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ANIFEST]술래잡기 광운중학교 3학년8반
- 제작년도
- 2011
이장호 감독의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마지막 장면에서, 섀도복싱을 하는 덕배( 안성기 )의 잽은 흡사 태양을 두들기려는 듯 보인다. 때맞춰 안빈낙도의 정서를 노래한 김도향의 동명 주제가도 터져 나오지만 사실 덕배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낯선 서울살이에서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두 절친은 각각 감옥과 군대로 끌려갔다. 그 자신은 중국집 배달 일도 그만두고 전업 권투선수의 길로 나섰음에도 스파링에서조차 내내 얻어맞기만 한다. 애먼 태양에라도 화풀이를 해보려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내 카메라는 물러서고 석양은 조롱하듯 멀어진다. 못다 한 화풀이는 1년여 후를 기약해야 했다. 긴급조치와 10월 유신 시국의 1974년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로동 2인조 카빈 강도 사건’을 영화화하면서, 이장호 감독은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1)라는 강렬한 타이틀을 선택했다. 실화에 대한 감독의 해석인 이 제목 문구는 중의적이다. 그들이 쏜 것은 부도난 희망을 낳은 위선의 태양이자, 또한 사람의 이름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문도석( 이영호 )과 이종배( 박일 ) 2인조에게 있어 태양의 빛이란 만물을 평등하게 내리쬐는 축복이 아니었던 게다. 아울러 경찰에 포위된 이종배가 자살하기 전 손수 총을 쏴서 목숨을 끊은 어린 장남의 이름도 하필이면 ‘태양’이었다. 첫 번째 해석은 범인들의 대담성과 잔인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을 낳은 사회적 맥락을 돌아보자고 말했던 박완서, 최인호(사건을 각색한 소설 『지구인』을 썼다) 등의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어쩌면 영화라는 예술에 몸담고 있었던 이장호 감독은 그들을 범행으로 내몬 가난보다도, 그 가난으로 인해 좌절된 두 실존 인물의 예술적 야심에 연민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갓 1차 범행을 마친 두 캐릭터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종배와 문도석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나오던 어느 가장을 차로 납치했다가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총으로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도로변에 있던 아기엄마 하나도 오발된 총탄을 맞아 목숨을 잃는다. 이런 급박한 상황 끝에 야산으로 도피한 범인들이건만 문도석은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질 않나, 이종배는 마치 조각을 하듯 세심하게 변장 목적으로 길렀던 수염을 면도하고 있다. 실제 문도석 또한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이종배는 미술가가 꿈이었으나 생계를 위해 극장 간판을 그려야 했다고 한다. 이렇듯 못 이룬 꿈의 상징들과 어우러져,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도석은 자기연민에 빠지고 종배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자신들의 범행 속보를 들으며 “대낮에 살인강도가 설치고 다니니…”라며 남 얘기하듯 중얼거릴 만큼. 범행을 후회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도석과 주범인 종배의 갈등은 장차 갈대밭에서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익스트림 풀 쇼트로 멀어지며 관조적으로 거리를 두는 이 싸움은 글자 그대로 이전투구다. 액션의 박진감과 타격의 쾌감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고, 질질 끌리는 발길질과 힘겨운 주먹질에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고통의 신음만 울려 퍼진다. 사회의 혜택이 닿지 않는 버려진 땅에서, 소외된 자의 분노는 또 다른 소외된 자를 향할 뿐이며, 약자들은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는 생존하지 못한다. 이후 2차 범행은 이종배 단독으로 진행된다. 손을 씻고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보려 했던 문도석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 탓에 경제적 곤란을 겪다 다시 종배에게 돌아온다. 2인조가 3차 범행을 모의하는 곳은 사람이 찾지 않는 철 지난 해수욕장. 그들이 억하심정을 품고 있는 태양의 또 다른 반대말은 물인지라, 두 사람도 이 공간에서만은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파도를 타고 나아가야 할 배 한 척은 모래톱에 엎어져 있을 따름이니, 애초 그들에게 자유란 막다른 배수의 진에서나 가능한 반쪽짜리일 뿐이다. 예술가가 되지 못한 범죄자들을 향한 감독의 연민과 감정이입은 이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는 호러영화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5)와 스포츠물 < 이장호의 외인구단 >(1986)과 함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드물게 본격 장르 영화로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다만 < 엑소시스트 >를 비롯해 공포영화의 익숙한 관습을 적극적으로 빌려왔던 <너 또한 별이 되어>와 달리 이 작품에서 갱스터 장르는 대체로 서사의 틀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그런데 실화의 리얼리티와 육중한 메시지가 이끌어가던 극은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장르를 소환한다. 유유히 은행을 턴 후 직원들에게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켜놓고 떠나는 강도들의 모습은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흑백화면으로 묘사되었다. 고전 갱스터물의 패러디로 연출된 이 장면은 곧 이종배의 상상임이 밝혀진다.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시뮬레이션의 실패는 파멸의 출발점이 된다. 음악가와 미술가가 되지 못하고 강도가 돼야 했던 것처럼, 이 종합예술 콤비의 영화적 상상력도 현실 앞에서 좌절된다. 신분이 탄로 난 문도석은 아내에게 유서를 남기고 아들과 함께 먼저 자살을 택한다. 유서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플래시백 화면, 그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던 해변의 기억 속 도석의 머리 위에는 아직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허나 경찰에 포위된 어둠 속 종배의 집 위로는 단죄의 벼락만이 내리칠 뿐이다. 저항을 포기한 그는 실제 이종배가 유서에서 밝힌 대로 자신이 살해한 이들의 시신 유기장소를 경찰에게 상세히 고백한 후 동반자살을 원하는 아내를 먼저 쏜다. 그리고 드디어 총구는 어린 맏아들 태양을 향한다. 겁이 난다는 아들에게 종배는 아빠의 이름을 크게 외치라고 시킨다. “이종배!”를 부르짖는 아이에게 “더 크게!”를 종용하는 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이 대목은 이전에 등장한 바 있는 놀이터 장면의 반복이다. 술래가 된 아들 태양이 아빠가 탄 회전무대를 돌려줄 때도 부자는 똑같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쓰고 돌려봤자 회전무대는 제자리로 돌아올 뿐, 결국 지친 태양이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랐던 후손 또한 쳇바퀴의 현실에 좌절할 것을 직감했던 종배. 아버지의 이름은 이제 죽음의 이름이 되고,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는 절망은 끝내 태양을 쏘고 만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로 흔히 리얼리즘 시대라 불리는 2기 필모그래피를 열어젖혔던 이장호 감독은 후속작으로 < 어둠의 자식들 >(1981)과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를 동시에 착수했다. 두 영화 모두에 온전한 역량을 투여할 수 없었던 감독은 <어둠의 자식들>에 힘을 싣는 것을 선택했고, 이 작품은 상대적인 저평가의 불운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힘을 뺀 덕분에 오히려 과잉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연출의 미덕은 물론, 이후 감독이 선보일 작가적 탐구의 방향성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먼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종교적 구원의 가능성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살아남은 도석의 아내( 이경실 )는 성당 신부로부터 자신이 살인자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이 결말은 시력(빛/태양)을 잃은 후 신에게 의탁한 안요한 목사의 실화극이자 후속작인 <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2)의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당대 불평등 구조의 근원을 좇아 유신 시대의 과거로 떠났던 감독은 이종배의 이력에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얻었다. 영화에서 그는 말한다. “난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었다. 별의별 끔찍한 죽음을 한꺼번에 봤어. 추운 겨울 들판에다가 갓난애를 버리고 가는 지독한 여자도 있었지. 굶주림은 밥 먹는 것보다 많았어.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놈 봤니? 나도 태어날 때부터 강도질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야.” 어쩌면 이 모든 참혹한 현실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 전쟁과 분단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훗날 감독의 역작인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7)를 통해 완성되었다.
1969년 1월 27일 한 남자가 어린 조카와 함께 여권을 위조해서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를 경유한 다음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서 미리 대기 중이었던 중앙정보국 직원들에게 체포되었고 서울로 송환되었다. 당시 베트남은 전쟁 중이었고 한국은 이 나라에 파병 중이었기 때문에 모든 절차는 양국 간의 협력하에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 남자의 이름은 이수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그는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극적으로 남한으로 귀순하였고 이 사건은 냉전 관계였던 남북한의 긴장 속에서 남한 체제의 우위에 대한 전리품처럼 보도되었다. 이수근은 귀순한 다음 중앙정보국 판단관 대우를 받으면서 반공강연과 북한체제 비판을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하였다. 북한에 아내가 있었지만 새로 결혼을 했고 이 귀순은 대대적인 언론보도와 함께 거의 영웅적인 사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수근은 북한에 두고 온 아내의 조카 배경옥과 남한에서 탈출할 결심을 했고 하노이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중앙정보국은 이수근이 이중간첩이었으며 남한에 위장 귀순한 다음 고급정보를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 출국 시도를 했다고 발표했다. 1969년 5월 10일 이수근은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이수근의 출국을 돕거나 관련된 자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수근은 판결에 대해 항소했지만 형이 확정되었고 그로부터 2개월만인 1969년 7월 2일 사형을 집행했다. 또한 이수근과 동행한 조카 배경옥은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고 이에 항소하여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한국사회는 간첩이라는 단어 앞에서 창백해졌다. 간첩 이수근 약간 우회를 해보자. 