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들
- 감독
- 서원태
- 제작년도
- 2021
2021년 10월 15일 정연씨에게, 정연씨, 한국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얼마 전 물으셨지요. 평소 그랬듯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싫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싫은 까닭을 설명하려면 밝힐 일이 너무 많아 말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글로 대답을 드리려 하지만, 이것도 매우 어중간한 대답으로 그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싫음과 그 여파가 한국 영화와 제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이 주제의 중대성이 제 기억과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1) 그렇습니다, 정연씨. 제가 지금 정연씨에게 쓰고 있는 건 편지입니다. 공교롭게도 정연씨에게 처음 편지를 쓴 날이 2015년 10월 15일이더군요.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7년 만에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7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해 그전과 지금을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솔직히 말하면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연씨는 그동안 아기를 낳고 일산으로 이사 갔으며 네 권의 책을 내고 한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백스물두번의 토크 사회를 봤으며 담배를 끊고 살이 쪘지만 여전히 브릿팝을 듣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LP판으로 브릿팝을 듣는다는 사실이겠지요. 정연씨가 휴대용 턴테이블을 문보영 시인에게 선물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정연씨는 그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걸까요. 문보영씨의 인상적인 에세이 <일기 시대>에는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영씨의 성격 유형은 INFP로 ‘열정적인 중재자’였는데 어느 날 INFJ ‘선의의 옹호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연씨는 INTP ‘논리적인 사색가’이지요. 두 유형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때문에 잘 맞다고 합니다.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로 찰떡궁합이라는군요(참고로 저는 MBTI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만해서일까요, 너무 겁쟁이라서일까요. 어쩌면 이 둘은 같은 거 아닐까요). 아무튼, 정연씨는 턴테이블이 아까우니 LP를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시험 삼아 LP를 샀다지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수십년 간 들어온 브릿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제프 베조스는 정연씨가 주문한 New Order의 네 장의 LP판 중 두 장을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상태로 배송했지요. 그럼에도 당신의 못말리는 구매욕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ROOM29”를 주문했으니까요. “ROOM29”는 선셋대로의 전설적인 호텔 샤또 마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앨범이라고 하더군요. 자비스 코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레코드는 영화가 인간 존재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지점에 완전 푹 빠져 있어요. 2) 자비스와 칠리가 2017년에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정연씨, 상우씨와 바비컨 센터를 걷던 2019년의 어느 가을 날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은 점심 대신 칠리 페퍼 아이스크림을 먹었지요. “ROO29”에도 이런 제목의 곡이 있네요. “Ice Cream as Main Course.”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 모든 것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말이지요. 사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음악: 브릿팝(25년째) 좋아하는 뮤지션: 뉴오더(25년째) 기록 시스템: 미니컴포넌트 -> CD플레이어 -> 아이팟 -> 스포티파이 -> 턴테이블 본질은 그대론데 실존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턴테이블로까지 브릿팝을 듣는 정연씨가 조금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영화를 향유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하는 시즌제 드라마가 저에게는 루이 푀이야드 같은 감독의 연속영화(serial film)를 연상시키기도 하니까요. 참고로 정종화 연구원은 연속영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편 극영화가 정착되기 이전인 191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제작되고 유행했다. 주로 활극적인 내용을 2권(롤) 1편으로 구성하고 그 편의 마지막에 위기일발의 장면(cliffhanger)을 넣어, 최종편이 끝나는 12, 13주부터 24, 25주 동안 관객들이 매주 영화관을 다니도록 만드는 형태다.” 3) 어쩐지 욕하면서도 < 오징어게임 > 다음화를 클릭하는 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설명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정말 다를까요? 뭐가, 얼마나?