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렉
- 감독
- 게리 트러스데일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 에디 머피, 안토니오 반데라스, 코디 카메론, 크리스토퍼 나이츠, 게리 트러스데일
한국에서 공포영화를 좋아하기란 많은 난관이 있다. < 티탄 >으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쥘리아 뒤쿠르노의 데뷔작 <로우>(Raw, 2016)는 칸을 비롯한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화제작이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되었으나 결국 수입되지 않았고, 넷플릭스를 통해 뒤늦게 공개됐다. 아마도 카니발리즘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닐까. 올해 아카데미 주요상을 휩쓴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와 < 더 웨일 >을 만든 제작사 A24의 영화는 언제나 독특하다. < 유전 >과 < 미드소마 >, < 더 위치 >, < 잇 컴스 앳 나잇 >, < 램 > 등 A24가 만든 공포영화들도 장르적으로는 아쉽다 말할 수 있어도 개성이라는 면에서는 모두 탁월하다. A24의 2022년 작품인 티 웨스트의 < X >는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고, 약 1천 5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성공작이다. A24는 프리퀄인 < 펄 >(Pearl, 2022)을 바로 제작하여 작년 9월 개봉했고, 시퀄인 <맥신>(MaXXXin)도 제작 중이다. 그러나 오락성과 작품성 모두 뛰어난 공포영화 <X>는 한국에 수입되지 않았다. 1979년을 배경으로 시골 농장에 포르노 영화를 찍으러 갔다가 학살당하는 내용인데, 역시 ‘포르노 영화’라는 소재가 불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데미안 레온의 <테리파이어>(Terrifier, 2016)는 3만 5천 달러의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슬래셔 영화다. 2016년부터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하다가 2018년 개봉한 <테리파이어>는 ‘아트 더 클라운’라는 개성적인 살인마 캐릭터와 신랄한 고어 장면이 찬사를 받으며 컬트영화가 되었다. 데미안 레온은 2편 제작을 위해 5만 달러 펀딩을 시작했고, 목표를 훨씬 초과 달성하여 총 25만 달러를 모금했다. 상영시간 2시간 18분의 고어 슬래서 영화 <테리파이어 2>는 작년 미국에서 개봉하여 1천 5백만 달러의 극장 수익을 올렸다. 제작비는 약 25만달러. <테리파이어> 1, 2편은 한국에 수입되지 않았다. 수입한다 해도 고어 장면이 노골적인 영화라 많은 장면이 잘려나갈 것이다. 온전하게 한국의 극장에서 <테리파이어2>를 볼 방법은 영화제를 통하는 것밖에 없다. 1970, 80년대의 슬래셔 영화를 리부트하는 감각으로 만들어진 화끈한 호러 영화 <테리파이어 2>를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호러영화에서 ‘캐릭터’는 대단히 중요하다. 살인마의 캐릭터를 잘 잡으면 시리즈가 끝없이 이어진다. < 할로윈 >의 마이클 마이어스, < 나이트메어 >의 프레디. < 13일의 금요일 >의 제이슨, <헬레이저>의 핀헤드 등은 호러 장르의 아이콘이다. 데미안 레온이 창조한 아트 더 클라운도 그들의 뒤를 이을 자격이 충분하다. 아트 더 클라운은 데미안 레온의 첫 번째 단편영화 <9번째 서클>(The 9th Circle, 2008)에 조역으로 등장했고, 단편 <테리파이어>(Terrifier, 2011)에 초자연적 존재로 등장하여 존재감을 드러냈다. 데미안 레온은 두 편의 단편을 활용하여 장편 <올 할로우스 이브>(All Hallow’s Eve, 2013)를 연출한다. 할로윈에 캔디를 받으러 나갔던 아이의 주머니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디오테이프가 들어 있다. 베이비시터는 비디오를 틀었고, 아트 더 클라운이 등장하는 단편영화들을 보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 데몬스2 >의 악마가 TV 브라운관을 통해 현실에 나오듯, 클라운이 베이비시터를 바라보고 다가와 브라운관을 두들기다가 현실로 들어온다. 데미안 레온은 <올 할로우스 이브>에서 아트 더 클라운의 가치를 충분히 깨달았고,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장편 <테리파이어>는 오로지 아트 더 클라운을 위한 슬래셔영화다. 할로윈 밤, 광대 코스튬을 입은 남자가 두 여성을 쫓아간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이들을 살육한다. 제한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살육은 85분의 러닝타임 동안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저예산이기 때문에 장소와 인물의 제한은 필연적이다. 