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 감독
- 에두아르도 슐트
- 제작년도
- 2012
< 완다비전 >은 OTT 플랫폼인 월트디즈니플러스(이하 ‘디즈니’)의 오리지널 드라마이다. 총 9화로 구성된 <완다비전> 시즌1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페이즈4(Marvel Cinematic Universe: Phase Four)의 첫 번째 드라마 시리즈다. 절대적 권능을 가진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우주의 절반을 절멸시키려는 타노스와의 전쟁을 치룬 슈퍼히어로들의 모험을 그린 페이즈3는 < 어벤져스: 엔드게임 >(앤서니 루소·조 루소, 2019)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 비전 등 여러 슈퍼 히어로는 자신들의 죽음을 통해 타노스가 절멸시킨 우주의 절반을 되돌린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은 비극성을 띠며 영웅서사를 완성한다. 페이즈4는 그 이후의, 특히 멀티버스를 강조한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첫 시리즈인 <완다비전>은 멀티버스를 이용해 트라우마와 회복을 서사화 한다. 타노스는 급증하는 인구에 비해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대다수의 행복을 위해 모든 행성의 절반을 단 한 번에 절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가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야기한 재난은 전체주의적으로 인구를 통치하는 정치의 결과다. 그렇다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영웅들의 세상을 구하는 방식은 어떤가? 그들 역시 사라진 인구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 즉 숫자의 회귀에 집중한다. 그 이후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회귀는 회복과 같지 않다. 그렇기에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시리즈로써 트라우마와 회복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완다비전>은 분명 페이즈3와 다르다. <완다비전>은 미학적인 완성도나 세계에 대한 뛰어난 성찰을 보여주는 시리즈는 아니지만, 대중 플랫폼 시대의 메타서사와 팬덤으로서의 관객성을 텍스트 내외부에서 자기 반영적으로 현란하게 구사하는 놀라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것은 거의 MCU의 선언문과 같다. ‘사사로운 리스트’에 이 시리즈를 넣은 것은 이 시대의 대중 미디어 콘텐츠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놀라운 ‘아방가르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MCU가 그래픽노블, 피규어, 극장,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넘나들며 영화를 제작·유통하고 팬덤을 구축하는 방식은 새로운 관객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MCU의 팬덤은 민족국가를 비롯해 장소에 기반 한 지역 공동체들이 더 이상 크게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극장을 중심으로 한 관객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가운데 국가경계와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영상문화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유의 개성과 능력을 갖고 있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이 개별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가로지르며 서사를 상호교차하고 리부트하고 보철하고 있는 방식은 관람자들이 개입할 여지를 많이 남겨둔다.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도 상호교차 출연하면서 어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었던 이가 다른 영화에서는 조연이 되고, 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주인공도 조연도 없다. MCU가 계속되는 한 언제든, 심지어 죽은 이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서사가 써 내려갈 수 있다. 캐릭터와 텍스트 모두 언제든 다양한 매체로 상품화될 수 있는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의 중심은 캐릭터들이다.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결된 닫힌 서사가 아니고 언제든 변형가능하고 유연한, 그리고 평행 우주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콘텐츠로 이루어진 영화적 우주에는 끊임없이 생성하고 확장할 여지가 있다. 어떤 우주가 되었든 (미래에 캐릭터와 콘텐츠가 추가되면서) 늘 그보다 더 큰 우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더니즘 시대에는 기존 체제의 해체와 성찰 혹은 진리의 장소였던 개방성과 사이-공간은 이제 도래할 콘텐츠로 빼곡히 채워질 공간이 된다. 