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서 건진 내딸 2
- 감독
- 김호선
- 제작년도
- 1986
- 출연
- 민규, 김혜수, 이희성, 남궁원, 김윤경, 박원숙, 김길호, 조영권, 여진구, 최성, 김용태, 김혜정, 채문성, 안효성, 나갑성, 조학자, 백송, 안진수, 곽동철, 박용팔, 엄도일, 공건일, 황의식, 홍미애, 김은숙
KMDb 연재를 시작한 지 2년이나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는 동안 연재와 함께 했다. 처음 기획단계에서 한국영화의 여성주의적 ‘정동’을 주제로 삼았고, 당시 양분된 반응을 얻었던 < 아워 바디 >로 연재를 시작했다. ‘정동’이란 주제로 연재한 마지막 글은 시작 같은 끝이 될 수 있는 영화로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영화사의 첫 여성감독인 박남옥이 연출한 < 미망인 >(1955)을 선택했다. 복잡하게 얽힌 오각관계를 재현하는 대화씬의 연출력이 빛나는 <미망인>은 거리를 방황하며 혼란스러움을 드러내는 발의 몽타주로 끝난다. 이 엔딩씬은 10분가량의 사운드와 마지막 장면의 프린트가 소실되어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황을 영원히 끝낼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망인>은 박남옥 감독의 첫 번째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이다. 차기작에 대한 열망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갖고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룰 기회는 없었다. 1955년에 개봉한 <미망인>은 전후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일제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미군통치 시기를 지나며 조선의 전통적 이데올로기는 균열이 나고 어느 정도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통적인 성역할은 현실적으로 급격하게 해체되는 수순에 이르렀다. 그것은 단순히 도덕이나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전통적인 성역할이 유지되기 위해선 경제권을 갖고 있는 남성 가부장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많은 남자들이 참전 중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채 돌아와, 가장이 된 여자들이 오롯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또한 전후 미처 특정 체제가 구축되기 전 미군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문물의 파장도 있었다. 문학과 영화는 당시 전후를 묘사하기 위해 전통적 성역할에 도전하는 신여성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프레걸(après-girl)이 그것이다. <미망인>뿐 아니라 동시대에 나온 < 자유부인 >(한형모)과 < 지옥화 >(신상옥) 등도 그러한 여성들을 그리고 있다. <미망인>의 주인공 이신자(이민자)는 전쟁 중 남편이 죽은 후 어린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 신자는 딸과 함께 잘 살아 보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남편이 없다고 그녀를 우습게 본다. 옆집 여자 숙은 술 먹으며 빈둥대는 나이 든 옆집 남자와 신자를 엮어보려 하고, 남편 친구의 아내는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자기 남편에게 들이대지 말라고 협박한다. 그녀는 생활비가 모자라 돈을 빌리려던 신자를 극도로 경계한다. 신자는 남편 없는 설움을 겪는다. 이때부터 신자는 태도를 바꾼다. 어차피 자기의 감정과 욕망이 저자거리에서 다른 이들에 의해 쉽게 취급받을 바에야 정말로 좋아하는 남자와 사랑에도 빠져보면서 자기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신자는 무작정 순진한 여성도, 그렇다고 다른 영화들에서 묘사된 아프레걸처럼 치명적 매혹으로 남자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팜므 파탈도 아니다. 눈치 빠르고 생존력 강한 신자는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유부남의 호감을 적절한 선에서 이용하고, 양장점을 운영할 만한 능력과 성실함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전후 여성의 관점에서 경제적 문제들이 치밀하게 묘사된다. 현물이든 인맥이든 자원이 없는 신자가 왜 남편친구인 이사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지, 왜 사랑하는 딸을 자신이 키울 수 없고 모성과 사랑 사이에서 양자택일 하도록 강요되는지, 그리고 여성들 간의 불화와 연대는 왜 발생하게 되는지 등을 보여준다. 서사적으로는 신여성들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면서 시청각적으로는 그 여성들에 매혹되며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이 영화에는 없다. 오히려 남편 있는 중상층 여자, 남편 없이 홀로 딸을 키우는 여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자들이 각기 자기의 위치와 계급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욕망을 추구하며 꿈을 잃지 않으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두가 ‘해바라기’인 이들은 각자가 위치한 계급과 가족구성에 따라 남성들과 각기 다른 관계를 맺는다. 세 여자가 택이라는 한 남자와 모두 성적 관계를 맺기 때문에 그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자는 애인과 딸, 그리고 사업적 성공 모두 갖고 싶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미망인’인 그녀에게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이 영화는 신자가 그러한 선택의 강요 속에서 오래 갈등하는 것을 보여 준다. 영화는 “이웃에 이러한 미망인이 있었다. 수렁에 빠졌을 때라도 그는 해바라기였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신자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관객도 섣부른 단죄 이전에 그가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지켜봐줄 것을 요청한다. 