장르는 약속의 세계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생성되고 재편된 다음 수많은 텍스트들의 시행착오들로 이루어진 이합집산의 과정 끝에 하나의 양식(mode)을 갖게 된다. 물론 처음 시작은 시장 안에서 박스 오피스 목록에 올라온 영화의 성공을 재생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시장 안의 비즈니스는 이 성공에 어떤 법칙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가정을 하였다. 반복 어구. 어떤 법칙.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이 있을까. 이때 이 과정에는 반복적으로 영화가 시장에 던져진 다음 대중들과의 (이윤을 사이에 둔) 협상 과정을 거쳐 끊임없이 펼쳐나가는 자기 운동 과정이 포함된다. 여기서 핵심은 장르 안에서 그 스스로 발전하는 선형진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수없이 많음 모델들이 도전을 해오고 그 과정 안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이 이루어진다. 영화에서 (특별하게 뮤지컬) 장르를 연구해 온 스티브 닐은 장르의 원형이란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모든 장르 영화들은 그 자체로 모두 예외적인 사례라고 푸념을 했다. 이때 장르 영화들은 약속 안에 영화 바깥으로부터 그 약속 자체를 기형적으로 비틀기 시작하거나 혹은 예상치 않은 블랙홀, 때로는 긴장할만한 새로운 코드들과 만나게 된다.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그 순간의 시끄러운 사회적인 사건이나 위협적인 혹은 흥분할만한 정치적인 분위기, 지적학적으로 가까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하여튼 역사의 계기와 토픽으로부터 장르는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러오는 대중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설 때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로부터 잠시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잘 알려진 사례. 로빈 우드는 1970년대 공포영화들이 다루는 ‘타자’들이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흑인, 여성, (청바지를 입은)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1960년대 대항문화들, 그중에서도 인종 인권운동, 페미니즘, 좌파 정치운동에 대해 전통적인 WASP 보수적인 사회가 느끼는 두려움의 도상화(iconography)라고 설명했다. 김소영은 좀 더 흥미로운 제안을 하면서 한국 공포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결의 패턴으로 며느리 귀신과 시어머니의 대립을 한 쌍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장르가 지역 문화의 정치학에 따라 새로운 계열을 만들어내는 이접적 종합의 한 예가 될 것이다. 블리스 쿠아 림은 이 논쟁을 좀 더 멀리 밀고 나아가면서 판타스틱 영화들은 어떻게 장르 안에 서로 다른 시간을 공존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탈구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말하자면 장르 안에서 유령들은 언제 귀환하고 또한 어떻게 존재하며 그런 다음 결국 그들은 누구에게 추방되는가, 에 의해 멜랑콜리해진다. 나는 이 말을 전적으로 벤야민에 기대서 하는 중이다. 간첩 좀 이상한 말이지만 스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이 말이 왠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간첩이라고 하면 무언가 오싹해진다. 간단한 실험. 존 르 카레의 고전적인 ‘스파이 스릴러’인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를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간첩」이라고 번역한다면 단지 그 차이를 뉘앙스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반공 국가 남한에서 북한으로부터의 현실적인 위협은 세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학습되었다. 한국전쟁 세대에게는 그 공포가 재침(再侵)이라면 다음 세대에게는 우리들 사이에 스며든 ‘그림자 같은’ 간첩과 거의 ‘슈퍼맨’에 가까운 훈련을 받은 것으로 ‘코스프레’ 한 무장공비로 이원화되었다. (그리고 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된 전형성은 여전히 ‘남한’ 영화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를테면 < 은밀하게 위대하게 >의 ‘북한에서 남파한’ 세 명의 ‘간첩’ 주인공들) 역사의 우여곡절. 1980년 5월 광주 ‘이후’ 남한에서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운동과 (현장 참여의 전술을 학습하기 위하여) 실천적 투쟁을 전개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학습을 통해 ‘주체사상’을 수용하는 세대가 나타나면서 간첩이라는 반공 ‘어젠다(agenda)’는 묻혀 버렸다. 그 유명한 학생운동권 내부의 NL과 PD의 사상노선투쟁.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후 세습한 김정일은 김영삼과 김대중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긴장 관계 안에서 평화정책을 유지했고 그 기간 동안 남한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점점 북한은 ‘종이 늑대’로 그 이미지가 변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의 성장이라는 국제관계 안의 복잡한 정치 공학이 작동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교류도 큰 몫을 차지했다. < 쉬리 >와 < 간첩 리철진 >을 거쳐 이데올로기를 탈색시켜나간 21세기 간첩의 이미지는 그래서 < 의형제 >처럼 거의 위협적이지 않거나 (심지어 매력적이거나) 혹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우스꽝스러워졌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겠다. 간첩은 더 이상 괴물이거나 추악하거나 교활하기는커녕 순정파 ‘꽃미남’(들)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에 만들어진 간첩영화 < 운명의 손 >을 보고 있으면 간첩은 ‘미스터리’ 하거나 ‘스릴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공포영화에 나타나는 존재처럼 유령이면서 동시에 멜로드라마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들이다. 여기서 그들은 장르 안에서 활동하는 약속의 기호가 아니라 공기 속의 비-존재이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생활의 일부이다. 간첩을 점점 이야기의 바깥으로 밀어낸 것은 그만큼 남한 사회에서 타자가 스며들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네트워크를 이루고 일상생활이 안정적인 구조로 들어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서 간첩 영화는 액션 ‘다찌마와리’ 영화와 공포영화 사이에서 교집합을 이루며 그 하위 장르(sub_genre)가 되어갔다. 물론 1970년대에 나타난 일련의 ‘여간첩’ 영화들,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사건 > <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은 멜로드라마의 하위 장르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나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층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을 제시하였다. < 그 여자를 쫓아라 >가 복잡한 이데올로기의 네트워크를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1970년은 이 영화를 그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이때 임권택 은 자신이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언제나, 언제나라고까지 말하고 싶어지는데, 임권택은 자신의 영화가 북한과 어디선가 만나게 될 때 갑자기 움츠러든다. 나는 단지 그의 전기적 측면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이따금 영화 안에서조차 자기가 어떤 상황에 반복적으로 다시 불려간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 보기를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임권택은 그 안에서 수동적 주체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필사적이 된다. 게다가 1970년은 모든 상황에서 불리했다. 베트남을 경유하여 새로운 냉전의 분위기가 사회를 덮쳤고 박정희는 제7차 대통령 선거를 그 이듬해 목전에 두고 있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자신의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영화산업은 그 안에서 정치 공학적으로 가냘픈 부문에 지나지 않았다. 임권택은 그럴 때마다 자신의 자리를 최대한 수축시켰다. 거기에는 어떤 은유나 상징의 자리도 없다. 그 안에서 상상력은 몸을 숨겨야만 했다. 현재라고 가정된 순간. 그 안에 멈춰서야 할 때 장르는 안전한 보호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임권택은 장르의 규칙에 따르는 것을 바깥의 법칙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그는 종종 장르 안에 머물 때 사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하곤 했다. 물론 그것은 오해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와 달리 충무로에서 장르란 대부분의 경우 대중적인 유행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법칙 없는’ 법칙이라는 것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임권택은 수동적인 반복 안의 반복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반복이란 본질상 상상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임권택이 반복이라고 생각한 것 안에는 이미 그 내부를 차지하고 있는 자극과 반응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장르 안에서 반복하는 것은 차이를 재현하는 것이다. 이때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재현 사이를 차지하는 불화의 활동이다. 리오타르라면 규칙이 명령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라고 물어볼 것이다. 나는 소박하게 질문하고 싶다. 무엇이 영화를 피곤하게 만드나요. < 그 여자를 쫓아라 >는 잘 설명되지 않는 침묵과 우울한 명랑함이 기묘하게 서로 얽혀 들어가는 영화이다. 침묵? 그렇다. 이상할 정도로 이 영화는 인물들이 대사를 자제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게 미학적인 의도라기보다 무언가 말실수를 두려워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좀 더 이 영화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의도적인 명랑함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우울함을 숨기기 위해서이기라도 하듯 명랑한 척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감춰놓은 비밀을 찾기 위해 홍콩에서 귀국한 딸 아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명랑함. 왜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애도를 표현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를 뒤쫓으면서 비밀을 파헤치고 한편으로는 사랑에 빠지면서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타나는 남 형사의 과장된 명랑함. 나는 이 세계가 1970년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이미 결정된 상황. 이때 이 우울한 기분의 바탕에는 운명이 무겁게 드리워진다.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장르에서 조합은 운명을 결정한다. 이때 이 명랑함은 마치 그들의 운명에 대한 방어술처럼 보인다. 영화의 시작 영화가 시작했을 때 먼저 긴 침묵이 이어진다. 임권택 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1970년을 “거의 성의 없이 그저 주문이 들어오면 영화를 찍어내는 어떤 목표도 없던 시절이”라고 말했지만 이 시퀀스는 적어도 영화를 연출한다, 는 문제에서는 자신감을 과시하는 순간이다. 