심지어 페이즈3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가장 극적인 영웅적 희생을 보여주며 진정한 주인공이 된 아이언맨도 다음과 같은 대사를 듣는다. “스타크 씨, 당신은 더 큰 우주의 일부일 뿐이에요. 아직 모를 뿐이지.” 늘 더 큰 우주로 열린 가능성과 그들의 복잡하면서도 유연한 관계성 때문에 MCU 팬은 슈퍼히어로들과 조연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의 네트워크에 참여 가능한 것처럼 느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얻은 특별한 ‘능력’이야말로 MCU의 영화적 우주 네트워크에 참여 감각을 높여준다. 그것은 바로 MCU를 읽어 내기 위한 리터러시이다. 끊임없는 확장을 위해 잉여공간을 만들고 그를 통해 이윤을 생산하는 자본주의가 영구엔진을 믿는 것처럼 MCU는 지속적으로 수많은 슈퍼 히어로와 서사들을 양산하고 있고 그들 간의 관계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멀티버스는 그러한 경향을 강화한다. MCU 팬은 그 우주에 참여하려면 해당 텍스트 그 자체만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매해 양산되는 영화와 시리즈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과 돈이 들지만, 별도로 해당 텍스트 밖에서 그들의 개성과 관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더 나아가 남들의 이해를 돕는 콘텐츠를 부가적으로 생산한다. 그래서 MCU 팬은 기본적으로 메타적이고 생산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영화학자는 이러한 MCU 관객성을 “연속성의 리터러시(literacy of continuity, 패리 댄츨러)”라고 개념화한 바 있다. MCU 팬덤은 MCU가 지속되고 확장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들은 개별적인 텍스트들이 복잡하게 연결되며 배치되는 가운데 그 빈 간극을 메워주며 연속성을 유지시켜준다. 이들은 다양한 장르, 매체, 플랫폼을 오가는 와중에도 그 모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양한 스타일들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고 박식한 정보를 모으고 공유한다. 단순히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텍스트들이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각 텍스트가 지닌 상징, 기호, 의미를 적극적으로 밀도 있게 독해하며 그것들을 상호텍스트적으로 네트워킹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선 많은 에너지를 투자할 수밖에 없고 투자를 회수하기 위해 다시 MCU를 소비하게 된다. 그렇기에 관객의 적극적 리터러시는 MCU의 확장과 응집력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그들의 참여감각은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성을 시뮬레이션 한다. MCU의 관객성은 리터러시가 높고 메타적이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성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공동체 감각을 강화하는 연속성은 영화적 우주가 잠재적으로 확장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세계 바깥을 더 이상 상상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역사적 성찰은 바깥의 사유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MCU 팬덤의 리터러시는 슈퍼히어로의 슈퍼 파워 같은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슈퍼 파워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성장 가능한 것이다. 페이즈3에서 남성 영웅들이 장애를 갖거나 허약한 신체에서 기술적 보철을 통해 무적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서사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능력주의’ 성장서사, 팬들이 리터러시를 키워며 MCU에 점증적으로 몰입하는 활동, MCU의 확장은 그 자체로 평행/멀티 우주를 구성한다. 여기서 장애는 비정상성/능력 없음이 되고 비장애는 정상성/슈퍼 파워가 된다. 장애가 있는 신체를 대가로 MCU가 연속성과 확장성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나온 페이즈4의 <완다비전>은 매우 흥미롭다. 제목 ‘완다비전’은 다중적 의미를 갖는다. 스칼렛 위치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의 비전, 즉 완다가 바라보는/보고 싶은 세상일 수도 있고, 완다가 만든 연인 비전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완다와 그의 연인 비전이 만든 가상세계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드라마의 초반 에피소드들은 매우 낯설고 혼란스럽다. 미국 텔레비전 문화의 역사와 MCU에 대한 정보와 정동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시네필’과 같은 높은 리터러시를 요구한다. 완다는 ‘엔드 게임’에서 연인 비전(폴 베타니)을 잃는다. 그런데 비전을 잃는다는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비전은 골격과 외장부터 세포단위까지 무한 재생력을 가진 비브라늄이라는 합성소재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포스트휴먼이기 때문이다. 