신자는 전후 팍팍한 삶에서도 포기하는 삶보다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라고 선택하는 생명력 있는 인간이다. 박남옥 감독은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여성들뿐 아니라, 계급이 다른 남자들을 배치해 그들도 비교한다. 이사장은 유부남이면서도 은근슬쩍 돈을 이용해 신자에게 호감을 표명한다. 신자는 그 노림수를 알면서도 생활비와 사업비를 위해 그의 접근을 안전한 거리까지만 허용한다. 신자가 이사장과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장면은 상투적인 대화 장면인데도 이면에 서로 다른 의도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기에 긴장감을 이끌어 낸다. 관객들은 오프닝에서 그의 아내가 신자를 찾아가 한바탕 대거리를 하고 돌아간 것을 이미 보았다. 그의 호감을 적절한 수준에서 받아내면서 신자는 그의 아내가 찾아온 사실을 전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켜 유감이라고 한다. 관객들은 그의 호감에 기반 해 도움을 받으면서도 더 이상의 성적 접근은 분명하게 거절하는 신자의 대화기술 속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느낀다. 극장 간판을 그리며 혼자 사는 젊은 남성인 택(이택균)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해 다양한 계급과 조건의 세 여성 모두와 관계를 맺는다. 신자를 포함해 세 여자는 옴므 파탈인 이 남자에게 매혹 당한다. 택은 돈이 많은 이사장 아내의 불륜남으로, ‘미망인’인 신자의 애인으로, 전쟁 중 헤어졌던 옛 애인 진의 순정남으로 오고간다. 오히려 전후에 여자들을 이용해 살았던 것은 가진 것 없는 젊은 남성일 수 있다. 박남옥 감독은 ‘아프레보이’(après-boy)라고 불릴 만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전후는 압도하는 폭력과 파괴가 휩쓸고 지나간 시간이지만, 또한 개인이 자기만의 윤리 속에서 선택의 기준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미망인>의 인물들은 전쟁 중 죽은 줄 알았던 애인(택과 진)과의 재회처럼 극적인 사건과 선택을 맞닥뜨린다. 이사장과 신자, 택과 이사장 부인이 술집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복잡하게 얽힌 선택의 길에 놓인 인물들을 동선과 공간화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넷이 따로 차에서 내려 대문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기까지 정원길을 걸어들어가고 나오는 장면을 정성들여 보여준다. 그 길은 선택의 길이다. 먼저 들어온 택과 이사장 부인이 있는 방의 옆방에 이사장과 신자가 들어온다. 두 방의 교차편집이 진행된다. 이사장 부인은 택이 신자를 만난 것을 추궁하고, 이사장은 신자를 만나 자신의 아내의 외도를 알리며 신으로부터의 위로를 바란다. 그리고 먼저 방을 나온 신은 따로 나온 택과 그 길에서 만나 같이 나가버리고, 이사장 부인은 급작스럽게 만난 남편에게 냉대를 당한다. 신자는 택과의 사랑도 이루고, 이사장에게 투자도 받는다. 신자는 택과의 연애를 이어가기 위해 딸인 주를 동네 나이든 부부에게 맡기지만, 택은 옛 애인인 진을 만난 후 사라진다. 신자는 이후 양장점을 열고 경제적 독립을 이룬다. 신자가 낮에 소설책을 읽다 방에 누워 애인 택과 딸 주의 환상을 보는 장면은 신자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재현한다. 신자가 독백으로 읽어 내려가는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인은 그 사나이와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 사나이는 하루의 향락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인은 큰 유리컵에다 진한 술을 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방바닥에 누운 신자 위로 디졸브된 택과 주가 교차로 편집된다. 신은 경제적 독립, 사랑, 가족 어느 하나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신자는 신여성으로 방안 탁자에 놓여있는 액자 속 마를린 디트리히와 근대소설의 욕망하는 여성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미망인>의 마지막 10분은 안타깝게도 사운드가 손상되어 대사를 들을 수 없으며, 마지막 장면은 프린트가 완전히 소실되어 엔딩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신자, 택, 진이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사운드가 없는 무성영화의 상태는 그들의 혼란스러움을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속상한 신자가 옆집 친구 숙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진과 택이 함께 있는 장면과 교차된다. 그 술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는 사운드가 소실되어 알 수 없다. 신자와 숙의 대화 장면은 깊은 고뇌에 빠진 척하며 홀로 방황하는 택 그리고 휘청대며 걷는 몽따주된 그의 발들과 교차편집 된다. 욕망의 대상을 뚜렷하게 알고 그것을 다 갖기 위해 달려가는 생존력 강한 신자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정처 없이 떠도는 무력한 택 모두 혼란에 빠진다. 미망인은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자의 삶이 철저하게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가부장제적 단어이다. 하지만 <미망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도 자신의 주체적 삶을 살아가고 복잡한 현실과 욕망의 간극 속에서 갈등하는 신자를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크린 위 여성들의 복잡한 마음이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2021년 10월 15일 정연씨에게, 정연씨, 한국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얼마 전 물으셨지요. 