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군
- 감독
- 제리 런던
- 제작년도
- 1980
- 출연
- 사카이 프랑키, 리차드 챔버레인, 알란 바델, 도시로 미후네, 다미엔 토마스, 마이클 홀던, 블라덱 쉐이벌, 메구로 유키, 조지 인스, 미야구치 세이지, 아베 토루 , 타쿠마 신, 시마다 요코, 에노키 효에이, 미코 타카, 타케이 미도리, 야마모토 리니치, 오손 웰스
1930년 경성. ‘황금정 독수리’ 황룡은 신마적에게 기습을 당한다. 상처 입은 채 도망가던 황룡은 염천교 다리 밑을 지나는 도중 죽음에 이르려는 찰나, 그 아래서 거지 생활을 하던 덩치 좋은 사내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의 이름은 김두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며 거지들의 왕초인 사나이. 김두한 시리즈 포스터 이 영화를 연출한 김효천 감독은 이전에 김두한이 ‘나의 반생을 그린 영화’로 직접 언급한 적이 있었던 < 팔도 사나이 >를 연출 했고,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5편까지 제작된 < 실록 김두한 > 시리즈의 초기 연출자이기도 했다. (1, 2편 김효천 3, 4편 고영남 5편(여기서는 < 서대문 1번지 >를 의미함. 이혁수 감독의 <김두한 5부 오형제>라는 작품의 시나리오와 포스터는 있으나 개봉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이혁수 연출) 이 정도면 김두한 전문가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물론 지금 세대가 생각했을 때 김두한 영화의 끝판왕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임권택 감독의 < 장군의 아들 > 시리즈가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러나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이 좀 더 예술적인 영역에 다가가려 노력한 액션 영화라면 이전에 제작된 김두한 영화들은 말 그대로 다찌마리 영화였다. 때리고, 부수고, 죽인 다음에 ‘의리’, ‘조선을 위해’ 어쩌고 하면서 ‘협객’의 풍류를 내세우며 영웅시하고 마는 그런 영화 말이다. 1981년에 제작된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은 앞서 언급한 김두한 영화들 이후 외전격으로 제작된 영화다. 이른바 ‘협객시대’에 가장 이름이 높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영화는 둘의 주먹 대결을 떡밥으로 관객을 낚아 올려 농담 같은 영웅담으로 마무리시킨다. 사람들은 ‘누가 이길까’하는 궁금증에 표를 끊지만, 나올 땐 스크린에 넘실대는 살색의 물결에 충격을 받고 길을 나서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떡밥을 물고 만 3만여 명의 관객들…….(KMDb에 기록된 관객 수. 33,000여 명) 가슴은 아프지만 어쩌겠나. 이대근 김두한과 이강조 김두한 한국 액션영화 전문가로서 이쪽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오승욱 감독은 김효천 감독을 일컬어 “감독이기 전에 협객이라 불러도 좋을 사람”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이유를 과감한 배우기용에서 찾는데 그는 스타시스템이 공고한 충무로 판에서 가능성이 보인다면 신인이든 무명 배우든 가리지 않고 기용했던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던 < 실록 김두한 >의 주인공 이대근 은 당시 TV에서나 조금 얼굴을 알린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닌데, 수년간 단역, 조연을 전전하던 이강조 를 기용해 딱히 큰 재미는 보지 못한 영화가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이다. 연기도 그렇고 뭐 대단한 매력이 있는 배우는 아니기에 이 영화 이전에 왜 몇 년간 빛을 보지 못했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만은 주연으로 그럴싸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김두한과 상당히 닮은 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징으로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인물에 닮기만 한 사람을 갖다 놓으면 웃기려고 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 그게 진지해지면 의도치 않게 더더욱 웃겨지게 되고... 김두한은 황룡의 수하에 들어가 신·구마적을 처리하고 종로의 오야붕이 된다. 그러나 이를 탐탁하게 여긴 야쿠자 오야붕 고노에와 총독부의 미와 경부는 조선인들의 단결을 흔들면서 이들도 제거하기 위해 신의주 최고의 주먹 시라소니를 불러온다. 그렇게 싸움을 붙이려 하지만 서로의 호걸 됨을 알아본 둘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심지어 시라소니는 ‘나이수(nice)’라는 영어도 김두한에게 가르쳐주며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태양이 둘일 수는 없는 법. 그들은 사내로서 대결을 피할 수는 없는데... 사실 시라소니는 김두한과 그렇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시라소니의 명성을 진작부터 듣고 있던 김두한은 종로에 시라소니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있던 다방에 부하들과 찾아간 김두한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김두한의 부하가 다짜고짜 시라소니를 공격했다가 얻어터진 것이다. 