사실 비전은 남성처럼 묘사되고 남성 배우가 연기하지만 그의 성별과 외양도 어쩌면 결정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트랜스젠더들은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MCU 슈퍼 영웅으로 비전을 택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 완다는 비전의 상실과 트라우마 그리고 애도를 주제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포스트휴먼을 상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드라마는 깊이 탐색한다. 완다의 트라우마는 비전만이 아니라 동유럽 이민자 가족으로서 오빠 퀵실버와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상실이 축적되어 발생한 것이다. 동유럽 이민자와 인공생명체의 애도는 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어떻게 애도가 가능한가. 왜 백인 남성영웅 아이언맨에 대한 애도는 ‘엔드게임’ 내내 중요하게 다뤄짐에도 인공생명체인 비전이나 러시아계 여성영웅 블랙 위도우는 그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서사화되지 못했는가. 완다의 슬픔과 분노는 단지 비전을 잃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의 죽음이 공동체 내에서 제대로 애도되지 못했다는 것, 아니 애초에 애도불가능성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도의 이중적 불가능성, 즉 애도불가능성이 애도되지 못하는 것이다. 비전은 비브라늄이라는 신소재만 있으면 언제든 재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고전적인 죽음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완다는 비전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사건의 완료가 불가능하다. <완다비전>은 과잉된 메타성, 혹은 빠른 속도로 급증하는 하이퍼매개성을 특징으로 하는 MCU와 같은 콘텐츠들이 도래할 메타콘텐츠들로 인해 외부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성찰적 비평이 불가능함을 텍스트 내적으로 서사화한다. 완다는 비전을 다시 만들어내 자신의 가상공간을 만든다. 그 가상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과 교외의 이성애 ‘정상가족’ 신화를 믿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1950-60년대 시트콤을 오마주한다. 흑백에서 칼라까지, <Mary Tyler Moore Show>, <I Love Lucy>, <The Dick Van Dyke Show>, <Bewitched> 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상성’에 편입되기 힘든 인공생명체인 비전과 마녀인 완다는 아이들까지 낳으며, 정상가족을 시뮬레이션 한다. 사실 그 시트콤들은 당시에도 정상가족이 신화라는 것을 이미 드러낸 바 있다. 이 코미디들은 ‘정상성’을 슬로건으로 걸면서도 넘어지고 부딪히는 신체 코미디와 말실수, 농담, 각자 맡은 성역할에의 무능함 등으로 ‘정상성’의 불가능성을 노출시킨다. 중산층의 존중받는 직업을 가진 모범적인 남편과 그를 보살피고 위로하는 전업 가정주부인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장난꾸러기인 귀여운 아이는 사실 그 자리에 잘 적응하지 못해 늘 해프닝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만들어 낸다. 완다의 아버지는 동유럽 이미자 출신으로 미국 텔레비전 쇼가 담긴 해적판 DVD를 파는 일을 했고, 완다와 오빠 퀵실버는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그 DVD를 보며 자랐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정상가족에 들지 못한 완다의 매체적 정동을 드러내는 콘텐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정상적인’ 백인 중산층 가족을 다룬 프로그램들이 된다. 회복을 위해 바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메타성을 작동시키며 완다는 점점 텍스트 내부로 진입한다. 완다의 비전은 결국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시트콤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가 되는 ‘제 4의 벽’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완다비전>은 매체성찰적이고 매체고고학적인 모더니즘 영화들이 해오던 작업을 진지하게 수행한다. 메타성의 바깥을 끊임없이 사유하고 텍스트 내로 끌고 들어온다. 외부가 되는 즉시 내부가 되는 그런 방식이다. 드라마에서 완다는 결국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제 4의 벽을 뚫고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외부의 사유, 즉 ‘비브라늄’이라는 소재의 조건(이중적 애도불가능성의 트라우마)과 ‘이민자’라는 위치를 사유할 여력이 남아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에게 또 다른 멀티버스가 도달할 것이고 또 다시 재현체계 안으로 주름 접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사유는 지연되고 성찰성은 포르노가 된다.