주인공은 몇 번이나 위기에서 도망치면서 아트 더 클라운을 죽이지 않는다. 클라운이 쓰러지거나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두고 도망치다가, 다시 공격당한다. 80년대 슬래셔 영화의 클리셰를 너무 반복해 사용하는 탓에 약간 지루한 감도 있다. 스토리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테리파이어>의 참신한 고어 장면들과 아트 더 클라운의 섬뜩한 매력은 호러영화 마니아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테리파이어>는 호러의 컬트가 되었다. <테리파이어 2>는 1편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가진 데미안 레온이 작정하고 만든 영화다.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2시간 18분에 담았다. 호러 그것도 고어 영화를 2시간 넘게 본다는 것은 마니아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데미안 레온은 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창의성이 넘치는 감독이 공식에 충실한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어 성공했을 때, 속편의 기회가 주어지면 자의식이 충만하다 못해 가득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팀 버튼의 < 배트맨2 >(Batman Returns, 1992), 길예르모 델 토로의 < 헬보이2 >(Hellboy 2: The Golden Army, 2008)가 그렇다. <배트맨>과 <헬보이>는 모두 걸작이지만, 철저하게 슈퍼히어로 영화의 공식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전개했다. 그러나 <배트맨2>와 <헬보이2>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경계선을 가볍게 초월해 버린다. <배트맨2>의 히어로는 배트맨이 아니라 캣우먼과 펭귄이고, 추방된 자들의 부활을 다룬다. 크리스토퍼 월킨이 연기한 빌런 맥스 슈렉의 존재는 스리슬쩍 지워진다. <헬보이2>는 길예르모가 애착을 가진 기형의 존재, 신묘한 기계장치, 뒤틀린 신화와 전설 그리고 저주까지 모두 등장하여 헬보이의 모험을 보여주는 판타지다. <테리파이어 2>를 <배트맨2>, <헬보이2>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데미안 레온의 야심만은 인정할 수 있다. <테리파이어 2>는 80년대 하이틴 슬래셔 영화 풍의 오프닝 크레딧으로 시작한다. 주인공도 10대의 남매다. 시에나는 자살한 아버지가 만들었던 검을 든 천사 코스튬으로 할로윈 파티에 가고 싶어한다. 동생 조나단은 아버지가 남긴 엽기적인 그림들이 아트 더 클라운과 관련있다고 믿는다. 1년 만에 다시 나타난 아트 더 클라운은 어쩐 일인지, 시에나와 조나단 남매에게 집착한다. 친구 앨리와 시에나의 어머니를 죽인 아트 더 클라운은 조나단을 납치한다. 최종적으로 시에나와 아트 더 클라운의 맞대결이 벌어진다. <테리파이어>는 심플한 슬래셔영화였다.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아트 더 클라운도 초자연적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쫓고, 죽이고, 절단하는 장면을 긴장감 넘치게 구성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작지만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 <테리파이어 2>는 <나이트메어>를 연상시킨다. 부활한 아트 더 클라운은 초자연적인 괴물이고, 꿈과 현실을 넘나든다. 시에나와 조나단은 꿈속에서 클라운을 만나고, 깨어나자 현실에서도 상처가 지속된다. 학교의 환상 장면은 확실한 <나이트메어>의 오마쥬다. 그런데 묘하다. 죽음 직전까지 몰린 시에나는 환상적으로 되살아나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클라운과 최종 보스 대결을 벌인다. 영락없는 게임 판타지의 엔딩이고, 검을 든 여전사의 각성이 메인 플롯이 된다. <테리파이어 2>의 초점은 아트 더 클라운보다 시에나에게 맞춰져 있다. <테리파이어 2>는 데미안 레온의 야심이 넘쳐 장르도, 스토리도 마구 넘쳐난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테리파이어 2>가 성공적인 속편이 된 이유는 데미안 레온의 창의적이고 현란한 고어 장면들 때문이다. 시에나의 친구인 앨리의 집에 찾아 간 아트 더 클라운이 그녀를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은 아주 길고 자세하게 묘사된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테리파이어 2>는 호러영화 마니아에게 기억될 영화로 남는다. 조나단을 찾아 시에나와 함께 테마파크에 간 친구 브룩과 남자친구 제프가 아트 더 클라운에게 공격당하는 장면 역시 아이디어가 넘친다. <테리파이어2>는 데미안 레온의 야심으로 장황하고 호사스러운 속편이 되었지만, 하이틴 슬래셔 호러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 되었다. 공포와 긴장감, 살육 그리고 유머와 에로틱까지 겸비한, 21세기를 대표할 하이틴 슬래셔 영화다.