평소라면 당연히 주먹이 불을 지르고 발이 얼굴에 가 턱을 돌려놓았을 것인데 의외로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칭하며 부하들의 경거망동을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자 시라소니 역시 사과를 했고 이 두 대인배는 이후에도 큰 트러블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시라소니는 쌀이 좋은 고장 이천에서 온 일명 ‘마렌코프’, 대권의 야욕까지 있었던 주제 모르는 정치깡패 이정재와 평생에 걸친 원수였는데 드라마 <야인시대>에도 이런 부분이 잘 묘사되어 있다. 결전 이렇게 실제로는 크게 사이도 나쁘지 않았던 두 주먹이 한 영화에 호출 것은 높은 명성 탓에 ‘슈퍼맨하고 배트맨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하는 식의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이 둘은 싸우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야쿠자 고노에, 기무라패와 총독부 미와 경부의 연합이 김두한, 시라소니가 함께한 9인의 결사대와 결전을 치르는 것이다. 앞서 다른 잔잔한 재미들이 있지만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서오릉이 분명한 릉에서 싸우는 것부터가 이상하지만, 왜 일본인 오야붕들이 막부시대 쇼군들처럼 의자에 앉아 부하들을 지휘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 그건 넘어가자. 그래도 조선인 건달 9명을 상대하는데 50명은 되어 보이는 일본인들이 칼을 들고 설치는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고노에가 “일본인의 명예가 달린 싸움이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안쓰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정말 이 시퀀스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50여 명의 일본인이 훈도시만 걸친 채 스크린을 살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점이다. 이쯤 되면 거의 스크린에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는데 우리의 김두한형 시라소니형의 멋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자니 어쩔 수 없이 보긴 봐야겠고 보자니 훈도시... 아 힘든 것이다. 마지막의 호탕한 외침, ‘나이수!(nice)’ 그들의 활약을 멋지게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이런 대규모(?) 다찌마리 씬이 들어갔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처음부터 단도직입의 연출을 보여주기 때문에 디테일이나 맥락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깡패영화는 유난히 미화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때는 그런 영화들이 주류가 되기도 했을 만큼 많이 제작되었고 또 흥행도 되었다. 나는 늘 그런 유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분으로 아무리 포장을 한들 깡패는 깡패고 폭력은 폭력이다. 게다가 그것이 실존 인물을 가져와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시치미 뚝 떼고 펼치는 것이라면 위험은 더 할 것이다.(결국 ‘ 조양은 ’이 직접 출연까지 한 < 보스 >라는 영화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땐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싶었다. 심지어 각본이 송능한 !) 사실 김두한이라는 인물도 이견이 많다. 그는 정말 조선인을 위해서 주먹을 썼느냐, 아니면 그저 이권을 따라 움직이면서 포장을 위해 그런 명분을 갖다 쓴 것이냐. 어쨌든 어설픈 영웅주의는 싫다. 그래서 이 영화의 앞뒤 없는 호쾌한 연출이 좋다. 짧은 시간 내에(영화의 러닝타임은 87분이다) 후루룩 일본놈들을 때려잡고, 김두한형과 시라소니형이 ‘나이수!(nice)’를 외치고 호탕하게 정리되는 이 영화는 차라리 그저 ‘농담 한 번 해봤습니당 헤헤 시원하시죠?’ 하는 느낌이 들어 나 역시 호걸이 된 듯 크게 웃고 마는 것이다. 이강조 신우철 장미희 원미경 감독: 김효천 각본: 이일목 개봉극장: 대한 관람인원: 33,537명
지금까지 본 애니메이션 DB사이트 「애니Db」에 칼럼과 애니메이션 추천 글을 몇 번 써왔는데,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에 집중하고자 했다. (※원고 후반부 리스트 참조)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필자는 1995년부터 여러 잡지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글을 연재해왔는데, 그 중에는 몇 가지 집중적으로 주목해온 테마가 존재한다. ‘한국 작품의 해외 진출’ 등과 같은 테마가 그것인데, 또 하나 애니메이션계에서 여성 스태프의 역할에 대해서도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글에서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여성 애니메이터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남성 중심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국내외를 막론하고, 단편애니메이션이 아닌 상업 작품에서는 여성 스태프의 역할이 주로 작화나 각본 분야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즉 캐릭터 디자이너라든지 원화와 동화 등 작화 부분, 그리고 스토리를 쓰는 각본 분야에는 여성 스태프도 많지만,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감독’이나 제작을 책임지는 ‘프로듀서’ 등의 파트에는 여성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참고로 일본의 TV애니메이션에는 작품 전체의 