다. 사실 이성재가 맡은 영준은 쉽지 않은 캐릭터였습니다. 영화에선 아무래도 기동이 돋보였고, 영준은 뉘앙스를 통해 연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기동처럼 내지르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성재는 매우 뛰어나게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데요, ‘젠틀한 조폭’인 영준은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한 살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3월의 촬영 현장은 꽃샘추위가 대단했는데요, 설정상 가을 양복을 입어야 했던 이성재는 꽤나 추위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그런 기색을 내지 않았습니다. 1998~2000년에 <김혜수의 플러스유>를 진행하면서 김혜수는 다시 배우로 돌아오기 위해선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에서 <신라의 달밤>은 그녀에게 유쾌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여행 중이던 비행기 안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네요. 차승원과 김혜수는 동갑내기이자 이미 <김혜수의 플러스유>에서 MC와 게스트로 만난 적이 있었죠. 그런 이유로 별 어려움 없이 공연할 수 있었고, 호흡도 잘 맞았다고 합니다. 차승원은 김상진 감독의 전작 <주유소 습격사건>에 카메오로 출연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아쉽게 잘린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고, <리베라 메> 촬영이 끝날 즈음 <신라의 달밤> 시나리오를 접한 후 읽자마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주란과 영준 사이에 약간 어색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김상진 감독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김 감독이 연출하기까진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원래 이 영화는 강우석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죠. 그런데 잘 풀리지 않았고,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김상진 감독이 개입하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했고 결국 직접 메가폰을 잡게 되었습니다. 김 감독은 박정우 작가와 함께, 가장 먼저 조폭과 교사의 성격을 바꾸었다고 하는데요, 원래는 교사가 과거엔 짱이었고 조폭은 예전엔 모범생이었다는 설정을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정광석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 동감 >( 김정권 , 2000) 포스팅 에서도 언급했던 정광석 촬영감독은 1960년대부터 활동했던, <신라의 달밤> 현장에선 60대 중반이었던 카메라의 장인이죠. 그럼에도 직접 크레인에 올라가 뷰파인더를 직접 챙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김상진 감독은 다음 작품인 <광복절 특사>(2002)도 정광석 촬영감독과 함께 했습니다. 이 날 촬영은 조금 정신 없었는데요, 분식집에 걸려 있는 여러 신을 한꺼번에 찍었기 때문이죠. 그 중 한 장면은 분식집을 찾아온 기종이 굳게 잠긴 문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채는 신이었습니다. 주란과 영준이 함께 야유회를 간 것이었는데요, 기동만 허탕 친 게 아니었죠. 여학생 세 명도 분식집 문이 잠겼다며 다른 곳으로 가는데요, 이 학생들은 현장에서 캐스팅 했습니다. 하교 중이던 경주여중 학생들이었는데요, 한 번의 NG도 없이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아 스태프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엉겁결에 분식집 일을 돕게 된 기동의 엉거주춤한 모습입니다. <신라의 달밤>이 7번째 영화인 차승원은 코믹 연기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적인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코미디는 해보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웃기기 위한 설정으로 장면을 만들어내는 건 사실 뻔하잖아요.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 그래서 박장대소할 수 있는 웃음이라야 먹히는 거죠.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김혜수 이성재 차승원의 조합이 좋았던 로맨스 조폭 코미디 <신라의 달밤>. 원래는 강우석 감독이 고소영 이성재 박중훈 캐스팅으로 찍으려 했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나의 애도의 방식. 먼저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여기 없는 이름. 서정민 촬영감독은 한국영화사에서 빛나는 이름 중의 한 분이다. 그건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촬영이라는 자리. 연출의 곁. 임권택 에게 정일성 이 따라오는 것처럼 서정민을 이야기할 때는 이만희가 따라왔다. 하지만 종종 현장에서 그보다 더 중심에 있는 자리. 일화에서 시작하겠다. 나는 고인을 현장에서 단 한 번 뵈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 여고괴담 > 현장을 견학하게 되었다. 먼저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998년은 어떤 단절이 이어지던 시간이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지만 갑자기 새로운 영화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미학적 연대도 하지 않았으며(이를테면 네오 리얼리즘), 그렇다고 같은 영화사에서 자본의 일시적인 변덕의 힘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며(이를테면 쇼오치쿠 누벨바그), 어떤 정치적 입장도 공유하지 않았으며(이를테면 체코 누벨바그), 같은 시대의 공기를 공감하고 있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파리의 누벨바그) 그냥 난데없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오던 충무로에 갑자기 새로운 영화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전통을 따랐고, 누군가는 희미하게 연결 지었고, 누군가는 완전히 외면했다. 1996년 5월에 홍상수 의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 개봉하여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그해 11월에 김기덕 의 < 악어 >가 소리소문 없이 개봉한 다음 사라졌다. 1997년 이창동 이 < 초록물고기 >를 찍었다. 그리고 송능한 이 < 넘버 3 >를 찍었다. 정반대의 두 영화. 그 이듬 해 1998년, 허진호 의 < 8월의 크리스마스 >와 이광모 의 < 아름다운 시절 >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해 봄에 김지운 이 < 조용한 가족 >을, 가을에는 임상수 가 < 처녀들의 저녁식사 >를 찍었다. 이 시기를 소개하면서 서방세계에서는 포스트 뉴 ‘코리언’ 웨이브라고 부른다. (첫 번째 물결은 1989년 장선우 , 이명세 , 박광수 가 나타났을 때이다. 그런 다음 이 영화들을 앞선 영화들에서 분리해냈다) 박기형 은 충무로 도제제도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서울단편영화제에서 (거의 중편에 가까운) < 과대망상 >으로 주목을 모은 다음 곧장 첫 번째 장편영화 <여고괴담>을 만들었다. 지금은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그때는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그는 다른 ‘신인’ 감독들과 달리 장르영화로 곧장 달려갔다. 나는 새로운 작가는 새로운 영화를 발명하면서 발견되지만 영화산업 전체가 새로워질 때는 새로운 장르영화가 나타날 때라는 로빈 우드의 문장에 밑줄을 그은 세대이다. <여고괴담>은 박기형의 야심과 상관없이 앞으로 십 년의 한국영화 산업을 결판 지을 거라는 생각을 그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박기형은 이 새로운 물결에 합류하였다. 현장을 보러 간 날은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을 위해 밤샘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 영화의 촬영이 서정민이었다. 