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
- 감독
- 김동원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조창손, 김석형, 신인영, 류한욱, 김영식, 함세환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주제와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다채로워진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투쟁에의 집중에서 ‘일본군 위안부’(<낮은 목소리> 3부작), 비전향 장기수와 탈식민적 현대사(< 송환 >, < 할매꽃 >), 가족에 대한 페미니즘적 성찰(<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 >, < 고추 말리기 >, <엄마...>, < 쇼킹 패밀리 >), 성소수자 정체성과 수행(< Out: 이반검열 두번째 이야기 >, <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 < 3xFTM >), 여성 노동자의 역사와 투쟁(< 얼굴들 >, < 밥꽃양 >, < 평행선 >, < 우리들은 정의파다 >, < 외박 >) 등 주제의 확장과 교차가 이루어졌다. 더불어 감독 스스로가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성찰적인 태도 자체를 주제로 삼거나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리는 트랜스-장르적 연출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정치적 참여의 장이 다변화된 동시에 독립 다큐멘터리 상영이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의 공동체 상영에서 무작위적인 관객이 있는 극장으로 확장된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장애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 팬지와 담쟁이 >(계운경, 2000)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이 시기에 장애여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들이 몇 편 더 제작되었는데 〈 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 〉(김진열, 1999), < 거북이 시스터즈 >(이영, 2002), < 진옥 언니, 학교 가다 >(김진열, 2007)가 바로 그 작품들이다. 장애여성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세 영화는 초점이 다르다. < 거북이 시스터즈 >는 장애인권을 위해 헌신해온 여성 장애인 활동가 세 명이 한 집에서 가족 대안 공동체로 살아가는 일상을 다룬다면, 연작인 <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와 <진옥 언니, 학교 가다>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김진옥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 키우는 과정을 쫓는다. <팬지와 담쟁이>는 부산에 사는 수정과 윤정 자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관통한다. 30대 중후반의 저신장 장애인인 수정과 윤정은 부산에서 부모형제와 함께 살고 있다. 영화는 언니인 수정이 친구들에게 소개받은 성주라는 남자와 ‘썸’을 타고 연애와 결혼을 꿈꾸는 로맨스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나 수정의 연애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겨울에 소개 받은 후 설렘을 느끼며 봄을 지나지만 매미가 거세게 울어대던 늦여름의 어느 날 그 모든 감정과 기대들은 씁쓸하게 끝나고 만다. <팬지와 담쟁이>는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의 세월을 지나며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아이러니하게 대비되는 상실의 쓸쓸한 정취를 그린 계절영화이고, 호프집, 미장원, 사진관, 산부인과 병원, 지하철, 공원, 바닷가, 오래된 아파트 등 1990년대 말 부산 구석구석의 풍경을 보여주는 로컬 영화이기도 하다. 로맨스, 계절, 부산이라는 세 키워드를 품은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7개의 시퀀스로 구성된다. 각 시퀀스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붙어있다. ‘웨딩드레스 제작 중 1 - 야학 선생님 결혼식 - 웨딩드레스 제작 중 2- 엄마 기념사진 – 노래자랑 – 여름바다 - 웨딩드레스 제작 중 3.’ 오프닝씬은 호프집에서 술 게임을 하며 성주가 수정의 흑기사를 자처하고 노래방에서 함께 <19살이에요>를 부르며 ‘썸’을 타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퀀스의 제목은 놀랍게도 ‘웨딩드레스 제작 중 1’이다.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되어 상호 감정을 나누는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결혼을 가정한 채 성관계와 임신 및 출산을 고민하는 단계로 돌입한다. 실제 성주의 관점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성주가 어떤 마음과 의향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썸-연애-결혼’이 압축된 시간성은 당시 부산에 거주하는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담론과 연관되어 있다. 수정은 성주가 노래방 ‘블루스 타임’에 키가 작은 자신을 안아 들어 올려 춤을 췄을 때 활동지원사들한테 안겼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고 수줍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연애경험이 없는 수정은 성주의 마음을 확신하기 어렵다. 