스웨덴의 인기 동화 ‘핀두스’의 작가 스벤 느르드그비스트는 “(작품 속에) 염소와 고양이를 키우며 살았던 시절과 내 아이들을 키울 때의 추억이 다 담겨 있다”며 자기 내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에 따라 동화를 써나가는 작업과정을 한국의 일간지를 통해 소개했다. 유사한 사례로 이란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자전적 성장통을 독특한 그림체로 녹여낸 그래픽노블 < 페르세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는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했고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되면서 관객에게도 깊은 몰입감과 감성을 배가로 전달했다. 영화의 경우 캐릭터의 삶이 자기 몸에 밸 때까지 연습하고 공부한 뒤 고도의 열정으로 촬영에 임하는 지독한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 나의 왼발 >과 < 데어 윌 비 블러드 >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2013년 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링컨>으로 세 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서 영화사의 한 줄을 새로 썼다. 그는 촬영이 없을 때도 링컨의 목소리와 억양으로 살았다고 한다. 스벤 느르드그비스트와 동화 <핀두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영화 < 링컨 > 화두로 펼친 몇 가지 이야기들은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는 작가와 배우의 경험, 연륜, 그리고 열정과 신념 등에 의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좋은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 공식’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30년간 일본, 나아가 전 세계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한 획을 긋고 시대를 풍미하던 스튜디오 지브리가 개점휴업상태로 해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가슴 아픈 일이다. 지브리의 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 최고의 역량을 가진 애니메이터들이 이상적 노동환경에서 최고의 작품을 지향하는 지브리의 유토피아적 제작 시스템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브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와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수작업의 노동집약적 제작방식 고수, 재미와 상상력을 넘나드는 감독의 신화적 메소드 결핍, 소비층이 두꺼운 10~20대의 신세대 가치관이나 관심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높고 좁은 스펙트럼의 무거운 주제가 핀포인트에 어긋나면서 결국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더욱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걸출한 개인적 역량과 남다른 감성의 상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지브리 공방 시스템에 2013년 미야자키 감독 은퇴로 생긴 리더십의 공백이 무엇보다도 큰 붕괴 원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브리의 위기는 1937년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 이후 50년이 지난 1980년대까지도 고루한 2차원 셀과 뮤지컬 형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변화의 혁신에 둔감했던 최고경영자의 무능으로 이미 두 번의 심각한 사태를 맞이했던 미국의 디즈니 위기와 다를 바 없다. 