그때 서정민은 이미 148편의 영화를 찍었고 현장에서 모두가 어려워하는 ‘촬영감독님’이었다. 149번째 영화라는 표현을 한번 상상해주기 바란다. 1961년에 첫 영화를 찍은 촬영감독과 어떤 도제제도의 수업 없이 1998년에 첫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 모두들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배우들은 이미연을 제외하고 그때 모두 신인이었고 박기형은 첫 번째 장편영화를 찍는 상황에서 곤혹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현장에 스태프들이 너무 많았고 콘티는 정확하지 않았고 (아마도 중간에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변화가 생겼음이 틀림없고) 게다가 영화촬영을 하면 아침이 일찍 찾아오는 법이다. 온 사방이 교실 창문이었고 필름으로 촬영하던 그때는 지금처럼 색 보정 작업이 많은 부분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박기형은 완전히 지친 상태였고 새벽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감독을 불러 몇 장면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그때 카메라 옆에 조용히 있던 서정민 촬영감독이 다가와서 화가 난 목소리로 박기형을 꾸짖었다. “박기형, 당신 으악새 감독이야? 이거 데뷔작이잖아. 첫 번째 영화 찍는 감독이 이러면 안 돼. 이 바닥에서 한번 호구 잡히면 그냥 끌려다니다가 인생 종 치는 거야. 창문에 암바(暗部處理) 쳐 줄 테니까 당신이 원래 하고 싶었던 거 그냥 해. 그래도 돼, 데뷔감독은 그래도 돼” 시간이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나는 이 사람이 멋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서정민 촬영감독 물론 서정민 의 대표작들은 1960년대에 이만희 와의 작업이다. 그 중에는 < 만추 >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다음 1980년대에는 ‘돌아온’ 이장호 와 < 바람 불어 좋은 날 >을 시작으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영화들을 찍었다. 서정민의 마지막 파트너는 김기덕 이었다. < 야생동물보호구역 > < 파란 대문 >과 < 수취인불명 >을 작업했고, 김기덕은 가끔 내게 서정민 ‘촬영감독님’과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석임에도 최대한의 존경을 표하는 태도를 취한 다음 기꺼이 그와 함께 작업한 현장에서 “영화를 배웠다”는 표현을 썼다. 임권택 과는 많은 작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50편의 습작을 찍고 난 다음 그 자신의 ‘첫 번째’ 연출이라고 부른 < 잡초 >를 서정민 이 찍었다. 아마도 임권택을 임권택답게 만든 그 순간. 거의 필사적인 도약의 결정. 차라리 절망으로 인한 결심이라고 불러야 그 자리. 그때 임권택은 이름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촬영감독들과 영화를 찍었다.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임권택은 <잡초>를 위해서 서정민을 선택했다. 이 영화는 임권택이 제작한 처음이자 유일한 영화이다. 임권택과 서정민이 함께 작업한 영화는 모두 14편이다. 그러므로 160편에 달하는 촬영목록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저 잠시 머문 것 같다. 처음 작업한 영화는 1970년 < 애꾸눈 박 >이었고, 순서대로 이야기하면 1971년에는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 둘째 어머니 > < 명동 삼국지 >, 그리고 1972년에는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 < 명동잔혹사 >, 1973년에는 <잡초> < 대추격 > < 증언 >을 찍었다. 그런 다음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1975) < 맨발의 눈길 > < 낙동강은 흐르는가 >(1976)를 찍었다. 그 사이에 < 왕십리 >와 < 상록수 > < 족보 >를 이석기 와 찍었다. 그저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만희 는 서정민과 헤어진 다음 이석기와 작업을 했다. 연출과 촬영 사이의 각자의 모색. 끊임없는 실현. 이미지 사이에서의 미세한 차이들. 이 시기에 임권택은 정일성 을 만나 < 신궁 >(1979)을 찍었고, 1980년에 < 복부인 >을 서정민과 찍었다. 그런 다음 1984년에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를 찍은 게 마지막이다. 서정민은 다른 감독들과 그 이후에도 계속 작업했고 그 명단에는 김기영도 포함되어 있다. 임권택도 물론 이석기, 구중모 , 그리고 정일성과 다음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영화가 무언가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그것이 안타깝다. 왜냐하면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의 한 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새로운 예술적인 우정이 막 시작하려는 순간 멈춘 것만 같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우정을 나누려는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다. <맨발의 눈길>의 혜선(左), <잡초>의 분례(右) 두 사람의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 맨발의 눈길 >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임권택 감독께서 단 한 번도 긍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 잡초 >를 한 번 더 찍은 것이라고 거의 단정 내리고 싶어진다. 다만 이렇게는 약간 망설인 끝에 덧붙였다. “그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잡초>를 쓴 나한봉 씨 밑에서 오랫동안 수업을 쌓은 박찬성 씨에요, 아마 그런 영향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 원작을 찍은 사람이 그걸 몰라볼 수가 있을까. 예술에서 한 번 더 한다는 것. 임권택의 다시 한 번. <잡초>는 분례가 차례로 네 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그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맨발의 눈길>은 고아원에서 나온 혜선이 세 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그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두 영화의 이야기는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미 어디선가 두 점의 <양산을 든 여인>을 예로 들면서 임권택이 모네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임권택은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실패를 응시하는 것. 하지만 그 실패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이때 놓쳐서 안 되는 것은 임권택이 반복할 때 그 과정에서 무엇을 훔쳐내고 싶어 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잡초>를 볼 수 없다. 사라진 자리. 그리고 임권택은 그 자리에 다시 왔다. 도대체 다시 온 것은 무엇일까. 임권택은 거기서 무엇을 다시 한 번 ‘재연’하고 싶었던 것일까. 거기에 어떤 보물이 있었던 것일까. 이때 임권택은 <맨발의 눈길>을 찍으면서 <잡초>를 찍은 서정민 을 다시 불렀다. 그 해에 임권택은 서정민과 이석기 두 촬영감독과 번갈아 작업했다. 그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서로의 일정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서정민의 쪽에서 바라보면 좀 더 기괴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서정민은 이 해에 6편의 영화를 찍었고 두 편을 임권택과 작업했다. 이때 두 편은 <맨발의 눈길>과 < 낙동강은 흐르는가 >이다. 다시 설명하겠지만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마치 < 증언 >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단편 중의 하나를 다시 한 번 확장시켜놓은 것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증언>은 (특수촬영을 장석준이 하고) 서정민이 찍었다. 1976년에 임권택은 이미 해본 것을 다시 한 번 해보는 것만 같은 반복 안에서 그 무언가를 확장시켜놓은 다음 마치 이미 해본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정민과 다시 한 번 그걸 해보고 있다. 그 안에서 무엇이 활동하는 것일까. 거기서 무엇을 수정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 차라리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껴보려는 것일까. 이 우연의 일치는 무언가 자꾸만 이 과정을 능동적인 선택이라고 해석하고 싶게 유혹한다. 두 번째 이유는 다소 내속적인 성질에 관한 설명이다. 