동생 윤정과 연애상담을 해주는 친한 친구인 수견 언니는 수정에게 “내숭 떨지 말고” 성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라며 다그친다. 그리고 그들은 좋아하는 마음의 확인에서 결혼의 가능성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설렘과 연애의 낭만은 생략되다시피 재빨리 처리되고 결혼 이후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안전한 성관계 그리고 임신과 출산 대한 현실적인 고민까지 급속도로 일이 진척된다. 첫 만남의 설렘은 곧 연애가 되고, 연애는 곧 결혼이 된다. 이러한 성급한 ‘웨딩드레스 제작’은 분명하게 발화되지 않지만 암묵적인 몇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한다. 첫째, 수정은 성관계와 재생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기회를 삼아 성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둘째, 수정은 이성애 결혼을 원한다. 셋째,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와 장애를 고려할 때 수정에게 연애의 기회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그래서 조금의 호감도 곧 결혼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넷째, 수정의 성격과 장애를 고려할 때 의지할 가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첫 번째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정은 모두 당연한 현실도 타당한 진실도 아니다. 오히려 수정이 정말로 결혼을 (사실은 연애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왜 결혼을 원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다른 관계와 섹슈얼리티를 탐색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의 기회’를 잡는다는 건 오히려 다른 기회,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독립된 가구를 꾸릴 가능성을 제거하는 실천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수정이 성주와의 연애에 소극적인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수정은 연애가 처음이고 주위에서 부추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과 성주의 마음 모두에 확신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수정은 성주의 진심을 불안해한다. 그리고 기저에 잠재해있던 수정의 불안은 영화의 결말에서 현실화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갑자기 호감 정도의 감정을 급작스럽게 결혼으로 이끌고 갈까? 여기서 <팬지와 담쟁이>는 다큐멘터리가 제작자에 의해 ‘창의적으로 구성되고 설정된 것’임을 인식하게 한다. 여러 시퀀스의 제목에 사용된 “웨딩드레스 제작 중”이라는 언어적 프레임은 장애여성이 연애와 결혼을 고려하는 데 있어 어떠한 (차별적이고 자원이 한정된)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연출된 호들갑이자 인위적 과장이다. 그래서 “제작 중”이라는 현재형 표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들은 정말로 성주와의 결혼만을 염두에 두고 이 모든 일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영화는 규범적인 이성애중심성이라는 비판의 위험을 기어이 감수하면서도 이 프레임에 두 주인공을 넣는다. 이 프레임 속에서 수정과 윤정은 함께 성인영화 비디오를 보며 키스, 애무, 체위잡기 등과 같은 성적 행위에 대해 기혼인 수견 언니에게 교육을 받고, 각자의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안전한 성행위는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부끄러움 속에서 낄낄대며 대화를 나눈다. 이것이 사실상 주거의 독립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은 집에 함께 사는 친오빠 때문에 수견 언니 집에서 비디오를 보게 된 사연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자매는 수견 언니의 조언을 들어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는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얕은 지식과 희미한 편견을 드러낼 뿐이다. 욕망은 구성되기도 전에 제한된다. 나이, 장애, 성별의 교차 속에서 정보를 비롯한 자원의 부족과 차별적 편견 때문에 그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제동에 걸리고 한정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탐색할 여유가 만들어지지 않고 규범 속에서 상상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욕망이 허구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수정은 성주의 관심에 설레어 하고 윤정은 그런 수정을 부러워한다. 두 자매는 야학 교사의 결혼식에 참석해 자신들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욕망을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기보다는 일상의 환경을 구성하는 조건,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여러 뉘앙스와 제스처의 수행으로 구성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가시성(visibility)이다. 