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일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시스템의 동적평형 때문이지요.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변화란 어쩌면 이런 것 아닐까요.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4) 여기 질서/파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2015년 10월, 저는 고다르가 남가주 대학에서 토론 중 한 말을 인용하며 편지의 끝을 맺었습니다. 2015년 10월 31일이 보낸 편지였지요. 그리고 7년이 지난 2021년 10월 30일, 정연씨와 저는 강릉영화제에서 “한국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사람들”을 주제로 토크를 할 예정이지요. 정연씨가 보내온 대본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지돈: 그러나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지 않나요? 정연: 그런 점을 바꾸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을 보러 올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 에세이-필름을 보러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뀌어야한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그것은 단지 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돈: 관객을 바꾸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정연: (관객을 바라보며) 세계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 5) 저는 정연씨의 이 대본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과거에 우리가 나눈 원고-편지에 대한 단순한 패러디인지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희에게는 몇 가지 논쟁점이 더 있지요. 정연씨는 최근 홍상수의 영화에 빠졌고 21세기 한국영화는 홍상수다 , 라고 주장하는 꿈을 종종 꾸기도 합니다. 저로 말할 거 같으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홍상수(또는 김기덕)이며 그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집니다. 제가 한국 영화로 진입한 첫번째 입구였던 봉준호와 박찬욱이 지금까지 든든한 이정표가 되었다면 아마 저는 길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보며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대의 사람이 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어떤 별은 너무 환하게 불타 쳐다 볼 수 없을 정도고 어떤 별은 블랙홀에 흡수됐으며 어떤 별은 낙하해서 코앞을 스쳐지나기도 합니다. 길을 알려주기는커녕 우리의 행성을 박살내려는 양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홍상수고 그러므로 저와 정연씨가 10월 말에 강릉에 가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강릉이 어떤 장소인지 기억하시나요? < 강원도의 힘 >이 20세기 영화라는 이유로 우리의 에세이 필름에서 제외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에도 강릉이 나오니까요. 저는 정연씨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스트리밍 사이트에 있는 모든 홍상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송선미 분이 김민희 분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네요. “꼭 읽을 책을 사. 그래서 그 책을 깊이 만나. 정말 싸우듯이 그렇게 만나야 돼, 책하고.” 알겠죠, 정연씨? 꼭 읽을 책을 사세요. 샀던 책은 그만 사시구요. 2021년 10월 24일 정연씨에게 어제 정연씨와 리들리 스콧의 신작 < 라스트 듀얼 > GV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 걸까요?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 추위 때문에 온몸이 떨려서 그런 걸까요? 저는 오늘 검색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좋은 작품에 비해 GV는 좀 아쉽더군요. 오른쪽에 계신 작가님이 이야기를 벌여놓으면 왼쪽에 계신 평론가님이 수습하고 정리하는 진행이 다소 매끄럽지 않아 그렇지 전 꽤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 네영카 및 익스트림 무비 자유게시판에서 발췌 보시다시피 정연씨가 또 한번 저를 구원했습니다. 정연씨가 아니었다면 GV는 수렁에 빠졌을 게 분명합니다. 저희가 처음했던 GV 기억하시나요? 빔 벤더스의 영화 <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이었죠. 저희의 GV는 어느 네티즌에 의해 “올해 최악의 GV”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더 이상의 GV 섭외는 없었죠(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영화 관계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저희는 운좋게 GV 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정연씨는 과거의 오욕을 극복하고 이동진-되기를 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감미로운 목소리, 아담 드라이버의 잘생김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의사-페미니즘에 대한 시의적절한 논평… 거리두기로 인해 구 아이맥스 관이었던 용산 CGV 4관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접한 정연씨의 모습은 새로운 평론가의 탄생을 보는 듯했다고, 어느 관객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또 한번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2015년 10월을 가로질렀던 저희의 편지에 리들리 스콧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오늘과 같은 날인 10월 24일, 제가 정연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말입니다. 