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울 슈팅 매치
- 감독
- 이글 펜넬
- 제작년도
- 1978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한국영화 황금기 20년의 역사를 함께 하다 셀은 2003년 6월25일 황효균·곽태용 대표가 설립한 특수분장 업체,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이다. 두 대표는 세포의 기본 단위이자 배터리의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한때 같은 특수분장 회사에 다녔던 동료인 두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 쓰리, 몬스터 > 중 단편 <컷>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이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김용화, 나홍진 등 한국영화의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이 신뢰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다. 분장 및 더미·애니매트로닉스·특수소품·세트팀 등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특수분장 업체 셀의 현재 인원은 총 20명으로 해마다 약 10여개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 지금까지 170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 친절한 금자씨 > < 도둑들 > < 부산행 > < 신과 함께 > < 기생충 > 등의 주요 미장센을 상상의 영역에서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낸 셀의 핵심 가치는 분장과 소품, 애니매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위한 테크니컬 아트의 전천후를 담당하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이다. 회화를 전공한 황효균 대표는 분장 및 더미, 공학을 전공한 곽태용 대표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전문 분야다. 두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더미 전문가인 이희은 이사, 실장 3인(박영무, 박신영, 이효응), 팀장 2인(이고운, 박소연) 외 12명의 팀원들이 3개 층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동에서 협업하고 있다. 황효균 대표는 24년, 곽태용 대표는 22년 경력의 베테랑이며 이희은 이사를 비롯한 실장급 직원들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업동 디자인실에서 작업중인 팀원들 셀 스튜디오는 설립 당시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현재 주 40시간 일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녁과 휴일을 보장해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병행하며 작업에 섬세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내 여타 특수분장 업체와 비교해 직원 수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행>과 <킹덤>을 거쳐 SF 장르에 도전하다 설립 이후 긴 시간 쉼 없이 성장해온 셀은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에서 총격 신 더미를, < 인류멸망보고서 >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로봇 캐릭터를 구현하면서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카이스트 로봇업체에서 억대로 책정한 로봇을 셀은 그보다 낮은 비용, 양질의 퀄리티로 결국 완성해냈다.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부산행>에서 보여준 최초의 K좀비는 < 반도 >를 거쳐 넷플릭스 < 킹덤 >에 이르면 백성 출신 좀비와 양반 출신 좀비,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왕 좀비 등으로 조선 좀비의 디테일을 새로이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밖에도 <기생충>의 수석과 털이 살아 있는 복숭아, < 옥자 >의 돼지 옥자, < 엑시트 >의 유해가스, < 암살 >에서 나이 든 염석진의 축 처진 뱃살 등이 모두 셀의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속에서 본격적인 업력을 쌓았고, 스릴러 강세 속에서 전에 없이 완성도 높은 액션 신의 원천으로 자리했던 셀은 이제 < 승리호 > < 고요의 바다 > < 더 문 > < 정이 > 등을 통해 SF 장르로 새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셀의 일원들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부하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2019년 이후 OTT 시리즈 작업 의뢰가 급증해 현재 < 커넥트 > <기생수>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OTT 시리즈 < 지옥 >에 쓰인 괴물의 미니어쳐 *CELL의 주요 작업 <쓰리, 몬스터> 중 <컷>의 손가락 <친절한 금자씨>(2005)의 반인반견 백선생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말 < 도둑들 >(2012)의 마카오 박(김윤석)이 변장한 얼굴 < 늑대소년 >(2012)의 늑대소년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천상의 피조물> 인명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이병헌(광해) 더미 < 미스터 고 >(2013)의 고릴라 링링 < 암살 >(2015)의 배우 이정재(염석진) 분장 < 부산행 >(2016)의 좀비 < 대호 >(2016)의 호랑이 < 로봇, 소리 >(2016)의 로봇 소리 <옥자>(2017)의 옥자 <기생충>(2019)의 수석과 복숭아 <반도>(2020)의 좀비 시리즈 < 스위트홈 >(2020) 속 괴물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의 우주복 <정이>, 시리즈 <커넥트>, <기생수> 등 회의동 2층의 회의실 벽면: 그간 CELL에서 작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동선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북부에 자리한 덕이로 172번길 4-72에 위치해 있다. 남측에는 고양종합운동장, 북측에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동측으로는 3호선 주엽역과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접한 건물로는 고양예술고등학교가 있다. 2003년 설립한 셀은 인근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하다 2020년 전용 건물 준공을 마쳤다. 1320m² 부지에 2개동으로 구성된 990m²의 건물이 현재의 셀 스튜디오다. 셀 스튜디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으로, 그 아래 마당에는 주위의 목가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피칠갑한 더미들이 햇볕 샤워 중이다. “셀 스튜디오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향후 1년 내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한국영화의 밑그림을 절로 그려보게 된다”(<씨네21>, 2016년, 셀 스튜디오 특집)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더미가 방문객을 반기는 셀의 마당을 지나면 각각 작업동, 회의동으로 불리는 2개 건물이 연결된 채 마주보고 있다. 셀의 직원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작업동이다. 1층은 크게 기계장비실, 용접실, 자재실로 구분된다. 밀링, 선반, 알곤 용접기, 드릴프레스, 절단기 등 중량감 있는 주요 장비들이 모인 공간이다.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로 곽태용 대표가 관리한다. 1.5층에는 기계작업실, 3D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물질 없이 깔끔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채색실은 환풍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동 1층 기계 및 애니매트릭스 작업실 전경 2층은 황효균 대표가 관장한다. 