소수자의 영화적 가시성은 단순히 출연 그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두 자매가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고 드라이로 앞머리를 산처럼 올리는 행동들의 클로즈업, 성인 비디오를 보면서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눈을 가리는 수정과 침착하게 표정관리를 하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윤정,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연애 결혼한 비장애인인 어머니를 일종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미장원 원장의 이야기를 듣는 윤정의 표정, 해수욕장에서 선크림을 서로 발라주고 모래장난을 하는 수영복을 입은 자매의 모습을 사운드 없이 응시하는 카메라, 성주가 수정에게 ‘썸’의 끝을 알릴 때 당황한 수정이 손톱을 튕기는 제스처 등이 모두 ‘웨딩드레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간, 즉 욕망이 실천되고 구성되는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과 제스처에는 하나로 의미를 결정할 수 없는 수많은 현실의 일상과 감정들이 섞여 있다. 또한 해수욕장에, 노래자랑 예선에, 보도에, 지하철에 장애인이 존재하고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도 자연스럽게 가시화한다. 일상을 쫓는 카메라는 두 자매와 함께 이동하며 관념적 상상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구체성을 전달한다. 걷는 것이 힘든 윤정은 자신의 체격과 신장에 맞는 탈 것으로 아동용 플라스틱 장난감 차를 사용한다. 윤정이 선택한 이동수단은 목발이나 휠체어가 아닌 다른 탈 것의 가능성을 가시화한다. 또한 이 이동수단은 장애인이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활용해 다양한 신체에 딱 맞게 개조한 크립 테크(criptech, 그리고 하이데거가 말한 도구가 아닌 예술로서의 테크네)의 훌륭한 사례가 된다. 그녀가 노래자랑 예선 무대 위에서 장난감 차 위에 앉아 이정현의 <와>를 춤과 함께 부를 때, 예선에서 떨어지고 벚꽃이 흩날리는 보도를 지나갈 때 노랗고 빨간 원색의 장난감은 시선을 잡아 끈다. 지하철에서 저신장인 수정과 윤정의 아이레벨에 맞춰 카메라가 낮아지자 자매를 응시하고 있는 어린 아이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은 복잡한 레이어를 만든다. 성인의 신장은 매우 다양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아이레벨 역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위치가 낮은 아이레벨을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만 동일시할 수 없다. 동시에 실제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때때로 저신장 장애인을 아이처럼 대해온 사회적 고정관념의 시선을 환기하며 성찰을 유도한다. 그리고 타인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윤정은 자신의 체격에 잘 맞는 장난감 차를 자신의 탈 것으로 선택하며, 이러한 선택은 윤정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다른 장면에서는 높은 지하철 계단에서 장애인용 승강기로 내려가는 과정을 길게 보여준다. 자매는 능숙하게 승강기를 이용하지만 자매와 함께 탄 승강기 위의 카메라 시점은 그 승강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영화 < 접속 >(1997)의 OST로 유명한 <러버스 콘체르토>의 단조로운 경음악이 경고음으로 계속 울려 퍼지자 행인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지하철 계단의 장애인용 승강기의 아슬아슬함, 무심하고 단조로운 <러버스 콘체르토> 경음악, 행인들의 무례한 시선은 이동을 환기하는 정동이자 ‘웨딩드레스 제작’의 조건이다. 그리고 자매는 반복되어 무뎌진 그 일상을 무심하게 받아들인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또 다른 가시화는 장애의 서로 다른 유형과 정도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위계이다. 모든 연애관계에는 다층적이고 미묘한 권력이 작동한다. 수정과 성주의 관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권력은 장애의 정도가 된다. 성주는 겉보기에는 장애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증 장애인이다. 신체적으로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권력이 된다. 늦여름 한낮의 공원에서 성주는 내내 담배를 피우고 주저하며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어머니가 자신이 장남에 외동이어서 손자를 보길 원한다, 자신과 비슷한 장애가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나이가 있는 수정의 결혼까지 걱정해주는 조심스러운 그의 말들은 날카롭게 상처를 낸다. 듣는 내내 말이 없는 수정은 찡그린 얼굴에 어색하고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애꿎은 손톱을 튕긴다. 성주의 “여름이 다갔나”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그들의 연애도 끝을 맺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별 시퀀스의 제목은 여전히 현재형인 ‘웨딩드레스 제작 중 3’이다. 이번 연애는 실패했지만 자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꿈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인공적으로 연출된 에필로그 시퀀스는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바다 한가운데 쪽배를 탄 수정과 윤정을 보여준다. 