디즈니의 첫 번째 위기는 창업주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후에 찾아왔다. 1966년 탁월한 능력과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기업을 이끌었던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뒤 후계자들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의사 결정력이 떨어지면서 창의적인 사업 대신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운영에 치중함으로써 부실경영의 여파가 1980년대 초반에 찾아왔다. 1985년 개봉한 < 타란의 대모험 The Black Cauldron >(테드 버만, 리처드 리치)은 10년간 제작 기간을 가졌음에도 구태한 파스티슈로 흥행실패는 불 보듯 뻔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한 최고경영자(CEO)가 마이클 아이즈너다. 1984년 파라마운트사에서 전격 영입된 아이즈너 회장은 영화사업에 진출했다가 위기를 맞은 디즈니를 다시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돌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위기 탈출에 대한 그의 전략은 첫째, 비전을 제시하고 둘째, 유능한 인력을 뽑는 데 주력하고 셋째, 조직개편을 통한 창조적 조직을 구성하고 넷째,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었다. 아이즈너의 전략과 더불어 특히, CG 기술을 도입한 < 인어공주 >( 1989), < 미녀와 야수 >(1991), < 라이온 킹 >(1994) 등은 예술성과 아울러 흥행 성공작이 된다. 이렇게 아이즈너 회장의 위기 극복으로 얻은 이익은 1984년 16억 달러에서 1997년 220억 달러, 시가총액도 20억 달러에서 670억 달러로 크게 성장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마이클 아이즈너, 로버트 아이거, 제프리 카젠버그 디즈니의 두 번째 위기는 아이즈너 회장 자신이 스스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이상 재직하면서 스스로 독재자가 되어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했다. 결국 아이즈너 회장은 내부 직원들의 반발과 경영진과의 다툼으로 인해 주주들의 신뢰를 잃고 2005년 사임했다(대표적인 실책으로, 침체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부활시킨 제프리 카젠버그를 1994년 해임하지만 그가 설립한 드림웍스는 < 슈렉 >(2001)으로 디즈니와 아이즈너를 조롱하며 대박을 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05년 후임자인 로버트 아이거가 최고경영자(CEO)가 되어 다시 한 번 창의성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ABC방송 기상캐스터로 출발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아이거는 아이즈너 밑에서 일할 때 그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거의 리더십으로 인해 창의적인 회사 분위기를 해치는 관료적 경영이 점차 사라졌다. 테마파크, 리조트, 스튜디오 등 각 사업부 단위는 스스로 권한을 갖고 책임 있게 일하게 됐고,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있을 때 루카스 회사로부터 1000만 달러에 매입한 회사)와의 관계를 회복시켰고, 두 제작사 간 계약이 만료된 2005년에 이어 2006년 1월 24일에는 스티브 잡스 애플 CEO로부터 픽사 지분을 모두 인수해(74억 달러 M&A) 2D 셀 애니메이션 명가인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3D 애니메이션 명가인 픽사의 환상적인 결합으로 애니메이션 분야의 세계적 위상을 굳건히 다졌다. 아이거 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 실적은 다시 상향세로 돌아섰다. 2011년 408억300만 달러의 매출액에 88억2500만 달러의 순익을 내 매출액과 순익 면에서 모두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2012년에는 루카스 필름까지 인수한다. 이러한 성장은 그가 창의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마케팅 목표 계층을 기존 유아 중심에서 10대와 20대, 나아가 중·장년층 등 전 연령층으로 확대시킨 것이 턴어라운드에 주효했다.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실증 조사를 통해 ‘단기간에 성장한 기업들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지만, 위대한 기업들은 대부분 수십 년간 꾸준히 성장하고 전환점을 거쳐 도약한다’고 했다. 그 전환점이란 바로 ‘위기와 극복의 모멘텀’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실패를 통한 경험을 좌절로 끝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가지고 극복해야 한다. 