평소 그랬듯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싫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싫은 까닭을 설명하려면 밝힐 일이 너무 많아 말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글로 대답을 드리려 하지만, 이것도 매우 어중간한 대답으로 그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싫음과 그 여파가 한국 영화와 제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이 주제의 중대성이 제 기억과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1) 그렇습니다, 정연씨. 제가 지금 정연씨에게 쓰고 있는 건 편지입니다. 공교롭게도 정연씨에게 처음 편지를 쓴 날이 2015년 10월 15일이더군요.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7년 만에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7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해 그전과 지금을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솔직히 말하면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연씨는 그동안 아기를 낳고 일산으로 이사 갔으며 네 권의 책을 내고 한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백스물두번의 토크 사회를 봤으며 담배를 끊고 살이 쪘지만 여전히 브릿팝을 듣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LP판으로 브릿팝을 듣는다는 사실이겠지요. 정연씨가 휴대용 턴테이블을 문보영 시인에게 선물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정연씨는 그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걸까요. 문보영씨의 인상적인 에세이 <일기 시대>에는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영씨의 성격 유형은 INFP로 ‘열정적인 중재자’였는데 어느 날 INFJ ‘선의의 옹호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연씨는 INTP ‘논리적인 사색가’이지요. 두 유형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때문에 잘 맞다고 합니다.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로 찰떡궁합이라는군요(참고로 저는 MBTI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만해서일까요, 너무 겁쟁이라서일까요. 어쩌면 이 둘은 같은 거 아닐까요). 아무튼, 정연씨는 턴테이블이 아까우니 LP를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시험 삼아 LP를 샀다지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수십년 간 들어온 브릿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제프 베조스는 정연씨가 주문한 New Order의 네 장의 LP판 중 두 장을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상태로 배송했지요. 그럼에도 당신의 못말리는 구매욕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ROOM29”를 주문했으니까요. “ROOM29”는 선셋대로의 전설적인 호텔 샤또 마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앨범이라고 하더군요. 자비스 코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레코드는 영화가 인간 존재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지점에 완전 푹 빠져 있어요. 2) 자비스와 칠리가 2017년에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정연씨, 상우씨와 바비컨 센터를 걷던 2019년의 어느 가을 날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은 점심 대신 칠리 페퍼 아이스크림을 먹었지요. “ROO29”에도 이런 제목의 곡이 있네요. “Ice Cream as Main Course.”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 모든 것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말이지요. 사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음악: 브릿팝(25년째) 좋아하는 뮤지션: 뉴오더(25년째) 기록 시스템: 미니컴포넌트 -> CD플레이어 -> 아이팟 -> 스포티파이 -> 턴테이블 본질은 그대론데 실존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턴테이블로까지 브릿팝을 듣는 정연씨가 조금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영화를 향유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하는 시즌제 드라마가 저에게는 루이 푀이야드 같은 감독의 연속영화(serial film)를 연상시키기도 하니까요. 참고로 정종화 연구원은 연속영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편 극영화가 정착되기 이전인 191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제작되고 유행했다. 주로 활극적인 내용을 2권(롤) 1편으로 구성하고 그 편의 마지막에 위기일발의 장면(cliffhanger)을 넣어, 최종편이 끝나는 12, 13주부터 24, 25주 동안 관객들이 매주 영화관을 다니도록 만드는 형태다.” 3) 어쩐지 욕하면서도 < 오징어게임 > 다음화를 클릭하는 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설명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정말 다를까요? 뭐가, 얼마나?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일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시스템의 동적평형 때문이지요.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변화란 어쩌면 이런 것 아닐까요.