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 꿈에서 피다
- 감독
- 송희준
- 제작년도
- 2015
이 사회의 불균형을 이장하다 “장남도 없이 (어떻게) 무덤을 파냐!” 큰아버지( 유순웅 )의 불호령에 아버지 묘 이장을 하러 고향 마을에 막 도착한 네 자매들은 연락이 되지 않은 남동생을 찾아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들이 찾아야 하는 장남, 그 이름이 하필 ‘승락’이다. 혜영( 장리우 ), 금옥( 이선희 ), 금희( 공민정 ), 혜연( 윤금선아 ). 승락의 위로 줄줄이 누나들이 모두 왔는데도, 승락의 승낙 없이는 이장이 불가능한 사회. 승락이 아니라 혜연이 사정상 못 왔다면 이장은 진행되었을, 이곳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로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딸 넷에 막내아들. 이 집은 말 그대로 아들 낳으려 계속 출산을 했을, 오남매는 구성 자체가 딱 가부장제 가족이다. 이쯤 되면 막내딸 이름이 ‘다음 아이는 아들을 얻겠다’는 염원을 담아 딸 이름은 희생되는 ‘후남’ ‘차남’ ‘필남’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어쨌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온갖 방법을 다해 찾아낸 승락이 화면에 등장하는 건 영화가 시작된 지 44분 36초 만의 일이다. 전체 러닝타임 94분 중 거의 절반이 지나서야, 카메라는 노트북 앞에 앉은 승락의 뒤통수를 필두로 그의 손가락을 훑어 간신히 그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이 모든 상황에 잔뜩 열 받은 첫째 혜영이 승락이 있는 반지하 창문에 돌을 던지면서다. 여자친구 윤화( 송희준 )의 임신에 책임회피 중인 승락은 여러모로 비난받을 여지가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는 발언권을 가진 중요 인물로 치부된다. 그러니까 그게 남성이 집안의 통솔권을 가지는 이 사회의 가부장제! 사실 큰아버지가 승낙을 데려올 것을 ‘명령’한 건 재개발로 이장을 하게 된 지금, 자신 동생의 묘를 매장 대신 화장하려 하는 조카 딸들의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서다. 그는 같은 남자인 장남 만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믿으며, 또 그런 이유로 장남인 승락에게 더 큰 권위를 부여해 주려 한다. 가령 이미 죽은 오남매의 아버지는 혜영의 말대로 ‘그 인간 죽어서까지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문제를 회피하기 급급한 승락은 ‘우리가 (언제까지) 걔 엄마야?’라는 누나 금희의 독설을 받는 대상이다. 영화는 가부장제 아래 집안의 권위를 부여받은 남자들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데, 그래서 이 영화의 남자들은 한편으로는 귀엽거나 사랑스럽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겉으로 볼 때 무섭거나(큰아버지), 비겁하거나(승락), 말 안 듣거나(혜영의 아들 동민) 지질(금희의 남친) 해서 여자들을 자주 괴롭힌다. 물론 아버지 묘의 이장 문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기존 사회 질서에 부합해 흘러가지 않는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남매는 변화하는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들이며, 그래서 지금 심하게 이 사회와 부대끼는 중이다. <이장>의 여성인 네 자매는 그래서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찾아가려는 이 사회 여성들의 표본을 보는 것 같다. 첫째 혜영은 싱글맘이라는 상황으로 인사 가산점이 깎여 육아휴직 이후 퇴사를 권고받았으며, 둘째 금옥은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떳떳하게 판을 뒤집지 못하는 평범한 주부다. 두 언니의 ‘실패한’ 결혼 생활에도 셋째 금희는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철없는 남친에 갑갑한 채로 N포 세대의 곤궁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청춘이다. 여성 인권을 외치는 막내 혜연은 학내에 자신이 애써 붙여놓은 대자보 위에 ‘너도 결국 한남의 씨에 불과한 종족이다’라는 테러성 반응에 맞서야 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되어 우울증을 겪는 < 82년생 김지영 >(2019)의 ‘김지영’이 이들의 사촌자매 쯤이라고 해도 어울릴 것 같다. 결국 육아휴직, 남편의 외도, 결혼 문제, 페미니즘 등 대한민국 여성이 겪는 고충의 총합이 이 자매 안에 다 보인다. 정승오 감독은 이장을 하러 오랜만에 모인 남매를 혜영의 미니밴에 탑승시킨다. ‘이장 후 받게 될 500만 원을 누가 갖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시종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남매간에 그동안 쌓여 있던 갈등을 점화시킨다. 티격태격 가족 로드무비의 원조 격인 < 미스 리틀 선샤인 >(2006)의 ‘미니밴 버전’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네 자매와 혜영의 아들인 초등학생 동민( 강민준 ), 승낙의 전 여자친구 희준도 한 차에 타고 내리고 해서, 차 안은 시종 구성원이 바뀌고 복닥복닥 거린다. 시동이 걸리고 출발을 한 이상 도로 안에서 쉬이 내리는 건 불가능하고, 앉아있는 자리에 따라 맞붙는 ‘말싸움’ ‘몸싸움’의 조합도 새롭게 재편된다. ‘제한된 상황’ ‘다양한 인물’들이 이렇게 새로운 조합으로 영화의 액션과 리듬, 코믹과 드라마를 만드는 재미들이 모여 <이장>의 미니밴을 굴러가게 만든다. <이장>의 이 오밀조밀 갈등이 폭발하는 공간 구성은 사실 정승오 감독의 주특기다. 