시작하자마자 우리들의 기대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시골 초등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굣길에 나서는 장면. 그런 다음 텅 빈 교정에 어둠이 내리자 이 학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내들이 한 명씩 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시내들은 서로 잘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대사가 없다. 그저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은 영화를 보는 우리들뿐이다. 그들은 각자의 임무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건 그들뿐만 아니라 영화의 동선과 쇼트들의 방향도 망설임이 없다. 펼쳐지는 시퀀스. 그 안에서 이야기는 아직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그러므로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해서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오직 동선의 탐색만이 있다. 임권택은 시작하자마자 13분 40초에 이르는 (구태여 부르자면) ‘금괴 프롤로그’를 최소의 대사로 진행시킨다. 이때 그 대사가 너무 적어서 이 시퀀스를 보고 나면 거의 대사가 없다는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시작을 대사 없이 진행시키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아무 준비가 안 되었고 영화 안의 인물들은 이야기의 네트워크를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우리들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그들. 이 간극은 생각보다 커서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임권택은 분명히 그걸 즐기는 중이다. 그래서 그걸 더 벌려놓으려고 한다. 이 사내들은 조심성 없이 움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장실에 방문하여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낸 다음 밤늦게 교무실에 남은 교장과 (아마도) 수위를 망설임 없이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런 다음 장비를 꺼내 바닥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적을 숨길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미 옆방에는 두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그걸 어딘가에 숨길 생각도 없이 여기저기 뒤져나가던 그들은 무언가를 찾자마자 즉각 마룻바닥을 뜯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금괴를 찾아낸다. 이때서야 비로소 이들은 이 금괴를 찾기 위해서 잠시 모인 것뿐이지 그들이 한 패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이지 여전히 어떤 대사도 없다. 임권택은 주의 깊게 금괴를 발견하는 순간 우두머리의 처분을 바라보는 대신 그들로 하여금 그저 금괴만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게 한다. 그건 이들 사이에 우두머리가 없다는 뜻이다. 시선을 잡아당기는 힘.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들은 각자 모였지만 각자 헤어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금괴를 각자의 몫에 따라 아직 분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섯 명이고 자동차는 다섯 명이 탈 수 있을 뿐이다. 그러자 한 사내( 장동휘 )가 제안한다. 자, 여기서 누구 한 명이 내려야 할지를 카드로 결정하지. 우리는 장르 영화의 세계 안으로 들어왔음을 잊으면 안 된다. (장르의 약속에 따라) 여기서 내리는 단 한 명이 금괴를 차지할 것이며, (스타의 법칙에 따라) 내리는 사람은 장동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그 내기의 쇼트를 찍지 않았다. 빈 쇼트의 술래잡기. 할리우드가 발명한 천재적인 빈칸. 임권택의 고전적인 배움의 편집. 여기서 각자의 계열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오로지 동선만 활동하기 시작한다. 임권택은 이 대사의 쇼트에서 한밤중에 자동차가 달리는 장면을 바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 한 쇼트가 빠지면서 누가 이겼는지 혹은 졌는지, 누가 내렸는지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대신 금괴를 차지한 자동차는 황급하게 달려가다가 길목에서 기다리던 누군가에 의해서 폭발하고 만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이다. 그리고 거의 말이 없는 이 도입부는 (다소 놀랍게도) 영화 전체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 그 여자를 쫓아라 >는 이상할 정도로 균형 감각을 잃은 영화이다. 이 위태로운 균형이 미학적으로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결국은 그러해야 한다, 는 연출의 결론으로 보인다. 이렇게 시작한 영화는 내내 이 간극을 줄일 생각이 없다. 폭발로 인해 시체를 분간할 수 없는 그 여섯 명 속에 아버지 민충식이 포함되어 있었고 홍콩에서 귀국한 딸 아미는 아버지의 생사를 놓고 그 행방을 찾아 나선다. 계속해서 아미를 위협하며 그녀를 암살하려는 악당들이 나타나고 그때마다 아미를 구하려는 남 형사가 개입한다. 한편으로는 아미와 남 형사의 (감정적인) 간격을 좁혀들어 오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 민충식은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간다. 한쪽은 가까워지고 다른 한쪽은 점점 뒤로 물러난다. 아미는 두 번 아버지와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flash_back) 한 번은 범죄자들을 불러들인 다음 금괴와 함께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를 들으면서 자신이 돈 가방을 들고 집을 떠나 홍콩으로 가던 날이다. 그때 아버지는 아미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현금으로 바꾼 가방을 건네면서 “아버지는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건넨다. 다른 한 번은 커튼 뒤에 숨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심장으로부터 10센티 빗나가게 총을 쏘아 그녀를 덮치려던 사내를 살해한 현장에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때 아버지는 그저 아무렇게나 허공에 던진 맥주 캔을 빠짐없이 명중시킨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준다. 이 두 개의 에피소드는 몹시 이상해서 아미의 아버지 민충식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심중조차 헤아릴 수 없게 만든다. 지금은 (다시 한 번 당신을 환기시키지만) 1970년이다. 국내에서 총기는 불법 소지이며 영국령이었던 홍콩에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아미에게 사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한 가지 더. 그런데 왜 아미는 홍콩에 간 것일까. 그녀는 거기서 무엇을 한 것일까. 임권택 은 미스터리 장르를 불합리한 세계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가 지나칠 정도로 역사의 무게와 자본의 운동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세계 안에 사람들이 던져져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자비하게 어떤 합법칙성의 규칙에 따라 부서져 가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여기에는 슬픔도 동정도 없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의 잔인한 동어반복. 임권택은 영화와 현실 세계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좋다고 믿는다. 그것은 단순하게 세계를 재현하려는 방식으로서의 리얼리즘에 대한 믿음이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그것만이 허구에 불과한 자기 영화의 이야기를 보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발적으로 거의 불투명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희미하게 보이는 관계 속으로 빠져든다. 마치 안개와도 같은 상황. 이 세계에는 어떤 비밀이 있으며 그건 끝내 밝혀져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지키기라도 해야 하는 것만 같다. < 그 여자를 쫓아라 >를 둘러싼 것은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초점을 놓친 것만 같은 그 희미함이다. 어쩌면 이것은 임권택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응하는 한 방식일 지도 모른다.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잃어버린 관심. 아무것도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아닐 때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력을 잃어가는 자발적인 포기.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그저 영화를 만들고 있을 뿐이에요. 냉전 체제하에서 묵묵히 자기 임무를 수행하기라도 하듯이 어떤 불평도 없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감독. 하지만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이야기는 아무 것도 모르는 딸을 데리고 10억 원이나 하는 금괴를 들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수근이라는 그림자. 아주 희미한 그림자. 하지만 그때 <그 여자를 쫓아라>를 보면서 어떻게 일 년 전의 그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이 영화는 모른 척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마치 자기 자신이 (존 르 카레의 소설 속의) 앨릭 리머스같은 태도를 취한다고나 할까. 희미해지는 시야 < 그 여자를 쫓아라 >가 그렇게 괴상해지는 것은 이야기가 절반을 지날 때이다. 아버지의 행방에 관한 단서를 찾아가던 아미는 전문 내기 도박꾼들이 모이는 (이른바) ‘하우스’를 방문한다. 여기서 한눈에 사기도박을 알아채고 비밀을 밝힌 다음 아미는 마담에게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다. 물론 마담은 그녀에게 알려줄 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마에게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다. 마담은 아미가 아버지와 함께 공모하여 마치 그녀도 행방을 모르는 척하면서 진정한 행방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제 발로 ‘하우스’를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때 남 형사가 악당들로부터 아미를 구해내고 ‘하우스’로부터 탈출한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심야에 탈출한 남 형사와 아미의 차를 뒤쫓아 검은 세단이 황급히 따라붙는다. 고문에서 깨어난 아미는 쫓기는 차 안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그녀가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의 장면(point_of view_shot)들이 모두 초점이 안 맞는다. 그녀는 중얼거리듯 말한다. “앞이 보이질 않아요” 거의 결정적인 한 마디. 나는 이 시기의 임권택 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신체 훼손의 테마가 등장하고 있음을 눈여겨본다. 종종 임권택의 주인공들은 망설임 없이 상대방에게 신뢰의 표현으로 망설임 없이 팔을 잘라 내주거나(<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원한의 두 꼽추 >) 혹은 눈이 먼다. (< 돌아온 왼손잡이 > < 애꾸눈 박 >) 이것은 액션 장르 영화의 규칙이 아니다. 물론 이 시기의 충무로 액션 활극 영화들은 과도할 정도로 홍콩 쇼 브라더즈 무협영화인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에 영향을 받았고 신체적인 불구가 되는 것이 마치 활극을 위한 주인공의 영웅적 시련을 거치는 정화 과정처럼 다루어졌다. 