그야말로 ‘디즈니 세상’이다. 올해 7월까지 한국 극장가 흥행 성적을 들여다보자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십여 년 전부터 전 세계 극장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의 수퍼 히어로 영화 대부분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이름을 달고 전 세계에 배급된다. (디즈니는 2009년 12월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사들였고, 특히 마블의 영화 제작사인 마블 스튜디오는 2015년 8월부터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직속 산하에 두고 있다). 해마다 이 영화들 한두 편이 국내 극장가에서 크게 흥행 몰이를 하는 건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디즈니가 배급한 마블의 수퍼 히어로 영화’ < 캡틴 마블 >(3월 6일 개봉)과 < 어벤져스: 엔드게임 >(4월 24일 개봉)이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서 8월 2일 집계한 결과, 각각 580만 명과 1392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7월 24일까지 집계한 수치에서 올해 흥행 순위 2위와 6위를 차지했다. 올해 디즈니의 맹위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5월 23일 개봉해 53일 만에 ‘천만 영화’에 등극한 <알라딘>과 7월 17일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14일만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라이온 킹> 역시 디즈니의 이름으로 배급된 ‘디즈니 영화’다. 더욱이 이 두 작품은 2010년대 들어 디즈니가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애니메이션의 명가’로 명성을 쌓은 스튜디오답게 디즈니는 < 신데렐라 >(2015) < 정글북 >(2016) < 미녀와 야수 >(2017) <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2018) 등에 이어, 올해 <알라딘>과 <라이온 킹>을 거쳐, 2020년에 <뮬란>, 이후 <인어공주> <피노키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등,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리메이크하는 작품의 제작 계획을 빽빽이 늘어놓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중에서도 올해 개봉한 <덤보>, <알라딘>과 <라이온 킹>이 한국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개봉해 국내 극장가에서 관객 513만 명을 기록한 <미녀와 야수>도 빼놓을 수 없다. <신데렐라>(71만 명) <정글북>(253만 명)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49만 명), <덤보>(34만 명)의 흥행 성적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이 국내 관객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프로젝트가 리메이크하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은, 디즈니가 1990년대에 발표한 작품이다. ‘디즈니 르네상스’, 그러니까 디즈니가 고전적인 이야기를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 평단의 박수를 받는 동시에 전 세계 극장가에서 높은 흥행 수익을 올렸던 시기 말이다.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라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디즈니’의 브랜드 가치를 굳건히 한 때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때는 국내 비디오 시장이 활성화됐던 때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을 극장에서 보지 못했어도 비디오로 몇 번이고 돌려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은 디즈니’라는 공식, 아래 어릴 적부터 이 영화들을 수없이 보고 자란 세대가 지금의 20~30대다. 더군다나 이 세 작품 모두 뮤지컬 형식의 애니메이션이다. 장면장면이 아름다운 노래와, 그와 하나 되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기억되는. 올해 개봉한 실사영화 <알라딘>을 볼 때 깨달았다. 이 영화가 일깨우고 있는 건 ‘세대의 기억’이라는 걸.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첫 노래 ‘아라비안 나이트’가 흘러나오는 순간, 이 영화가 재미있는지 없는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도, 내 안의 어떤 기억이 깨어나 영화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 보고 또 봤던 애니메이션의 기억, 그러면서 빠져든 노래와 뮤지컬 장면에 대한 기억,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나면 난 어떤 소원을 빌면 좋을까’ 밤새 고민했던 기억…. 한 세대의 공통된 기억, 그것도 눈과 귀가 함께 기억하는 즐거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만큼 강력한 문화적 경험은 없다. 찬란한 상상력에 빛나는 애니메이션을 감쪽같은 실사 영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술력,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는 재치 넘치는 각색 등, 새로운 <알라딘>의 즐길거리를 더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알라딘>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이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20~30대 이상 관객들에게 ‘세대의 기억’을 생생히 돌이키고 그걸 새로이 할 장을 마련해 줬다는 데 있다고 확신한다. 진정 놀라운 것은, 19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가 일군 ‘세대의 기억’이 2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를 통해 보다 젊은 세대로 계속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관객이 실사 버전의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에 열광하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른 경험은 수십 년 뒤 ‘디즈니 월드’의 또 어떤 자산이 될 것인가. 조금 다른 예로, 십 수 년 뒤 디즈니가, 개봉 당시 세계적인 흥행기록과 함께 수록곡 ‘렛 잇 고’ 열풍을 일으킨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의 실사 버전을 만든다고 상상해 보자. 또 어떤 진풍경이 일어날지 눈에 선하지 않은가. 세대의 기억을 창조하고, 그것을 새 시대에 맞게 새롭게 계승하고, 그 유산을 바탕으로 무너지지 않는 왕국의 영토를 확장해 가는 디즈니의 전략이 이쯤 되면 영리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게 느껴질 정도다. 마블의 슈퍼 히어로 영화가, 히어로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부여하고, 그들을 때로는 개별 시리즈로 헤치고, 때로는 ‘어벤져스’ 시리즈로 한데 모으는 전술로 그 세계를 매력적으로 확장하는 전략 역시 감탄스럽기 그지없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디즈니는, 이 시대의 가장 크고 강력한 영화적 기억을 일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이러한데, 앞으로도 그 자리를 내어놓지 않겠다고 벌써부터 탄탄한 기초 공사를 다지는 치밀함까지. 감탄을 넘어 그 치밀함이 무섭기까지 한 ‘시네마 수퍼 히어로’다. 말 그대로 ‘디즈니 왕국’이다.