저는 < 마션 >을 보고 난 뒤 이렇게 씁니다. <마션>을 보니 리들리 스콧은 하수라는 저의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는 쓸개 빠진 곰처럼 굴더군요. 꼬리를 흔드는 곰이란! 과거란 대체 무엇인가요. 정연씨. GV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 속에 울리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은 언제나 지금도 일어납니다. 그 일치가 너무 놀라워서 손에 쥔 상상 속의 펜을 바닥에 떨어뜨릴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편지 따위를 쓰지 말았어야 했나 봅니다. 자기 자신한테서 벗어나질 못하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편지를 혐오합니다. 과거의 편지에서도 내내 투덜대더군요. 편지는 21세기 최대의 가식이다, 편지를 쓰느니 돼지를 잡겠다…(이건 앨프레드 테니슨의 말입니다). 그러나 가끔 편지가 위대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령작가 리 이스라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녀는 1967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를 다룬 에스콰이어지 기사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비타협적이고 시니컬한 브룩클린 출신 유대계 레즈비언이었던 리 이스라엘은 이후 탈룰라 뱅크헤드와 도로시 킬갈렌 같은 여성들의 전기를 쓰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그러나 운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작업한 화장품 업계의 대부 에스티 로더의 책이 처참한 평가를 받게 되거든요. 그녀는 이후 긴 슬럼프와 가난, 정신적인 궁핍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리 이스라엘을 구한 건 편지였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해도 유명인들의 편지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고서적 같은 물품이었습니다. 뉴욕의 서점들은 낡은 서랍에서 나온 편지를 구매하고 수집가들에게 되팔았지요. 리 이스라엘은 편지를 위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타자기를 사용해 작가나 코미디언, 배우의 문체를 흉내낸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끝에 어설프게 위조한 서명만 하면 작업 끝! 아무도 그녀의 위조 편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죠. “도로시 파커는 역시 너무 유머러스해! 그녀의 성격이 편지에 묻어나네요.” 그러나 결국 리 이스라엘의 사기 행각은 FBI에게 적발됩니다. 리 이스라엘은 죽는 날까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을 썼고 그 이야기는 영화화가 되었지요. 자서전과 영화 모두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히 울립니다. 편지는 내 최고 걸작이고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리 이스라엘의 편지 쓰기를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신: 되기”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리 이스라엘이 도로시 파커나 헤밍웨이, 노엘 카워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편지가 되었지요. 이른바 편지-되기. 그리고 그녀의 편지는 수신자에게 배달되지 않습니다. 편지 속의 수신자는 처음부터 위조된, 가짜 수신자일 뿐이지요. 진짜 수신자는 익명의 군중이며 이 편지는 시작부터 오배의 가능성 위에서 쓰였습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썼지요. “’유령’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모든 시니피앙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확률적 오배가능성, 오배될 가능성(약속)과 오배되었을지 모르는 가능성의 조합에 다름아니다.” 6) 리 이스라엘이 고스트라이터였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제가 한국영화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과도 관련이 없구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아주 간명한 하나의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한국 영화의 얼굴과 언어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나”를 대체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로지 브라이도티를 인용할 차례입니다. 되기들은 외부의 다른 타자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주체를 그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비통일적 실재로서의 유목 주체는 자기 추진적인 동시에 이질적으로 정의되거나 외부를 향한다. 모든 되기는 소수자로, 다시 말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고전적인 이원론의 ‘타자들’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그 과정에서 이 타자들을 대체하고 재영토화하지만 항상 일시적인 기준으로만 그렇게 한다. 7) 김홍준의 < 나의 한국 영화 >를 보라고 했던 제 말을 기억하시나요? 임재철 평론가는 폴 발레리가 “비평이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식한 사람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와 자기 자신 너머로, 포스트-미Post-Me, 포스트-(내)얼굴… 임재철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오르네요. “금정연은 영화 감독을 해야돼. 