몇 번이나 반복된 질문에서 임권택 감독님은 약간 거리를 유지하면서 “거, 하늘을 날고 하는 액션들은 전혀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 영화에 알 수 없는 힘이 넘쳐나고 있었던 건 사실이죠. 그땐 영화 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 영화를 보고 왔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주인공을 따라가는 영화에서 주인공의 눈이 멀면 단지 주인공의 일부 기능을 상실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영화의 기능 일부를 손상당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영화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활동하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역할은 수동적인 상태에 놓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나는 < 그 여자를 쫓아라 >가 < 서편제 >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좀 더 까다로운 조건. 아미가 눈이 머는 이 시퀀스는 거의 정확하게 영화 절반에 해당한다. 이미 절반을 넘긴 이 영화에서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멈출 방법은 없으며 아미가 자신의 잃어버린 시력을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익힐 수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로 부족하다. 영화에서 절반이란 애매한 시간이다. 히치콕이 < 사이코 >에서 절단시킨 이 이상한 시간. 게다가 아미는 지금 당장 수술을 받으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데도 자신이 아버지를 찾는 일이 급하다는 이유를 들어서 그걸 거절한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만일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만났을 때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정반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임권택 은 절반의 시간에 이르렀을 때 누구보다도 이제 아미가 아버지를 대면할 시간이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장르에서의 운명의 시간. 비밀은 밝혀질 것이고 조각난 정보들은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미는 그것을 미루려고 하는 중이다. 이때 이 대면에서 무언가 불균형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아미가 눈이 멀자 정작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진다. 그녀는 더 이상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또한 작은 동선조차 위험해진다. 게다가 그녀는 갑작스레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조그만 활동도 할 수 없다. <그녀를 쫓아라>는 액션 활극 영화이고 ‘그녀’ 아미는 시력을 잃고 거동조차 불편해진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아미의 시력을 놓고 벌이는 게임의 시퀀스는 거의 없다. 이를테면 1968년 6월 28일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 어두워질 때까지 >에서 장님 오드리 헵번은 해가 진 다음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온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방의 불을 끄고 방의 배치를 알고 있는 자신의 지각을 이용하여 힘겹게 싸운다.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기나긴 마지막 시퀀스. 하지만 임권택 은 그런 시퀀스를 제시할 생각이 전혀 없다. 혹은 불가능하다. 아미는 갑자기 눈이 멀었고 홍콩에서 돌아온 그녀가 머무는 곳은 거의 숨을 데가 없는 호텔 방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이다. 그저 호텔에 머물면서 사건이 올바르게 돌아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자신이 인질이 되어 이야기의 미끼가 되는 것이다. 미끼? 그렇다. 스스로 해결의 일부가 되어 이야기를 다른 차원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구조의 일부가 된 희생. 차라리 음모의 잉여와도 같았던 그녀가 (끊임없이 아미의 주변 인물들은 그녀에게 홍콩에게 돌아가기를 권한다) 비로소 빈자리를 채우는 순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구조 안에서 오작동하고 있던 자기의 올바른 역할. 이때 이야기는 갑자기 추락하듯이 마지막 시퀀스를 향해서 곤두박질친다. 물론 아미의 아버지는 죽지 않았으며 그녀가 끌려온 곳은 아버지 민충식의 지하실이다. 더없이 적절한 장소. 이제 비밀이 밝혀질 시간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왜 아미가 앞을 보지 못하는 수난을 선택했는지 알게 된다. 물론 아미는 이 결정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가 미처 알지 못하면서 내린 이 결정은 마치 이미 운명이 알고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히스테리로 반응하는 선택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미 알고 있는 운명. 나는 지금 장르 안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환기시키고 싶다. 아미는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주어진 자기 자신의 자리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중이다. 이때 아미는 앞을 보지 못하면서 자기의 주체를 포기한 채 오로지 수동적인 자리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거기서부터 약간 줄거리를 더듬어보자. 아버지 민충식은 금괴를 들고 서해안을 거쳐 북한으로 갈 계획이다. 그는 자신이 모은 범죄자들을 모두 죽였을 뿐만 아니라 아미를 데려온 수행자들도 죽인다. 이때 민충식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그는 금괴를 찾는 임무를 가지고 북한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가까스로 찾은 금괴를 들고 북한으로 올라갈 생각인 것이다. 여기서 미처 생각지 않았던 장면이 아미와 민충식 사이를 새롭게 매개한다. 사건이 시작되기 훨씬 전의 이야기.(flash_back)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민충식은 독립운동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군에 체포된 다음 동지 박만수를 밀고하고 살아남는다. 이때 박만수의 갓난아기인 딸이 그의 시신 곁에서 울고 있고 민충식은 “속죄의 뜻으로 길러”야 한다고 결심한다. 물론 갓난아기인 그 딸이 아미이다. 민충식과 함께 살아남아 회사를 경영하는 김 사장은 함께 북으로 올라가자는 요구에 거절하지 못하면서 계속 “이 돈이면 외국에 가서도 살 수 있는데”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민충식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자네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나?” 민충식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 북한에 가고 싶어 한다. ‘인민영웅’이 된다는 것. 우리는 한국 근대사 안에서 이루어진 충무로 장르영화의 규칙에 따라 민충식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 민충식은 좌익계 독립운동의 노선을 따랐을 것이며 한국전쟁 중에 휴전이 되면서 북한에 올라가지 못하고 남한에 남아 머물면서 언제든지 ‘귀환’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남한에서의 민충식은 (그의 직업이 무언지는 설명이 없지만)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어 큰 부를 축적했으며 (그는 별장에 가까운 집에 살고 있다) 남한에서 오로지 아미만을 키우면서 결혼하지 않고 살았다 (그는 어떤 가족도 없다) 민충식은 전형적인 부르주아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단지 “영웅이 되기” 위해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가고 싶어 한다. 민충식은 완전히 모순된 목표를 향해 접근하는 중이다. 우리가 민충식을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이수근을 1969년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 사이의 우울한 공명현상. 이때 임권택 이 여기서 수행하는 연출의 목표는 민충식과 아미의 대면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다. 아미는 이미 민충식의 수중에 들어왔고 민충식은 김 사장과 함께 금괴를 영구차에 실은 다음 서해로 향할 때까지도 눈앞에 있는 아미에게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반대로 실려 가는 아미는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 앞에 서 있는 이 남자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아미가 자기를 영구차에 실어 데려가는 사람이 아버지 민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차를 가로막고 나선 남 형사와 그의 동료의 차와 카 체이스를 벌이는 순간 내뱉는 욕설의 음성 때문이다. 아버지의 욕설. 그건 이제까지 아미의 기억 속에서 항상 다정하고 온화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다. 보지 못하는 아미가 아버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때 아버지는 같은 목소리로 두 인물이 된다. 여기에는 찢어진 아버지, 서로 다른 아버지, 두 명의 아버지가 분간할 수 없게 희미한 모습으로 아미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민충식을 보지만 아버지를 보지 못한다. 아마 이보다 더 장르 안에서 이중간첩에 대한 창백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1970년 그해 영화의 순간은 달리 없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조준하기 임권택 은 이 순간을 좀 더 거북하게 만든다. 거북하게? 그렇게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남 형사가 몰고 온 자동차를 피해 달아나던 영구차는 탈선해서 시냇가에 빠진다. 그런 다음 민충식과 남 형사가 그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총격전을 벌이다가 한 자루를 시냇가에 떨어트리고 난 다음 남은 한 자루를 놓고 ‘주거니 받거니’ 대결을 벌인다. 주인을 옮겨가는 총의 운동. 전형적인 서부극의 컨벤션.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임권택은 안소니 만의 영화를 품고 있다는 감상이 떠오른다. 나는 좀 더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아미는 차가 시냇가에 처박힐 때까지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때 민충식과 함께 북한으로 가려던 김 사장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아미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미안하다, 아미야. 저놈은 네 아비가 아니다. 민가 놈은 네 아버지를 죽인 원수다” 총을 놓고 싸우느라 잠시 잊어버린 아미는 차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민충식과 남 형사를 향해 걸어가다가 시냇가에 던져져 우연히 발에 밟힌 총을 들어서 그들을 향해 겨눈다. 그때 그녀가 겨누는 사람은 (당연히!) 남 형사가 아니라 아버지 민충식이다. 이제까지 떠돌던 임권택 의 의도는 비로소 도착한다. 민충식은 아미를 버리지 않고 기른 유일한 사람이다. 그가 아미의 아버지를 배신했지만 자신의 배신에 대해서 민충식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말에 깜짝 놀란 김 사장의 반문에 “속죄라도 해야지”라는 대답을 하는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여기에 어떤 다른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아미는 아버지에게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고 민충식은 아버지로서의 의무 이외의 어떤 것도 아미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마지막 순간 아미에게 두 가지 요구의 명령이 내려진다. 