지난 회에 이어 여름특집은 계속된다. 여름 하면 역시 블록버스터다. 터지고 부서지고 그 사이에 맺어지는 화끈한 인연!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미 유명한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가 됐던 영화다. 그래서 삐용삐용B무비에 어울릴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 코너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다룬다면, 다른 대안은 없다. 무조건 이 영화다. “우리도 < 터미네이터 > 같은 영화 하나 만들어 봅시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말 한마디로 시작되곤 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당시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 슈퍼 홍길동 > 등으로 어린이들로 하여금 ‘Shut up! Take my money!’ 를 외치게 했던 김청기 감독의 야망에서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으나 한계를 느낀 김 감독은 이후 셀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섞는 작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다. 그것을 바탕으로 완전한 실사영화를, 다시 말해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일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본격 성인대상의 액션-에로틱-SF로 기획된 이 영화는, 데뷔하자마자 청춘스타가 되었고 동시에 작품성도 알아보는 재능을 보여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던 한 젊은 배우에게 김 감독이 건넨 한 마디로 의기투합해 제작이 성사되고 만다. < 바이오맨 >. 한국이 키운 가장 강한 男子! ‘8메가 디램이라니 그런 터무니 없는...! 일본과 미국같은 선진국가에도 4메가 디램이 없소’ 재벌기업 총수인 장만근( 윤일봉 )의 둘째 아들 장도일( 박중훈 )은 매일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며 술이나 먹고 여자와 노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기업에서 개발한 ‘초 고용량 메모리’인 8메가 D-RAM 칩의 설계도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일은 자신에게 메모리의 정보를 묻던 친구가 생각나고, 그를 다그쳐 홍콩에 문제의 설계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홍콩으로 떠난, 갑자기 효자가 된 도일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동남아 최대 조직의 보스인 ‘스리랑카의 별’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를 쫓는다. 형 영일( 남성훈 )이 붙여준 여자 요원 수지 한( 신미아 )과 함께 그들의 아지트에 쳐들어간 도일은 애석하게도 악당들의 총탄에 쓰러지고 만다. 수지 역시 그들에게 붙잡혀 옷이 벗겨진다. 소식을 들은 형 영일은 한달음에 홍콩으로 달려간다. 온몸의 기능이 망가졌으나, 정신력으로 뇌파만이 요동치는 도일을, 그는 현대 과학의 결정체인 기계 인간으로 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영일을 돕는 오석도( 신우철 )는 마약에 취한 채 윤락녀로 사는 수지를 찾아 병원에 입원시킨다. 상태가 호전 된 수지, 그리고 기계인간이 된 도일과 베트남 참전용사 오석도는 의기투합하여 ‘스리랑카의 별’을 찾아 라오스와 크메르(캄보디아를 크메르라고 말하고 있다.) 국경 어드메 쯤으로 출발한다. 그들은 무사히 ‘스리랑카의 별’을 해치우고 8메가 D-RAM 설계도를 찾아올 수 있을까? 바이오맨의 탄생 “시나리오는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100명이 나와야 할 장면에 10명 나오고, 총알이 비 오듯 쏟아져야 할 장면에 제작비 때문에 한 번 갈기면 30명씩 나가떨어지고... 아무리 각본이 좋아도 프로덕션이 못 받쳐주면 답이 없구나 하는 걸 느꼈죠.” < 바이오맨 >의 주연인 배우(이자 감독) 박중훈 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만큼 곡절이 많았던 영화였다. 성인용으로 기획된 만큼 영화에는 꽤 수위가 있는 표현들을 담고 있다. 