전작인 단편 <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2016)은 <이장>의 프리퀄 격인데, 입원한 엄마의 병문안을 간 딸들이 모두 엄마의 침대 위에 올라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씬은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는 탁월한 장면 연출이다. 이같은 구성이 독립영화계의 ‘어벤저스급’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 자신 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 청년 세대를 거친 남성으로서 정승오는 <이장>의 가족들이, 더 나아가 이 사회가 기울어진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 모두가 동등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 역시 새벽녘 오남매가 함께 걸터앉은 좁은 툇마루 씬에 말갛고 기분 좋은 장면으로 연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승낙의 전 여자친구가 승낙의 사과에 보인 일격은 영화를 보는 이들을 위해 남겨둔다. 각자의 가족 깊숙이 공기처럼 스며든 가부장제 사회는 이제 변화하고 있다. 그 관습의 이장을 제안해 주는 영화 <이장>의 질문이 반갑다.
< 히스테리아 >( 장만민 , 2018)는 어두운 한국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단면을 우리는 가족 혹은 가족주의라고 부른다. 지긋지긋한 가족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 아니다. IMF 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올라갔고, 가족 동반자살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가부장 가족주의가 가족을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해체하고 있고, 가족구성원인 한 개인들을 질식시키는지에 대해 영화는 주인공의 히스테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살기위해서 탈주해야만 했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인 혜주( 송희준 )의 ‘상상’에서부터 시작한다. 바닷가에서 혜주가 공놀이 장면에서부터 가족들의 시선이 심상찮다. 가족들이 반려견을 부르는 소리와 아버지가 주인공의 뺨을 때리는 장면, 그리고 현실 병원으로 장면이 넘어간다. 집으로 귀환한 혜주. 가족들은 환영을 하는 것처럼 연출하지만, 혜주와 가족들 사이에 이내 균열이 발생하고 균열을 봉합하려는 아버지-가부장의 강요와 억압 그리고 체벌이 동시에 진행된다. 결국 혜주는 다시 병원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차를 전복시키고 탈출한다. 혜주의 히스테리가 정확히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지 영화는 심플하게 보여준다. 가부장이 지배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왕국에서 개인은 존재하기 쉽지 않다. 혜주의 히스테리는 가족이다. 명령하는 자와 명령을 따르는 자들 사이에 기묘한 연대(가족)가 숨 막힌다. 명령을 어길 시에는 그에 따른 처벌이 꼭 이뤄진다. 가부장의 질서가 어떻게 가족들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는지에 대해, 반복되는 체벌 장면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주인공인 혜주는 아버지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잘못에 대한 벌로 자신에 볼에 키스를 강요한다. 강요되는 사랑은 학대다. 사랑이라 부르고 폭력이라고 읽게 되는 체벌을 통해 가족은 탄생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상상 장면이다. 상상 장면에서의 시간성에 주목해보고 싶다. 영화의 첫 장면이 주인공인 혜주의 머릿속 상상이다. 상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혜주가 경험했을 폭력적인 ‘장면’이다. 슬로모션이다. 현실에서 가족들의 시간과 혜주의 머릿속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가족들의 시간과 혜주가 경험하는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같은 공간(가족이라고 상상되는 어떤 영역들)에 있지만,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개인은 같을 수 없다. 균질하게 만들기 위해서 체벌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이 동원된다. 가부장의 법을 준수해야 하고, 그것을 어길 시에는 처벌을 받거나, 미쳐야 한다는 슬픈 사실이다. 자신만의 시간으로 현재를 살 수 없다. 현대 자본주의는 철저히 시간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 탈주하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미친 시간이라면 가능하겠지만. 혜주역의 송희준 영화에서 혜주 역을 맡은 배우는 송희준 이다. 이 영화가 첫 영화라고 한다. 주인공 혜주 역할은 내면 혹은 정신의 불편함을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인데, 나른하면서도 느리게 혜주만의 시간을 표현해낸다. 송희준 배우의 행보가 기대된다. 제17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절대악몽 최우수작품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