하나는 어떤 조건 없이 매번 아미를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그녀가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남 형사가 지금 민충식의 총구 아래 있다는 것이다. 앞선 한 발은 빗나갔지만 이번에는 명중할 것이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남 형사는 그 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김 사장이 좀 전에 알려준 대로 민충식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다. 하지만 그녀의 결정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민충식이 이제까지 아미를 키워준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아미는 지금 당장,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미처 망설일 틈도 없이,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아미의 곤궁과 임권택 의 그것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아미는 두 개의 층위에서 결정을 망설이고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냐, 사랑했던 사람이냐, 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 사장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아미는 장르 안에서만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임권택으로 옮겨가면 질문은 까다로워진다. 그때 이 곤궁은 정확하게 아미와 반대의 차원에서 오작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임권택이 저항감을 느끼는 것은 민충식이 또 다른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미가 민충식을 쏘는 것은 이제까지 자기를 길러준 아버지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때 그런 행위를 해도 괜찮은가, 라는 질문은 도덕적이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려버리면 윤리적인 결정이 되는 곤궁에 떨어진다. 도덕과 윤리 사이의 간극. 이때 임권택의 입장에서 아미가 민충식을 총으로 쏘아서 아버지의 죽음을 선택했을 때 얻는 이득에서 남 형사를 구하는 것은 철저하게 부차적인 자리로 물러난다.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방아쇠를 당겨야 할 것인가, 아니면 기른 아버지를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인가. 이때 아버지란 무엇인가. 두 명의 아버지. 아버지는 딸의 첫 번째 사랑의 (불가능한) 대상이자 욕망의 전술을 기입하는 (주인으로서의) 타자이다. 약간 따분하지만 비유를 가져와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미 아버지에 대한 아미의 두 개의 회상 속에서(flash_back) 하나가 그녀에게 사격을 가르쳐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정작 이 순간이 올 때까지 아미는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총을 쏜 적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총을 쏘아야 할 순간 아미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아이러니한 설정. 장르 영화 안에서 총을 남근에 비유하는 것은 거의 클리셰에 가까운 해석이다. 하지만 이 상투적인 비유가 여기서 이상하게 뒤틀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민충식은 아미를 아들로 키우고 싶어 한다. 혹은 아들의 기표를 부여한다. 그 비유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 약간 반격하듯이 반문을 하고 싶다. 만일 아미가 여기서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가장 바보 같은 대답은 남 형사가 아미를 도와줄리 없다는 것이다. 그 대답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그래도 남 형사는 아미를 도와줄 것이다. 정말? 물론이다. 왜냐하면 남 형사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으로 월북하려는 민충식을 추적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신의 오해가 핵심이다. 아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체 이야기를 덮어씌우면서 이야기의 논점을 흐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대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총은 아미가 끝내 아들이 되지 못하는 것을 증명하는 기표이다. 그녀는 남근을 부여받았지만 그걸 사용하지 않으며 또한 사용할 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이야기의 논점을 흐릿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임권택은 어떻게 해서든 이 영화가 북한으로 월북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 그 여자를 쫓아라 > 를 보았을 때 첫 인상은 마치 아미와 남 형사의 로맨스 활극처럼 보일 정도이다. 위장하는 주인 기표. 하지만 우리는 경우의 수를 모두 셈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가장 이상한 계산이 하나 더 남아있다. 쏘는 대신 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처음부터 쏠 생각이 없는 결정이 하나 더 있다. 이 순간 아미가 가진 곤궁과 달리 임권택을 갑자기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데려간다. 그것은 북한에 아미를 데려가려는 민충식을 긍정하는 정치적 제스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갑자기 음산한 그림자가 떠돌기 시작한다. 민충식의 죽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보자. 그런 다음 이 모든 기괴한 수익과 손실의 계산 안에서 벌어진 활동을 한 자리에 모아보자. 임권택 은 이 짧은 순간의 셈이 얼마나 복잡한 것이지를 알아챈 다음 그 결정적인 순간을 비껴간다. 어떻게?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셈을 치를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린다. 그저 아미는 남근의 기표를 손에 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이 영화에서 한 역할의 사실상의 전부이다. 마치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뒤이어 한발 늦게 도착한 남 형사의 동료는 자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민충식을 총으로 쏘아 쓰러트린다. 임권택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 다음 다시 장르의 마무리 안으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딸 아미의 품에 안긴 아버지 민충식은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아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른 아버지도 아버지라는 말로 안심을 시키며 그가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 그 여자를 쫓아라 >는 분명히 1970년이라는 상황의 영화이지만 임권택 은 자기와의 사이에 놓인 긴장을 피해가기 위하여 장르의 장치 안으로 들어간 다음 영화를 결정 불가능한 지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회색의 안갯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임권택이 원하는 것이다. 그는 이수근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지는 못할망정 (그때 누가 그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 수 있었겠는가) 무엇이 다가오는지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수근은 남한에서 모든 걸 얻었다. 새로운 아내. 새로운 가정. 새로운 집. 새로운 삶. 새로운 일. 하지만 그는 여기를 다시 떠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 곁에 민충식을 가져다 놓고 싶다. 민충식은 남한에서 모든 걸 얻었다. 새로운 좋은 집을 가졌고 자본주의 남한에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끝내 어떤 새로운 가족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결혼하지 않았으며 그저 (남의) 딸 아미와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럼에도 그는 북한에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실패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임권택의 어떤 계략을 읽는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서 한 걸음을 잘못 내디디면 소설이 시작된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임권택은 연출의 계략을 동원해서 성공적으로 곤궁을 빠져나왔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1970년은 끝나지 않았다. 혹은 막 박정희의 70년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시작. (계속) 아직 남은 이야기. 이수근 사건에 대한 후일담. 198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의문 제기 과정 속에서 일부 중앙정보국 관리들의 증언을 통하여 이수근은 위장 귀순한 것이 아니며 지나친 중앙정보국의 감시와 북한에 두고 안 가족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제3국으로 다시 망명할 계획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만일 그가 다시 북한에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홍콩에서 캄보디아로 경유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증언에 따르면 이수근은 제3국에 가서 남북한 체제 모두를 비판하는 증언 활동을 할 계획이었으며 이에 당황한 중앙정보국이 그를 이중간첩 사건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관련자 증언 및 관련 자료 재검토를 통해 2006년 12월 “중앙정보부가 이수근을 위장 간첩으로 조작 처형한 것으로 판단하며 이에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과 법원에서의 재심 심판을 요청”한다고 권고하였다. 이에 2008년 12월 19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수근을 위장 간첩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고 21년간 감옥 구금을 한 조카 배경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것이 우리의 근대사이다.(계속) 1970년 86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한국영화사 각본 나한봉 촬영 이문백 조명 정경희 편집 장현수 음악 황문평 김희라 윤정희 장동휘