둘은 영화 내내 염원하던 하얀 면사포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빨간 입술의 화장을 하고 있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수정이 부르는 <나는 19살이에요>가 울려 퍼진다. 소프트 포커스 효과로 꿈처럼 연출된 환상성과 대비되게 둘의 표정은 지나치게 덤덤하다. 이 허구적 스펙터클은 극적 사건이나 분명한 감정의 표출과 거리가 멀다. 공들여 만든 이 장면은 결혼의 은유로 사용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문자그대로의 소원성취인가, 동네 미장원 원장의 말처럼 자매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모두 헛된 꿈이었다는 냉소적 자각인가. 그것도 아니면 수정이나 윤정 같은 저신장 장애 여성이 연애와 결혼을 하기 위한 환경과 조건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실재의 대면인가. 이 장면은 그 모든 욕망과 감정이 중첩된 이미지이다. 이 장면은 그들의 과거의 상실과 실패, 현재의 바람과 희망, 욕망을 탐색하고 실현되기 위한 미래의 조건을 질문한다. 이 허구의 연출된 장면은 그래서 실재적 환상이다. 이 시퀀스의 환상성과 쓸쓸한 정취, 원하던 웨딩드레스를 입었지만 웃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무심한 표정은 목적이 뚜렷한 실패나 성공의 서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웨딩드레스’는 그래서 단순히 ‘성공으로서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그 선택의 자유, 그 길의 이동성을 뜻한다. 그래서 여전히 ‘제작 중’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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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철조망> 검열 사례의 역사적 의미 영화 <철조망>의 검열 서류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는 이 작품이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검열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던 4월혁명의 국면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철조망>의 상영허가 신청서가 접수된 것은 1960년 3월 29일, 우여곡절 끝에 상영을 허가받은 것은 5월 19일의 일이다. 요컨대 이 영화의 검열과정은 4월혁명 발발 직전에 시작되었고 이승만정권이 붕괴한 후에 마무리되었던 것이다. 4월혁명과 함께 영화계에서는 구악의 청산과 새로운 제도의 구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승만정권의 영화계 장악에 앞장섰던 임화수 등을 징치하는 것과 더불어 관권에 의한 영화검열을 폐지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영화심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하지만 영화계 내부의 이권 다툼 때문에 새로운 영화 심의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계속 미루어졌고, 결국 1960년 9월이 되어서야 민간자율을 표방한 영화심의기구인 영화윤리전국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4월혁명 발발에서 9월 이전까지 영화검열은 여전히 문교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영화 <철조망>의 검열서류는 바로 이와 같은 과도기에 개별 영화의 검열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기존의 관행이 엄존하는 가운데 새로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규범을 둘러싼 혼선이 계속되었던 이 과도적 시기에 개별 영화에 대한 규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4월혁명 발발 직전에 상영허가 신청이 접수된 <철조망>에 대해서 검열의 주무부서인 문교부는 기존의 관행대로 내무부, 국방부, 법무부, 공보실, 대검찰청의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합동검열을 실시했다.(4월 15일 검열시사) (그림 1) 국산영화 <철조망> 검열의견서 (4월 15일 검열시사) (그림 2) 검열위원 위촉의 건, 국산영화 <철조망> 상영불허가의 건 (5월 9일 상영불허 결정) 여기서 국방부는 제한허가, 법무부는 불허가, 외무부는 “우방의 우호관계를 해칠 우려가 있음”, 공보실은 제한허가, 내무부는 “상영의 시기가 상조”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진 후인 5월 6일에 문교부는 관권 검열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민간인들(김은우, 유호, 원경수, 성인기, 천관우, 권순영)을 중심으로 검열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고 <철조망>에 대한 재검열을 시행하였다. 하지만 4월혁명 이후의 완화된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민간 검열위원들은 1차 검열 당시 당국의 의견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하였으며, 따라서 영화 <철조망>의 상영은 허가되지 않았다(5월 9일 상영불허 결정). 주로 언론인들(그들은 이후 영화윤리전국위원회의 핵심 구성원이 된다.)로 구성된 검열위원회의 견해가 과거 정부 부처가 표명했던 입장과 대동소이했다는 사실은, 이후 출범한 영화윤리전국위원회의 이른바 “민간 자율심의”가 근본적으로는 혁신적이지 못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었다. 