반복은 여기서 기이하게도 재귀의 순환운동 안으로 들어서자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 맨발의 눈길 >을 처음 보면 무언가 영화의 기호들이 대부분 부서졌다는 인상을 준다. 단지 실패했다고 설명하면 쉽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어떤 순간들이 이 영화에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그것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어떤 자리에서 영화가 멈춰 서 있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기괴하리만큼 불만족스러운 히스테리에 가득 차 보인다. 임권택 은 단 한 번도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그건 그의 세대들이 모두 그러하다. 다만 옴니버스의 형태로 다른 감독들과 함께 만들기는 했다. 그래서 이미 <맨발의 눈길> 이전에 < 명동잔혹사 >를 변장호 , 최인현 과 함께 찍었다. 하지만 홍상수 의 < 첩첩산중 >(< 디지털 삼인삼색 >의 한 편), 박찬욱 의 < 심판 > <찬드라의 경우>(< 여섯 개의 시선 > 중의 한편), <컷 Cut!>(< 쓰리 몬스터 >의 한 편) < 파란만장 > < 청출어람 >, 봉준호 의 < 인플루엔자 >(< 디지털 삼인삼색 >의 한 편)처럼 적극적으로 작업하지 않았다. 하지만 <맨발의 눈길>은 혜선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세 명의 남자와의 우여곡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세 개의 이야기, 세 편의 영화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이다. 임권택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안의 고유한 리듬, 그 안의 균형감각, 그 세계의 일관성,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감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적어도 그런 의미에서) 고전적인 연출자이다. 심지어 실패할 때조차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무너지면 그건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예외의 기준을 세워둔 것처럼 그냥 밀고 나아간다. 심지어 어떤 곤궁처럼 여겨지는 데도 상관없다는 것만 같은 어떤 태도가 있다. 틀림없이 이 영화의 어느 순간에는 재앙의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차라리 어떤 균형을 갖추고 그 위험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참을 수 없다는 최악의 방식에 이끌리고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는 매번의 영화가 하나의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임권택의 불평을 쫓아내는 임권택이 있는 것만 같다. 세 조각이 나버린 영화,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은 이야기. 서로 완전히 다른 리듬. 혜선을 연기하는 주연 이인옥 만이 가까스로 하나로 연결되는 세 개의 단편. 여기서는 마치 이 영화를 자신의 영화 목록 안에서 예외의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는 대립 같은 것이 있다. 임권택의 영화를 부주의하게 다루는 대부분의 비평의 공통점은 이 대립을 간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투적인 공식. 임권택은 상투적인 상업영화에서 시작했으며, 새마을 영화와 반공영화를 만든 어두운 시기를 거친 다음 < 만다라 >를 전환점으로 하여 자기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운운, 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도식화. 물론 이 설명이 거짓은 아니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 나는 반대로 임권택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대립의 과정을 발견한다. 무언가 가까이 다가간 다음 혹시 그것이 오류가 아니었을까, 라는 질문만큼 뒤로 물러난다. 여기에는 예술에서 오래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유로운 선택 안에는 이미 강제된 선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 이때 서정민 은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다시 그 자리에 왔는데 이미 한 것을 스스로 부수고 있는 것을 바라볼 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초대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임권택은 이 사이에 < 왕십리 >와 < 족보 >를 만들었다. 두 영화의 조건이 특별하게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임권택이 하려고만 했다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었다. <맨발의 눈길>은 그것을 하지 않은 영화이다. 나는 임권택을 위하여 일부러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맨발의 눈길>이 걸작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실패작이다. 하지만 이 실패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완전히 내부적인 폭발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맨발의 눈길>은 새마을영화도 아니고 반공영화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예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우수영화의 요건과 아무 상관 없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해 우수영화에 선정되었다) ‘고무신 부대를 불러오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와도 거리가 멀고, ‘노골적인 노출’을 염두에 둔 장면도 없다. (< 별들의 고향 >에서 시작해서 < 바보들의 행진 >에서 정점에 오른) 대학생 관객들을 향한 ‘영상시대’ 영화들과 합류할 생각도 없다. 말하자면 임권택에게 <맨발의 눈길>은 무언가 필사적인 이행의 과정이라는 자리에 있는 매개자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어쩌면 불가피한 교차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궁극적으로 실패를 목표로 한 영화라고 부르고 싶은 기획. 다소 위험을 무릎 쓰고 말하고 싶다. 세 번의 가정. 어쩌면 임권택은 더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 잡초 >를 부숴버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미 부숴버릴 수 없는 <잡초>를 부정하기 위하여 <맨발의 눈길>이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이 출현의 재귀성이 가리키는 것은 임권택 자신이 스스로 그때의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시켜 보인 다음 그걸 실패로 간주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은 아닐까. 고아원을 나서는 혜선 나는 이 괴이한 영화를 한 번 본 다음 망설이지 않고 즉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임권택 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찍었고 나는 같은 영화를 (그 자리에서) 두 번 보았다. 첫 쇼트는 ‘日新院’이라는 팻말을 보여준다. 한 소녀가 고아원을 나서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 여기서 자란 것 같은 아이들과 원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배웅을 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너무나 기쁜 듯, 마치 이곳을 탈출하기라도 하듯, 어쩌면 감옥을 떠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밝은 미소로 가방 하나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다. 아마도 내내 거기서 자랐을 텐데 그렇게 한 치의 미련도 없을 수 있을까. 마치 뒤를 돌아보기라도 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오직 앞만 보고 간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하듯 뒤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과 원장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녀는 마침 기다렸다는 듯 도착한 버스를 타고 떠난다. 그런 다음에야 안심을 하듯이 맨 뒷자리에 잠시 뒤를 돌아보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다. 