지난 7월 1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 김태용 감독 단편선’은 내게 그 의미가 매우 특별한 상영이었다. 영화 스태프로 일한 지난 10년의 결산 같은 느낌이었는데, 딱 반환점을 돈 것 같았다. (이대로 10년이나 더? 혹은 앞으로 10년밖에? 란 생각이 들어 시원섭섭한, 매우 복잡한 느낌이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조직의 음모로 과거를 잃은 사람이 하나씩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 것처럼 나는 지난 8년간 아무도 모르게 덮어둔 내 기억을, 뭐랄까 공증받은 느낌이었다. 그러한 결산의 맛은 작품의 완성도나 내용을 떠나 그 자체로 상당히 강하고 또 깊었다. 단순하게는 8년 만에 극장에서 다시 보는 작품에 대한 향수 때문이기도 했고 감독님을 알게 된 이후 모든 단편 영화에 참여했다는 일종의 성취감 같은 것 때문이었으리라. 이를테면 그랜드 슬램 같은 것. 이미 며칠 전부터 그러리라 예상은 했지만 상영이 끝나고 꽤 오랜 시간 먹먹했다. 차은이를 떠올려서 그런 것인지 (난 항상 영화 속 차은이 엄마에게 “답답해”란 말을 할 때마다 울컥한다) 그날 처음으로 관객과 만난 < 그녀의 전설 >에 대한 복잡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관객과의 대화까지 마치고 나니 드디어 진짜, 한 막이 끝남을 느꼈다. 과연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에게 진심으로 즐거운 일인가? 가끔 이런 물음들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김태용 감독님과의 현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영화를 준비하고 촬영하고 마무리하며 느끼는 감정들. 하나의 사이클을 돌면 그것이 어느덧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왜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이 현장을 가장 오랫동안 기억할까. 비단 현장에서 욕지거리와 고함(때론 함성), 책임회피와 상처의 피드백이 없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만난 이 현장은 그 이전의 분위기와 무언가 달랐다. (물론 < 달리는 차은 >이 상업영화가 아닌 저예산 독립영화 형태로 제작되었고, 주제적으로도 인권영화란 특수성이 있음은 확실하다) 그건 굉장히 설명하기 힘든 감정인데, 감독님을 위시한 스태프를 함께 묶는 투명한 막 같은 게 있지 않았나 싶다. 유산균을 보호하기 위한 동글동글 캡슐 같은? 이 안에 들어가면 자외선도 차단되고 누군가 흉기를 찔러대도 튕겨 내버릴 것 같은 그런 막. 그것을 이루는 근간에 모두가 믿는 ‘영화’ 그 자체가 자리했던 것 같다. 우리가 만드는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의 쇼트는 현실의 우리와 가상의 영화를 이어주는 작업이었다. 모든 스태프가 그것에 집중한다. 분리되지 않는 느낌. 현실과 이상이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김태용 감독님과의 지난 작업들은 그러한 모습이었다. 정말 영화 같은 마법의 순간들이 따라왔다. 영화 제작의 즐거움, 허무함, 성취감, 나아가 인생의 덧없음, 희망, 우연과 필연의 관계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따라왔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그러한 과정의 연속이구나, 다른 삶들과 삶들이 연결되는 그러한 느낌. 그리고 나에게 진심으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어두운 극장에서 바라보는 스크린 너머의 세상이 아닌 그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만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간의 단편 작업을 하며 아마도 셀 수 없이 많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회의를 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대부분은 과거의 일들에 관한 것. 그전 작품을 만들 때 겪었던 에피소드들과 즐거움에 대한 것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끊임없이 삶은 이런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조감독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지난 네 편의 단편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다. 어느 영화인, 어느 포지션이든 10년의 세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밥차를 만나고 차디찬 새벽 공기를 가르고 무너질듯한 두 다리로 새벽을 지킨 시간들. 김태용 감독님과의 흥미로웠던 네 번의 영화 여행을 소개한다. 우리는 성장한다! < 달리는 차은 > “엄마, 나 답답해…” 아무도 없는 밤안개 낀 트랙을 한 소녀가 달린다. 점점 호흡이 차오른다. 눈물도 차오른다. 그건 억울함 같은 답답함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삶. 그것을 깨닫고 나면 이 세상을 살아내는 것은 마냥 즐겁고 유쾌하지만은 않게 된다. 차은은 달리고 싶다. 나는 영화를 하고 싶다. 비수기는 늘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 2007년 여름. 연출부로 준비하던 장편 영화가 4개월 만에 중단되었다. 내가 받은 보수는 뻐카충(버스 카드 충전) 몇 번이 전부. 허망했다. 처음으로 ‘엎어진다’는 것을 맛보았는데 (이후로는 자주 그래서 무던해지긴 했지만) 정말 좌절감이 컸다. 사회의 한 개체로서 살아내야 하는 나의 또 다른 롤도 있는데 나의 욕심으로 너무 한쪽 코너로 몰리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당시에는 그런 단어가 없었지만 요즘 말로 ‘열정페이’였지 싶다. 2시간 동안 영화에 빠져 나를 잊듯, 영화 작업의 순간들은 그 이면의 현실적인 삶들을 감추어버린다. 반대로 영화 작업을 하고 있지 않으면 현실적인 문제들은 내가 팽개쳐 놓은 만큼 쌓여 무거운 채무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짐을 싸고 유난히도 더운 여름을 보냈다. 현실의 삶은 많이 더웠다. 아직 나는 (가족에게) 영화사로 출근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지만 사실은 하루 열다섯 시간을 두 가지 알바로 보내는 일종의 취업준비생, 일종의 영화 잉여였다. 그러다 엎친 데 덮친 격 야구를 하다 다쳐 수술하였고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청춘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아무렇지 않게 죽어가고 있을 무렵, 제안이 왔다. 장편 상업 영화 때 만난 현장 편집기사의 소개로 조감독을 만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연출부의 구성이 좀 특이했다. 조감독 두 명에 연출부 한 명 그리고 스크립터. 연출부 한 명은 나를 말하는 것이었고 다른 세 분은 모두 누님들이었다. 물론 직함과 성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은 인원으로 준비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가 많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환경이 연출부의 모든 파트 업무를 해볼 수 있는 꽤 좋은 기회였다. 나는 ‘그 사람’을 몰랐다. 영화 제목을 들어 봤지만 보지는 못했다. 첫 만남의 기억은 특별한 게 없다. 당시에 < 가족의 탄생 >으로 여기저기서 상을 받느라 바빠 보였던 기억만 난다. 하루는 꽃을 엄청 많이 가져왔는데, ‘아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꽃을 받아봤지?’란 생각을 잠깐 했던 기억도 난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다. 영화 제작의 가장 큰 부분은 ‘차은’을 찾는 것이었다. 다문화 가정 환경의 아이를 찾는 것과 실제 육상선수를 캐스팅하는 방법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전라북도의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파악하고 직접 찾아다니며 캐스팅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는 전국육상대회의 현장에서 감독님이 전수영 학생을 찾았다. 애타게 기다려 온 차은이를 육상대회 현장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것은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다. 또한 이 영화 작업의 묘한 순간이 많았는데 차은의 동생 ‘동민’ 역을 맡은 나겸이의 캐스팅 또한 그러했다. 어떤 캐스팅 매니저의 소개로 온,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어린이였는데 간단히 줄거리를 얘기해주니 “우리 엄마도 필리핀에서 왔는데”라고 했던 것(극 중 엄마도 필리핀 사람이다). 이런 게 운명인가 싶었다. 그리고 TV 인간극장에 나오셨던 아르세니아 씨가 엄마 역을 하게 되었고 나머지 한자리! 차은, 동민의 아버지 역은 나겸이의 실제 아버지가 맡게 되었다. 그렇게 비전문 배우 넷을 데리고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게 된다. 차은은 준비할 게 많은 영화였다. 육상부도 등장해야 하고 큰 스타디움도 뛰어야 하고 여러 곳으로 로케이션 장소가 흩어져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한된 시간 안에 한 번도 연기 경험이 없는 배우들을 데리고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수영이는 우리의 걱정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기술적인 것, 영화 연기라는 것에 무지했음에도 열두 살 아이는 있는 힘껏 자신의 감정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했다. 무리한 스케줄과 체력적 난이도가 상당했음에도 수영은 영화의 차은이가 되어가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찍은 소스들을 가지고 편집실에 둘러앉았을 때 우리 모두는 정말 크게 웃었다. 어떻게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배우들의 서투름과 어색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고민과 함께 현재의 버전이 나왔다. 감추기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살아있음을 살리는 방향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순간들이 생생하다. 영화의 촬영을 완성하는 편집의 위대한 힘을 느꼈다. 그해 인권영화 중 가장 긴 촬영 기간(12회차)과 후반 작업을 통해 영화는 결국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 달리는 차은 > 제작의 원동력은 서두에 말한 것과 같은 현실과 영화 사이의 알 수 없는 힘 같은 것이었다. 모두가 이 영화를 믿는 것처럼 보였다.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이 영화의 제작 순간순간을 사랑했다. 수영이가 차은이 되는 순간을 우리는 함께 했다. 3주간의 촬영이 끝났을 때, 어떤 전시 상황에도 출격이 가능한 하나의 소대가 지금 막 편성된 느낌을 받았다. 모항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바다가 보이는 평상에서 우리는 한 아이의 다양한 눈빛을 담았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우리는 1cm씩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감독님과의 첫 번째 영화 여행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제작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알고 영화의 마법 같은 순간을 믿고 또 맛보는 그런 여행. 그리고 이 한 번의 여행은 나에게 영화 동지들이란 큰 선물 또한 선사했다. 덧붙임. 1. < 달리는 차은 >의 스태프를 결속시킨 건 숙소의 역할도 컸던 것 같다. 작은 산속에 숨겨진, 이상한 분위기의 숙소였는데, 아마 프랑소와 오종의 < 8명의 여인들 > 한국판을 만든다면 어울릴 법한 그런 장소였다. 하루는 숙소 스케줄 때문에 모든 스태프가 남녀로만 구분, 커다란 방에서 다 같이 잤는데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순간이다. 2. 늘 영화작업의 추억에는 어느 맛집이 포함되는데 변산 ‘털보네 짬뽕집’이 그렇다. 작년, 오랜만에 들린 그곳에는 짬뽕은 그대로 있었지만 말론 브란도를 닮은 털보 아저씨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 속에서 아저씨는 멀리 사라졌다. (몇 해 전 갑자기 돌아가시고 현재는 남은 가족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3. 차은 역의 수영이는 촬영 당시 육상을 시작한 지 2년 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었다. 현재는 제주대학교 육상부 2학년으로 2014년 전국체전 육상 여자부 계주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동민 역의 나겸이는 인천의 한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4. < 달리는 차은 > 때의 스태프 중 촬영, 녹음, 연출, 제작 파트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김태용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제주에서 만난 < 그녀의 연기 > “갈까부다 갈까분디 내 님을 따라서~ 갈까부다” 구성진 판소리 소리가 흘러나오는 병실. 이제는 그저 가느다란 실처럼 미미하게 하나의 호흡만 남겨둔 아버지가 누워있다. 철수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 영희를 데려온다. 판소리 노래를 선물하는 영희. 그녀의 연기는 무엇 때문이고 우리의 영화는 어떤 연기를 원했는가? 아름다움! 그것은 아름다움 아니었을까? 사람만이 가진 아름다움. 제주의 어느 후미진 주택가 골목. 거나하게 취한 무리들이 강강술래를 돈다. 조금 전에는 식당에서 판소리 한 자락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여 추운 겨울날 강강수월래를 한다. 2011년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기억되는 겨울밤. 