여주인공 수지가 적에게 붙잡혀 강제로 탈의 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그녀를 다시 찾았을 때는 마약에 찌든 윤락녀가 되어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적인, 그것도 권력에 의한 강제적인 뉘앙스가 담긴 묘사들이 꽤 있는 데다가 최후에는 아예 헐벗은 여성 전투원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한다.( < 특명! 미녀군단 >도 그랬는데 왜 조명화 감독의 영화엔 항상 이런 분들이 등장하는가!) 그렇다고 이 영화를 ‘성인용’으로 부르기에도 조금 어렵다. 왜냐하면 성인이 봐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편집은 축약을 넘어서 거의 축지법 수준이고, 묘사는 적극을 넘어서 극단적이다. 악어와의 결투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화가 나는 장면이 있다면, 으아아아아!!! 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한다.(끝도 없이 들어가는 줌 인!) 장도일은 강하다! 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면 갑자기 잘 가던 자동차가 진흙에 빠진다.(이건, 빠지는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첫 번째 컷이 잘 굴러가는 자동차, 두 번째 컷이 진흙탕에 바퀴가 빠져 헛도는 자동차. 이런 식이다.) 그리고 도일은 한 손으로 차를 번쩍 들고, 자기 발 위에 바퀴를 올려놓는다. “헉! 도일씨 발에 바퀴가!” 라며 수지가 놀래면, 도일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으응?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부분에서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악어와의 일 대 일 맞장을 들 수 있다. 이 에피소드 역시 아무런 앞뒤가 없는데, 수지가 강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으니 악어가 슬금슬금 나온다. 분명히 오석도는 기관총을 들고 있는데, 장도일은 칼을 들고 물로 뛰어든다. 그리고 악어와의 사투. 우리는 분명 악어의 아가리에 감겨있는 피아노 줄을 볼 수 있다. 넓은 아량으로 역시 위험하니까, 라고 생각하지만, 꼬리 쪽에 보이는 어색한 사람의 손을 보면 아... 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건 마치 <에드우드>에서 보았던 벨라 루고시와 거대 문어 인형의 격투 장면을 보는 듯하다. 팀 버튼이 이 장면에 영화 만들기의 고단함과 퇴물 배우의 애잔함을 동시에 배어 나오게 했다면 < 바이오맨 >에서는 기관총을 든 오석도의 멍청함과 기계 인간 장도일의 뛰어난 방수성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여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겁다. 삐용삐용B무비를 시작한 이래, 첫 회를 장식했던 < 신사동제비 > 이후로 이렇게까지 막가는 영화는 처음이다. 그나마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격투장면도 허탈할 뿐이다. 그나마 오석도 역을 맡은 중견 액션 배우 신우철 (전에 소개했던 < 김두한 형, 시라소니 형 >에서 시라소니 역의 그 배우다.)이 약간의 다찌마리를 소화하고 있지만 주연 박중훈 의 액션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시공간이 오그라들 정도다. 이 모든 과정이 지나고 라스트 장면이 다가오면, 관객은 심각한 멘붕에 빠지게 된다. 갑작스러운 수지의 배신으로 에너지 칩이 빠져버린 장도일은 결전에 앞서 오석도에게 비장한 부탁을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생전 쓰지 않던 하오체를 써가면서 말이다. 도일 : 난 절대 포기하지 않소. 당신은 알고 있죠? 어서 에너지를 비상전달 장치로 연결해 주시오. 어서. 석도 : 그건 자폭하는 짓이야! 도일 : 나는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기계 인간일 뿐이오. 어서. 시간이 없소. 어서. 석도 : 미스터 장... 도일 : 딱딱(손가락을 튕긴다) 착잡한 표정의 오석도는 칼로 도일의 등을 따서 전기선을 뽑아 연결하기 시작한다. 이 비장한 장면에서 전기 공사 일을 하시는 우리 삼촌이 잠깐 떠올랐지만 어쨌든 슬픔이 밀려온다. 바이오맨의 이 숭고한 희생 앞에서, 토종 히어로의 탄생을 목도하는 기쁨에 복받치지 않을 자 그 누구란 말인가..! 결국 악당의 소굴을 초토화시킨 둘. 스리랑카의 별은 다급히 차에 올라타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를 뒤쫓기 시작하는 도일. 그리고 그는 자동차에 올라타고, 차와 함께 터져버린다. 에너지 비상전달 장치가 전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나는 여러분께 보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장도일! 