그렇게 떠나가는 그녀는 아마도 어제, 혹은 며칠 전, 아니면 방금 전 들었을 원장님의 목소리를(voice_over_narration) 듣는다. 이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슬그머니 지나가고 있지만 수상쩍은 것은 명백히 원장님의 목소리이며, 그 목소리는 떠나가는 혜선의 마음속에서 다시 불러낸 것인데, 그녀를 떠나보내는 사람들 틈에 서 있는 원장님에게 혜선도, 영화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이한 효과가 일어나는데 마치 원장님의 목소리는 고아원 그 자체의 목소리가 되어 그녀의 운명을 예언하는 신탁의 소리처럼 들린다. 좀 더 간단한 설명.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 .... “너의 실제 나이는 스물도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마는 그야 어쨌든 우리 고아원에서 올린 호적상의 나이로는 만 십 팔세가 되었다. 규정에 따라 우리 고아원에서 제적되었고 혜선이 너는 이제 사회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란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하지가 않아요.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낸 너희들은 막연히 정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매사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아요. 그건 항상 실수의 원인이 되기도 하거니와 매우 위험한 일이야. 그 점 명심하고 열심히 살아라. 너의 앞길에 행운이 있길 빌겠다” 우리는 이 조언이 사실은 예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동시에 이 말은 반어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혜선은 앞으로 ‘정 때문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대부분의 일을 그르칠 것이며, 그 실수로 점점 위험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정에 충실해지면 질수록 점점 더 행운은 그녀 곁을 떠나가고 불행해질 것이다. < 맨발의 눈길 >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대사는 없다. 혜선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으며 다시 한 번을 반복할 때마다 원래의 자리보다 더 나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때 점점 더 사태를 나쁘게 만드는 정(情)을 준다, 는 행위에 대해서 임권택 은 마치 악을 대하는 것처럼 약간 몸서리치면서 바라본다는 사실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녀 앞에 누군가 나타나고 그러면 그녀는 그에게 반응한다. 이때 이 반응의 동사(動詞)를 정을 준다, 라고 정의내릴 때, 그렇게 나쁜 사태를 일원화시킬 때, 매번 다른 장면들을 그렇게 나쁜 하나로 해석할 때, 사회가 자신과 처음 접촉하는 텅 빈 형식의 출현을 파괴하는 하나의 원리로 귀납 시킬 때, 거기에는 임권택이 세상과 맺는 계약으로서의 정(情)에 대한 실망이 담겨있다. 나는 지금 이 사태를 단순하게 통속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구, 이별 이때 우리가 놓쳐서 안 되는 것은 혜선이 그 남자들을 만났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들이 혜선을 기다렸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혜선에게는 정(情)의 순환 속에서 단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순환에서 과잉하는 순간 발생하는 그 잉여의 처리에서 실패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나는 약간 반어적으로 사태를 뒤집어보고 싶다. 혜선은 왜 이 세 명의 남자를 반대의 순서로 만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안타깝지만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추락의 과정은 혜선이 고아원 원장님의 마지막 한 마디인 행운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수를 해야만 마지막에 행운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고아원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나는 남자들의 요구를 잘 알고 자신이 그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한 능동적인 전술을 전개했다면 혜선은 그저 첫 번째 남자에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임권택 의 두 번 만들기에 호응하듯이 반복해서 두 번 보기. 맨 마지막 장면을 본 다음 다시 앞으로 돌아오면 첫 번째 남자인 명구와 행복(하지만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자리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 ‘이후’를 물어보고 싶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 안에서 명구는 자기 앞에 나타난 돈 많은 집의 딸이 청혼을 하자 (그 과정을 영화는 설명하지 않지만 하여튼...) 그는 혜선을 만나지 못한 한 달 사이에 마음을 바꾼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가능성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면, 그러니까 혜선의 뜻대로 명구와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그 결혼은 명구 앞에 다른 기회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매우 연약하게 맺어진 일시적인 정지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 첫 번째 실패가 단지 서둘러 온 것이라고 설명해볼 수는 없을까. 그런 다음 (약간의 시간을 건너뛰어) 혜선은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자리로 간다.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다. 고아원에서 처음 나왔을 때 그녀는 양장점에 의탁해서 살면서 그녀를 맡겨야 했다. 이제 그녀는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녀의 운명에 대한 스스로의 일보전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운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의 방점의 이동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운명의 신비주의를 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집행되는 방식은 운명의 유물론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운명은 반복되지만 그 주인이 발 딛고 서 있는 토대에 의해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이다. 거기서 혜선은 운명에 맞선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하게 그 과정이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임권택 이 그 어느 한 편을 중심으로 영화 전체가 바뀌는 대신 이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 전체의 사이를 통해서 무언가 그의 세상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읽어내고 싶다. 물론 임권택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운명의 인과율에 대해서 항상 체념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운명은 동시에 혜선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지는 과정이라는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운명에게 아니요, 하고 말할 때 욕망에게는 좋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물론 그 둘은 화해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둘 다에게 동시에 충실해지는 방법을 택하는 기술을 익혀나가고 있는 중이다. 운명 안에서 자유롭게 살기. 그때 임권택은 그 자유가 대가를 치르는 대신 반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 내주어야 할 대가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단지 주체의 전복만이 아니라 좀 더 까다로운 변화가 담겨있다. 