아마 달도 거의 들어 차 있었던 것 같다. 홍콩영화제에서 아시아의 감독들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이 단편은 그에 대한 대답. ‘Beautiful 2012’의 김태용 감독 편, 한국어 제목은 ‘그녀의 연기’. 영문 제목은 ‘You are more than beautiful’ 이었다. 합체하면 ‘그녀의 아름다움을 넘어선 연기’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판소리가 관건이었다. 현재 뮤지컬 ‘아리랑’으로 유명한 국립 창극단 배우 이소연 씨가 속성으로 공효진 배우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공효진 배우의 뛰어난 감각과 노력으로 판소리 ‘춘향가’ 중 ‘갈까부다’가 2주일 만에 완성되었다. 공블리라는 애칭처럼 공효진 배우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영희 역할을 연기했다. 그야말로 그녀의 연기! 그 연기가 철수와 아버지를 이어주고 관객과 그들을 이어주었다. 철수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실제 제주에 사는 나의 오랜 군대 친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말을 돌보고 여자를 멀리하는 철수 같은 친구였는데 지금은 아이 낳고 잘살고 있다. 철수와 영희도 그 이후에 다시 만났을까?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을까? 그리고 어머님 제사상에 수박도 올렸을지 궁금하다. 프로젝트 초반, 아름다움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제주의 아름다움과 어떤 관계의, 사람의 아름다움을 담기로 이야기를 좁혔다. 감독님이 던진 가족이란 화두, 특히 서먹한 부자지간의 갈등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버지와 아들. 언제나 어렵고 어색한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철수도 아버지께 직접 얘기하기 힘들었으리라. 어떠한 말이든. 영화 < 만추 >에서처럼 상황극의 활용이 주효했다.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연기. 실제와 환상의 모호한 경계. 그것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한 순간들을 표현한다. 그렇게 그녀의 연기를 통해 철수는 아버지와 소통하게 된다. 드디어 얘기하기 힘들었던 말들이 쏟아진다. 우리는 어쩌면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삶이란 영화 한 편 안에서 진심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 연기가 거짓이냐 진실이냐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때론 진실이 때론 거짓이 내가 꿈꾸는 아름다움을 위해 상황에 따라 골고루 쓰인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감독님의 조감독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입에 잘 붙지는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뭐랄까 감독이란 단어를 포함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대부분 나를 소개할 때 그냥 연출팀으로 불리길 원한다. 감독을 돕는다는 뜻 이상의 의미를 생각했던 것 같다. 조감독은 감독이 불의의 문제로 부재할 때 그 사람의 역할까지도 대신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중압감과 전체 조직 그림을 그리고 스케줄을 책임지고 소통의 제1 창구라는 중요한 임무의 매력을 비로소 체감했다. 제주는 정말 아름답지만 촬영을 하기에 정말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특히 겨울의 제주는 무섭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은 놀라웠다. 바로 어제 확인한 장소가 날씨 탓으로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고지대의 폭설과 기온 급강하는 촬영에 상당히 어려움을 주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용이했던 부분도 있다. 병원이나 목장, 해안도로, 국숫집 등의 로케이션은 그야말로 한산함 그 자체였다. 별다른 통제 없이 원활하게 진행됐다. 제주는 보조출연자들을 섭외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몇몇 업체가 있지만 보조출연 배우들은 대부분 연기경험이 없다. 하루종일 병실에 누워있는 촬영은 보조출연 어르신들에게는 ‘생지옥’ 같았으리라. 처음 한두 시간이야 누워서 진짜로 잠을 자면 그만이지만 원하지 않을 때 누워 있는 것은 좀도 쑤시고 참 곤욕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철수 역의 배우 박희순 이 아버지 역의 출연자에게 촬영 말미에 한 “오늘 촬영이 어땠냐”는 질문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는 답변이 잊히질 않는다. 덧붙임. 1. 이번 영화 여행에서 건진 또 하나의 수확은 배우 공효진을 통해 알게 된 ‘오는정김밥’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주에 가면 늘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2.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영화 작업이 아니면 절대 가보지 않았을 곳을 간다는 것이다. 제주의 구석구석을 돌며 많은 이야기와 계획을 세웠다. 그러한 영감들이 현재 작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것들은 신기하게도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또다시 성장한다 < 피크닉 > 천하장사쏘세지를 넣고 케첩을쫙~ 도시락 김으로 돌돌 말아 착착 썰면 소풍 준비 끝! 동생을 버리러 절로 향하는 꼬마가 있다. 그래! 우리 집의 문제아 동생, 동민이를 버리면 엄마도 좋고 나도 좋고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거야. 3D 안경과 스크린 사이의 마법 같은 공간 속에서 꼬마의 모험 세계가 펼쳐진다. 거짓말처럼 나로호가 발사되어 우주로 향하던 날, 꼬마 수민이는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그때 무얼 하고 있었던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잠시 며칠간 다녀오는 피크닉 이 아니라 원양어선과 같은 오랜 시간의 여행이었다. 큰 예산의 장편을 준비하다 만난 프로젝트였는데 결과적으로 1년 남짓한 시간을 이 단편 영화를 만드는 데 보냈다. 2013년 여름 KAFA에서 진행된 3D 교육에 참석했던 게 프로젝트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일주일간의 기본적인 3D 교육을 받고 작업에 착수했는데 사실 난 3D 영화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SF, 액션 장르의 영화들이 많았고 시각 피로도가 많이 쌓였던 경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육 중 보았던 < 라이프 오브 파이 >를 통해 3D의 매력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스크린의 x와 y축(가로와 세로) 거기에 덧붙여 z축(깊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3D라는 형식과 드라마라는 장르의 결합, 미학적인 접근, 두 대의 카메라 운용,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스테레오 그라퍼(입체팀), 거기에 몇 가지 큰 CG 작업까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교육을 담당했던 KAFA 팀이 카메라 운용과 입체를 담당해주었고 CG를 담당한 덱스터 워크숍 팀이 전반적으로 이를 함께 했다. 약 세 달간의 프리와 8회차 촬영 그리고 약 5개월의 후반 작업을 통해 2014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에서 < 신촌 좀비 만화 >(유령-너를봤어- 피크닉 )의 타이틀로 첫선을 보이게 된다. 장편 상업 영화와 비슷한 기간과 인력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예의 단편 작업과는 그 스케일 자체가 좀 달랐던 것 같다. 조감독으로 준비해야 하는 항목들이 많아진 느낌이었다. 넘나들며 백업을 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어서 연출부 각자가 맡은 분야를 스스로 준비하고 책임져야 하는 업무의 정확한 분업화가 필요했다. 촬영 때 CG 컷을 진행하며 프리비주얼 - 테크비주얼 작업의 중요성과 현장에서의 CG팀과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도 깨달았다. 프리부터 포스트까지 하나의 파이프 라인으로 구성된 CG 담당 연출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연출부의 경력 주안점을 어디에 두는 것이 좋은가’란 고민 또한 하게 되었다. (CG 업체 출신일 수도 있고 CG 담당을 많이 한 연출부일 수도 있고 미술팀 혹은 애니메이션 경력의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고민은 다음 프로젝트에서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 이야기는 민예지 작가(< 달리는 차은 >)와 둘이 시작했다. 짧지만 강력한 그리고 3D, CG 크리쳐 등 테스트 목적의 사안들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첫 회의 중 나온 서번트 증후군 아이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그렇게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윤곽이 나오고 감독님과의 각색 작업을 거쳐 촬영에 들어가게 되었다. 프리 작업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미술팀, CG팀, 연출팀이 고민한 판타지 세계에 대한 합의였다. 꽤 긴 시간, 많은 콘셉트 아트의 결과물이 버려졌다. 각자의 다른 관념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 테크닉적인 부분의 실현 가능성 등이 이슈였다. (개인적으로는 거대한 새와 주인공 수민( 김수안 )이 빙판 위에 마주 보고 서 있던 그림이 아직도 생각난다. 채택되지 않았으나 그 이미지의 강렬함이 인상적이었다.) 누가 과연 사람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을 쉽게 그릴 수 있겠는가? (대부분 우리가 보아온 몇몇 영화 속 이미지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혼은 과연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 지에 대한 상상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3D 효과의 장점 또한 살려야 하니 인물 움직임의 방향성이나 그에 따른 촬영방식 등 고민이 많이 필요했다. CG를 위한 배우의 바디 스캔부터 와이어 촬영. VFX, 음악과 사운드 이펙트까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요소들이 결합되어 영혼 분리 장면이 완성되었다. 수민 역의 배우를 찾기 위해 200명가량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나 이번 역시 쉽게 나타나 주지 않았다. 그러다 기존의 배역 연령을 수정하면서까지 한 아이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 배우가 김수안 이었다. 이제는 관객 대부분이 그 얼굴을 한 번쯤은 보았고 또 기억할 만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배우다. < 숨바꼭질 > < 차이나타운 > (현재는 < 부산행 > 촬영 중이다) 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수안이는 연기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올해 초등학교 4학년(당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 우주로 날아간 로켓처럼 신비롭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촬영 내내 우리는 그녀의 놀라운 집중력, 이해력, 체력, 자연스러움, 센스 등을 보고 감탄했다. 내 기억으로는 수안이 때문에 NG가 났던 경우는 없었을 정도로 완벽했다. 심지어 여섯 살 동민 역의 지성이를 가르쳤다. “그렇게 연기하려면 하지마. 넌 밥 먹을 자격도 없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김우형 촬영감독님과는 세 번째 작업이었다. 오랜 팬으로서 그분과 작업하는 것은 어떠한 특혜 같은 느낌이다. 대부분은 눈빛으로 말씀하신다. 난 그 무언의 감정과 커뮤니케이션이 좋다. 여담이지만 몇 해 전, 팬으로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김태용 감독님과 김우형 촬영감독님에게 서로를 언급했는데 요지는 두 분이 함께 작업하는 영화를 언젠가 꼭 봤으면 한다는 그런 얘기였다. 