보다 정교한 작업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등으로 쪼개진 공간에는 온갖 팔레트와 실리콘, 붓, 알코올, 접착제, 리무버, 프라이머 등등이 조합된 특수분장 가방이 펼쳐져 있고 더미 채색, 더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심는 작업, 괴생명체 등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주요 작업물 및 조형에 사용하는 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2층 테라스를 따라 회의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셀이 수상한 주요 상패를 모아둔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등이 있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로, 3층은 자료실로 사용된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72번길 4-72 2. 설립일: 2003년 6월 25일 (2015년 7월 17일 법인 전환) 3. 대표자: 곽태용, 황호균 4. 규모: 부지 1320m² / 건물 990m² (2개동) 5. 조직 구성: 총직원 20명(공동대표 2인 포함) 6. 공간 구성 - 작업동 1층 - 기계장비실, 용정실, 자재실, 남자화장실 1.5층 - 기계작업실, 3D 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 2층 -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3층 -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여자화장실 - 회의동 1층 - 식당 및 휴게실 2층 -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남녀 화장실 3층 - 자료실 인터뷰: 황효균, 곽태용 대표(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CELL)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황효균(우측), 곽태용(좌측) 대표 김소미 _셀의 설립 배경을 들려주세요. 황효균 _2003년도 새해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한 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면서, 밥벌이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셀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디님이나 제작실장님이나 조감독님, 이런 분들이 신작 들어갈 때 새로 생겼으니까 일을 한번 맡겨주신 거죠. 김소미 _두 분이 일하신지 총 몇 년이 되신 거지요? 곽태용 _저는 22년차고. 황효균 _저는 24년차이지요. 김소미 _두 분의 첫 인연은 언제 맺어졌나요? 곽태용 _영화 쪽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업체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좀 부족하지만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의기투합했던 게 시작이었죠. 초반에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둘이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재료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황효균 _저희 사이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인 것 같네요. (웃음) 옛날 20년 전 골방에서 시작했어요. 버는 족족 투자해서, 딱 밥 먹을 정도만 남겨놓고 공간을 꾸려갔죠. 저희는 성격도 서로 참 달라요. 저는 좋게 말하면 꼼꼼한 편이고 곽 대표는 통이 커요. 분야도 다른데, 제가 미술과 분장, 더미 쪽이고 곽 대표는 기계 쪽, 로봇, 하드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김소미 _공식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태용 _개별적인 의뢰를 받고 소품이나 특수 제작물을 제작한 경우들이 앞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건 박찬욱 감독님의 <쓰리, 몬스터>죠. 그전에 배고픈 시기도 겪은 터라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엔 ‘어, 저게 뭐지’ 싶은 새로운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이 박찬욱 감독님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다음 작품도 박찬욱 감독님과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함으로써 김지운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의 의뢰를 받게 되었죠. 초창기에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도 참 절실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효균 _<쓰리, 몬스터>에 저희 역량을 보여줄 요소가 다양하게 많았어요. 손가락을 잘라서 믹서에 갈아버리는 설정이라든가. (웃음)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몸은 개인데 얼굴은 최민식 배우인 반인반수 소품도 있었죠. 박찬욱 감독님 작품엔 항상 저희에게 큰 숙제 같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에 놓인 인체 일부 모형들 김소미 _셀이라는 이름의 작명 배경도 궁금합니다. 황효균 _멋있는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죠. (웃음) 로봇, 더미, 특수분장 쪽으로 의미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셀이라는 단어가 외자라는 게 특히 좋았어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곽태용 _또 배터리의 가장 기본 단위 에너지인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황효균 _처음에는 회사 설립 후 전화 받을 때 ‘셀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요술공주 샐리’ 아니냐는 말도 듣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름 하나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김소미 _두 분이 성격과 전문 분야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계시네요. 곽태용 _이 일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간단한 특수분장에서 시작해, 분장으로 안 되는 건 더미를 만들고, 또 더미를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더 활용하고 싶으면 거기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하고. 결국 이게 다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퀄리티 높은 작업물이 나옵니다. 각각의 세분화된 영역을 한데 모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소미 _테크니컬 아트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비전은 설립 초기에도 명확히 갖고 있던 그림인가요? 황효균 _그렇죠. 예를 들면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병헌 배우의 더미가 나오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더미가 아니고, 독에 중독된 채로 숨도 쉬고 고통스러울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거나 건초를 태워서 코에 갖다 대면 연기가 코로 빨려 들어가는 식의 설정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럼 저희는 2층에서는 더미 외형을 만들고 1층에서는 안의 기계 장치를 동시에 만들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지금은 특수분장팀이 많지만 저희는 외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김소미 _황효균 대표는 분장과 더미 전문, 곽태용 대표는 기계 및 애니매트로닉스 전문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하기까지 두 분 각자의 전공과 최초의 관심 분야느 무엇이었나요. 황효균 _저는 미술,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닐 뿐 결국 입체 위에 그리는 작업으로서 같다고 느낍니다. 결국 좀비 분장도 배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더미나 괴물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모델링, 채색을 주로 해야 하니까 결국 영화 특수분장 일은 제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곽태용 _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거나 분해해서 작동 원리를 연구해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모형 제작을 취미로 계속하기도 했고요. 