그때 표정을 찡그리게 되는 쪽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명이 자신을 수행하기 위해서 세상을 작동시키고 있는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임권택은 그것이 주체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실수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논점이 남았다. 나는 잘못과 실수를 바꿔 쓴 것이 아니다. 그 둘은 서로 자리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임권택이 여전히 자유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이다. 희석, 첫만남 약간 장황하게 설명하겠다. 혜선은 거기서 “하던 사업을 말아먹고 그냥 마음 편하게 트럭운전이나 하면서 살겠다”는 희석을 손님으로 만난다. 그는 어느 모질게 비바람 치는 날 자신이 머무는 여인숙 앞에서 창문 바깥으로 비바람에 날아갈세라 한밤중에 포장마차의 포장과 혼자서 씨름하는 혜선을 보고 달려나가 도움을 주고 그날 밤 두 사람은 ‘정을 맺는다’ 혜선은 자신이 모은 돈을 털어 희석을 위해 트럭을 사고, 두 사람은 행복해진다. 만일 여기서 멈추었다면 이 이야기는 한 번의 비극과 다른 한 번의 행복을 통해서 실패와 보상이라는 방식으로 짝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다시 한 번 운명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희석은 예정보다 집에 늦게 돌아오는 날 혜선으로부터 왜 늦었는지를 추궁당한다. 그는 부끄럽긴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오는 길에 한 여자를 태워줬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혜선은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잠든 희석을 깨우고 또 깨워가면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그쳐 묻는다. 여기서 이 시퀀스는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웠지만 어느 쇼트를 지나가면서부터 점점 기괴해지기 시작한다. 핵심은 혜선이 진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만한 진실을 얻는 것이다. 물론 그 지식은 희석이 길에서 태워준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고백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 지식을 고백받기 전까지 혜선의 추궁은 끝나지 않는다. 혹은 만족하지 않는다. 물론 그 고백을 알게 되는 순간 동시에 얻게 되는 것은 더 큰 의심이다. 어떤 의심? 이제 미래에도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심. 선수 친 의심. 그 고백의 지식은 즉각적으로 미래 시제가 된다. 희석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반복된 재촉에 지쳐 남은 진실을 모두 말한 다음 잠을 청한다. 하지만 지식의 활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트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희석 옆자리에 (마치 감시라도 하듯) 혜선이 사이좋게 앉아있다. 금실 좋은 부부처럼 사이좋은 대화를 나누던 혜선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길거리에 태운 그 여자 이야기를 다시 들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희석은 그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 드느냐고 하지만 그녀는 심심하니까 그런다고 대수롭지 않게 덧붙이면서 다시 한 번을 재촉한다. 희석은 내키지 않으면서도 마치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이 용서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 되기라도 하듯이 한 번 더 한다. 즉각적으로 이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명구로부터의 배신을 본 다음 두 번째 이야기를 보는 중이다. 혜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희석이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때 혜선의 행위는 사실상 희석에게 첫 번째 상황의 반복을 제발 한 번 더 해달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희석은 자신이 해 보지 않은 행위를 반복해야 하는 자리에 불려가는 중이다. 여기서 혜선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운명이 그녀를 이용하고 약탈하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 (있지도 않은 환상에) 속는 중이다. 혜선이 희석의 이야기(의 지식이 불러일으키는 환상의 서사)를 견디지 못하자 마치 그에 대한 응답이라도 하듯이 한겨울 산속에서 트럭이 고장 난다. 두 사람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희석은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부속품을 사러 읍내로 사고 혜선은 여기에 남겨진다. 희석, 트럭의 고장, 혼자 남겨진 혜선 우선 이 결정이 바보 같다는 지적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한겨울 산속에서 히터도 틀 수 없는 고장 난 트럭과 함께 이미 저녁이 시작되고 있을 때 (영화에서처럼) 아내 혼자 여기에 남겨두고 부속품을 사러 가는 쪽과 차라리 (영화에서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트럭을 여기에 남겨두고 두 사람이 함께 읍내에 간 다음 혜선이 읍내에서 기다리며 희석이 트럭을 고쳐 읍내로 돌아오는 편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누구라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트럭은 고장이 났고 부속품은 산속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트럭을 여기에 놓아둔들 어둠이 다가오는 밤에 누가 가져갈 수 있겠는가. 혹은 트럭을 훔쳐갈 생각이라면 혜선 혼자서 그걸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희석은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다음 혜선을 남겨놓고 혼자 부속품을 구하러 간다. 마치 거기서 보이지 않는 방해의 손길이 나타나기라도 한 듯 부속품 가게의 주인은 어디론가 가게를 비웠고 점점 어둠이 다가온다. 완전히 어둠이 내린 다음에야 비로소 부속품을 구한 희석은 택시를 부를 도리가 없자 그 먼 길을 뛰어서 가야 한다. 이때 임권택 은 희석과 혜선을 번갈아 보여준다. (cross_cutting) 혜선은 어둠 속에서 무서워하기보다는 지금 이 시간에 희석이 자기를 버려두고 읍내에서 술집 여자와 벌거벗고 따뜻한 이불에서 뒹구는 환상에 사로 잡혀 괴로워한다. 세상은 짓궂게도 혜선이 좀 더 그녀 자신의 환상을 발전시킬 시간을 벌게 하기 위하여 어두운 산길을 달려가는 희석 앞에 자전거를 탄 경찰을 등장시킨 다음 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로 끌고 간다. 그때는 종종 산을 타고 간첩들이 남파된다는 이야기가 떠돌던 시절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포함시켜 주기 바란다. 나는 세상의 실수와 주체의 잘못을 대립시켰다. 당신은 내게 간단하게 반문을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은 채 지금 부속품을 구하기 위하여 추운 겨울날 온 동네를 돌아다닌 다음 어두운 산길을 달려오고 있는 희석을 의심하는 건 혜선의 잘못이 아닌가요? 물론이다. 하지만 당신은 요점을 놓쳤다. 핵심은 세상의 실수가 주체의 잘못에 항상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의 잘못은 여기서 세상의 실수에 대한 효과처럼 나타난다. 자신의 환상에 완전히 사로잡힌 혜선은 먼동이 틀 무렵인 새벽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트럭에 도착한 희석에게 더럽다, 고 몇 번이고 외치면서 개, 돼지, 늑대, 짐승이라고 부른다. 희석은 혜선의 비난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길거리에 희선을 버려두고 트럭을 끌고 혼자 떠난다. 이 행동은 정확하게 희석이 길거리에서 세워달라는 낯선 여자를 태워준 친절에 대한 정반대의 선택이다. 그는 이전에 길거리에서 낯선 여자를 태워주었고 이번에는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여자를 길거리에 버리고 떠난다. 혜선의 불길한 예감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세상의 실수와 주체의 잘못은 자신의 효과를 타자가 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혹은 주체는 서사에서 자기의 위치를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혜선은 희석이 떠나간 다음 약간의 시간을 길에서 보낸다. 그런 다음 임권택 은 다시 한 번 혜선과 희석을 번갈아 보여준다. (cross_cutting) 이때 이 둘 사이를 오가는 환상의 침입은 정반대로 진행된다. 