근데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려. 너무 착해보이잖아.” 부디 무사히 강릉에서 뵙길 바라며. *** 1) <작가의 편지>(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황종민 옮길, 예술문화, 2021) 2) "How a mythical Hollywood hotel inspired Jarvis Cocker's and Chilly Gonzales' project about the magic of cinema", <Loud and Quiet> 3) " 연속영화와 연쇄극, 극영화의 등장 ", 정종화, KMDb 4) <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8) 5) <고다르 X 고다르>(데이비드 스테릿 엮음, 박시찬 옮김, 이모션북스, 2010) 6) <존재론적 우편적>(아즈마 히로키,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5) 7)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전설적인 마에스트로 존 윌리엄스에게도 시련의 시기는 있었다. 1958년 < Daddy-O >로 데뷔한 이래 일흔을 맞이한 2002년도까지 그는 한해도 빠짐없이 꾸준히 최상의 작품을 써내려 왔던 근면 성실함의 대가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기실 보이지 않는 공백기가 존재했다. 필모를 봐도 거의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틈이긴 하지만, 최전성기의 한가운데인 1985년 존 윌리엄스는 코너에 몰려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그가 1979년 서거한 아서 피들러의 뒤를 이어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내정되면서부터. 작곡과 연주를 병행하던 그에게 불만이 있던 일부 단원들과의 충돌로 인해 그는 1984년 심각하게 사임을 고려했고, 그의 결정을 만류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에 한차례 격통이 불어 닥쳤다. 결국 매니지먼트의 간청과 단원들의 사과로 일단락되었지만(이후 1995년까지 훌륭하게 임기를 이어갔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진행하기로 했던 ‘피터 팬’의 뮤지컬 계획은 10곡이나 만든 상황에서 딜레이 되다 엎어지고 말았고(물론 그 음악들은 91년에 간신히 영화로 되살아난 < 후크 >의 모티브로 사용되며 빛을 볼 수 있었다), < 칼라 퍼플 >에선 제작자이기도 했던 퀸시 존스가 음악도 담당하는 바람에 스필버그와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첫 번째는 스필버그가 단편으로 참여한 < 환상특급 극장판 >). 결국 1985년의 윌리엄스는 모든 영화 스케줄이 빈 상태로 1974년 이후 오랜만에 TV로 귀환한 <어메이징 스토리>의 에피소드 2개만을 달랑 맡은 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에스트로 존 윌리암스 한편 영화 < 스페이스 캠프 >도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실제 앨라배마 헌츠빌에 소재한 청소년 대상의 우주훈련과정을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은 < E.T. >와 < 그렘린 >, < 구니스 >같은 틴에이저 모험극을 표방했기에 촬영될 당시만 해도 안전한 기획으로 여겨졌다. 캐스팅에 있어서도 다분히 스필버그 영화들을 의식했는데, 타이틀 롤을 맡은 케이트 캡쇼는 <인디아나 존스>의 여주인공이자 후에 스필버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고, 리 톰슨은 바로 전해 스필버그가 제작한 < 백 투 더 퓨처 >의 여주인공이자 < 죠스 3 >로 데뷔한 인연이 있었다. NASA에 기증될 정도로 완벽하게 재현한 스페이스 셔틀 조종석 세트에 2,0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예산으로 1986년 초에 개봉될 예정이었던 이 영화는, 그러나 챌린저호 폭발이라는 대참사와 마주하며 저주받은 운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다. 스페이스 셔틀이 주요하게 등장하고, 케이트 캡쇼가 맡은 배역이 여자 지도교사라는 점에서 실제 여선생이 탑승했다 희생된 것과 비교되자 결국 개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으로 개봉 시기를 옮긴 제작자들의 특단의 조치는 음악이었다. 비극적인 사건을 조금이나마 희석하기 위해 가장 희망적이고 장엄한 분위기를 선사할 이가 필요했다. 이런 스필버그 스타일에 최적화된 작곡가. 영화적 재미와 환상적인 몰입감을 고취할 수 있는 거장. 바로 존 윌리엄스였다. 배급사인 20세기폭스의 오랜 음악감독이자 친구이던 라이오넬 뉴먼을 통해 스케줄이 비어있던 윌리엄스를 설득, 결국 그의 짧지만 의도치 않던 공백을 메꿀 작품으로 <스페이스 캠프>가 선택되었다. 스페이스 캠프 사실 <스페이스 캠프>는 존 윌리엄스 필모에서 조금 도드라져 보인다. 1975년 < 죠스 >서부터 이 영화를 맡기 전인 1984년 <인디아나 존스>까지 그의 경력은 가히 무시무시했다. 데뷔 초 주로 드라마와 코미디, TV 쪽에서 활약하며 재즈 스타일의 소소하고 가벼운 음악을 들려주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그의 작풍은 확 달라져 있었다. 심플하지만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테마에, 유려하면서도 호쾌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결합돼 고전적인 매력을 심어주는 심포닉 사운드는 60년대 이후 재즈와 록에 밀려 실종되어가던 할리우드 전통의 스코어를 되살려주었다. 이후로도 마찬가지. 1987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휘청이지 않고 거장의 품격을 완성해왔다. 간혹 <하트비프>나 < 배반의 계절 >처럼 편차를 보이는 작품들도 존재하지만 이는 같은 해 작업했던 다른 결과물들의(< 레이더스 >와 < E.T. >같은) 반대급부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터. 하지만 <스페이스 캠프>는 달랐다. 1985년과 1986년 그의 영화 스케줄은 완전히 비어있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더 좋은 완성도의 작품들을 고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챌린저호 공중폭발로 좌초될 위기에 놓여있던 이 영화였고, 그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아 열성을 다해 음악을 완성시켰다. 