물론 두 분은 그전부터 지인 관계였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만추 >의 작업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나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작은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그랬으니 < 피크닉 >의 작업은 얼마나 더 했을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작업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이 상당했고 그만큼 부담감도 컸던 기억이 난다. 덧붙임. 1. 고흥은 참 먼 곳이다. 요즘 어떠한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대부분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은 없을 텐데 이곳은 거의 여섯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고즈넉한 금탑사, 외나로도의 풍광은 자연 그대로 운치를 가졌으며 촬영 여건으로도 매우 좋았던 기억. 지리적 위치 때문에 11월 중순까지 단풍이 머무는 곳이었고 멋진 비자나무가 가득한 숲이 있고 한가로운 포구가 있었다. 나로호의 이름은 나로도에서 온 것이며 이곳이 발사 장소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는 전국에서 인구 분포가 가장 적은 곳이기 때문이란다. (추진체의 낙하 등 여러 이유에서 사람이 없는 곳이 당연히 유리해 보인다) 2. 이곳의 명물은 사실 따로 있었다. 나로호, 우주인 이런 것이 아니라 뜨끈한 달걀 후라이가 올라간 ‘우주반점’의 짜장면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 해 먹은 음식들 중 이 짜장면을 최고라 여겼다. 그건 옆에서 함께 한 수안이 때문이었는지, 백반으로 지겨워진 식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먹어 본 역대급 짜장면이었다. (우리팀은 요즘도 우스갯소리로 고흥 가서 짜장면이나 먹고 오자고 한다. 물론 쉽지 않다.) 3. 학교 놀이터 장면에 등장하는 우주인은 우리가 묵던 숙소 로비에 있던 조형물이었다. 이 호텔에 러시아 우주과학자 등 많은 연구인이 머물렀다고 한다. 로비에는 그들의 선물인 마트료시카 인형도 전시되어 있다. 촬영 중 묵어 본 이색 숙소 중 하나. 다시 또 제주에서 만난 < 그녀의 전설 > “유진아~ 엄마는 이제 산으로 간다” 바다의 인어, 해녀 엄마가 어느 날 사라졌다. 바다가 지겨웠던 걸까? 엄마는 곰으로 나타나 산으로 들어갔다. 신화와 설화의 천국 제주. 그 제주에서 또 하나의 전설로 남은 한 해녀 이야기. 우리는 언젠가부터 해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환상의 무대 제주 그리고 강인한 여성 해녀. 과연 우리는 한 해녀의 죽음을 어떠한 형식의 장례로 치룰지 고민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한바탕 춤과 노래가 펼쳐진다. UHD, 제주 날씨, 수중 신, 뮤지컬, SFX, VFX, 아역 배우 컨트롤 그야말로 종합선물 세트가 그 뒤를 따른다. 지난 피크닉의 작업이 3D와 VFX에 대한 여행이었다면 이번 그녀의 전설은 SFX 특수효과에 관련한 것이었다. 실종된 해녀가 곰이 되어 돌아온다는 설정. 예산과 한정된 작업 기간, 무엇보다 배우들끼리의(곰과 타 배우들) 보다 긴밀한 교감(인터렉션)이 필요한 드라마였기 때문에 우리는 SFX로 접근하였다. CG 크리쳐를 만드는 작업이 아닌 쉽게 말해 진짜 같은 곰(탈)을 만들어 필요한 부분을 후반에서 CG로 덧입히는 작업의 방식을 택했다. 애니메트릭스는 십여 개의 얼굴 뼈대를 심고 이를 리모트 컨트롤로 작동시키는 원리다. 턱의 상하 움직임, 입술 근육, 눈두덩이 근육, 눈의 깜빡임, 귀의 움직임 등이 두 대의 컨트롤러로 작동되었다. 그리고 특별한, 예로 의인화된 곰의 과장된 표정을 원했던 샷들은 후반에서 CG 얼굴로 갈아 끼우기도 했다. 즉 곰은 그 곰 슈트 자체로 진짜 곰처럼 보여야 했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의인화된 곰이기도 해야 했다. 접근에 따라 다양한 쇼트플랜이 요구되었다. 약 두 달간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곰 슈트가 만들어졌다. 곰의 움직임을 연기할 배우의 3D 바디 스캐닝 작업부터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곰의 근육과 털, 그리고 기술과 노하우의 집약체인 곰의 헤드까지 거의 하루도 쉬지 못하고 SFX팀의 작업이 이어졌다. 움직임은 동물의 동작에 관한 연구를 한 무용수 출신의 (< 피크닉 >의 만화 속 공주 - 이초희 배우의 움직임을 담당하기도 했던) 김재리 선생님이 담당하였고 실제 곰 안에서 움직이는 배우 역시 현업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김기범 무용가가 맡아주었다. 인체의 비율 때문에(엎드리면 뒷다리가 너무 길다. 굽히면 다리의 너비가 넓어지고, 거기에 앞다리부터 뒷다리의 길이, 허리 부분이 인간이 훨씬 짧다) 어쩔 수 없이 실제 곰과 차이가 나기도 했지만 촬영 때 앵글의 선택, 동작의 방향을 활용해 최대한 이를 보완하려 노력했다. 실제 촬영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배우가 곰 슈트를 입고 십 분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메카닉이 들어간 헤드의 무게와 모터소리 때문에 배우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거기에 화창한 봄날의 기온은 거의 호흡 곤란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중간중간 산소통을 통해 배우의 상태를 관리했지만 전신 털 옷을 두르고 무겁고 빡빡한 헤드를 쓰고 연기를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배우의 시야 확보는 외부 털에 심어진 초소형 카메라에서 보내는 영상을 특수 안경으로 확인하는 방식. 4족 보행이냐 2족 보행이냐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가 달라지므로 이 역시 세팅 시간이 필요했다. (움직임 때문에 손과 발도 2족과 4족의 형태가 달랐다.) 디렉션과 상대 배우의 대사 등은 인이어 시스템으로 해결되었다. 이러한 곰의 상태는 촬영 시간을 압박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든 작업이었다. 거기에 오락가락하는 날씨(계속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컨트롤이 되지 않는 아역배우, 뮤지컬 팀의 안무 합 등 현장에서 많은 기다림의 요인들이 진행을 더디게 만들었다. 이번 작품에도 우연한 혹은 필연적인 만남도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은희 선생님을 만난 것이었다. 예의 다른 작업처럼 이번 역시 캐스팅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엄마 역(목소리 연기)을 맡아 주실 분이 쉽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 우선 제주 방언이 필수고 해녀 분들의 이야기라 실제 해녀 분들을 여러분 만났지만 늘 연기력에 대한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연기력을 고려해 제주 내 극단의 배우 분들도 만났고 성우, 제주 출신 배우들까지 알아보았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던 차, 제주 씨네마테크의 오주연 대표님 아이디어로 제주 출신이신 은희 선생님을 섭외하기에 이르렀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셨던 ‘꽃 반지 끼고’ ‘사랑해’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곰의 목소리와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곰의 몸이 만나 ‘그녀’가 완성되었다. UHD라는 콘텐츠의 포맷은 제주와 잘 어울렸다. 자연, 스펙터클한 풍광을 담기에 좋은 고해상도의UHD는 그중에서도 제주의 아름다운 심해를 훑고 다닐 때 그 느낌이 배가 되었다. 수중촬영 역시 그 과정이 녹록하지 않았다. 우선 날씨에 민감한 작업이고 물 때와 해녀 분들의 컨디션에 따라 섭외, 촬영이 가능한 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약 1주일간의 촬영이 별도의 유닛으로 진행되었다. 영화 현장은 늘 변수들이 발생하고 조감독은 이를 제작팀과 상의하여 다음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뒤로 막힌 스케줄과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하나의 빠른 판단은 많은 것을 바꾼다. 시원하게 퍼부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비는 오락가락 내렸다. 대기 시간은 그저 소비되는 것. 차라리 휴식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결국 스케줄은 다시 꼬이게 되었지만 먼저 쳐낼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 바로 진행 수정에 들어간다. 스텝들이 이동하는 사이에 새롭게 장소를 섭외하고 다른 신을 찍었다. 그렇게 선방하고 다시 퍼즐 맞추듯 스케줄을 수정하니 어느덧 일주일간의 촬영이 끝이 났다. 그녀는 해녀들에 둘러싸여 먼 길을 떠났다. 음 우리 엄마가 곰이 되어 산으로 간다고 하면 그래도 살아있음에 기쁠까? 아니면 이 헤어짐도 죽음과 같아 슬플까?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결국 부재하는 것이지만 본인이 희망하는 곳으로 갔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덜 슬픈 것도 같다. 이번 영화도 나에게 몇 가지 질문들을 던졌다. 외적으로는 조감독의 역할에 대한 재고였고 내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영화적 표현에 관한 것이었다. 아울러 정말 많은 요소들이 배치해 있을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준비하여 하나씩 해결해 나갈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덧붙임. 1. 유진( 최강희 )의 아들 민호 역의 호영이는 헌팅지에서 만난 아이였다. 집 후보지였는데 그날 잠시 놀러 온 그 집 손자였던 것. 그 짧은 인연이 캐스팅에까지 이르렀다. 2. 제주 월정리의 ‘고래가 될’ 까페는 몇 년 전부터 즐겨 찾던 곳이었는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이곳이 은희 선생님의 자제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세상이 참 좁기도 하고 인연이란 것이 참 놀랍기도 했다. 선생님 덕분에 이곳에서 맛있는 회식 시간을 가졌다. 3. 얼마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그녀의 전설이 다시금 관객과 만났다. 혹시 놓치신 분들은 10월 중순 제주영화제에서 만나시길 희망한다. 네 번의 영화 여행을 돌아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대부분 그 시간이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돌이켜 보는 과거는 늘 긍정적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아마도 기쁨의 순간들이 핵심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겠지) 어떤 날은 개인사로 감정이 격해져 있었던 날도 있었을 테고 어떤 날은 마냥 이 사람들이 좋아 기분이 좋았던 날도 있었던 것 같고 어떤 날은 이 시간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 같아 초조하기도 했다. 여행은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처럼 이 영화 여행도 끝은 있을 것이다. 언제가 마지막일지는 몰라도 그때까지 나의 포지션이 무엇이든 난 이 일련의 의미 있는 단편 작업을 지지할 것이다. 그 어떤 직업을 가져도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영화 스태프라는 직업은 그 고민을 주 업무로 하는 직업이다. 얼마나 재미있고 행운인 직업인가. (때에 따라 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여정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그림을 함께 그리느냐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조감독은 하나의 트레일을 만드는데 가이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스케줄을 확인하고 목표한 길을 가기 위해 제반 사항들을 점검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감독이 트레일을 개척할 때 그것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 네 번의 트레일은 소중한 인연들과 만든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 안에서 열정을 보았고 내 열정을 나누었다. 앞으로 10년 뒤에도 그런 길을 닦는 데 함께하고 싶다. 오늘 밤도 영화를 만들며 살 것인가? 영화처럼 살 것인가? 고민하다 잠이 든다. 내게 영화는 아직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