이번에 환상에 시달리는 것은 희석이다. 혜선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여보, 를 외치며 눈길을 달려오지만 트럭은 떠난 다음이다. 그런데 희석은 바로 그 시간에 운전을 하면서 그런 혜선을 떠올리며 산골 비탈 눈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오던 길로 되돌아 가기 위해 운전대를 반대로 돌린다. 사태는 당신의 예감을 벗어나지 않는다. 뒤늦게 출발한 혜선은 마침 도착한 버스를 타고 간다. 사실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자꾸만 창문 바깥을 두리번거린다. 그리피스 이후 오래된 관습. 서로 다른 두개웰염獒옐瑛黔옘哉엔엽냈颱玖庸?오가기 시작할 때 그 둘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아지고 또한 점점 빨라질 것이다. 하나의 목표. 하지만 이 방법에는 단지 둘 사이의 교차가 아니라 반드시 그사이를 연결하는 상상적 제3항이 끼어든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만일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그 무언가의 작용이 없다면 이 둘 사이의 연결은 사실상 무효화 되거나 혹은 (종종 코미디에서 허무하게 종결지어지는) 조롱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 제3항을 운명이라든가 혹은 영화 바깥의 관객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지 않는 것이다. 영화이론은 이 3항을 정의내리기 위해 긴 시간 논쟁을 했고 그 결과 어떤 식으로건 그 항을 개념화하는 순간 이데올로기적 시선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부르주아의 시선이고, 그건 가부장적 시선이고, 그건 서방세계의 시선이고, 그건 백인의 시선이고, 그건 등등... 으로 정의내리는 순간 즉각적으로 거기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놓여있음을 깨닫(고 그런 다음 무언가를 놓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물론 이 과정을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정식화시킨 것은 히치콕의 영화이다. 임권택이 따르는 것은 히치콕에서 에릭 로메르로 이어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다르다. 여기서는 이 빠른 속도의 결합이 상징적인 의미 안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 둘 사이의 결합 사이에는 오직 불가사의한 인과관계의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혜선이 산골길 굽은 도로 사이로 접어들었을 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저 아래 비탈에는 굴러떨어진 트럭이 불타고 있다. 버스에서 달려간 혜선 앞에 이미 죽은 희석이 차가운 땅바닥 위에 누워있다. 경찰이 목격자를 찾자 누군가 대답한다. “이 미끄러운 길을 좀 과하다 싶은 속도로 달려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꺾데요” “아니, 이 좁은 길목에서요?” “네, 다시 돌아갈 일이 생겼던 모양이에요. 아무튼 신통하게도 잘 돌아섰는가 싶었는데 뒷바퀴가 빙판에 쭈욱 밀리는 거예요, 그리고 처박혔죠. 아마도 다섯 번은 더 굴렀을 겁니다. 아무리 돌아갈 길이 급하기로 이렇게 성질 급한 운전수는 처음 보았습니다” 이때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한편으로 혜선을 꾸짖는 것만 같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끝내 알 수가 없다. (voice_off_frame) 왜냐하면 내내 화면은 희석의 시체 앞에서 무릎 꿇고 울고 있는 혜선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장면이 고아원에서 혜선이 떠날 때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원장님의 말씀의 연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매번 나타나는 목소리. 잘 알고 있는 목소리.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목소리. 이때 혜선의 운명에 대한 지식은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돌아갈 일. 다시 돌아갈 일. 우리는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찡그림에 의해 희석은 혜선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가 도착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 메시지를 도착 시킨다. 맞아요, 당신의 뜻은 이제 실현되었어요. 혜선은 실패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녀의 정을 돌려받는다. 두 번째 남자 희석이 혜선에게 알려준 것은 실수의 원인이 정을 받은 타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을 주는 그 과정의 과잉에 있다는 것이다. 마치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말.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낸 너희들은 막연히 정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매사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아요. 그건 항상 실수의 원인이 되기도 하거니와 매우 위험한 일이야” 세 번째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와의 사이에 놓인 간주곡을 먼저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죽은 희석이 묘 앞에 한복을 차려입은 혜선이 찾아와 임신한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자신은 이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거듭 다짐을 한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다른 분위기, 다른 리듬. 다른 톤, 다른 영화처럼 장면이 옮겨간다. 좁은 골목에 차들이 줄을 이어 들어서고 다시 장면을 옮기면 혜선은 근수와 결혼식을 올리는 중이다. 근수는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 데다가, 신부의 복장을 한 혜선을 보는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좀 전에 그 임신한 아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좀 더 정확하게 두 이야기 사이에 끼어든 아이는 이제부터 어떻게 작동할까. 세 번째 이야기는 앞선 두 이야기와 달리 단 하루 동안 일어난다. 그 사이에 세월이 흘렀고 혜선은 아이를 낳은 다음 술집에 나간다. 아이는 자라 소년이 되었다. 하지만 불치의 병에 걸렸고 혜선에게는 수술비용이 없다. 그녀의 계획은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위장결혼을 해서 남자와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돈을 훔친 다음 도망쳐서 그 돈을 들고 아들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선 그녀의 계획이 지닌 세 가지 불합리한 점. 첫째, 신혼여행을 떠난 다음 남자에게서 돈을 훔쳐 돌아온다고 하지만 그 남자가 큰돈을 갖고 신혼여행을 떠날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까. 물론 그때는 카드가 없었고 사람들은 현금을 가지고 다녔지만 근수는 마치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지나치게 큰돈을 가방에 넣어 들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둘째, 결혼식을 올리는데 고아인 혜선은 어떻게 상대방의 가족 전체를 속일 수 있었을까. 잘 알다시피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긴 과정이 필요하다. 양가의 부모가 인사를 해야 하고 서로의 혼수를 주고받아야 한다. 신랑은 단 한 번도 신부의 집에 인사를 드리지 않고 부모를 만나지도 않은 채 결혼식에 이르는 것이 가능할까. 그보다 먼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과정에서 아픈 소년은 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병실에서 내내 기다려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처럼 이 세 번째 이야기는 결혼식 하는 날에서 시작한다. 세 번째 이상한 점은 이야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 병원에서는 이제 더 이상 수술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아들을 퇴원시키라고 종용한다. 이미 실패한 수술. 사실상 혜선의 노력은 무의미한 시도이다. 