최근 tvN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청춘>의 배우 조정석, 정우, 정상훈은 모두 무명기간이 길었고 고생 끝에 현재의 자리에 올라왔다는 공통점으로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받으면서 관심을 모았다. 음반시장에서는 10년 전 음반판매량에 비해 20% 줄어든 침체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위한 음악이 아닌 귀를 위한 음악을 만든다’는 영국 여가수 아델의 강한 신념을 담은 3집 앨범 ‘25’가 스트리밍 없이 작년 11월 20일 발매 이후 1주일 만에 338만 장의 판매량을 올리면서 존재감을 굳혔다. SF영화 단일작품으로 38년을 이어가는 시리즈 ‘스타워즈’의 7번째 영화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가 개봉 이틀 만에 전 세계 매표실적 2억500만 달러(2,960억 원)로 제작비 2억 달러(2,360억 원)를 넘어선 오늘, 30년이란 시간을 지브리의 열정으로 꽃피운 상상과 창조력의 연륜을 믿으며 테크놀로지 시대의 혁신과 비즈니스의 통찰로 < 가구야공주 이야기 >가 희망하던 ‘다시 살아나는 생명체’처럼, ‘애니마(Anima)’로 부활해 진화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여,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 < 바람이 분다 >(2013)의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가 허둥대며 만든 영식함상전투기 ‘제로센(零?)’의 망상으로 우월에 찬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허황되고도 참담한 부활은 꿈도 꾸지 마시고.
기억을 잃은 전직첩보원은 자신의 이름 하나와 의지할 수 있는 여자 친구를 얻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홀로 버려진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들이 건들지만 않는다면 자신도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도망이고 회피였지만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꿈틀대는 그에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느 밤 스멀스멀 찾아온 기억의 잔재만 아니었다면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걸 잊은 줄 알았던 그에게 떠오른 아픈 과거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임무 중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들이 조각조각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찾아온 것이다. 반복되는 악몽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자신이 선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진즉 알았지만 막상 그것을 감당하기에 그의 상처는 아직 다 치유되지 못했다. 겨우 사건과 정면으로 마주 서려고 용기를 가질 무렵, 불쑥 나타난 그들은 여자 친구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는 결국 자신에게 남은 이름 하나를 걸고 그동안 도망쳐온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긴 속죄의 여정이 될 그 길을 막는 것들은 모조리 파괴되고 처치될 것이다. 누구도 용서해주지 않겠지만, 또 용서받을 수도 없는 막다른 길이 될 테지만,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엔 거침없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았으니까. 그는 더 이상 제이슨 본이 아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데이비드 웹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새로운 고향이 될 것이다. ‘본’ 3부작 ‘본’ 시리즈는 2000년대 액션 영화의 지형도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자신의 원형이자 근본이었던 007마저 시리즈를 새로 쇄신시킬 만큼, 이 작지만 영리한 첩보액션물은 3부작을 통해 완벽하게 반(反)영웅의 신화이자 네오 스파이물의 장대한 모험담을 완결지었다. 로버트 러들럼의 인기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가져온 건 콘셉트와 캐릭터뿐, 현재라는 시공간에 맞게 재창조돼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이고 강력한 첩보물로 탈바꿈했다. 