제작자는 검열에서 지적받은 사항을 반영하여 총 27개 처를 수정, 재편집한 후에 5월 11일에 다시 상영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문교부는 원경수와 권순영을 검열위원으로 위촉하고 5월 18일에 재검열을 실시하여 “반공사상 및 우방 유엔군과의 우호관계에 유해한 장면을 대폭 삭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영을 허가하기로 한다. 서류 상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관련 서류가 누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제작자가 검열신청 취하 요청서를 접수(4월 8일)하고 자진 수정 후 재검열을 요청(4월 9일)한 것으로 보아 5월 11일 이전에도 이미 한 번의 자진 개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영화 <철조망>은 총 세 차례에 걸친 검열과 개작을 거친 후에야 상영이 허가되었고 1960년 7월 21일에 개봉되었다. 현재 <철조망>의 필름은 유실되었고 녹음대본만이 남아 있는데, 이 마지막 검열에서 지적된 사항을 수정한 흔적이 녹음대본에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 이 영화의 검열사례는 유엔군으로 표상되는 이른바 자유우방을 어떻게 재현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일종의 기준점을 제시했다. 일찍이 <피아골>을 둘러싼 논란이 한국영화에서 공산주의자와 관련한 재현의 한계를 획정지은 바 있었다. 냉전체제가 피아(彼我)의 적대적 관계로 구조화되어 있고 영화를 비롯한 시청각 미디어들이 이와 같은 적대적 관계를 구축하고 공고화하기 위한 심리전의 도구로 동원되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냉전체제 하에서 상대편(공산주의자)과 우리 편(자유우방)의 재현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피아골>이나 <7인의 여포로> 등의 사례를 통해서, 한국의 영화검열이 공산주의(자)의 재현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는 비교적 자주 거론되었던 반면에 그와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자유우방’의 재현에서 표현의 한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크게 주목받은 적이 없었다. 영화 <철조망>의 검열사례는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우방의 재현 문제를 시험대에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철조망>이 한국영화에서 자유우방을 재현한 최초의 영화는 아니다. 1950년대 중반에 제작된 한국전쟁 관련 영화들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한국군의 이른바 ‘혈맹’으로서, 또는 구원자로서 재현되곤 했다. <자유부인>을 비롯한 1950년대 후반의 멜로드라마들에서는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젠더의 문제와 결합되면서 부정적인 양상으로 재현되었다. 요컨대 195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은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문화적으로는(또는 풍속의 차원에서는) 부정적으로 재현되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었다. 1950년대에는 <지옥화>처럼 기지촌과 양공주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조차도 검열에서 별다른 제재를 받았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데, 양공주와 미군 장면을 대폭 삭제한 <오발탄>(1961)의 검열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1960년대 들어와서 이와 같은 양상은 크게 변화한다. 영화 <철조망>은 <오발탄>보다 앞서 양공주와 유엔군(미군)의 장면이 문제가 되었던 영화로서 그와 같은 변화의 시작 지점에 위치한 셈이었다. <철조망>과 <오발탄>의 검열과 더불어, 1960년대 한국전쟁 영화의 전환은 이후 한국영화에서 자유우방의 재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5인의 해병>으로 시작되고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정점을 찍은 1960년대의 한국전쟁 영화에서 유엔군의 존재감은 현저히 약화되는 대신 민족주의적 남성 영웅으로서의 한국 군인이 전쟁 수행의 주체로서 위치지어졌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박정희 정권의 등장을 전후해서 강화된 사회 전반의 (군사주의와 결합한) 민족주의적 분위기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전쟁 영화에서 유엔군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약화되었기 때문에, 자유우방의 재현이 전면화될 수 있는 무대 또한 축소되었다. 박정희정권이 검열을 명문화한 영화법을 제정(1962)하고 검열시행세칙에서 “국제 간의 우의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영화”를 금한다는 것을 명시하기는 했지만, 196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은 정치적,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대체로 비가시적인 존재였다. 영화 <철조망>의 검열사례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해방 이후 한반도에 미친 미국(과 서방진영)의 강력한 영향력이 가시화되는 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재현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영화 <철조망> 검열의 쟁점과 자유우방의 형상화 문제 사실 <철조망>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상황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문제적이었다. 