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4) 여기 질서/파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2015년 10월, 저는 고다르가 남가주 대학에서 토론 중 한 말을 인용하며 편지의 끝을 맺었습니다. 2015년 10월 31일이 보낸 편지였지요. 그리고 7년이 지난 2021년 10월 30일, 정연씨와 저는 강릉영화제에서 “한국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사람들”을 주제로 토크를 할 예정이지요. 정연씨가 보내온 대본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지돈: 그러나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지 않나요? 정연: 그런 점을 바꾸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을 보러 올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 에세이-필름을 보러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뀌어야한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그것은 단지 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돈: 관객을 바꾸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정연: (관객을 바라보며) 세계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 5) 저는 정연씨의 이 대본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과거에 우리가 나눈 원고-편지에 대한 단순한 패러디인지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희에게는 몇 가지 논쟁점이 더 있지요. 정연씨는 최근 홍상수의 영화에 빠졌고 21세기 한국영화는 홍상수다 , 라고 주장하는 꿈을 종종 꾸기도 합니다. 저로 말할 거 같으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홍상수(또는 김기덕)이며 그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집니다. 제가 한국 영화로 진입한 첫번째 입구였던 봉준호와 박찬욱이 지금까지 든든한 이정표가 되었다면 아마 저는 길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보며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대의 사람이 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어떤 별은 너무 환하게 불타 쳐다 볼 수 없을 정도고 어떤 별은 블랙홀에 흡수됐으며 어떤 별은 낙하해서 코앞을 스쳐지나기도 합니다. 길을 알려주기는커녕 우리의 행성을 박살내려는 양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홍상수고 그러므로 저와 정연씨가 10월 말에 강릉에 가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강릉이 어떤 장소인지 기억하시나요? < 강원도의 힘 >이 20세기 영화라는 이유로 우리의 에세이 필름에서 제외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에도 강릉이 나오니까요. 저는 정연씨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스트리밍 사이트에 있는 모든 홍상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송선미 분이 김민희 분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네요. “꼭 읽을 책을 사. 그래서 그 책을 깊이 만나. 정말 싸우듯이 그렇게 만나야 돼, 책하고.” 알겠죠, 정연씨? 꼭 읽을 책을 사세요. 샀던 책은 그만 사시구요. 2021년 10월 24일 정연씨에게 어제 정연씨와 리들리 스콧의 신작 < 라스트 듀얼 > GV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 걸까요?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 추위 때문에 온몸이 떨려서 그런 걸까요? 저는 오늘 검색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좋은 작품에 비해 GV는 좀 아쉽더군요. 오른쪽에 계신 작가님이 이야기를 벌여놓으면 왼쪽에 계신 평론가님이 수습하고 정리하는 진행이 다소 매끄럽지 않아 그렇지 전 꽤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 네영카 및 익스트림 무비 자유게시판에서 발췌 보시다시피 정연씨가 또 한번 저를 구원했습니다. 정연씨가 아니었다면 GV는 수렁에 빠졌을 게 분명합니다. 저희가 처음했던 GV 기억하시나요? 빔 벤더스의 영화 <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이었죠. 저희의 GV는 어느 네티즌에 의해 “올해 최악의 GV”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더 이상의 GV 섭외는 없었죠(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영화 관계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저희는 운좋게 GV 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정연씨는 과거의 오욕을 극복하고 이동진-되기를 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감미로운 목소리, 아담 드라이버의 잘생김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의사-페미니즘에 대한 시의적절한 논평… 거리두기로 인해 구 아이맥스 관이었던 용산 CGV 4관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접한 정연씨의 모습은 새로운 평론가의 탄생을 보는 듯했다고, 어느 관객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또 한번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2015년 10월을 가로질렀던 저희의 편지에 리들리 스콧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오늘과 같은 날인 10월 24일, 제가 정연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말입니다. 