감독을 ‘시리즈 감독’이라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각 화별 연출담당을 ‘연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의 TV애니메이션의 경우 ‘연출’이라 불리우는 직함이 보통 국내에서 사용되는 ‘감독’과는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는데, 이 ‘연출’ 부분에는 여성 연출자도 과거로부터 어느 정도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예를 들어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나 『기동전사 건담』의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 공각기동대 』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나 『 신세기 에반겔리온 』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 등에 해당하는 ‘감독’은 대개 남성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일본에서 현저한 상황이었는데, ‘00년대’도 끝나 2010년대에 접어든 현재 이 경향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있지 않나 생각되어 그 부분을 살펴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일본의 여성 애니메이터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전통적으로 여성 스태프가 주로 캐릭터디자이너나 작화 감독, 혹은 원화나 동화 담당 등 작화 분야에 존재해왔다. 『 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 』(국내 제목 『천사소녀 새롬이』)와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등의 작품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은 타카다 아케미(高田明美), 『미소녀전사 세일러문』과 『세일러문 R』, 『애천사전설 웨딩피치』의 캐릭터디자이너 타다노 카즈코(只野和子), 소위 ‘용자 시리즈’ 중의 일부(『 전설의 용자 다간 』『용자특급 마이트가인』『용자경찰 제이데카』)와 『 마법기사 레이어스 』의 작화감독(일부는 캐릭터디자인까지)을 맡은 이시다 아츠코(石田敦子) 등이 그런 사례이다. 『시티 헌터』 시리즈와 『아르스란 전기(Arslan戰記)』(『아루스란 전기』라고도 표기)의 캐릭터디자인을 맡았고 『루팡 3세 PartⅢ』, 『기동전사 건담ZZ』 등에서는 몇몇 화의 작화감독을 맡은 카미무라 사치코(神村幸子) 역시 일본에서 여성 애니메이터로 유명한 인물이다. 타카하시 쿠미코(高橋久美子) 역시 『시티 헌터』 시리즈에서 작화감독을 맡은 후 『도쿄 BABYLON(바빌론)』『 카드캡터 사쿠라 』 등 만화가집단 CLAMP(클램프) 작품을 애니메이션화할 때 캐릭터디자인·작화감독을 맡은 바 있다. 최근에는 『오란고교 호스트부』『기동전사 건담 UC(유니콘)』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았다. 이노마타 무츠미(いのまたむつみ)는 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더 많이 활동했는데, 초기에 『 전국마신 고쇼군 』『시티 헌터』에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참여하고 『 윈다리아 』『마경전설 아크로번치』『프라레스 산시로』에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다.또 『우주황자』『바람의 대륙』『퓨처 그랑프리(GPX) 사이버 포뮬러』『브레인 파워드』에 캐릭터원안으로 참가했다. 나카지마 아츠코(中嶋敦子)는 『 란마 1/2 』『 체포하겠어 』 시리즈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고, 『하멜의 바이올린』『트리니티 블러드』『프린세스 프린세스』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은 베테랑 애니메이터다. 하야시 아케미(林明美)의 경우에는 거의 주로 원화나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애니메이터인데, 『너스앤젤(간호천사) 리리카 SOS』『 소녀혁명 우테나 』 등이 대표작이다. 『 후르츠 바스켓 』에서는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도 맡았고, 『극장판 소녀혁명 우테나 애덜레센스(Adolescence) 묵시록』에서는 작화감독을 맡은 바 있다. 야마모토 사와코(山本佐和子)는 여성 애니메이터로서 메카닉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사라키』『진키 익스텐드』『슈퍼로봇대전 OG -디 인스펙터-』에서 메카닉 작화감독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밖에는 『지옥소녀』『학생회의 일존』『전설의 용자의 전설』 등에도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 세인트 세이야 』(다른 번역 제목 『성투사 성시』)의 히메노 미치(姬野美智)도 마찬가지로 작화 분야의 유명한 인물이다. 히메노 미치는 『꽃의 아이 룽룽』, 『 베르사이유의 장미 』 등 1979∼1980년 작품에서부터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던 베테랑으로, 최근에는 『 유☆희☆왕 』 시리즈의 캐릭터디자인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여성 애니메이터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너에게 닿기를』 시리즈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 각화별 작화감독 등을 맡은 시바타 유카(柴田由香), 『12국기』『미도리의 나날』『영국사랑이야기 엠마』 등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은 쿠스모토 유코(楠本祐子), 『강철천사 쿠루미』『플라네테스』『브레이브 스토리』 등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을, 『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시리즈에서 메인 애니메이터와 총작화감독을 맡은 치바 유리코(千羽由利子) 등이 그 예이다. ■일본의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위에 소개한 것 이외에도 작화 분야에서는 많은 여성 애니메이터가 활약했고,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여성 애니메이터의 이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주지한 바와 같다. 