근수, 결혼식 여기서 세 번째 이야기가 이제까지 이야기와 다른 것은 결혼하는 근수에게 혜선은 어떤 정도 줄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녀의 목표는 근수를 속여 돈을 훔친 다음 재빨리 현장에서 떠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앞의 두 이야기가 혜선에게 준 교훈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이미 두 개의 서로 다른 교훈에 대해서 셈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혜선이 정을 주는 행위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병석에 누운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혜선이 정을 주는 대상이 이야기의 외곽으로 옮겨졌으며 그 중심은 그녀에게 정을 주는 대상을 속이려는 행위에로 변주된다. 이때 혜선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그녀 자신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만나는 상대방이 점점 나이가 많아지면서 자신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요점은 좀 더 분명해진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다소 논쟁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처녀로서 정을 주는 행위에 대한 실패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아내로서 정을 주는 행위의 실패라면, 세 번째 이야기는 어머니로서 정을 주는 행위의 실패에 대한 내기이다. 이때 (세상 안에서의) 반복적인 실패 속에서 변치 않는 것은 혜선이 (주체의 자발적인 선택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정을 주는 행위이다. 마치 그녀는 이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인 것처럼 지치지 않고 되풀이한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그 행위를 반복하는 데서 오는 바보 같은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조금도 협조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임권택 은 여기서 기묘한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어떤 장면에서도 혜선의 심리적 상태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 대신 오로지 그녀의 동선만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실상 여기서는 혜선의 심리적인 동요를 제외하면 고요한 표면만을 가진 상황이다. 그런데 임권택은 혜선을 통해서 그 표면을 휘저어 놓는다. 혜선의 동선은 이 세 번째 이야기 안에서 다른 인물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 동선의 디테일은 다음과 같다. 혜선은 이날 하루 분주하게 두 세계 사이를 오가야 한다. 하나는 물론 근수와 올리는 결혼식과 이어지는 신혼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수시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죽어가는 아들의 병세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때마다 병원에서 아들을 돌보면서 전화를 받는 (혜선을 언니라 부르는) 여자는 자기가 내내 여기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면서 지금이라도 병실을 떠나야 한다고 통보한다. 혜선은 한편으로 그녀를 설득해야 하고 또 한 편으로 이제는 아들을 데리고 퇴원하라는 의사에게 다시 한 번만 더 수술을 해달라고 간청한다. 더 힘겨운 것은 자신의 그런 처지를 숨겨야하는 상황에서 기회가 올 때마다 막 결혼한 근수 몰래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신혼여행 온 근수는 당연히도 혜선 곁에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며, 혜선은 언제라도 돈이 든 그 가방을 들고 여기를 빨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 눈길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 이때 그녀가 알지 못하는 것은 지금 자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단 하나, 그녀가 돈이 든 가방을 훔쳐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그녀는 이미 결혼했고, 게다가 결혼한 상대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혜선이 그렇게 원하는 삶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빨리 도망쳐야만 한다. 임권택 이 하려는 고통스러운 게임은 무엇인가. 그건 혜선을 끝까지 몰고 가 보는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때로 던져진 상황에서 포기하는 법 없이 끝까지 가면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는지를 보려고 할 때가 있다. 대부분 다른 영화에서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며 결국 거기서 어떤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다음 마치 그것이 해결인 것처럼 물러난다. 임권택도 피하지 않고 물론 그 지점까지 간다. 이상해지는 것은 거의 반드시라고 할 만큼 그 지점까지 온 다음 멈추지 않고 거기를 지나쳐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임권택이 문득 거기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 눈물을 흘리다 말고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고통스럽게 바라보거나 기괴하게 쳐다보게 된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혜선이 두 번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운명에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그 상황을 밀고 나아가기 시작하자 갑자기 그녀를 움켜쥐고 있는 (원장님의 예언에 가까운) 말씀의 네트워크를 찢고 스스로 능동적인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의 선택은 바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행위 안에서 단지 한계를 보는 대신 그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혜선의 능동적인 자율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혜선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멈춘 다음 죽은 희석의 묘지 앞에서 다짐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단지 그녀를 덮어씌운 말씀의 실현만을 우리는 보았을 것이다. 물론 거기서 끝나면 말씀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갑자기 영화의 톤과 리듬이 변했다는 것을 함께 주목해주기 바란다. 임권택은 여기서 앞선 두 개의 이야기에 마치 영화 자체가 저항하기라도 하듯이 진행하기 시작한다. 아들의 죽음 물론 이번에도 혜선의 노력은 좌절로 끝난다. 그녀는 근수의 돈 가방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그 돈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용서해준다면) 마침 때맞춰 죽은 아들의 시신이 실려 있는 바퀴 달린 침대의 이동이다. 사라져 가는 아들. 그녀의 하루는 실패로 끝난다. 이제 그 돈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혜선은 그걸 돌려주기 위해 근수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자백하듯이 고백한다. 당신은 이번에도 결국 희석과 같은 결론을 맺은 것이 아니냐고 내게 반문할지 모른다. 얼핏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임권택 은 몹시 잔인한 방법으로 혜선에게 그녀가 진정 도착해야 할 욕망의 대상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혜선은 그녀의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게 박탈하면서 그녀에게 안겨주는 선물이 있다. 그것은 물론 근수이다. 이 이야기의 가느다란 끈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혜선이 고아원에서 나왔을 때 그녀가 정을 주고 빠져드는 사람은 세상에 나와 우연히 만난 남자가 아니라 고아원에서 함께 큰 명구이다. 명구의 무언가가 혜선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같은 고아원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정을 끌어낸다. 