저는 < 마션 >을 보고 난 뒤 이렇게 씁니다. <마션>을 보니 리들리 스콧은 하수라는 저의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는 쓸개 빠진 곰처럼 굴더군요. 꼬리를 흔드는 곰이란! 과거란 대체 무엇인가요. 정연씨. GV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 속에 울리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은 언제나 지금도 일어납니다. 그 일치가 너무 놀라워서 손에 쥔 상상 속의 펜을 바닥에 떨어뜨릴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편지 따위를 쓰지 말았어야 했나 봅니다. 자기 자신한테서 벗어나질 못하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편지를 혐오합니다. 과거의 편지에서도 내내 투덜대더군요. 편지는 21세기 최대의 가식이다, 편지를 쓰느니 돼지를 잡겠다…(이건 앨프레드 테니슨의 말입니다). 그러나 가끔 편지가 위대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령작가 리 이스라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녀는 1967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를 다룬 에스콰이어지 기사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비타협적이고 시니컬한 브룩클린 출신 유대계 레즈비언이었던 리 이스라엘은 이후 탈룰라 뱅크헤드와 도로시 킬갈렌 같은 여성들의 전기를 쓰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그러나 운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작업한 화장품 업계의 대부 에스티 로더의 책이 처참한 평가를 받게 되거든요. 그녀는 이후 긴 슬럼프와 가난, 정신적인 궁핍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리 이스라엘을 구한 건 편지였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해도 유명인들의 편지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고서적 같은 물품이었습니다. 뉴욕의 서점들은 낡은 서랍에서 나온 편지를 구매하고 수집가들에게 되팔았지요. 리 이스라엘은 편지를 위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타자기를 사용해 작가나 코미디언, 배우의 문체를 흉내낸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끝에 어설프게 위조한 서명만 하면 작업 끝! 아무도 그녀의 위조 편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죠. “도로시 파커는 역시 너무 유머러스해! 그녀의 성격이 편지에 묻어나네요.” 그러나 결국 리 이스라엘의 사기 행각은 FBI에게 적발됩니다. 리 이스라엘은 죽는 날까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을 썼고 그 이야기는 영화화가 되었지요. 자서전과 영화 모두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히 울립니다. 편지는 내 최고 걸작이고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리 이스라엘의 편지 쓰기를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신: 되기”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리 이스라엘이 도로시 파커나 헤밍웨이, 노엘 카워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편지가 되었지요. 이른바 편지-되기. 그리고 그녀의 편지는 수신자에게 배달되지 않습니다. 편지 속의 수신자는 처음부터 위조된, 가짜 수신자일 뿐이지요. 진짜 수신자는 익명의 군중이며 이 편지는 시작부터 오배의 가능성 위에서 쓰였습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썼지요. “’유령’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모든 시니피앙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확률적 오배가능성, 오배될 가능성(약속)과 오배되었을지 모르는 가능성의 조합에 다름아니다.” 6) 리 이스라엘이 고스트라이터였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제가 한국영화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과도 관련이 없구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아주 간명한 하나의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한국 영화의 얼굴과 언어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나”를 대체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로지 브라이도티를 인용할 차례입니다. 되기들은 외부의 다른 타자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주체를 그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비통일적 실재로서의 유목 주체는 자기 추진적인 동시에 이질적으로 정의되거나 외부를 향한다. 모든 되기는 소수자로, 다시 말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고전적인 이원론의 ‘타자들’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그 과정에서 이 타자들을 대체하고 재영토화하지만 항상 일시적인 기준으로만 그렇게 한다. 7) 김홍준의 < 나의 한국 영화 >를 보라고 했던 제 말을 기억하시나요? 임재철 평론가는 폴 발레리가 “비평이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식한 사람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와 자기 자신 너머로, 포스트-미Post-Me, 포스트-(내)얼굴… 임재철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오르네요. “금정연은 영화 감독을 해야돼. 근데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려. 너무 착해보이잖아.” 