그걸 계기로 미니어처 작업을 통해 영화 쪽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영화 애니매트로닉스 분야는 정확한 전공이나 커리큘럼이 있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결국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계의 원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걸 응용하는 거거든요. 해외 자료들도 많이 보고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사무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들을 연출하길 원하는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더 커요.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작업동 2층 미술작업실 전경 김소미 _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셀의 매출 및 작업 규모 혹은 기술 수준에 있어서 확실한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아볼 작품이 있을까요? 곽태용 _특수분장이라는 게 맨 처음에는 배우의 얼굴에 실제로 상처를 낼 수 없으니까 그것을 분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더 심한 상처가 필요하면 더미로 커버를 하고, 나중에는 그 더미가 기계 장치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극적인 효과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간 거잖아요. 저희도 초반부터 그런 모든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처음엔 상처 분장, 인조 피부 이런 작업 위주로 했었죠. 그러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죠. 스릴러영화를 하게 되면 더미가 많이 나오니까 한동안 그런 작업 위주로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인생>의 경우 총격 신에서 더미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총에 맞은 손가락이 터져 나간다든가 하는 효과들도 저희로선 의욕을 부추기는 데가 있었죠. 또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물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덩달아 관련 작업도 늘어났죠. 또 재밌었던 작품 중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데, 움직이는 말을 제작해서 슈팅카에 실었어요. 실제 달리는 말을 대체해 촬영을 했어요. 저희 작업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활용이 되었죠. 황효균 _운이 좋았죠. 그런 작업을 처음 맡을 수 있었다는 게. 셀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전에는 움직이는 말을 만들어서 촬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배우들은 항상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액션을 소화하면서 말을 탄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저희의 움직이는 말 소품을 써보고 괜찮아서 이후에 계속 쓰고 싶다고 하면 보람이 있죠. 또 로봇을 직접 제작해 촬영한 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 <로봇, 소리>도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요. 게다가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 외계+인 > 1부 같은 작품을 보면 마블의 < 어벤져스 > 시리즈 못지않게 현실감 있게 나오니까 이제 한계점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위해 우주복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곽태용 _최근엔 연상호 감독의 <정이>를 작업했고요. 영화 <대홍수>도 SF고 드라마 쪽에서도 우주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왔던 움직이는 말 기계 모형 김소미 _<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을 위해 제작한 로봇 소품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직접 로봇을 제작한 경우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효균 _맞아요. 저 작품을 찍고 7년인가 있다가 개봉을 했거든요. 처음 촬영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게 될까’ 하던 때였거든요. 로봇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움직임들을 다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사가 카이스트의 로봇 공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했었는데 그들은 정석대로 접근한 거죠. 이를테면 영화 세트장 바닥은 미끄러워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기간은 1~2년, 비용은 10억~20억원이 든다고 했대요.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사실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카메라가 발 부분을 잡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제로 걷지 않아도 그럴듯한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어찌 보면 편법에 강한 겁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잔머리가 강한 거고, 응용력이 중요하죠. 김소미 _지금의 셀 스튜디오는 언제 완공이 된 건가요. 황효균 _여기 이사 온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네요. 곽태용 _원래 있던 곳도 여기 근처죠. 황효균 _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약 1:3 정도였습니다. 옛날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곽태용 _예전에는 큰 작업물을 만들면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안에 있던 걸 다 빼고 다 치우고 하느라 고생했죠. 아예 외부 창고를 단기 임대해서 그쪽으로 장비를 다 옮기기도 했고요. 황효균 _지금 부지는 총 400평이고요. 3층 건물은 약 80평 정도 됩니다.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선반의 인체 모형, 인체 일부 김소미 _총 3층으로 이루어진 셀 스튜디오의 주요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곽태용 _일단 1층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실 쪽은 무거운 기계와 재료들이 많죠. 밀링 머신. CNC, 드릴, 프레스 등등. 가공 자재들도 기본적으로 쇠파이프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게 좋겠지요. 그 위에 1.5층이 있는데 프린트, 레이저, 도면 기반의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두었습니다. 1층 기계실은 아무래도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소음이 심해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팅 작업실을 위쪽으로 분리한 거죠. 황효균 _1층은 을지로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웃음) 공구들, 기계 장비들. 안 다루는 부품이 없고 전기, 배선, 라이팅까지 전부 다 하니까요. 2층으로 올라가면 페인트류, 실리콘, 물감, 분장 재료들이 중심이 되지요. 곽태용 _더미의 머리카락, 눈썹을 섬세하게 심고 채색하는 공간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 도색 작업 공간엔 냄새가 많이 나고 휘발성 페인트가 많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고요. 황효균 _이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 사무소와 논의해서 여러모로 저희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지은 거지요. 