하지만 유독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감독’이나 작품의 기획 단계를 진행하는 ‘프로듀서’라는 직함에서만큼은 여성 감독의 이름을 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소녀만화(국내에서는 주로 ‘순정만화’로 분류되는) 원작 작품이나, 여성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조차도 감독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여성 애니메이션 팬은 남성 대상의 작품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고, 혹은 캐릭터 중심의 팬, 성우 팬으로 넘어가는 케이스도 적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다. 애니메이션의 여성 팬들에게서 소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소위 ‘BL(보이즈러브)’ 패러디나 동인지가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에는 어쩌면, 이와 같이 작품 기획 단계에서는 철저하게 남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특성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공고한 듯 보이던 남성 중심의 애니메이션 감독직에 여성이 기용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났끼 때문이다. 우선 1990년대에 애니메이션 작품의 감독을 맡은 여성으로서는 『마루코는 아홉살(꼬마 마루코)』 시리즈의 스다 유미코(須田裕美子), 『YAWARA!(야와라)』『 미라클 걸즈 』『쾌감 프레이즈』의 토키타 히로코(ときたひろこ), 『미소의 세상(키코 스마일)』의 시부이치 세츠코(四分一節子), 그러던 것이, 『에비츄』(1999년), 『부탁해! 마이멜로디』 시리즈(2005년~2009년), 『탐정오페라 밀키홈즈』(2010년)의 모리와키 마코토(森脇眞琴), 『 최종병기 그녀 』(2002년), 『리스토란테 파라디조』(2009년)에서 감독을 맡은 카세 미츠코(加瀨充子), 『신백설공주 전설 프리티아』(2001년), 『뱀파이어 기사』(2008년), 『스킵 비트!』(2008년)의 사야마 키요코(佐山聖子) 등 점점 TV시리즈를 연출하는 여성 감독이 늘어나는 추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점점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주류적인 히트작을 내놓는 여성 감독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 중에도 『부탁해! 마이멜로디』(모리와키 마코토 감독)는 4년 이상 이어진 장편이고, 그 이전의 『마루코는 아홉살』(스다 유미코 감독), 『미소의 세상』(시부이치 세츠코 감독) 역시 1년 이상의 장편 TV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전부 유아 내지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징이 있다. 『YAWARA!』『미라클 걸즈』의 토키타 히로코 감독 정도가 예외적으로 아동용이 아닌 장편 TV애니메이션을 연출했다는 예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2010년대의 일본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2000년대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게임의 화제작으로서 관심을 모은 『쓰르라미 울 적에』의 TV시리즈(2006~2007년), 그리고 유명한 『 노다메 칸타빌레 』 시리즈(2008~2010년)는 콘 치아키(今千秋) 감독 작품이다. 콘 치아키 감독은 그 외에도 『순정 로맨티카』 시리즈(2008년), 『괭이갈매기 울 적에』(2009년)도 연출했다. 『AIR(에어)』『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러키☆스타』『CLANNAD(클라나드)』에서 원화를 맡았던 야마다 나오코(山田尙子)가 첫 감독 작품으로 내놓은 『케이온!』은 2009년과 2010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최대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초대형 인기작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11년 개봉 예정인 『 케이온! 』의 극장판 감독으로도 내정되어 있고,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연출자로서 자리잡고 있다. TV판은 아니지만, 2006년에야 애니메이션 업계에 데뷔한 1985년생의 젊은 마츠모토 리에(松本理惠)는 경력의 대부분이 『두 사람은 프리큐어』 시리즈 뿐인데, 2010년 『영화 하트 캐치 프리큐어! 꽃의 도시에서 패션쇼…인가요!?』