애초 브래드 피드와 매튜 매커너히에게 타이틀 롤을 맡기려 했으나 최종적으로 확정된 건 액션 스타와는 거리가 먼 범생 타입의 맷 데이먼이었다. 이에 맞춰 예산도 그리 크지 않은 6천만 달러로 책정되었고, 독립영화의 신성이었던 더그 라이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제작비 대비 두 배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며 슬리피 히트작이 되었고, 다음 해 렌탈 시장에서도 선전하면서 빠르게 속편 < 본 슈프리머시 >가 기획되었다. 더그 라이먼이 제작으로 물러서며 감독에 오른 이는 방송에서 잔뼈가 굵은 폴 그린그래스였다. 그는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 블러디 선데이 >로 이제 막 자신의 스타일을 발현한 상태였다. 이미 스태디 캠의 활용과 각 샷 당 평균 4초가 넘어가지 않았던 짧고 빠른 감각적인 영상으로 호응을 얻었던 전작이었지만, 그린그래스 감독은 이에 한 발 더 나가 상업영화에선 잘 시도되지 않았던 핸드헬드 촬영에 각 샷 당 평균 1.9초라는 초필살 쪼개기 편집으로 속도감과 현장감을 극대화시켰다. <본 슈프리머시>는 전작보다 나은, 그리고 마지막 편을 잇는 중요한 가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영리한 속편의 길을 착실히 밟았다. 감독이 교체되면서 몇몇 스태프들의 변동도 눈에 띄는데, 전작과 흐름을 이어줄 핵심 멤버들은 고스란히 자리를 지켰다. 각본의 토니 길로이와 촬영의 올리버 리드, 그리고 시리즈 내내 음악을 담당한 존 파웰이 그들이다. 196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존 파웰은 트리니티 음악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록과 재즈, 클래식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는데, 졸업하며 영화음악가 패트릭 도일의 어시스턴트를 하며 비로소 영상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95년 광고와 TV물 작업을 하던 그는 한스 짐머의 눈에 띄게 되며 1997년 < 페이스 오프 >로 전격적으로 극영화에 데뷔하였다. 여기서 짐머보다도 더 짐머다운 액션 스코어를 펼쳐 보인 파웰은 이후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와 손잡고 드림웍스의 초기 애니메이션 음악들(< 개미 >, < 치킨 런 >, < 슈렉 > 등)을 담당하며 자신의 발판을 넓혔으며, 액션과 코미디, 애니메이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왕성한 활약을 하고 있다. 특히 드림웍스와 디즈니 외에 소니 계열의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와 유니버설 계열의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까지 애니메이션 빅4를 넘나들며 음악을 과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도의 도를 따지기 전에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이기도 하다. 2010년 < 드래곤 길들이기 >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첫 지명 되었고, 그 다음해 < 나잇&데이 >를 끝으로 실사를 떠나 지금은 애니메이션 음악에 올 인하고 있다. 존 파웰과 그의 작품들 액션영화 음악으로 입봉한 작곡가답게 존 파웰은 ‘본’ 시리즈에서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켜 발휘했다. 이미 <페이스 오프>와 < 칠 팩터 >, < 디-톡스 > 등을 통해 짐머 스타일의 액션 스코어를 재해석한 바 있기에 그는 새로 맡은 첩보 스릴러에서보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공고히 다지려 하는데, 두텁게 중첩되는 미니멀한 현악 오스티나토를 바탕삼아 감각적인 일렉트로니카의 색채를 입혀 묘한 트랜스 상태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듣기 좋은 테마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철저히 리듬과 루프에 의존하는 큐들은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의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엠비언트에 가까운 과도한 효과와 일렉트릭이 점철된 날카로운 사운드, 둔중한 베이스와 타악의 울림은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며 절반에 가까운 성공에 그치고 마는데, < 본 아이덴티티 >의 그런 실패를 발판 삼아 심기일전한 <본 슈프리머시>에선 전혀 다른 완성형의 사운드를 선사한다. 