냄새가 나는 방은 환기가 중요하니까 맨 뒤쪽, 오른쪽 구석에 가 있게끔 하고 분진이 많이 나는 폴리실은 따로 두고, 청결 유지가 필요한 채색실은 그 반대편에 거리를 두고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죠. 김소미 _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 있을까요. 곽태용 _저는 도면실이요. 도면실 겸 취미 활동방이 되었는데요. 개방해놓고 쓰고 있어요. 컴퓨터 옆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거든요. 퇴근하면 직원들이 거기서 드럼 치고 있어요. 황효균 _곽 대표님은 보통 도면실이 있는 1층과 1.5층에 많이 머무르죠. 저는 아무래도 2층이겠죠.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에 충실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도면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곽태용 대표 김소미 _셀의 현재 직원수는 총 몇 명인가요.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들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저희가 지금 다 해서 20명인데 보통의 특수분장팀들과 비교하면 3~4배 정도의 규모라고 해요. 많이 듣는 얘기가 ‘셀은 맡은 작품 수가 많으니 야간작업을 자주 하는 거 아니냐’인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희는 오후 5시 반 되면 다 퇴근해요. 곽태용 _한 8년, 9년 전부터 주 40시간 근무합니다. 황효균 _창립 초기부터 주5일제로 일했고요. 곽태용 _가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때문에 마감이 늦어지면 밤 9시,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1년에 5번도 안 돼요. 촬영이 걸리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고, 빨간 날은 그냥 쉬는 걸로 해요.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가 봐요. 이렇게 일하려면 적어도 3~4명은 더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일용직이랑 계약직을 쓰지 않고 정직원만 고용합니다. 일단 고용안정이 돼야지 자기 실력이 발휘가 되니까요. 이 분야는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배워야지 실력 발휘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러려면 꾸준히 다니면서 할 수가 있어야 하고요. 김소미 _셀 입사를 꿈꾸는 구직자들이 많겠습니다. 지금 젊은 직원들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황효균 _애니매트로닉스 쪽은 남자가 많고요. 미술 파트 쪽은 여자가 많고. 곽태용 _전체로 따지면 여성 직원이 더 많습니다. 입사 희망자들도 여성 비율이 높고요. 황효균 _분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곽태용 _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골조도 넣어야 되고 또 되게 무거운 몰드도 돌려서 스킨을 뽑아내야 되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중노동에 가깝기도 하지요. 반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이 일을 희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성비로만 놓고 보면 포트폴리오 지원자 중 여성들이 월등하게 많습니다. 인체 모형을 작업중인 직원 김소미 _최근의 테크니컬 아트를 위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제작 여건 면엥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옛날에 직원이 3D 프린터란 게 나왔으니 하나 사달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스프라이트라고 하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는 수준이어서 ‘아, 이게 될까’ 싶었죠. 초창기에 300만원 주고 하나 사보자고 하는 걸 일단 시험 삼아 들여서 저희들끼리 열쇠고리 같은 것도 뽑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실험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음 버전이 나와요. 지금은 3D 포인트 프린트를 스튜디오에 5~6대 정도 놓고 쓰거든요. 만약 처음 나왔을 때 실험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못 쓰고 있을 거예요.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고 하면 우선 투자를 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레이저 각인기를 사달라고 해요. 우주복을 예로 들면 그 위에 NASA라고 새길 수 있는 거죠. 원래는 업체에 외주로 맡겨야 했던 작업을 그 기계를 사면 직접 새길 수 있대요. 2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또 직접 사서 써 봐야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냥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곽태용 _저희는 어떤 기계를 원래 목적 그대로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변형시켜서, 그러니까 작업의 목적에 맞추어 변형해서 쓰는 거죠. 시나리오에 담긴 천차만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선 편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지 만들 수 있고요. 박람회가 열리면 가서 구경하고 응용할 거리가 있으면 구매해서 테스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박물관에 주고요. (웃음) 작업동 1.5층 3D 프린팅 및 스캐닝실 전경 김소미 _셀이 새 자리로 이사한 이후, 코로나19가 영화계를 강타한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곽태용 _한국은 팬데믹 기간에도 록다운 없이 영화 촬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에는 계속 투자가 이뤄졌고, 그런 수요를 저희도 느꼈죠. 약간 반전이었죠. 황효균 _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작년, 재작년 엄청 바빴어요. 시리즈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지금 다시 극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영화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희 욕심만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업체들도 많이 생겨났으니 현업에서 계속 뛰긴 하지만 저희 둘만큼은 전보다는 일에 덜 쫓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몰릴 때 몰리고 또 없을 때 없고 하니까, 뭐 잘 조율해가면서 해야죠. 김소미 _아직까지도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싶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으신가요? 곽태용 _ 이 일은 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는 일인 거잖아요. 연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갖고 오면 최대한 그걸 구현해보고 싶은 거죠. 어렸을 때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있어요. 예를 들면 <에이리언>이요. 과거에는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리우드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 나라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효균 _한국 콘텐츠의 질이 엄청 높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특수분장을 꿈꾸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요. 제보받은 게 있는데 중국, 싱가포르에서 한국영화 보면서 저희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한다고 해요. <옥자>에 쓰인 기술은 할리우드에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해외에 셀이 소개될 때 <부산행>을 했던 회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요. 그런 게 참 뿌듯합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25일