로 약관 25세에 시리즈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발탁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2000년대 후반 이후 주목받는 여성 애니메이션이 늘어나고 있는데,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1990년대에도 이미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은 존재했으나 대형 히트작을 담당한 경우가 없었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크게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전까지의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특징으로 여성 캐릭터의 기호성(소위 ‘모에’, ‘츤데레’ 등)이나 데이터베이스성(아즈마 히로키 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등의 서적을 참조할 것)이란 측면이 주로 지적받았던 점은, 어쩌면 남성 중심의 연출이 일반적이었던 2000년대 이전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특징과도 연관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케이온!』과 『쓰르라미 울 적에』로 여성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어떤 변화를 보일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케이온!』으로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09년 일본의 잡지 「오리콘 biz」와의 인터뷰에서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기호화되기 쉬운데, 그런 단어(분류법)으로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작화 담당자에게 애니메이션의 여자 캐릭터가 자주 하는 포즈를 금지하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케이온!』은 기존의 남성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초대형 히트작이 되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기호화’를 쓰지 않고도 인기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명을 한 셈이니 향후 업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궁금하다.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과 사회 변화 출판만화나 문학에서는(일본에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장편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겐지 이야기』의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부터가 여성작가로 알려져 있다) 오래 전부터 당연히 존재해왔던 것이 여성 작가인데, 크리에이터 단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르에서는 당연했던 여성의 존재가 집단 제작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단체를 통솔하는 역할인 감독으로서 드물었던 것은 결국 일본 사회에서의 여성이 가지는 위상과 연관이 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만화연구서 『만화! 문화 사회학적 읽기』(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9년 발행)의 공동저자인 최흡은 2011년 1월 20일에 열린 「망가: 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전 심포지엄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같은 예술 작품이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는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그 사례로 작중의 여성 인물의 위상 변화에 관해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30년 이상 시리즈가 이어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시대별 여성 캐릭터를 망라하여 그 특징을 설명했는데, 1979년 발표된 『기동전사 건담』에서는 군대 내의 여성 캐릭터가 주로 통신을 담당하는 통신사였고 로봇의 파일럿이나 전함의 함장을 맡은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임시직 정도의 대우였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던 것이 1985~1987년의 『기동전사 Z건담』『기동전사 건담ZZ』에서는 정식 파일럿이나 메카닉 기술자로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2002년의 『기동전사 건담 SEED』에 이르러서는 여성 캐릭터가 군대 내에서 함장이나 부함장 등 ‘지도자’ 역할로도 등장하게 되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2007년 작품 『기동전사 건담 00(더블오)』에서도 마찬가지로서, 70년대로부터 8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면서 여성 캐릭터가 점점 전문직으로, 커리어우먼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애니메이션 작품 내에서의 여성 캐릭터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업계 내에서의 변화에도 시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여성이 단순한 동화나 채색을 담당하던 것에서 캐릭터디자인이나 각본과 같은 전문직으로, 나아가서는 집단을 통솔하는 지휘자로서도 변화해온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내부의 변화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사회학적인 연구에도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