부디 무사히 강릉에서 뵙길 바라며. *** 1) <작가의 편지>(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황종민 옮길, 예술문화, 2021) 2) "How a mythical Hollywood hotel inspired Jarvis Cocker's and Chilly Gonzales' project about the magic of cinema", <Loud and Quiet> 3) " 연속영화와 연쇄극, 극영화의 등장 ", 정종화, KMDb 4) <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8) 5) <고다르 X 고다르>(데이비드 스테릿 엮음, 박시찬 옮김, 이모션북스, 2010) 6) <존재론적 우편적>(아즈마 히로키,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5) 7)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이미례 는 1957년 8월 20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에 재학하면서 스승 유현목 감독의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한국영화사의 거장 유현목의 조감독으로 여성이 등장하자 여성 감독이 드문 영화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졸업 후 김호선의 조감독을 거치는 등, 현장경험을 더 쌓은 이미례는 1984년에 <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로 데뷔했다. 수령에서 건진 내딸 관련 인터뷰 중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은 비행청소년 문제를 다룬 가족영화이다. 모범생이었던 유리는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부모의 불화를 겪으면서 방황하기 시작하는데, 딸을 수렁에서 구해내려는 부모의 악전고투가 눈물겹다. 특히 심리치료와 상담 개념이 거의 없었던 시대에, 청소년 문제 담당자가 부모에게 딸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제시하는 방안들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개봉한 해에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에서 유리 역을 맡은 김진아 (한국영화사의 대 스타 김진규 와 배우 김보애 의 딸이다. 김보애는 유리의 엄마 역을 연기했다)는 스타로 자리매김 했다. 이미례는 성공적인 데뷔작을 통해 박남옥 , 홍은원 , 최은희 , 황혜미 이후, 한국 영화계가 처음으로 건져낸 여성 감독으로 주목을 받았다. 여성 감독 자체가 별종으로 취급 받기에 충분한 시대에 ‘파마머리’에 담배를 물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28살의 여성감독 이미례는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고추밭의 양배추 촬영 현장 이미례의 두 번째 영화는 1985년의 < 고추밭의 양배추 >. 에로티시즘 영화가 한국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시절이었기에 이 영화 역시 제목만으로는 그런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7년 동안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수환이 오지랖이 넓어 사사건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수환은 학교 안에서 노숙하기 일쑤고, 재벌의 딸을 경호하는 보디가드들이 캠퍼스에 들어왔다고 결투를 벌이고, 소매치기를 쫓다 교통사고를 당해 만신창이가 되거나, 불쌍한 사람을 위해 등록금을 쓰고는 공사판에 가서 일을 하기도 한다. 수환 같은 늙은 괴짜 대학생은 1970-80년대의 대학가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타입이다. 이미례의 세 번째 영화는 1987년의 < 물망초 >. 감독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손꼽는 이 멜로드라마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부유하고 철없는 남학생 철수와 예쁘고 생활력 강한 여학생 영희가 오로지 사랑의 힘만을 믿고 대학생 부부가 되는 사건을 저지른다. 그들은 ‘철없는 애송이 부부’라는 사회의 편견을 깨고 꿋꿋하게 자립하려고 분투한다. 그들은 아이까지 낳아 키우며 악전고투 하지만, 철수가 불치병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젊은이들의 발랄한 분투기가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리면서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영희는 한국영화의 여주인공 대부분이 매춘부와 호스티스였던 시기에 씩씩하고 활달한 캐릭터로서 주목할 만하다. 철수 역은 당시 스타로 발 돋음 하던 최재성 이 맡아 눈길을 끈다. 이 영화를 찍은 다음 해인 1988년, 이미례는 2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이미례는 1987년에 < 학창보고서 >, 1990년에 < 영심이 >, 1991년에 <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를 연출했다. 모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하이틴 영화이다. 이 시기 한국영화에서 하이틴 영화가 유행한 데다 여성감독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다. 세 편 가운데 특히 배금택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심이>는 평범한 여고생 영심이가 가정과 학교에서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을 코믹하게 그려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가요계의 최고 스타였던 댄스가수 박남정 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이재은 , 김민종 , 이경영 , 노사연 등 화려한 출연진들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박남정과 백댄서들이 출연, 박진감 넘치는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인다. 가수 노사연의 코믹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1990년 ‘한국영화 베스트10’에 선정되었다. 이밖에 <학창보고서>는 열등학급으로 전학 온 주인공 창하가 스터디그룹을 결성하고 학우들을 다독여 학급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야기이다. 