2022년 현재 시점에서 < 82년생 김지영 >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의 소설로 2016년 민음사에서 처음 출간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중과 지식인 담론을 가리지 않고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국내에선 2년 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으며 10개 언어권에 번역되어 3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8년 출간 이후 2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201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 수 367만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더 나아가 <82년생 김지영>은 수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2015년 이후 이뤄진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매체 환경변화의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나 영화 어느 하나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텍스트 분석하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거부하며, 어떻게 하나의 작품 혹은 텍스트가 분리되지 않고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매체(개)적 역할을 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이 글 역시 어떤 텍스트를 하나의 현상, 심지어는 매체(개)로 보고 비평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 중에 나왔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와 소설 모두 진부함과 새로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양식을 취한다. 우선 소설의 작법을 보자. <82년생 김지영>은 디지털 시대의 대중적 페미니즘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부추긴다. 이 소설은 관심(attention) 받은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해 한국사회의 평균값 혹은 대표값을 재현하려 한다. 중산층 가족에서 태어나 대학교육을 받고 사무직으로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하고 육아를 하며 전업주부가 된 30대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소설이 수집한 주목의 정보는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뉴스 기사나 그 기사들에서 인용된 통계자료다. 소설은 종종 유엔과 한국정부의 통계 및 정책 보고서, 법과 제도의 변화를 각주로 달아 숫자와 공문서에 근거해 객관성과 대표성을 획득하려 한다. 여아낙태가 급증하던 1980년대를 대표하는 ‘82년생’과 그 당시 가장 흔한 여아의 이름인 ‘김지영’, 스토킹과 성희롱, 집안의 남아선호, 직장 성차별과 경력단절, 독박육아와 여성혐오 등의 뉴스가 주인공의 연대기 안으로 들어와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그러한 정보를 모아 만들어진 주인공 김지영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는 익숙함으로 버무려진 개성 없는 캐릭터이다. 김지영은 기존의 익숙한 세계와 대립하며 자기 고유의 세계를 고집스럽게 구축해 나가려는 근대문학의 주인공과 완전히 정반대에 있다. 어떤 면에선 김지영은 마치 1인칭 슈팅게임의 블랭크 캐릭터처럼 텅 빈 인물이다. 일본과 미국 번역본 표지에 그려진 이목구비가 비어있는 여자는 내용과 형식 모두를 지칭하며, 빙의는 그러한 양식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 된다. 또한 한국사회의 오래된 그리고 겉으로는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한 성차별, 즉 여성들의 ‘몫 없음’을 은유하기도 한다. 김지영이라는 텅 빈 기호는 독자들을 기다리고 초대하며 누구든 그 자리에 들어가 볼 수 있게 한다.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사가 진행되며 인물의 심리에 점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김지영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몰입한다. 주목 받은 정보를 모은 인물의 구성과 거리감 없는 몰입은 새로운 수용양식이다. 이것은 회귀, 빙의(특정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빙의), 환생이 주요 장르가 된 웹소설의 경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독자들은 회귀, 빙의, 환생의 설정 속에서 정보를 독점할 수 있기에, 비판적이고 메타적인 동시에 ‘안전’하게 상황을 통제한다. 이것이 <82년생 김지영>의 진부한 새로움이다. 정보수집을 통한 평균값을 말하기에 집단을 대표하고 비어있기에 열려있는 구조는 가능한 다수가 이 텍스트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한편 김지영의 육아우울증 증상인 ‘빙의’는 페미니스트 고전단편 샬롯 퍼킨스 길먼의 <노란벽지>처럼 가부장제 억압으로 정신적인 병증을 갖게 되는 서구 근대여성문학의 전통에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증, 히스테리, 광기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기 위해 창조한 병인 한편, 여성들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증은 남성중심적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억압의 고통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지영은 그녀의 문학적 선조와 달리 정신병을 자신의 내면상태를 발화하는 수단이나 은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웹소설의 빙의처럼 그것은 안전하게 고통과 피해를 이야기하기 위한 설정이며, 외할머니, 친정어머니, 선배 언니로 빙의된 김지영은 매우 이성적이고 조리 있게 의견을 피력한다. 흐트러짐 없는 빙의된 몸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 억압의 역사적 정보가 축적된 아카이브 혹은 플랫폼’이 된다. 빙의의 사용은 세대와 개별적 차이를 넘어 여성이라는 자리의 동질성을 만들어 내고 공감을 얻어 낸다. 이처럼 <82년생 김지영>은 주목을 받은 정보로 쓰인 몫과 자리의 이야기이고 열려 있는 이야기들은 다시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논쟁거리가 되고 소설은 다시 텍스트를 넘어 참여의 플랫폼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판매부수와 롯데컬처웍스의 투자로 정유미와 공유 같은 스타가 주인공인 상업영화로의 제작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목이 주목을 부르고 매체 간의 문화산업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책이 주목 정보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넘나들며 매개, 재매개, 하이퍼매개를 순환하는 매개물이 된다. <82년생 김지영>은 자기 집단 내에서는 동질성과 공감을 강화하지만 점화된 논쟁의 선을 따라 여러 매체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 내의 인식적 기준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수잔 리 스타가 그리스머와 함께 개념화한 경계물(boundary object)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계물(Susan Leigh Star & James Griesemer, 1989)은 서로 다른 과학자 집단들이 협업을 할 때 그 의미를 공유하는 대상(object)이다. 이 대상은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각기 다른 집단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이용된다. 경계물이 되기 위해서는 해석적 유연성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실험 속에서 정보의 수집과 검증이 가능한 공동의 인프라를 통해 합의 없이도 협력이 가능해야 한다. 