그러므로 혜선이 한 행동은 고아원에서 이미 한 행동이 왜 사회에서는 반복할 수 없느냐는 반문과 마주친 것이다. 혜선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 공사장에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인부들이 와서 점심을 먹을 때 그 많은 사내들의 입맛을 잘 알고 척척 알아서 주문을 해준다. 한 사내가 “마누라 행세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라고 농을 걸자 서슴없이 “하루에 두 끼씩 걷어 먹이면 그게 첫째 마누라지”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이때 희석은 그 자리에 없다. 그는 여기 공사장까지 흘러들어온 다음 혼자서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석은 혜선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바라보다가 별안간 손을 잡아보고는 “얼핏 보면 아줌마 같기도 하고 처녀 같기도 하고” 가 전부이다. 그 말이 별말이 아닌 것이 그날 밤 술집에 가서 작부를 옆에 앉혀놓고 오늘 밤을 같이 보내자고 한 다음 초면에 이러면 안 되시죠, 라는 대꾸에 “자네하고 나하고는 전생에 인연이 있는 것 같아”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날 밤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소리에 깬 희석은 포장마차가 바람에 날아갈세라 달려 나온 혜선을 본다. 그런 다음 그 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희석이 혜선과 ‘정을 통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대사는 “내가 좋아하면 여자가 도망가고 내가 좋다고 안 도망가면 여자가 도망가고” 라고 한 다음 잠시 그녀를 바라본 다음 “당신과 같은 여자를 만났으면 좋은 가정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소”라는 제안이었다. 이때 포장마차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고작해야 성냥으로 켠 촛불 하나가 전부이다. 혜선은 희석에게 끌렸다기보다 차라리 그 한 마디에 이끌린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은 혜선이 명구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목소리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여기에는 같은 내용의 대안적 대상이라는 미끼가 있다. 그렇게 해서 혜선은 다시 원래 자리에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혜선이 희석과 ‘정을 통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비바람 치는 밤 포장마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나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반주처럼 흘러나온다. 아마도 예민한 관객들은 알아차릴 것이다. 이 음악은 혜선이 명구와 데이트를 할 때 흘러나오던 선율이었다. 이제 세 번째 이야기가 되었을 때 두 번째 이야기에서 넘어온 것은 물론 희석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이다. 그녀는 아들을 구하는 것이 자기가 해야 할 임무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반대로 지금 그녀에게는 남겨진 아들만이 그녀의 삶의 장애물처럼 작동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몹시 잔인한 표현이라는 것을 이미 사과했다. 게다가 임권택은 그 아들을 더 이상 살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혜선의 현재의 삶에서 그녀에게 남겨진 아들의 존재만이 마치 잉여처럼 그렇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이야기는 이미 시작할 때마다 결론이 나 있다. 아들은 죽을 것이고 그녀의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녀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세 번째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목소리의 교환 이때 오직 이 세 번째 이야기에서만 혜선과 그 상대방은 서로의 목소리를 교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외부의 목소리에서 벗어나서 혜선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혜선은 아들의 죽음을 본 다음 돌아와 근수에게 이 모든 과정에 대해서 자백을 하듯이 이야기한다. 이때 처음으로 혜선은 상대방으로부터 구체적인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물론 근수의 목소리이다. 그는 혜선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마치 대칭을 이루기라도 하듯이 참회에 가까운 고백을 한다. 먼저 자신이 혜선의 이제까지의 위장된 행동을 모두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근수는 자신을 고아라고 속이고 부잣집 양아들로 입양되었지만 사실은 시골에 자신의 어머니가 살고 있으며 그분의 유일한 소망은 며느리를 데려오는 것인데 당신이 괜찮다면 거기에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혜선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제안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청혼인지는 분명치 않다. 눈이 덮인 시골 길이 보이고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라기보다는 중단된다. 만일 여기서 해피엔딩을 보면 당신은 < 맨발의 눈길 >을 처음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임권택 이 하려는 노력은 초자아의 명령으로부터 자신의 윤리적 선택에로 혜선을 되돌려 놓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이 영화는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 때로 그 선택은 위태롭게 보이고 가냘파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내려진 가장 중요한 명령을 거절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자유로운 행위란 결국 무엇인가. 아마 임권택이 서정민 과 함께 만든 < 잡초 >에서 했었던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을 때 그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라는 도약을 시도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임권택의 영화는 이 자유의 밤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창씨개명에 반대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름을 지키고자 자살을 선택하는 수원 설 씨 노인의 이야기(< 족보 >),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평생에 걸쳐 산에서 자신이 놓친 공비를 찾아 허송세월하는 한 사내의 이야기(< 짝코 >), 오로지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 용맹전진하는 승려의 만행 길(< 만다라 >). 임권택은 자기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세상이 자신에게 내린 명령을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 길을 임권택은 서정민과 함께 시작했지만 그와 함께 밀고 나아가지 않았다.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화 현장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단지 그것을 예술적인 이유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잣이다. 하지만 <맨발의 눈길>에서 보여준 몇몇 순간들, 특히 그중에서도 희석이 굴러떨어진 낭떠러지 가까이 다가가는 버스 안에서 그 절벽을 바라보는 혜선의 시선 앞에 놓인 그 짧지만 신비로울 정도로 정교한 리듬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스산한 이미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예술에서 가지 않은 길을 탄식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나는 지금 바보 같은 일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서정민 촬영감독님을 생각하면 그건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가정이다. 부디 편히 잠드시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