아쉽게도 그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예상대로 참패했다. 제작비의 절반이 채 안 되는 9백만 달러만을 간신히 회수한 채 박스오피스에서 빠르게 종적을 감췄다. 이는 사운드트랙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는데 존 윌리엄스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LP와 카세트테이프로 한차례 발매된 이후 오랜 기간 재발매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만 1,000장 한정으로 소량 발매된 CD가 희귀 아이템으로 올라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되었을 뿐. 결국 2010년, 오랜 기다림 끝에 복각판이 발매되었다. 재밌는 건 이 복각판이 발매되었을 때조차 불운이 발생했다는 것. 제조상의 실수로 12번 트랙에 튐 현상이 발생해 3,000장 전량을 다시 찍어 일일이 교환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사고도 문제도 많은 영화였고, 존 윌리엄스 개인에게도 그 당시 썩 유쾌한 시기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최전성기에 올라있던 만큼 음악적으론 그의 뛰어난 솜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사운드트랙이다. 영화는 조금은 유치하고 평범한 스필버그 아류의 틴에이저 판타지 모험담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를 만회하는 것도 역시 스필버그의 단짝인 존 윌리엄스의 거룩하고 장엄한 팡파르 덕분이다. < 스타워즈 > 시리즈를 끝낸 이후 3년 만에 다시 우주로 돌아온 그의 영웅적인 스페이스 찬가는 탄성을 지를 만큼 황홀하고 아름답다. 일견 우주 속 스페이스 셔틀에서 발생하는 후반부 에피소드는 < 그래비티 >의 원형을 담아낸 우주 재난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비티>의 음악을 담당한 스티븐 프라이스가 차갑고 단조로운 일렉트릭 사운드 외피 속에 여성 허밍과 현악을 감춰두어 미약하지만 생명력 짙은 휴머니즘을 들려주었다면, 이 지구상 최고의 마에스트로는 고전적인 심포닉 사운드가 갖는 낭만적인 환희와 영웅적인 용기를 브라스와 혼에 실어 강렬하게 대외적으로 표출하며 감성에 절절히 호소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차이이자 챌린저호의 비극이 갖는 무게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국적이고 영웅적인 테마를 배치한 노장의 배려일 것이다. 또한 이는 그가 70년대 초 ‘재난의 제왕’ 어윈 알렌과 작업한 일련의 재난물 < 포세이돈 어드벤쳐 >나 < 타워링 >, < 대지진 >의 음악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 글에 언급된 존 윌리암스의 OST 앨범들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이 음반시장에서 득세하던 1980년대 영화답게 삽입곡이 많이 쓰이지 않았음에도 하나같이 주옥같다. 주로 영화의 초반부 선남선녀의 청춘들이 우주훈련이 펼쳐지는 캠프장에 입소하며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할 때 집중적으로 흘러나오는데, 에릭 클랩튼의 블루지하면서도 소울풀한 박력이 넘치는 ‘Forever Man’으로 포문을 연다. 기숙사에서 흘러나오는 건 1985년 영미권을 뒤흔들었던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빅 히트곡 ‘Walk of Life’와 ‘So Far Away’. 그리고 나머지 세 곡은 맑은 미성이 돋보이는 조셉 윌리엄스의 노래들 ‘American Girl’과 ‘Don’t Look Back’, ‘Turn It Up’이 삽입됐다. 알다시피 조셉은 슈퍼밴드 토토의 세 번째 보컬이자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존 윌리엄스의 둘째 아들. <스페이스 캠프>는 아버지와 함께 한 두 번째 영화가 되었다. 이들 곡들과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존 윌리엄스 스코어 중에서는 드물게 신디와 드럼 머신 사용한 팝적인 사운드의 짧은 ‘Training Montage’라는 큐가 작곡되었다. 그의 고전적인 심포닉 사운드에 익숙했던 이들이라면 이 색다른 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중후반부로 가며 예의 그 익숙한 존 윌리엄스만의 포스가 드러나는데, 영화의 가벼움을 지그시 눌러주는 견실하고 탄탄한 무게추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아쉽게도 트랙리스트는 중구난방으로 배치돼 영화의 감흥을 따라가기 번거로운 편이다. 영화 순서대로 음악을 즐기기 위해선 1-5-2-4-3-6-9-12-10-11-7-13-14-8 순으로 감상해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동명의 타이틀곡이자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SpaceCamp’의 강렬하고 화려한 팡파르가 인상적으로 가슴 속에 새겨진다. 제작자의 바람과 달리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영화를 구원하지 못했다. 그는 영상과 내용을 압도하는 오버스코어링으로 작품과 비교되는 실제의 비극을 충실히 지워내고자 했지만 참사의 잔향은 생각보다 깊이 그리고 오래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시도와 노력만으로도 존 윌리엄스에게 있어 값진 결과였다. 그가 아닌 어떤 누군가가 음악으로 꿈과 희망을 재건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스페이스 캠프>는 역설적으로 실패했지만 존 윌리엄스의 가치와 역량을 만천하에 알린 비장의 OST인 셈이었다. Track List 1. Main title 2. Training montage 3. The shuttle 4. The computer room 5. Friends forever 6. In orbit 7. White Sands 8. SpaceCamp 9. Viewing Daedalus 10. Max breaks loose 11. Andie is stranded 12. Max fins courage 13. Re-entry 14. Home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