경계물은 각자의 집단의 특정성에 맞게 적응하도록 유연하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집단들을 거쳐도 경계물의 정체성은 유지될 정도로 단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물을 공유하는 각 집단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앞뒤로 오고 가며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은 상이한 두 집단을 서로 맞닿게 하는(interface) 경계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계물로서의 <82년생 김지영>은 적대와 혐오로 가득 찬 전선이 그어지며 오염된 과잉정보로 사실검증이 어려운 온라인의 특성 상 협의가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개념이 집단에 따라 어떻게 완전히 달라지는지 드러낸다. 페미니스트를 남혐주의자로 왜곡되게 주장하는 온라인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82년생 김지영>의 독서여부로 페미니스트 감별을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성) 유명인이나 예술창작자를 검색해 그들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경력에 피해가 가도록 압력을 넣기도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과 다수의 여성들에게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온건하게 쓰인 성차별 보고서에 가깝지만, 안티페미니스트들에게는 왜곡된 가짜 뉴스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고통을 전시하며 남성을 ‘차별’하는 과격한 페미니즘 사상을 전파하는 대표적 선전물이다. 동일한 책은 상이한 집단들에 의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혹은 실천을 다르게 이해하게 하는 매개물이 되는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본래의 의미나 역사와는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처음 경계물을 개념화했던 당시와 달리 스타는 2010년에 쓴 논문 「이것은 경계물이 아니다: 개념의 기원에 대한 성찰」에서 경계물을 공유하는 두 집단 사이에 협의가 힘들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발생하는 간극 발생의 원인과 공유되는 표준 및 인프라, 즉 구조와 네트워크를 보다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경계물을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로 확장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육아로 경력단절 된 여성 연극배우의 오디션 과정을 다룬 단편 < 자유연기 >(2018)로 주목 받은 신인 김도영 감독이 연출하고 정유미와 공유가 주연한 <82년생 김지영>은 내용적으로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수용과 형식의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김지영이 상담 받는 정신과 의사의 보고서 형식으로 쓰인 소설과 달리 영화는 의사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그의 역할을 축소시킨다. 소설에서 남자 정신과 의사는 김지영에 대한 묘사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에필로그에서 한국사회의 성차별에 분노하던 언사와는 달리 자기 병원의 임신한 간호사를 차별하는 위선을 드러내며 전체 형식의 틀을 잡는 역할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여자 의사로 성별이 바뀌며 김지영과 남편 정대현의 고통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역할로 축소된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가 소설과 매체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텍스트로만 드러나기에 빈 기호로 작동할 수 있었던 소설의 인물들과 달리, 영화는 구체적인 배우의 얼굴이 전면적으로 스펙터클화 된다. 특히 정유미와 공유라는 스타들의 얼굴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영을 연기한 배우 정유미의 우울한 얼굴의 잦은 클로즈업은 내면성과 주관성을 표현하는 창구가 된다. 또한 소설에서 정신과 의사나 남편 같은 제 3자에 의해 관찰되고 기술되던 빙의나 과거 성차별/성폭력의 사건들은 영화에서 종종 지영의 주관적 시점으로 처리된다. 과거 성차별/성폭력의 사건들은 영화에서 지영의 플래시백으로 처리되고 빙의의 순간은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와 함께 주관적인 트라우마처럼 느닷없이 다가온다. 시청각적 구체화와 주관성의 물질화는 추상적인 구조보다 개체를 앞서 내세우며 이때 묘사된 개인의 경험은 더 쉽게 수용된다. 상업영화라는 제작조건과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징들이 소설이 의도했던 ‘진부한 새로움’ 즉 그 자리에의 몰입효과를 약화시키고 전통적인 심리적 동일시를 강화시켜 더 대중적으로 수용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덜 논쟁적일 수 있다. 심지어 영화는 지영이 프리랜서 작가로 성공해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가족과 개인의 갈등을 잠재울 것이라는 꽉 닫힌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이러한 결말은 조남주 작가와 김도영 감독의 실제 상황을 참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잉여로 남아있는 불안한 순간들이 있다. 그 하나는 가족들이 모인 다인 쇼트를 촬영할 때 제 자리를 못 잡고 주춤주춤 구석으로 물러나 앉아있는 카메라이다. 구석에 숨어있는 것 같은 카메라는 접근 불가능하고 말하지 못한 것이 남아있는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순간은 엔딩이다. 갈등이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엔딩에서 지영은 오프닝처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노을 지는 시간에 베란다에 나와 있다. 노을빛을 받고 있는 지영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카메라와 지나치게 인공적인 노을빛은 마치 < 트루먼 쇼 >의 세트장 같은 느낌을 준다. 지영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고 영화의 해피엔딩은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 소설은 재현/대표(representation)를 함에 있어 개성, 독자성, 구체성을 제거해 대푯값을 만들어 그 자리에의 몰입을 시도한다. 이 방식은 주인공이 대표하는 집단 내부의 동질성과 각 집단들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도록 부추기고 논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설명되지 않거나 잉여로 남아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가상과 현실, 매체들, 장르들의 경계를 넘어서고 그 범주들을 무화하는 오늘날의 문화수용자들의 요구에 들어맞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경계들을 넘나들며 비판과 성찰을 야기하기 위해서는 정보에 대한 선명성과 양식적 안전함이 필요하다. 영화는 오히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심리적 동일시를 추구한다. 소설이 ‘진부한 새로움’을 추구한다면, 영화는 ‘진부함의 반복’이다. 멜로드라마라는 고전 장르의 충실한 반복은 여전히 말해지지 못한 것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잉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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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방향을 돌려 존 포드의 무성영화 시대로 돌아가 보자. 존 포드는 거의 한 세기 전인 1917년, <토네이도 Tornado>(단편, 프린트 소실)로 데뷔한 이래 첫 토키 영화 <블랙 왓치 Black Watch>(1929) 전까지 모두 67편의 장 단편 무성영화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스트레이트 슈팅 Straight Shooting>(1917, 첫 장편)과 < 철마 The Iron Horse >(1924)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 두 편을 포함해 < 우리는 친구 Just Pals >(1920), <샴록 핸디캡 The Shamrock Handicap>(1926), < 3인의 악인 3 Bad Men >(1926), < 사형집행인의 집 Hangman’s House >(1928) 등에서 포드는 뛰어난 장인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필름들에 한정할 때, 무성영화 시대의 존 포드를 당대 최고의 감독 대열에 올리기는 망설여진다.