기억을 모두 잃은 채 기계처럼 반응하는 신체에 당황하던 첩보원 본에게 속편에선 보다 인간적인 고뇌와 속죄의 의미를 부여하듯, 전면에 나선 일렉트로니카 믹싱을 줄이고 현악 오스티나토가 주도권을 잡으며 보다 풍성하고 위용 있는 사운드로 인간적인 감정의 단서들을 제공한다. 인디언 콩가 드럼 같은 라이브 퍼커션을 선호하며 보다 울림은 깊어졌고 묵직함을 갖게 됐다. 여전히 희미한 주제부를 들려주는 바순은 기억을 잃은 제이슨 본의 심정을 대변하며, 상승과 하강을 빠르게 반복하는 스트링의 배치는 쳇바퀴 도는 자신의 상황과 정부 간의 작전을 상징하듯 의미심장하게 진행된다. <본 아이덴티티> 이후 < 이탈리안 잡 >과 < 페이첵 >을 거치며 보다 발전된 그의 스타일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본 슈프리머시>는 2000년대 액션 스코어의 진화이자 진보이다. Jason Bourne 솔로로 거의 쓰이지 않는 바순이 본의 메인 모티브를 살짝 연주하고는 바로 이국적인 퍼커션 리듬과 낭만적인 기타 사운드로 이어지는 ‘Goa’는 영화 중 가장 특별하고 도드라지는 큐로, 도입부의 평온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도는 인도에서의 일상을 스케치한다. 이후 영화상, 아니 시리즈 상 그런 감정과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인데, 그것이 뒤의 액션 큐들을 더욱 파워풀하고 질주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첩보물답게 감정을 배제한 채 현상만 묘사하듯 담아내는 긴장감 넘치는 큐들이 일품인데, 빠른 샷들의 점프와 더블을 받아주는 규칙적인 비트감과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현악 오스티나토는 가히 집중도를 높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중독적이고 몽롱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Gathering Data’, ‘To The Roof’나 ‘Alexander Platz / Abbotts Confesses’ 등이 대표적인 트랙으로 특히 ‘To The Roof’는 점층과 증폭이란 단어가 어떤 것인지 몸소 깨우치게 만든다.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단조로운 일렉 비트 위로 촘촘하게 현악으로 층층이 쌓아나가는 중첩되는 사운드의 무게감은 본의 신중하면서도 집요한 추적과 맞물리며 환상적인 스릴러 음악의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물론 액션 큐도 빠질 수 없다. 인도 추격전을 담은 ‘The Drop’과 베를린의 추격씬에 흐르던 ‘Berlin Foot Chase’,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모스크바 시퀀스의 ‘Moscow Wind Up’와 ‘Bim Bam Smash’는 아드레날린 과다분출에 한몫하는 스코어들이다. 특히 시퀀스 자체에 딱 맞춰 계산되고 재단된 ‘Moscow Wind Up’와 ‘Bim Bam Smash’의 일련의 흐름은 찬탄을 불러일으키는데, 하이라이트에 어울리는 최정점의 효과를 발휘한다. 제목이 주는 포스만큼이나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사운드의 ‘Bim Bam Smash’는 사정없이 몰아치고 부딪히고 박아대는 큐로 영상과 물아일체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스피드와 박력이 가히 액션 스코어의 미학으로 불릴만하다. 그간 거의 들리지 않았던 혼과 브라스까지 합세해 시종일관 쿵쾅대며 카 체이스 씬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리고 충돌!! 찾아오는 정적은 압도적인 사운드와 현실감 넘치는 영상, 딱 맞는 스코어의 절묘한 조합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장면이다. car chasing 시리즈의 마지막엔 언제나 이 노래가 나온다. 모비의 "Extreme Ways". 싸이렌처럼 울리는 도입부가 마치 제이슨 본의 무서운 위력을 알리는 경고음 같다. 허나 실상은 막다른 길에 치달은 자의 고독과 슬픔에 대한 경고음인지 모른다. 시리즈 내내 관통하는 모비의 음울하고 떨리는 음색이 남은 여운과 잔향을 짙게 만든다. 제이슨 본을 버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내의 절규와 질주를 담아낸 비가인 셈이다. Track List 1. Goa 2. The Drop 3. Funeral Pyre 4. Gathering Data 5. Nach Detschland 6. To The Roof 7. New Memories 8. Berlin Foot Chase 9. Alexander Platz / Abbotts Confesses 10. Moscow Wind Up 11. Bim Bam Smash 12. Atonement 13. "Extreme Ways"-Mo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