포로수용소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을 때, 한국인은 모두(그들이 공산주의자건 반공주의자건 간에) 유엔군(미군)의 관리 아래 놓인 포로로서만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공포로들의 능동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한국전쟁 당시 한국인들이 처한 근본적인 존재조건을 부인하기는 어려웠다. 영화는 중립 포로인 신도람 깡(주선태 분)의 대사(“뚜렷이 내 나라 땅이면서도 외국사람이 감시하는 이 철조망 속에서 이렇게 또 같이 우리들이 싸우고 죽어야 하니”[S#3])를 통해서 바로 그와 같은 인식을 분명히 드러낸다. 또 한편으로 영화에서 치열한 반공투쟁으로 형상화되었던 포로수용소 내의 유혈폭력사태는, 사실상 유엔의 수용소 관리가 근본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와 같은 폭력사태를 두고 국제적인 비판여론이 비등했음을 감안했을 때 검열관들이 특히 이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법무부는 “그와 같은 무질서한 관리는 국제신의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고, 외무부는 “우방 및 유엔군과의 우호관계에 자미롭지 못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전쟁 포로의 송환이 냉전체제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모두 수렴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쟁점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포로 송환에 있어서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제네바협정에 따라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유지했던 ‘적색 포로’와 남한에 남기를 희망하는 ‘백색 포로’를 구분하는 일종의 사상검증이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가혹한 고문과 (전향의) 강요, 그리고 적색, 백색 포로 간의 유혈폭력사태가 벌어졌다. 반공영화를 표방했던 <철조망>은 백색 포로와 적색 포로를 각각 선과 악을 표상하는 것으로 그리고 양자 간의 폭력사태를 공산세력에 맞서는 반공포로들의 투쟁으로 위치짓고자 했지만, 한국전쟁에서 포로 송환이라는 쟁점은 그와 같은 이분법적 구도로 포섭되지 않는 미묘한 지점들을 갖고 있었다. 첫째, 이승만정권은 포로 송환 문제를, 공산세력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유엔(미국)의 방침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결국에는 일방적으로 백색 포로를 석방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난을 초래했다. 이승만이 백색 포로의 석방을 지시하는 <철조망>의 마지막 부분이 대폭 삭제된 것은 이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이승만의 독단적인 반공포로 석방이 국제사회에 던진 파문을 축소하고 그같은 이승만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제작자는 영화의 마지막을 “석방되는 포로들의 화면에 장엄한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겹쳐놓은 화면에 대통령이 “단신 책임을 지시고 애국 방공포로를 석방하는 용단”을 내렸다는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삽입하는 것으로 바꿨다. <철조망>이 다루는 포로송환 문제는 ‘혈맹’이어야 할 자유우방과 한국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검열관들은 그와 같은 균열이 어떤 형태로든 가시화되는 것을 금하고자 했다. 또 한편으로 한때 공산주의에 부역했으나 이제는 자유 대한의 품으로 돌아오는 이들(반공포로) 위에 태극기를 겹쳐놓는 결말은, 일찌기 <피아골>이 취했던 해법을 가져온 것이었다. 보도연맹원의 대량학살이나 전쟁 기간 중의 부역전력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사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은 한때 공산주의를 위해 복무했던 이들(그것이 자의건 타의건 간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끊임없는 의심과 사상검증, 부역 전력자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과 협박이 횡행하던 한국사회에서, “자유 대한의 품으로 돌아온 이들”의 진정성에 한 치의 의심도 깃들지 않도록 재현할 것이 요구되었다. 돌아오는 이들과 태극기 이미지의 중첩은 검열제도가 만들어낸 일종의 클리셰로서, 사상검증에 대한 한국사회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반영한 것이었다. 둘째는 본인의 의사에 따른 송환이라는 원칙이 북한 또는 공산주의를 가능한 ‘선택지’로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한 적색 포로들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내부에 인공기를 게양하고 일종의 해방구를 구축하는데, 영화의 서사적 장치들이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공기가 펄럭이고 적색 포로들의 역사인식과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대사로써 피력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려웠다. 1960년 4월 19일자 국방부의 검열의견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제작자는 국방부의 의견에 따라 인공기가 나오는 화면을 전면 삭제하고 강삼수를 비롯한 적색 포로들의 대사를 대폭 삭제했다. 