(물론 <켄터키 프라이드 Kentucky Pride>(1925)를 사랑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나 <형사 라일리 Riley the Cop>(1928)를 절찬하는 태그 갤러거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1894년에는 존 포드를 비롯해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유난히 많이 태어났는데, 그중에서도 킹 비더, 조셉 폰 스턴버그, 프랭크 보재지 등은 무성영화 시대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영화사가 추앙하는 기념비적 작품들을 내놓았다. 이들의 걸작 무성영화들에 비해 존 포드의 현존하는 무성영화들은 얼마간 성기고 거칠어 보인다. 무언가 허술해 보이던 존 포드의 무성영화들이 후에 존 포드 월드라고 불리어지게 될 거대한 세계를 향한 치열한 시행착오의 과정이었음을 우리가 알게 되는 건 나중의 일이다. 여기서 다룰 영화는 존 포드가 1928년에 내놓은 < 네 아들 Four Sons >이다. 이 영화는 많은 미국인들을 울린 성공적이고도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이고 당대엔 절찬을 받았지만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앤드루 새리스나 태그 갤러거, 린지 앤더슨과 같은 열렬한 존 포드 지지자들도 훌륭한 작품으로 꼽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며 포드의 영화 이력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 네 아들 >이 탄생한 1928년은 기묘한 해다. 영화사상 첫 토키영화 < 재즈싱어 >가 등장한 것은 1927년이지만 이 해에는 물론이고 1928년에도 대부분의 필름들은 여전히 음성을 담지 않았으며, 토키 영화의 본격적 확산은 1929년에 가서야 이뤄진다. 대신, 마치 무성영화의 마지막 연도를 축복이라도 하려는 듯, 경이로운 무성영화들이 1928년에 쏟아져 나온다. 버스터 키튼은 < 스팀 보트 빌 주니어 >와 함께 그의 마지막 걸작 < 카메라맨 >을, 찰리 채플린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 서커스 >를, 킹 비더는 그들 사이의 우열을 논하기 힘든 위대한 무성영화 < 군중 >과 <쇼 피플>과 <팻시>를, 스웨덴에서 건너온 빅터 쇠스트롬은 당대의 여신 릴리언 기쉬와 함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 바람 >을, 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조셉 폰 스턴버그는 에밀 야닝스를 기용한 < 마지막 명령 >과 조지 밴크로프트를 기용한 < 뉴욕의 항구 >를, 독일 표현주의를 이끈 또 다른 맹장이지만 무르나우에 가려진 폴 레니는 자신의 할리우드 대표작 <웃는 남자>를 내놓았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 프리츠 랑의 < 스파이 >, 마르셀 레르비에의 <돈>, 장 엡스탱의 < 어셔가의 몰락 >이 태어난 것도 이 해였다. 물론 이 목록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1928년의 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거의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평자라도 존 포드의 < 네 아들 >을 1928년의 최고의 10편에 포함시킬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 이 해의 영화들에 관해서라면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물론이고, 차라리 감독 경력 3년 차에 불과했던 하워드 혹스의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항구마다 소녀가 있다>를 더 앞세우게 될지도 모른다. 당대의 쟁쟁한 작품들에 비하면 < 네 아들 >은 왜소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포드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이야기는 단순하다. 독일의 작지만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머니(베르늘 여사)는 네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둘째 조셉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전쟁이 터지고 두 아들(프란츠, 요한)은 징집돼 전사한다. 어머니는 곤궁과 비탄의 시간을 보낸다. 이어 막내 안드레아스도 징집되며 미국이 독일의 적국으로 참전하자 조셉도 미군으로 징집된다. 전장에서 조셉은 안드레아스의 죽음을 목격한다. 전쟁이 끝난 뒤, 조셉은 어머니를 미국으로 초청하고 모자는 재회한다. 이야기만으로는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와 함께 존 포드의 대표적인 최루성 가족 멜로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존 포드의 가장 이례적인 작품에 속한다. 그의 영화에 꽤 익숙한 사람이라도 < 네 아들 >에서 포드의 터치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즉각 떠오르는 이름은 F. W. 무르나우다. 카메라의 움직임, 인위적인 조명, 심지어 연기 스타일에까지 무르나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영화를 보고 알기는 힘들지만 촬영 장소가 < 선라이즈 >의 세트이기도 했다.) 한 감독의 영향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존 포드 영화는 <네 아들> 외에 찾기 힘들다. 이 점이 열렬한 존 포드 지지자들조차 이 영화를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무르나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27년은 < 재즈싱어 >의 해이지만, 동시에 < 선라이즈 >의 해이기도 했다. 포드를 고용하고 있던 윌리엄 폭스는 무르나우의 < 마지막 웃음 >(1924)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 독일 감독을 미국으로 데리고 왔고, 무르나우는 1927년 그의 첫 할리우드 영화 <선라이즈>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할리우드 감독들에게는 중대한 체험이었던 것 같다. 앤드루 새리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무르나우와 그의 UFA 동료들은 영화적 표현에 대한 할리우드의 사고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고 적었다. (무르나우의 UFA 동료들이란 무르나우와 같은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와 유니버설에서 <고양이와 카나리아> 등 세 편의 호러를 만들고 죽은 폴 레니, < 메트로폴리스 >와 <마지막 웃음>으로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떠올랐고 1929년부터 미국에서 촬영과 연출을 겸한 칼 프로인트 등을 말한다. 프리츠 랑과 오토 프레민저가 할리우드에 도착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이었다.) 존 포드도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 선라이즈 >를 보고 난 뒤 포드는 “지금까지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아마 앞으로 10년 안에 이보다 더 훌륭한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포드가 이 정도의 찬사를 바친 대상은 D. W. 그리피스, 그리고 역시 1894년생인 장 르누아르 정도다.) 그런데 <선라이즈>의 어떤 점이 존 포드를 사로잡았을까. 더 중요하게는, 무르나우는 존 포드 월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물론 확답은 불가능하다. 다만 < 네 아들 >에서 약간의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네 아들> #2 <마지막 웃음> < 네 아들 >이 무르나우의 노골적인 모방처럼 보이는 점을 먼저 살펴보자. 우선 첫 장면(#1). 우체부 노인이 마을을 가로질러 베르늘 여사 집으로 향한다. 이 노인의 수염과 인상, 체구와 제복, 그리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 선라이즈 >가 아니라 < 마지막 웃음 >의 첫 장면(#2)에 등장하는 호텔 도어맨(에밀 야닝스)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3 #4 #5 전사 소식을 전하러 가는 우체부의 쇼트에서 그림자의 과장된 사용(#3), 경계선을 가시화하는 인위적 조명 기법(#4), 어머니가 떠난 네 아들의 환영을 보는 장면(#5) 등은 특정한 유사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잘 알려진 무르나우와 독일 표현주의 본산인 UFA 스튜디오의 단골 기법들이다. #6 #7 #8 #9 #10 #11 무엇보다 < 네 아들 >의 특별한 점은 카메라워크다. 