끝내 인간이고 싶어 했던 마지막 절규와 함께 그는 몇 조각의 전자부품 조각만 남기고 사라져 갔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국경에서... 이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득하다. 김청기 감독과 조명화 감독은 성인을 타깃으로 영화를 기획, 제작했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방향을 급선회하여 전체관람가로 등급을 낮추고 어린이 회관, 무지개 극장 등을 통해 개봉했다고 한다. 당시 손에 손잡고 극장에 들어간 가족들이 영화가 끝나고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나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이 영화를 ‘체험’한 관객이 KMDb 집계 2,445명. 정극배우를 대거 기용하고 박중훈 이라는 당대의 청춘스타까지 캐스팅해 < 터미네이터 >와 < 람보 >를 섞어 대한민국 슈퍼히어로를 만들려던 야심은 이렇게 안타깝게 실패했다. 김청기 감독은 이 영화의 실패로 막대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몇 편의 <우뢰매>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을 연출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다시 누릴 수는 없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인 < 의적 임꺽정 >은 관객 151명이라는 기록적인 숫자를 남기며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다. (놀라지는 말자. 이 분야에서는 허리우드 극장 1일 개봉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남기남 감독의 < 천년환생 >이 있다. KMDb 집계 관객수 39명) 김청기 감독은 분명 어린이 영화계의 흥행사였다.(<우뢰매>의 오리지널리티나 작품들의 완성도는 둘째 치고) 내 또래 중 그가 만든 영화 한 편 안 보고 자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야심은 당연한 것이었을 테다. 한국에 토종 슈퍼 히어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아동용 감독이 아니라 누가 봐도 멋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인정욕구, 그러나 인프라의 부족과 장르 이해의 부족으로 결국 좋지 않은 모양새로 나온 < 바이오맨 >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비록 완벽하진 않았지만 시도 속에서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우리가 지금 즐기는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그냥 이 상태로도 좋다. 모든 영화가 잘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영화를 통해 힘들어했을 많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B무비는 나름의 방식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재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이런 재미가, 영화가 담을 수 있는 가장 개성 있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어떤 예술이 ‘실패’와 ‘실수’에서 애정을 끌어낼 수 있는가. 그런 사랑스러움이 내가 그동안 삐용삐용B무비를 해나갈 수 있었던 힘 이었을 거다. 시작할 때는 꽤 오래 하겠구나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금방이었다. 내가 쓰는 삐용삐용B무비는 다음 회가 마지막이다. 마지막을 맞아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이 쪽 분야에서 괜찮은 영화를 써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진짜 말도 안 되게 막 나가는 영화를 골라야 할 것도 같고. 그러나, 애초에 이런 생각 자체가 삐용삐용B무비 정신에 위반하는 것이다. 무게를 담으면 안 된다. 잘하려고 노력하면 안 된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던지고, 그것이 낭비냐 밑거름이냐는 상관하지 않는다. 쿨내 진동하는 이런 영화들을 소개하려 했던 것이 본 코너였다. 잘 되었던 것일까? 일단 마지막 회에서 뵙겠다. 박중훈 신미아 신우철 감독: 조명화 , 김청기 각본: 조명화 개봉극장: 무지개, 바다, 다복(서울) 관람인원: 2,445명