선택의 가능성이라는 문제는 또한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는 포로의 존재를 통해서 더욱 부각된다. 195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바람이 한국에도 상륙했고 4월혁명의 분위기 아래서 동서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 노선이 가능한 선택지로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요컨대 본인 의사에 따른 포로 송환이라는 문제는 동과 서, 또는 이도저도 아닌 제3지대가 선택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형상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4월혁명의 자장 안에 놓인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1)에서 포로가 된 주인공 명준이 남과 북 어느 쪽도 아닌 중립국 인도를 선택하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철조망>은 적색, 백색 포로 외에 중립 포로의 존재를 상정함으로써 이와 같은 당시의 흐름을 반명하고 있지만 중립 포로로 설정된 “신도람 깡”(주선태 분)의 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영화 초반부에 그는 “이런 병신같은 새끼들. 인공기는 뭐구 태극기는 뭐냔 말야. 아 그렇게 말을 해도 모르겠니? 응? 여기 붓들려온 뜻을 아직도 모르느냔 말야. 패전해서 붓잡혀온 못난 쌔끼들이 무슨 국기 투쟁이냔 말야 응”(S#3)같은 대사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분명히 드러내지만 S#53 이후에 갑자기 영화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단순히 형상화의 실패인지, 아니면 다른 힘이 작용한 결과인지는 남아 있는 서류와 녹음대본만으로는 단언하기 어렵다. 영화 <철조망> 검열서류의 구성 영화 <철조망>의 검열서류는 크게 세 묶음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960년 3월 29일자 상영허가 신청서에서부터 문교부의 주관으로 국방부, 법무부, 외무부, 공보실, 내무부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1차 검열시사(4월 15일) 및 김은우(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및 이화여대 교수), 유호(경향신문사 문화부장), 원경수(연합신문사 기획국장), 성인기(조선일보사 부사장), 천관우(한국일보사 논설위원), 권순영(서울지방법원 소년부 지원장) 등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한 검열위원회의 2차 검열시사(5월 7일)를 거친 후에 최종 상영불허가 판정을 내리기(5월 9일)까지의 과정을 담은 서류이다. 제작사인 홍기영화사에서는 최초의 상영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에 영화를 자진 개작하고 상영허가를 재신청했다. 그 과정에서의 서류는 일부만 남아 있는데, 3월 29일에서 4월 5일 사이에 검열의 주무부처인 문교부와 제작사 사이에서 모종의 조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때 자진 개작한 부분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남아 있는 서류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정부 각 부처의 관계자들에 의한 1차 검열시사와 민간 위원들에 의한 2차 검열시사가 이루어졌던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4월혁명과 그 여파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 듯한데, 민간의 검열위원들 또한 상영 불허가 의견을 견지했다. 4월혁명 이후 풍속 차원에서의 검열은 상당히 완화되었으나, 사상검열의 기준은 여전히 강고하게 존속하고 있었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둘째, 5월 9일자 공문서(문화 제1540호 “국산영화 <철조망> 상영 불허가의 건”)에서 지적된 사항을 토대로 홍기영화사 대표 이봉근은 영화를 대폭 수정하여 5월 11일에 재검열을 신청한다. 이에 문교부는 2차 검열시사에 참석했던 6인을 재차 검열위원에 위촉했다.(“검열위원 위촉의 건”, 1960년 5월 17일)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5월 18일에 실시된 검열시사에 참여한 민간 검열위원은 원경수, 권순영 두 사람 뿐이며, 그 외 문교부 관료인 변시민(문화국장), 유성열(예술과장) 두 사람이 배석했다. 재검열 결과 총 7개 처의 화면 및 대사를 삭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영이 허가되었다.(문화 제1540호, “국산영화 <철조망> 상영허가의 건”, 1960년 5월 19일) 7개 처 가운데 6개 처가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지시를 다루는 영화의 결말 부분(S#126~137)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작자는 이 부분을 통째로 들어내는 대대적인 수정을 했다. 셋째는, 개봉 이후에 이봉근으로부터 홍기영화사의 대표직을 물려받은 정병준이 16mm 판본으로 <철조망>의 흥행을 하기 위해 복사판의 상영허가를 신청했던 1962년의 서류들이다. (“국산영화복사판 상영허가 신청서”) 당시에는 35mm 판본으로 극장 개봉을 마친 후에 16mm로 복사판을 만들어 흥행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으며, 이 시기 영화들의 검열서류들 상당수는 16mm 판본의 상영허가서 관련 서류를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