이상아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무용수의 꿈이 좌절되자 방황하는 해리 역을 맡았다.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는 새로 부임한 젊은 남자 교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학생들을 변호하다 교장과 마찰을 빚기 일쑤인데, 결국 문제 학생을 위기에서 구해주려다 희생하게 된다. 학생들은 비로소 스승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오열한다. 이미례의 하이틴 영화는 모범학생이 아니라 평범하거나 다소 불량한 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들이 즐기는 하위문화를 다채롭고 코믹하게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이미례는 작품으로 인정받거나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고, 당시까지는 유일하게 6편의 영화를 찍은 여성감독이자 영화계의 홍일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계속 주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인터뷰에 따르면, ‘제작자들이 깊이도 없는 청소년 영화만 맡기는 바람에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계속 청소년 영화만 하라고 하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쿼터 맞추려고 아니면 장사하려고 한국영화 찍는 분위기도 싫고, 청소년 영화감독으로 꼬리표가 붙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이래저래 탈진해서 영화를 놓아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미례는 영화 대신 공중파의 방송 다큐멘터리, EBS의 <육아일기> 등을 연출했다. 유아프로그램은 미래의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더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프로덕션 ‘미례비전’을 설립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우석대학교 영상학부에서 겸임 교수로 재직했다. 여행을 다니고 벗들과 어울리며 한가하게 쉬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미례는 1996년, 독신생활의 노하우를 집약한 책 『모르면 큰 일 나는 혼자 살기 테크닉』을 출판했다. 이 책을 내면서 그녀는 ‘혼자 사는 게 꽤 재미있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나를 위해 요리를 만들고 청소를 했다. 그런 노력이 독신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관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나날이 늘어가는 독신 여성을 위해 책을 썼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 편으로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7년 5월, 그녀는 등산전문잡지 「사람과 산」의 편집부장이자 산악인인 박기성과 결혼하면서, 오랜 독신생활을 청산했다. 임순례 감독과 함께 이미례는 애초에 영화계를 완전히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동안 쉬려고 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이 10년이 훌쩍 흘러가고 말았다. 2001년, 그녀는 산악영화 <화이트 케어>를 들고 컴백하려고 했다. 백두대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두 여성이 산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여성 버디무비가 될 예정이었다. 시나리오 작업도 잘 끝냈고 제작자도 나선 상태였기에 바로 제작에 들어갈 듯 했지만, 이미례가 10년 만에 영화계로 돌아온다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끝내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7년, 이미례가 쓴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안나푸르나>라는 연극이 개막을 했다. 1999년, 산악인 엄홍길과 함께 안나푸르나를 등반하고, 하산 길에 실종된 여성 산악인 지현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다. 여기에 여성 산악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들의 견고하고 끈끈한 우정을 담아내려고 했다. 이미례는 <안나푸르나>가 반드시 만들고 싶은 꿈같은 영화이기에, 저예산 독립영화로 직접 제작하려고까지 했으나 결국 영화화하지는 못했다. 2008년, 이미례는 여성영화인모임이 주최하는 ‘2008 여성영화인축제’에서 ‘올해의 여성 영화인 공로상’을 받았다. 여성 영화인이 없는 환경에서 후배 여성들을 위해 길을 터 준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미례는 영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다짐해왔지만, 현재는 2005년에 문을 연 음식점 ‘여자만’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남편의 고향이 전남 고흥인데다 시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아 비법을 전수받다보니 음식솜씨가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영화제작이 계속 무산되자 먹고 살기 위해 음식점을 차리게 되었는데, 인사동 맛 집으로 대박이 나면서 분점까지 여는 성공을 거두었다. 여전히 이미례는 한국영화사에서 여섯 편의 영화를 연출한 몇 안 되는 여성감독으로 기록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영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일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던 그녀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새로운 신화를 쓰게 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