존 포드는 평균 4번에 1번 정도는 이동 카메라를 썼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이 느껴지도록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네 아들>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는 카메라 워크가 있다. 우체부 노인이 마을을 가로지를 때 핸드 헬드 카메라(#6, 7, 8), 그리고 기차가 도착할 때 아마도 기차의 움직임과 함께 이동하는 카메라(#9, 10, 11)는 자기 과시적으로 보일 만큼 부드럽게 공간을 유영한다. #12 #13 #14 <마지막 웃음> 아무래도 존 포드는 < 선라이즈 >가 아니라 < 마지막 웃음 >을 교본으로 삼은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에 영향받은 사람이 존 포드만은 아니다. 촬영기술과 그에 연관된 영상기법에 관한 한 <마지막 웃음>은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페이드, 디졸브, 이중인화, 몽타주, 거울의 왜상 등 그때까지 개발되어온 기법들이 총동원되었고, 여기에다 촬영감독 칼 프로인트는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시점 쇼트를 선보였다. 수평 트래킹은 돌리를 사용했지만, 공간의 안쪽으로 이동하는 수직 트래킹을 위해 프로인트는 무거운 카메라를 가슴에 묶고 움직이며 공간의 질감 자체를 변화시켰다.(#12, 13, 14) <마지막 웃음>은 최초로 본격적인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한 영화로 기록된다. 포드는 이전까지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지 않았으나 < 마지막 웃음 >에서 사용된 카메라 워크의 거의 모든 것을 < 네 아들 >에서 시도한다. 하지만 무르나우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이 시기의 다른 영화들 < 사형집행인의 집 > <블랙 왓치> 등을 제외하면 이후의 포드 영화에는 <네 아들>의 무르나우적인 카메라워크가 더 이상 눈에 띄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 아들>은 그저 일회적인 모방의 실험에 불과한 것일까. #15 #16 #17 #18 #19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네 아들 >과 포드의 이전 영화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모방될 수 있고 유행될 수 있는 이런저런 표현주의적인 기법이라기보다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연재의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포드의 프레임에서 종종 동굴을 보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런 느낌을 주는 첫 영화가 바로 <네 아들>이다. 이 영화는 공간의 깊이를 극단적으로 과장한다. 인물들도 가로축이 아니라 공간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의 혹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의 수직축을 따라 혹은 사선 방향으로 이동한다.(#15, 16, 17, 18, 19) 포드의 다른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무르나우의 영화에서도 이처럼 공간의 깊이에 거의 강박적으로 몰두한 장면은 거의 없다. 칼 프로인트에게 배웠고 후에 오슨 웰스와 윌리엄 와일러와 함께 과시적인 딥 포커스 화면을 만들어낸 그렉 톨랜드의 작품에서도 이 정도의 심도화면을 찾긴 힘들다. 물론 심도 화면은 이미 뤼미에르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토마스 인스와 그리피스를 거치며 풍성해졌다. 포드의 이전 무성영화들에도 종종 아름다운 심도화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경 중경 후경을 모두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도 화면은 < 네 아들 >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프로인트의 수직 이동 카메라가 감각케 하는 공간의 아득한 깊이로부터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물론 공간의 깊이 자체가 특별한 미학적 성취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포드는 공간의 깊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풍경이라는 문제를 만나게 된 것 같다. 여기서 풍경은 자연 풍경이 아니라 사건에 연루되지 않지만 프레임을 구성하는 물질적 환경을 뜻한다. 말하자면 포드는 공간의 깊이를 추구하다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미지들의 특별한 표정과 강인한 침묵을 만나면서, 사건에 연루된 환경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사건을 초과하는 환경으로서의 풍경이라는 차원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예컨대 < 철마 >(1924)의 카메라는 인물과 행위에 집중하며 풍경은 사건의 장소라는 객관적인 지표로서만 등장한다. 하지만 < 네 아들 >의 카메라는 공간의 깊이에 몰두하면서 인물과 행위와 사건을 초월하는 풍경의 흔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20 <마지막 웃음> 이것은 무르나우나 UFA의 작업을 통해 직접 배운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무르나우와 UFA 영화에서 앞서 정의한 의미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풍경처럼 보이는 것은 심지어 자연 풍경조차 모두 일종의 무대장치다. 그것은 사건이 벌어지는 객관적 장소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가 투영된 주관적 풍경, 혹은 배우의 표정 및 동작과 함께 불안과 히스테리의 정신적 상황을 구성하는 감정 이미지이다. < 마지막 웃음 >에서 남자가 자신을 향해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환상에 빠지는 장면을 떠올려보라.(#20) #21 <애로우스미스> #22 <역마차> #23 <도망자> 독일 표현주의의 미학적 뿌리가 연극 무대였고, 무르나우와 폴 레니, 에른스트 루비치, 오토 프레민저 그리고 배우 에밀 야닝스가 표현주의 연극을 이끈 막스 라인하르트 사단에 속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풍경의 무대장치화 혹은 풍경의 심리화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들의 공헌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물과 사건에 비해 부차적이었던 물질적 환경을 강력한 정신적 심리적 이미지로 변형시킨 것이다. 존 포드는 분명히 이것을 배웠고 이후의 영화에서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앞서 말한 장면 외에도 예컨대 <애로우스미스>(1931)의 한 장면(#21), 혹은 < 역마차 >(1939)나 < 도망자 >(1947)의 한 장면(#22, 23)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존 포드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풍경이 사건을 부차화하고 사소화하는 초월적 차원까지 밀고 갔다. 비유컨대, 그는 지평선을 발견한 것이었다. 만년의 존 포드가 영화를 찍는 방법을 묻는 어린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지평선을 프레임의 아래에 둘 건지 중간에 둘 건지 위에 둘 건지 그것만 알면 돼.”라고 대답했을 때 그가 말한 지평선이나, “내 영화의 진정한 스타는 대지”라고 말했을 때 그가 말한 대지는 바로 이 풍경의 다른 차원이었을 것이다. #24 그런 점에서 이 단순하고 감상적인 영화 < 네 아들 >에서 단 하나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바로 초반의 이 장면이다.(#24) 전경에 나뭇가지가 어른거리고 있고 중경에 어머니는 빨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후경에는 돌다리 위로 마차가 지나가고 있다. 이 장면은 아름답다.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므로 더없이 화사하고 밝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는 말하기 힘든 비애의 기운이 있다. 그것은 단지 어머니가 혼자 빨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뭇잎이 어머니 앞에서 무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멀리 교각은 미동도 없이 침묵하고 사람들은 아무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포드가 심도 화면에 매혹되어 이 장면을 찍었을지라도, 그렇게 찍힌 풍경은 불현듯 인물을 떠나고 있다. 포드의 세계가 이 장면으로부터 새로 시작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